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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으로 읽는 책] 상처 입은 당신에게 글쓰기를 권합니다

글쓰기의 치유적 힘을 고민하면서부터 나는, 일류와 삼류는 바로 필자와 독자가 글을 통해서 얼마나 자신을 성찰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게 됐다. 글을 쓰면서 얼마나 위로받고 변화했는가. 글을 읽으면서 자신의 내면에서 무엇을 발견했는가. 삼류에 냉소적인 나, 징징거리는 문체에 치를 떠는 나, 지적인 정보에 압도당하는 나, 평가나 판단에 급급해 글에 몰입하지 못하는 내가 보이는가. 신파에 눈물짓는 나, 로맨스 소설을 읽으며 남몰래 짜릿함을 느끼는 내가 보이는가. 그 외에 어떤 것들이 보이는가.     박미라 『상처 입은 당신에게 글쓰기를 권합니다』   ‘치유하는 글쓰기 연구소’를 이끄는 저자의 치유적 글쓰기 안내서다.   “1. 초등학교 3학년 때 사회과목을 좋아하던 나는 학교에서 백지도 책을 산다고 300원을 가져오라그랬느데 엄마는 주지않았다. 엄마에게 처음으로 욕을 했었다. 물론 마음으로. 반 아이가 미술시간 준비물로 풀을 대신해서 흰쌀밥을 가져왔다. 난 그 밥이 먹고 싶었다.” 글쓰기 워크숍 참가자가 쓴  ‘내 인생이 서러운 100가지 이유’ 중 1번이다. 지금은 회사의 고위 간부가 된 그는 텅 빈 사무실에서 이 글을 썼다. “7. 20대 중반 정도에 나는 이를 해 넣었다. 오로지 나의 힘으로. 그 이가 지금까지 있다. 참 힘든 세월이었다.” 맞춤법도 띄어쓰기도 엉망이지만, 오롯이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는 힘을 가진 글. 낭독이 끝났을 때 참가자들은 함께 울었다. 저자는 “이 글이 그날 밤, 그녀와 우리 모두를 구원했다”고 썼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상처 치유적 글쓰기 글쓰기 워크숍 글쓰기 연구소

2024-11-13

정신적 피해 입증 [ASK미국 노동법-박상현 변호사]

▶문= 직장에서 보복성 해고를 당한 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은데 이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답= 캘리포니아에서 직장 내 차별, 보복, 부당 해고 등의 부당 행위에 대한 소송을 진행할 경우 손해 배상의 범주에 정신적 피해에 대한 배상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정신적 피해는 경제적 손해처럼 단순히 계산할 수 없지만 노동법 소송에서 종종 중요한 문제로 다뤄집니다. 예를 들어 원고가 부당 해고 후 금방 비슷한 급여를 지불하는 다른 일자리를 구했을 경우, 임금 손실은 크지 않지만 부당 행위로 인한 정신적 고통이 심각하거나 오랜 기간 지속될 수 있습니다.     먼저 자신이 받은 정신적 상처와 그로 인해 겪고 있는 감정을 구체적으로 돌아봐야 합니다. 같은 부당 행위를 겪었다고 하더라도 사람에 따라 정신적 피해는 다른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울감, 좌절감, 수치심, 불안감 등으로 표현되거나, 당시 상황이 반복적으로 떠오르며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불면증이나 악몽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단순히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고 말하기보다는, 구체적으로 어떤 부당 행위가 심리적으로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일관되게 설명할 수 있다면 피해를 입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심리 상담이나 치료를 받는 것은 실제로 겪고 있는 고통을 설득력 있게 증명하는 중요한 방법입니다. 심리 상담이나 치료 과정 자체가 정신적 고통의 원인, 양상, 정도를 확인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이러한 기록은 원고의 정신적 고통을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증거로 쓰일 수 있습니다. 또한 심리 상담사나 정신과 의사, 심리 전문가는 판사나 배심원에게 원고의 정신적 피해를 신뢰성 있게 설명해 줄 수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자신의 정신적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시간을 들여 돌아보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입니다. 고통스러웠던 순간을 생각하는 것이 힘들더라도, 어떤 부분에서 가장 큰 상처를 받았는지, 마음속에서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를 돌아보고 대처하는 것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일 뿐 아니라, 피해를 입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문의:(213)282-5100 / www.lachowiczpark.com 박상현 변호사미국 노동법 정신적 피해 정신적 고통 정신적 상처

