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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과거와 마주할 수 있는 용기

오래전 영화 ‘귀향(Coming Home)’은 베트남 전쟁 중에 제작됐지만 8년을 기다린 후에야 상영됐다. 영화에서 상이용사 존 보이트는 신체는 불편했지만 다른 환자들을 도우며 보람을 찾는다. 장교 부인으로 병원에서 봉사를 하던 여인( 제인 폰다 분)은 이 상이군인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큰 감동을 받는다.  
 
어느 날 그녀의 남편이 전장에서 돌아왔다. 겉으로 상처가 없었지만 그는 더 이상 즐거움을 느끼거나 사랑을 할 수 없었고 악몽에 시달렸다. 여인은 자신을 멀리하는 남편을 떠나간다. 마음의 상처(trauma)가 자신과 주위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선정됐던 ‘몸은 기억한다(The Body Keeps the Score)’라는 책이 있다. 부제는 ‘두뇌, 마음, 몸의 치유’다.  
 
네덜란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후 하버드 의대 외상 클리닉(Trauma Clinic)에서 30여년간 연구를 한 베셀 반 데어 콜크 박사가 저자이다. 그가 가장 먼저 진료했던 톰이라는 환자가 저자의 일생 연구진로를 결정해 주었다. 고교를 1등으로 졸업한 톰은 가풍을 따라 해병대를 지원한다. 항상 명랑하고 인기가 많은 그가 베트남전에 나가서도 리더가 된 것은 당연했다. 어느 날, 논을 지나다가 그의 부대는 적군의 기습을 받았다. 그의 휘하에 있던 8명의 전우들이 사망 또는 큰 부상을 입었다.  
 


명예제대 후 법과 대학을 이수한 그는 잘나가는 변호사가 됐고 두 아들과 사랑하는 부인을 둔 가장으로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는 자신에 대한 끝없는 죄책감과 사소한 일에도 솟아나오는 분노를 조절하기가 힘들었다. 두 아들이 조금만 소리를 내도 참을 수 없이 화가 치밀어 집을 뛰쳐 나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들들을 해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 밤이면 동료들이 죽는 장면이 생생하게 악몽으로 나타났다. 술을 마시면서 악착 같이 잠을 쫓으려고 했다.  
 
저자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삼촌이 벌컥 화를 내며 아이들과 전혀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이유를 후에 알았다. 젊은 시절에 아버지는 반나치 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갇혔던 경험이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일본군에게 체포됐던 삼촌은 노동자로 미얀마에 팔려가 고통을 받았다. 새벽마다 골방에 들어가 기도를 하던 아버지와 느닷없이 고함을 지르던 삼촌의 모습을 어릴 적 저자는 보았다.  
 
자신의 경험과 동료들의 연구를 통해 저자는 외상이 두뇌와 육체의 반응을 바꾸어 놓는 것을 알았다. 연기가 나면 스모크 알람이 울리듯이, 두뇌에 있는 경보장치에 이상이 오고, 스트레스 호르몬이 다량 생산되며 상관관계를 구별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어린 시절 육체적, 정신적, 성적으로 학대 받았던 사람들, 엄마가 아버지의 폭력에 학대 당하는 장면을 보았던 사람들, 지진이나 홍수 등의 자연재해로 가족을 잃었던 사람들… 하지만 이런 사람 모두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경험하지는 않는다. 같은 나무에서 떨어져도 흠집이 많이 생긴 사과가 있는 반면 온전한 사과도 있다. 증세의 정도는 다를 수 있다. 유전이나 환경에 따라 차이가, 사랑하고 염려해주는 보호자의 유무로 상처 크기가 달라진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심한 상처를 경험했던 사람들 중에 심각한 음주문제나 가정폭력, 자녀학대, 인간관계 문제 등이 있다면 전문가를 찾아 PTSD를 치료 받기를 권한다. 자신이 힘들게 겪었던 이야기를 함께 하며, 주위 사람과 인간관계를 맺는 것처럼 좋은 치료는 없다. 저자는 외상 당시의 분노를 몸으로 다시 한 번 경험해 보며, 기억을 떠올려 극복하는 것이 치료의 지름길이라고 한다. 용기를 갖고 과거를 마주해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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