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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죽고 남매 사라져…한인 부친 뒤쫓는 경찰

북가주 주택에서 한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된 뒤, 수사당국이 사라진 남매를 찾기 위해 한인 남성을 수소문하고 있다. 이 남성은 남매의 부친으로 최근 멕시코로 건너간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9일 새크라멘토 경찰국은 전날 오후 7시 30분쯤 3700 디콧 서클 한 주택에서 아시아계 여성인 안젤리카 브라보(28)가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이후 경찰국은 사망한 여성의 두 자녀 아테나 이(4), 마테오 이(2) 남매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소재 파악에 나섰다.     경찰국은 사망사건 직후 남매의 부친인 한인 카메론 이(38)씨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고 전했다. 경찰국은 사라진 남매가 부친 이씨와 함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확인되지는 않고 있다.   경찰국은 연락이 닿지 않은 이씨의 행방을 수소문하고 있다. 연방수사국(FBI), 세관국경보호국(CBP)도 공조에 나섰다.   한편 사망사건 수사 과정에서 부친 이씨는 2023 혼다 파일럿 SUV를 몰고 국경을 넘어 멕시코로 간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국은 이씨의 차량이 이미 멕시코로 건너갔기 때문에 어린이 납치사건 발생 시 발동하는 ‘앰버 경고(amber alert)’는 요청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경찰국은 숨진 여성과 이씨를 부부로 명시하지 않았다.     10일 지역방송 KCRA3는 경찰국이 부친 이씨를 이번 사망사건 용의자로 단정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다만 경찰국은 살인사건 가능성도 열어놨다. 숨진 여성의 가족은 사라진 남매의 무사 귀환을 애타게 바라고 있다.     경찰국은 사라진 남매 관련 1000달러 현상금을 내걸고 제보(916-808-0560, missingpersons@pd.cityofsacramento.org)를 당부했다.   김형재 기자 kim.ian@koreadaily.com엄마 남매 한인 부친 새크라멘토 경찰국 이후 경찰국

2024-07-11

"부친이 좋아하는 내 글 어머니 사랑 담아 출간"

뉴욕의 치과 의사이자 화가인 강영진(사진)씨가 에세이집 '뉴욕의 그림 그리는 치과 의사(사진.출판사 '봄날의느낌', 240쪽, 1만5000원)'를 출간했다.   작가는 본인이 쓴 글들을 아버지가 흐뭇한 마음으로 읽는 모습을 보고,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는 방법의 하나로 책을 내기로 하고 그동안 써왔던 글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완성했다.   강 작가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어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생활하기 위해서는 전문직을 선택해야 했다. 뉴욕 대학교 치과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하면서도 화가로서의 꿈을 버리지 않았고, 아트 디렉터로서 일하기도 하고 미술 평론도 했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린 계기는 팬데믹으로 도시봉쇄가 시작되면서부터이다. 이 책에 담긴 그림들은 하나하나 스토리가 있다. 그림을 소개하는 책은 아니지만 그림이 멋지게 배치되어 있고 이야기를 담았다.   책은 어머니 덕분에 쓴 책이기도 하다.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강 작가는 책을 읽었고 글을 썼다고 밝혔다. 이 책은 작가의 첫 번째 책이지만 많은 경험과 가치관 그리고 예술관을 담았으면서도 곳곳에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넘쳐난다.   강영진 작가는 1958년 경남 진해에서 태어났다. 서울 휘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8년 가족들과 함께 미국에 이민, 1982년 시라큐스 대학교에서 화학과 미술을 복수 전공했다. 1986년 보스톤 치의학 전문 대학원에서 DMD(치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같은 해 NYU(뉴욕 대학교) 치의학 전문 대학원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했고, 뉴욕 컬럼비아 치의학 전문 대학원에서는 임상 교수를 겸하며 25년간 후학을 양성했다. 현재 개업의로 일하고 있다.   한편 그는 개인 작업실에서 틈틈이 그림을 그리면서 다른 작가들의 미술 작품 평론도 하고 있다. 오는 12월 첫 개인전을 목전에 두고 열심히 작업 중이다.어머니 부친 어머니 사랑 어머니 덕분 치의학 전문