2024-11-12

'괴롭힘 피해' 친구 돕다 중학생 칼 찔려…동급생 흉기에 상처, 병원 이송

샌버나디노카운티의 한 중학교에서 괴롭힘을 막으려던 학생이 칼에 찔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반면, 학교 측의 미흡한 대응은 학부모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KTLA에 따르면 지난 11일 리알토 지역 프리스비 중학교에서 8학년 학생이 다른 학생의 칼에 찔려 병원으로 이송됐다.     당시 라커룸에서 벌어진 상황은 휴대전화 영상에 고스란히 담겼다. 영상에는 두 남학생이 몸싸움을 벌이다 한 학생이 칼을 휘두르는 모습이 포착됐다.   피해 학생의 어머니 산드라 아길라르는 “아들이 괴롭힘을 당하던 학생을 돕다가 공격을 당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칼을 든 학생이 다른 아이를 괴롭히자 아들이 ‘그만하라’고 말했지만, 그 순간 싸움이 시작됐고 영상 속에서 칼을 휘두르는 장면이 보인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현장에 출동해 가해 학생을 체포했다. 피해 학생은 팔에 상처를 입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퇴원했지만, 아직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사건 이후 학교는 학부모들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 5일 타운홀 미팅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겪은 괴롭힘 사례를 공유하며 학교 측 대응을 강하게 비판했다.   아길라르는 “2년 전 아들이 6학년 때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했으며, 여러 차례 민원을 제기한 끝에 가해 학생이 퇴학당했다”며 “그럼에도 학교의 대응은 여전히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작년에는 칼을 소지한 학생을 학교에 보고했지만, 학교 측은 미온적인 대응을 보였고 금속 탐지기 설치를 요청했으나 지역 교육구와 논의하겠다는 답변만 들었다”며 “결국 무작위로 가방을 검사하는 수준에 그쳤다”고 덧붙였다.   이번 칼부림 사건 당시, 학교 측은 경찰이 출동한 사실만을 이메일로 통보했을 뿐 학생이 칼에 찔려 병원으로 이송된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불안을 느낀 학부모들은 학교로 몰려와 자녀들을 데려갔다.   한 학부모는 “아이를 안전하게 학교에 보내고 싶은데 이런 일이 발생해 매우 걱정된다”고 말했다.   리알토 통합교육구는 “학생과 교직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학부모와의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길라르는 “교육구에 여러 번 찾아갔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며 “다른 아이들과 부모가 이런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윤재 기자중학생 동급생 상처 병원 동급생 흉기 입고 병원

2024-10-17

[우리말 바루기] 장애인에게 상처 주는 말

부지불식간에 사용하는 속담이나 관용구에 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이 들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이러한 점을 지적한 적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꿀 먹은 벙어리’와 ‘장님 코끼리 만지기’다. 인권위는 ‘꿀 먹은 벙어리’는 문맥과 상황에 따라 ‘말문이 막힌’ ‘말을 못하는’ 등으로, ‘장님 코끼리 만지기’는 ‘일부만 알면서 전체를 알듯이’ ‘주먹구구식’ 등으로 바꾸어 쓸 것을 권하고 있다.   이러한 관용구에는 ‘눈먼 돈’과 ‘외눈박이 ○○’도 있다. ‘눈먼 돈’은 임자 없는 돈이나 우연히 생긴 공돈을 뜻한다. ‘외눈박이 ○○’은 한쪽으로 기울거나 편파적인 경우에 사용되는 말이다. 장애인먼저실천운동본부는 상황에 따라 ‘눈먼 돈’은 ‘주인 없는 돈’, ‘외눈박이 ○○’는 ‘편파 ○○’ 등으로 바꾸어 쓸 것을 제안하고 있다. ‘장애를 앓고 있다’는 표현 또한 장애를 질병이나 결함으로 여기는 것이기 때문에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식으로 바꾸어 쓸 것을 권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역시 ‘눈 뜬 장님’ ‘벙어리 냉가슴 앓듯’ ‘귀머거리 삼년’ ‘절름발이 정책’ 등 ‘장님, 벙어리, 귀머거리, 절름발이’ 등이 들어간 속담이나 관용구는 장애인을 차별하는 표현이라며 사용을 자제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우리말 바루기 장애인 상처 장님 벙어리 벙어리 냉가슴 절름발이 정책

