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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문학상 이야기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계기로, 책이 부쩍 많이 팔리고, 문학상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도 크게 높아졌다고 한다.   상이란 아무튼 좋은 것이다. 받는 이에게는 영광스러운 격려가 되고, 독자들에게는 믿고 읽을 기회를 제공한다. 상금도 물론 고맙고, 사회 전체에 미치는 선한 영향력도 보람찬 덤이다. 그래서 누구나 받고 싶어 한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속으로 상 싫어하는 사람 없을 것이다. 공정성에 대한 시비가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것도 그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좋은 상도 너무 흔하면 가치가 떨어지게 마련이다.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지금 우리 세상에는 크고 작은 문학상이 참 많다. 종류도 다양하다. 너무 많은 거 아니냐는 걱정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한국의 경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22년 조사에 따르면, 주요 문학상 숫자가 350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니까, 10년이면 문학상을 받은 작가가 무려 3500명에 이른다는 이야기다. 문학상 하나 못 받으면 작가 대접받기도 어렵다는 말도 될 것 같다.   남가주 한인 사회에도 열 개가 넘는 문학상이 있고, 한국의 문학상들도 해외작가상 부문을 따로 만들어 디아스포라 문인을 대접하는 예가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문인들의 약력을 보면, 무슨무슨 문학상을 받았다는 항목이 빠지지 않는데, 그것도 하나둘이 아니고 여러 개의 문학상으로 빛나는 작가들이 많다. 신기하기도 하고, 은근히 부럽기도 하다.   사소한 일이지만, 미주 지역의 문학상은 대부분이 문인 스스로 응모하는 형식이다. “상 받고 싶으니, 나에게 주시오”라는 식인 것이다. 평론 분야가 거의 황무지 수준이고, 발표된 작품을 모두 꼼꼼하게 챙겨 읽을 여유도 없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을 이해는 하지만, 이건 도무지 선비가 할 일이 아니다. (염치없이 문학상을 받은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아예 문학상 따위는 거들떠보지 않는 올곧은 문인도 적지 않다. 문학상이란 결국 문학이란 무엇인가? 작가란 누구인가? 라는 근본적 질문과 맞닿아 있다고 믿는 것이다.   예술상이 다 그렇겠지만, 문학상이란 올림픽 메달 같은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운동경기처럼 등수를 판가름할 객관적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예술에 등수를 매긴다는 생각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매우 다양한 기능과 성격을 가진 문학작품을 한두 가지 단세포적 기준과 규범으로 평가하는 것은 매우 편협하고 잔인한 행위다.   그러다 보니, 상을 둘러싼 말도 많아지게 마련이다.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노벨문학상도 구설에 시달리곤 한다. 정치적 계산, 지역 안배, 성별에 대한 배려 등등…. 모든 사람을 만족하게 할 작가를 선정하기란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3분지 1은 ‘최선의 선정’이 아닌 ‘이상한 선정’이었다는 악담도 나온다.   인류 문학사를 빛낸 문호들 가운데도 노벨문학상과 연이 없는 작가가 많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 체호프, 고리키, 아일랜드의 윌리엄 예이츠, 제임스 조이스, 독일 문학의 거장 라이나 마리아 릴케,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 마크 트웨인, 존 업다이크 등등이다. 사르트르는 노벨상을 공식적으로 거부했다.   그런가 하면, 전혀 뜻밖의 인물을 선정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2016년 가수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건(?)은 아직도 이런저런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아무려나, 오랜 세월 노벨문학상을 구걸하듯 선망해온 한국 문단의 구차함을 통쾌하게 날려준 한강 작가에게 머리 숙여 감사한다.   노벨문학상을 받을 다음번 한국 작가는 누구일까?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문학상 이야기 노벨문학상 수상자 주요 문학상 문학상 하나

2024-11-14

[문화산책] 시인 도산, 좋은 인간 도산

매해 11월 9일은 ‘도산 안창호의 날’이다. 캘리포니아 주 의회가 도산 안창호(1878∼1938) 선생을 기리기 위해, 생일인 11월 9일을 가주 기념일로 선포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그날을 무심하게 그냥 지나치곤 한다. 그런 날이 있는지도 모르는 이도 적지 않다.   민족 지도자, 독립운동가, 교육자 도산 선생은 우리 민족과 미주 한인 사회의 큰 정신적 스승이시다. 선생께서는 가주에서 민족 지도자로 활동하며, 대한인국민회 창립 등 한인 사회 기틀을 다지셨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좋은 사람, 좋은 어른, 좋은 남편, 좋은 부모로서의 도산이 솔선수범 보여준 인간적 면모를 새롭게 인식하고 배우는 일이다. 방향을 잃고 허둥대는 오늘의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겨, 삶의 바른 길잡이로 삼아야 할 덕목이다.   또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도산은 좋은 시인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도산이 지은 창가(唱歌) 작품은 거국가, 점진가, 흥사단 입단가, 격검가 등 25편이 전해지는데, 이 창가들은 선구적 면모를 갖추고 있어서, 우리 시문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문학사적 의미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것이 학자들의 평가다.     문학평론가 이형권 교수는 시인 도산을 이렇게 평가한다. “도산의 창가는 그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고, 애국 계몽기 혹은 근대계몽기였던 당시의 시대적 흐름과도 밀접히 관련을 맺는다. 그의 창가 작품은 당대의 문단 상황에 견주어볼 때 상당한 수준을 확보한 것이었다. 그는 명민한 시적 감수성을 가지고 역사의식 혹은 시대 감각을 노래한 선구적 시인이었다.”   이처럼 도산은 구한말의 신지식인으로서의 지적인 능력과 시대 감각, 출중한 연설 능력에 더해 시인으로서의 창작 능력도 갖춘 인물이었다. 또한, ‘애국가’ 가사도 도산의 작품이라는 설이 아직도 유효하다. ‘애국가’의 원작자이든 아니든 도산은 ‘애국가’가 오늘날의 가사로 정착되는 데에는 일정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도산은 창가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많은 작품을 창작했고, 독립협회와 신민회에서 활동하면서 애국계몽사상을 전파하는 매개로 창가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창가가 지니는 강한 호소력과 동화력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노랫말도 뛰어나지만, 더 소중하고 깊게 살펴야 할 것은 인간 도산의 삶 밑바닥에 진하게 깔려있는 시정신이다. 그 시정신의 바탕은 사랑의 마음이다. 도산의 편지 몇 구절만 읽어보면 바로 실감할 수 있다. 부인과 아들, 딸에게 보낸 편지에는 절절한 사랑과 시심(詩心)이 가득하다. 그가 얼마나 정이 많고 자상한 사람인지 느껴져 옷깃을 여미게 된다.     눈물 나는 구절도 많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 나라 위한 일을 하느라 가족을 소홀히 한 것에 대한 미안함을 토로하는 구절, “식구들의 사진이라도 보내어 주시오”라는 부탁, “내년 봄이나 여름에는 집에 다니어 오려고 하는데 그때에 힘없는 남편이라고 괄시나 하지 마소서”라는 당부의 말, 맏아들에게는 아비보다 나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고, 딸들에게는 화초에 물 잘 주라고 이르는 자상함 등등, 참으로 애틋한 시인의 마음이다.   도산 사상의 바탕은 사랑이다. 넓게 보면 도산의 치열한 독립운동의 바탕을 이루는 것도 겨레 사랑, 사람 사랑으로 뭉쳐진 시인의 마음일 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아내 혜련, (…) 사랑 이것이 인생의 밟아나갈 최고 진리입니다. 인생의 모든 행복은 인류 간의 화평에서 나오고 화평은 사랑에서 나는 때문입니다.” -도산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    (더 상세하게 알고 싶은 분은 문학평론가 이형권 교수(충남대)의 논문 ‘도산 안창호 창가의 문학사적 의미’를 참조하기 바란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도산 도산 안창호 교육자 도산 도산 사상

