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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불 아래서] '사점(Dead Point)'의 교훈

대중목욕탕 사우나에 가면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모래시계를 세워 놓곤 한다. 모래가 반쯤 차 있는 초반에는 감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모래표면이 서서히 내려가지만 마지막 1cm 정도를 남기고는 모래가 순식간에 흘러내린다. 모래시계의 지름이 줄어들다 보니 속도가 빠르게 느껴지고 지루함도 덜 수 있다.     등산이나 마라톤을 하다 보면 숨이 멎을 것 같은 고통을 느끼는 순간이 찾아온다. 이를 '사점(死點ㆍDead Point)'이라고 한다. 이 고비를 지혜롭게 넘기면 한동안은 편안하게 등산과 마라톤을 지속할 수 있다.   필자는 가끔 정원 관리를 한다. 오랜만에 전기톱과 예초기(소형 엔진을 이용해서 날을 회전시켜 풀을 베는 도구)를 둘러메고 일을 시작하면 10분도 안 되어 근육이 아파온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무리해서 하다가 부상이라도 입으면 어쩌지'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보면 어느 새 근육통은 사라지고 2~3시간은 아무렇지도 않게 작업을 할 수 있다. 사점과 비슷한 원리라고 짐작해 본다.   돌아보면 영어나 자전거 서예와 그림을 배울 때도 비슷했던 것 같다. 초반의 지루함과 어려움을 어느 정도 감내하고서야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고 배우는 속도도 빨라졌다. 만약 초반의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사우나를 나와 버렸거나 근육통을 참지 못하고 전기톱을 내려놓았거나 영어 자전거 서예 그림을 포기했다면 보람과 성취감은 덜했을 것이다.   평소 알고 지내는 노스님께서 치매 예방을 위해 법문 암송을 시작하셨다. 처음에는 법문 한 페이지 분량을 외우는데 한나절이 걸렸지만 몇 개월이 지난 지금은 30분이면 완벽하게 외울 수 있다고 하신다. 경이로운 인간의 적응력이다.   수 년 전 원불교 신문에 매주 교리에 관해 연재를 한 적이 있다. 주변에서는 매주 한 편씩 쓰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느냐며 걱정해 주셨지만 사실을 한 달에 한 번 쓰는 것보다 매주 쓰는 것이 수월한 측면도 있다.     프로 작가의 경우는 다르겠지만 필자의 경우는 책상에 앉는다고 바로 글이 써지지는 않는다. 초안을 구상하면서 뇌의 구조를 '글쓰기'에 적합한 모드로 바꿔야 하는데 이 과정이 실제 '작문'하는 것보다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든다. 보통은 1~2시간이 걸리는 이 과정이 매주 글을 쓰는 경우에는 10분 정도로 짧아진다.       무슨 일이든 처음 하는 일은 낯설고 어려울 수밖에 없다. 새로운 일에 적응하는 데에는 몸도 마음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평범한 사람들은 이 과정을 넘지 못하고 포기를 하게 되고 이 과정을 지혜롭게 극복하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성취와 보람의 열매를 향유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포기하지 마세요"라는 말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포기 안한다고 무조건 성공한다고 말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무리하게 등산을 하거나 전기톱으로 작업을 하다 보면 큰 사고나 부상의 위험도 있을 수 있다. 단 모든 일에는 극복 가능한 사점과 사점 이후의 보람과 성취가 있음을 새겨 볼 일이다.     drongiandy@gmail.com 양은철 / 교무·원불교 미주서부훈련원등불 아래서 point dead dead point 자전거 서예 영어 자전거

2024-05-06

[시조가 있는 아침] 짚방석 내지마라 - 한호(1543∼1605)

짚방석 내지 마라 낙엽엔들 못 앉으랴   솔 불 혀지 마라 어제 진 달 돋아온다   아이야 박주산채(薄酒山菜)일망정 없다 말고 내어라   -병와가곡집   도덕성의 힘   짚으로 만든 방석을 내지 말아라. 낙엽에 앉으면 된다. 관솔불을 켜지 말아라. 어제 졌던 밝은 달이 또다시 뜬다. 가을밤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진수성찬이 무슨 소용이리. 얘야, 변변치 않은 술과 나물일지라도 좋으니 없다 말고 내려무나.   옛 선비들이 이상으로 생각했던 생활은 안빈낙도였다. 가난함을 편히 여기고, 도를 즐기는 생활이었다. 여기서 도(道)라함은 학문이나 수양의 세계다. 그들은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고, 검소한 생활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이것이 지식인 사회의 도덕성을 지키는 힘이 되었다. 금전(金錢)이 부르는 유혹에 빠져 패가망신하는 고관대작들을 보며 전통사회의 청빈 사상을 생각한다. 고도 산업사회로 치달으며 사라져간 선인의 엄격했던 자기관리가 그립다.   한호(韓濩)는 조선 선조 때의 명필이다. 호는 석봉(石峯)으로 왕희지와 안진경의 필법을 익혀 행서와 초서 등 각 서체에 모두 뛰어났다. 추사 김정희와 함께 조선 서예의 쌍벽을 이룬다. 유자효 / 한국시인협회장시조가 있는 아침 짚방석 한호 고도 산업사회 조선 선조 조선 서예

