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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영웅전] 마담 롤랑

여자의 운명은 남편을 만나며 결정된다지만, 내가 보기에 남자의 운명은 한 아낙의 마음 먹기에 달린 것 같다. 아테네 정치가 테미스토클레스의 말처럼 남자는 여자에 의해 몰락하고, 여자는 자식에 의해 몰락한다. 위대한 남자였든, 몰락한 남자였든, 그 뒤에는 여인이 있었다. 어머니의 경우가 가장 흔하고, 그다음은 아내이고, 그다음은 혈육이고, 그다음은 연인이거나 친구다.   프랑스혁명 와중에 부르봉 왕조의 법부대신은 장 마리 롤랑(1734~1793) 자작이었다. 활동적이라기보다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그는 신부가 되고 싶었던 귀족이다. 아내 마리(1754~1793)는 몹시 적극적이고 드센 여자였다. 이 여인이 스무 살 연상의 남편을 대신해 지롱드당을 이끌며 흑막 같은 존재로 ‘지롱드파의 여왕’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뛰어난 미모와 지성 그리고 교양을 갖추고 있었지만, 평민 출신이었기 때문에 귀족의 푸대접을 받으며 공화주의자가 됐다.   혁명과 함께 로베스피에르 치하에서 루이 16세 국왕이 처형되자 남편 롤랑은 도망치고 마담 롤랑 혼자 남았다. 5개월의 옥중 생활을 거친 뒤 단두대에 섰다. 처형 직전에 그는 문득 형리에게 종이와 연필을 달라고 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좋은 시상(詩想)이 떠올랐다는 것이었다. 형리가 그냥 죽으라는 말투로 핀잔을 주며 거절하자 마담 롤랑은 후세에 말로라도 전해 달라며 이렇게 읊었다.   “오! 자유여, 인간들은 너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죄를 저지르는가?(Oh Liberty, what crimes are committed in thy name!)” 그리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틀 뒤 피난처인 노르망디에서 아내의 처형 소식을 들은 롤랑은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권위주의 시대를 거친 뒤 민주화라는 미명 아래 자유가 넘쳐 마치 혼돈과 같은 시대를 살면서 왜 자꾸 롤랑 부인의 말이 떠오르는지…. 신복룡 / 전 건국대 석좌교수신 영웅전 마담 롤랑 마담 롤랑 남편 롤랑 롤랑 부인

2024-11-03

[우리말 바루기] 아내분 / 부인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을 보다 보면 진행자가 남성 출연자를 보고 “그러면 아내분께서 화를 내시지 않던가요?”처럼 말하는 걸 종종 볼 수 있다. 인터넷에서도 이런 어투는 자주 발견된다. “아내분에게 케이크를 선물하고 싶은 남성분이 매장을 찾아주셨어요” “코미디언 ○○○씨 아내분 참 예쁘던데요” 같은 경우다.   ‘아내’는 ‘혼인하여 남자의 짝이 된 여자’를 이르는 단어다. 한자어 ‘처(妻)’와 의미가 같다. ‘-분’은 앞에 나오는 말에 ‘높임’의 뜻을 더해주는 접미사다. 그래서 남의 배우자를 높여 일컫는 말로 ‘아내분’이란 표현도 가능하기는 하다.   그러나 이렇게 군더더기를 붙이지 않고도 남의 아내를 높여 부를 수 있다. ‘부인’을 쓰면 된다.     ‘부인’은 남의 아내를 높여 이르는 단어인 만큼 “나는 부인이 친정에 가서 당분간 혼자 지내야 합니다”와 같이 남 앞에서 자신의 아내를 ‘부인’이라고 일컬으면 무식한 사람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이 경우는 “처가/ 집사람이/ 안사람이 친정에 가서”라고 하면 된다.   ‘영부인’이란 표현도 있다. 권위주의 정권을 거치면서 많은 이가 ‘퍼스트레이디’를 일컫는 말로 알고 있으나 남의 아내를 높여 일컫는 일반적 표현이므로 대통령만이 아니라 ‘김 과장님 영부인’처럼 써도 된다.    ‘영애(令愛)’ ‘영식(令息)’ 등도 대통령의 딸과 아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윗사람의 딸과 아들을 이를 때 두루 쓸 수 있다. 물론 따님·아드님처럼 쉬운 말로 쓰면 더 좋다. 우리말 바루기 아내분 부인 과장님 영부인 텔레비전 프로그램 권위주의 정권