2024-11-07

[문화산책] 남가주 한인연극 초창기와 ‘모임극회’

남가주 한인사회 연극의 역사를 정리하다 보면 첫 부분에서 ‘모임극회’라는 단체를 만나게 된다. 젊은이들이 모인 순수한 극단이다. ‘모임극회’의 첫 공연작품은 이근삼 작, 김석만 연출, 박무영 박준성 기획의 ‘유랑극단’으로 1978년 7월29일-30일, LA에서 공연되었다. 백광호, 장태한, 박대영, 김낙인 등 30여명이 열연한 이 연극은 유랑극단의 떠돌이 삶이 고달픈 이민생활과 묘하게 겹쳐지면서 많은 공감을 얻었다.   이 공연 이전의 연극으로는, 남가주 한인연극동인회(회장 이평재)가 유치진 작, 황영애 각색, 이평재 연출 ‘처용의 노래’와 김시몬 작, 이평재 연출 ‘우수의 계절’을 1976년 9월30일, 공연했다는 기록이 전부다. (내가 이민 오기 전의 일이라서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남가주 한인연극동인회’의 공연은 이 한편으로 그친 것 같다. 이에 비해 ‘모임극회’는 창단 공연 이후 해마다 공연을 이어가면서, 김지하 작 ‘금관의 예수’, 황석영 작 ‘돼지꿈’ 등을 공연했다. 이어서 80년대에 들어서, 한국에서 연극을 했던 전문연극인들의 ‘재미한인연극인협회’나 젊은 연극인들의 단체인 ‘극단 1981’ 등을 창단하고, 소극장들도 생기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이렇게 보면, 남가주 한인 연극의 기초는 젊은이들의 자생적 극단에 의해 다져진 셈이다. 그 중심에는 연출가 김석만이 있었다. 서울대 문리대 연극반에서 열성적으로 활동하다가 가족이민으로 미국에 온 김석만은 당시 LA커뮤니티칼리지(LACC)에 다니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모임을 만들어 함께 세상 공부도 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고국의 학생들을 돕고, 절친 김민기가 한국에서 하는 야학을 돕기도 하면서 차근차근 결속을 다졌다. 그렇게 몇 년간 바닥을 다진 뒤에 자연스럽게 극단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 모임이 올해로 50주년을 맞았다. 그 풋풋하던 젊은이들이 이제 서로 건강 걱정을 하고 손주 자랑을 하며 낄낄거리는 나이가 되었다. 그 ‘나이 먹은 젊은이’들이 모여 50주년 기념 잔치를 열어 추억의 꽃을 피우고, 김민기의 노래를 듣고 함께 부른다. 참 보기 좋다.   그리고, 연극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김석만은 한국의 대표 연출가 중 한 사람이 되었고, 대학교수로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모임극회’는 젊은이들의 극단답게 현실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사회에 보탬이 되는 연극을 공연했다. 예를 들어, 두 번째 공연작인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는 당시 미주한인사회의 큰 관심사였던 이철수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이철수 구명운동에도 적극 동참했고, 손튼 와일더 작, 정호영 연출 ‘우리 읍내’는 백광흠 구명운동을 위한 공연이었다.   또한, 사이구 LA폭동 다음 해인 1993년에 공연된 ‘민들레 아리랑’은 폭동에 대한 미주 한인들의 생각과 바람을 분명하게 보여준 연극으로 화제를 모았다. 영어 제목은 〈LosT Angeles〉로 매우 상징적이고 날카로운 풍자다.   장소현 원작, 김석만 연출로 무대화된 이 작품은 LA시가 운영하는 극장에서 우리말과 영어 이중언어로 공연되어 매우 바람직한 공연 형태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연극 제작과정에서도 연극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폭동에 대해서 진지하게 공부하고, 실제로 폭동을 겪은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공동창작으로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거쳤다. 그렇게 해서, 절실한 현실감각이 생동감 있게 움직이는 강렬한 무대가 만들어졌다. 매우 소중한 경험이었다.   마지막 장면, 출연자들이 모두 나와 김민기의 ‘철망 앞에서’를 합창하던 모습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자 총을 내리고 두 손 마주 잡고 힘없이 서 있는 녹슨 철조망을 걷어 버려요.”   ‘모임극회’의 다음 공연을 기다린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한인연극 초창기와 남가주 한인연극동인회 남가주 한인사회 연출가 김석만

