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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진리적 의심과 깨달음

100여년 전 원불교 창시자이신 소태산 대종사를 어떤 한 사람이 찾아와 대종사께 물었습니다. “저는 항상 진세(塵世)에 있어서 번뇌와 망상으로 잠시도 마음이 바로 잡히지 못하오니 그 마음을  바로 잡기가 원이옵이다.” 대종사께서는 다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마음 바로잡는 방법은 먼저 마음의 근본을 깨치고 그 쓰는 곳에 편벽됨이 없게 하는 것이니 그 까닭을 알고자 하거든 이 의두(疑頭)를 연구해 보라.” 하시고 “만법귀일(萬法歸一) 하니 일귀하처(一歸何處)오”라고 써 주셨습니다.     상식적으로는 마음 안정을 원하는 사람에게 명상 등 수양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하는데, 소태산 대종사께서 그분께 의두, 즉 진리적인 의문 거리를 연마해 보라고 하신 말씀은 참으로 의미 깊습니다.   필자는 20대 중반 원불교 교학과 학생 시절 어느 날 갑자기 이마에 부스럼 돌기 같은 것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붉게 된 부분이 가렵기 시작했고 이마가 흉하게 되었습니다. 피부과를 찾아갔고 조직검사까지 하였으나 의사 선생님께서는 정확한 원인을 알지 못하겠다고 하며 아마 어떤 바이러스 혹은 박테리아 감염이 원인이 아닌가 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의사가 권하는 약을 먹고 처방된 연고를 두 달간 발랐으나 전혀 효과가 없었습니다.     방학이 되어 어떤 한의사를 찾아갔습니다. 한의사는 저를 진맥해 보더니 제 몸이 너무 피곤한 상태이며, 이마의 돌기는 피곤으로 인해 화기(火氣)가 얼굴로 올라와 생긴 것 같다고 하며 화기를 내리고 수기(水氣)를 강하게 하는 한약을 처방해 주었습니다. 약을 먹는 것이 주요한 것이 아니라 잘 쉬는 것이 우선이라는 당부를 하셨습니다. 여름방학 동안 두 달 정도 잘 쉬고 나니 이마에 돌기가 저절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으면 그것에는 원인이 있습니다. 원인에는 피상적 원인이 있고 근원적 원인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바이러스가 제 이마에 돌기를 일으켰다고 하는 것은 (이가 어느 정도 사실이겠지만) 피상적 원인이며, 돌기의 근본 이유는 제 몸이 너무 피곤했기 때문입니다.   화나는 마음, 요란한 마음, 어리석고 그른 마음, 비교하는 마음 등 우리는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합니다. 그것의 피상적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근원적 원인은 우리가 마음의 실체를 보지 못하고 마음의 근본원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대종사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음을 바로잡기를 원하면 마음의 근본을 깨쳐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이런저런 경계에서 해탈을 잘하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마음의 원리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대종사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대종사 서울 박람회에서 화재보험 회사의 선전 시설을 보시고 한 감상을 얻었다 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항상 말하기를 생사고락과 해탈을 하자고 하지만 생사의 원리를 알지 못하면 해탈이 잘 되지 않을 것이니….” (천도6)   예수님께서도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8:32) 진리를 알지 못하고 우리가 마음의 자유를 얻지 못합니다. 인생의 제반 고통으로부터 근원적으로 벗어나는 방법은 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따라서 불교를 ‘깨달음’의 종교라 합니다. 불교(佛敎)의 불(佛)자는 ‘깨칠 불’ 혹은 ‘깨달을 불’입니다.     진리란 우주만유의 본원이자 우리의 본성입니다. 진리를 깨치는 것, 즉 우리 마음의 실체를 아는 것을 불교에서는 견성(見性), 즉 성품을 본다고 말합니다.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우선 ‘의심’을 일으켜야 합니다. 진리에 관한 의심 없이 깨달음을 얻기란 불가능합니다. 문제가 없는데 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깨달음 진리 진리적 의심 우리 마음 마음 안정

2024-11-14

[문예마당] 믿음의 승리

지난 10월 6일 주일 저녁 4시에 풀러턴 장로교회 창립 50주년 감사 음악 예배가 있었다. 믿음의 친구가 이 교회에 권사로 오랫동안 교회를 섬겨왔다. 친구는 나에게 음악 예배 소식을 전해주면서 꼭 참석하여 은혜를 받으면 좋겠다고 했다. 특히 친구는 그 교회의 호산나 성가대 찬양 대원으로 늘 교회를 섬겨온 터라 꼭 참석해서 찬양에 많은 은혜를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했다.   나는 감회가 매우 깊었다. 친구를 만난 지가 30여 년이 가깝지만 처음부터 믿음이 좋았던 친구는 아니었다. 직장에서 사귄 친구인데 언젠가 말 못 할 가정 사정이 있다면서 나에게 기도를 부탁하기 시작했다. 직장에서 친구를 매일 만날 수 있었다. 휴식 시간 때마다 나에게 찾아와 어려움을 호소했다. 더욱이 임신 중이었다. 나는 친구의 하소연을 듣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무나 가슴이 먹먹하면서 내 가슴이 아파지기 시작했다.     친구는 크리스천이었지만 믿음이 돈독하지는 못했다. 나는 밤마다 교회 철야 예배에 데리고 가서 둘이 손 붙잡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친구는 믿음이 생기면서 주어진 고난을 극복해 나가기 시작했다. 모든 것 하나님께 맡기면서 기도하니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고 모든 고난을 이기고 나갈 믿음이 생겼다며 웃음을 되찾기 시작했다.   아들을 순산했고 믿음으로 키우기 시작했다. 외도하던 남편은 첫사랑의 연인과 동거생활을 시작했고, 이혼소송장까지 가져와 이혼을 강요했다고 한다. 백방으로 노력해 봐도 한 번 돌아선 남편의 마음을 돌릴 수가 없었다. 남편이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하다며 막내아들을 믿음으로 키우는데 사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임신 중에 같이 손 붙잡고 기도했던 그 아들이 UCLA를 졸업하고 CPA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며 합격 기도를 부탁해 매일 기도하고 있다. 맏딸과 첫째 아들 모두 결혼을 시켰고 가족 모두가 교회에 열심히 봉사하는 자녀들이라는 자랑이다.       나만 보면 기도해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꼭 한다. 남편과는 헤어졌지만, 자녀들을 모두 믿음으로 키워 훌륭한 믿음의 일꾼들이 되었다. 막내아들은 덤으로 얻은 아들처럼 너무나 귀하고 자랑스럽다고 했다. 믿음이 없었으면 너무 힘들어 유산할 뻔도 했는데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모든 고난을 극복하고 순산할 수 있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었다고 했다.   창립 50주년 감사 음악 예배의 주제는 ‘세상을 향하여’ 였다. 합창은 모두 3부로 나뉘었는데 1부는 ‘하나님을 향해’ 였고,  2부는 '서로를 향해',  3부는 '세상을 향해'였다.   중간에 특별 초대 손님이 특별한 연주를 해 주어 금상첨화로 찬양 예배가 더욱 빛났다.   친구는 호산나 찬양대 대원으로 맨 앞줄 중앙에 하얀 찬양복을 입고 찬양하는 모습이 마치 천사가 노래 부르는 것 같이 아름답고 보기 좋았다. 과거 모든 아픔 다 잊고 노년에 교회 권사로 봉사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랐다. 찬양 예배와 함께 친구를 지켜보는 나로서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 고통스러워하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오늘의 행복한 모습을 보니 믿음의 승리를 한 개선장군처럼 어엿하고 자랑스러웠다.   믿음으로 맺어진 우리의 우정은 하늘의 샛별처럼 빛나며 천국 가서도 영원하리라. 친구야! 참 장하고 자랑스럽다. 아름다운 목소리 잘 간직하여 주님 찬양하는데 더욱 쓰임 받기를 주님께 기도드린다. 김수영 / 수필가문예마당 믿음 승리 모두 믿음 장로교회 창립 찬양 예배

2024-11-07

[삶과 믿음] 관심에서 행동으로

어쩌다 만나는 분 중에 아직도 아이티에 다니느냐고 묻는 분들이 있다. 그렇다고 하면 위험해서 어찌하느냐고 염려하기도 하고, 수고한다고 하기도 하고, 아직도 다닌다는 것을 꽤 신기한 일인 듯 여기기도 한다. 많은 분이 우리의 아이티 고아 지원 사역에 관심을 두거나, 우리를 만나면 궁금해하기도 한다. 이메일로 보내드리는 소식을 읽는 분들은 자주 안부를 묻기도 하고 뉴스에서라도 아이티 이야기를 듣게 되면 생각이 난다며 연락을 하는 분들도 있다.   선교하는 일만이 아니라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렇겠지만, 그런 관심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 중에 우리 사역을 위해 기도해 주는 분들이 있고, 그 기도가 우리가 아이티 고아들을 돌보는 일에 큰 힘이 되고 능력이 된다고 믿기 때문에 관심을 두고 물어봐 준다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힘이 날 수밖에 없다. 관심은 사랑을 품고 있고 관심이 있을 때 기도하게 된다. 기도 자체가 관심이기 때문이고, 우리 사역 또한 따듯한 관심 속의 기도로 힘을 얻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성도는 세상의 많은 일에 관심을 둬야 한다. 그리고 그 관심은 기도로 이어지고 나아가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우리 주변에는 관심을 두고 살펴야 일이 많다. 기후 문제가 그렇고, 여러 나라의 전쟁이 그렇고, 국민 삶의 질을 결정하는 대통령 선거 같은 정치가 그렇다. 자기가 태어나고 살아가던 땅을 떠나 떠도는 난민이나 아이티 고아들처럼 나라가 아무리 갱단의 폭력으로 두려움의 땅이 되어도 떠날 곳도 떠날 수도 없는 사람도 관심을 두어야 할 대상이다. 우리가 사는 동네 가까운 곳에도 우리의 관심과 돌봄이 필요한 사람도 적지 않다. 그 모든 것에 깊은 관심과 기도가 필요하다.   하지만 관심에서 비롯된 기도는 한 발 더 나가 행동으로 이어져 열매를 맺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관심은 아이티 고아이다. 우리는 관심을 두고 기도하며 도와주는 분들의 뜻을 모아 고아들이 먹고 배우며 자라는 일을 돕고 있다.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기도의 자리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희생하는 분들을 통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이들이 위험하고 척박한 환경 가운데서도 자란다.   예수님은 말뿐이 아니라 행동으로 사랑을 실천하셨다. 가난한 자들과 소외된 이들에게 직접 다가가셨고, 그들의 필요를 채우셨다. 예수님은 행동하셨다. 성경은 언제나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로 대표되는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일을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삶의 우선순위에 두고 가르친다. 사랑이라는 단어의 품사는 동사라고 한다. 사랑이란 단순히 마음에 품는 것이 아니라, 직접 손과 발을 움직여 행하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도움이라도 그것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큰 변화의 도구가 될 수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계절이다. 연말이 다가오면 우리는 가난한 이들을 생각하는 많은 기회를 만난다. 가난한 이들의 필요를 생각하고 돌보는 것은 단순한 관심으로 끝나지 않는다. 가난과 고통에 대해 마음 아파하고 안타까워하며 한탄하는 것으로 끝나지 말아야 한다. 관심은 시작에 불과하다. 우리 주변 가까이에 사는 가난한 이들은 단순한 관심을 넘어 적극적인 행동으로 도우라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우리 이웃이다.   야고보 사도의 말씀처럼, 헐벗은 형제자매에게 말로만 따뜻하고 배부르게 살라고 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야고보서 2장 15~16절) 이제는 관심에 머물지 말고, 행동으로 나설 때이다. 조 헨리 / 목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관심 행동 아이티 고아들 아이티 이야기 기도 자체

