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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연민

바람 한 점 없이 하늘을 가리고 선 상수리나무들
 
우거진 잎 사이로 아침 햇살이 반짝이고 있다
 
의자에 앉아 상큼한 휴식에 취한 내 손등 위로
 
햇빛이 부드럽게 미끄러져
 
분주해진 벌들의 날갯짓이붕붕거리고 있다
 
이따금 도토리가 굵은 빗방울처럼 떨어져 나를 놀라게 해
 
재빠르게 나무 위를 오르는 다람쥐와 눈을 마주친다
 
 
 
어디선가 느릿느릿 다가서고 있는 검은 고양이
 
시선이 마주치자 걸음을 멈추고 흠칫 나를 쳐다보고 있다
 
서로를 탐색하는 짧은 시간
 
그의 지친 모습이 안쓰러워
 
아직도 준비되지 않은 식탁에서
 
새우 한 마리를 들고 갔다
 
 
 
가까이 가자 경계의 눈빛을 세우는 고양이
 
상실된 교감의 벽 앞에 내 호의는 무너져
 
내가 갖고 있던 모든 것들의 평온이
 
한순간의 긴장으로 흔들렸다
 
 
 
갈등을 불러온 고양이  
 
덤불 숲속으로 들어가는 야윈 뒷모습에
 
측은한 마음자리 놓을 수 없어
 
연민만 깊어진 눈길 멀리 돌린다
 
 
 
허물어진 마음의 편린들이
 
상수리 나뭇잎 사이 햇살로 지워지지 않고 있다

양기석 / 시인·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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