2024-10-31

[문화산책] 우리 사회의 시각적 표정

남가주 한인사회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인 이상모 씨가 ‘Logo LA+plus’라는 제목의 흥미롭고 의미도 깊은 책을 발간했다. 그가 지난 50여년간 디자인한 수없이 많은 기업체, 회사의 로고, 심볼 마크 디자인 중 234점을 엄선해서 실제 사용사례와 함께 소개한 아담한 책이다.   이상모 씨는 남가주 한인사회 광고와 그래픽 디자인 분야의 터줏대감이자 산 증인이다. 50년도 넘는 긴 세월을 철저한 장인정신으로 고집스럽게 외길을 걸어왔고, 지금도 현역으로 활약하고 있으니 감탄스럽고 존경스럽다.   이 책은 한 디자이너의 작품집이라는 의미를 훨씬 넘어서서, 남가주 한인사회의 성장 과정, 특히 경제 발전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 자료로도 가치를 갖는다. 기업체와 회사의 변화무쌍한 흥망성쇠를 구체적인 조형을 통해 실감 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책에 실린 작품들을 보노라면 “아, 옛날에 이런 회사가 있었지…로고를 보니 생생하게 기억나네”라고 기억을 되살리게 된다. 바로 이것이 디자인의 힘이다.   한 사회의 미의식이나 품격을 보여주는 시각적 요소는 다양하지만, 그중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생활 속의 미술들이다. 크게는 도시계획부터 작게는 점포의 간판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광고나 다양한 인쇄물에 이르는 그래픽 디자인들….그런 시각적 요소들은 사회의 수준을 보여준다.   기업을 위한 그래픽 디자인이나 광고 디자인은 그 사회의 역사, 특히 경제 상황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이런 부분의 역사를 살펴보고 갈무리하는 작업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흔히 상업적 광고 디자인 작품은 소비되어버리고 마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한 사회, 한 시대를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다.   미국 내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LA코리아타운은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중반에 이르는 기간에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이민의 활성화로 한인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상권이 형성되고, 한국 대기업이 지사를 개설하고, 언론사도 문을 열고, 한인 은행 같은 규모가 큰 업체들이 설립되면서, 수준 높은 디자인에 대한 요구도 생겨났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광고기획사들이 문을 열고,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활동도 본격적으로 활발해졌다. 대부분 한국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이민 온 전문가들이 사무실을 열고 활동했는데, 많은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수준 높은 디자인 작품을 남겼다. 디자이너 이상모 씨는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대표적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초창기부터 활약하던 디자이너 중 아직도 현역으로 작업하는 작가는 이상모 씨가 거의 유일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한인사회 초창기의 그래픽 디자인 자료들은 별로 남아있지도 않고, 제대로 정리되지 못했다. 특히 컴퓨터를 사용하기 이전의 자료들은 없어져 버린 것이 많다.   이런 현실에서 이상모 씨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자신의 작품을 깐깐하게 갈무리하고 정리해 놓아서, 그 작품들을 통해 한인사회 디자인 역사의 한 모습을 읽을 수 있다.   흔히 남가주 한인사회를 평할 때, ‘서울시 나성구’라고 불릴 정도로 한국사회의 판박이, 그것도 변두리 수준의 베끼기라고 평가하는 시각이 많은데, 그것은 그릇된 편견이다. 실제로 살펴보면 그 시대 우리 사회의 특성이 잘 녹아 있고, 한국의 장점과 미국사회의 좋은 점이 조화 융합을 이루거나, 한국적 가치관에 미국적 정신세계를 더한 바람직한 예들도 적지 않다.   이상모 씨의 그래픽 디자인 작품들도 그런 긍정적 사례에 속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래서, 더욱 소중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 것이다.  장소현 / 미술평론가·시인문화산책 사회 시각 그래픽 디자인들 한인사회 디자인 남가주 한인사회

2024-10-24

[문화산책] 미술의 다양한 기능

한국에 사는 내 친구는 출석하는 성당에 미술반을 만들어 열심히 지도하고 있다. 학생들은 거의 모두가 ‘할머니 병아리 화가’들인데 그림이라는 걸 난생 처음 그려보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어찌나 정성껏 가르치는지 인기가 대단한 모양이다. 지도하면서 오히려 많은 것을 배우고 보람을 느낀다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재능기부인 셈인데 아주 바람직한 일이다.   그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는 중에 “이왕이면 무작정 그리지 말고, 생각을 담아 그리도록 지도하면 더 좋지 않겠나?”라고 어줍잖은 훈수를 두었다. 그랬더니 곧바로 친구의 명쾌한 대답이 돌아왔다. “골치 아픈 생각하지 않고, 편안해지고 싶어서 그림 그리는 사람들에게 무슨 생각을 하라고 권하겠나?”   과연 명답이다. 나의 좁은 생각을 꾸짖는 죽비 같은 명답이다. 우리의 삶에서 미술의 기능은 매우 다양하고, 모든 쓰임새가 다 소중하다. 어느 하나만 고집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미술사를 공부하고, 미술평론을 하는 이른바 전문가의 처지이므로, 화가들의 작품과 미술의 쓰임새를 이야기할 때, 예술성이나 작가의 세계관, 사회적 역할 등을 중심으로 언급한다. 그래서 미술을 업으로 하는 작가들에게 무작정 그리지 말고 생각을 하면서 그려야 하고, 보는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학생이나 취미 화가, 감상자들이 생각하는 미술의 기능은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실제로 많은 취미 화가들은 골치 아픈 세상 생각을 잠시 접어두고, 자기 내면에 잠자고 있는 또 하나의 자아와 대화를 나누고, 아름다움과 만나는 희열을 위해 그림 그리기에 몰두한다. 그래서, 그려진 작품보다 그리는 동안의 충만한 행복감을 그만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림에 몰두하는 동안에는 잡념 없이 순수하고 착해질 수 있다. 단순한 정신적 사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리는 행위 자체를 행복으로 느낀다. 이것은 미술의 소중한 기능 중의 하나다.   또 어떤 이들에게는 그림이 구원이 되기도 한다. 그림을 그리면서 죽을 병을 이겨내기도 하고, 그림을 통해서 정신적으로 이겨내기 어려운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실제로 이런 예는 우리 주위에 너무도 많다. 미술치료 같은 치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미술이 한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또한 미술의 소중한 기능 중의 하나다.   또 어떤 이들에게는 그림이 정신세계를 영성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길이 되기도 한다. 이런 이들에게는 그림 그리기가 곧 도(道) 닦기인 셈이다. 실제로 많은 작가들이 이런 식으로 자기 예술세계를 설명하기도 한다.   그 밖에도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 자체가 갖는 힘은 매우 다양하고 막강하다.   미술을 좋아하고 가까워지고 싶어 하는 이들로부터 “현대미술은 너무 어렵고 골치 아프다. 미술작품을 이해하고 좋아하고 싶은데, 무슨 좋은 방법이 없나?”라는 질문을 받는 일이 더러 있다. 나의 대답은 늘 비슷하다. “자주 보세요. 자주 보면 보입니다. 그리고 직접 그림을 그려보세요. 그것이 가장 좋은 미술 감상법입니다.”   직접 그리면서 그림에 흠뻑 빠져보면, 다른 사람의 그림에도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작가와 공감하며 느끼는 동질감은 감동으로 이어진다.   그림 그리기를 통해서 참으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고, 장점도 많다. 마음을 닦고, 정서적 정신적으로 풍성해지는 등 여러 면에서 권하고 싶다. 좀 거창하게 말하면, 그림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많은 분이 그림 그리기를 취미로 삼아 즐기기 바라는 마음이다. 장소현 / 미술평론가·시인문화산책 미술 기능 취미 화가들 그림 그리기 세상 생각

