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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미루는 습관 고치기

통계에 따르면 세상 사람 중 93%가 미루는 습관이 있다고 합니다. 20% 정도에는 이가 고질적 습관이라 합니다. 미루는 습관은 동서고금으로 만연합니다. 이가 열매 맺는 삶의 주된 적이기에, 과거 BC 1750년 함무라비법전에도 ‘게으름 방지법’이 있었습니다. 함무라비법 53조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자기 댐을 잘 관리를 하지 않아서 그 댐이 터져 벌판에 물난리가 나면, 그 사람은 팔리고 그 돈은 피해받은 사람에게 곡식으로 바뀌어서지급된다.”   미루는 이유는 다양한데 어떤 경우는 정신적으로 육신적으로 너무 피곤해서 해야 할 일을 종종 미루게 됩니다. 이 경우에는 미루는 것이 문제 되지 않고, 우선 휴식을 잘 취하는 것이 주요합니다. 개구리가 멀리 뛰기 전 움츠려야 합니다. 유대교, 기독교에서 안식일에 일체 정신적 육신적 활동을 금하는 것도 다음 주 더 큰 집중으로 전진하기 위함입니다.   제주도 해녀들은 수영에 익숙하고 바다 경험이 풍부한 분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가끔 바다에서 사망한다고 합니다. 해녀들은 보통 수심 10~15m 정도의 바다 밑에 있는 전복, 조개 등 해산물을 채취하기 위해 숨을 참고 일하다 숨을 내쉬기 위해 수면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수면으로 나오는 도중 바다 밑에 있는 전복 등이 눈에 띄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합니다. 어떤 해녀는 이를 채취하기 위해 다시 바다 밑으로 잠수한다고 합니다. 수면 위에서 숨을 쉬고 다시 바다에 들어가면 전복이 보이지 않거나 혹은 전복이 도망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전복은 흡착력이 좋아 바위에 강하게 붙어 있어 이를 채취하려면 시간이 걸리기에 다시 한번 숨을 참고 일하는 동안 혹은 채취 후 수면으로 나오는 동안 물 안에서 기절을 해서 죽기도 한다고 합니다.     어떤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도 좋지만 때론 모든 것을 놓고 쉴 줄 아는 중도의 지혜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항상 무엇에 쫓기는 마음으로 불안하게 산다면 설사 어떤 목표를 이룬다 해도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온 천하를 얻어도 목숨을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오?” (마가복음 8:36)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미루는 습관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의 통계에 따르면 오늘날 시대에 미루는 습관이 점차 강화되었다고 합니다. 내가 게으른 성향 때문에 심하게 미루는 경향이 있다고 대답한 사람이 1970년대에는 10%가 되지 않았지만, 오늘날에는 30% 이상이 그렇다고 대답한다고 합니다. 학자들은 미루는 습관이 증가한 이유가 사회적 환경 변화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공부, 운동, 어떤 일 등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미룰 때 과거에는 TV를 보거나 방에서 빈둥거림으로써 할 일을 미루곤 했는데, 오늘에는 각종 오락과 유튜버의 영상, 온라인 쇼핑 등 우리를 자극하고 달콤하게 유혹하는 것들이 바로 코앞에 있기에 유혹이 너무 강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도박을 끊으려고 하는 사람이 과거에는 라스베이거스에 가지 않는 것이 목표였다면, 오늘날에는 온라인 도박이 있기에 유혹이 바로 내 방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할 일을 하지 않고 미룰 때 재미있게 해 주는 보상이 항상 주변에 있고 그 감각적 보상이 너무 크기에 미루는 습관이 오늘날 점점 강화된다는 것입니다. 유튜브 영상을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유튜브에서 어떤 영상을 보면 구글 알고리즘은 자동으로 우리 성향을 파악해서 우리가 좋아할 만한 영상을 바로 추천해 줍니다. 상업주의 사회 자체가 우리가 감각적 자극 혹은 게으름을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회를 우리가 바꿀 수는 없습니다. 나태하고 미루는 습관이 있다면 자기 자신을 유혹이 적은 환경에 자기를 놓아야 합니다.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습관 전복 조개 온라인 도박 사회적 환경

2024-04-18

[삶과 믿음] 인생길과 경전

한국에서 주된 불교 종단은 조계종이며 선종을 기반으로 화두를 들고 공부하는 간화선을 선법으로 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출가 전에 좌선에 관심을 가졌는데 20대에 필자 생각으로는 화두를 들고 좌선을 하는 것이 더 적극적이며 이가 깨달음의 지름길인 것 같았습니다. 따라서 좌선할 때 한동안 화두를 들고 선을 했습니다. 그러나 실지 노력보다 안정이 잘 안 되었고, 선에 집중도 또한 떨어졌습니다. 어느 날 원불교 경전을 읽고 저의 선법을 바꾸었고 그 후 좌선이 잘 되었습니다. 다음은 필자가 읽은 경전 구절입니다.   간화선은 사람을 따라 임시방편은 될지언정 일반적으로 시키기는 어려운 일이니, 만일 화두(話頭)만 오래  계속하면 기운이 올라 병을 얻기가 쉽고 또한 화두에 근본적으로 의심이 걸리지 않는 사람은 선에 취미를 잘 얻지 못 하나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좌선하는 시간과 의두 연마하는 시간을 각각 정하고, 선을 할 때는 선을 하고 연구를 할 때는 연구를 하여 정과 혜를 쌍전시키나니, 이처럼 하면 공적(空寂)에 빠지지도 아니하고 분별에 떨어지지도 아니하여 능히 동정 없는 진여성(眞如性)을 체득할 수 있느니라.(원불교 정전)   대종사 선원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근래에 선종 각파에서 선의 방법을 가지고 서로 시비를 말하고 있으나, 나는 그 가운데 단전주(丹田住)법을 취하여 수양하는 시간에는 온전히 수양만 하고 화두 연마는 적당한 기회에 가끔 한 번씩 하라 하노니, 의두 깨치는 방법이 침울한 생각으로 오래 생각하는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요, 명랑한 정신으로 기틀을 따라 연마하는 것이 그 힘이 도리어 더 우월한 까닭이니라.” (원불교 대종경 수행품 14)   경전이 마음공부의 방향을 가르쳐주기에 많은 불교 종단에 있어서 처음 출가한 승려들은 본격적으로 선방에서 참선 공부를 하기 전 최소한 몇 년 경전공부를 해야 합니다.     중국에 현장 스님(AD 602~664)은 10대 초에 출가하여 경전공부와 수행에 매진했습니다. 경전공부를 하면서 중국어로 번역된 불교 경전에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종종 있었습니다. 실제 부처님께서 무슨 말씀을 정확히 하셨는지를 알기 위해 원전 즉 팔리어와 산스크리트로 된 불교 경전을 공부하고자 현장 스님은 29세에 중국을 떠나 인도로 향합니다. 걸어서 가는 여정이었고 고비사막을 지나고,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으로 가서 히말라야 산맥을 지나야 하는 참으로 길고 길 여정입니다. 당나라 수도 장안을 떠나 불교 수행과 연구의 요람인 인도 나란다 사원에 도착하는 데 6년이 걸렸습니다. 이곳에서 팔리어, 산스크리트로 된 부처님 경전을 5년간 공부하고, 다시 많은 불경을 가지고 중국으로 돌아왔습니다. 7년이 다시 소요되었습니다. 당시 한국, 중국 등에서 이러한 순례 여행을 떠난 스님들이 많았습니다. 태반의 순례자들은 여행 도중 사망했습니다. 신라 시대 한국에서 인도로 순례 간 혜초스님은 고비사막을 헤매다가 사람들의 뼈가 바람이 불어서 모래에 드러나면 이 길은 아마 과거 순례객이 걸어온 길이라고 생각하고 그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고 합니다. 다음은 인도로 가는 순례길에서 혜초스님이 지은 시의 일부입니다. “다람쥐와 새들도 살기 어려워 하는 히말라야 산, 난 지금 이길을 걷고 있구나.”   박물관에서 양피지로 된 두꺼운 성경을 볼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성경을 사기도 힘들었고 아주 비쌌을 것입니다. 태반의 사람들이 글도 읽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경전을 구할 수도 있고 경전을 쉽게 읽을 수 읽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좋은 시대에 태어나서 살고 있습니다.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들이여! 시대가 비록 천만 번 순환하나 이 같은 기회 만나기가 어렵거늘 그대들은 다행히 만났으며, 허다한 사람 중에 아는 사람이 드물거늘 그대들은 다행히 이 기회를 알아서 처음 회상의 창립조가 되었나니, 그대들은 오늘에 있어서 아직 증명하지 못할 나의 말일지라도 허무하다 생각하지 말고, 모든 지도에 의하여 차차 지내가면 멀지 않은 장래에 가히 그 실지를 보게 되리라.”(수행 15)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인생길 경전 원불교 경전 부처님 경전 원불교 창시자