2022-10-05

[살며 생각하며]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

오늘은 6·25가 발발한 지 72년이 되는 날이다. 72년 전, 김일성은 선전포고 없이 기습남침하므로 3일만인 28일 서울이 함락되었고 같은 날 새벽 2시 30분, 국군이 한강대교를 임의 폭파하면서 대부분의 시민이 적 치하에 버려졌고 이승만과 그 일당은 부산으로 옮겨 피신했다.   3년 뒤 1953년 7월 27일, 휴전되었지만 국군 62만, 유엔군 16만, 민간인 250만 명이 사망하고 남북한 총인구의 절반이 넘는 1800만 명이 피해를 보았다는 참담한 기록을 남겼다. 그뿐 아니다. 무려 1000만 명이 전쟁통에 가족 친지와 생이별 당한 채 70년을 한숨과 눈물로 이제나저제나 하며 만남을 기다리다 한 분 한 분 세상을 떠나가고 있다.   필자의 장인, 장모님도 그중 한 사람이다. 전쟁 전 두 분은 남한 땅이었던 개성, 정확하게 지금의 판문점이 있는 개풍에서 사셨다. 두 가정은 꽤 큰 인삼농장을 경영하는 부농이었고 담 하나 사이를 둔 이웃으로 사시며 양가 어른들끼리 혼인이 약조된 가운데 교제를 이어가던 사이였다.   사건의 발단은 6·25 발발 보름 전에 일어났다. 장인 부친께서 무엇을 감지하셨는지 20살 청년 장인을 불러 얼마간의 돈이 든 전대를 내미시며 서울 친척 집으로 피신해 있으라고 분부하셨다. 그리고 보름 후 6월 25일, 오전 9시 개성이 함락되었고 정오에는 동두천, 포천의 방어선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서울에서 전해 듣는다. 급한 마음에 우선 고향 땅으로 가기로 한다. 친구의 자전거를 빌려 서울과 개성을 잇는 국도를 따라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이미 도로는 피난민으로 아비규환이다. 모두의 발걸음을 그슬러 북으로 향하는 장인을 보고 별 이상한 사람 다 본다는 눈길이었으나 개의할 여유조차 없었다.   반나절을 달려 절반 길인 금천 근방에 도달하였는데 갑자기 자전거가 도로 위에 멈춰섰다. 비포장도로를 마구 달리다 보니 체인이 끊어지는 낭패가 생긴 것이다. 할 수 없이 자전거를 끌어 갓길에 세운 채 끊어진 체인을 연결해보려 안간힘을 써보지만소용없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무더위 속에 망가진 자전거와 씨름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OO 오빠 아니냐?’며 달려와 목에 매달려 울먹이자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이 무슨 하늘의 도움이냐’며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 아닌가! 피난대열 속에 있던 그리운 어머니와 두 남동생, 18살의 약혼자와 형제, 자매들이 우연히 장인을 발견한 것이다. 한참 후 장인의 북상 의지를 확인한 가족들은 ‘섶을 지고 불 속에 뛰어드는 어리석은 짓’이라며 말리고 나섰다. 장남으로 지금 만난 가족을 팽개치고 자기 뜻만 고집하는 것도 도리가 아니다 싶어 발길을 돌린 것이 부친에게 너무 불효였다며 지난 70년을 안타까워하시며 사신다.   이산의 아픔은 장모님도 마찬가지다. 양부모와 형제 대부분을 북에 두시고 남동생 한 분만 대동했으니 말이다. 다행히 30여년 전 캐나다의 어떤 단체를 통해 남동생 소식을 전해 듣고 일 년에 한두 번 서신 교환이 있었지만 ‘친애하는 김일성 동지 덕분에 잘 먹고 잘산다’는 내용뿐이었다. 그러다 2004년 필자가 평양을 방문하면서 안내원의 주선으로 남동생 아들 며느리를 만나 약간의 돈과 선물을 전해주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장인 장모님은 고향방문단의 일행으로 개성을 찾았지만 통제로 인해 결코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 김도수 / 자유기고가살며 생각하며 이야기 이야기 우리 장인 장모님 장인 부친