2024-11-07

[삶과 믿음] 가장 좋은 것으로

오래전에 아이티 고아원에 스피커가 있으면 좋겠다는 소식을 SNS에 올린 적이 있었다. 그 내용을 보고 아이티에서 사역하는 어느 선교사가 글을 올렸다. ‘전기도 안 들어오는데, 그냥 노래하고 말하면 되지 무슨 스피커냐’는 것이었다. 우리는 충전해서 사용하는 포터블 스피커를 열 개 고아원에 공급했고, 여러 해 동안 고아원에서는 그 스피커를 아주 유용하게 사용했다.   우리가 고아원 아이들에게 닭 다리 얹은 도시락을 주문해서 먹인다고 했을 때 그 선교사가 자기는 밥을 직접 해서 먹인다며, 그게 다 밥 장사하는 사람들 배만 불리는 것이라고 했다. 왜 고아원 아이들은 닭 다리 얹은 도시락을 먹으면 안 되는지, 그걸로 돈을 번들 얼마나 엄청난 돈을 버는 것인지, 그 밥장사는 돈 벌면 안 되는지 우리는 이해하지 못했고, 요즘도 우리는 아이들을 센터로 초청해서 닭 다리 얹은 도시락을 주문해서 아이들과 나누고 있다. 그 선교사는 우리가 빈곤 포르노에 의지해 후원자를 선동한다고 했는데 우리는 고아들을 향한 동정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랑으로 좋은 것을 나누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지금도 믿고 있다.   지금은 운송이 어려워져 중단하고 있지만, 몇 년 동안 고아원에 새 옷을 일일이 세트로 포장해서 나이별 성별을 구분하여 보내주는 분도 있었다. 우리는 한동안 헌 옷도 보냈는데 옷을 모을 때, 그 옷을 깨끗하게 세탁해서 잘 개서 가져다주는 분들이 많았다. 어떤 후원자는 자기 아이와 똑같이 자기가 후원하는 아이의 학용품과 옷가지를 챙기기도 한다. 우리가 쓰고 누리는 것을 우리와 똑같이 아이티 고아들이 다 누릴 수는 없겠지만, 아주 작은 일부라도 함께 누릴 수 있기를 우리는 바라고 있다. 아이티니까, 고아니까, 적당히 해주고, 아무거나 주어도 된다는 발상에 우리는 동의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우리도 실수했다. 무엇이든지 귀한 곳이니, 뭘 줘도 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질보다 양이 우선이어서 특별히 좋은 것보다는 무엇이든 많이 나누려고 급급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티 고아들도 좋은 것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식량을 공급할 때 쌀과 식용유만 지원하지 않는다. 콩과 생선 통조림도 공급하고, 설탕과 화장실 휴지와 빨랫비누도 공급한다.   아이티는 지금 전쟁터 같은 처지이다. 10월 들어 많은 마을이 갱들에 의해 공격을 받고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수십만 명이 집을 잃고 고향을 떠나고 있다. 경찰서가 공격받고, 경찰들이 죽고 다치는 일이 다반사다. 거리마다 골목마다, 낮이고 밤이고 총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무기력한 마음으로 아이티의 평화를 위해, 고아들의 평안을 위해 기도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는 여전히 고아들에게 전할 좋은 것을 찾고 있다. 공포와 혼돈의 땅이 되어 바깥출입조차 불안하지만,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힘을 내라고, 잘 먹고 잘 배우자고 등 두드려주고 싶다.   물론 우리에게는 자원의 한계라는 형편이 있으니, 그 형편 안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나누고 섬기려 애쓰고 있다. 예수님을 대접하는 심정으로 설렁탕을 끓인다는 어느 식당 주인처럼, 우리도 예수님께서 받으시고 잘했다고 애썼다고 고마워하실 만한 먹거리, 학용품, 의복 등을 고민한다.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하는 부모의 마음으로 보면, 고아도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가장 좋은 것으로 대접받아 마땅하다. 조 헨리 / 목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아이티 고아원 동안 고아원 고아원 아이들

2024-10-24

[삶과 믿음] 습관 고치기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 늦게 일어나는 것, 부지런한 것, 게으른 것, 남을 흉보는 것, 말을 많이 하거나 빨리하는 것 등 우리 행동의 태반은 습관입니다. 습관의 사전적 정의는 “오랫동안 되풀이하여 행해져서 규칙처럼 되어 있는 일 혹은 고정화된 행동 양식” 입니다. 좋은 습관은 길들이기가 어렵고 시간이 걸리는 반면 좋지 않은 습관은 금방 길듭니다.   원불교 5대 종법사이셨던 경산 상사님께서는 “어떤 일에 성공할 것인가 혹은 내가 성불을 할 것인가를 알려면 너 습관을 봐라.”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습관이 나의 수행과 인생을 성공으로 이끌고, 나쁜 습관이 내 인생을 망친다는 것을 알지만 나쁜 습관 고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나쁜 습관을 고칠 수 있을까요?   필자는 우선 좌선, 명상을 규칙적으로 하라고 권합니다. 원불교 경전을 보면 ‘좌선의 공덕’이 다음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좌선을 오래 하여 그 힘을 얻고 보면 아래와 같은 열 가지 이익이 있나니… ①인내력이 생겨나는 것이요 ②착심이 없어지는 것이요 ③사심이 정심으로 변하는 것이요 ④자성의 혜광이 나타나는 것이요…”   좌선 혹은 각종 명상을 하게 되면 마음이 깨끗해져서 유혹이 적어질 뿐만 아니라, 마음의 힘을 얻어 여러 욕심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육신은 쓸수록 강해지지만 생각을 과도하게 하는 현대인에게는 마음은 멈출수록 그 힘이 강해집니다.   좌선은 ‘마음의 힘’을 얻는 최고의 방법의 하나입니다.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님께서는 “모든 부처 모든 성인과 일체 위인이 다 이 선법으로써 그만한 심력을 얻었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좌선 수행으로 우리 본성이 드러나면  욕심, 착심, 사심이 차차 없어지고 자성의 혜광이 비추어져서 모든 생각이 바르게 됩니다. 심리학자들도 어떤 유혹이 생기면 일단 갈등하지 말고 호흡을 고르게 하며 잠시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권합니다. 그러면 마음이 안정되어서 자연스럽게 지혜가 나오고 유혹의 생각도 사라져서 바른 판단과 행동을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근무하는 뉴욕주 원달마센터에서는 각종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습니다. 배추를 기를 때 거름을 잘 주면, 설사 배추에 벌레가 있어도 배추는 건강하고 싱싱하게 자랍니다. 명상과 선은 우리 마음 땅에 거름을 주는 것과 같이 우리 마음과 인생에 힘과 활력을 줍니다. 배추를 키울 때 거름을 줄 뿐 아니라 배추에 붙은 벌레도 함께 잡아주면 배추가 더 잘 자랍니다. 규칙적으로 하는 선과 명상이 우리 마음 밭에 거름을 주는 것이라면, 현실 가운데서 하나하나 나쁜 습관을 고치는 유무념 공부는 배추에서 벌레를 잡는 것 같습니다. 하루아침에 좋지 않은 습관을 바꾸고 자신을 갑자기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나쁜 습관을 하나하나 고치는 것을 유무념 조항을 잡고 현실적 공부를 꾸준하면 이가 자기 인생을 바꾸는 큰 역할을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급한 마음, 욕속심, 남을 판단하는 마음, 악한 말 안 하기, 자비심과 이해심을 기르기 등을 유무념 조항으로 잡고 마음공부 하고 있습니다. 이가 유무념 조항으로 되어 있으면 현실 경계에 당할 때 즉 어떤 현실 상황에서 습관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한번 마음을 멈추고 생각하게 되어 좋지 않은 습관을 바꾸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습관을 고치고 바른 취사 혹은 정의를 실현할 때 대종사께서는 “기어이 취하고 불의어든 기어이 버려라”고 말씀하십니다.   ‘기어이’의 사전적인 의미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꼭, 마침내, 기어코’입니다.   알렉산더 대왕 혹은 나폴레옹이 단기간에 세계를 제패한 이유가 그들의 훌륭한 전략 전술에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들에게는 어떤 사람과도 비교될 수 없는 ‘기어이’ 하고자 하는 용심, 분심이 있었습니다.   알렉산더는 왕의 신분으로도 많은 전쟁에 직접 참전해서 결정적 순간에 최전방에서 싸웠습니다. 왕이 최전선에서 싸우니 당연히 주변에 있던 장군, 장교, 일반 군인들도 최선을 다해 싸웠을 것입니다. 이가 승리의 결정적 원인이었을 것입니다. 나폴레옹이 옆으로 길게 된 큰 모자를 쓴 이유도 전쟁에서 부하들에게 “나는 뒤에서 작전만 지휘하는 사람이 아니라, 너희들과 함께 직접 싸우고 있다”는 것을 병사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은 많은 전투에서 최전선에서 부하들과 함께 싸우며 지휘했기에 허벅지에 포탄 파편으로 인한 많은 흉터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에게는 ‘기어이’ 승리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수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것입니다. 우리 마음공부 혹은 신앙 수행은 마음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입니다. 이 세상 전쟁 중에서 마음 나라의 일어나는 전쟁이 가장 큰 전쟁이고 근본되는 전쟁이라고 대종사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습관 습관 고치기 우리 마음 좌선 명상