2024-04-07

[음식과 약] 나이 들수록 상처가 안 낫는 이유

나이 들수록 상처 치유가 느려진다. 전쟁터에서 부상을 입은 나이든 군인은 상처 회복에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1차 세계대전 때부터 기록된 사실이다. 원인은 여러 가지다. 노인의 피부는 더 얇고 탄력을 잃으며 손상되기 쉽다. 나이 들면서 상처 치유에 필요한 케라틴을 생산하는 피부 세포도 힘이 떨어진다.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도 상처 치유를 방해한다. 혈당 관리가 잘 되지 않으면 혈액 순환이 힘들어지고 상처 복구도 더뎌지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단백질과 같은 필수 영양소 섭취가 부족해도 문제가 생긴다. 비타민 C, 비타민 D, 아연과 같은 비타민과 미네랄의 결핍도 상처 치유가 지연되는 원인 중 하나다. 나이 들수록 사용하는 약의 가짓수가 늘어나기 마련이다. 약 복용도 손상 부위 회복을 늦출 수 있다. 상처 치유의 첫 단계는 염증이다. 염증 단계는 상처가 생긴 직후부터 3~4일간 지속한다. 스테로이드·소염진통제와 같이 염증 억제 약을 먹으면 상처 회복이 더뎌질 수 있는 이유이다. 흔히 혈액을 묽게 하는 약으로 불리는 항응고제도 상처 치유를 늦출 수 있다. 하지만 약 때문에 상처가 잘 안 낫는 걸 의심하여 의사와 상의하지 않고 스스로 약 복용을 중단하면 안 된다.   면역 체계가 전보다 늦게 작동하는 것도 치유가 지연되는 원인이다. 상처 부위가 새로운 피부층으로 덮이려면 주변의 피부 세포가 이주해야 한다. 이렇게 피부 세포가 이동하려면 근처 면역 세포의 협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2016년 미국 록펠러대 연구에 따르면 노화로 인해 피부 세포와 면역 세포 간 소통이 제대로 안 될 수 있다. 생후 2개월 된 생쥐(사람으로 치면 20세)와 24개월 된 생쥐(사람 나이 70세)를 비교한 결과, 케라틴 세포가 상처 부위로 이동하는 시간이 나이든 생쥐의 경우 훨씬 긴 것으로 나타났다. 케라틴 세포가 이주하려면 주변 면역 세포에게 도움을 청하는 신호를 보내야 하는데 나이든 생쥐의 케라틴 세포는 그런 신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람이든 피부 세포이든 나이 들수록 소통이 중요한 건 마찬가지인가 보다.   상처가 빨리 낫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비누와 수돗물로 가볍게 상처 부위를 씻어내 주는 게 좋다. 소독제를 과도하게 사용하면 정상세포도 손상시킬 수 있다. 다음 단계로 습윤드레싱을 사용해주면 된다. 과거에는 습기가 상처를 감염시킬까 우려하여 딱지가 생길 때까지 건조하게 두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상처 치유에는 촉촉한 환경이 낫다. 주변의 피부 세포가 이동하여 해당 부위를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된다. 물론 이는 가벼운 상처에 국한된 설명이다. 정재훈 / 약사·푸드라이터음식과 약 나이 상처 상처 치유 상처 부위 상처 회복

2023-12-31

[우리말 바루기] 배가 땡길까? 땅길까?

얼마 전 급히 먹은 음식이 잘못됐는지배가 뭉치고 잡아당기는 듯한 복통이 일어났다. 포털 사이트에서 증상에 대해 검색해 보니 ‘복통’과 더불어 ‘배 땡김’이란 주제어가 많이 나왔다.   이렇듯 “저녁 먹은 뒤부터 배가 살살 땡기고 아프다” “너무 웃어서 배가 땡긴다” 등처럼 배가 단단하게 되거나 팽창하게 될 때 ‘땡기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그러나 ‘땡기다’라는 단어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아예 나와 있지도 않다. 왜 그럴까? ‘땡기다’가 아니라 ‘땅기다’가 바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땅기다’는 몹시 단단하고 팽팽하게 된다는 뜻을 나타내는 단어다.  따라서 ‘배가 땅기고 아프다’ ‘배 땅김’ 등으로 고쳐 써야 맞는 표현이 된다.   “피부가 건조한지 얼굴이 너무 땡긴다” “다리 상처가 땡긴다”에서의 ‘땡기다’ 역시 ‘땅기다’로 바꾸어야 한다.   그럼 “요즘 영 입맛이 땡기지를 않는다”에서의 ‘땡기다’는 어떻게 고쳐야 할까? 여기서의 ‘땡기다’는 ‘땅기다’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 좋아하는 마음이 일어나 저절로 끌리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은 ‘당기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즘 영 입맛이 당기지를 않는다”고 해야 한다. ‘당기다’는 물건이나 시간 등을  앞으로 옮길 때도 쓰인다. “방아쇠를 땡겼다” “귀가 시간을 땡겼다”에서의 ‘땡겼다’도 ‘당겼다’로 고쳐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귀가 시간 다리 상처 포털 사이트