2022-06-24

[독자 기고] 오(조)봉완 사도 세자의 죽음

지난 달에 중앙일보에 쓴 ‘옷소매 붉은 끝동을 보고’는 정조의 연모가 주제였다. 정조를 언급하면서 어떻게 그의 부친 사도세자에 대하여 묵인 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에서 이 글을 쓴다.     조선(1392-1910) 역사 중, 명성 황후(1851-1895) 시해 사건 외 제일 애절하게 생각하는 일이 사도세자의 죽음이다. 정조대왕(명, 산; 1752-1800; 통치, 1776-1800)은 11살 때 아버지(사도세자; 장조; 명, 선; 1735-1762)가 잔인한 죽음을 당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존경하며 애총 받던 할아버지 영조대왕(1694-1776)의 어명에 의해서 아버지가 죽게 되었으니, 어린 아이가 어떻게 이해했으며 그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가끔 생각한다. 그 아이는 모든 것을 다 기억하나 원인은 모를 수 있겠다고도 짐작한다.     그는 부친이 타계한 직후 11살짜리의 친필로 부친에게 효도할 것을 맹세한다. 성인이 되어 즉위한 후, 어렸을 때의 맹세를 수행한다. 조선조 역사상 드문 대공사로 수원에 거대한 화성을 짖고 한강에 80척의 배를 이어 임시 다리를 놓고, 아버지의 유골을 이장한다. 이것은 유명한 능행도로 역력히 보여 주고 있다. 세손인 이산은 “죄인의 아들”이라고 모욕을 당하며, 그의 정통성에 협박 당하고, 즉위 가능성에도 도전 당한다. 하나, 젊은 세손은 아버지를 옹호하며, 자기가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서슴치 않고 공개한다.     사도세자는 영조 대왕이 오랫동안 기다렸던 둘째 아들로 영조가 42세인 1735년에 창경궁에서 부왕이 친히 출산 장면을 지켜보던 중 태어났다. 영조의 장자인 효장세자가 일찍 사망하였으므로 영조는 둘째 아들을 많이 기다렸었다. 선이라 이름 짓고, 생후 1년 만에 원자로 책봉했으며 그의 영특함을 기뻐하고 총애했다. 영조 25년(1749)에는 15살인 선을 대리청정까지 시켰으나, 영조의 아들에 대한 호감은 지속되지 못했다.     전통적 세자 교육이 깊어 가면서, 선의 재능은 전통적 유교 정전과 조선조 경전 외에 있었다. 그는 어쩌면, 시대에 앞선 사람인지 모른다. 그의 생각은 경화된 기존 사상 밖에 치중했다. 경전 공부보다는, 불법인 서민 작의 언문으로 쓰인 책을 모아 서고를 마련하고 일반인에게 빌려주는 일을 스스로 했고, 그림 그리는 것에 몰두해, 부친 영조의 분노와 책망이 끝이지 않았다. 당시 득세 했던 노론 정치인들은 왕세자를 비판하고 폐위시키려는 노력에 몰두했다. 성숙 과정에 있던 세자는 자기의 분노를 억누르다 견디지 못하면 폭발하고 살인을 포함한 폭행을 자주 범한다. 이로 인하여 세자가 광증에 걸렸다는 소문이 난다. 그의 부인이며, 정조의 모친인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도 이것을 인정한다.     영조의 의심을 심각하게 한 것은 왕세자 선은 무기 향상에 관심이 있었다. 무예도보통지라는 책을 엮었다. 후에 그의 아들 정조대왕에게 도움이 됐다는 책인데 문과에 치중한 부친 영조의 호감을 사는 데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선의 무기에 대한 관심은 노론 정치인의 왜곡으로 왕에게 보고돼 의심을 사고, 역모로 간주된다. 부자 관계는 악화되어 영조의 아들에 대한 학대는 심해지고, 아들의 부친에 대한 공포는 늘어 나 두 사람은 대면을 안 한다.     결국, 왕세자 이선은 극도의 광증, 부자 관계의 악화, 당쟁의 격화 등 여러 가지 상황의 종합으로 1762에 27세라는 젊은 나이로 부친의 명으로 뒤주에 갇히게 된다. 영조는 왕족의 피를 흘리게 하면 안 된다는 전통을 지키려고 질식하여 죽이는 방법을 강구한 것이다. 그는 8일 후, 7월 12일 삼복 여름에 뒤주 안에서 죽는다. 11살의 그의 아들, 세손 산은 몇 번이나, 아버지에게 몰래 물을 가지고 가나, 들키고 금지 당한다. 그 아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하염없이 울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사학 박사, 조지타운대학 명예교수(은퇴)]     오(조)봉완독자 기고 사도 세자 부친 사도세자 할아버지 영조대왕 부친 영조