2024-10-17

[삶과 믿음] 우리가 살아내지 못한 죄

성경에 관해 질문이 많은 성도를 만났다. 이번에는 성경이 가르치는 죄의 문제와 함께 오늘날 세상을 개탄하며 걱정하는 이야기를 했다.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느냐며, 목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 물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에 이렇게 악한 죄가 가득한 게 말이 되느냐며 짐짓 한탄을 늘어놓았다.   이야기를 듣고 물었다. 정말 걱정이 되느냐고.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아느냐고. 왜 그러냐고 그가 눈으로 물었다. 우리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예수를 믿는다는 우리가 제대로 살지 못해서 세상이 이렇게 당신이 염려하는 죄로 가득 찼다고 대답했다.   초대 교회는 아무 힘이 없었다. 권력도 없었고 부도 없었다. 하지만 초대 교회는 부흥했다. 많은 사람이 목숨을 걸고 예수를 믿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삶으로 예수를 보여주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의 삶 속에 살아 있었다.   우리 어릴 때도 그랬다. 아주 오래전 시골 어른들은 예수를 믿지 않아도 자기 아이들이 예배당에 가는 것을 막지 않았다. 그래도 가서 좋은 소리 듣고 오라고 했다. 전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믿음이 없는 이들도 교회에서 하는 이야기가 나쁜 말이 아니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요즘은 어떤가? 예수 믿는 것들이 더 나쁘다는 소리가 일상의 평가가 되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주신 마지막 명령이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다. 전도이고 선교다. 그런데 그 선교는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돈으로 하지 않는다. 선교의 가장 강력한 도구는 우리가 예수를 믿고 그 말씀대로 잘 사는 것이다.   예수 믿는 사람의 삶이 자신들과 다를 때, 그것이 매력 있을 때, 사람들은 우리의 믿음을 존중하고 궁금해할 터인데, 우리의 삶이 세상 모든 사람의 삶과 다르지 않으니, 사람들이 믿는 이들의 삶을 궁금해할 일도, 존중할 일도 없고 나아가 복음을 들을 내용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살아낸, 가난하지만 행복하고, 힘없지만 담대한 삶은 복음이 세상에 전해지는 가장 큰 힘이었는데, 우리는 넉넉한 부와 부족하지 않은 힘을 가지고도, 행복하지도 당당하지도 않다. 오히려 안 믿는 사람들로부터 교회의 탐욕을 지적당하고, 교인들의 행태가 비웃음당하고, 복음이 허무맹랑한 소리로 치부 당한다.   그 모든 일이 성도가 잘 못 산 탓이다. 내 삶이 예수 안에서 반듯하고 가치 있는 삶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여전히 예수를 무시하고 있다. 사람들은 예수 믿는 이들이 탐욕을 이루려 부패하고 타락하고, 문란하기에 그들이 믿는 복음을 생명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세상이 잘못되어가고, 세상에 죄가 번성한다고 한탄하며 손가락질하기 전에, 성도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아야 한다. 왜 전도가 안 되는지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선교는 강요와 회유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하는 것이다. 성경은 성도가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한다. 읽고 감동할 수 있는 편지인지, 아무 가치도 없이 비웃음당하고 구겨져서 버려지는 편지인지는 성도의 삶에 달려 있다.   교회에 은과 금은 가득 쌓였지만, 예수의 이름으로 병들고 가난한 이들의 삶을 일으키는 능력은 사라진 지 오랜 시대에, 세상이 잘못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한탄할 자격이 우리에게 있는지 나는 나에게 묻는다. 성경은, 그리고 세상마저도 오히려 우리가 말씀대로 살아내지 못한 죄를 묻고 있다. 조 헨리 / 목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예수 그리스도 초대 교회 오래전 시골

2024-10-10

[삶과 믿음] 우리가 필요 없어지는 날을 꿈꾸며

아이티 대지진이 일어난 2010년 이후부터 지원하기 시작한 러브고아원의 원장 사라는 고아원에서 자란 고아 출신이다. 처음에는 두세 살쯤으로 보이는 아이들 여덟 명을 아주 작은 집에서 돌보았다. 아이들을 정성으로 돌보다가 두 해쯤 지나서 아이들이 많이 늘어나면서 고아원은 맞은 편에 있는 마당이 아주 넓은 집으로 이사했다.   얼마 후 러브고아원은 마당에 임시 건물을 세우고 학교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고아원 아이들의 공부를 가르치려고 시작했는데, 곧 동네 아이들을 저렴한 학비를 받으며 학생으로 받았다. 우리는 열심히 식량을 나르고, 필요한 학용품을 공급하고, 휴대용 스피커와 시청각 교재 등 여러 가지 학교 용품을 지원했다. 그와 동시에 사라 원장은 남편과 함께 여러 외국기관을 찾아 연결하고 도움을 받으면서 학교를 확장하고, 아이들을 돌보았다. 언제 가보아도 아이들은 깔끔하고 단정한 모습이었고, 조금씩 학년을 구분하면서 반을 늘린 학교는 일반 학교와 다름없이 잘 운영이 되고 있었다.   그렇게 10년이 흐른 뒤, 우리는 아이들을 열심히 돌보고, 학교를 잘 운영하는 러브고아원을 더는 지원하지 않기로 했다. 이유는 하나다. ‘매우 잘하고 있어서’이다. 캐나다의 한 기관에서 학교 건물을 크게 지어주기로 했고, 학교를 운영하면서 나름대로 자립에 가까운 성과를 보이기 시작한 이후이다. 십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열심히 식량을 공급하고 고아원과 학교가 필요한 물품들을 나름대로 부지런히 공급하면서 우리는 사라 원장의 부모가 되었고, 사라는 우리의 딸이 되었지만, 우리는 이제 그 여력을 다른 고아원에 쏟기로 한 것이다. 지난해 사라 원장을 다시 만났을 때, 정말 펄펄 뛰며 반가워하던 그녀는 코로나 이후에 매우 힘들어졌다고 어려움을 하소연하면서도 여전히 씩씩했다.   고아원은 자립할 수가 없다. 한때 고아원에서 염소를 키워보기도 하고, 닭을 치기도 했고, 망고나무라도 심어볼까 싶기도 했지만, 어느 것 하나 성과를 낸 것이 없었다. 고아원은 자급자족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비록 아직도 외부의 도움을 일부 받고 있고 우리도 극히 일부의 식량을 다시 돕고 있지만, 사라 원장은 우리 도움이 없어도 될 만큼 열심히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가 공식적으로 지원을 끊은 이유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라고 배웠다. 세상에는 필요한 사람과 있으나 마나 한 사람, 없어야 할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예수님은 성도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정말 가치 있는 일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진심으로 아이티를 위하여 우리가 필요 없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아이티에서 더는 필요하지 않게 되기를 늘 꿈꾸고 있다.     한국이 많은 외국인으로부터 도움을 받다가, 이제는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되었듯이, 아이티도 다른 나라로부터 도움을 받기만 할 것이 아니라 언젠가 다른 나라에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우리가 끼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 고아들의 배고픔을 슬퍼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 고아들의 앞날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 안전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그들에게 필요 없어지는 날이 오기를 기도하고 있다. 조 헨리 / 목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나라 고아들 한때 고아원 고아원 아이들

