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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 한인 교수 "친부모 용서"…오리건대 제시카 김 교수 사연

"친부모가 입양을 선택한 것을 용서합니다. 그 당시에는 서로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을 거예요. 저는 지금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고 있어요. 친부모도 행복하고 건강하길 바랍니다."   미국에 입양된 한인 제시카 김 로저스(한국명 김고은.46) 씨는 29일 한국 아동권리보장원 입양인지원센터에 보낸 뿌리 찾기 사연에서 "낙관적이지는 않지만, 친가족을 알 수 있다면 좋을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입양 기록에 따르면 김씨는 1977년 6월 10일에 서울에서 태어났고, 사직파출소 문 앞에서 발견됐다. 이후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이듬해 6월 펜실베이니아의 한 가정에 입양됐다.   그는 회계사인 양부와 주부인 양모 밑에서 자랐다. 그에게는 양부모가 한국에서 입양한 여동생도 한 명 있었다. 김씨는 코네티컷의 한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오리건 대학에서 연극사를 전공해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북부의 작은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면서 극장 책임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김씨는 "극은 제가 기억하는 것 중 항상 열정을 가져온 대상"이라며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봄 학기에 4명의 한국 학생을 가르치면서 본격적으로 뿌리 찾기에 관심을 갖게 됐다.     다음달에는 입양 후 45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을 여행할 계획이다. 아직은 한글을 조금 읽을 줄 아는 유치원 입학 전 수준에 불과하지만, 넷플릭스에서 한국 드라마를 몰아서 보는 등 한국 여행을 위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   김씨는 "친가족 찾기가 결코 쉽게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서도 "친가족 찾기는 계속 진행 중"이라고 강조했다.교수 친부모 교수 사연 입양 한인 친부모 용서

2023-11-29

"차 도난당했지만, 홈리스 사역은 사명"…글로리아 김 선교사 사연

37년 동안 LA 전 지역에서 홈리스 사역을 하는 글로리아 김(77) 선교사가 최근 차를 도난당한 뒤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 선교사는 지난 10일 오전 5시 30분쯤 교회 앞에 세워뒀던 자신의 차량이 사라진 걸 발견했다.     그는 “항상 세워두는 곳에 스트리트파킹을 해놨는데 차가 없어졌다”며 “차가 없어 카트에 식량과 물을 담아 버스로 홈리스 사역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도난당하기 전 수차례 차량 훼손이 있었다. 김 선교사는 “지난 5월부터 사이드미러 양쪽이 차례로 부서졌다. 고쳐놓으니 타이어를 펑크내는 등 차량 훼손이 수차례 계속됐다”며 “또 교회 문을 여러 번 바꿨는데도 지속해서 누군가 침입한 흔적이 있었다. 사건 당일에도 차량 도난 신고를 하고 여분의 키를 놓는 곳을 확인해보니 열쇠가 없었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그는 봉사를 이어가고 있다. 김 선교사는 “차가 없어 불편하지만 매일 오전 6시부터 한인타운, 맥아더파크, 다운타운 등을 버스를 타고 돌면서 150~200여 개의 빵과 바나나, 물 등을 나눠주고 있다”며 “다만 봉사 기록이 어려워 지원이 줄고 있어 걱정”이라고 호소했다.     그와 함께 홈리스 사역을 도왔던 하워드 이씨는 “목사님의 넘치는 봉사 열정을 막을 순 없지만, 항상 걱정”이라며 “수많은 어려움과 위기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도록 한인사회에서도 많은 도움과 지원을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김 선교사는 “발이 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봉사할 것”이라며 “홈리스의 새 삶을 위한 쉼터를 세우고 그들의 회복을 위해 봉사하는 게 나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글로리아 김 선교사는 홈리스 사역을 인정받아 대통령, LA시장 등 여러 단체에서 공로상을 받은 바 있다.     ▶돕고 싶다면 (909)262-1810, (323)734-7177 김예진 기자 [email protected]글로리아 홈리스 선교사 사연 홈리스 사역 차량 도난

2023-09-26

한인들 가슴 아픈 사연에 후원 답지…‘고펀드미’ 온라인 모금 활발

어려움에 처한 한인들이 모금·후원 웹사이트 ‘고펀드미’를 통해 경제적 도움을 얻고 있다. 생면부지인 후원자들은 한인 등 후원을 바라는 이들의 사연에 공감해 온라인 기부에 한창이다. 일부 한인 사연자는 목표 금액의 150배를 달성하기도 했다.     7일 고펀드미(www.gofundme.com)에 따르면 후원자 약 7만6600명은 지난 2021년 3월 16일 애틀랜타 스파 총격 사건 희생자인 고 현정 그랜트(한국명 김현정, 당시 51세)씨의 두 아들을 위해 계속 후원을 하고 있다. 당시 고인의 아들 중 한 명이 개설한 고펀드미 페이지는 현재 목표 금액 2만 달러의 150배에 달하는 292만7170달러를 모금했다.     후원자들은 최근까지 고인의 비극적인 죽음을 애도하고 남은 형제의 미래를 격려하고 있다. 두 달 전 후원자로 나선 이소연씨는 “계속 기억하겠습니다. 어머님께서 편히 쉬고 계시길 바랍니다”는 추모글을 남겼다.     지난 5월 6일 텍사스주 댈러스 교외 대형 쇼핑몰 ‘앨런 프리미엄 아웃렛’에서 총기 난사 사건으로 8명이 사망한 가운데, 희생자 고 조규성(38)·강신영(36) 부부와 둘째 아들 제임스 조(3)군을 추모한 페이지도 3만6000명 이상이 참여해 189만 달러를 모금했다. 기부자들은 총기 난사 현장에서 홀로 살아남은 큰아들(6세) 후원에 앞장섰다.     고인의 지인이 개설한 페이지는 지난 5월 11일 “큰 관심과 후원에 감사하다. 다른 희생자 가족을 도와달라”며 모금을 중단했다.   후원자들은 안타까운 사건·사고로 목숨을 잃은 유가족을 돕는 데 적극적이다.   지난 2월 라스베이거스 한 스시집에서 동료 직원에 목과 등을 8차례 찔려 숨진 임태경(42)씨 후원 페이지는 72명이 참여해 5290달러를 모금했다. 같은 달 워싱턴주 골척 피크에서 눈사태로 숨진 뉴욕 출신 한인 3명(고 조성태·이지니·박윤권씨) 장례비 모금 페이지는 105명 이상이 참여해 1만4426달러를 모았다. 지난 1월 퇴근 중 교통사고로 숨진 LA카운티 셰리프국(LASD) 26년 경력 스티븐 임 수사관 후원 페이지도 170명이 2만2260달러를 기부했다.    김형재 기자펀드 갖가지 사연

