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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이 시대를 사는 지혜

 2022년 흑 호랑이가 대문을 열고 나왔다.
 
 정초에 먼 곳으로부터 뜻밖의 카드를 받아 너무나 기뻤다. 정성스럽게 쓴 손편지가 꽃송이 한 다발로 다가와 아름다운 선물이 되어 가슴 가득 행복을 주었다.
 
 나도 작년까지는 해마다 크리스마스 카드를 많은 분에게 보냈다. 300명 정도의 주소록을 만들고, 카드와 우표를 샀다. 30년을 변함없이 해온 일이었다. 그동안 카드 한 장, 한 장을 쓰느라 며칠에 걸쳐 편지 쓰고, 우표 붙이고, 주소 붙이고, 봉투 봉하는 일을 해왔다.
 
 근데 2021년 크리스마스부터 나도 변화를 시도했다. 내가 찍은 우리 집 대문 사진에 인사말을 적어 크리스마스 카드를 대신하여 카톡으로 보냈다. 지금까지 한 번도 하지 않은, 딴은 어색한 일이었다.
 


 정보 통신기술을 사용하기로 결심하게 한 동기가 있기는 하다. 작년 1월부터 배송하기 시작한 나의 수필집을, 미처 보내지 못한 지인들에게 보내려고 12월에 우체국에 갔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키느라 문밖까지 줄이 긴 데도 모두가 떠나지 않고 순서를 기다렸다.
 
 어디로 누구에게 무엇을 보내는지 알 수 없지만, 사람을 만날 수가 없으니 선물이라도 보내 소식과 사랑을 전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느 할머니가 한 손엔 큰 백을 들고 보기에도 무거운 워커를 끌고 힘겹게 들어왔다. 몸이 불편한 손님에게는 순서를 배려하는 줄이 한쪽에 따로 있어 다행이었다. 카운터 앞에서 쇼핑백에 든 소포와 많은 카드를 꺼내 직원 앞에 올려 놓으려는데 할머니는 벌써 힘에 부친 표정이었다. 쩔쩔매는 모습이 미래의 나의 모습으로 오버랩됐다. 다가가 짐을 우체국 직원 앞에 대신 올려 주었다. 할머니는 미안해하며 고맙다고 했다.
 
 소포를 부친 할머니는 뒤돌아보더니 고개를 끄떡이며 다시 한번 손을 흔들고 우체국을 떠났다.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다. 모두가 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차이는 있겠지만, 그 길을 가야 한다. 나이 드는 일을 누가 피할 수 있겠는가.
 
 카톡으로 카드를 보내면서 마음속으로 존경하는 분들께 보내는 카드를 감히 이렇게 해도 되는가 하는 생각에 머뭇거리기도 했으나 이제는 나이도 있고 정신력과 에너지도 고갈되어 작은 일에도 점점 더 많은 시간이 드니 이런 선택을 한 것에 후회하지 않는다. 이 시대를 사는 지혜라고 자부한다.
 
 오늘까지 동행해주신 선배, 후배, 사역자, 동역자, 친구들, 사돈님께 그들에게만 할 수 있는 특별한 감사를 각각 다른 표현으로 전해야 도리이겠지만 은퇴한 지 5년이 지났으니 이쯤에서 서서히 느려져도 큰 실례가 되지 않으리라 여기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내년에도 이렇게라도 카드를 보낼 수 있다면 좋겠다.
 
 이제는 귀밑머리에 서리가 내렸다. 주름도 깊어간다. 육체의 변화가 밤이 되어 까만 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빛나지는 못해도 살아온 삶을 아름다웠다고 말해 주는 이가 있다면 참 좋겠다.

엄영아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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