2024-08-01

[글마당] 개고생

서울에서 온 화가 전시회였다. 화가 부인을 소개받았다. 훤칠한 미모의 지적이며 단아하고 선한 인상이다. 그녀는 사려 깊은 모습으로 조용히 사람들 말에 경청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 요 방정맞은  입에서 “저도 화가 와이프이지만 화가 부인하느라 개고생 많이 하셨지요?”   눈물이 핑 돌아 글썽이는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그녀가 말했다.   “개고생‘이라는 말을 들으니 마음 편히 터놓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직장 다니며 남편 서포트한 그녀의 사연이 쏟아져 나왔다.   정말이지 화가 와이프 하기 쉽지 않다. 화가라는 직업은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수입이 일단 없다. 꼴에 풀타임으로 작업하고 싶어 한다. 큰 작업 공간이 있어야 한다. 재료비는 말하면 잔소리다. 차라리 컴퓨터 하나만 들고 작은 공간에서 글 쓰는 소설가 부인이 훨씬 낫지 않을까? 그들도 그들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만, 커다란 작업 공간에서 수많은 작품을 만들고 없애고를 반복해서 겨우 만들어 낸 괜찮다는 작품도 팔린다는 보장이 없다.     전시를 위해 사진 찍어야 하고 팸플릿 만들기 위해서는 글을 받아야 하고 운반해야 하고 오프닝 준비해야 하는 과정에서 비용이 엄청나게 깨진다. 뭐 유명해지면 갤러리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그전까지 뒤에서 물심양면 지원하는 부인들이야말로 개고생이다. 유명해지는 것은 로또 맞을 확률이다.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화가가 되기 위해 달리기 시작한다. 그중에서 많은 이들이 중간에 떨어져 나가고, 또, 또 떨어져 나간다. 골인하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부부가 합심해서 달려도 골인 언저리에 도달하기가 무척 힘들다.     요행히 화가로 이름이 조금  날리면 혼자 노력해서 달려간 양 거들던 부인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기 일쑤다. 그나마 조금 성공한 화가의 말이 생각난다.   “마누라 얼굴만 봐도 개고생하던 시절이 떠올라서 싫어.”   싫은 마누라 피해 밖으로 나돌다가 젊은 여자와 그렇고 그런 관계로 이어진다. 결국엔 조강지처는 버림을 받는다. 다행히 옆에서 후원한 와이프를 불쌍히 고맙게 여기는 화가도 있지만, 많은 남자가 그렇듯 성공하면 주위에 젊은 여자들이 달라붙는다. 젊은 여자가 좋지, 늙은 마누라가 좋을 리 없다. 하지만, 조강지처 버리고 잘된 화가를 못 본 것 같다. 게다가 화가는 자기는 재능을 선택받아 남과 다른 일을 하는 양 잘났다고 타협하지 않는다. 예민한 성질 또한 부인이 개고생하는 데 한몫 거든다. 글쎄 다른 화가들은 모르겠지만, 내 남편의 아주 작은 예를 들어보겠다. 모처럼 식당에 갔다. 밑반찬이 주르르 나왔다.     “이 반찬들 들락날락했던 것 아니야?”   “맛있어 보이는데 왜 또~ 밑반찬이 무슨 잘못이라고.”   조용히 깍두기만 우적우적 씹는 찌그러진 얼굴색이 좋지 않다.     “항상 당신이 가자는 식당에 가다가 처음 내가 오자고 한 식당이잖아. 밑반찬 많이 나오는 식당이 싫다고 성질 내는 인간도 있을까? 먹지 마. 내가 다 먹을게.” 나는 반찬 접시마다 다 가져다 싹싹 먹어 치웠다. 남편이 가고 싶어 하는 김치 한 가지 나오는 설렁탕집으로 가지 않았다고 트집 잡기 시작하더니 짜증 내며 하루를 망친다.     ’아이고 내 팔자야. 차라리 산에 들어가 도를 닦아도 내 신세보다는 낫겠다. 내 나이도 절에서 받아줄까? 금전 두둑이 가져가면 받아줄까?‘     항상 어딘가 튈 곳이 없나 두리번거리며 푼수처럼 ’개고생‘이라는 헛소리나 하고. 헛소리하며 스트레스 풀지 않으면 화가 부인으로 살아남기 정말 힘들어서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개고생 화가 부인 소설가 부인 작업 공간