2023-08-07

[우리말 바루기] 접미사 ‘-다랗다’의 사연

매우 길다는 의미의 단어 ‘기다랗다’도 잘못된 형태로 종종 표현되곤 한다. “긴 타원형의 얼굴 아래로 음악처럼 흐르는 길다란 목” “백조같이 길다랗고 가는 목”처럼 쓰면 안 된다. ‘기다란’ ‘기다랗고’로 고쳐야 바르다. ‘길다랗다’를 기본형으로 알고 잘못 활용한 경우다.   ‘길다’에 그 정도가 꽤 뚜렷하다는 뜻을 더하는 접미사 ‘-다랗다’가 붙은 말이므로 ‘길다랗다’로 읽고 써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왜 어간 ‘길-’에서 ㄹ이 탈락한 ‘기다랗다’를 표준말로 삼은 걸까? 발음이 [기ː다라타]로 난다. 끝소리가 ㄹ인 말과 딴 말이 어울릴 때 ㄹ소리가 안 나면 나지 않는 대로 적는다는 맞춤법 28항 규정에 따랐다.   ‘높다랗다(←높다)’와 같이 용언의 어간 뒤에 자음으로 시작된 접미사가 붙어서 된 말은 어간의 원형을 밝혀 적는 게 원칙이나 ‘기다랗다’는 변한 형태를 표준어로 삼았다. ‘가느다랗다(←가늘다)’도 같은 예다.   ‘짤따랗다(←짧다)’는 왜 이런 형태가 됐을까? 겹받침의 끝소리가 드러나지 않을 땐 소리대로 적는다는 맞춤법 21항 규정 때문이다. [짤따라타]로 발음되므로 ‘짧’에서 ㅂ은 버리고 뒤의 접미사 ‘-다랗다’도 소리를 반영해 ‘짤따랗다’가 됐다. ‘널따랗다(←넓다)’ ‘얄따랗다(←얇다)’도 같은 이유로 표기가 정해졌다. ‘굵다랗다(←굵다)’는 같은 겹받침 단어이지만 뒤에 있는 받침인 ㄱ이 발음되므로 원형을 밝혀 적는다. 우리말 바루기 접미사 사연 얼굴 아래

2023-07-27

[우리말 바루기] ‘오뚝한 코’가 된 사연

“오뚝한 코에 눈매가 매섭다.” “코가 우뚝하고 눈매가 날카롭다.”   유력한 용의자의 모습을 묘사할 때 사용된 “오뚝한 코” “코가 우뚝하고” 중 어떤 표현이 맞을까? ‘오뚝하다’ ‘우뚝하다’ 모두 도드라지게 높이 솟은 상태를 일컫는 말로 쓸 수 있다.   ‘오똑하다’는 표준어가 아니다. “코가 오똑하네”라고 표현하는 이가 많다. 이때의 ‘오똑하다’는 사전에 올라 있지 않은 말이다. “코가 오뚝하네”나 “코가 우뚝하네”로 고쳐야 한다. ‘오뚝하다-우뚝하다’가 짝을 이루는 게 바르냐고 의아해하지만 ‘오뚝하다’ ‘우뚝하다’만 표준말로 인정하고 있다.   ‘오똑하다’를 취하지 않고 ‘오뚝하다’를 표준어로 삼은 이유는 양성모음이 음성모음으로 바뀌어 굳어진 단어는 음성모음 형태를 표준어로 삼는다는 규정에 따른 것이다. 음성모음화 현상을 인정한 결과다. 우리말에는 양성모음은 양성모음끼리, 음성모음은 음성모음끼리 어울리는 모음조화 현상이 있는데 지금은 이 규칙이 많이 무너져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는다.   대표적인 게 ‘깡총깡총’이다. ‘깡총깡총’을 버리고 언어 현실을 반영해 ‘깡충깡충’을 표준어로 정했다. 발딱발딱 일어서는 아이들의 장난감도 ‘오똑이’가 아닌 ‘오뚝이’로 써야 한다. ‘-동이’도 ‘-둥이’가 표준어다. ‘-둥이’의 어원은 ‘동이(童-)’이지만 음성모음화를 인정해 ‘막둥이’ ‘쌍둥이’처럼 사용한다.우리말 바루기 사연 음성모음화 현상 음성모음 형태 모음조화 현상