2024-03-14

[삶과 믿음] 미리 준비하기의 중요성

사탄들이 어느 날 모임을 가졌습니다. 많은 사람이 최근 신앙을 가지고 명상에 관심을 가지며 각 교회와 사찰에서 신앙 수행 생활을 하기에 자기들 영역이 계속 침범당하니 어떻게 해야 흑암 세력을 잘 지킬 수 있을까 하는 것을 토의하기 위해 모임을 가졌습니다. 한 사탄이 제안합니다. “진리와 영적인데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을 다 죽이는 것이 어떠하겠냐?” 다른 사탄이 반대했습니다. “과거 기독교 역사를 보라. 한 순교자가 나오면 다른 순교자가 따라 나오며… 이는 좋은 방법이 아니다.” 한 사탄이 제안하기를 “그러면 그들을 다 감옥에 가두는 것이 어떨까?” 다른 사탄이 말했습니다. “그것도 소용없다. 감옥 속에도 그들은 경전을 읽고, 명상과 기도를 하니….” 한 나이 많은 사탄이 다음을 제안했습니다. “단지 그들 마음에 한 생각만을 심어주자.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 혹은 다음으로 미루어도 된다고….” 다들 경험 많은 그 사탄 말에 동의했고, 그 계획은 크게 성공했다고 합니다.   어떤 일을 미루지 않고 미리 잘 연마하고 준비한다면 우리 인생이 얼마나 달라질까요? 우리 부모가, 아내 혹은 남편이, 혹은 우리 자식들이 그렇게 산다고 하면 얼마나 그들 인생이 달라질까요? 성공하는 사람과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가 미리 연마하고 준비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원불교 경전을 보면 다음이 아주 주요한 주의사항으로 되어 있습니다. “응용하기 전에 응용의 형세를 보아 미리 연마하기를 주의할 것이요.”   미리 연마하고 준비하는 것이 모든 일을 성공으로 이끄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알지만, 왜 사람들은 이 습관을 잘 고치지 못하는 것일까요? 사람들은 자기가 선천적으로 게으르기 때문에 미리 연마하고 준비하는 것이 잘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연구에 따르면 미루는 습관의 주된 이유가 단지 게으르기 때문이 아니라고 합니다. 게으르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을 미룬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어떤 취미 혹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 (관심 있는 책의 독서, 혹은 주식 혹은 암호화폐 공부, 힘든 산행)에는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서 하고 이런 일은 전혀 미루지 않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많은 사람이 미루는 습관을 지니고 이유는 사람들의 결과에 ‘염려’ ‘공포’ 때문이라 합니다. 내가 이를 성취하지 못하면 어쩌나, 실패해서 망신을 당하면 어떻게 하나, 만족하지 못한 결과가 나오면 어떻게 하지 등의 많은 생각과 염려와 공포가 미루는 습관을 야기시킨다는 것입니다.     완벽주의 성향을 가지는 사람일수록, 자존심이 강할 사람일수록, 기대가 지나치게 큰 사람일수록 이런 불안과 염려 공포감이 커져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미루다가 당일에 닥쳐서 하거나 (당연히 성공할 가능성이 작아집니다) 아니면 마지막 단계에서 포기해 버리기도 합니다. All or nothing의 경향을 보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야 미리 준비하는 것을 습관화할 수 있을까요?   내가 미리 준비하지 않는 습관이 있다면, 우선 내 마음을 잘 살펴서 미루는 성향의 정확한 원인, 뿌리를 아는 것이 주요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완벽주의 성향이 있고 결과에 대한 염려와 불안 때문에 미루는 성향이 있다면, 어떤 일의 성공을 위해 아주 ‘조금씩’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은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책 전체를 다 외우고 공부하는 것이 힘들기에 미리미리 한 장씩 공부해서 준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험에 닥쳐서 책 전체를 공부하려면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고 염려와 공포가 심해져서 미루고 싶은 혹은 포기해 버리고 싶은 마음이 더 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준비가 잘 되었건 못 되었건 막상 일을 당해서는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의 자세로 ‘놓는 공부’를 잘해야 합니다. 내가 진리적 일을 하면, 내가 놓아도 진리가 이를 채워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편히 놓는 공부를 하여야 합니다.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께서 다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일이 없을 때는 항상 일 있을 때 할 것을 준비하고 일이 있을 때는 항상 일없을 때의 심경을 가질지니, 만일 일없을 때에 일 있을 때의 준비가 없으면 일을 당하여 창황 전도(蒼惶顚倒)함을 면하지 못할 것이요, 일 있을 때일없을 때의 심경을 가지지 못한다면 마침내 판국에 얽매인 사람이 되고 마나니라.”(원불교 경전 수행품 10)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중요성 염려 공포감 완벽주의 성향 암호화폐 공부

2024-02-15

[삶과 믿음] 신앙 수행의 열매

크리스마스이브 날 한 중년 신사가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과속하며 운전을 했습니다. 마침 교통경찰에게 잡혀서 티켓을 받게 되었는데, 그 젊은 경찰은 상당히 무례한 태도를 보였고 그 신사는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게 되었습니다. 결국 신사분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젊은 경찰관의 뺨을 때렸고 그로 인해 그분은 수갑이 채워져 경찰서에 연행되었습니다. 어떤 이유인지 그분은 친구와 가족에게 전화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고 경찰서 철장에서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분을 참지 못해서 그 날 저녁 경찰서 철장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크리스마스이브 날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몇 년 전 일어난 실제 일입니다.   이분이 신앙 수행을 하는 분인가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분이 좌선 혹은 기도를 많이 하는 분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분이 교회, 절 혹은 교당에 다니는 분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 분이 경전 공부를 많이 한 사람 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포인트는 이분이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크리스마스이브 날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것입니다. 즉 현실 상황에서‘실다운’ 마음공부를 하지 않은 것입니다.     크리스마스이브 파티에 좀 늦었다고 해도 파티에 좀 늦는 것이 무슨 대수냐 생각하며 과속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습니다. 젊은 경찰이 무례한 태도를 보여도 다른 젊은이들은 ‘크리스마스이브에 즐겁게 놀고 있을 텐데 젊은 경찰이 추운 데서고생하는구나’ 하고 생각하고 무례한 행동을 이해할 수도 있었습니다. 또한 경찰서 철장 안에서 화나는 상황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어차피 그렇게 된 것 내일 아침이면 나가겠지’하고 편히 마음을 돌렸을 수도 있었습니다. 미래에 이가 추억, 농담거리가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분은 순간순간 지혜롭지 못한 ‘선택’을 했고 결국 불행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인생을 산다고 하는 것은 끊임없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끊임없이 사용하는 것입니다. 육근을 통해서 우리는 업을 짓습니다. 불교 용어로 이를 작업(作業)이라 합니다. 육근 작용 즉 작업(作業)에 따라 우리 인생이 고가 될 수도 있고 낙으로 화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현실생활에서의 우리의 취사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취사(取捨)라는 말은 취(취할 취, 取)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린다는(버릴 사, 捨) 뜻입니다. 순간순간의 취사가 우리 운명을 좌우합니다. 여러분의 결혼 혹은 직업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배우자와 직업은 언젠가 여러분이 과거에 선택한 것이며, 그 선택이 지금 얼마나 여러분 인생에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다음을 말씀하십니다.     고락(苦樂)의 설명: 대범, 사람이 세상에 나면 싫어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괴로운고요 둘은 즐거운 낙이라, 고에도 우연한 고가 있고 사람이 지어서 받는 고가 있으며, 낙에도 우연한 낙이 있고 사람이 지어서 받는 낙이 있는바, 고는 사람 사람이 다 싫어하고 낙은 사람 사람이 다 좋아 하나니라. 그러나, 고락의 원인을 생각하여 보는 사람은 적은지라, 이 고가 영원한 고가 될는지 고가 변하여 낙이 될는지 낙이라도 영원한 낙이 될는지 낙이 변하여 고가 될는지 생각 없이 살지마는 우리는 정당한 고락과 부정당한 고락을 자상히 알아서 정당한 고락으로 무궁한 세월을 한결같이 지내며, 부정당한 고락은 영원히 오지 아니하도록 행, 주, 좌, 와, 어, 묵, 동, 정간에 응용하는데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기를 주의할 것이니라.   명상 기도를 많이 하고 경전 공부를 많이 하여도 수행의 열매는 결국 ‘실행’입니다. 인생을 위해 신앙 수행을 하는 것이지, 수행을 위해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 수행 역시 결국 우리가 고해를 피하고 바라는 낙원을 맞이하자는 것입니다. 이 현실적인 마음공부, 신앙, 수행의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신앙 수행 신앙 수행 마음공부 신앙 크리스마스이브 파티