2023-10-26

[우리말 바루기] 상처 주는 속담·관용구

장애인에 대한 비하는 직접적으로 장애인을 겨냥한 발언에서 나오는 경우는 사실 그리 많지 않다. 말하는 가운데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예가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부지불식간에 사용하는 속담이나 관용구에 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이 들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이러한 점을 지적한 적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꿀 먹은 벙어리’와 ‘장님 코끼리 만지기’다. 인권위는 ‘꿀 먹은 벙어리’는 문맥과 상황에 따라 ‘말문이 막힌’ ‘말을 못하는’ 등으로, ‘장님 코끼리 만지기’는 ‘일부만 알면서 전체를 알듯이’ ‘주먹구구식’ 등으로 바꾸어 쓸 것을 권하고 있다.   이러한 관용구에는 ‘눈먼 돈’과 ‘외눈박이 ○○’도 있다. ‘눈먼 돈’은 임자 없는 돈이나 우연히 생긴 공돈을 뜻한다. ‘외눈박이 ○○’은 한쪽으로 기울거나 편파적인 경우에 사용되는 말이다.  ‘장애를 앓고 있다’는 표현 또한 장애를 질병이나 결함으로 여기는 것이기 때문에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식으로 바꾸어 쓸 것을 권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역시 ‘눈 뜬 장님’ ‘벙어리 냉가슴 앓듯’ ‘귀머거리 삼년’ ‘절름발이 정책’ 등 ‘장님, 벙어리, 귀머거리, 절름발이’ 등이 들어간 속담이나 관용구는 장애인을 차별하는 표현이라며 사용을 자제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우리말 바루기 관용구 상처 장님 벙어리 벙어리 냉가슴 절름발이 정책

2023-05-10

[중앙시론] 상처와 교훈을 동시에 준 ‘4·29 LA폭동’

지난해 4월은 사이구(4·29) 폭동 30주년으로 정말 바쁜 시간을 보냈다. CNN, LA타임스, NPR, AFN 등을 비롯해 한인 언론들, 그리고 한국 언론과도 인터뷰를 했다. 특히 CNN은 2시간짜리 사이구 30주년 특집 다큐를 제작했는데 1시간은 한인 사회를 집중 조명했다. 폭동 이후 30년 동안 눈부시게 발전한 한인 사회 모습에 큰 관심을 가졌다. 그만큼 한인 사회의 위상이 높아진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특히 과거 한·흑 갈등에 질문의 초점을 맞췄던 것과 달리 작년에는 한인 사회의 변화와 위상에 대한 궁금증이 주를 이뤘다는 것이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아시아계 대상 증오범죄가 급증하면서 아시안 아메리칸, 특히 한인 사회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것을 반영한 것이었다.   UCLA 아시안 아메리칸 센터는 사이구 폭동 30주년을 맞이해 한인 기자들의 시각으로 본 특집 편저 책을 준비했는데 필자에게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논문을 써 달라는 부탁이 와 몇 번의 수정 작업을 한 후 최근 출판이 되었다. 이 책의 앞뒷면은 퓰리처상을 2번이나 수상한 강형원 전 LA타임스 기자의 사진으로 꾸몄다. 폭동 당시 한인들이 합심해 한인 상가의 불을 끄는 모습이다.  당시 한인 타운 곳곳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하지만 소방차와 경찰이 출동하지 않아 한인들 스스로 화재 진압에 나서야 했다. 이 사진은 당시 한인 사회의 피해에 대한 관계 기관의  무관심과 방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필자는 논문을 통해 사이구는 흑·백의 문제를 넘어 한인 사회에 엄청난 충격과 교훈을 던져준 역사적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올해는 31주년이라 별다른 행사가 없었다.  그런데  31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이구를 역사적으로 되새기며 차세대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점이 너무 슬프다. 사이구 폭동은 미주 한인 사회 100년사에서 가장 큰 상처와 교훈을 준 역사적 사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스스로가 기억하며, 차세대들에는 역사 교육의 현장이 될 공간이 없는 것이다.   한미박물관은 1990년대 이후 설립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그리고 2012년 10월 LA시로부터 한인타운 6가와 버몬트의 시 소유 주차장 부지를 1년 1달러의 임대료로 50년간 장기임대를 받았다. 한미박물관 건립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보였다. 이어 본격적인 기금 모금이 시작되었고 한인 사회로부터 어느 정도 호응을 얻은 듯했으나 설계가 4번이나 바뀌는 등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이는 커뮤니티 사업으로 진행되며 성공적인 기금 모금 활동 등을 통해 완공한 일미박물관, 아르메니아박물관과 대조된다.     일미박물관은 일본계 커뮤니티, 정치권, 일본의 다국적 기업이 합심해서 이루어낸 훌륭한 역사적 업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100대대 출신으로 일본계 미국인 재향군인회 회장을 역임했던 고 김영옥 대령도 일미박물관 건립에 큰 역할을 했고, 그는 한미박물관 설립 사업 초기 배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글렌데일의 아르메니안 박물관은 사업 시작 7년 만에 문을 열어 한인 사회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성공적인 기금 모금과 정치인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밑바탕이 됐다.     한미박물관이 계획대로 완공되었다면 사이구 관련 각종 행사의 핵심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행사는 물론 폭동 관련 전시물과 강연, 그리고 영상 등을 통해 한인 사회가 경험한 아픔을 차세대와 타 커뮤니티와 공유하고 함께 미래를 설계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다.     차세대 교육의 중요성이 대두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사이구 폭동같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을 차세대들에 올바로 알릴 수 있는 공간이 전혀 없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한미박물관은 일부 이사들이 아니라 한인 사회가 주인이라는 새로운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기금 모금 등에 차세대의 참여가 절실히 요구된다. 필자는 한미박물관등의 건립과 운영은 차세대들이 주도하고, 1세대들은 기금 모금과 정부 등의 매칭 펀드 확보에 주력하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이구 폭동 31주년을 맞이하면서 이제 우리의 숙원인 미주한인사 정립 및 보존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역사를 모르면 닻을 내리지 못하는 배처럼 정처 없이 표류하게 된다. 상처와 교훈을 동시에 던져준 사이구의 역사적 의미를 통해 코리안 아메리칸의 정체성 확립해야 한다. 코리안 아메리칸의 정체성은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의 역사의식에서 출발하고 가능하다.   장태한 / 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장중앙시론 la폭동 상처 한인 사회 사이구 폭동 한인 언론들