2023-07-20

"18년만에 어머니 만나 모시고 왔는데..." 올랜도 거주 한인의 안타까운 사연

방문비자여서 오래 머무를 수도, 자신이 한국 돌아가기도 쉽지않아    18년 만에 한국을 방문해 어머니를 모시고 미국으로 돌아온 한인이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뇌종양과 폐암 진단으로 절망적인 상황을 맞게 된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졌다.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거주하는 마 지나(44세, 미국 이름 지나 토마스) 씨는 지난 달 휴가를 얻어 18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다. 설렘도 잠시, 그는 자신을 잘 알아보지 못하고 거동도 힘들어하는 어머니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마 씨는 3주간 한국에서 어머니와 함께 병원 이곳저곳을 다니며 검사를 받은 결과 인지 능력 저하, 우울증, 천식 등의 진단을 받았다.   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당시에는 분명 조금씩 괜찮아지셨다"며 "어머니를 이대로 혼자 둘 수 없어 미국에 같이 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5월 초 어머니를 미국에 모셔온 직후부터 갑자기 상태가 악화돼 한국으로 출국을 3일 앞둔 지난 5월18일 응급실로 옮겼고, 뇌종양과 폐암 4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한국으로 되돌아가 치료를 받으려고 했으나 항공 여행이 불가하다는 의료진의 진단에 따라 지난 26일 미국에서 우선 뇌종양 제거 수술을 진행했다. 그러나 폐 조직 검사 결과, 항암치료 밖에 다른 방법이 없고 6개월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청천벽력같은 의사의 말을 들었다.   마 씨에게 어머니 마명옥(71세) 씨는 유일한 가족이다. 마지나 씨는 한국에서 쇼트트랙 국가 대표 선수를 꿈꿨으나 혼혈이라는 이유로 좌절됐고, 이후 미군이었던 남편과 결혼해 미국에 왔지만 이혼하여 홀로 생업을 이어가며 넉넉치 않게 살고 있다. 방문 비자 신분인 어머니가 미국에 오래 머무를 수 없는 입장인데, 돌보아야 할 마 씨가 생업을 포기하고 무작정 한국행을 감행하는 일 또한 쉬운 결정이 아니어서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   한국말이 유창한 마 씨는 "갑자기 닥친 상황에 어머니를 모시고 한국에 가야 할지, 치료비와 비자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지 혼자서는 도저히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온라인 한인 커뮤니티에 사연을 올려봤지만, 진의를 의심하는 날선 말밖에 듣지 못했다"며 이 얽힌 문제를 풀 방법이 없겠느냐고 하소연했다.   고심끝에 마씨는 고펀드미에 기부 페이지를 열었다. 어머니의 미국 방문 비자가 8월 1일에 만료되는데, 의료 문제로 30일 연장을 할 수는 있지만 미국을 떠나기 전에 병원비 완납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씨의 어머니는 지난주 가장 큰 뇌종양 한 개를 부분 제거하기는 했으나 폐암과 나머지 종양의 치료를 앞두고 있다.   윤지아 기자  모녀상봉 사연 어머니 마명옥 이송 뇌종양 폐암 진단

2023-05-30

총격 희생 한인가족 후원금 150만불 달해

텍사스주 댈러스 교외 쇼핑몰 총기 난사 사건으로 희생된 한인교포 일가족의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면서 기부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8일 모금·후원 사이트 ‘고펀드미’에는 조규성(38)·강신영(36)씨 부부와 두 자녀의 영어 이름, 가족사진, 사연과 함께 도움의 손길을 모아달라는 내용의 모금 페이지가 개설됐다.   후원 요청 불과 28시간 만인 9일 오후 4시 현재 무려 2만9000여명이 참여해 146만9220달러의 후원금이 모였다. 당초 모금 목표액은 5만 달러였다.   이 페이지 작성자는 “우리는 이 가족의 친구들”이라며 “빛과 사랑, 축복으로 가득해야 할 그날 오후가, 8명의 희생자를 남긴 총기 난사 학살로 한순간에 끝나버렸다. 신디(강신영씨)와 규(조규성씨), 3살 제임스는 비극적으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에 포함됐고, 가족은 깊은 슬픔에 빠져있다”고 전했다.   이어 “(병원) 중환자실에서 퇴원한 6살 아들 윌리엄은 이 끔찍한 사건에서 가족 중 유일한 생존자가 됐다”며 “이 페이지는 그들의 장례식과 그밖에 필요한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가족들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큰아들은 어깨에 총상을 입었고 수술 후 몸 상태는 어느 정도 회복됐지만, 정신적으로 큰 충격에 빠진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모금 페이지에는 “윌리엄, 엄마 아빠가 늘 곁에서 지켜주실 거야”, “어른들이 미안해 정말 많이 미안해 기도할게” 등 윌리엄의 쾌유와 회복을 비는 글들이 영어와 한국어로 올라왔다.   댈러스한인회는 댈러스한인문화센터 내에 한인교포 가족을 비롯해 이번 총격 사건 희생자들을 위한 분향소를 운영한다.   분향소는 9일부터 13일까지 5일 동안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운영된다.   박종원 기자한인가족 후원금 총격 희생 한인교포 일가족 가족사진 사연