2024-01-18

[삶과 믿음] 경전을 왜 읽어야 하나

1983년 민간인 269명을 태운 KAL 여객기가 미국 JFK 공항을 출발해서 한국으로 오는 도중 조종사의 실수로 경로를 이탈했습니다. 비행기가 소련 상공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소련 전투기가 미사일을 발사해서 민간인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는 비극이 한순간에 일어났습니다. 조종사의 실수가 이 같은 참사를 초래한 것입니다. 문제의 근본은 비행기가 가야 할 경로를 이탈한 데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은 여러 난관과 고통을 겪기 마련인데,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고통의 주된 원인은 우리가 ‘마땅히 가야 할 길’을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한자로 도(道)라 표현하는데, ‘길’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나는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다.” 말씀하셨습니다. 제불제성의 가르침은 우리를 행복과 자유로 가는 길(Way)을 제시한 것입니다. 우리가 익숙하지 못한 곳을 운전해 갈 때 내비게이터가 있어 길을 잘 가르쳐 줍니다. 인생길에서 최선의 길을 우리가 모를 때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을까요?   불보살들의 가르침이 담겨있는 ‘경전’이 바로 이 길을 제시합니다. “성인이 나시기 전에는 도(道)가 천지에 있고, 성인이 나신 후에는 도가 성인에게 있고, 성인이 가신 후에는 도가 경전에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식당에서 스테이크를 주문하면 날로 된 고기와 채소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져서 적당히 잘 익혀서 나옵니다. 경전은 진리 자체를 담고 있지만, 경전이란 우리가 현실생활에서 그 진리를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진 교과서입니다. 경전은 우리 인생을 풍족하고 자유롭게 사는 길을 가르쳐 주는 인생 안내서입니다.   원불교 정전에 ‘경전’은 다음으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경전은 우리의 지정 교서와 참고 경전 등을 이름이니, 이는 공부인으로 하여금 그 공부하는 방향로를 알게 하기 위함이요.” 경전은 “공부하는 방향로를 알게 하기 위함”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목적지에 가기 위해 운전을 열심히 하는 것도 주요하지만 방향을 모르면 열심히 운전하는 것이 의미가 없습니다.     원불교 초창기에 좌선과 명상에 큰 관심을 가지고 정진하는 한 제자가 있었습니다. 좌선하면 잡념이 차차 사라지고 우리 몸에서 수기가 올라오고 화기가 내려가서 몸과 마음이 상쾌하게 되는데 그는 수승 화강을 조급히 바라다가 도리어 두통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공부하는 길을 잘 알지 못하는 연고라, 무릇 원만한 공부법은 동과 정 두 사이에 공부를 여의지 아니하여 동할 때는 모든 경계를 보아 취사하는 주의심을 주로 하여 삼대력을 아울러 얻어 나가고, 정할 때는 수양과 연구를 주로 하여 삼대력을 아울러 얻어 나가는 것이니, 이 길을 알아 행하는 사람은 공부에 별 괴로움을 느끼지 아니하고 바람 없는 큰 바다의 물과 같이 한가롭고 넉넉할 것이요, 수승 화강도 그 마음의 안정을 따라 자연히 될 것이나 이 길을 알지 못하면 공연한 병을 얻어서 평생의 고초를 받기 쉽나니 이에 크게 주의할지니라.” (원불교 대종경수행품 40)   많은 수행인들이 열심히 공부하지만 종종 그 ‘방향로’를 몰라서 고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이 인생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지만 그‘길’을 모르기에 많은 사람이고통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대종사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 공부 길을 잡았나?” 자주 물어보셨다 합니다. 수행에 있어서나 혹은 인생의 어떤 목적을 이루는데 있어서나 정확한 길, 최선의 길을 아는 것이 주요합니다.   “수행 없는 이해는 공허하고, 이해에 바탕을 두지 않는 수행은 장애를 초래한다.” 어떤 선지식의 말씀입니다. 종일 지도만 들어본다고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도 아니며, 지도 없이 모르는 길을 무작정 운전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삼가 너희는 너 생각을 믿지 마라.” 하셨습니다. 특히 초보 수행자일수록 경전을 가까이하며 공부길, 인생길을 자주 점검받아야 합니다.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경전 참고 경전 원불교 대종경수행품 부처님 말씀

2023-12-14

[삶과 믿음] 정성의 위력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정성을 다음으로 정의해 주셨습니다.   성(誠), 성이란간단없는 마음을 이름이니, 만사를 이루려 할 때 그 목적을 달하게 하는 원동력이니라.   정성을 “만사를 이루려 할 때 그 목적을 달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말씀하셨습니다. 원동력이란 ‘근본이 되는 동력’이라는 뜻입니다. 세탁기, 선풍기, TV 등 전자제품이 있어도 전기가 없으면 이들이 무용지물입니다. 전기라는 ‘원동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 수행하는 데 있어서신분의성이라는 근본이 되는 동력, ‘원동력’이 있나 내 마음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신앙, 수행을 상당 기간 했지만 별로 진척이 없으면 그것은 신분의성이라는 원동력이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만사를 이루려 할 때”라고 하셨습니다. 만사란 ‘모든 일’을 말하는 것이기에 수행뿐 아니라 어떤 인생 목표를 이루는데도 신분의성이라는 원동력이 없으면 성공을 보기가 어렵다는 말입니다.     “성이란간단없는 마음”이라 하셨습니다. 수행에 있어서나 혹은 인생의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우리는 힘든 상황을 종종 마주칩니다. 예상치 못하게 힘든 일이 생길 때 혹은 어떤 일에 진척이 없다고 생각할 때 많은 사람이 중간에 포기합니다. 대종사님께서는 이를 새 옷을 입다가 처음에는 무엇이 묻을까 조심하다가 좀 더러워지면 조심성을 놓게 된다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무슨 일을 시작하여 한 가지도 그르침이 없을 때는 그 일을 잘 해보려는 성의가 계속되다가도 중간에 혹 한 두번 실수하고 보면 그만 본래 마음을 다 풀어버리고 되는대로 하는 수가 허다하나니, 이것은 마치 새 옷을 입은 사람이 처음에는 그 옷을 조심하여 입다가도 때가 묻고 구김이 지면 그 주의를 놓아 버리는 것과 같나니, 모든 일을 다 이처럼 한다면 무슨 성공이 있으리오. 오직 철저한 생각과 큰 경륜을 가진 사람은 무슨 일을 하다가 혹 어떠한 실수를 할지라도 그것을 전감 삼아 미래를 더욱 개척은 할지언정 거기에 뜻이 좌절되어 당초의 대중을 놓아버리지는 아니하나니, 이러한 사람에게는 작은 실수가 도리어 큰 성공의 바탕이 되니라.” (대종경인도품 38장)   내가 인생을 이끌기 위해 ‘간단이 없는 마음’ 즉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는 정성이 있는지 돌아봅시다.   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 즉 “정성이란 하늘의 도(道)요, 성을 이루는 것은 인간의 도이다.” 유교의 최고 고전의 하나인 중용(中庸)의 말씀입니다.   대승불교를 크게 부흥시킨 무착(Asanga 300~390 AD)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수많은 불교의 선지식 중 보살의 칭호를 받는 분은 세친, 용수, 마명 등 몇 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무착은 젊은 나이에 불교의 교리와 수행을 마스터했고 아라한 경지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대승불교의 핵심 ‘모든 것이 환영이며 마음이 짓는바’라는 가르침이 완전히 이해되지 않아 동굴로 들어가서 그 진리를 확실히 깨치고자 정진을 시작했습니다.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자 포기하고 동굴을 떠나려 했습니다. 동굴을 나서는데 우연히 동굴 입구 위에 있는 바위가 유난히 닳아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동굴 속의 박쥐가 수없이 나가고 들어오고 해서 수많은 세월 동안박쥐 날개가 바위에 부딪혀서 바위가 닳은 것이었습니다. 무착은 자기의 성급함을 반성하고 다시 더 3년을 공부하겠다고 다짐하고 동굴에서 들어와 정진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3년의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행의 진척이 여전히 없자 다시 동굴을 떠나려 했습니다. 동굴을 나서려는 순간 이번에는 동굴 입구 밑에 있는 바위에 구멍이 나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바위에 어떻게 구멍이 깊게 파여있는지 궁금해서 위쪽을 보니 동굴 입구 위의 바위에 습기가 고여서 가끔 물이 한 방울씩 바위에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수많은세월 동안 한 자리에 물방울이 떨어져서 그 자리가 파여서 구멍이 난 것입니다. 무착은 다시 한번 큰 교훈을 얻고 다시 동굴로 들어와 수행했고 결국 대도를 성취합니다.     어떤 일에 성공을 하느냐 못하느냐에는 지혜와 요령도 필요하지만 결국 목적에 달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는 노력이 결정적입니다. 특히 어렵고 힘든 상황에 직면했을 때 혹은 아무리 해도 진척이 없다고 생각될 때 무착과 같이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작하는 용기가 성공의 열쇠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유도성 / 원불교 원 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위력 동굴 입구 방울씩 바위 신앙 수행

2023-11-16

"믿음의 새 역사를 이루리라"

    버지니아 알렉산드리아 소재 워싱톤순복음제일교회(담임 윤창재 목사)가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사흘 간 추계부흥성회를 개최했다. ‘믿음의 새역사를 이루라’를 주제로 나성순복음교회 담임 진유철 목사가 강사로 초청돼 부흥회를 이끌었다.     진유철 목사는 “신앙생활에 있어 주의 말씀을 ‘되새김질’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모든 것의 시작이요, 근원인 하나님의 말씀은 신앙생활의 가장 기본이 된다”고 말했다.   진 목사는 “‘말씀’이냐, ‘환경’이냐 두가지 선택지를 놓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말씀을 선택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길을 열어 주시고 책임져 줄 것이며, 그때 남들이 알지 못 하는 하늘의 평안과, 기쁨 넘치는 활력있는 신앙 생활을 누릴수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말씀을 따라 살아가다보면 인생 후반전에서 승리하는 역사를 이루게 될 것”이라며 “말씀을 붙잡고 따라가면 안식이 온다”고 말했다. 그는 “마음속 안식 있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새 역사를 이뤄내신다”면서 믿음의 새 역사를 이루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로 말씀을 강조했다.    한편 진유철 목사는 순복음 세계선교회 중남미, 북미 총회장, 베데스다유니버시티 대학 총장 등을 역임했으며 파라과이 델 에스데 순복음교회를 개척한 바 있다. 현재 나성순복음교회에서 담임 목회를 하고 있다. 김윤미 기자 kimyoonmi09@gmail.com믿음 역사 나성순복음교회 담임 현재 나성순복음교회 주의 말씀