2024-09-26

[삶과 믿음] 큰 욕심, 작은 욕심

어떤 여자분이 결혼식을 앞두고 결혼식 당일 날씬하게 보이기 위해 몇 개월간 다이어트를 철저히 했습니다. 그 여자분에게는 뚜렷한 목적이 있기에 그동안 실패했던 다이어트가 결혼식을 앞두고 성공적으로 이행된 것입니다. 날씬하게 보여야 한다는 큰 욕구가 음식에 대한 욕구를 잠재워 버린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진리적인 참된 큰 욕심이 발하게 되면 세상으로 향하는 작은 욕심이 잠잠해집니다. 필자도 출가한 후 진리를 알고 믿고 인생의 목적과 가치관이 바뀌었으므로 세상 것에 끌리는 마음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다음은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님께서 말씀하시는 욕망을 극복하는 방법입니다.   한 제자 여쭙기를 무슨 방법으로 수양하여야 오욕을 다 없애고 수도에 전일 하여 부처님과 같이 한가롭고 넉넉한 생활을 하오리까.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욕심은 없앨 것이 아니라 도리어 키울 것이니, 작은 욕심을 큰 서원으로 돌려 키워서 마음이 거기에 전일 하면 작은 욕심들은 자연 잔잔할 것이요, 그러하면 저절로 한가롭고 넉넉한 생활을 하게 되리라.” (수행 36)   어떤 목적지에 빨리 그리고 반드시 도달하려는 마음, 목표의식이 분명하면 이런저런 휴게소에 들리거나 그곳에서 너무 많이 시간을 보내지 않게 됩니다. 우리 인생에 진리적 목표가 뚜렷이 세워지면 우리 마음이 안정되고 삶에 중심이 잡힙니다.     원불교 2대 종법사이신 정산 종사님께서는 정신수양과 부동심 공부를 말씀하시면서 ‘내정정(內定靜)’ ‘외정정(外定靜)’ 법문을 하셨습니다. ‘내정정’은 염불 좌선 등으로 마음을 청결히 해서 안으로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며, ‘외정정’은 서원과 믿음, 분심으로 마음의 중심을 잡아서 입지를 부동하게 함을 말합니다.   “외정정은 밖으로 입지가 부동하게 하는 공부인바, 첫째는 큰 원을 발함이니, 원하는 마음이 지극하면 만 가지 세상 인연이 앞에 가로놓여도 보되 보이지 않고 조금도 마음에 걸리지 않기를 서가세존께 한 번 대도에 발심하매 왕궁의 낙과 설산의 고가 조금도 마음에 머물지 않듯 하는 것이요….”   부처님 말씀하시길 “내가 왕후의 위 보기를 과객같이 하면 금옥의 보배 보기를 자갈같이 하며 좋은 비단 보기를 헌 걸레같이 하노라.” (사십이장경42)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나는 그대들에게 희로애락의 감정을 억지로 없애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희로애락을 곳과 때에 마땅하게 써서 자유로운 마음 기틀을 걸림 없이 운용하되 중도에만 어그러지지 않게 하라고 하며, 가벼운 재주와 작은 욕심을 미워할 것이 아니라 그 재주와 발심의 크지 못함을 걱정하라 하노니, 그러므로 나의 가르치는 법은 오직 작은 것을 크게 할 뿐이며, 배우는 사람도 작은 데에 들이던 그 공력을 다시 큰 데로 돌리라는 것이니, 이것이 곧 큰 것을 성취하는 대법이니라.” (수행 37)   진리적 큰 욕심을 발하면 작은 욕심이 자연히 잠재워집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욕심을 잠재우는 좋은 방법입니다. 원불교 3대 종법사이신 대산 종사님께서는 “부처님은 욕심이 없는 분이 아니라, 우주 전체를 자기 집으로 만들려는 큰 욕심을 가지신 분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산 종사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지금 욕심을 참는 공부를 하는 것은 작은 욕심을 큰 욕심으로 키워 영생을 잘 살자는 것이니, 마치 좋은 과일을 얻기 위해 처음 몇 년간 수확하지 않고 열매를 모두 따 주는 것과 같은 이치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영생을 잘 살기로 하면 반드시 욕심을 절제하고 조절하고 중도를 잡아나가야 하나니, 만약 욕심을 참지 않고 일생을 마치게 되면 그 영이 땅에 떨어져 천만 갈래로 흩어져 보잘것없이 되고 마느니라. 그러므로 나는 대종사께서 ‘나이가 마흔이 되면 수염에 불 끄듯 공부하라.’ 하신 법문을 받들어 마흔 살부터 더욱 금욕하고 정진(精進), 적공(積功) 하였느니라.”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욕심 마음 목표의식 대종사 말씀하시기 마음 기틀

2024-09-19

[삶과 믿음] 마중물이 되어

아이티에 있는 하우스 오브 호프 고아원에는 네 살부터 스무 살까지 스물세 명의 여자아이가 살고 있다. 그곳에 2012년부터 동생과 함께 사는 카치아나(Katiana)가 있다. 카치아나는 올해 12월이면 스무 살이 된다.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2년 전에 폐결핵에 걸려 학교를 일 년 쉬었다. 그렇게 학교를 쉬는 동안, 크레올이 모국어인 카치아나는 K드라마를 보면서 한국어를 익히고 영어를 공부했다. 능숙하지 않지만, 한글로 텍스트를 보내기도 하고, 한국어로 생일 축하 노래도 부른다. 적절한 경우에 맞는 적절한 한국말을 쓸 줄 안다. 우리와는 자주 한글 텍스트로 소통하기까지 한다. 물론 영어로도 소통할 수 있다.   카치아나는 올 9월부터 12학년을 다니게 된다. 미뤘던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을 다니는 것인데,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서 어카운트를 전공하고 싶다고 한다. 공부를 잘 마치고 일을 잘하는 어카운턴트가 되어서 고아원 아이들을 도우며 살기 바란다고 했다. 지금도 아이는 같은 고아원에 있는 어린아이들을 돌보고, 교회에서 봉사하면서, 학교와 고아원의 모든 이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있다. 지난 7월 초에 아이를 만나고 나서 학교 성적, 가족관계(부모님은 안 계시지만 혹 친척이라도 있는지), 주변 평판, 아이의 소망, 열정 등을 자세히 알아본 후에 우리는 카치아나를 대학교 공부까지 시키기로 하였다.   고등학교 마지막 과정을 도와줄 후원자를 찾고, 후에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 입학 자격을 주는 중등 과정 졸업시험(바칼로레아)에 합격하면, 아이가 원하는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아이는 이런 도움을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어가며 아이티 사회에 쓸모 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이 작은 사랑과 섬김이 아이의 장래에 소망이 되고 이전과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길이 되리라고 믿고 있다.   최근에 우리가 건축한 고아원 마당에 있는 펌프 두 개가 다 망가져서 새로운 펌프를 설치했다. 펌프는 자주 물이 끊어지기도 하지만, 작은 바가지로 담아둔 마중물을 더하면 곧 힘을 내고 맑은 물을 퍼 올려 고아원의 살림에 생명의 물을 더하곤 한다. 그래서 고아원 펌프 옆에는 언제나 낡은 대접에 받아놓은 마중물이 있다. 마중물이 떨어지면 펌프는 물을 퍼 올릴 수가 없다. 우리가 하는 일은 그런 마중물 정도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마중물이 되어 아이들의 꿈을 응원하다 보면 펌프에서 물이 콸콸 쏟아지듯이, 아이들의 꿈이 이루어지고, 세상이 달라지리라 믿는다.   그리스도인은 누군가의 삶에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제자로 살면서 우리의 사랑과 희생, 친절이 마중물이 되어 다른 이들의 삶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작은 관심과 선행이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많은 이들의 삶에 풍성한 은혜의 물을 끌어 올리게 되길 우리는 간절히 바란다.   우리는 카치아나의 삶에 마중물이 되기로 했다. 마중물이 되어 마음 놓고 공부하고, 좋은 직업을 가져 고아들을 돕고 싶다는 아이의 꿈이 이루어지길 응원하기로 했다. 우리가 겨우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되어 아이의 삶에 샘솟는 소망이 될 수 있을 때, 분명 하나님께서는 아이의 삶에 마르지 않는 샘 같은 생명을 더하시리라 믿는다. 우리가 마중물이 된다면 아이는 멈추지 않는 힘찬 분수처럼 솟아오르고 세상은, 아이티는 변하리라 믿는다. 조 헨리 / 목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마중물 대학교 공부 고아원 펌프 고등학교 마지막

2024-09-12

[삶과 믿음] 사랑은 어렵다

고등학생과 대학생들로 구성된 구호팀이 탁형구 선교사님의 안내로 장애 고아원(여호와 라파 하우스)을 처음 방문한 것은 2014년 여름이었다. 휠체어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어느 허름한 집 뒤채에 약 스무 명의 장애 고아들이 방치된 채로 있던 그 처참한 환경에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저 울기만 하다가 돌아와야 했다.   우리는 곧 장애 고아원을 제대로 된 주택으로 옮기고, 식량과 의약품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현지 의사와 간호사를 통해 건강 검진을 하고, 휠체어를 보냈다. 뉴저지의 한 교회의 도움으로 2018년에는 더 큰 집으로 다시 이사했다. 서울에 계신 장로님이 장애 아동을 돌보는 열 명의 스태프에게 월급을 지급해 주셨는데, 그해 여름, 나를 만난 고아원 원장은 두 다리를 책상 위에 올린 채, 스태프 월급은 자기에게 주고 더는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미국의 큰 단체가 이 고아원을 전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한 때였다.   2019년부터 폭력 시위가 격렬해지더니 곧이어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 때문에 웬만한 NGO나 선교 단체는 아이티에서 모두 철수했다. 그리고 갱단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던 약 2년 전, 장애 고아원의 원장이 탁 선교사님을 찾아와 미국 단체가 갑자기 지원을 중단했다고 하소연했다. 이후 장애 고아원 원장은 다시 탁 선교사님에게 식량을 받아 가기 시작했다. 지난 7월 초, 거주 중이던 집에서 렌트를 못 내 쫓겨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탁 선교사님과 함께 고아원을 방문했다.   집 안에는 이삿짐이 다 싸여 있었고, 아이들은 전부 마당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10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세 명의 스태프가 돌보는 서른여덟 명의 장애 고아들은 나이가 들었지만, 모두 영양실조 증세를 보였고, 심각한 피부병을 앓고 있었다.   사랑은 어렵다. 아이티에서 우리의 사랑은 자주 시험을 받는다. 쌀을 사주면 원장이 당장 돈이 급해 팔아버리기도 하고, 학비를 부풀려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 학비를 보내주었더니, 학교에 등록했다며 2년 전 영수증을 보여주기도 했다. 가난 때문에 때로 정직하지 못하게 되기도 하겠지만, 거짓말이 습관처럼 되풀이될 때마다, 먹고살 만해졌다고 등 돌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는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 의문을 품게 된다.   8월 말에 다시 아이티에 가면 장애 고아원을 방문할 것이다. 지난 7월, 6년 만에 나를 다시 만난 원장은 기운 없이 민망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지금 탁 선교사님과 우리는 다시 장애 고아들이 살 집을 찾으려고 한다. 장애 아동들이기에 병원이 가까이 있어야 하고, 사십 명의 장애 아동이 거주할 수 있는 큰 집이 필요하다. 아이티에서도 일 년 렌트는 만만치 않다. 시내의 웬만큼 큰 집 렌트는 일 년에 1만 달러를 훌쩍 넘는다. 지금 우리는 그 렌트를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   사랑은 어렵다. 큰 단체가 돕기 시작하며 상황이 나아지니 더는 우리 도움은 필요 없다고 손사래 치던 원장의 오만한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도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장애 고아들의 얼굴을 보며 다시 마음 아파하고 있는 것은 진정한 사랑인지, 아니면 단지 우리의 일이 사랑이기를 바라는 것인지 혼란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진심으로 우리의 일이 사랑이기를 기도한다. 사랑이 힘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아이들 때문에 멈출 수 없는 사랑이 사실 쉽지 않다. 조 헨리 / 목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사랑 장애 아동들이기 장애 고아원 고아원 원장