2023-05-09

[삶의 뜨락에서] 헤어진 사연들 -베니스,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슬로베니아 여행기 (4)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리브, 인구 380만 명 중 100만 명이 모여 사는 대도시이다. 언덕 위에 구도시, 밑에 신도시가 있는데 정부기관, 오래된 교회는 올드타운에 있다. 의사당 앞에서는 배달원들이 모여 구호를 외치며 데모를 하고 있었다. 그날부터 발효되는 새 법이 자전거 배달원들의 생계를 위협한다는 주장이었다.     여기서 왼쪽으로 한 블록 거리에 아주 재미있는 작은 박물관이 있다. Museum of Broken Relationships. 이 나라 현대 미술 박물관보다 방문객이 많은 자그리브의 명소다. 좁은 2층 박물관은 여행자들로 붐비었는데 젊은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뮤지엄을 설립한 사람은 올린카라는 여자와 드라론이라는 남자, 이들은 비즈니스 파트너이면서 애인 사이였는데 오래 동거하다가 헤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미워하지 않고 지금도 친구 사이로 지내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세계 각국 사람들의 이혼 및 결별 사연을 모아 전시하자는데 의견을 모으고 2010년 이 박물관을 만들었는데 대박이 터졌다. 입장료는 비수기에 일 인당 5.5유로, 여행 성수기에는 이보다 비쌀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미국인들의 이야기가 많았다가 소문이 나면서 각국에서 글이 답지하고 박물관 측은 수시로 사연을 바꾸어 전시하고 있다. 여기 실린 글 몇 개를 소개한다. “죽지 않는 사랑은 없다. 사랑은 결국 죽는다.” “여린 마음으로 헤어져라. Leave with a tender heart.” “고통스러운 순간일수록 감미롭게 대하라. Take the bitter with Sweet.” “모든 사랑은 외국 여행 중 생긴다. All love affairs happen in foreign cities.”   독일 남자가 아내와 이별하게 된 사연, “아내는 매일 거울 앞의 자기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거울 앞에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도 했지요. 아내는 그 후 애 둘을 나에게 맡기고 파티에 가곤 했습니다. 이것이 이혼 사유가 되었습니다.” 캐나다 부부의 결별 사연, “우리는 4년간 사랑의 고통과 기쁨을 반복적으로 경험했습니다. 어느 해 여름, 그는 두 개울이 바다로 합친 향상이 그려진 나무 지팡이를 나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전 아내가 준 것이었는데 지금 아내는 재수 없다며 헤어지자고 했습니다.” 프랑스 남자가 보내온 이야기, “여자 친구와 9년간 사랑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녀는 싫증이 났는지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우리는 헤어졌습니다. 나는 작은 섬으로 가 아무도 찾지 못하게 동굴 속에서 살기로 했습니다.”   크로아티아의 부부 3분의 1은 살다가 헤어진다고 한다. 박물관 측은 사람들이 남의 이야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행복한 부부 관계나 연인 사이를 유지하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슬로베니아 수도, 유비아나의 메인 스퀘어에 이 나라의 국보적 시인, 프래스랜의 동상이 우뚝 서 있다. 그는 이 나라가 오스트리아 -헝가리 지배를 받고 있을 시대에도 모국어로 주옥같은 시를 썼다. 30대 변호사-시인인 그는 15살 소녀와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동상에서 멀지 않은 빌딩에 소녀의 초상화가 있다. 그의 사랑은 로맨스로 발전하지 않았다고 한다. 소녀는 좋은 집안의 딸이고, 그는 서민 출신이었다.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기에 더욱 아름다웠을 것이다. 모든 사랑은 끝나게 되어 있다. 최복림 / 시인삶의 뜨락에서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슬로베니아 여행기 베니스 크로아티아 결별 사연

2023-04-05

[우리말 바루기] ‘오뚝한 코’가 된 사연

“오뚝한 코에 눈매가 매섭다.” “코가 우뚝하고 눈매가 날카롭다.” ‘오뚝하다’ ‘우뚝하다’ 모두 도드라지게 높이 솟은 상태를 일컫는 말로 쓸 수 있다.   ‘오똑하다’는 표준어가 아니다. ‘오똑하다’는 사전에 올라 있지 않은 말이다. “코가 오뚝하네”나 “코가 우뚝하네”로 고쳐야 한다. ‘오뚝하다-우뚝하다’가 짝을 이루는 게 바르냐고 의아해하지만 ‘오뚝하다’ ‘우뚝하다’만 표준말로 인정하고 있다.   ‘오똑하다’를 취하지 않고 ‘오뚝하다’를 표준어로 삼은 이유는 양성모음이 음성모음으로 바뀌어 굳어진 단어는 음성모음 형태를 표준어로 삼는다는 규정에 따른 것이다. 음성모음화 현상을 인정한 결과다. 우리말에는 양성모음은 양성모음끼리, 음성모음은 음성모음끼리 어울리는 모음조화 현상이 있는데 지금은 이 규칙이 많이 무너져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는다.   대표적인 게 ‘깡총깡총’이다. ‘깡총깡총’을 버리고 언어 현실을 반영해 ‘깡충깡충’을 표준어로 정했다. 발딱발딱 일어서는 아이들의 장난감도 ‘오똑이’가 아닌 ‘오뚝이’로 써야 한다. ‘-동이’도 ‘-둥이’가 표준어다. ‘-둥이’의 어원은 ‘동이(童-)’이지만 음성모음화를 인정해 ‘막둥이’ ‘쌍둥이’처럼 사용한다.우리말 바루기 사연 음성모음화 현상 음성모음 형태 모음조화 현상

2023-03-09

[우리말 바루기] 접미사 ‘-다랗다’의 사연

기다랗고 가는 목에 타원형의 얼굴. 모딜리아니 초상화의 특징이다. 이런 화풍은 그의 병증이 한몫했다는 주장도 있다. 모딜리아니의 작품 속 형태 변형이 심한 난시와 관련됐다는 것이다.   매우 길다는 의미의 단어 ‘기다랗다’도 잘못된 형태로 종종 표현되곤 한다. “긴 타원형의 얼굴 아래로 음악처럼 흐르는 길다란 목” “백조같이 길다랗고 가는 목”처럼 쓰면 안 된다. ‘기다란’ ‘기다랗고’로 고쳐야 바르다. ‘길다랗다’를 기본형으로 알고 잘못 활용한 경우다.   ‘길다’에 그 정도가 꽤 뚜렷하다는 뜻을 더하는 접미사 ‘-다랗다’가 붙은 말이므로 ‘길다랗다’로 읽고 써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왜 어간 ‘길-’에서 ㄹ이 탈락한 ‘기다랗다’를 표준말로 삼은 걸까? 발음이 [기ː다라타]로 난다. 끝소리가 ㄹ인 말과 딴 말이 어울릴 때 ㄹ소리가 안 나면 나지 않는 대로 적는다는 맞춤법 28항 규정에 따랐다.   ‘높다랗다(←높다)’와 같이 용언의 어간 뒤에 자음으로 시작된 접미사가 붙어서 된 말은 어간의 원형을 밝혀 적는 게 원칙이나 ‘기다랗다’는 변한 형태를 표준어로 삼았다. ‘가느다랗다(←가늘다)’도 같은 예다.   ‘짤따랗다(←짧다)’는 왜 이런 형태가 됐을까? 겹받침의 끝소리가 드러나지 않을 땐 소리대로 적는다는 맞춤법 21항 규정 때문이다.우리말 바루기 접미사 사연 모딜리아니 초상화 형태 변형 얼굴 아래