2024-10-17

[문화산책] 한글 서명의 상징적 의미

그림 한구석에 적혀있는 화가의 서명은 문장으로 치면 마침표 같은 것이다. 완성된 작품이라는 선언이기도 하다. 위작 소동이 벌어지면 가짜냐 진짜냐를 가리는 중요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   서양화를 그리는 화가들은 대개 영어로 멋지게 일필휘지하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박수근이나 이중섭 같은 작가는 한글로 서명한다. 정겨운 느낌이 전해진다. 박수근 그림에 등장하는 둘러앉아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노인들이나 아이들의 모습 한구석에 쓰여 있는 ‘수근’이라는 한글 서명을 보면 그림 안의 인물들이 정겹게 수군수군 대는 것 같다.   좀 지나친 생각인지도 모르겠는데, 한글 서명을 보면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이 느껴지기도 한다. 민족적 긍지를 소중하게 여기는 일부 작가들이 한글 서명을 고집하는 것도 그런 까닭일 것이다.   영어로 서명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조금 깊게 생각해보면 한글 서명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즉, 그림의 기법은 서양의 것을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내용과 정신은 우리 것을 지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한글 서명은 그런 바람을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한국 사회가 서양의 문화를 받아들일 때 주체성을 주장할 상황이 아니었다. 일제강점기, 해방 직후의 극심한 좌우대립, 6·25 한국전쟁, 미국 문화의 홍수….격동의 역사를 거치면서, 한국의 현대화는 곧 서구화였고, 서구 문화를 비판적으로 골라서 받아들일 수 없는 형편이 아니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정신 차려보니 서구 문화가 이미 들어와 안방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이 정확할 것 같다.   가령, 어린 시절 아무런 생각 없이 뜻도 모르고 미국에서 들어온 노래 팝송을 부르며 놀았고, 할리우드 영화를 보며 미국의 화려한 생활을 부러워했다. “헬로 헬로쪼코레또기브미, 헬로 헬로 먹던 것도 좋아요.” 같은 비굴한 노래에 그런 상황들이 잘 나타나 있다. 그런 상황은 문화 예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80년대 민족정신 회복, 우리 것 찾기 운동 등이 중요하게 대두하기 전까지 서양 흉내 내기가 주류를 이룬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한국인의 정체성을 소중하게 여기는 한글 서명이 한결 더 반가운 것이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름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고 싶다. 세계무대에서 이름을 드러낸 예술가들은 한국 이름을 고집한다. 백남준, 윤이상, 이응로, 오순택, 정명훈, 정경화, 서도호, 강익중, 손열음 등등이 그런 사람들이다. 조금이라도 빨리 유명해지기 위해서는 부르기 쉬운 영어 이름을 만드는 것이 유리하다는 계산보다는 이름이 갖는 자기 정체성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미국에 살면서 여러 가지 현실적 편리성을 앞세워 영어 이름을 만들고 보는 한인들과는 크게 다르다. 부르기 좋고, 기억하기 쉽다는 편리성이 얼마나 큰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름은 한 사람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고유명사다. 특히, 결혼해서 미국식으로 남편 성을 딴 여자가 미국 이름을 만든다면, 이름의 정체성이 사라져버린다. 우리 주위에 그런 예는 얼마든지 있다.   미국에 사는 사람들이 영어 이름을 갖는 것이야 현실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한국의 인기가수가 영어 이름을 가지고 영어 가사로 노래를 부르고, 상품명이나 가게 이름이 영어 범벅인 일들은 좀 당황스럽다.   이 같은 자존감, 자기애가 별것 아닌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이런 기본자세가 작품이나 예술 활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눈여겨보는 것이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한글 서명 한글 서명 영어 이름 한국 이름

