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칼럼] ‘핵보유국’ 북한 대응법
최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은 두 개의 전쟁(이스라엘-하마스, 러시아-우크라이나)을 조기 종식시키고 중국 견제에 집중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한동안 뒷전으로 밀려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북한 핵문제가 갑자기 수면 위로 떠올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당일(1월 20일) 행정명령 서명식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으로 지칭했기 때문이다. 이후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는 “김정은과 대화하겠다”고 말했다.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 변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도 인사청문회에서 북한에 대해 핵보유국이라는 표현을 썼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도 “제재가 북한 핵 개발을 막지 못했다”며 대북제재 회의론을 폈다. 한미 양국의 공통 과제였던 ‘완전한 비핵화’ 목표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핵보유국(nuclear power)은 핵 보유가 인정된 5개 공인 핵무기 보유국(nuclear-weapon states: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외에 ‘비공인 핵보유국(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말이다.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핵보유국’이라고 언급한 것은 그동안 전례가 없었다. 과거 트럼프 1기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한반도 비핵화를 목표로 했으며, 2018년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과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이를 분명히 한 바 있다. 하지만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미국과 북한 간의 비핵화 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 당국자들은 ‘북핵 인정’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자제하고 대북 압박 기조를 엄격하게 유지했었다. 그러나 4년 만에 백악관으로 돌아온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외교안보 책임자들은 사뭇 다른 모습이다. 만약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한다면, 이는 ‘완전한 비핵화’ 대신 미국 본토를 겨냥한 전략핵무기(ICBM, SLBM)의 제거와 핵동결과 같은 제한적 합의를 목표로 하는 ‘스몰딜(small deal)’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변화는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등 전술핵무기를 사실상 용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대가로 북한은 경제제재 완화를 요구할 것이다. 이러한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 남한의 안보 환경은 복잡해지고, 새로운 도전에 직면할 수 있다. 남한은 북한의 핵 보유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도래할 경우, 미국의 핵우산 제공만으로는 충분한 안보 보장이 어렵다. 이로 인해 국내에서는 독자적 핵무장론이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남한이 독자적 핵무장을 추진하려면 NPT(핵확산금지조약)를 탈퇴해야 하며, 이는 국제 사회의 강력한 경제 제재를 초래한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남한 경제는 이러한 제재를 견뎌내기 어렵고, 미국 또한 동북아시아에서 핵 도미노 현상을 우려해 이를 허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 전술핵의 한반도 재배치는 또 다른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이는 정치적·외교적으로 논란의 소지가 있다. 전술핵 배치는 NPT 위반으로 간주되며, 국제 사회의 강한 반발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전술핵이 재배치되더라도 그 통제권이 미국에 있는 한, 남한의 독립적인 안보 보장에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복잡한 상황에서 남한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은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기술적 능력을 확보하여 미래의 비상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다. 핵무기 개발에는 핵폭탄 제작을 위한 핵물질(플루토늄, 고농축 우라늄)의 확보, 발사체 개발, 기폭장치 기술이 필요하다. 현재 남한은 발사체와 기폭장치 기술에서 높은 수준에 도달했지만, 핵물질 확보는 여전히 큰 제약을 받고 있다. 2015년 개정된 한미 원자력협정은 연구 목적의 일부 재처리를 허용하지만, 핵무기 제작에 필요한 수준의 재처리는 금지되어 있다. 따라서 북미 간 ‘스몰딜’이 성사된다면, 남한은 한미 원자력협정의 추가 개정을 통해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의 자율성을 확대해야 한다. 이무영 / 뉴스룸 에디터중앙칼럼 북한 핵보유국 비공인 핵보유국 트럼프 행정부 하노이 북미정상회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