2023-11-13

[삶과 믿음] 명상의 효과

미국의 한 종합병원 의사가 환자들을 대상으로 다음과 같은 실험을 하였습니다. 병원을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환자 50명을 우선 두 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25명의 환자는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소파에 편히 앉아 녹음된 소설을 30분 정도 들었습니다. 가볍고 흥미로운 소설이었습니다. 다른 25명의 환자는 30분 정도 좌선 수행을 했습니다. 이들은 원래 수행하는 사람들이 아니었고, 단지 의사의 지도에 따라 스트레스 방지와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방법으로 좌선 수행을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좌선 안내가 녹음된 테이프를 들었는데, 물론 대다수가 명상의 초보자라서 많은 망상과 잡념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이 두 그룹은 각각의 방법으로 일주일에 4~5번 와서 몇 개월 정도 소설을 편히 듣거나 혹은 좌선 수행을 했습니다.   4개월 뒤, 의사는 두 그룹 사람들의 마음 상태와 변화를 알기 위해 그들의 뇌파를 측정해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마음이 안정되고 집중이 될 때 우리 두뇌에서 나오는 뇌파는 알파파이며 주로 두뇌 전두엽에서 발생합니다. 망상은 많았지만, 좌선을 한 그룹 사람들의 머리에서 나오는 알파파 양이 앉아서 편히 소설을 들은 사람들보다 몇 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즉, 사람들이 일주일에 몇 번, 하루에 30분 이하의 명상 수행을 한 경우, 이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활동할 때 그들의 마음은 훨씬 안정되고 집중이 잘 되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실험입니다. 다시 말해, 뇌파를 통해 좌선 혹은 명상의 공덕을 간접적으로 증명한 것입니다.     우리가 잡념 혹은 망상을 없애기 위해 영화를 본다면 그것이 기분전환은 될지언정, 우리의 정신을 충전시키는 수양은 아닙니다. 방 바깥에서 나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TV 소리를 크게 하거나 큰소리를 지를 수 있지만, 이가 근원적으로 밖의 소리를 없애는 것은 아닌 것과 같습니다. 수양을 통해 마음의 때를 벗기고 정신을 충전해야 우리 마음이 안정되고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사람들이 좌선 등의 명상을 하는 것입니다.     원불교 『정전』에 염불은 ‘우리의 지정한 주문(呪文) 한 귀를 연하여 부르게 함이니, 이는 천지 만엽으로 흩어진 정신을 주문 한 귀에모으되 천념 만념을 오직 일념으로 만들기 위함이요’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염불 혹은 주문의 문구가 나무아미타불이건, 관세음보살이건, 옴마니밧메훔이건, 주기도문이건 사도신경이건 상관이 없습니다. 어떤 경전 문구를 연하여 부르거나 무심으로 읽으면 마음이 집중되고 쉽게 안정이 됩니다. 마음이 집중될 뿐만 아니라 정신이 충전되고 우리 마음이 힘을 얻습니다.     원불교 『정전』에 좌선은 ‘기운을 바르게 하고 마음을 지키기 위하여 마음과 기운을 단전(丹田)에 주(住) 하되 한 생각이라는 주착도 없이 하여, 오직 원적무별(圓寂無別)한 진경에 그치도록 함이니, 이는 사람의 순연한 근본정신을 양성하는 방법이요’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좌선과 염불의 공덕은 같습니다. 좌선 삼매에 들었거나 염불 삼매에 들었거나 수행자들의 두뇌에서 발생하는 뇌파는 같은 패턴을 보입니다.   원불교 『정전』에 나와 있는 좌선과 염불의 공덕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경거망동하는 일이 차차 없어지는 것이요. ②육근 동작에 순서를 얻는 것이요. ③병고가 감소하고 얼굴이 윤활하여지는 것이요. ④기억력이 좋아지는 것이요. ⑤인내력이 생겨나는 것이요. ⑥착심이 없어지는 것이요. ⑦사심이 정심으로 변하는 것이요. ⑧자성의 혜광이 나타나는 것이요. ⑨극락을 수용하는 것이요. ⑩생사에 자유를 얻는 것이니라.   상황에 따라 사람들의 성향 혹은 근기에 따라 염불과 좌선을 번갈아 수행하면 아주 쉽고 효과적으로 정신을 수양하고 마음의 힘을 기를 수 있습니다.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명상 좌선과 염불 명상 수행 좌선 수행

2023-10-19

[삶과 믿음] 정신 수양의 필요

현대인은 끊임없이 정신을 사용하며 살고 있습니다. 직장 혹은 학교에서 하는 우리 대부분의 활동은 정신적 노동이며 육신적 일은 거의 없습니다. 오늘날 경쟁 시대에 우리는 잘 생각하지 않고 잘 판단하지 않으면 세상에서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염려해야 하는 우리의 삶의 모습은 우리가 좌선을 해보면 이가 그대로 우리 마음에 나타납니다. 수많은 망상, 잡념, 제반 걱정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람들이 휴식을 취할 때도 TV 혹은 YouTube를 보거나 아니면 무엇을 먹거나 남과 대화를 합니다. 헬스장에서 운동할 때도 무엇을 보거나 들으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세 끼 식사 외에 우리가 무엇을 먹을 때는 배가 고파서 먹기보다 우리 마음이 무료하여 어떤 자극(이 경우에는 맛)과 함께하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저울에 서 있지 않을 때 저울 바늘이 0을 가리켜야 정상적 저울입니다. 평상시에 가만히 있지 못하는 현대인의 마음은 고장 난 저울과 같습니다. 우리 마음이 보는 것이건, 듣는 것이건, 먹는 것이건, 어떤 생각이건 어떤 것과 항상 함께하고 싶어 하는 것은 중심을 잃은 우리 마음의 모습입니다.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들로 가득 찬 우리 마음은 항상 피곤합니다. 특히 오늘날 경쟁 사회에서 우리 마음은 진정한 휴식, 참 휴식이 필요합니다.     끊임없이 우리 마음이 생각과 염려, 어떤 정보와 자극으로 가득 차 있는 상태를 부처님은 ‘불타는 마음’으로 비유하셨습니다.   부처님의 유명한 불의 비유 법문(Fire Sermon)에서 “수행자들이여, 이 세상이 불타고 있다. 무엇으로 그리고 어떻게 불타고 있는가? 우리의 눈이 불타고 있고, 우리의 귀와 마음이 불타고 있다. 우리의 귀와 눈 그리고 마음이 욕심과 집착, 화냄과 증오, 무지와 망상으로 불타고 있다. 우리가 집착과 망상을 여의고,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으로 벗어남으로써 우리는 자유로움을 얻는다.” 말씀하셨습니다.   나무와 같은 어떤 두 가지 물질을 계속 비비면 불이 납니다. 눈과 코, 입과 귀 등의 감각기관이 형상, 소리, 냄새, 생각 등의 외경, 즉 감각 대상과 계속 접촉해 있으면 우리 마음에도 불이 납니다. 우리가 완전히 지쳐버렸다거나 정신이 쇠약해지는 등의 현상은 우리 마음에 불이 난 현상이며, 우리 몸과 마음에 생기(生氣)가 말라버린 현상입니다. 우리가 화장실에 가서 변기에 볼일을 보고 물을 내리듯, 우리 인생에서도 마음의 찌꺼기를 정기적으로 내리고 청소를 해야 하는데, 그 방법이 바로 정신수양입니다.     수양(修養)이라는 단어는 닦을 수(修), 기를 양(養)으로 결합하여 있습니다. 창문이 더러워지거나 거울 위에 먼지가 끼면 이를 걸레로 닦아내듯, 우리의 마음에도 잡념과 망상, 근심, 걱정을 잘 닦아내야 합니다. 이가 바로 닦을 수(修)입니다. 기를 양(養)이란 밭에서 어떤 작물을 기르는 것과 흡사합니다. 우리가 땅에 거름 등을 뿌려 영양분을 공급해 주어 작물이 힘 있게 잘 자라게 하듯, 우리 마음에도 영양분을 공급해 마음의 힘을 기르고 충전케 해야 합니다. 작물을 기르고 양성하듯 우리 마음도 그렇게 기르고 양성해야 합니다.   원불교 3대 종법사인 대산 종사님은 정신수양을 “정신은 쓰는 것이요. 수양은 쉬는 것이다”라고 간단히 정의해 주셨습니다. 항상 마음에 불이 나 있는 우리 정신의 근본 문제점은 너무 계속해서 쓰는 것이기에 참으로 잘 쉬는 진정한 휴식이 현대인에게 필요합니다.     마음을 쉬고 충전하는데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잘 쉬고 잘 충전하는 진리적 방법은 명상과 좌선입니다. 명상과 좌선은 메마른 정신에 물을 대는 역할을 하며 우리 마음에 타는 불을 끄게 합니다. 실지 좌선 수행을 할 때 망상이 가라앉고 물기운(水氣)이 올라오면 입에 상쾌한 침이 돌고 두뇌가 상쾌해지는데 이는 바로 우리 몸에서 불기운(火氣)이 내려가고 물기운이 올라오는 증거입니다.   좌선이건 행선이건, 어떤 형태의 명상이라도 좋습니다. 하루에 30분 혹은 1시간 내어서 이를 규칙적으로 행하면 우리 인생이 참으로 달라질 것입니다.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정신 수양 정신 수양 우리 마음 우리 정신