2023-12-29

카터 전 대통령 부인 로잘린 여사 별세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부인 로잘린 여사(사진)가 향년 96세로 별세했다.   카터 센터는 성명을 통해 로잘린 여사가 지난 19일 오후 조지아주 플레인스 자택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영면했다고 밝혔다. 성명에 따르면 지난 5월 치매 진단을 받은 로잘린 여사는 지난 18일 호스피스 케어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월부터 자택에서 호스피스 케어에 들어간 카터 전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로잘린은 내가 성취한 모든 일에서 동등한 파트너로 필요할 때 현명한 조언과 격려를 해줬다. 로잘린이 세상에 있는 한 나는 누군가 나를 사랑하고 지지한다는 사실을 항상 알았다”고 말했다.   부부가 마지막으로 함께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결혼 77주년을 맞은 지난해 9월 고향 플레인스에서 열린 연례 땅콩 축제였다.     직설화법으로 유명한 로잘린 여사는 카터 대통령 재임(1977~1981년) 동안 각료 회의에 참석하고 해외 순방을 다니는 등 가장 활동적인 영부인 중 한명으로도 알려져 있다. 퇴임 후 부부는 애틀랜타에 비영리 싱크탱크인 카터 센터를 설립했으며 아프리카 등 수십 개국의 의료 및 농업 프로젝트를 후원했다.     생전에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한 인식 제고와 개혁을 위해 힘쓴 로잘린 여사는 1991년 남편과 함께 예방접종 프로그램인 ECBT(Every Child By Two)를 창립하기도 했다.대통령 카터 카터 대통령 대통령 부인 여사 별세

2023-11-19

“뉴저지주지사 부인 태미 머피도 상원 도전”

필 머피 뉴저지주지사의 부인 태미 머피(사진)가 곧 뉴저지주 연방상원의원에 도전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현재 가장 강력한 후보인 앤디 김(민주·뉴저지 3선거구) 연방하원의원과 맞붙게 된다.   지역매체 뉴저지글로브는 지난달 30일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태미 머피가 곧 연방상원의원 민주당 후보로 등록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현재 로버트 메넨데즈(민주) 의원이 지키고 있는 자리로 내년 6월 예비선거가 예정됐다.   태미 머피는 지난 9월 메넨데즈 의원이 기소된 뒤 유력한 민주당 후보로 거론됐다. 남편 머피 주지사를 비롯해 민주당의 수많은 인사를 위해 후원을 이끌어낸 것으로 잘 알려졌다.   ▶높은 인지도 ▶성공적인 기금 모금 이력 ▶막대한 개인 재산 ▶뉴저지주 정치권과 탄탄한 관계 등이 강점으로 꼽힌다.   일각에서는 뉴저지주가 아직 여성 연방상원의원을 배출한 적이 없다는 점 또한 그에게 유리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데비 월시 럿거스대학 교수는 지역매체 고다미스트에 “뉴저지주는 선출직에서 여성이 과소 대표되는 문제가 있다”며 “태미 머피는 높은 인지도를 통해 강력한 후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태미 머피가 출마할 경우 같은 자리에 도전하는 앤디 김 의원에 위협이 될 수 있다. 김 의원은 지금까지 출마를 선언한 민주당 후보 중 가장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다.   한편 민주당 예비선거에서의 승리는 사실상 의원 당선으로 통한다.  이하은 기자뉴저지주지사 부인 머피 뉴저지주지사 뉴저지주지사 부인 연방상원의원 민주당