2022-02-18

[이 아침에] 이 시대를 사는 지혜

 2022년 흑 호랑이가 대문을 열고 나왔다.    정초에 먼 곳으로부터 뜻밖의 카드를 받아 너무나 기뻤다. 정성스럽게 쓴 손편지가 꽃송이 한 다발로 다가와 아름다운 선물이 되어 가슴 가득 행복을 주었다.    나도 작년까지는 해마다 크리스마스 카드를 많은 분에게 보냈다. 300명 정도의 주소록을 만들고, 카드와 우표를 샀다. 30년을 변함없이 해온 일이었다. 그동안 카드 한 장, 한 장을 쓰느라 며칠에 걸쳐 편지 쓰고, 우표 붙이고, 주소 붙이고, 봉투 봉하는 일을 해왔다.    근데 2021년 크리스마스부터 나도 변화를 시도했다. 내가 찍은 우리 집 대문 사진에 인사말을 적어 크리스마스 카드를 대신하여 카톡으로 보냈다. 지금까지 한 번도 하지 않은, 딴은 어색한 일이었다.    정보 통신기술을 사용하기로 결심하게 한 동기가 있기는 하다. 작년 1월부터 배송하기 시작한 나의 수필집을, 미처 보내지 못한 지인들에게 보내려고 12월에 우체국에 갔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키느라 문밖까지 줄이 긴 데도 모두가 떠나지 않고 순서를 기다렸다.    어디로 누구에게 무엇을 보내는지 알 수 없지만, 사람을 만날 수가 없으니 선물이라도 보내 소식과 사랑을 전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느 할머니가 한 손엔 큰 백을 들고 보기에도 무거운 워커를 끌고 힘겹게 들어왔다. 몸이 불편한 손님에게는 순서를 배려하는 줄이 한쪽에 따로 있어 다행이었다. 카운터 앞에서 쇼핑백에 든 소포와 많은 카드를 꺼내 직원 앞에 올려 놓으려는데 할머니는 벌써 힘에 부친 표정이었다. 쩔쩔매는 모습이 미래의 나의 모습으로 오버랩됐다. 다가가 짐을 우체국 직원 앞에 대신 올려 주었다. 할머니는 미안해하며 고맙다고 했다.    소포를 부친 할머니는 뒤돌아보더니 고개를 끄떡이며 다시 한번 손을 흔들고 우체국을 떠났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다. 모두가 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차이는 있겠지만, 그 길을 가야 한다. 나이 드는 일을 누가 피할 수 있겠는가.    카톡으로 카드를 보내면서 마음속으로 존경하는 분들께 보내는 카드를 감히 이렇게 해도 되는가 하는 생각에 머뭇거리기도 했으나 이제는 나이도 있고 정신력과 에너지도 고갈되어 작은 일에도 점점 더 많은 시간이 드니 이런 선택을 한 것에 후회하지 않는다. 이 시대를 사는 지혜라고 자부한다.    오늘까지 동행해주신 선배, 후배, 사역자, 동역자, 친구들, 사돈님께 그들에게만 할 수 있는 특별한 감사를 각각 다른 표현으로 전해야 도리이겠지만 은퇴한 지 5년이 지났으니 이쯤에서 서서히 느려져도 큰 실례가 되지 않으리라 여기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내년에도 이렇게라도 카드를 보낼 수 있다면 좋겠다.    이제는 귀밑머리에 서리가 내렸다. 주름도 깊어간다. 육체의 변화가 밤이 되어 까만 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빛나지는 못해도 살아온 삶을 아름다웠다고 말해 주는 이가 있다면 참 좋겠다. 엄영아 / 수필가이 아침에 지혜 크리스마스 카드 부친 할머니 그동안 카드

2022-01-16

고교 총격범 부모 과실치사 혐의 기소

미시간주의 한 고교에서 다른 학생 4명을 총격 살해한 15세 소년의 부모도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3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아들이 총으로 사람을 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권총을 안전하게 보관하거나 제대로 있는지 확인하지 않아 사실상 범행을 가능하게 했다고 현지 검찰은 판단했다.   검찰에 따르면 총격 용의자 이선 크럼블리(15)의 부친 제임스는 지난주 권총을 사는 자리에 아들을 데려갔다.   부친은 침실 서랍에 권총을 보관하면서 서랍을 잠그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사건 전날에는 한 교사가 이선이 교실에서 권총 탄환에 대해 인터넷으로 검색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범행 당일인 지난달 30일 오전에는 담임 교사가 이선이 그린 끔찍한 그림을 발견하고 부모를 학교로 긴급 호출했다. 이선은 그림에서 총탄에 맞은 사람, 총기, 사방에 뿌려진 피를 묘사하고 “그 생각이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를 도와달라”라고 적었다.   학교 면담에서 부모는 이선을 조퇴시키는 데 동의하지 않았고, 아들에게 총을 갖고 있는지 물어보거나 가방을 뒤지지도 않았다고 검찰은 밝혔다.   캐런 맥도널드 오클랜드 카운티 검사는 “아들이 총기에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총기를 가져가게 한 것은 비도덕적일 뿐만 아니라 범죄”라고 비판했다.   그날 총격 뉴스가 나오자 모친 제니퍼는 아들에게 “이선, 그러지 마라”고 문자를 보냈고, 부친 제임스는 집으로 달려와 침실 서랍을 열어본 뒤 그제야 권총이 없어진 사실을 알고 911에 신고했다.   이에 대해 맥도널드 검사는 “이 사람이 위험하고 정신적 문제가 있다고 믿을 만한 절대적인 이유가 있었다”면서 “4명의 아이가 살해당하고 7명이 다쳤다. 우리는 모두 매우 분노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모의 유죄가 인정되면 최대 15년의 징역형까지 받을 수 있다고 AP통신이 전했다.과실치사 총격범 과실치사 혐의 고교 총격범 부친 제임스

2021-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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