2023-09-14

[삶과 믿음] 의문의 주요성

신앙 수행에 있어서나 어떤 세상에서인생 목적을 향해서 나갈 때 큰 믿음을 가지고 열정으로서 전진해 가는 것이 주요합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주요한 것은 머리를 잘 사용해 지혜롭게 문제 해결을 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집에 들어가려고 가는데 현관문이 잠겨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문을 망치로 용감히 부수고 들어가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지만, 우선 화분 밑 등 주변에 혹시 열쇠가 숨겨져 있지 않을까 한번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어떤 목적을 향해 나아갈 때 연구를 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좌선할 때 망념이 너무 많고 잠이 너무 많이 오는 경우 그냥 열심히 지속해서 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때론 멈추어서 “내가 왜 이렇게 좌선 때 잠이 오지 혹은 왜 망념이 많지?” 하며 자기 생활을 한번 반조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좌선 전에 과식한다거나 정신적, 육신적으로 너무 피로하다거나, 생활에서 마음을 흩트리는 습관이 지속한다거나 (예를 들어 SNS에 시간을 많이 소모하거나, 평상시에 말을 너무 많이 하는 것 등) 등 돌아보아 내가 망념과 졸음을 제공하는 환경을 많이 제공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또한 자기 체질과 근기를 잘 살펴보아 좌선이 잘 안 되면 행선, 독경, 기도, 절 수행 등 여러 가지 다른 수행으로 대처하는 것도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사업을 하거나 인간관계에 있어서 힘들 일이 생길 때 기도 등을 하는 것도 주요하지만, 멈추어 서서 그 해결책을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신앙 수행에 있어서나 인생에 있어서 어떤 일을 이루려고 할 때 우리 수행과 인생을 돕는 아군을 신(信), 분(忿), 의(疑), 성(誠)이라고 하시며,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이를 ‘진행사조(進行四條)’라 말씀하셨습니다. 즉 믿음, 분발, 의심, 정성이 우리 수행과 인생길을 진행, 진척시켜 주는 아군입니다.     또한 수행과 인생 성공을 방해하는 적군을 ‘사연사조(捨捐四條)’라고 하시고, 이는 불신(不信), 탐욕(貪慾), 나(懶), 우(愚)라 말씀하셨습니다. 즉 믿음이 약하거나 없는 것, 헛된 욕심, 나태심, 어리석음이 바로 사람들이 어떤 목적을 이루는 데 있어서 사연(捨捐), 즉 버려야 하는 네 가지 적들이라는 것입니다.   “의(疑)란 일과 이치에 모르는 것을 발견하여 알고자 함” 이라고 하셨습니다. 인간관계의 해결에 있어서, 사업 혹은 마음공부의 성공에 있어서 잘 안되면 안되는 이유 즉 ‘모르는 것을 발견하여 아는 것’이 바로 ‘의(疑)’입니다.   뉴턴은 만유인력이라는 개념으로 왜 밀물과 썰물이 생기며, 왜 달이 지구를 돌며, 왜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가 등 수많은 자연 현상을 중력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완벽히 설명했습니다. 어느 날 한 지인이 어떻게 그런 기발한 생각을 할 수 있었냐고 뉴턴에게 물었습니다. 뉴턴이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전 수년 동안 그것만을 항상 생각, 연구해 왔습니다.” 연마하고 궁구하지 않고 ‘일과 이치에 모르는 것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부처라는 말은 산스크리트로 ‘깨달은 자’라는 뜻입니다. 무엇을 깨달았다는 말인가요? 우주와 인생의 비밀, 즉 진리를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대종사님께서는 어린 시절부터 우주 자연 현상에 대한 많은 의문이 걸려서 이를 해결하고자 산신에게 물어보기 위해 수년간 어린 시절 산에서 기도도 했고, 도사를 찾기도 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어린 시절부터 인간 고에 대해 고민을 했고,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생로병사의 근원적 고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체험하고 어떻게 해야 생로병사를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으로서 구도를 시작하셨습니다. 대종사이건 부처님이건 우주와 인생의 의문으로 구도를 시작한 것입니다.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주요성 의문 대종사이건 부처님이건 신앙 수행 인생 성공

2023-08-17

[삶과 믿음] 수양의 힘

어떤 여자 분이 새 옷을 사서 파티에 참석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새 옷이 예쁘다고 칭찬했습니다. 그런데 친구 한 명이 “그 옷 잘 어울리는데 빨간색이라 좀 뚱뚱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친한 친구이니 그런 말을 할 수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파티 내내 그 친구의 말이 머리에 맴돌았다고 합니다. 다른 모든 이들이 그 옷이 예쁘다고 칭찬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유명인들이 온라인에 떠도는 악성 댓글 때문에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하며 심지어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온라인에 있는 그들에 관한 댓글을 실제로 보면 90% 이상이 좋은 것이고 소수가 부정적인 것이지만 이들은 저절로 부정적인 것에 마음이 쏠려 심리적 고통을 겪는 것입니다. 일반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살면서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동시에 일어나지만 좋지 않은 것에 마음이 따라가기 십상입니다.     육신인 손과 발은 우리가 자유롭게 쓸 수 있지만, 우리 마음은 우리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근육은 많이 사용할수록 강해집니다. 마음은 근육과는 달리 멈추고 휴식할수록 그 힘, 수양력이 강해집니다. 염불, 좌선, 기도 등이 바로 정신을 쉬게 하고 수양력을 높이는 대표적인 정신수양 과목입니다. 마음을 정지하고 뭉치는 시간이 많을수록 수양력이 쌓이고 마음의 힘이 강해져서 여러가지 어려움, 외경에도 흔들리지 않고 인생에서 우리가 안정과 중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육신이 강한 사람이 육신을 마음대로 움직여 쓸 수 있듯, 우리 마음에도 힘이 쌓이면 우리 마음이 순경, 역경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작은 싹은 바람에 뽑히지만 나무가 크면 바람에 쓰러지지 않습니다. 좌선, 염불, 기도 등을 통해 수양공부를 지속하면,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도 낙도생활을 하는 수양의 힘을 얻게 되는데, 이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기도, 명상 등의 수양 시간을 규칙적으로 가져서 우리 마음을 단련하고 뭉쳐야 가능한 것입니다.     좌선, 염불, 기도 뿐 아니라,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화를 참거나, 헛된 욕심을 참거나, 나쁜 습관을 버리는 등의 인욕 공부를 자꾸하면 마음의 힘이 또한 쌓이게 됩니다.     역경이라는 바람을 잘 이용하면 배를 더욱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게 할 수 있듯, 순경, 역경을 통해 인욕공부를 하여 마음을 단련해서 제 방면으로 수양의 힘을 쌓아야 합니다.   필자의 어머니는 50대 말에 대장암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암이 이미 거의 말기인 상태인지라 수술도 할 수 없었고 의사는 6개월 이상 살기 힘들 것이라 말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여러가지를 미리 준비하고 정리해야 된다고 생각했기에 필자는 정직하게 어머니 암 상태를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니는 당신 상태의 심각성을 듣고 놀랐지만, 크게 염려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는 몸이 강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는 항암 치료를 하지 않고 그냥 죽는 날까지 즐겁게 감사하게 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 식구들은 어머니께서 주변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게 하기 위해 겉으로는 쾌활하게 행동하지만 속으로 많이 염려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는 큰 염려를 하지 않고 순간순간 낙도 생활하는 것을 점차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특별 수행인은 아니었지만, 교당을 꾸준히 다니면서 조금씩이나마 좌선, 기도, 염불 등을 평생을 하셨으니 결국 마음에 수양력이 쌓여서 말기암이라는 상황에서도 낙도생활을 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의사의 말과는 달리 어머니는 항암치료도 전혀 받지 않고 6년 이상을 고통없이 살고 가셨습니다.   헬스장에 한 번 갔다고 근육이 튼튼해 지지 않지만 꾸준히 하면 틀림없는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좌선, 염불, 기도를 하거나 현실생활에서 인욕공부를 하는 것도 꾸준히 하면 참으로 우리 마음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달라져야 습관이 변하고 따라서 인생과 운명이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성취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수양 수양 시간 좌선 기도 우리 마음

2023-07-13

'‘에녹의 믿음 기억하자"

    한미나라사랑기도운동연합회(회장 박상철 목사, 이하 기도회)가 지난 26일 애난데일 새한장로교회(담임 한창훈 목사)에서 제 73차 한미나라사랑기도회 예배를 개최했다.     오쾌한 목사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예배는 이은숙 목사가 반주를 했으며 정운익 목사가 대표기도를 했다.     예배 설교자로 나선 방혜식 목사는 ‘에녹의 믿음’을 주제로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브리서 9장 27절의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천국에 있는 것처럼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의 중심에 있는 것 같이 살아가자”고 당부했다.  이어진 특별기도 순서에서는 우성원 장로가 ‘대한민국을 위하여’, 정세권 장로가 ‘미국을 위하여’, 김양식 목사가 ‘세계 복음화를 위하여’를 제목으로 기도한 후 통성으로 합심기도를 이어갔다. 박상철 회장의 축도를 끝으로 예배를 마친 후 참석자들은 애난데일 소재 ‘중화원’에서 오찬을 함께하며 교제의 시간을 가졌다.       한편 기도회는 다음달 25일(화) 열리는 예배 또한 새한장로교회에서 진행하며, 예배 설교는 코이노스영생장로교회 담임 오건 목사가 말씀을 전할 예정이다.  김윤미 기자 kimyoonmi09@gmail.com에녹 믿음 한미나라사랑기도회 예배 예배 설교자 정운익 목사