2024-08-22

[삶과 믿음] 선택의 주요성

코닥은 한때 카메라 필름을 제작하는 회사로 미국 굴지의 기업이었습니다. 디지털카메라를 처음 개발한 것도 이 코닥 회사였습니다. 그러나 디지털카메라를 대량으로 생산 판매하면,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는 필름 판매가 급격히 떨어지지 않을까 주저하며 코닥은 계속해서 좋은 필름제작을 하는 데 공을 들였습니다. 소니를 비롯한 다른 기업들이 디지털카메라를 개발 판매하기 시작하자 필름 시장은 급격히 줄어들었고, 코닥은 위기를 맞습니다. 코닥은 시장 변화를 예측하지 못하고, 잘못된 ‘선택’을 한 것입니다.   개인에 있어서나 회사 혹은 국가에 있어서나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사람들이 바른 실행을 하지 못 하는 세 가지 이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대범, 우리 인류가 선(善)이 좋은 줄은 알되 선을 행하지 못하며, 악이 그른 줄 알되 악을 끊지 못하여 평탄한 낙원을 버리고 험악한 고해로 들어가는 까닭은 그 무엇인가. 그것은 일에 당하여 시비를 몰라서 실행이 없거나, 설사 시비는 안다 할지라도 불같이 일어나는 욕심을 제어하지 못하거나, 철석같이 굳은 습관에 끌리거나 하여 악은 버리고 선은 취하는 실행이 없는 까닭이니, 우리는 정의어든 기어이 취하고 불의어든 기어이 버리는 실행 공부를 하여, 싫어하는 고해는 피하고 바라는 낙원을 맞아오자는 것이니라.”   어떤 일을 당해서 (예를 들어 사업상에 어떤 결정을 할 경우) 무엇이 옳은가 그른가를 알 수 없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때는 어떤 판단을 내리기 전에 내 마음이 우선 편안하고 안정이 되어 있는가를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필자의 경험으로 마음이 안정되지 않을 때 어떤 말을 하거나 결정을 내리면 그것이 잘못된 결정 혹은 언행이 될 경우가 많았습니다.   칭기즈칸의 젊은 때 일입니다. 전투에서 패배한 그는 적들에게 쫓기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가까스로 위험을 벗어나 어떤 우물 옆에서 숨을 돌리고 있었는데 칭기즈칸은 목이 말라서 우물물을 먹기 위해 우물가에 있는 바가지에 물을 길었습니다. 그 순간 자기를 따라다니는 매가 날라와서 바가지를 차서 물을 엎질러 버렸습니다. 다시 우물에서 물을 퍼서 먹으려고 하는데 또 매가 날아와 물을 엎질러 버렸습니다. 다시 물을 퍼서 먹으려고 하는데 매가 날아와서 바가지를 깨자 칭기즈칸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칼을 빼내어 그 매를 죽였습니다.     매를 죽이고 보니, 길이 잘든 그 매가 왜 그런 행동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우물 밑을 보니 독뱀이 죽어 있었습니다. 동물 직감으로 그 매는 물의 독성분을 알아 자기 주인을 살리려 한 것입니다. 이미 죽은 매를 살릴 수도 없고… 칭기즈칸은 자기 마음이 안정되지 않을 때 어떤 판단과 결정을 해서는 안 된다는 큰 교훈을 얻고 그 이후로 이를 평생 실천했다 합니다.     칭기즈칸은 글을 쓸 줄도 읽을 줄도 모르는 문맹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정치와 전쟁에서 수많은 현명한 결정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찌 단기간에  몽골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겠습니까?   흐르는 물에 달 모양이 정확히 담기지 않습니다. 마음이 고요해야 지혜가 생기고 바른 판단이 나와서 일의 시비 여부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른 취사를 하지 못하는 두 번째 요인은 “설사 시비는 안다 할지라도 불같이 일어나는 욕심을 제어하지 못하거나…” 라고 원불교 경전에 말씀하십니다.   무엇이 옳은 것이며 무엇이 행복과 성공으로 이끄는 지혜로운 선택임을 알지만 ‘욕심’에 끌려 바른 취사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이 건강해지는 법을 잘 압니다. 운동을 열심히 하거나, 음식을 골라서 적당히 먹고 과로하지 않고 등등. 그러나 게으름, 하기 싫음 등 육신의 욕망에 끌려 바른 취사를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성공하는지를 잘 알지만 실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할 일을 미루거나, 적당히 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것은 육신의 욕망에 끌리고 안일을 원하는 욕구에 굴복해서 바른 선택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유도성 / 원불교 원 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주요성 선택 필름 판매 실행 공부 필름 시장

2024-08-15

[삶과 믿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아이티에서 고아 구호 사역을 16년째 하는 우리 단체의 표어는 ‘신나는 심부름’이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는 우리의 일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도 한다. 고아들의 식량을 공급하고 공부를 가르치는 일은 분명 신나는 일이지만, 이 심부름은 끝이 없다. 먹는 일은 멈출 수 없고, 배우는 일도 중단할 수가 없다. 나라가 고아들이 살아가기에 너무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가는 고아들을 돕는 일의 미래는 불투명하고 그 끝이 언제일지 가늠할 수 없다.   이렇게 끝날 것 같지 않은 일이지만 16년을 먹이고 가르쳤으면 뭔가 이룬 것이 있어야 하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는 특별히 내세울 것이 없다. 그저 살아왔고, 아이들이 컸고,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우리가 기억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세상에 나아가 어른이 되었고, 어떤 아이는 직업을 가지고 우리를 만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이미 오래전에 잊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살길을 못 찾아 고아원으로 되돌아간 아이도 있고, 고아원을 나갔다가 미혼모가 되어 다시 돌아온 아이들도 있다. 어쩌면 아이들은 살아가면서 우리를 기억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와 만나 추억을 더듬는 아이들은 거의 없다. 고아들을 먹이고 돌보는 일이 쓸데없는 일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엄청난 결과를 받아 들고 자랑스러워하거나, 커다란 보람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아이티에서는 여전히 갱단의 횡포가 수그러들지 않고, 유엔 경찰이 들어와 치안을 돕고 있는데도 지난 몇 주간 갱단 때문에 또 많은 희생이 발생하기도 했다. 안전 문제로 코로나 이후 고아원을 직접 방문한 것이 거의 4년쯤 되어간다. 대신 갱단이 좀 조용할 때 우리는 고아원 아이들을 불러 선교센터에서 도시락을 나누고, 건강검진도 하며 만난다. 그렇게 몇 년 혹은 몇 개월 만에 아이들을 만나면, 아이들이 눈에 띄게 자란 것을 보게 된다. 변변찮은 식사지만, 넉넉하지 않아 굶기도 하고 아껴 먹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자란다. 학교에 가는 날만큼 못 가는 날도 많지만, 아이들은 글씨를 읽고, 이름을 쓰고, 숫자를 세며 자란다.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보며 우리는 이 일을 멈출 수 없다. 물론 이 일은 정말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일 같아서 끝이 없기에 때로는 지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벗어날 길이 보이지 않는 가난 때문에 하나님께 불평하기도 하고, 언제나 모자라는 식량 때문에 애를 태우기도 한다. 하지만 늘 맑은 눈과 환한 미소로 우리를 만나주는 아이들을 보면서, 어떻게든 이 아이들이 잘 자라서 사람답게 살아가도록 계속 도울 수 있기를 함께 기도한다.   사랑은 넘치고 흘러도 멈추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사랑하셔서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죄인을 구원하셨다. 오직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로, 절대로 맞교환의 가치를 계산할 수 없는 아들과 죄인을 바꾸는 일이 일어났고, 아들을 내어주고 죄인을 하나님의 자녀라 부르게 했다. 이렇듯 사랑은 머뭇거리지 않고, 조건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 사랑이 넘친다고 덜어내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사랑은 낭비하는 것이다. 낭비처럼 여겨지더라도 멈추지 않고 쏟아붓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사랑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이고, 이렇게 멈추지 않는 사랑 안에서 아이들이 꿈을 꾸며 자랄 것이다. 그러다 보면 밑 빠진 독에서 콩나물이 자라듯 아이들이 자라 세상을 변하게 할 것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조 헨리 / 목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고아원 아이들 우리 사랑 고아 구호