2023-05-01

[우리말 바루기] 배가 땡길까? 땅길까?

얼마 전 급히 먹은 음식이 잘못됐는지 복통이 일어났다. 포털 사이트에서 증상에 대해 검색해 보니 ‘복통’과 더불어 ‘배 땡김’이란 주제어가 많이 나왔다.   이렇듯 “저녁 먹은 뒤부터 배가 살살 땡기고 아프다” “너무 웃어서 배가 땡긴다” 등처럼 배가 단단하게 되거나 팽창하게 될 때 ‘땡기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그러나 ‘땡기다’라는 단어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아예 나와 있지도 않다. 왜 그럴까? ‘땡기다’가 아니라 ‘땅기다’가 바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땅기다’는 몹시 단단하고 팽팽하게 된다는 뜻을 나타내는 단어다.  따라서 ‘배가 땅기고 아프다’ ‘배 땅김’ 등으로 고쳐 써야 맞는 표현이 된다.   “피부가 건조한지 얼굴이 너무 땡긴다” “다리 상처가 땡긴다”에서의 ‘땡기다’ 역시 ‘땅기다’로 바꾸어야 한다.   그럼 “요즘 영 입맛이 땡기지를 않는다”에서의 ‘땡기다’는 어떻게 고쳐야 할까? 여기서의 ‘땡기다’는 ‘땅기다’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 좋아하는 마음이 일어나 저절로 끌리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은 ‘당기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즘 영 입맛이 당기지를 않는다”고 해야 한다. ‘당기다’는 물건이나 시간 등을  앞으로 옮길 때도 쓰인다. “방아쇠를 땡겼다” “귀가 시간을 땡겼다”에서의 ‘땡겼다’도 ‘당겼다’로 고쳐야 한다. 그렇다면 “그의 마음에 불을 땡겼다”에서의 ‘땡기다’는 어떻게 고쳐야 할까? 불이 옮아 붙는다는 의미를 나타낼 때는 ‘댕기다’가 맞는 표현이다. 따라서 “그의 마음에 불을 댕겼다”로 고쳐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귀가 시간 다리 상처 포털 사이트

