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마당] 우리 말, 우리 글
얼마 전 한인이 다니는 노인대학에 등록을 했다. 매주 목요일마다 있는 서예반 수업 시간에 흰 화선지에 붓방아를 찧고 있다.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 함께 수업을 받고 있으니 덤으로 입방아도 찧는다.서로 쉽게 통할 수 있는 말과 글이 있으니 참 좋다. 우리에게는 자유롭게 뜻을 전달할 수 있는 말이 있고, 그 말을 드러낼 수 있는 글도 있다. 특히 가장 표현력이 다양하다는 한글은 글자 가운데 으뜸으로 세계인이 부러워하고 있지 않은가.
지난 일이지만 벽에 걸린 한문 서예 작품을 본 아이들이 “저게 무슨 뜻이에요?”라며 혼란스러운 듯 물은 적이 있다. 이곳에서 태어난 2세, 3세들이 한글보다 훨씬 복잡하고 배우기 힘든 중국 글자를 어려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요즘 중국은 한문의 글자 획수를 줄여 사용하고 있어 한문을 배운 우리 세대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는 마당이다. 이에 비하면 한글은 훨씬 배우기가 쉽다.
연필과 잉크 펜 촉, 볼펜에 익숙한 우리에게 붓은 쉽게 친숙해지기 어려운 필기구다. 한 획, 한 획마다 비밀스러운 손짓과 아주 여유 있는 마음 짓으로 나가야 하기에 성질이 급한 사람이 배우기에는 쉬운 일이 아니다.
1000자루의 붓을 몽당붓으로 만들었다는 명필 추사 김정희 선생. 그런데 한 자루 붓으로 붓방아만 찧고 있는 이 초보자는 위대한 그의 작품 앞에서 어떻게 머리를 조아려야 하나 걱정만 커진다. 하지만 부단히 노력한다면 실력도 향상될 것이라 믿는다.
가을이라는 시월이 바로 앞에 와 있다. 하루는 길어도 세월은 빠르다더니 한해가 쉽게도 흐르고 있다. 느슨해진 몸을 추스르고 마음을 다잡아 다시 붓에 먹을 적셔봐야겠다.
지상문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