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불 아래서] 상처를 아는 손
온 힘을 다해 하루를 달리던 해가 뉘엿거리며 지평선 너머로 몸을 누일 때면, 하루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창문 너머로 옹기종기 비친다. 어깨 위로 내려앉은 붉은 노을을 맞으며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의 모습에는 인생의 무게가 묵직하게 얹혀 있다. 생각해 보면, 이들 중 처음부터 그렇게 묵직한 걸음을 시작한 이가 어디 있으랴. 세상에 나와 첫걸음을 떼며, 발그레한 볼로 방 안을 씩씩거리고 누비던 그 아이가 바로 우리였다.그러나 그 첫걸음이 어느새 수많은 발걸음이 되어버리고, 우리는 왜 걷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린 채 그저 앞사람을 따라 부지런히 발만 놀리며 살아간다. 집으로 돌아와 온종일 돌아 다녔던 발을 내려다보면, 거기에는 우리의 인생이 고스란히 묻어나 있다.
돌투성이 길을 걸으며 굳은살이 박이고, 살기 위해 애타게 뛰어다니던 발은 어느덧 마디마디 모양이 변해버렸다. 독한 주인을 만나 바쁘게 달리다 발톱마저 빠져버린 발은 이제는 너무 지쳐 쉴 곳만을 찾는다. 흙먼지와 오물은 그곳까지 따라다니고 발은 조롱에 분노하고 멸시에 한숨 쉰다.
갈 길을 몰라 방황하다가 가고 싶지 않은 길을 억지로 걸었던 발, 남보다 앞서려고 한 걸음이라도 먼저 내밀려고 허둥대던 발. 서로를 밟고 짓누르며 뭉개던 발, 미움과 분노로 상처를 내던 발. 이 모든 발에는 깊은 흔적과 고통이 남아, 발을 꺼낼 때마다 우리는 아픔과 두려움을 마주 대하고 아픈 상처들은 외로움으로 더욱 깊어진다.
그런데, 우리가 부끄러워 숨기고 싶었던 그 발을 두 손으로 잡아주는 분이 있다. 우리가 어떤 길을 걸었고 무엇을 밟았든지 상관없이, 성큼 다가와 수건을 두르고 우리의 발을 씻겨주는 분이 있다. 더러움과 상처를 모르는 채로 잡는 것이 아니다. 그분은 우리의 지나온 길을 자신의 손에 담아 물로 씻고 수건으로 닦아준다. 작은 생채기 하나조차 놓치지 않는다.
그 손에는 더 깊은 상처가 보인다. 고통과 눈물을 아는 손, 외로움을 견뎌낸 손이다. 그래서 상처를 덮고 아픔을 감싸며, 더러움을 깨끗이 씻어준다. 마침내 우리의 발은 쉼을 얻는다. 상처에는 새살이 돋고, 굳은살이 밴 발에는 따뜻한 손의 온기가 남는다. 이제 남은 흔적은 숨기고 싶기만 한 상처가 아니다. 놀라운 손이 빚은 아름다움이다.
그분이 고요히 말한다.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 발은 이제 서두르지 않는다. 가야 할 길이 있는 발은 성실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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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윤 / 목사·나성남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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