2022-09-16

[수필] 아물지 않는 상처

“그렇게 비싼 게 왜 필요해요? 튼튼하고 편하면 되지.”   벌써 30년 전 인가? 6월 초 어느 날 벼루고 별로 어머니 모시고 안경점엘 갔다. 남가주 초여름의 환상적인 날씨에 오랜만에 아들과 같이하는 외출이 그렇게도 좋으신지 들뜬 마음을 드러내시며 아이들처럼 연신 즐거워하셨다. 그녀의 이렇게 밝은 표정에 나도 평소의 복잡한 생각과 힘든 일상에서 벗어나 상쾌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민 초기 어느 정도의 어려움은 어쩔 수 없이 넘어야 할 산. 정원에서 나무하나 풀 한 포기 옮겨 심어도 다시 제 자리 잡게 하려 하면 적지 않은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다.   때론 바램을 비웃듯 안타깝게 실망으로 끝나기도 하고.  강하다 곤  하지만 환경변화에 한없이 약한 게 인간 아닌가?   낯선 거리와 사람들 긴 세월 학교에서 배운 영어는 믿음을 배반하고 당장 하루하루의 삶은 절박하기만 한데 차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동차의 나라에서 차는 고사하고 지금까지 해본 적이 없는 운전을 처음부터 배워야 했다. 갈 길은 먼데 넓고 험한 강을 만난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언제 끝날지 모를 견디기 힘든 긴장과 휴식 없는 긴 시간의 노동이었다.   지금은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우뚝 서 있지만 내가 이민 오던 1970년대 중반만 해도 우리 조국 대한민국은 6·25, 4·19등 오랜 격변기를 거치며 사회 전체가 엄청난 혼란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부족한 형편에서 별도의 교육 없이도 근검절약을 알았고 또 그런 자세가 아니면 살아 남을 수 없었다.   이런 습관은 타고난 기질처럼 우리 몸에 각인되었고 풍요의 나라 미국에 와서도 크게 달라 진 게 없는 것 같다. 여기서 자라 교육받은 아들은 “아빠, 거지처럼 살지 마세요.” 한다.   즐겨 쓰지 않으면서도 싼 물건을 보면 욕심내고 페이퍼 타월 한장도 반으로 쪼개 쓰고 한번 쓴 걸 버리지 못하고 다시 말려서 써야 마음이 편하다.   옷을 사러 가도 빨간 딱지 붙은 세일 품목이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고 맥도날드나 칼스주니어 등에서 아까워 차마 버리지 못하고 가져온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와 컵이 집안 구석구석 넘쳐 흐른다.   이상한 일은 우리 세대보다 더 험한 세월을 보내셨을 어머니는 달랐다. 무얼 하나 사도  최고의 좋은 걸 고르시곤 오래오래 사용하며 즐기셨다.   일제강점기 아버지 따라 일본생활도 하셨던 당신. 그때 샀던 가위는 40년이 지나 미국 올 때도 이민 보따리에 묻어와 한참 사용했을 정도로 튼튼하고 품질이 우수한 것이었다.   “좋은 물건은 비싸도 비싼 게 아니야, 잘 모르겠으면 비싼  거로 사면 돼!”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 날도 잘 나가다 안경테에서 의견이 갈렸다. 80넘어 주로 집에만 계시던 분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보기 좋고 비싼 고급 안경테에 마음이 끌리신 것이다.   비록 조금씩 자리는 잡혀가곤 있었지만, 이 기회의 땅도 아직까진 감히 내 나라라고 할 만큼 가까이 느끼지 못하고 있었고 나와 내 가족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습관처럼 나를 억누르고 있었다.   일 이백불 차이이지만 꼭 필요한 지출이 아닌 금액으론 너무 커 보였다. 그걸 고집하시는 어머니가 야속하기까지 했다.   결국 내가 이겼다. 잘 말씀 드려(?) 억지로 중간쯤 적당한 것으로 하기로 했다.   그러나 내가 이겼다고 생각한 건 잠시의 착각. 며칠 후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같이 안경점에 갔던 그다음 날 나만 모르게 자신이 갖고 싶었던 테로 바꿔 사셨다고 한다.   그 일에 대해선 더는 서로 얘기를 안 했다. 하나 왠지 씁쓸한 뒷맛은 어쩔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 그분이 안 계신 지금 현재 내 생각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긴 했지만. 가끔 자신을 뒤 돌아보다 낯선 나를 만나곤 한다. 아마 그때의 나도 나 자신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던 그런 나가 아니었을까?   내색은 하지 않으셨지만, 안경테 하나에 그렇게 인색한 자식의 모습에 “도대체 이것도 내 자식인가?” 하고  얼마나 실망하시고 속이 상하셨을까? 자기 자식에겐 크레딧카드를 내주면서 자신의 어머니에겐 사소한 지출까지 신경을 쓴다?   부모 자식 사이에 서로 느끼는 사랑의 감정은 근본적으로 많이 다른 것 같다.   경우에 따라 얼마 간의 차이야 있겠지만, 부모의 자식 사랑은 조건 없이 이루어지는 본능 같은 것이고 자식의 부모 사랑은 외견상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 의식을 통해 관습적으로 행해지는 어떤 의무감 같은 것은 아닌지? 그래서  부모라는 직업은(?) 항상 손해를 보고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하는가 보다.   곁에서 떠나신지도 어언 20여년,  이 젠 나도 안경없이는  하루도 지낼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어쩌다 안경점에 들를 때, 우연히 거리에서 멋진 안경을 쓰신 할머니들을 보게 될 때   자신도 모르게 불쑥불쑥 아프게 다가오는 이 아물지 않는 상처는 어떻게 하면 지울 수 있을까?   무심히 흘려버린 그때 그 축복의 시간으로 돌아만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박명근 / 수필가수필 상처 자식 사랑 부모 자식 부모 사랑

