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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개고생

서울에서 온 화가 전시회였다. 화가 부인을 소개받았다. 훤칠한 미모의 지적이며 단아하고 선한 인상이다. 그녀는 사려 깊은 모습으로 조용히 사람들 말에 경청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 요 방정맞은  입에서 “저도 화가 와이프이지만 화가 부인하느라 개고생 많이 하셨지요?”
 
눈물이 핑 돌아 글썽이는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그녀가 말했다.
 
“개고생‘이라는 말을 들으니 마음 편히 터놓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직장 다니며 남편 서포트한 그녀의 사연이 쏟아져 나왔다.
 


정말이지 화가 와이프 하기 쉽지 않다. 화가라는 직업은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수입이 일단 없다. 꼴에 풀타임으로 작업하고 싶어 한다. 큰 작업 공간이 있어야 한다. 재료비는 말하면 잔소리다. 차라리 컴퓨터 하나만 들고 작은 공간에서 글 쓰는 소설가 부인이 훨씬 낫지 않을까? 그들도 그들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만, 커다란 작업 공간에서 수많은 작품을 만들고 없애고를 반복해서 겨우 만들어 낸 괜찮다는 작품도 팔린다는 보장이 없다.  
 
전시를 위해 사진 찍어야 하고 팸플릿 만들기 위해서는 글을 받아야 하고 운반해야 하고 오프닝 준비해야 하는 과정에서 비용이 엄청나게 깨진다. 뭐 유명해지면 갤러리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그전까지 뒤에서 물심양면 지원하는 부인들이야말로 개고생이다. 유명해지는 것은 로또 맞을 확률이다.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화가가 되기 위해 달리기 시작한다. 그중에서 많은 이들이 중간에 떨어져 나가고, 또, 또 떨어져 나간다. 골인하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부부가 합심해서 달려도 골인 언저리에 도달하기가 무척 힘들다.  
 
요행히 화가로 이름이 조금  날리면 혼자 노력해서 달려간 양 거들던 부인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기 일쑤다. 그나마 조금 성공한 화가의 말이 생각난다.
 
“마누라 얼굴만 봐도 개고생하던 시절이 떠올라서 싫어.”
 
싫은 마누라 피해 밖으로 나돌다가 젊은 여자와 그렇고 그런 관계로 이어진다. 결국엔 조강지처는 버림을 받는다. 다행히 옆에서 후원한 와이프를 불쌍히 고맙게 여기는 화가도 있지만, 많은 남자가 그렇듯 성공하면 주위에 젊은 여자들이 달라붙는다. 젊은 여자가 좋지, 늙은 마누라가 좋을 리 없다. 하지만, 조강지처 버리고 잘된 화가를 못 본 것 같다. 게다가 화가는 자기는 재능을 선택받아 남과 다른 일을 하는 양 잘났다고 타협하지 않는다. 예민한 성질 또한 부인이 개고생하는 데 한몫 거든다. 글쎄 다른 화가들은 모르겠지만, 내 남편의 아주 작은 예를 들어보겠다. 모처럼 식당에 갔다. 밑반찬이 주르르 나왔다.  
 
“이 반찬들 들락날락했던 것 아니야?”
 
“맛있어 보이는데 왜 또~ 밑반찬이 무슨 잘못이라고.”
 
조용히 깍두기만 우적우적 씹는 찌그러진 얼굴색이 좋지 않다.  
 
“항상 당신이 가자는 식당에 가다가 처음 내가 오자고 한 식당이잖아. 밑반찬 많이 나오는 식당이 싫다고 성질 내는 인간도 있을까? 먹지 마. 내가 다 먹을게.” 나는 반찬 접시마다 다 가져다 싹싹 먹어 치웠다. 남편이 가고 싶어 하는 김치 한 가지 나오는 설렁탕집으로 가지 않았다고 트집 잡기 시작하더니 짜증 내며 하루를 망친다.  
 
’아이고 내 팔자야. 차라리 산에 들어가 도를 닦아도 내 신세보다는 낫겠다. 내 나이도 절에서 받아줄까? 금전 두둑이 가져가면 받아줄까?‘  
 
항상 어딘가 튈 곳이 없나 두리번거리며 푼수처럼 ’개고생‘이라는 헛소리나 하고. 헛소리하며 스트레스 풀지 않으면 화가 부인으로 살아남기 정말 힘들어서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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