2024-10-03

[문화산책] 요절한 천재 예술가들의 교훈

인류 역사에는 안타깝게 요절한 천재들이 많이 등장한다. 특히, 문화·예술계에서 돋보인다.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신비감이 더해지고, 신화·전설이 극적으로 부풀려지기도 한다. ‘늙은 모차르트’란 상상하기 어렵다.   모차르트 35세, 쇼팽 39세, 슈베르트 31세   고흐 37세, 로트레크 36세, 모딜리아니 35세   윤동주 27세, 이상 26세, 나도향 24세, 김소월 32세.   요절한 천재들의 이야기를 읽노라면 안타깝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이런 굉장한 천재들이 오래 살아서 활동했더라면 역사가 얼마나 더 풍성하고 멋있어졌을까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고, 나는 이만큼이나 살았는데 도대체 이룬 것이 뭔가 되돌아보면 염치없고 부끄럽기 짝이 없다.   자료를 살펴보면, 실제로 역사에 빛나는 성취는 나이에 관계없이 이루어졌다. 특히 문화 예술에서는 더 그렇다. 물론 원로들의 농익은 예술세계도 소중하지만, 싱그럽고 젊은 예술가들도 별처럼 빛나며, 신화 전설은 연륜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방정환 32세, 이효석 35세, 심훈 35세, 기형도 29세, 이육사 39세, 김유정 29세, 일본 작가 아쿠다카와류노스케 35세, 푸시킨 38세….   화가 이중섭 39세, 오윤 40세, 이인성 38세, 손상기 38세, 미술사학자 고유섭 39세, 에곤 실레 28세, 바스키아 27세, 키스 해링 31세….   가수 김광석 31세, 김현식 32세, 차중락 26세, 배호 29세, 윤심덕 29세, 빅토르 초이 28세, 지미핸드릭스 27세….   영화감독 나운규 34세, 하길종 37세, 배우 제임스 딘 24세, 마릴린 먼로 36세, 최진실 39세, 이소룡 32세, 역도산 39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이들이 이룬 업적은 참으로 크고 아름답고 의미 깊다. 보통 사람이 평생 한 일을 훌쩍 뛰어넘는다. 음악학자 알프레드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한다. “창조적 예술가는 내부에 있는 생명의 시계가 멈추는 것을 투시력을 통해 아는 것 같다. … 모차르트와 슈베르트는 넘쳐흐르는 생산력, 그리고 미친 듯이 가속을 붙여 창작해나간 가장 대표적인 예술가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시간이 많이 허용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천재는 아니지만, 나라와 사회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의사, 열사 중에도 젊은이들이 많다. 유관순 17세, 논개 18세, 잔 다르크 19세, 안중근 30세, 윤봉길 24세, 전태일 22세, 강경대 19세, 이한열 20세 등….   그런가 하면, 권력의 꼭대기에 앉아서 부귀영화를 누리며 온갖 좋은 것만 골라 먹으면서 살았을 텐데도 장수를 누리지 못한 사람도 적지 않다. 네로 황제 31세, 양귀비 37세, 마리 앙투아네트 38세, 클레오파트라 39세, 안평대군 35세, 에바 페론 33세….   종교를 위해 순교한 성인 중에도 많은 이들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김대건 신부 25세, 최제우 39세… .그리고, 가장 대표적인 예수님이 33세에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다.   요절하지는 않았지만, 젊은 나이에 역사를 바꿔놓는 엄청난 업적을 이룬 경우도 하나하나 예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런 분들을 보면, 요새 젊은이들이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낮잡아 대하는 꼰대 짓을 함부로 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백세시대라고 하지만, 무턱대고 나이만 많이 먹어서는 안 되겠다는 각성도 생긴다.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겠다.   이상으로 꼰대의 푸념 끝!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예술가 요절 천재 예술가들 창조적 예술가 인류 역사

2024-09-26

[문화산책] 동화 읽는 늙은이

동화작가 김태영 님이 얼마 전에 발간한 동화집 ‘할리우드 불러바드의 별’을 반갑고 재미있게 읽었다. 이 동네 아동문학이 시름시름 빈사 상태(?)인 것으로 보여 매우 안타깝던 참이어서 더욱 반가웠던 것 같다.   책에 실린 12편의 작품마다 흥미진진하고 시원하게 펼쳐지는 꿈과 상상의 세계에 함께 하는 동안, 고달프게 살면서 속절없이 삭막해진 마음 밭에 단비가 내린 듯 촉촉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련한 어린 시절이 그리워지며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바로 이런 것이 동화의 힘이다. 나이 든 늙은이가 동화를 읽으며 기쁨을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태영의 동화는 우리를 신바람 나는 꿈과 환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할리우드 배우가 되고픈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춤 연습을 하는 강아지와 미남 거지, 밤이면 공룡으로 변신해서 흥겹게 나들이 가는 팜트리, 작은 배만큼이나 커진 물고기와 휠체어를 탄 소년의 만남, 데스밸리에 사는 짱구돌맹이와 화석이 된 분홍 새우의 사랑, 갑자기 내린 비를 맞아 잔디밭에 떨어진 별 가족 이야기, 인디언 마을의 인형과 당나귀의 우정 등등….   막연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사는 이곳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라서 한층 친근감이 느껴진다. 현재 할리우드 불러바드의 한 아파트에 사는 작가가 그 거리에서 살면서 만나고 느낀 이야기를 동심의 세계에서 새롭게 엮어 쓴 창작동화들로, 작가의 상상력은 그 할리우드 불러바드에서 어릴 적 놀던 영산강을 오가며 펼쳐진다. 작가 자신이 직접 그림까지 그려 실감을 더 했다.   김태영의 동화에서는 사람과 동물, 식물, 바위, 별 등이 서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돕고 의지하는 우주적 사랑이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그러면서 인생을 곱씹게 하는 힘을 가진 ‘어른을 위한 동화’다.   미주 이민사회에서 아동문학이 설 자리가 마땅치 않은 것은 독자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태어나 자란 우리 2세들은 한글 문학작품을 자유롭게 읽고 공감할만한 한국어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 그리고 동화책보다 훨씬 더 재미있고 짜릿한 것이 주위에 널려 있다. 그러니 어른들이라도 읽어주면 좋으련만, 그걸 기대하기는 어렵다. 엄마가 아이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동화를 읽어주는 장면은 정말 꿈과 같다.   이렇게 척박한 현실에서도 미주 아동문학계는 한동안 활발하게 움직였다. 좋은 작품도 상당히 나왔다. 1980년대 초반 고(故) 오영민 선생을 비롯해 남소희, 황영애 같은 분들이 활발하게 의미있는 작품을 발표했고, 2003년에는 ‘미주 한국아동문학가협회’가 발족하여 회원작품집 ‘미주아동문학’을 10호까지 발간했다. 김사빈, 김정숙, 박사라, 박심성, 백리디아, 이송희, 이희숙, 한혜영 같은 여러 작가들의 개인작품집도 활발하게 출간되었다.   내 개인적인 소견을 말한다면, 이민문학사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작품으로 오영민 선생의 ‘이민 간 아이’, 남소희의 ‘보석상자’, 황영애의 ‘내가 누구예요’, 홍영순의 ‘팬케이크 굽는 아이들’, 한혜영의 ‘뉴욕으로 가는 기차’, 신정순의 ‘착한 갱 아가씨’, 정해정의 ‘빛이 내리는 집’ 등을 빼놓을 수 없겠다. (물론 그 밖에도 내가 모르는 중요한 작품들이 더 있을 것이다.)   아동문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란다. 어린이는 어른의 선생이고, 어릴 적 기억은 평생을 가기 때문이다. 삶이 팍팍하고 답답할 때면 나는 동화를 찾아 읽는다. 톨스토이의 우화나 알퐁스 도데, 마해송의 동화를 읽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새로운 힘이 솟는다. 어린이 마음, 꿈의 힘을 믿는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늙은이 동화 동화작가 김태영 미주 한국아동문학가협회 미주 아동문학계