2023-10-31

길산그룹 정길영 회장 부인 한기환씨 칼스배드 아비애라서 홀인원

한국의 스테인리스스틸 생산 대표 기업인 길산그룹 정길영 회장의 부인 한기환씨가 LA에서 '홀인원'의 행운을 잡았다.   정 회장 부부 등 일행은 지난 25일 샌디에이고카운티 칼스배드의 아비애라(AVIARA) 골프클럽에서 라운딩에 나섰고 한씨가 3번 홀(100야드)에서 6번 아이언으로 친 볼이 그대로 홀컵으로 빨려들어갔다.   핸디캡이 보기 수준이라는 한씨는 "그린에만 올리자는 생각으로 샷을 했는데 동반자 중 누군가 '홀인원'이라고 외쳐 놀랐다"며 "직접 그린에 올라가 공이 홀컵에 있는 것을 보고 엄청난 일이 생긴 줄 알았다. 지금도 얼떨떨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골프경력 25년인 한씨는 10년 전 충남 부여의 롯데컨트리클럽에서 첫 홀인원을 기록한 적이 있다.   이날 라운딩은 한씨와 남편인 정길영 회장 백제CC 형남순 회장의 부인인 박옥순씨 양성희씨가 동반했다.   한편 1991년 충남 논산에 설립된 길산그룹은 지난해 매출 1조원을 기록했고 정 회장이 직접 나서 LA지사 설립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홀인원 소식은 정 회장과 동향(대전)으로 의류업체 '엣지마인'을 경영하는 강창근 회장이 알려왔다. 류정일 기자 ryu.jeongil@koreadaily.com게시판 정길영 정길영 회장 부인 한기환씨 홀인원 소식

