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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아물지 않는 상처

“그렇게 비싼 게 왜 필요해요? 튼튼하고 편하면 되지.”
 
벌써 30년 전 인가? 6월 초 어느 날 벼루고 별로 어머니 모시고 안경점엘 갔다. 남가주 초여름의 환상적인 날씨에 오랜만에 아들과 같이하는 외출이 그렇게도 좋으신지 들뜬 마음을 드러내시며 아이들처럼 연신 즐거워하셨다. 그녀의 이렇게 밝은 표정에 나도 평소의 복잡한 생각과 힘든 일상에서 벗어나 상쾌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민 초기 어느 정도의 어려움은 어쩔 수 없이 넘어야 할 산. 정원에서 나무하나 풀 한 포기 옮겨 심어도 다시 제 자리 잡게 하려 하면 적지 않은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다.
 
때론 바램을 비웃듯 안타깝게 실망으로 끝나기도 하고.  강하다 곤  하지만 환경변화에 한없이 약한 게 인간 아닌가?
 


낯선 거리와 사람들 긴 세월 학교에서 배운 영어는 믿음을 배반하고 당장 하루하루의 삶은 절박하기만 한데 차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동차의 나라에서 차는 고사하고 지금까지 해본 적이 없는 운전을 처음부터 배워야 했다. 갈 길은 먼데 넓고 험한 강을 만난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언제 끝날지 모를 견디기 힘든 긴장과 휴식 없는 긴 시간의 노동이었다.
 
지금은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우뚝 서 있지만 내가 이민 오던 1970년대 중반만 해도 우리 조국 대한민국은 6·25, 4·19등 오랜 격변기를 거치며 사회 전체가 엄청난 혼란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부족한 형편에서 별도의 교육 없이도 근검절약을 알았고 또 그런 자세가 아니면 살아 남을 수 없었다.
 
이런 습관은 타고난 기질처럼 우리 몸에 각인되었고 풍요의 나라 미국에 와서도 크게 달라 진 게 없는 것 같다. 여기서 자라 교육받은 아들은 “아빠, 거지처럼 살지 마세요.” 한다.
 
즐겨 쓰지 않으면서도 싼 물건을 보면 욕심내고 페이퍼 타월 한장도 반으로 쪼개 쓰고 한번 쓴 걸 버리지 못하고 다시 말려서 써야 마음이 편하다.
 
옷을 사러 가도 빨간 딱지 붙은 세일 품목이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고 맥도날드나 칼스주니어 등에서 아까워 차마 버리지 못하고 가져온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와 컵이 집안 구석구석 넘쳐 흐른다.
 
이상한 일은 우리 세대보다 더 험한 세월을 보내셨을 어머니는 달랐다. 무얼 하나 사도  최고의 좋은 걸 고르시곤 오래오래 사용하며 즐기셨다.
 
일제강점기 아버지 따라 일본생활도 하셨던 당신. 그때 샀던 가위는 40년이 지나 미국 올 때도 이민 보따리에 묻어와 한참 사용했을 정도로 튼튼하고 품질이 우수한 것이었다.
 
“좋은 물건은 비싸도 비싼 게 아니야, 잘 모르겠으면 비싼  거로 사면 돼!”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 날도 잘 나가다 안경테에서 의견이 갈렸다. 80넘어 주로 집에만 계시던 분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보기 좋고 비싼 고급 안경테에 마음이 끌리신 것이다.
 
비록 조금씩 자리는 잡혀가곤 있었지만, 이 기회의 땅도 아직까진 감히 내 나라라고 할 만큼 가까이 느끼지 못하고 있었고 나와 내 가족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습관처럼 나를 억누르고 있었다.
 
일 이백불 차이이지만 꼭 필요한 지출이 아닌 금액으론 너무 커 보였다. 그걸 고집하시는 어머니가 야속하기까지 했다.
 
결국 내가 이겼다. 잘 말씀 드려(?) 억지로 중간쯤 적당한 것으로 하기로 했다.
 
그러나 내가 이겼다고 생각한 건 잠시의 착각. 며칠 후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같이 안경점에 갔던 그다음 날 나만 모르게 자신이 갖고 싶었던 테로 바꿔 사셨다고 한다.
 
그 일에 대해선 더는 서로 얘기를 안 했다. 하나 왠지 씁쓸한 뒷맛은 어쩔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 그분이 안 계신 지금 현재 내 생각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긴 했지만. 가끔 자신을 뒤 돌아보다 낯선 나를 만나곤 한다. 아마 그때의 나도 나 자신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던 그런 나가 아니었을까?
 
내색은 하지 않으셨지만, 안경테 하나에 그렇게 인색한 자식의 모습에 “도대체 이것도 내 자식인가?” 하고  얼마나 실망하시고 속이 상하셨을까? 자기 자식에겐 크레딧카드를 내주면서 자신의 어머니에겐 사소한 지출까지 신경을 쓴다?
 
부모 자식 사이에 서로 느끼는 사랑의 감정은 근본적으로 많이 다른 것 같다.
 
경우에 따라 얼마 간의 차이야 있겠지만, 부모의 자식 사랑은 조건 없이 이루어지는 본능 같은 것이고 자식의 부모 사랑은 외견상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 의식을 통해 관습적으로 행해지는 어떤 의무감 같은 것은 아닌지? 그래서  부모라는 직업은(?) 항상 손해를 보고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하는가 보다.
 
곁에서 떠나신지도 어언 20여년,  이 젠 나도 안경없이는  하루도 지낼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어쩌다 안경점에 들를 때, 우연히 거리에서 멋진 안경을 쓰신 할머니들을 보게 될 때
 
자신도 모르게 불쑥불쑥 아프게 다가오는 이 아물지 않는 상처는 어떻게 하면 지울 수 있을까?
 
무심히 흘려버린 그때 그 축복의 시간으로 돌아만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박명근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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