2024-09-19

[문화산책] 한가위 보름달, 나그네 젖은 눈

9월17일이 민족의 명절 추석이란다.   둥밝은 보름달 바라보며 소원을 빌고, 그리운 고향 찾아가 부모님께 문안드리고, 푸짐하고 맛있는 잔치 음식과 송편 배불리 먹고…. 그래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가윗날만 같아라”는 말이 어울리는 명절.   한국에서는 해마다 추석이면 대단한 귀향 전쟁이 벌어지는 모양인데, 뉴스를 보니 올해는 의료분쟁 때문에 그렇게 흥겹지 못할 것 같다. 이번 추석에는 다치지 말고, 아프지 말자는 다짐을 하기 바쁘다는 소식이다.   우리 타향살이 나그네에게는 추석 같은 명절이 반갑기보다 그저 강 건너 불 보기, 남의 일 같기만 하다. 한국에 부모님이 살아계신 이들은 전화로라도 안부를 여쭐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젖은 눈으로 멍하니 보름달 올려다보며 부모님 생각에 잠긴다. 디아스포라의 서글픔이다.   나처럼 삼팔따라지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 이렇다 할 고향도 없는 무향민(無鄕民)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그저, 떠나온 나라의 친구들도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저 달을 보고 있겠구나, 그런 막연한 그리움… 나그네의 젖은 눈.   “나는 오나가나 나그네다. 이 길손의 눈은 늘 젖어 있다고 스스로 느낀다. 먼 데 있는 친구들 혹은 나그네들의 손을 잡고 서로 껴안고, 글썽한 눈끼리 눈으로만 얘기하고 싶을 때가 자주 있다. 그리움의 달무리에 정이 번지면, 시와 시인을 또 자극하는 시간의 바다가 출렁거린다.” -고원 시집 ‘나그네 젖은 눈’ 머리글의 한 구절   시인은 ‘달 둘이 떠서...’라고 노래한다. 고향에도 지금 내가 사는 이곳에도 같은 달이 뜬다는 표현, 고국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의 표현이다. 달이 어디 둘 뿐이랴? 하나의 달이 천(千)개의 강을 고루 비춘다. 월인천강(月印千江)이다. 온 세상을 고루 비춘다. 그러니까, 지구 구석구석에 사는 나그네 모두가 같은 달을 바라보며 소원을 비는 것이다.   요새는 떠돌이 나그네, 이방인, 경계인, 유랑민 같은 말 대신에 ‘디아스포라’라는 멋쟁이 서양말이 널리 쓰이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디아스포라 정신’ ‘디아스포라 문학’ 같은 식으로….   이 말은 본디 제 나라에서 핍박받고 쫓겨난 사람들, 난민을 뜻하는 정치성 강한 용어였다. 그런데 지금은, 떠나온 곳은 있는데 돌아갈 곳이 마땅치 않은 이주민을 뜻하는 말로 폭넓게 쓰이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우리도 디아스포라인 셈인데, 어쩐지 어색하다. 하지만, 깊이 생각해볼 필요는 충분하다.   역사적으로 보면, 문화예술에서는 디아스포라가 창작의 큰 원동력으로 작용해왔다. 유대인 예술가들의 막강한 업적과 영향력이 대표적이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변방의 힘’ 같은 것이다.   디아스포라라는 낱말의 어원을 살펴보면, 고대 그리스어 ‘-너머’를 뜻하는 dia와 ‘씨를 뿌리다’는 뜻의 spero의 합성어라고 한다. 즉, 뿌리 뽑힌 떠돌이 나그네 삶의 고달픔과 슬픔을 뜻하는 이산(離散)과 새로운 세계의 개척이라는 적극적인 뜻의 파종(播種)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갖는 것이다.   ‘씨를 뿌린다’는 말이 매우 매력적이다. 새로운 땅에 뿌리내린 우리 이민자들의 존재 의미를 말해준다. 고향 타령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는 말, 간절한 그리움을 창조적 힘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한가위 보름달을 우러르며 어떤 소원을 빌어야 할지가 선명해지는 것 같다. 우리가 이 땅에 뿌린 씨앗인 우리 2세들을 잘 가꾸고 보살펴, 풍성한 추수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사… 그러기 위해서 정신적 정체성을 바로 세우도록 이끌어 주십사….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한가위 보름달 한가위 보름달 떠돌이 나그네 나그네 모두