2023-06-27

[삶과 믿음] 난관의 극복: 대분심, 대정진심

신앙, 수행에 있어서나 제반 인생사에 있어서나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그 목적을 향해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목적지로 가는 길을 안다고 해서 저절로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은 아닙니다. 열심히 운전해야 합니다.  학교 혹은 직장갈 때도 차가 막히는 등 짜증 나는 일이 많이 있듯, 불지로 향하는 수행길에 있어서 혹은 인생의 큰 목적을 이루려고 하는데 있어서 가끔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되는데, 이는 항해를 할 때 파도를 만나는 것과 같이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나태심이 나거나 포기하고 싶을 때 특히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우리는 다시 한번 마음을 추슬러야 하는데, 내게 목적을 향한 ‘용장한전진심’이 있는가를 특히 돌아보아야 합니다. 보통의 전진심이 아니라, 용장한 전진심이 있어야 어려움을 극복하고 크게 성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설사 좌절했더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습니다.     용장한 전진심을 스스로 ‘권면하고 촉진’해야 하는 데 이 같은 마음을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께서 ‘분’이라 하셨습니다.   분(忿)이라는 한자어는 원래 ‘화’를 말합니다. 좌선할 때 이런저런 잡념이 들지만 화가 날 때 우리 마음이 어떠합니까?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화라는 하나의 감정만 남아 있습니다. 좋은 방향은 아니지만 화가 날 때 우리 마음은 어떤 일심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나태심이건 어떤 욕심이건 제반 마장이 올 때 마장을 잘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피하거나 미루거나 혹은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정면돌파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산 종법사님께서는 마장을 극복하기 위해 그 마장을 “하인에게 뺨을 맞은 것처럼, 아버지를 죽인 원수처럼” 대하라고 하시면서 분심을 강조해 주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29세에 왕궁을 나와서 우주의 큰 진리를 깨치기 위해 6년간 히말라야에서 갖가지 고행을 하셨습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진리를 깨치지 못한 자신을 보며 어느 날 보리수 밑에서 큰 결심을 하고 선정에 들었습니다. “비록 내 뼈가 다 부서지고, 살이 여기서 다 썩을지라도 진리를 깨치지 전에 이 자리를 떠나지 않겠다.” 부처님께서는 그 날 대정(大定)에 드셨고 다음 날 이른 아침 새벽별을 보고 대각을 하셨다고 합니다.   나의 부족함을 느끼고 다시 한번 목적을 향해 큰 전진심, 큰 분심을 내어야 일체의 어려움을 잘 극복할 수 있습니다.   분(忿): 분이란 용장한 전진심을 이름이니, 만사를 이루려 할 때 권면하고 촉진하는 원동력이니라.   “만사를 이루려 할 때”라고 소태산 대종사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분심이 마음공부에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목적을 달하게 하는데도 분심이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돈을 벌거나, 커리어를 쌓거나 등. 왜 어떤 사람은 목적을 달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고 어떤 사람은 빨리 목적에 달할까요? 왜 어떤 이는 난관을 잘 극복하고 어떤 이는 오랫동안 헤매고 있을까요? 이는 강한 분심으로 얼마나 용장히 잘 전진하는가 못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과거 중국의 어떤 명장이 수적으로 열세인 자기 군사를 데리고 적과 대치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는 부하들과 우선 다리를 건너서 적진으로 진격하고 뒤에 있는 다리를 끊어버렸습니다. 돌아갈 길이 없어진지라, 전투에서 이기던지 그곳에서 죽던 군사들은 결정하게 되었고, 막다른 상황에서 용장한 전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싸워 그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 마음 안에 어려움이 닥칠 때 이러한 명장이 있는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다리를 누가 끊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결정하고 내가 스스로 명장이 되어야 합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 다음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수도인이 마음을 굳게 세우고 한 번 이루어 보기로 정성을 다하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쉬운 일이 될 것이요, 아무리 쉬운 일이라도 안 하려는 사람과 하다가 중단하는 사람에게는 다 어려운 일이 되니라.” (부촉품12)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대정진심 대분심 대분심 대정진심 소태산 대종사 제반 인생사

2023-06-15

"북한 복음에 동참해 닫힌 문 열자"

      워싱턴 포함 미주 지역 한인 교회들과 탈북민 교회 20여쌍이 자매결연식을 갖고 "북한의 복음"이라는 역사적 사명에 동참했다.    24일 버지니아 맥클린 소재 와싱톤한인교회에서 연합부흥회를 공동 주최한 미주통일광장기도회(대표 이종인 선교하), 북한기독교 총연합회(회장 정형신 목사),  PGM 선교회(국제대표 호성기 목사)에서 김종필 목사(피토스 재단 대표)는 "북한의 복음화는 통일의 지름길"이라며 "핍박받는 북한 주민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해 하나님의 위대함을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잔 숄티 대표(디펜스 포럼) 역시 "북한의 복음화는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이라며 "세계에서 가장 강한 기독교적 믿음을 실천하고 있는 한국민들은 한강의 기적을 이뤘고, 통일을 통해 북한도 자유화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함께 이번 행사의 구심점 역할을 한 이중인 션교사는 "이번 자매결연이 칠십년간 닫힌 북한땅의 문을 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북한의 영혼들을 구해 땅끝까지 복음 전하라는 하나님의 사명을 완수하자"고 이야기 했다. 또한 "자매결연으로 북한이 열리면 수많은 교회가 세워질 것"이라며 미주 한인 교회들의 적극적인 역할을 당부하기도 했다.   한편 단체들은 지난 2년간 매주 화요일 11시, 링컨 기념관 앞에서 ‘통일 광장 기도회’를 진행해 오고 있다.   박세용 기자 spark.jdaily@gmail.com북한 복음 기독교 총연합회 탈북민 교회 기독교적 믿음

2023-05-26

[삶과 믿음] 신앙 수행의 방향로

제가 수년 전 미국에 있는 어떤 한의원에 간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보통 한의사가 되기 위해 한의학, 침구 등의 수업 및 제반 실습 과정을 마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에 개업을 하시는 분들 나이가 보통 지극히 됩니다. 그러나 그 미국 한의사는 20대 후반 정도로 아주 젊은 한의사였습니다. 그분이 저의 진맥을 마치고 어떤 한약을 처방해 주는데 왠지 그분 나이가 젊어서 그런지 그 약에 대한 믿음이 잘 가지 않았습니다. 실지 그 미국 한의사의 실력이 어떤가는 알 수는 없었지만 제가 그 한의사에 관한 믿음이 약하니, 처방한 한약을 장기간 먹어야 된다는 그 말을 듣지 않게 되었습니다.     원불교 경전에는 믿음이 다음으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신(信): 신이란 믿음을 이름이니, 만사를 이루려 할 때 마음을 정하는 원동력(原動力)이니라. 마음공부에 있어서나 어떤 일을 성취하고자 하는 경우에나 그것에 대한 신뢰, 믿음이 아주 주요합니다. 그것에 대한 믿음이 없거나 혹 부족하면 그것을 과감하게 할 마음이 부족할 것이고, 당연히 그것을 성공시킬 가능성이 작아집니다.     부처님께서 “불법의 바다는 오직 믿음으로 들어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수행이라는 것, 깨달음 혹은 마음의 자유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미지로 가는 여행과 같습니다. 잘 아는 길, 여러 번 가 본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확실히 모르는 길을 가는 여정입니다. 마음공부에 있어서 열반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믿고 의지해야 할까요? 수행인은 우선 진리를 깨달음, 부처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이는 흡사 잘 모르는 목적지를 갈 때 지도 혹은 내비게이션을 믿고 운전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부모님, 친구들, 배우자 등 우리를 아끼고 우리가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우리와 같이 깨달음을 얻고 마음의 자유를 얻은 분이 아니며, 나와 같이 많은 고민과 방황을 하며 사는 분들입니다. 그들이 우리를 도와줄 마음이 있어도 그들 역시 영생의 길을 확실히 모르기에 그들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들 말을 그대로 따를 경우 우리 인생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 갈 가능성이 큽니다.     진리를 깨달은 부처님, 예수님 등 성자들께서는 인간 고를 벗어나신 분들이며, 어떻게 해야 고를 벗어나 영생을 얻는가에 관한 길을 ‘확실히’ 아시는 분들입니다.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님께서는 “난 국민학교도 나오지 않아 세상 지식은 없다. 그러나 너희들 부처 만드는 것만은 확실히 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비행기를 탈 때 조종사를 믿듯, 배를 탈 때 항해사를 믿듯, 우리는 진리의 길을 갈 때, 진리를 깨닫고 그 진리에 이르는 길을 아는 부처님의 말씀을 우선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이분들의 말씀은 ‘경전’에 담겨 있습니다. 마음공부를 시작한 사람들은 우선 경전을 잘 읽어 영생이 있다는 것과 영생 길을 잘 찾는 수행법을 알아야 합니다.   차를 열심히 운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확한 방향을 아는 것이 우선이며, 그래야 목적지에 단시간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소태산 대종사님께서 “너 공부길 잡았냐?”라는 질문을 제자들에게 자주 했다고 합니다.   내가 나의 수행에 있어서 또한 내 인생에 있어서, 그 방향, 그 ‘길’을 잘 잡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 길은 성경, 불경 등의 경전에 잘 설명이 되어 있으며 수행인은 우선 성현들의 말씀이 담겨 있는 경전에 큰 믿음을 세우고 이를 잘 공부해서 공부의 방향로를 알고 수행을 시작해야 합니다.     원불교 정전에는 경전이 다음으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경전은 우리의 지정 교서와 참고 경전 등을 이름이니, 이는 공부인으로 하여금 그 공부하는 방향로를 알게 하기 위함이요.”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방향로 신앙 신앙 수행 원불교 경전 보통 한의사