2024-08-08

[삶과 믿음] 끼니

몇 주 전, 경상북도 구미시의 한 식당에 “폐지 줍는 어르신들 라면 무료”라는 내용으로 붙은 안내문이 인터넷에서 화제였다. 폐지를 주워 용돈을 버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라면을 무료로 끓여드리겠다는 내용이었다. 노령 인구의 삶의 질이 점점 나빠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 끼 식사조차 해결하기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라면 한 그릇 따뜻하게 대접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이 소식이 인터넷을 통해 퍼지면서 많은 네티즌이 감동의 댓글을 남겼다.   세상에는 끼니를 걱정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도 ‘식사하셨느냐’는 물음이 가장 대중적인 인사말이었던 적이 불과 수십 년 전이다. 미국이나 한국처럼 이제는 경제적으로 풍요한 나라에서조차 끼니를 해결할 수 없어서 눈물 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아직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세계적으로 보면, 빈곤의 아픔 속에 끼니를 체념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돈이 많아 주체를 못 하는 사람을 찾기보다 훨씬 쉽다. 세상이 발전하고, 점점 더 살만해진다고 해도 빈곤으로 끼니를 제때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아이티는 서반구에서 가장 빈곤율이 높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1100만 명이 넘는 인구의 절반은 기아로 허덕이고, 어린이 수십만 명이 영양실조의 위험에 처해 있다. 아이티에는 정부가 통계를 내지 못할 만큼 많은 고아가 있다. 하루 한 끼를 장담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고아로 산다는 것은 끼니를 채울 수 없는 삶의 바닥 중 가장 아래 어디쯤에 아이들이 놓여 있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티에서 고아의 삶이란 굶는 일이 일상이란 뜻이다.   아이티 고아원에서 우리가 가장 무서워하는 단어가 바로 ‘끼니’이다. 소설가 김훈은 그의 소설 ‘칼의 노래’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끼니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먹은 끼니나 먹지 못한 끼니나,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끼니를 해결할 수 없었다. (중략) 굶더라도, 다가오는 끼니를 피할 수는 없었다. 끼니는 파도처럼 정확하고 쉴 새 없이 밀어닥쳤다.” 끼니 앞에서 무기력하면 삶은 가장 비참해진다. 먹지 못한다는 것은 생명을 유지하고 연장할 수 없다는 의미와 맞닿아 있다.   하루 한 끼는 쌀밥을 먹을 수 있게 하자고 시작한 우리의 목표는 파도처럼 끊임없이 밀어닥치는 끼니 앞에 때로 모래성처럼 무력해지기도 한다. 아이들은 자라고, 숫자는 늘어나는데 후원은 한정되거나 오히려 줄어든다. 공급되는 식량을 나누다 보면 밥이 옥수수죽이 되고, 죽은 물이 되기도 한다. 하루 두 끼 식사 중에 아침에 죽 먹고, 저녁에 물 마시고 잠들어야 하는 절대 빈곤 가운데 때를 잊지 않고 끊임없이 밀려오는 끼니는 먹지 못하는 아이들이나 공급하는 우리 모두를 두렵게 한다.   생활이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라면을 무료로 대접하겠다는 경북 구미시의 식당 주인은, “배고프면 먹어야 하지 않나. 배고프면 눈물 나는 게 사람인데 밥이라도 한 끼 먹어야 살아갈 수 있지 않냐”고 했다. 아이티 아이들은 배고파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울어도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아이들은 알기 때문이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배고픔은 아이들에게는 눈물조차 메마른 두려움이다. 사람은 끼니때가 되면 먹을 수 있어야 한다. 먹어야 한다. 아이티에서 우리는 쉬지 않고 밀어닥치는 끼니의 두려움을 이기는 꿈을 꾼다. 하루 두 끼 끼니를 거르지 않고 삶이 행복해지는 꿈을 계속 꾸고 있다. 조 헨리 / 목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끼니 아이티 고아원 아이티 아이들 경상북도 구미시

2024-07-25

[삶과 믿음] 선택이 운명을 좌우한다

빌 게이츠가 대학교 3학년 때 하루는 아버지에게 상의드릴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아들이 진지하게 무엇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하니 빌 게이츠 아버지는 약간 긴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빌 게이츠는 아버지에게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이 자기 관심이고 열정이며 이를 위해 대학을 중퇴해야겠다고 말합니다. 아버지는 “하버드에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고 혹시 사업에 실패할 수도 있으니 그래도 대학교 졸업장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쉽게 승낙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빌 게이츠는 “Now or Never” 지금 아니면 미룰 수가 없고 지금 해야 한다고 말하고 하버드를 3학년을 중퇴하고 그는 우리가 잘 아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만듭니다.     우리가 미국에서는 영어로 소통하듯, 컴퓨터를 이용할 때 빌 게이츠가 이때 만든 소프트웨어를 전 세계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1세기 가장 성공적인 기업이 됩니다. 빌 게이츠는 대학을 중퇴하고 마이크로소프트를 만든 것은 지혜로운 ‘선택’이었습니다.   개인에 있어서나 회사 혹은 국가에 있어서나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사람들이 바른 실행을 하지 못하는 세 가지 이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대범, 우리 인류가 선(善)이 좋은 줄은 알되 선을 행하지 못하며, 악이 그른 줄 알되 악을 끊지 못하여 평탄한 낙원을 버리고 험악한 고해로 들어가는 까닭은 그 무엇인가. 그것은 일에 대하여 시비를 몰라 실행이 없거나, 설사 시비는 안다 할지라도 불같이 일어나는 욕심을 제어하지 못하거나, 철석같이 굳은 습관에 끌리거나 하여 악은 버리고 선은 취하는 실행이 없는 까닭이니, 우리는 정의어는 기어이 취하고 불의어는 기어이 버리는 실행 공부를 하여, 싫어하는 고해는 피하고 바라는 낙원을 맞아오자는 것이니라.”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지혜롭고 바른 취사를 하지 못하는 첫째 이유는 ‘일에 당하여 시비를 몰라서…’ 즉 어떤 선택을 하는 데 있어서 옳음과 그름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도 “내 백성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한 선지자 말씀입니다. (호세아 4:6)   원불교 정전 ‘고락의 법문’에서도 낙을 버리고 고로 들어가는 첫째 원인을 “고락의 근원을 알지 못함이요”라고 말씀하십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에게 유리한 것은 옳은 일, 불리한 것은 그른 일이라고 생각하고 자기에게 유리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즉 자기 이해가 옳고 그른 것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한때 한국에서 한 코미디언이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다.”라는 책을 써서 회자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좋지 않은 음식을 먹는다고 건강이 금방 나빠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음식이 분명 우리 몸에 영향을 줍니다. 우리의 옳은 혹은 그른 행동은 반드시 어떤 결과를 초래합니다.   한 경찰이 자기와 친분 있는 한 스님께 자기 경험담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분은 경찰로서 도굴꾼을 체포하는 담당이었습니다. “스님, 전 불교 신자는아니지만 부처님의 인과 진리 말씀은 확실히 믿습니다. 과거에 도굴꾼들이 값비싼 유물을 도굴해서 몰래 팔아 큰돈을 버는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 가지 않아서 잡혀 번 돈을 다 빼앗기고 결국 패가망신하는 것을 수없이 보아 왔습니다. 그들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식까지 망하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심은 데로 거두는 것이 인과의 진리입니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모든 사람에게 천만가지경전을 다 가르쳐 주고 천만가지 선(善)을 다 장려하는 것이 급한 일이 아니라, 먼저 생멸 없는 진리와 인과보응의 진리를 믿고 깨닫게 하여 주는 것이 가장 급한 일이니라.”   필자의 스승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부처님의 어떠한 법문을 믿지 않아도, 짓는 데로 받는다는 인과 진리 만은 꼭 믿어야 한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선택 운명 게이츠 아버지 인과 진리 대종사 말씀하시기

2024-07-18

[삶과 믿음] “하나님 여기 계시니…”

아이티를 다녀왔다. 공항이 폐쇄되었다가 다시 문을 열고, 항공기들이 다니기 시작해서, 4개월 만에 아이티 땅을 밟았다. 공항 옆에 유엔에서 파견한 케냐 경찰 막사가 설치되고 거리에는 아직 팽팽한 긴장이 감돌기는 하지만 뜨거운 햇살 아래 많은 사람이 길거리 장사에 나서서 사람 통행이 조금이라도 있는 곳은 붐비고 있었다.     갱들의 위협으로 비행기가 오 가지 못하던 시간 동안 아이티 수도 포토프린스는 고립되어 있었다.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보내는 헬리콥터 몇 대가 갱이 점령한 도시를 탈출하는 유일한 수단이었고, 그마저 금방 끊어지고 말았다. 그 고립된 시간 동안,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어야 했고, 봉투에 담아 파는 쌀이나, 길거리 행상이 파는 달걀, 플랜틴 정도로 연명해야 했다. 우리가 후원하고 있는 고아원도 식량이 넉넉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의 숫자는 늘어나고, 날이 다르게 자라는데 한정된 식량으로 한 달 한 달을 간신히 버텨내야 했다.   이번 방문에서 살렘고아원 원장인 쟌 목사를 선교센터에서 만났다. 16년째 후원하며 이제는 친구처럼 지내는 그에게 미안하고 슬픈 마음으로 어떻게 지냈느냐고 물었다. 그 사이 잔주름이 확 늘어 더 늙어 보이는 쟌 원장은 거침없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한 번 가리키고, 땅을 한 번 가리키더니, “하나님이 여기 계시니…” 했다. 두려움과 배고픔과 슬픔의 시간 동안 하나님이 계셨다고 했다.   우리는 늘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아이티를 평화롭게 해 주시기를, 아이티 사람들이 갱들의 폭력, 정부의 무능과 부패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기도하고, 더없이 삶이 고단한 고아들을 위해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아이들의 배고픔을 덜어주시고 공부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아이들에게 적절히 도움이 전달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아이들이 어떻게든 건강하게 자라기를 기도한다.   하지만 우리의 기도는 늘 의심받았다. 아이들이 꿈을 잃지 않고 자라기에는 나라가 너무 황폐했다. 사실은 후원도 조금씩 줄어드는 고아원 지원은 힘에 부치기도 했고, 아이티는 점점 더 상황이 나빠지고 있기도 했다. 끝을 모르는 고난이 우리의 믿음을 흔들었다. 매일 소망을 꿈꾸자고 하며 기도한다는 우리마저 먼 미래의 아이들을 상상할 수 없었다.   우리가 하는 것은 사역이 아니라 사랑이다. 소망을 잃은 것 같은 거친 땅 아이티에서 사는 ‘고아’를 사랑하는 일이다. 고아는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어주신 아이들이라고 믿고 있기에 그 사랑은 몹시 거룩하고 숭고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아무리 기도해도, 아무리 애를 써도, 아무리 힘든 과정을 거쳐 아이들을 만나고 안아주고 사랑을 나누어도 하나님께서 얼굴을 돌리신 듯 상황이 점점 나빠진다고 여겼다.   그때 쟌 목사를 통해 들었다. ‘하나님 여기 계시니’. 하나님께서는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서 내려주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힐 때 거기 계셨다. 우리가 하나님께 얼른 아이들을 도와달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거기 계셨다. 유다 백성이 바벨론 포로가 되어 고난을 겪을 때, 그발 강가에서 에스겔을 만나주신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아이티 땅 두려움과 슬픔과 배고픔이 가득한 고아원에 아이들과 함께 계셨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임마누엘로 오셨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우리는 고난 가운데 자주 ‘여기’ ‘지금’ 함께 계신 하나님을 잊고 산다. 조항석 / 목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하나님 계시 하나님 여기 고아원 지원 아이티 사람들