2024-09-12

[문화산책] 졸작, 졸필이라는 겸손함

문인들이 습관적으로 쓰는 말이 있다. 예를 들어 “글쓰기는 뼈와 살을 깎는 고통이다”라는 말, 이 말이 정말이라면 문인 중에는 살찐 사람이 없어야 한다. 계속 깎아대는데 언제 살찔 새가 있나….   졸작, 졸필, 졸저(拙著)라는 낱말도 그런 말 중의 하나다. “졸작 읽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턱없이 모자라는 졸필로 책을 내려니 부끄러움이….”   스스로를 낮추고 겸손, 겸양하는 아름다운 말이다. 멋지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아무리 읽어도 그저 습관적인 멋 부리기 관용어로만 읽힌다. 왜냐하면 정말로 졸작, 졸필이라고 생각한다면 발표하지 않는 것이 맞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작가라면 당연히 그래야만 한다. 졸작, 졸필, 졸저를 내놓아 세상을 어지럽히고 더럽히는 것은 죄악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에게는 냉엄하지만, 읽는이들에게는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라고 말하고 싶다. 글쓴이가 자신 없이 주저주저 머뭇거리면, 읽는 이도 흔들리게 마련이다. 자신 없이 우물거리는 말에 설득당할 독자는 없다. 그야말로, 영혼을 불태운 글인지 대충대충 설렁설렁 쓴 글인지 독자는 금방 알아챈다. 믿음 없이 미사여구만 나열하는 기도나 마음 없이 대충 부르는 노래는 맥없이 허공을 맴돌다 스러진다.   그래서 나는 졸저, 졸필, 졸저 같은 낱말은 되도록 쓰지 말자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터무니없는 물건을 가지고 허세를 부리자는 말은 물론 아니다.   나 같은 ‘생계형 글쟁이’는 쓰임새에 맞는 글을 마감 날짜 넘기지 않고 쓰면 그만이지만, 훌륭한 예술작품의 경우는 그럴 수 없다. 끝도 없고 완성도 없다. 천하의 피카소도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은 한 번이라도 완성된 그림을 본 적이 있는가? 그림이라도, 다른 무엇이라도 상관없다. 당신이 ‘이제 완성이다’ 하고 중얼거렸다면, 당신은 끝장이다. 작품을 완성한다, 그림을 마무리 짓는다,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인가.”   피카소 선생의 말씀대로 완성이란 없다. 그렇다면 이제 작가에게 남는 것은, 세상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치열하게 최선을 다했는가, 스스로에게 참으로 정직했는가와 같은 자기 내면의 문제들일 것이다.   졸작이냐 걸작이냐, 어느 정도 수준이냐 하는 것은 그다음의 문제이고, 작가가 결정할 문제도 아니다. 그런 평가는 독자나 평론가, 학자들의 몫이다. 그러니, 작가가 나서서 미리부터 졸작, 졸필이라서 부끄럽다고 고개 숙이며 접고 들어갈 이유는 없다는 말이다. 그런다고 졸작이 명작이 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작품을 대하는 작가의 자세는 저마다 다르다. 정답이 있을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발표하면서 더 잘 쓰지 못한 것을 진심으로 부끄러워하는 문인도 많다. ‘광장’의 최인훈처럼 책으로 출판된 후에도 줄기차게 다시 읽고 고치는 작가도 있고, 카프카처럼 세상을 떠나면서 친구에게 자기 작품을 모두 불태워 달라고 부탁한 작가도 있다.   한편, 좋은 작품을 계속 발표하면서 평생 책을 내지 않은 문인도 있다. 김병현 시인이 그런 분이었다. 안타깝게 여긴 후배들이 뜻을 모아 유고시집을 내드렸다. 우리 남가주 문단에도 벌써 책을 내야 했는데, 아직 안 내는 실력파 중견 문인들이 적지 않다. 저마다 사정이야 다르겠지만,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발표해야 한다는 엄격함이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그런 분들의 겸손을 대하면 겁 없이 책을 많이 낸 내가 면구스러워지곤 한다.   나의 스승 김희창 선생님께서 주신 말씀을 되새긴다. “예술 앞에는 가장 겸손해야 하고, 사람 앞에는 가장 오만해야 합니다. 오만해야 붓을 들 수 있는 것이고, 겸손해야 좋은 예술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상으로 ‘졸필’ 끝!!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졸작 졸필 졸작 졸필 졸저 졸필 피카소 선생

2024-09-05

[문화산책] 문밖 서성이는 음악공부

나의 클래식 음악 첫사랑은 시벨리우스의 교향시 ‘핀란디아’다.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줄기차게 듣는 음악이기도 하다. 바암∼ 바암∼ 밤 바아암∼   어린 시절 집안 형편이 클래식 음악을 제대로 들을 정도로 넉넉하지 못했다. 작고 조악한 트랜지스터라디오로 방송 프로그램을 듣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나마 공부를 하면서 흘려들었고, 다른 식구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아주 작은 소리로 들었으니 음악을 제대로 감상했다고 도저히 말할 수 없다.   잘 알겠지만, 라디오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은 대체로 가볍고 짤막하고 달콤하고 유명한 곡들이다.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을 택해서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주는 대로 감사하며 받아먹어야 한다. 나도 별수 없이 그런 음악을 들으며 자랐다.   예를 들어,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 하이든의 종달새, 지고이네르바이젠, 유모레스크, 로망스, 사랑의 인사, 비발디의 사계 등등 이른바 ‘세미클래식’이라 불리는 음악들, 그것도 멜로디는 그런대로 익숙한데 작곡가나 곡명은 모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클래식을 듣는다는 것만으로도 대견했다.   그러다가, 나이 조금 들어서 음악감상실이라는 별세계에 가서 커다란 스피커에서 웅장하게 울려 나와 실내를 가득 채우는 음악을 제대로 들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감탄하며 빠져든 음악이 바로 ‘핀란디아’였다.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오는 힘찬 소리에 압도되고 말았다. 바암∼ 바암∼ 밤 바아암∼ 밤바라밤바   그리고 항상 좋은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는 ‘학림다방’의 단골손님이 되면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게 되었다. 그래 봤자, 들려오는 음악의 작곡가와 곡명을 겨우 아는 곡이 몇 개 생긴 정도이고, 라디오로만 듣던 때보다는 긴 곡을 들으며 참을성을 시험하는 정도였지만, 그래도 클래식 음악에 대한 관심과 공부 의욕은 한층 커졌다. 음악가에 대한 책이나 글을 찾아 읽기도 하고, 어쩌다 아주 어쩌다 음악회라는 엄숙한 자리에 가보기도 하고….   하지만 공부는 생각과는 달리 지지부진했고, 지금도 여전히 문간에서 안타깝게 어슬렁거리는 초보자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음악공부라는 게 참 어렵다. 열심히 새로운 음악을 찾아 듣고 더 넓은 공부를 해야 할 텐데, 귀에 익은 편안한 곡만 거듭 듣게 된다. 문학작품은 여러 번 읽는 경우가 많지 않지만, 음악은 반복해서 듣는 것이 기본이다. 그것도 취향에 맞는 곡만 듣는 편식이니 진도가 잘 나갈 리 없다. 늘 제자리걸음이다. 뚜렷한 한계를 느낀다.   그래도 내 경우에는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로 일하면서 공부를 한 것이 큰 다행이었다. 특히, 평생 클래식 음악과 함께 살아오신 위진록 선생님을 모시고 방송을 진행하면서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음악뿐 아니라 다른 예술 분야에서도 내가 제대로 알고 감상한 부분은 지극히 작은 한 귀퉁이였다. 음악 감상은 세미클래식에 그쳤고, 문학은 세계 명작을 다이제스트 판으로 읽은 수준이었다. 그저 깊이보다는 넓이에 집착하여, 이것저것 문 앞에서 서성거리는 짓만 되풀이해왔다. 무엇 하나 목숨을 걸고 제대로 해본 일이 없다. 그러니 ‘문화잡화상’이라는 별명이 제격인 것 같다. 인제 와서 후회한들 소용없는 일이지만….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좀 더 파보자. 이어령 선생처럼 일단 파기 시작했으면 물이 나올 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파는 끈기가 필요하다. 좋은 격언을 주문처럼 외운다. “백 권의 책을 읽으려 애쓰기보다 좋은 책 하나를 백번 읽으라.”   그렇다, 첫사랑 ‘핀란디아’를 백 번 진지하게 들어보자. 같은 음악이라도 다르게 들리며 물이 콸콸 쏟아질지도 모르지! 엄숙한 표정으로 듣는다. 바암∼ 바암∼ 밤 바아암∼ 밤바라밤바밤바!   그런데 왜 자꾸 밤을 보라는지 그걸 모르겠다. 밤 봐라! 밤 봐, 밤 봐!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음악공부 문밖 클래식 음악 음악 감상 음악들 그것