2023-02-24

[뉴스 포커스] 손편지에 담긴 사연

오피니언 면 제작 담당자로 자리를 옮긴 후 기다리는 것이 한 가지 생겼다. 매주 한두 번 ‘오피니언면 담당자 앞’으로 배달되는 손편지다. 처음에는 좀 놀라기도 했다. 지금 시대에 손편지라니.... 이메일이 일상화된 후 손편지는 기억 저편의 유물이 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손편지를 주고받았던 게 언제였던가 기억조차 까마득하다. 요즘 우편함은 각종 공과금 고지서와 광고 메일로 채워질 뿐 손편지는 보기 어렵다. 편리함에 밀려 아날로그 방식의 정겨운 소통 수단 한 가지가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손편지를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발신자는 주로 오피니언 면에 게재되는 ‘독자마당’의 기고자들이다. 처음에는 타이핑을 다시 해야 하는 번거로움 탓에 넌지시 이메일을 권했다. 그랬더니 이메일 사용이 익숙지 않다며 양해를 구했다. 대부분 연령대가 높은 분들이라 이해도 됐다. 분량 또한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니어서 그 정도 수고는 감내키로 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잘한 생각이었다. 손편지를 받았을 때의 느낌은 컴퓨터에서 이메일을 열어 볼 때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백지에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써내려간 사연은 다양하다. 자녀와 배우자 등 가족에 관한 이야기, 한국 여행을 다녀온 소감, 인생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조언, 때로는 잘못된 사회현상에 대한 지적, 정치인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있다. 한 번도 뵌 적이 없지만, 꾹꾹 눌러쓴 손글씨를 보면 어렴풋이 모습이 그려지는 분도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생각을 정리해야 하고, 단어를 선택하고, 문장을 다듬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정 과정도 있었을 법한데 필자가 받아보는 편지들은 깔끔하다. 이들의 수고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편지봉투에 주소를 쓰고, 우표를 붙이고, 우체통에 넣어야 비로소 기고가 마무리된다. 여간 정성이 아닌 셈이다.     이런 수고를 마다치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본인의 생각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하고 싶은 얘기, 전하고 싶은 사연을 마음속에만 담아 둘 수 없어서다. 아마도 기고하는 분들에게는 ‘독자마당’이 또 하나의 소통 창구가 되어주고 있는 듯하다.     비록 군데군데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틀리고 표현이나 문장이 어색한 곳도 있지만 이들의 글에서는 진심이 느껴진다.  그리고 세상살이의 연륜과 진한 사람 냄새도 배어 있다. 서운함을 토로하면서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비판을 하다가도 “오죽하면 그랬겠어”하는 식으로 마무리가 되기도 한다. 이들이 보내주는 손편지는 잊고 있었던 추억 한 가지는 물론 사람의 따스함도 소환해 주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편지가 뜸해지면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건강은 괜찮은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타이핑 무료 봉사는 얼마든지 할 테니 앞으로도 왕성한 기고 활동이 지속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피니언 면은 신문이라는 매체의 특징이자 장점이다. 물론 검증 과정은 거치지만 각계의 다양한 주장과 의견이 제기되는 공론의 장 역할을 한다. 본지의 오피니언 지면도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독자마당’의 기고자들뿐만 아니라 변호사,교수,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 수필가·시인 등 문인, 그리고 전직 공무원, 전직 교사, 사회단체 관계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정기 기고자로 활약하고 있다. 이들의 치열한 고민과 수고가 있었기에 지면이 더욱 풍성해질 수 있었다. 다만 어렵게 보내준 내용 모두를 지면에 소개하지 못하는 점 양해 바란다. 지나치게 개인적인 내용이라 독자들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고 판단되거나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 특정인이나 단체를 이유 없이 비방하는 글, 또 본지의 편집 방향과 맞지 않는 내용 등은 활자화되지 못했다.     올 한 해 오피니언 면을 빛내주신 기고자들의 수고에 감사를 드린다.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 포커스 손편지 사연 오피니언면 담당자 오피니언 지면 이메일 사용