2024-07-11

[열린광장] 영어,쉽게 배울수 있다는 믿음

영어는 언제나 부담스럽다. 미국에 사는 한 나이에 상관없이 영어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다. 막 이민 온 사람부터 수십년간 비즈니스를 운영하며 단골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는 이민 고참들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10여년 간 영어공부를 하고 미국에서도 어덜트 스쿨이나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영어 공부를 해도 말하기가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반세기 가까이 이민 생활을 해도 1세들에게 영어는 여전히 부담스러운 이유다.    신은 우리에게 학문을 하고 사물을 이해하는 좋은 머리는 주었지만 외국어를 반복 연습할 수 있는 끈기는 주지 않은 것 같다. 이런 끈기만 있었다면 영어 때문에 고민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보다 영어 공부를 많이 했다. 그런데 영어 필기시험은 잘 봐도 회화 수준은 다른 민족에 비해 부족하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는 영어를 학문으로 공부하는 것과 말하는 기술을 습득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내게 영어를 배웠던 학생들 가운데 한국식 영어에 완벽하다고 자부하던 영어학원 강사, 고교 영어교사 등이 이를 잘 증명한다. 사실 이들의 문법 실력은 아이비리그 대학 졸업생보다 더 깊고 완벽했다. 그러면서도 말은 할 수 없었던 이유가 영어를 공부하는 것과 말하는 기술의 습득은 달랐기 때문이다    사실 생활영어에 사용되는 단어는 그리 많지 않다. 영국 교육기관의 조사에 의하면 런던 근교의 서민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는 1800여개였다. 아시아 지역 중학교에서 배우는 단어가 1500~1700개 정도니 별 차이가 없다. 영어지식의 차이가 크지 않다는 얘기다.  문법은 문장을 이해하고 영어로 말을 만들 수 있는 정도의 지식만 갖추면 된다.   말하기 공부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누구나 반복해서 연습할 수 있는 끈기만 있으면 된다. 물론 통역사를 한다든지 전문적 수준의 대화를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관공서에 가거나 병원에 가서 사용하는 영어, 일상생활 영어 정도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쉬운 책을 가지고 꾸준히 공부하겠다는 열정만 있으면 된다.   미국에 살면서 자신을 한정된 세계에 가두어둘 필요가 없다. 이제 많은 1세가 은퇴를 하고 있다. 자신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진 것이다. 영어 공부를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든 것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재미있어진다는 것이다. 목표를 너무 어렵게 잡지 말고 쉬운 생활 영어 정도만 하겠다고 생각하면 누구나 가능하다. 이번에는 꼭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영어회화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성규 / 베스트 영어 훈련원장열린광장 영어 믿음 영어회화 공부 영어 공부 영어 일상생활

2024-07-10

[삶과 믿음] 무관심의 비극, 무관심의 죄

1994년 전 세계는 르완다 대학살을 마주했다. 불과 100일 동안 80만 명이 넘는 투치족이 학살을 당한 사건은, 당시 학살을 멈추게 할 의지가 없었던 전 세계를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부끄럽게 하고 있다. 프랑스나 미국 같은 세계 여러 나라가 개입해서 멈추게 할 수 있었던 학살 사건을 두고 지금까지도 인류는 르완다에 빚을 졌다는 탄식이 멈추지 않는 것이다.     아이티는 어떨까? 아이티 수도 포토프린스는 지금 갱단 때문에 지옥과 같은 형편이다. 갱들이 선량한 시민의 거주지를 약탈하고 폭력을 일삼아 올해에만 58만 명이 집을 떠나 뜨거운 햇볕이 가려지지 않는 거리를 방황하고 있다. 올해 6개월 동안 갱단 때문에 목숨을 잃거나 납치된 사람의 숫자도 5000명을 넘어섰다. 전 국민 1100만 명 중 절반이 식량부족에 시달려 영양실조에 이르고 있고, 전기, 식수, 휘발유 등 기초적인 생필품의 공급 부족으로 나라 전체가 정체되어 살아 있는 것이 기적으로 여겨진다.   이런 비극의 땅이 아메리카 대륙의 한가운데 있지만, 국제 사회는 별 관심이 없다. 대통령이 암살된 3년 전부터, 갱단이 폭발적으로 그 세력을 키우며 납치와 폭력을 일삼고,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수없이 앗아갈 때도, 선교사나 국제기구 봉사자들조차 납치를 두려워하고 갱단의 폭력을 피해 떠나는 지경에 이르렀어도 어느 나라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아이티에 갱단이 준동하고 온 국민이 신음하는 중에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에게 넘어가고, 미얀마에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고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전쟁이 국제 뉴스를 덮었다.   아이티의 비극은 무관심이다. 아이티는 아주 간간이, 그것도 감옥이 습격을 당해 수천 명의 죄수가 탈옥했다거나, 미국인 선교사들이 집단으로 납치되거나, 젊은 미국인 선교사 부부가 살해되었을 때, 다른 나라의 뉴스에 단편으로 등장하고 곧 사라진다. 백성의 삶은 점점 더 피폐해지고, 아무도 관심을 두고 있지 않으므로 누구에게도 손 벌려 도움을 요청할 곳도 없다.     지난 3월부터 3개월간 아이티는 갱단 때문에 공항이 폐쇄되어 나라가 완전히 고립되기도 했었다. 이 비극의 땅에 우리는 책임이 없을까? 르완다의 대학살과 비교할 정도는 절대 아니라지만, 뉴욕에서 불과 네 시간이면 닿는 땅에서 벌어지는 이 비극은 혹시 먼 훗날 우리의 수치가 되지는 않을까?     모든 이들의 무관심 속에 당하는 비극은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진 듯한 절망이다. 수렁에 빠져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응답하는 이 없는 그 좌절 속에 다들 자포자기 심정이 되었을 때, 가족도 없는 고아들은 외롭고 두려운 세상의 비극을 더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모든 것이 너무도 부족한 아이티에서 고아로 자라는 아이들을 생각할 때마다, 믿음은 높은 파도를 만난 조각배처럼 흔들리지만 그래도 우리는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그리고 우리는 배고픈 군중을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던 주님의 말씀을 다시 듣곤 한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주님은 강도 만난 이의 이웃이 된 사마리아인에 관한 말씀으로 우리를 깨우치시는데, 아이티를 향한 우리의 무관심을 주님은 어떻게 보실까,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오래도록 아이티 고아 구호 사역을 하다 보니 무관심의 비극이 남의 일 같지 않은데 우리는 먼 훗날 역사 속에서, 먼 훗날 주님 앞에서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조항석 / 목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무관심 비극 비극 무관심 아이티 고아 르완다 대학살

2024-06-27

[삶과 믿음] 경전 공부의 필요성

필자는 미국에 와서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열린 달라이 라마 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필라델피아에서 뉴욕까지 운전해서 공원에 도착했는데 공원 입구에서 기다리는 줄이 얼마나 길고 사람들이 많이 모였는지 입구에서 법회 장소로 들어가는데 3시간 이상 걸렸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직접 뉴욕에 오셔서 법문하신다고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께서 직접 로마에 오셔서 법문하신다고 생각해 봅시다. 아마 세계 각처에서 뉴욕 혹은 로마로 가려는 사람이 많아 비행기 표를 구하기도 힘들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뉴욕, 로마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부처님과 예수님의 말씀이 불경과 성경에 이미 다 들어있습니다. 경전을 펼치기만 하면 됩니다. 이렇게 좋은 시대 좋은 세상에 태어난 우리는 얼마나 행운아입니까?     저는 원불교 3대 종법사이신 대산종사님의 법문을 읽을 때 때론 그 법문들이 영혼의 양식이 되는 것을 느낍니다. 영적 영양분이 내 마음에 충만하게 됨을 느끼고 법문을 묵상하기 위해 때론 제 방에서 나와 제가 근무하는 뉴욕주 명상센터 원달마 입구까지 산책하고 돌아옵니다. 40분 걸립니다. 경전의 말씀은 우리 영혼의 영양소이며 묵상으로서 이를 소화해야 합니다.     경전은 영양소일 뿐 아니라 우리 마음 병을 치료하는 ‘약’입니다. 위가 그 역할을 못 하면 소화가 잘 안 되고, 신장이 역할을 잘하지 못하면 배뇨에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 몸이기에 우리가 금방 압니다.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상대심, 시기심, 우울감, 미움, 화, 나태심 등을 우리가 쉽게 없앨 수 있나요? 그 사람 용서하겠다고 마음먹는다고 금방 그렇게 되나요? 내일 시험 보는데 긴장 안 하겠다고 마음먹는다고 우리 마음이 금방 그렇게 작동하나요? 우리 마음이지만 우리 마음대로 하지 못합니다. 오른손을 올리고자 하면 오른손을 올릴 수 있고,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고자 하면 왼쪽으로 고개를 돌릴 수 있습니다. 즉 우리 육신은 우리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은 우리가 마음대로 잘 사용하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원불교 창시자이신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범인을 ‘마음 병 환자’라 하셨습니다. 마음이 온전하지 못하고 고장이 난 상태라는 뜻입니다.   육신 병 환자는 자기가 환자인 것을 알아서 치료에 노력하지만 마음 병 환자는 자기가 환자인 것도 모르고 그 치료에 정성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환자 가운데서 태어나 환자들과 더불어 살다가 환자들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데 어떻게 자기 모습을 정확히 알 수 있을까요? 원불교 초기에 선원에 입선하는 재가출가 교도들에게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대들이 선원에 입선하는 것은 마치 환자가 병원에 입원하는 것과 같나니, 사람의 육신에 병이 생기면 병원에서 의약으로 치료하게 되고, 마음에 병이 생기면 도가에서 도덕으로 치료하게 되는지라, 그러므로 부처님을 의왕(醫王)이라 함과 같이 그 교법을 약재라 하고 그 교당을 병원이라 할 수 있나니라.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육신의 병은 병으로 알고 시간과 돈을 들여 치료에 힘쓰지마는 마음의 병은 병인 줄도 모르고 치료해 볼 생각을 내지 않나니 이 어찌 뜻 있는 이의 탄식할 바 아니리요. 육신의 병은 아무리 중하다 할지라도 그 고통이 일생에 그칠 것이요, 경하면 짧은 시일에 가히 치료할 수도 있으나 마음의 병은 치료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두면 영원한 장래에 죄고의 종자가 되나니, 마음에 병이 있으면 마음이 자유를 잃고 외경의 유혹에 끌리게 되어 아니할 말과 아니 할일과 아니 할 생각을 하게 되어 자기 스스로 죽을 땅에 들기도 하고, 자기 스스로 천대를 불러들이기도 하고, 자기 스스로 고통을 만들기도 하여, 죄에서 죄로 고에서 고로 빠져들어 가다 회복할 기약이 없게 되나니라. 그러나, 마음에 병이 없으면 시방세계 너른 국토에 능히 고락을 초월하고 거래에 자유로우며 모든 복락을 자기 마음대로 수용할 수 있나니, 그대들이여! 이 선기중에 각자의 마음 병을 잘 발견하여 그 치료에 정성을 다하여 보라.” (원불교 대종경수행품 56)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필요성 경전 경전 공부 환자 가운데 뉴욕주 명상센터