2023-08-01

[김형석의 100년 산책] 나는 100세 넘었어도 외롭지 않다

부부가 함께, 그리고 오래 살아가는 백년해로(百年偕老)는 복 중의 복이다. 누구나 경험하는 사실이다. 해로하지 못한다면 누가 먼저 가는 것이 좋을까. 일률적인 해답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흔히 남자가 먼저 가는 편이 좋다고 말한다. 늙은 남자가 혼자 추하게 남는 것보다, 여자가 자녀들도 함께 있기를 원하고 가족애도 강하기 때문이다.     내 친구 부인이 남편에게 한 얘기를 전해 들었다. “여보,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당신을 먼저 보내드릴게. 김 교수님이 혼자 쓸쓸히 고생하는 것을 보니까, 사모님이 선생님을 혼자 남겨두고 가는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라는 것이다.   20년 전 먼저 간 아내 항상 생각   반대인 경우도 있다. 내 친구 김태길, 안병욱 교수는 아내보다 먼저 갔다. 두 부인은 연하이고 건강했는데, 남편들이 작고한 뒤 오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안 교수 부인이 예상보다 빨리 세상을 떠났기에 만일 안 선생 부인이 먼저 갔다면 안 선생은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내 경우도 생각해 본다. 아내를 먼저 보낸 지 20년이 되었다. 아내 생각은 언제나 떠오른다. 아들·딸이나 손주들이 모이면 자연히 어머니와 할머니 얘기를 한다.   대답은 간단한 것 같다. 사랑할 상대가 사라졌을 때 누구나 고독해진다. 다시는 그런 사랑이 불가능하다고 느껴졌을 때 고독은 절망이 된다. 절망은 정신적 종말, 죽음과 연결된다. 그런 고독은 남녀의 구별도 없고, 나이의 차이도 없다. 고독사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99의 악조건이 있다고 해도 사랑의 연결이 하나라도 있으면 고독과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90이 되면서 더 외로움을 느꼈다. 100세가 넘으니까 혼자 있어서는 안 되고 누군가의 도움이 간절해진다. 그것이 고령 노인들에게 주어지는 인생의 짐이다. 그래도 나는 그 고독을 극복해냈다고 생각한다.   그 원동력이 무엇이었을까. 일을 위하고 사랑하는 열정이었다. 누구보다 많은 일을 했다. 그 일에서 오는 위로와 보람이 고독한 심정과 시간의 공간을 채워주었다. 그 일은 보수나 소유를 위한 일이 아니었다. 학자로서 진실을 찾는 의무였고 제자들을 위하고 사랑하는 즐거움이었다. 대학을 떠난 후에는 친구들과 사회에 무엇인가 남겨주고 싶은 사명감 비슷한 것이었다. 일 많은 나라에 태어난 것에 감사했고, 많은 일이 주어지는 현실에서 보람을 느꼈다. 가족들을 위하는 책임도 있었으나, 중고등학교와 대학에 있을 때는 교육계를 위하는 책임이 항상 뒤따랐다. 무거운 짐이었으나 나름대로 사랑과 보람이 있었기에 행복했다.   90을 넘기고도 지금까지 주어진 일에 매달려 산다. 일에 대한 열정과 노력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돌이켜본다. 80까지는 내가 일을 찾았으나 그 후에는 사회가 나에게 일을 맡겨 주었다. 일한다는 것이 인간의 본분이며, 늙으면 인생의 가치를 풍요롭게 하는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좀 더 많은 사람이 노년기 인생을 위해 스스로 일하는 열성을 가지며, 정부와 사회가 노년기까지 일할 수 있는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   나이 들수록 필요한 또 한 가지 과제는 인간관계를 선하고 아름다운 방향으로 넓혀가는 일이다. 인생은 어떤 인간관계와 공동체 의식을 갖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노년기가 힘들다는 것은 인간관계가 좁아지며 공동체 의식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가정과 직장에서 즐거운 인간관계를 누리다가 늙으면서 더 넓혀가는 사람이 있고, 점차 좁아지고, 상실해 가기도 한다. 가족관계까지도 유지하지 못해 고독해지는 노인들이 생긴다. 그 책임의 반은 내게 있고, 반은 자립심을 상실한 노약자를 위한 정부와 사회의 도움 부족일 수도 있다.   옛날에는 노인정 같은 휴게시설이 있었다. 최근에는 경로 시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기 인생을 위해 준비하고 노력하는 각자의 책임이다. 종교단체를 비롯한 교양과 정신적 안정을 위한 기관과 시설도 있다. 노년기에 찾아 누릴 수 있는 행복은 선하고 아름다운 인간애를 주고받음에서 출발하고 열매를 맺는다.   요즘 시대의 장년기는 30~80세   지금 30대와 나의 30대를 비교하면 사회 모든 면에서 많은 변화가 생겼다. 청년기와 노년 기간이 짧아지고 장년 기간이 일생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일하고 성장하며 인격을 키워가는 장년기는 30에서 80까지 차지한다. 평균수명도 길어졌고 건강수명도 높아졌다. 모두가 풍부한 정신적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선각자나 선구자는 되지 못해도 그런 사회에 적응하는 노력은 필수이다.   생활영역과 공간도 예상했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이런 변화와 발전에 적응하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노령화를 앞당겨서는 안 된다. 나의 세대에서는 60을 노년기의 출발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도 80까지는 정신적으로 늙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장년기가 길어졌다는 것은 젊게 성장하고 일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는 뜻이다. 우리가 더 좋은 세상을 자율적으로 창조해 가는 것이 주어진 과제이고 희망이다. 김형석 / 연세대 명예교수김형석의 100년 산책 남녀노소 인간관계 노년기 인생 아내 생각 선생 부인