2022-12-22

[살며 생각하며] 냉장고의 사연

 그것은 지난여름부터 말썽의 징후를 보였다. 물방울이 송송 맺혔고, 바닥에 물을 흘렸다. 평소 32~33도였던 것이 50도로 올라갔다. 전문가를 불렀더니 모터가 늙었다고 한다. 새 모터로 바꾸라는 희망적인 의견을 주었다. 의사가 다녀간 후에 멀쩡해지는 아이처럼, 냉장고의 온도는 저절로 내려갔다. 냉동 회사에서도 연락이 없기에, 다시 냉장고를 가득 채웠다. 하루에도 수십 번 내 손을 타면서, 뭐, 나와라, 뚝딱! 하면, 가족의 미각을 맞추던, 마술사 같은 존재였다.   우편물을 꺼내오는 것은 남편의 일이다. 병원, 은행, 보험 등등, 배심원 하라는 반갑지 않은 통지도 가끔 온다. 어느 오후, 남편이 우편물을 훑어보더니, 봉투 두 개를 급히 연다. 타운에서 보낸 등기물이다. 뒤뜰의 죽은 나무를 자르라는 것과 집 앞의 아스팔트를 고치라는 내용이다. 죽은 나무에서 가지가 떨어지면, 자기 강아지가 맞을 수도 있다고 뒷집이 신고했단다. 또 하나 우편물은 집 앞, 사이드 워크(sidewalk)가 패여서 통행자들에게 불편을 주니, 고치라는 내용이다. 타운홀에 소환될 수도 있다는 은근한 협박 문구도 있다. 남편은 갑자기 분주해졌다. 사람을 불러서 견적을 내고, 유튜브를 뒤지면서 며칠 동안 열심히 공부한다.     겨울이 되었다. 기온이 내려갔으니 냉장고가 편안해질 것이라고 여겼다. 내 예상을 빗나갔다. 다시 50도로 올라갔지만, 냉장고 내부는 서늘했고, 음식들은 멀쩡했다. 여름에 병났을 때도 저절로 나았으니, 이번에도 잠시 그러다 말리라 여겼다. 50도에서 살짝살짝 숨을 쉬는 상태가 한 달 이상 계속되었다. 컨테이너를 열고 음식의 냄새를 확인했다. 케일 샐러드는 짓물렀고, 비지찌개는 조짐이 좋지 않다. 끈적거리는 진을 내 뿜는 음식들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것은 20년 동안 단순한 냉장고가 아니고 마음을 나누어 가진 존재였다. 병이 난 지난여름부터 하루에 몇 번씩 냉장고 옆을 맴돌았다. 온도를 확인했고, 물방울이 생기면 닦아내고, 바닥에 수건을 깔아서 흘리는 물을 받아냈다. 고약한 냄새를 풍긴 후에야 알아차리다니. 쓸데없는 감정 소비를 반년이나 했다. 대책 없는 긍정이 얼마나 문제인가. 새 냉장고를 주문했다.     한갓 기계에 휘둘려 미적거릴 일은 아니었다. 사람도 사귀다 보면 조짐을 보이는 징후들이 일어난다. 억지로 같이 갈려고 할 때 넘어지고 코가 깨진다. 마음은 쉽게 변하는 것이기에, 예로부터 수많은 언약과 맹세와 혈서가 등장했던 것 아닐까. 매년 다시 살아나서, 항상 사는 줄 알았던 나무도 뒤틀어졌다. 밑둥치에 벌레들이 온상을 만들었으니, 나무가 썩을 만도 했다. 썩은 나무가 잘려나가니, 하늘이 보이면서 공간이 탁 트였다.   남편은 길에 쪼그리고 앉아서 아스팔트를 바른다. 어른이 흙장난하는 것처럼 보이는지, 동네 꼬마들이 몰려와서 뭐하냐고 묻는다. 메꾼 아스팔트는 한동안은 괜찮을 것 같다. 김미연 / 수필가살며 생각하며 냉장고 사연 번씩 냉장고 냉장고 내부 하나 우편물

2021-12-05

가짜 킬러 사이트에 살인청부 의뢰인 수백명... 워싱턴포스트, '렌터히트맨' 사이트 사연 소개

  미국에서 가짜 살인 청부 사이트에 속아 살인을 의뢰한 '살벌한' 청부인이 16년간 수백명에 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워싱턴포스트(WP)는 22일 가짜 살인 청부 사이트 '렌터히트맨(RentAHitman.com)에 얽힌 웃지 못할 사연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시간 남동부에 거주하는 웬디 웨인(52)은 전 남편에 대한 복수를 꿈꾸던 중 지난해 우연히 렌터히트맨 사이트를 발견했다.   이 사이트는 고객의 문제를 맞춤형으로 해결해 준다는 살인 청부 업자가 운영하는 것으로 보였다.   사이트는 '업계'의 수상이력도 자랑했고, 1964년에 제정된 '히트맨정보보호법'(HIPPA)에 따라 고객의 비밀도 확실히 보장해 준다고 광고했다. 심지어 이 사이트를 이용한 고객 댓글도 달려 있었다.   사이트에는 전국에 1만7985명의 현장 요원이 있어 고객이 원하는 곳에서 정확히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도 적혀 있었다.   웨인은 실제로 일을 맡겼고 지난해 7월 미시간 남동부의 한 카페에서 '현장요원'과 만났다.   웨인은 착수금으로 200달러를 건넸고, 일을 끝내면 5000 달러를 더 주기로 했다. 또 전 남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 뒤 집과 직장 주소를 알려주고 출퇴근 시간까지도 말해줬다.   하지만 이 요원은 웨인의 전 남편을 살해하는 대신 웨인을 감옥에 보내기 위한 조서를 작성하게 됐다.   알고 보니 이 현장요원은 경찰이었고, 사이트도 물론 가짜였다. 웨인은 자신의 죄를 인정했고, 살인 모의 혐의로 지난 1월 법원에서 징역 9년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이트에는 킬러 에이전트인 '구이도 파넬리'가 운영자라고 나오지만 실제로는 북 캘리포니아에 사는 네트워크 보안전문가인 밥 이네스(54)라는 남성이 2005년 만든 것이었다.   사이트 이름이 '렌터히트맨'인 것은 인터넷 보안전문가인 자신을 고용하면 의뢰인의 사이트를 공격(Hit)해 보안성을 점검해 주고, 사이트 홍보도 잘해서 흥행(Hit)도 시켜준다는 의미였다.   재미있는 도메인 이름을 확보해 비싼 값에 팔려는 의도도 있었다. 하지만 사업은 잘되지 않았고, 사이트는 사실상 방치됐다.   몇 년 후 이네스는 우연히 이 사이트와 연계된 이메일 300여통을 확인하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상당수가 '히트맨'을 킬러로 생각해 살인 의뢰와 관련한 이메일을 보낸 것이다.   그중 영국 출신으로 현재 캐나다에 거주 중인 헬렌이란 여성은 아버지 유산을 뺏으려는 3명의 가족을 살해해 달라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헬렌은 이네스가 편지를 확인한 날에만 2번 더 편지를 보내며 자신의 '타깃'에 대한 주소 등 자세한 정보까지 제공했다. 결국 이네스는 경찰인 자신의 친구에게 이 사실을 말했고, 친구는 캐나다 경찰에 연락해 헬렌을 체포했다.   이네스는 2005년 웹사이트 개설 이래 650∼700명이 자신에게 연락해 왔으며 약 400명은 실제 의뢰서를 작성했다고 WP에 전했다.   이네스는 이 사이트로 여러 번 언론에 노출됐고 지난해에는 롤링스톤스지에도 나왔지만, 여전히 의뢰서가 들어와 정기적으로 경찰에 명단을 넘긴다고 말했다.   이네스는 "명단을 경찰에 넘기기 전 반드시 '여전히 우리의 서비스를 원하느냐', '현장 요원과 계약을 추진하길 원하느냐'고 물어 확인한다"며 "다른 사람을 헤치려는 사람에게 이 사이트는 가장 손쉬운 방법일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 살인청부 살인청부 의뢰인 가짜 킬러 사이트 사연