2023-10-06

팬데믹 이기고 ‘함께 하는 마음’…미주한인서예협 정기전시회

LA한국문화원(원장 정상원)과 미주한인서예협회(회장 로라 김) 공동 주관하는 제31회 미주한인서예협회 정기 전시회가 열린다.     ‘함께 하는 마음’이라는 주제로 오는 7일부터 21일까지 LA 한국문화원에서 열리는 이번 정기전에는 47명의 회원 작가들이 참여해 한국 서예의 멋과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서체, 수묵화를 비롯해 한국화, 서각 등 작품들을 전시할 예정이다.     로라 김 미주한인서예협회 회장은 “서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미주 지역에 서예를 보급하고 한국의 고유한 정신문화를 알리기 위해 협회를 창립한 지 32년이 됐다”며 “어려운 팬데믹을 이겨내고 ‘함께 하는 마음’이라는 주제로 작가들이 정성껏 만든 서예작품을 선보인다”고 밝혔다.     미주한인서예협회는 1990년 창립된 이래 지난 30여년 동안 주류사회에 서예를 소개하고, 한국 서예 전시 및 강습 등을 통해 한국 문화를 알려온 문화예술단체다.   이번 정기 전시회 참여 작가는 강수잔, 곽설리, 구영희, 권명원, 권재기, 김복임, 김선희, 김성은, 김영숙, 김정옥, 김로라, 남궁미진, 남지연, 박경순, 박남호, 박승수, 박태홍, 손영환, 송양자, 오규준, 오형원, 왕혜경, 윤경순, 이미회, 이선정, 이애령, 이재규, 이준수, 이지민, 이현숙, 임현경, 장경자, 전경철, 전상희, 전정웅, 정기호, 정명선, 정캐롤, 정현식, 한 상, 이영애, 허경애, 홍봉자, 홍옥기, 황 경, 황은자, 황태선 등 47명이다.       LA 한국문화원 정상원 문화원장은 “서예는 단순히 글씨를 쓰는 기술과 기교를 뛰어넘어 훌륭한 예술 작품으로 승화돼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며 “K-컬쳐의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프닝 리셉션은 7일 오후 6~7시로 한글날 기념 한글 서예 퍼포먼스 및 한글 이름 써주기 등 한글 서예를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행사도 열린다.     ▶주소: 5505 Wilshire Blvd. L.A   ▶ 문의: (323)936-3014 이은영 기자정기전시회 마음 미주한인서예협회 회장 미주한인서예협회 정기 한국 서예

2022-10-02

[독자 마당] 우리 말, 우리 글

얼마 전 한인이 다니는  노인대학에 등록을 했다. 매주 목요일마다 있는 서예반 수업 시간에 흰 화선지에 붓방아를 찧고 있다.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 함께 수업을 받고 있으니 덤으로 입방아도 찧는다.     서로 쉽게 통할 수 있는 말과 글이 있으니 참 좋다. 우리에게는 자유롭게 뜻을 전달할 수 있는 말이 있고, 그 말을 드러낼 수 있는 글도 있다. 특히 가장 표현력이 다양하다는 한글은 글자 가운데 으뜸으로 세계인이 부러워하고 있지 않은가.    지난 일이지만 벽에 걸린 한문 서예 작품을 본 아이들이 “저게 무슨 뜻이에요?”라며 혼란스러운 듯 물은 적이 있다. 이곳에서 태어난 2세, 3세들이 한글보다 훨씬 복잡하고 배우기 힘든 중국 글자를 어려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요즘 중국은 한문의 글자 획수를 줄여 사용하고 있어 한문을 배운 우리 세대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는 마당이다. 이에 비하면 한글은 훨씬 배우기가 쉽다.        연필과 잉크 펜 촉, 볼펜에 익숙한 우리에게 붓은 쉽게 친숙해지기 어려운 필기구다. 한 획, 한 획마다 비밀스러운 손짓과 아주 여유 있는 마음 짓으로 나가야 하기에 성질이 급한 사람이 배우기에는 쉬운 일이 아니다.     1000자루의 붓을 몽당붓으로 만들었다는 명필 추사 김정희 선생. 그런데 한 자루 붓으로 붓방아만 찧고 있는 이 초보자는 위대한 그의 작품 앞에서 어떻게 머리를 조아려야 하나 걱정만 커진다. 하지만 부단히 노력한다면 실력도 향상될 것이라 믿는다.       가을이라는 시월이 바로 앞에 와 있다.  하루는 길어도 세월은 빠르다더니 한해가 쉽게도 흐르고 있다. 느슨해진 몸을 추스르고 마음을 다잡아 다시 붓에 먹을 적셔봐야겠다.   지상문독자 마당 서예반 수업 한문 서예 글자 획수