2023-07-07

[아름다운 우리말] 웅녀와 유화, 알영 그리고 허황옥

역사를 읽는 방법은 다양할 것입니다. 어떤 것은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고 믿어야 하며, 어떤 내용은 해석이 필요합니다. 특히 신화, 설화로 포장되어 있는 역사에는 관점이 필요합니다. 저는 우리나라 역사를 읽고, 공부하면서 해석이 필요한 부분을 봅니다. 나라를 세우는 사람의 이야기는 더욱 그렇습니다. 보통은 하늘에서 온 사람이 땅이나 물의 사람을 만나는 모습이 나옵니다.   역사를 보면 주로 이동해 오는 민족은 자신은 하늘에서 왔다고 말합니다. 하늘의 아들이니, 하늘에서 왔다느니 하는 말은 주로 내가 이곳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자신을 태양이라고 하는 경우도 비슷합니다. 한편 자신을 땅의 신이라든지, 물의 자손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는 그곳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땅이나 물이 옮겨 다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일 겁니다.   하늘이라든가 해는 주로 낮을 의미하고, 낮은 주로 남성으로 상징됩니다. 해가 꼭 남성일 필요는 없으나 신화 속에서는 해는 주로 남성입니다. 달이나 밤이 여성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회의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은 구별이 적은 원시공산사회가 모계사회이고 그래서 밤으로 상징되었다고 보기도 합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한편 부계사회는 주로 사유재산의 형성과 관련이 됩니다. 당연히 신분제 등과도 관련을 맺습니다. 구별과 차별이 이루어지는 사회입니다. 이런 사회일수록 상징은 태양이 됩니다. 밝은 사회이지만 구별이 있는 사회입니다. 개인의 능력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밤은 여성을, 낮은 남성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밤낮이라는 표현은 흥미롭습니다. 밤이 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앞에 있는 것은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언어는 대부분 낮이 앞에 있습니다.   우리 역사의 기록을 보면 대부분 이 구조에 들어맞습니다. 고조선을 세우는 환웅은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죠. 남자입니다. 하늘의 아들과 결혼하는 여자는 땅에 살고 있던 곰이 변하였습니다. 어둠을 상징하는 굴속에서 지내는 시간이 나옵니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의 탄생도 천제의 아들 해모수와 물을 상징하는 하백의 딸이 만납니다. 물론 해모수는 남자이고 하백의 딸 유화 부인은 여자입니다. 웅심산(熊心山)에서 만나는 장면이 나와서 흥미롭습니다. 여기에서도 곰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곰은 토템으로 볼 수도 있지만, 우리 민족을 나타내는 개념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백제에도 웅진(熊津)이 나옵니다.   박혁거세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혁거세는 알에서 태어납니다. 알은 태양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늘이 기원입니다. 당연히 혁거세도 남자입니다. 부인인 알영은 용의 딸입니다. 우물에서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용은 주로 물의 상징입니다. 바다의 주인은 용입니다. 그래서 용왕은 주로 바다에 있습니다.   가야의 수로왕도 하늘에서 내려온 알에서 태어납니다. 하늘과 알의 상징이 모두 쓰였습니다. 수로왕의 부인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옵니다.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으로 나옵니다. 물의 상징과 여성의 상징이 쓰입니다. 다만 진짜로 아유타국에서 온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습니다. 상징으로 보면 바다는 물로 보는 게 맞습니다. 물과 여성의 상징이니 토착민으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또 다른 이주민으로 보아야 할지 궁금해지는 부분입니다.   건국신화의 시작은 하늘에서 내려온 남성과 땅, 물에 있는 여성의 만남입니다. 우리 신화의 특징은 조화입니다. 하늘과 땅, 남성과 여성의 조화로 새로운 세상을 만듭니다. 그래서 싸움이 없는 홍익인간(弘益人間), 광명이세(光明理世)의 뜻을 펼치게 됩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허황옥 웅녀 수로왕도 하늘 유화 부인 공주 허황옥

2023-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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