2023-05-18

[삶과 믿음] 영적 전쟁: 아군과 적군

신앙, 수행을 하는  것, 현실생활에서 진리적 삶을 산다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다수가 영생 혹은 진리적 가르침에 큰 관심이 없고 세속적인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기에, 경쟁사회에서 바른 삶을 사는 것이 흔히 영적인 전쟁을 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신앙, 수행자들은 매일 혹은 매 순간 우리는 헛된 욕심, 게으름, 화, 질투, 비교심 등 우리 마음에서 수없이 일어나는 마군들과 대치하며 싸워야  합니다.   내 신앙, 수행 생활, 나의 가치관을 잘 이해해 주지 못 하는 배우자, 정직하지 못한 직장 동료 혹은 직장 분위기, 훈련 가려고 하는데 부족한 시간과 돈 등 우리 신앙, 수행을  방해하는 여러 외적 환경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깨달음의 길로 가는 여정에 있어서 우리의 진정한 적, 방해꾼은 사실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탐욕, 나태심, 욕속심 등이 바로 그것이며, 이가 가장 큰 마장이며 방해꾼입니다. 신앙 수행인들은 세상과 그리고 타인과 싸우기 전에 우리 마음속에 내재하는 이들 어둠의 적과 우선 싸워야 합니다. 이 영적 전쟁을 이슬람에서는 ‘지하드’라고 합니다.     원불교 교전을 보면 다른 종교 경전과 같이 수많은 군사 용어가 나옵니다. ‘항복’ ‘법마상전급’ ‘백전백승’ ‘군인’ ‘도원수’ 등. 특히 ‘전쟁’이라는 용어가 많습니다. 전투와 전쟁, 둘 다 싸움을 의미합니다. 전투가 부분적, 지역적, 단기적인 싸움이라면, 전쟁은 규모가 훨씬 큰 장기적 싸움을 의미합니다. 원불교 경전을 보면 어디를 보아도 전투라는 단어는 없고 ‘전쟁’이라는 단어를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님께서 많이 사용하셨습니다.   우리 마음공부는 전투가 아니라 전쟁입니다. 즉 영적 전쟁은 장기전이며 가장 근본적 싸움입니다.   대종사 선원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공부법은 난리 세상을 평정할 병법(兵法)이요, 그대들은 그 병법을 배우는 훈련생과 같다 하노니, 그 난리란 곧 세상 사람의 마음 나라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난리라, 마음 나라는 원래 온전하고 평안하여 밝고 깨끗한 것이나, 사욕의 마군을 따라 어둡고 탁해지며 복잡하고 요란해져서 한없는 세상에 길이 평안할 날이 적으므로, 이와 같은 중생들의 생활하는 모양을 마음 난리라 한 것이요, 병법이란 곧 우리의 마음 가운데 모든 마군을항복 받는 법이니 그 법은 바로 정(定)과 혜(慧)와 계(戒)를 닦으며, 법(法)과 마(魔)를 구분하는 우리의 수행 길이라, 이것이 곧 더할 수 없는 세계 정란(靖亂)의 큰 병법이니라.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이 마음 난리는 난리로 생각하지도 아니하나니 어찌 그 본말을 안다 하리오. 개인 가정과 사회 국가의 크고 작은 모든 전쟁도 그 근본을 추구해 본다면 다 이 사람의 마음 난리로 인하여 발단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마음 난리는 모든 난리의 근원인 동시에 제일 큰 난리가 되고, 이 마음 난리를 평정하는 법이 모든 법의 조종인 동시에 제일 큰 병법이 되니라. 그런즉, 그대들은 이 뜻을 잘 알아서 정과 혜를 부지런히 닦고 계율을 죽기로써 지키라. 오래오래 쉬지 아니하고 반복 수행하면 마침내 모든 마군을항복 받을 것이니, 그리된다면법강항마의법위를 얻게 되는 동시에 마음 난리에 편할 날이 없는 이 세상을 평정하는 훌륭한 도원수(都元帥)가 될 것으로 확신하노라.”(대종경수행품58)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열심히 싸우는 것도 주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주요한 것은 훌륭한 아군을 얻는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을 연합군의 승리로 이끈 주요 계기는 미국의 참전이었습니다. 마음 나라에서 일어나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무엇이 아군인지, 무엇이 적군인지를 분명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 수행과 인생을 돕는 아군을 신(信), 분(忿), 의(疑), 성(誠)이라고 하시며, 이를 ‘진행사조(進行四條)’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믿음, 분발, 의심, 정성이 우리 수행과 인생길을 진행, 진척시켜 주는 아군입니다.     수행과 인생 성공을 방해하는 적군을 ‘사연사조(捨捐四條)’라고 하시고, 이는 불신(不信), 탐욕(貪慾), 나(懶), 우(愚)라 말씀하셨습니다. 즉 믿음이 약하거나 없는 것, 헛된 욕심, 나태심, 어리석음이 바로 사람들이 어떤 목적을 이루는 데 있어서 사연(捨捐) 즉 버려야 하는 네 가지 적들이라는 것입니다.   훌륭한 도반을 만나서 스승을 만나고, 훌륭한 교당, 교회를 만나는 것이 주요합니다. 그러나 내 마음에 진리를 향한 혹은 어떤 목표를 향한 강한 믿음, 분발, 의심, 정성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스승과 도반이 있어도 그것이 큰 의미가 없습니다. 좋은 좌선 방석을 샀다고 하더라고 자기가 좌선을 하지 않는 이상 좋은 방석 자체가 우리 수행을 깊게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유도성 /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전쟁 아군 신앙 수행인들 우리 마음공부 신앙 수행자들

2023-04-20

[삶과 믿음] 잠깐만

한국에서 경치가 아주 좋은 절벽을 소유하고 있는 관광지가 있습니다. 많은 관광객 때문에 시의 큰 수입원이 되기도 합니다. 문제는 앞의 광활한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그 절벽에서 많은 사람이 석양에 투신자살하는 것입니다. 시의회에서는 여러 번 문제 제기가 되었고, 자살 방지를 위해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습니다. 어떤 이는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있는 조각상을 세우자고 했고 (네가 죽으면 살아 있는 부모 마음이 어떻게 되겠느냐는 메시지) 어떤 이는 성경, 불경 등의 좋은 문구를 주변 바위에 새겨보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 효과가 없었습니다. 한 젊은이가 이런 아이디어를 내었고 이 단순한 방법이 자살률을 떨어뜨리는데 큰 효과를 냈습니다. 바위에 한 단어만을 새기자는 아이디어였는데 그 단어는 바로 ‘잠깐만!’이었습니다. 즉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 ‘잠깐’ 멈추고 생각, 행동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말을 하고, 행동할 때, 잠깐 멈추어서 말을 하고 행동을 하면 수많은 실수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차 사고가 사거리에서 많이 일어납니다. 사거리에 접근할 때 차를 우선 멈추듯, 우리는 어떤 어려움을 당할 때(화가 나는 순간 등등) 우선 ‘잠깐’ 멈추어야 하고, 이가 우리의 생활 가운데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주요한 신앙, 수행의 방법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멈추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화가 나는 상황에서 심호흡을 여러 번 할 수도 있고, (이는 아주 단순하지만 큰 효과가 있습니다) 혹은 그 상황을 잠시 피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교도님께서는 아내가 화가 나서 잔소리를 많이 하는 것이 큰 경계였습니다. 집에서 아내가 짜증을 내는 소리를 하기 시작하면, 아내를 직접 대하기보다, 잠깐 집에 나와서 산책을 하고 다시 집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많은 경우 자기도 화가 가라앉고 아내도 화가 가라앉는다는 것입니다. 혹은 화가 날 때, 내가 여기서 그냥 화를 내버리면 상황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 상기하며 겸손한 마음을 가지면서 자비롭고 지혜로운 말을 상대에게 할 수도 있습니다. 즉 방법은 다양하지만 핵심은 우리가 그 자리에서 잘 ‘멈추는’ 것입니다.     옛날 중국 절에 십 대의 젊은 행자 스님이 있었습니다. 땔 나무를 산에서 구하고 부엌에서 밥을 하는 것이 그의 소임이었는데, 한 날은 밤중에 태풍이 심하게 불어 다음 날 아침 나무를 구하는 숲속으로 접근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빈 지게를 지고 돌아와 태풍으로 많은 나뭇가지가 땅에 떨어져 숲에 접근하기가 어려웠다고 주지 스님께 보고했습니다. 길가의 많은 나뭇가지 때문에 땔나무를 구하러 숲에서 갈 수 없었다고…. 그러자 주지 스님께서는 “그냥 길에 떨어진 나무를 주워오면 되지 않았느냐”고 경책을 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같이 생활 가운데 할 수 있는 신앙 수행의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배우자 때문에 자식 때문에 혹은 직장 상사 때문에 신앙, 수행을 못 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땅에 떨어진 나무 때문에 땔나무를 못 구해왔다고 하는 그 행자와 같습니다. 그 사람과 어떤 상황 때문에 신앙, 수행을 못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그 상황이 우리에게 마음공부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는 참으로 이러한 풍성한 공부의 재료, 기회가 많이 있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상황이 나를 성장시켜주는 마음공부의 기회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내게 신앙 수행을 원숙하게 할 기회를 제공한다고 생각하면, 나를 괴롭히는 사람에 대한 원망과 불평이 많이 사라지고, 원망과 화나는 마음이 고마운 마음, 평온한 마음으로 바뀌게 됩니다.   사람들은 흔히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또한 세상이 수많은 신앙, 수행인이 있는데 왜 세상이 좋게 빨리 바뀌지 않느냐고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가서 혹은 절에 가서 신앙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생활 가운데 현실 가운데 신앙, 수행할 수 있다 그리고 이가 참다운 신앙 수행이라고 하는 사고의 전환이 바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원불교 한 교무님의 수표에는 이 같은 문구가 쓰여 있었습니다. “It is not a problem, but an opportunity. (그것은 문제가 아니라 기회다)” 현실의 여러 가지 힘든 상황이 마음공부의 기회, 영적 성장의 기회, 업장 소멸의 기회, 상대와의 화합의 기회, 성공의 기회라는 것입니다.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신앙 수행인 기회 상대 재료 기회