2022-07-21

[오픈 업] 과거와 마주할 수 있는 용기

오래전 영화 ‘귀향(Coming Home)’은 베트남 전쟁 중에 제작됐지만 8년을 기다린 후에야 상영됐다. 영화에서 상이용사 존 보이트는 신체는 불편했지만 다른 환자들을 도우며 보람을 찾는다. 장교 부인으로 병원에서 봉사를 하던 여인( 제인 폰다 분)은 이 상이군인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큰 감동을 받는다.     어느 날 그녀의 남편이 전장에서 돌아왔다. 겉으로 상처가 없었지만 그는 더 이상 즐거움을 느끼거나 사랑을 할 수 없었고 악몽에 시달렸다. 여인은 자신을 멀리하는 남편을 떠나간다. 마음의 상처(trauma)가 자신과 주위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선정됐던 ‘몸은 기억한다(The Body Keeps the Score)’라는 책이 있다. 부제는 ‘두뇌, 마음, 몸의 치유’다.     네덜란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후 하버드 의대 외상 클리닉(Trauma Clinic)에서 30여년간 연구를 한 베셀 반 데어 콜크 박사가 저자이다. 그가 가장 먼저 진료했던 톰이라는 환자가 저자의 일생 연구진로를 결정해 주었다. 고교를 1등으로 졸업한 톰은 가풍을 따라 해병대를 지원한다. 항상 명랑하고 인기가 많은 그가 베트남전에 나가서도 리더가 된 것은 당연했다. 어느 날, 논을 지나다가 그의 부대는 적군의 기습을 받았다. 그의 휘하에 있던 8명의 전우들이 사망 또는 큰 부상을 입었다.     명예제대 후 법과 대학을 이수한 그는 잘나가는 변호사가 됐고 두 아들과 사랑하는 부인을 둔 가장으로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는 자신에 대한 끝없는 죄책감과 사소한 일에도 솟아나오는 분노를 조절하기가 힘들었다. 두 아들이 조금만 소리를 내도 참을 수 없이 화가 치밀어 집을 뛰쳐 나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들들을 해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 밤이면 동료들이 죽는 장면이 생생하게 악몽으로 나타났다. 술을 마시면서 악착 같이 잠을 쫓으려고 했다.     저자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삼촌이 벌컥 화를 내며 아이들과 전혀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이유를 후에 알았다. 젊은 시절에 아버지는 반나치 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갇혔던 경험이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일본군에게 체포됐던 삼촌은 노동자로 미얀마에 팔려가 고통을 받았다. 새벽마다 골방에 들어가 기도를 하던 아버지와 느닷없이 고함을 지르던 삼촌의 모습을 어릴 적 저자는 보았다.     자신의 경험과 동료들의 연구를 통해 저자는 외상이 두뇌와 육체의 반응을 바꾸어 놓는 것을 알았다. 연기가 나면 스모크 알람이 울리듯이, 두뇌에 있는 경보장치에 이상이 오고, 스트레스 호르몬이 다량 생산되며 상관관계를 구별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어린 시절 육체적, 정신적, 성적으로 학대 받았던 사람들, 엄마가 아버지의 폭력에 학대 당하는 장면을 보았던 사람들, 지진이나 홍수 등의 자연재해로 가족을 잃었던 사람들… 하지만 이런 사람 모두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경험하지는 않는다. 같은 나무에서 떨어져도 흠집이 많이 생긴 사과가 있는 반면 온전한 사과도 있다. 증세의 정도는 다를 수 있다. 유전이나 환경에 따라 차이가, 사랑하고 염려해주는 보호자의 유무로 상처 크기가 달라진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심한 상처를 경험했던 사람들 중에 심각한 음주문제나 가정폭력, 자녀학대, 인간관계 문제 등이 있다면 전문가를 찾아 PTSD를 치료 받기를 권한다. 자신이 힘들게 겪었던 이야기를 함께 하며, 주위 사람과 인간관계를 맺는 것처럼 좋은 치료는 없다. 저자는 외상 당시의 분노를 몸으로 다시 한 번 경험해 보며, 기억을 떠올려 극복하는 것이 치료의 지름길이라고 한다. 용기를 갖고 과거를 마주해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용기 가정폭력 자녀학대 일생 연구진로 유무로 상처