2021-11-23

[효 에세이 입상작] 효자효녀상, 뒤늦게 불러보는 사모곡

'5월' '엄마' '카네이션' 단어는 나의 온 몸의 세포가 하늘에 계신 당신을 향한 그리움과 사무침으로 몸부림치게 합니다. 23년전 막내인 제가 결혼해서 미국으로 왔을 때 엄마는 저랑 뒷모습이 비슷한 단발머리 여대생만 보면 넋을 잃고 뒤를 쫓아 갔다지요. 막내인 제가 너무 보고 싶어서…. 엄마랑 저는 학교 다닐 때 장난처럼 결혼도 하지 말고 엄마랑 같이 끝까지 살겠노라고 약속까지 했었는데 엄마는 내가 대학 졸업하자 마자 혼기라도 놓칠까 봐 이리저리 분주히 사윗감을 찾아 오셨습니다. 그러던 엄마는 항상 옆에 끼고 있고 싶어했던 딸이 결혼해서 미국으로 오게 되니까 눈에 밟혀서 틈만 나면 딸이 타고 간 하늘만 쳐다봤대요. 비행기만 날아도 비행기가 하늘 끝까지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떼지 못했고 뒷모습이 비슷한 여대생이라도 보시면 정신없이 쫓아가다 걸음을 되돌리곤 하신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전해 들었어요. 그런 엄마를 저 역시 이 미국 땅에서 얼마나 사무치게 그리워 했는지 어느 날 모 회사 화장품에서 엄마의 체취를 맡고 밀려오는 그리움에 목 놓아 울었답니다. 엄마! 저 이 편지 쓰면서 갑자기 또 눈물이 앞을 가려 글을 못 쓰게 합니다. 뜨거운 눈물요. 엄마는 저의 정신적 지주였고 가장 친한 친구였습니다. 노년에 낳으신 늦둥이인 저와 세대차가 없으실 정도로 저의 눈높이에서 저의 입장에서 배려하고 이해해 주셨습니다. 이웃에게도요. 해질 무렵 과일을 다 못 팔고 리어카를 돌리시는 과일 장수 아저씨에겐 엄마는 최후의 보루였습니다. 한 집안의 가장이 어려우면 온 집안 식구들이 힘들 거라고 못 다 판 과일을 마지막에 다 사주셨던 우리 엄마. 그러던 엄마를 미국에 사는 이유로 생활이 바쁜 핑계로 나에게 하나의 가정이 생겼다는 변명으로 엄마를 가까이서 모시지 못함에 이 모든 것이 한으로 맺혀옵니다. 미국으로 방문 오실 때 이민 가방 4개를 아버지 2개 엄마 2개 들고 오셨던 것. 그릇 세트를 이불이며 옷가지 수건 속옷에 차곡차곡 쌓고 쌓아서 하나도 깨어지지 않게 싸오셨던 것. 지금까지도 그 그릇 수건 속옷을 쓰고 입고 있습니다. 사실 새 그릇으로 바꿔쓰고 싶어도 엄마의 사랑과 정성이 묻어 있고 배어 있기에 감히 바꿀 생각조차 못하고 있지요. 어느 날 지병으로 인해 몸져 누우셨는데 달려가서 간호를 해야하는 데 제가 모시지도 못하고 간호도 못했어요. 미국에서 쉽게 나간다는 게 힘들었습니다. 다행히 한국에 언니 오빠가 계셨지만 엄마와 제가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저녁마다 전화로 찬송하고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루는 꿈 속에서 엄마를 뵙고 일어났는데 빨리 한국을 가야 할 것 같았습니다. 오빠 언니들한테 전화를 했는데 괜찮다고 제가 너무 민감한 것 같다고 했지만 전 마지막일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에 급하게 비행기표를 구입하고 비행기에 탑승하자 마자 캡틴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바로 내릴 수 있도록 배려를 받았습니다. 1분 1초가 화급을 다투는 듯 했습니다. 마음의 초조함을 이루 말할 수 없고 나는 비행기 안에 저 또한 엄마를 향해 날고 있었습니다. 공항에 내려 부산으로 옮겨타야 되는데 비행기를 놓칠 것 같아 내 짐을 포기하고 바로 부산행 비행기로 갈아타서 공항에 내렸는데 나의 서둘렀던 그 마음과는 달리 마중나온 오빠 언니는 너무 태연했습니다. 엄마는 괜찮은데 왜 그렇게 허둥지둥 정신을 못차리느냐고…. 하지만 난 한사코 빨리 서둘러 집에 데려다 달라고 재촉했고 오빠는 절 내려 주고 오빠 집으로 갔는데 엄마는 제가 오길 기다리고 계셨나 봅니다. 제가 "엄마" 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니까 엄마는 그 때 이미 눈을 감고 계셨는데 저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눈을 뜨시려고 애쓰셨습니다. 눈을 깜박이던 하얗고 온화하신 엄마의 그 모습이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엄마는 영원하신 생명의 나라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모두가 괜찮다고 했던 순간에도 늦둥이 막내인 저에게는 빨리 오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5남매 중 막내인 제가 엄마의 임종에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엄마! 난 지금 엄마가 즐겨 부르시던 찬송은 눈물 없이는 못 부릅니다. 목이 메어 찬송 속에 묻어나는 엄마의 음성이 너무 그리워서. 엄마가 읽으시던 성경에 그은 빨간 줄은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한 번 더 눈이 머무릅니다. 엄마의 삶과 정신이 머물러 있기에…. 엄마! 하늘에서 뵈올 때까지 안녕히 계세요. 빨간 카네이션 대신 흰 카네이션을 당신께 드립니다. 뭉게 뭉게 솟아나는 그리움과 함께. 막내 딸 진희가