2023-03-23

[삶과 믿음] 화가 나는 순간의 명상법

선과 명상이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해마다 명상센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으며 명상에 관한 과학적, 의학적 결과가 많이 발표됨으로써 선과 명상이 종교와 관계없이 차차 일반인에게 생활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수행을 위한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을 위해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기적으로 앉아서 하는 좌선도 주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생활 가운데 어떻게 평화롭고 안정된 마음을 유지하는가가 더욱 주요한 문제가 됩니다. 특히 힘든 상황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 선심(禪心)을 유지하는가가 큰 관건입니다. 특히 화가 나고 힘든 상황을 만났을 때 어떻게 마음을 중심을 잃지 않고, 그 순간에 평온을 유지하는가에 대해 원불교 정전 ‘무시선법’에 그 방법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고 경계를 당할 때 바로 선심을 유지할 수 있는 것에 관해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그 ‘방법’을 아는 것이 주요하다고 말합니다.     “이 법이 심히 어려운 것 같으나 닦는 법만 자상히 알고 보면 괭이를 든 농부도 선을 할 수 있고, 망치를 든 공장(工匠)도 선을 할 수 있으며, 주판을 든 점원도 선을 할 수 있고, 정사를 잡은 관리도 선을 할 수 있으며 내왕하면서도 선을 할 수 있고, 집에서도 선을 할 수 있나니 어찌 구차히 처소를 택하며 동정을 말하리오.”   힘든 경계를 당하는 순간 선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대종사께서는 단계적으로 설명하고 소 길들이기에 비유합니다.   “처음으로 선을 닦는 사람은 마음이 마음대로 잘 되지 아니하여 마치 저 소 길들이기와 흡사하나니 잠깐이라도 마음의 고삐를 놓고 보면 곧 도심을 상하게 되니라. 그러므로, 아무리 욕심나는 경계를 대할지라도 끝까지 싸우는 정신을 놓지 아니하고 힘써 행한즉슨 마음이 차차 조숙(調熟)되어 마음을 마음대로 하는 지경에 이르나니, 경계를 대할 때마다 공부할 때가 돌아온 것을 염두에 잊지 말고 항상 끌리고 안 끌리는 대중만 잡아갈지니라.”   잘 길들지 않는 우리 마음의 소를 다스리는 첫 번째 방법은 집심(執心)입니다. 즉 길들지 않은 우리 마음의 소가 아무 데나 가려고 하거나 게으름을 부릴 때  그 ‘마음의 고삐’를 잘 잡고 ‘아무리 욕심나는 경계를 대할지라도 끝까지 싸우는 정신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바로 그 첫 번째 방법입니다.   욕심나는 경계는 다양합니다. 옛 습관에 따라 해야 할 일을 미루려 하거나 습관적으로 남을 판단하려고 하거나, 어떤 상황에서 화를 내려고 하거나 등 우리 마음이 끌리는 욕심 나는 경계는 다양합니다.   대종사 재세시 한 제자가 술을 끊지 못해서 힘들어했습니다. 어느 날 그 제자가 어떤 시골 술집 앞을 지나가는데 그분이 자기 스스로 “이놈, 이놈” 하고 자기를 크게 책망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가 바로 우리의 ‘마음의 고삐’를 추어 잡는 것이여, ‘아무리 욕심나는 경계를 대할지라도 끝까지 싸우는 정신을 놓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개를 키울 때 개가 아니해야 할 행동을 할 때 때론 우리가 따끔하게 개를 꾸짖어야 하는 것처럼 -안 그러면 개가 좋지 못한 버릇이 습관화됩니다- 초보 수행자들은 항상 자기 자신을 법에 비추어 꾸짖어 ‘마음의 고삐’를 추어 잡아야 합니다. 어른이 되면 주변에서 진정한 충고를 하는 사람이 차차 사라지기에, 특별한 스승님이 계시지 않는 한, 자기 발전을 위해서 스스로가 자신을 꾸짖고 경책을 하는 것이 아주 주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큰 성장을 하기가 힘들어집니다.   대종사께서는 특히 “경계를 대할 때마다 공부할 때가 돌아온 것을 염두에 잊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명상법 화가 우리 마음 초보 수행자들 대종사 재세시

2023-02-16

[삶과 믿음] 신앙 수행의 열매

어느 미국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로부터 심한 학대를 받고 자랐으며, 사춘기 이후 그의 마음은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복수로 가득 찼습니다. 시간이 지나 아버지는 연로해졌고, 아버지는 요양원에 기거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를 뵈러 요양원에 가서 아버지가 머무는 방에 들어가니 아버지의 호흡을 지탱하는 산소호흡기 튜버가 빠져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자신을 그렇게 학대한 아버지에게 마침내 복수할 기회다, 혹은 아버지가 이제 진리의 벌을 받는구나 등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간호사를 부르지 않고 그냥 가버릴까 하는 생각도 났습니다. 이렇게 되면 세상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아버지가 자연스럽게 사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마음을 돌려 즉시 간호사를 불렀고 아버지는 살아났습니다.   몇 년 뒤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큰 사고를 당했습니다. 운 좋게 그는 골반만 부러졌는데 의사는 이것이 기적이라 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미국에서 최면치료를 하는 정신과 의사분을 알게 되어 최면치료를 받습니다. 최면 중에 그의 무의식을 보게 된 의사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합니다. “당신은 실지 그 오토바이 사고로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그때 아버지를 용서했기에 생사를 가르는 진리의 시험에서 당신은 무사히 통과해서, 이제 아버지와의 악연은 끝이 났습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용서하기 힘든 사람을 용서하고, 가정에서 직장에서 여러 가지 억울하고 참기 어려운 상황을 경험합니다. 수없이 인내해야 할 상황이 현실생활 가운데 자주 발생합니다. 현실 가운데 어려운 일들을 잘 참고 극복하고 공부로 승화시키는 일은 때론 부처님께서 히말라야 산에서 고행하는 것만큼 더 힘들지 모릅니다.   종교 인구 조사를 보면 한국에 그리고 미국에 많은 신앙, 수행인들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왜 종교 인구가 많은데 세상이 크게 바뀌지 않냐고 말합니다. 이는 많은 경우 종교적 가르침이 생활 속에서 구현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절에서, 교회 내에서 신앙하고 수행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 바로 나의 신앙과 수행의 활동 장입니다. 우리 생활이 우리 신앙 수행의 살아있는 무대입니다.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정기훈련 즉 3개월간의 집중적인 신앙 수행 기간을 마치고 마지막 법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의 이 해제식은 작은 선원에는 해제하는 것이나, 큰 선원에는 다시 결제하는 것이니, 만일 이 식을 오직 해제식으로만 아는 사람은 아직 큰 공부의 법을 알지 못함이니라.”   신앙, 수행의 열매는 우리 삶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야 신앙인들이 신용을 회복하게 되고 세상도 실지 좋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삶과 믿음 신앙 수행 신앙 수행인들 그때 아버지 우리 신앙

2023-01-26

[삶과 믿음] 바른 길, 행복의 길

오래전 시카고 근교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겨울 저녁 어느 날, 한 여인이 아기를 안고 기차를 탔습니다. 그 여인은 기차 승무원과 옆자리에 앉아 있는 신사에게 00역에서 자신을 내리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바로 잠이 들었습니다. 한참을 지나 옆자리에 있던 신사가 여인을 깨웠습니다. 신사는 다음 역이 바로 당신이 말한 역이니 빨리 내릴 준비를 하라고 여인에게 알려줬습니다. 여인은 기차가 서자 황급히 짐을 챙겨 그 역에 내렸습니다.     몇 시간 후, 승무원이 열차를 순회하다가 아기를 안은 여인이 어디 있느냐고 신사에게 물었습니다. 그 신사는 그 여인은 이전 역에서 내렸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여인이 내린 역은 이미 오래전에 폐쇄된 역으로, 기차는 정비를 위해 잠시 멈추었을 뿐입니다. 춥고 눈보라가 치는 날 그 역에 여인이 내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차장은 당황해서 바로 기차를 세우게 하고, 몇 사람과 함께 황급히 그 역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이미 아이와 함께 얼어 죽어 있었습니다.   여인이 죽은 이유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신사는 훌륭한 사람이었고, 그 여인을 돕고자 했습니다. 여인이 죽은 이유는 명확합니다. 여인은 승무원이 아닌 길을 잘 모르는 신사에게 길을 물었던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부모님, 배우자, 친구 등 우리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 신사처럼 우리를 도와주려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유와 행복에 이르는 길을 잘 아는 사람일까요? 과연 그들은 스스로 자유롭고 행복한 인생을 잘 사는 사람일까요?   우리가 영생의 길, 행복의 길을 물을 때 배우자, 부모, 친구에게 물을 것이 아니라 진리를 깨치고 영생 길을 확실히 아는 예수님, 부처님 같은 성자들에게 길을 물어야 합니다. 진리를 대각한 분들만이 정로(正路)를 정확히 아시기 때문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살지 못합니다. 그 근본 원인은 다름 아닌 많은 사람이 행복하기를 원하나 사람들이 행복과 자유에 이르는 길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다수의 사람이 가는 인생길, 우리에게 익숙한 길이 결코 영생의 행복으로 이르는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험해서 그곳을 찾아오는 사람이 적음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마 7:13-14)   모르는 길을 지도 혹은 내비게이션 없이 그냥 운전해 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일까요? 시간을 내어 성자, 현성들의 경전을 보고 공부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이 됐건, 불경이 됐건 경전(經典)을 보아 현재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영생으로 가는 길인가, 멸망으로 이르는 길인가를 잘 구분해야 합니다.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면, 차가 바른길을 못 가는 경우 내비게이션에 다시 주소를 재입력하듯, 우리는 항상 성현의 말씀에 따라 우리 인생의 방향을 재입력해야 합니다. 경(經)이란 바로 ‘길’을 말하는 것이요, 내 인생에 고통이 있다면 우선 내가 정로(正路)가 아닌 길을 걷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행복 기차 승무원과 부모님 배우자 배우자 부모

2022-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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