2022-09-27

[삶의 뜨락에서] 등대지기

요사이처럼 마음이 허하고 난항의 길을 걸어보기는 오래간만인 것 같다. 거의 3년 동안 이어지는 팬데믹은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를 철장 속의 새로 만들어 놓고 있어 날마다 우울함에서 시작한다.     나는 고층건물에 살고 있어 새벽에 눈을 뜨면 자연 밖을 내다보는데 이렇게 추운 날씨에도 아침 7시 30분경이면 어김없이 인부들이 모여 새집을 짓고 있고 길 건너 학교 운동장에서는 초등학교 학생들이 부모들의 손을 잡고 씩씩하게 등교하는 모습을 보면 그들은 나에게 등대의 역할을 해준다.     GPS가 발달한 현대에서는 갈수록 등대의 중요성이 떨어지고 있고, 있던 등대들도 거의 무인화되고 있어 찾아보기도 어렵지만, 과거엔 이들이 없으면 배가 야간항해 정박을 할 수가 없었다. 배가 사고를 당하지 않고 무사히 야간에 항해하고 정박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등대요, 그를 인도하는 것이 등대지기라 하겠다.     요사이 좀 잠잠해지려나 했던 팬데믹은 오미크론이라는 변종이 생겨나 그 무서운 전파력에 모든 사람을 더더욱 묶고 놓고 있다. 우리 아파트만 해도 아래층 스파. 도서실, 각종 운동시설을 모두 일단 문을 닫는다는 공지사항이 나돌고, 그나마 일주일에 한 번 나가던 서예 교실도 쉬고 있는데 곧 다시 시작할 예정이다.     이런 와중에서도 우리는 이를 뚫고 하나의 빛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오늘 하루도 선물이고 희망이다.     펜실베이니아에 사는 나의 셋째 시동생은 거의 20여년 전에 뇌졸중이 와 그동안 참으로 열심히 건강을 챙겨 거의 정상으로 근래 잘 지내고 있었는데 지난 연말 다시 또 뇌졸중이 와  요사이 또 힘들게 지내고 있어도 절망하지 않고 모든 테라피를 잘 받으면서 희망 속에 지내고 있다. 그에게 닥친 난항 속에서도 그는 등대를 찾기에 여념이 없다. 삶은 ‘빛’을 잃지 않는 한 우리는 희망을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하며 용기를 얻는다.     오랜 세월 인간의 ‘희로애락’을 노래하는 우리 문학 교실의 한 문우께서는 이 어려운 팬데믹에서 그 힘든 요가(yoga)를 공부해(American Yoga Academy) 지금은 요가 선생님으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역사회 봉사까지 하고 계시다. 이 분은 이 혼란한 난항을 거쳐 가는 시기에 우리에게 등대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생각하면 나의 주위에는 고마운 분들이 많다. 우리는 서로 만나지는 못해도 카톡을 통해 LA, FL, NY 어디서건 서로의 안부를 묻고 좋은 정보를 주고받으며 이 난항의 길을 헤쳐나간다.     우리 문학 교실의 김정기 선생님께서는 새해에 이메일을 주시며 올해의 ‘신춘문예 시’ 시 당선작을 회원들에게 보내시며 세월이 가도 가슴 뛰게 하는 다선 시를 많이 읽고 공부하라고 격려하신다. 서예 교실의 유영은 선생님께서도 임인년 새해에 격탁양청(激濁陽淸), 탁류를 흘려보내고 맑은 흐름을 받아들인다는 신년원단을 보내주시고 계속 윤동주 선생님의 ‘서시’, 두보의 ‘춘망’ 등 체본을 보내시며 회원들을 격려하신다. 선생님들께서는 이 난항 속에서 침체해 있는 우리에게 ‘빛’을 발하시며 그 힘든 ‘등대지기’의 역할을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우리 모두 각자의 등대를 찾아 감사와 긍정의 힘으로 이 난항의 세월을 헤쳐 나갈 때 임인년 새해에는 기쁜 소식이 들리기를 확신한다. 정순덕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등대지기 요가 선생님 서예 교실도 윤동주 선생님

2022-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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