2009-07-10

[효 에세이 입상작] 효자효녀상, 그게 잘 안되네요

머리를 들어 하늘을 쳐다 보았다. 푸른 하늘과 시원한 바람…. 요사이 참으로 날씨가 좋다. 이렇게 좋은…. 내색하지 않는 아빠 엄마는 지금 어두운 회색빛 하늘과 땔감 없는 아궁이를 쳐다보고 있는 듯한 막막한 마음이란 걸 나는 알고 있다. 올 해 초 형부가 폐 쪽에 이상이 발견돼 조사해본 결과 선암이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아빠 엄마는 가진 것 없어도 식구 모두 건강하고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줘서 고맙다고 하셨었는데 이 일은 너무도 가혹한 형벌이었다. 우리 세 딸과 사위들 그리고 막내 아들은 아빠 엄마의 재산이자 자랑거리요 삶의 이유란 걸 너무도 잘 아는 나는 이 일로 세상에 태어나 아빠가 우시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아주 아주 어릴 적 친할머니 돌아가셨을 때 엄마가 크게 우셨던 건 생각나지만 아빠는 그저 입을 굳게 다물고 담배만 피시던 생각만 날 뿐 이렇게 목까지 메여 끝까지 말씀도 다 못하시고 우시는건 처음이셨다. 특별히 딸들에게 더 다정다감하신 우리 아빠…. 남들은 40살도 넘은 내가 아빠라고 부르면 아버지라고 물러야 된다고 하지만 나는 '아빠'라는 단어가 훨씬 좋다. 내 어릴 적 아빠는 학교가는 세 딸의 머리를 직접 물 묻혀가며 이쁘게 빗겨 주시고 색 곱고 좋은 옷감을 직접 사와 엄마에게 아이들 원피스를 만들어 입히라고 하시고는 올망졸망한 그 어린 딸들을 데리고 어디든 다니셨다. 아이들이 넷이나 있어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엄마는 또 이런 일을 만들어 사람을 더 힘들게 한다고 잔소리를 하면서도 손에는 이미 줄자가 들려 있었고 천천히 만들어 입혀도 되었을텐데 밤이 늦도록 옷을 만들어 금세 입히셨다. 똑같은 옷 똑같은 머리를 하고 그렇게 셋이서 거리를 걸어가면 사람들이 "어휴 이쁘네 귀엽네" 한 마디씩 했다. 그럴 땐 아빠는 "제 딸들이에요"라고 하시며 너무 자랑스러워 하셨다. 그리고 아빠는 항상 첫 마디를 "걱정하지 마"로 시작하셨는데 나는 그 말 그대로 별 걱정하지 않고 자랐고 공부를 못해도 주사맞기 무서워 집으로 도망쳐와도 남의 집 유리창 문을 깨뜨려도 아빠는 항상 "걱정하지마 어디 아픈 것보다 훨씬 낫다"라고 하셨다. 언니가 시집갈 때 오른팔이 잘라진 것처럼 아프고 허전하다 하셨고 막내딸 시집갈 땐 이젠 집이 텅비었네라고 하셨지만 아마 맘이 텅 비었다는 뜻이었을거다. 둘째인 내가 시집갔을 땐 뭐라셨을까…. 어쩌다 딸 셋이 놀러와 엄마와 거실에 앉아 조잘조잘거리며 무엇 때문인지 히히 호호 하하 떠들면 부엌 식탁에 앉아 신문을 읽고 계셔서 우리들의 대화를 전혀 듣지 못하셨을 것 같은 아빠 얼굴에도 살며시 웃음이 번지는 걸 나는 매번 보곤 했었다. 시집간 딸들이 이틀 삼일 전화가 없으면 엄마에게 아이들에게 싫은 소리 한 게 있느냐 또는 아이들과 싸웠냐 하시며 괜한 엄마를 잡는다고 하신다. 그리곤 곧바로 내 회사로 오셔서 "그냥 지나다 왔다. 니 얼굴 좀 보자" 하신다. 아빠는 심장으로 인한 마비가 벌써 두 번이나 왔었고 작년엔 심장 수술을 하셔서 온 식구들이 난리도 아니었는데 여전히 금기인 담배를 피우신다. "아빠 제발 담배 끊어야 돼!" 하며 난 곱게 눈을 흘긴다. 그러면 아빠는 "난 담배가 니 엄마보다도 좋다"라고 조용히 말씀하시며 빙그레 웃으신다. 요사이 부쩍 여위고 진짜로 할아버지 얼굴이 되어버린 나의 아빠…. 손과 얼굴에 쭈글쭈글 주름살이 정말 요샛말로 장난 아니다 싶을 정도로 많다. 그리고 전에 없었던 한숨을 자주 쉬시며 차라리 살 만큼 산 내가 상호(형부이름) 몸에서 암을 가져와 대신 죽어주고 싶다며 눈물을 삼키시는 나의 하나뿐인 아빠. 아빠… 가끔씩 아빠를 안아드리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네요. 아빠… 가끔씩 아무 말 없이 손을 꼭 잡아드리고 싶은게 그게 잘 안되네요. 아빠… 가끔씩 걱정 마시라고 위로해 드리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네요. 아빠… 가끔씩 우리 곁에 오래 오래 있어달라 말씀 드리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네. 아빠… 가끔씩 고맙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네요. 아빠… 아빠… 너.무.너.무.사.랑.해.요. 오늘도 여전히 아빠는 손자 손녀들에게 "걱정하지마 할아버지가 다 해줄게. 다치나 아프면 안 돼! 그게 제일 나쁜 거야" 하신다.

2009-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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