2022-06-02

[삶의 뜨락에서] 구식 어머니-유방 파제트 병에 대하여

가을이 시작된 지 한 달 정도 지난 시월, 오척이 안 되는 작은 키에 단정해 보이는 한국 할머니를 보게 되었습니다. 검고 짧은 단발머리에 허리가 반듯한 할머니는 진찰대에 쉽게 올라 진찰을 받았습니다. 최근 방사선 유방조직 검사 결과 좌측 유방에 조기암 진단을 받은 후 수술 치료의 의견을 상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연세가 어떻게 되나요?” “쉰일곱.” 차트를 보니 할머니의 나이는 여든다섯이었습니다. 신체검사를 받으러 온 초등학교 학생처럼 밝고 씩씩해 보였습니다. 진찰한 결과 왼쪽 유방 유두의 모습이 벌겋게 부풀어 오른 모습이었습니다.     유방 엑스레이 사진과 병리 소견 그리고 진찰 결과를 종합해 볼 때 전형적인 유방 파제트병(Paget‘s disease of the breast)의 소견이었습니다. 유두가 가렵고 피부가 벗겨지기도 하여 빨갛게 변하고 습진처럼 보이나 습진 치료나 항생제 연고로 낮지 않으며, 이런 경우 아주 드문 유방암의 일종인 파제트 병을 의심할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의심되는 피부 부위의 조직검사 등으로 유방 상피내 암의 진단이 가능하며, 수술 전 맘모그람, 유방 초음파 혹은 유방 MRI 검사 등을 통해 동시에 있을 수 있는 유방 다른 부위의 다발성 침윤성 유방암 유무를 알아야 합니다.   환자와 같이 온 간병인에게 소견을 말해주고 멀리 있는 아들에게도 진찰 소견을 전화로 알려주었습니다. 할머니는 플러싱에서 간병인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3주일이 지난 후 병원에서 좌측 유방 절제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후 회복실에 작은 소동이 있다는 연락을 받고 가보니, 할머니가 침대에서 내려와 환자 가운을 반쯤 걸친 채 회복실 가운데 서너 명의 간호사들에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아픈 데도 없는 데 집에 보내줘, 집에는 친구도 있어, 왜 나를 이런 곳에 누워 있으라 해?” 할머니는 아주 못마땅하여 집에 가기를 고집하였습니다. 간호사와 간병인과 합세하여 할머니를 하룻밤 병원에서 관찰할 수 있도록 설득했으나 허사였습니다. 바로 그때 아들과 통화가 되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네가 그렇게 하라면 하루 자고 가야지.”   할머니는 의젓하고 전혀 딴사람같이 침대로 돌아가 가만히 누웠습니다. 할머니는 다음 날 퇴원하였습니다. 퇴원하는 날 새벽 여섯 시 반, 멀리서 서너 시간 운전해온 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수술 2주일 후 수술부위 상처가 열려 환자를 보게 되었습니다. 간병인에게서 할머니가 한밤중 조용히 일어나 수술부위의 거즈를 떼고 거울을 보며 수술부위의 실밥을 하나 둘 씩 떼고 다시 거즈를 붙이는 것을 목격하였다 했습니다. 한 달 후 벌어져 있던 수술 부위는 할머니가 생각한 데로 스스로 잘 낳았습니다. 수술 후 병리소견은 에스트로겐 음성인 다발성 유방 상피내암으로항암 치료, 약물치료, 방사선치료는 필요하지 않으며, 향후 15년간 재발 확률이 5% 미만임을 환자 보호자에게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녀가 한국에서 약대를 졸업하고 혼자되어 미국에 온 후 약사로 병원 등에서 밤낮없이 일하여 네 명의 자녀를 훌륭하게 교육하였다는 것을 들은 것은 수술 후 약 한 달이 지난 후였습니다.   작고하신 나의 어머님을 생각합니다. 이제 거의 노인이 되어 어머님이 원하시던 자리에 와 가만히 쥐었던 주먹을 펴 봅니다. 그곳엔 잡을 수 없는 아쉬운 시간의 부피가 한 줌의 바람으로 느껴집니다. 성갑제 / 외과 의사삶의 뜨락에서 어머니 파제트 유방 파제트병 다발성 유방 수술부위 상처

2022-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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