2024-06-20

[삶과 믿음] 미루는 습관 고치기

통계에 따르면 세상 사람 중 93%가 미루는 습관이 있다고 합니다. 20% 정도에는 이가 고질적 습관이라 합니다. 미루는 습관은 동서고금으로 만연합니다. 이가 열매 맺는 삶의 주된 적이기에, 과거 BC 1750년 함무라비법전에도 ‘게으름 방지법’이 있었습니다. 함무라비법 53조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자기 댐을 잘 관리를 하지 않아서 그 댐이 터져 벌판에 물난리가 나면, 그 사람은 팔리고 그 돈은 피해받은 사람에게 곡식으로 바뀌어서지급된다.”   미루는 이유는 다양한데 어떤 경우는 정신적으로 육신적으로 너무 피곤해서 해야 할 일을 종종 미루게 됩니다. 이 경우에는 미루는 것이 문제 되지 않고, 우선 휴식을 잘 취하는 것이 주요합니다. 개구리가 멀리 뛰기 전 움츠려야 합니다. 유대교, 기독교에서 안식일에 일체 정신적 육신적 활동을 금하는 것도 다음 주 더 큰 집중으로 전진하기 위함입니다.   제주도 해녀들은 수영에 익숙하고 바다 경험이 풍부한 분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가끔 바다에서 사망한다고 합니다. 해녀들은 보통 수심 10~15m 정도의 바다 밑에 있는 전복, 조개 등 해산물을 채취하기 위해 숨을 참고 일하다 숨을 내쉬기 위해 수면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수면으로 나오는 도중 바다 밑에 있는 전복 등이 눈에 띄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합니다. 어떤 해녀는 이를 채취하기 위해 다시 바다 밑으로 잠수한다고 합니다. 수면 위에서 숨을 쉬고 다시 바다에 들어가면 전복이 보이지 않거나 혹은 전복이 도망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전복은 흡착력이 좋아 바위에 강하게 붙어 있어 이를 채취하려면 시간이 걸리기에 다시 한번 숨을 참고 일하는 동안 혹은 채취 후 수면으로 나오는 동안 물 안에서 기절을 해서 죽기도 한다고 합니다.     어떤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도 좋지만 때론 모든 것을 놓고 쉴 줄 아는 중도의 지혜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항상 무엇에 쫓기는 마음으로 불안하게 산다면 설사 어떤 목표를 이룬다 해도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온 천하를 얻어도 목숨을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오?” (마가복음 8:36)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미루는 습관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의 통계에 따르면 오늘날 시대에 미루는 습관이 점차 강화되었다고 합니다. 내가 게으른 성향 때문에 심하게 미루는 경향이 있다고 대답한 사람이 1970년대에는 10%가 되지 않았지만, 오늘날에는 30% 이상이 그렇다고 대답한다고 합니다. 학자들은 미루는 습관이 증가한 이유가 사회적 환경 변화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공부, 운동, 어떤 일 등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미룰 때 과거에는 TV를 보거나 방에서 빈둥거림으로써 할 일을 미루곤 했는데, 오늘에는 각종 오락과 유튜버의 영상, 온라인 쇼핑 등 우리를 자극하고 달콤하게 유혹하는 것들이 바로 코앞에 있기에 유혹이 너무 강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도박을 끊으려고 하는 사람이 과거에는 라스베이거스에 가지 않는 것이 목표였다면, 오늘날에는 온라인 도박이 있기에 유혹이 바로 내 방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할 일을 하지 않고 미룰 때 재미있게 해 주는 보상이 항상 주변에 있고 그 감각적 보상이 너무 크기에 미루는 습관이 오늘날 점점 강화된다는 것입니다. 유튜브 영상을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유튜브에서 어떤 영상을 보면 구글 알고리즘은 자동으로 우리 성향을 파악해서 우리가 좋아할 만한 영상을 바로 추천해 줍니다. 상업주의 사회 자체가 우리가 감각적 자극 혹은 게으름을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회를 우리가 바꿀 수는 없습니다. 나태하고 미루는 습관이 있다면 자기 자신을 유혹이 적은 환경에 자기를 놓아야 합니다.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습관 전복 조개 온라인 도박 사회적 환경

2024-04-18

[삶과 믿음] 인생길과 경전

한국에서 주된 불교 종단은 조계종이며 선종을 기반으로 화두를 들고 공부하는 간화선을 선법으로 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출가 전에 좌선에 관심을 가졌는데 20대에 필자 생각으로는 화두를 들고 좌선을 하는 것이 더 적극적이며 이가 깨달음의 지름길인 것 같았습니다. 따라서 좌선할 때 한동안 화두를 들고 선을 했습니다. 그러나 실지 노력보다 안정이 잘 안 되었고, 선에 집중도 또한 떨어졌습니다. 어느 날 원불교 경전을 읽고 저의 선법을 바꾸었고 그 후 좌선이 잘 되었습니다. 다음은 필자가 읽은 경전 구절입니다.   간화선은 사람을 따라 임시방편은 될지언정 일반적으로 시키기는 어려운 일이니, 만일 화두(話頭)만 오래  계속하면 기운이 올라 병을 얻기가 쉽고 또한 화두에 근본적으로 의심이 걸리지 않는 사람은 선에 취미를 잘 얻지 못 하나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좌선하는 시간과 의두 연마하는 시간을 각각 정하고, 선을 할 때는 선을 하고 연구를 할 때는 연구를 하여 정과 혜를 쌍전시키나니, 이처럼 하면 공적(空寂)에 빠지지도 아니하고 분별에 떨어지지도 아니하여 능히 동정 없는 진여성(眞如性)을 체득할 수 있느니라.(원불교 정전)   대종사 선원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근래에 선종 각파에서 선의 방법을 가지고 서로 시비를 말하고 있으나, 나는 그 가운데 단전주(丹田住)법을 취하여 수양하는 시간에는 온전히 수양만 하고 화두 연마는 적당한 기회에 가끔 한 번씩 하라 하노니, 의두 깨치는 방법이 침울한 생각으로 오래 생각하는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요, 명랑한 정신으로 기틀을 따라 연마하는 것이 그 힘이 도리어 더 우월한 까닭이니라.” (원불교 대종경 수행품 14)   경전이 마음공부의 방향을 가르쳐주기에 많은 불교 종단에 있어서 처음 출가한 승려들은 본격적으로 선방에서 참선 공부를 하기 전 최소한 몇 년 경전공부를 해야 합니다.     중국에 현장 스님(AD 602~664)은 10대 초에 출가하여 경전공부와 수행에 매진했습니다. 경전공부를 하면서 중국어로 번역된 불교 경전에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종종 있었습니다. 실제 부처님께서 무슨 말씀을 정확히 하셨는지를 알기 위해 원전 즉 팔리어와 산스크리트로 된 불교 경전을 공부하고자 현장 스님은 29세에 중국을 떠나 인도로 향합니다. 걸어서 가는 여정이었고 고비사막을 지나고,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으로 가서 히말라야 산맥을 지나야 하는 참으로 길고 길 여정입니다. 당나라 수도 장안을 떠나 불교 수행과 연구의 요람인 인도 나란다 사원에 도착하는 데 6년이 걸렸습니다. 이곳에서 팔리어, 산스크리트로 된 부처님 경전을 5년간 공부하고, 다시 많은 불경을 가지고 중국으로 돌아왔습니다. 7년이 다시 소요되었습니다. 당시 한국, 중국 등에서 이러한 순례 여행을 떠난 스님들이 많았습니다. 태반의 순례자들은 여행 도중 사망했습니다. 신라 시대 한국에서 인도로 순례 간 혜초스님은 고비사막을 헤매다가 사람들의 뼈가 바람이 불어서 모래에 드러나면 이 길은 아마 과거 순례객이 걸어온 길이라고 생각하고 그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고 합니다. 다음은 인도로 가는 순례길에서 혜초스님이 지은 시의 일부입니다. “다람쥐와 새들도 살기 어려워 하는 히말라야 산, 난 지금 이길을 걷고 있구나.”   박물관에서 양피지로 된 두꺼운 성경을 볼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성경을 사기도 힘들었고 아주 비쌌을 것입니다. 태반의 사람들이 글도 읽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경전을 구할 수도 있고 경전을 쉽게 읽을 수 읽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좋은 시대에 태어나서 살고 있습니다.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들이여! 시대가 비록 천만 번 순환하나 이 같은 기회 만나기가 어렵거늘 그대들은 다행히 만났으며, 허다한 사람 중에 아는 사람이 드물거늘 그대들은 다행히 이 기회를 알아서 처음 회상의 창립조가 되었나니, 그대들은 오늘에 있어서 아직 증명하지 못할 나의 말일지라도 허무하다 생각하지 말고, 모든 지도에 의하여 차차 지내가면 멀지 않은 장래에 가히 그 실지를 보게 되리라.”(수행 15)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인생길 경전 원불교 경전 부처님 경전 원불교 창시자

2024-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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