2024-08-29

[문화산책]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 지킴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단재 신채호)   이런 거창한 말씀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는 누구나 안다. 기억되지 않은 역사는 사라져버리게 마련이다.   우리 미주 한인 사회도 이민 연륜이 길어지면서, 정리하고 기록해야 할 역사가 쌓였다. 많은 주요 단체들이 반세기의 전통을 자랑하고 있지만, 역사로 제대로 정리되고 기록된 예는 그리 많지 않다. 그 시절을 빛냈던 주인공들은 세상을 떠나고, 기억은 가물가물해지고, 자료들은 하나둘 사라져가고 있다. 급하다.   그런데 사명감을 가지고 역사를 갈무리하고 기록하는 일에 헌신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내가 알기로는, 남가주에서는 한인역사박물관의 민병용 관장, UC리버사이드 교수이며 김영옥연구소 소장인 장태한 교수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민병용 관장의 역작 '대한인국민회 100년사'가 발간되었다. 참으로 반갑고 고맙다.   대한인국민회가 어떤 곳인가? 미주 땅에 독립운동의 씨를 뿌린 도산 안창호 선생의 정신과 숨결이 배어 있는 미주 최고의 독립운동기관, 3·1운동 후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기까지 미주의 임시정부임을 선언하고 미국과 멕시코, 쿠바 동포들의 독립운동 총본부 역할을 감당한 곳, 동포들의 성금을 모아 상해 임시정부를 재정적으로 계속 후원해온 곳, 독립운동에 앞장선 언론 '신한민보'를 발행한 곳…. 그야말로 미주지역 독립운동의 구심점이었던 곳이 아닌가. 그 100년의 역사가 이제야 한 권으로 책으로 발간된 것이다.   대한인국민회 기념관은 비록 작은 규모이지만, 이민역사 자료를 전시해 놓은 유일한 교육의 현장이기도 하다. 학생들이 가볼 곳이 거기밖에 없다.   지난 2003년에는 건물 복원공사 중 천장 다락방에 보관되어 있던 다량의 독립운동 자료가 발견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귀한 자료들은 USC에서 디지털화해서 도서관에 보관하고 있고, 원본은 한국의 독립기념관에 대여 조건으로 보관되어 있다. 미주에 한인역사박물관이 세워지면 돌아올 것이라고 한다.   민병용 관장이 2년여의 집필 기간을 거쳐 완성한 100년사 책에는 대한인국민회와 기념재단의 역사를 중심으로, 미주 한인 이민사와 독립운동의 역사 등 다양하고 폭넓은 내용이 풍부한 사진 자료와 함께 실려 있다. 독자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고, 학생들에게 이민사와 독립운동사를 가르치는 교사들에게는 참고서가 되도록 교육적인 면에 중점을 두어 편집했다는 설명이다.   저자 민병용 관장은 1976년 신문기자로 독립운동가를 인터뷰하면서 한인 미주이민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초기 이민의 현장인 하와이와 샌프란시스코, 중가주, 멕시코 등 현지를 발로 뛰어 취재하며 많은 기사를 썼다. 첫 책인 '미주이민 100년, 초기 이민을 캐다' 이후 지금까지 48년 동안 18권의 역사서를 집필, 발간했다. '미주독립유공자 전집, 애국지사의 꿈' 같은 독립운동사를 비롯하여, 미주 지역 주요 한인 단체의 역사,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미주한인의 기본 자료인 '한인인명록' 등 내용도 다양하다.   민 관장이 집필한 미주한인 100년사, 동양선교교회 30년사, 남가주한국학원 40년사, 민주평통 LA 30년사, LA한인회 50년사(전자책으로 발간 예정) 등은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자신을 ‘한인역사 세일즈맨’이라 칭하며, 22년째 LA한인역사박물관 관장을 맡고 있고, 2002년부터 대한인국민회 기념재단 이사로 봉사하고 있다.   한 지식인이 어려운 여건에서 이민사회의 역사를 발굴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책을 쓰는 일에 반세기를 바쳤다는 것은 참 대단한 일이다. 그런 힘든 일을 해내면서 늘 ‘행복하고 감사하다’며 밝게 웃는 민 관장에게 감사와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아주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은 마음이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지킴이 역사 이민역사 자료 미주지역 독립운동 한인 미주이민

2024-08-22

[문화산책] 민화(民畵)라는 낱말에 대해서

한국 민화(民畵)에 대한 인기가 미주에서도 높아지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이른바 K-아트의 인기에 힘입어, 한국적 아름다움을 듬뿍 담은 민화에 대한 사랑도 커지는 것 같다. 민화를 지금 상승세를 타고 있는 미술 한류의 강력한 경쟁력으로 평가하는 전문가도 많다.   그런 인기의 영향으로, 민화 그리기를 배우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고, 의미 있는 전시회도 자주 열리고 있다. 샌디에이고 미술관의 한국 채색화 특별전, 데스칸소 가든의 한국의 화조도(花鳥圖) 전시에서 민화가 중심적 눈길을 끌었고, 지금 LA 한국문화원에서도 민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한국에서는 더 큰 인기라고 한다. “오늘날 민화 인구의 급증은 특이 사항이지 않을 수 없다. 전국에 산재한 수십만 명의 민화 인구는 채색화를 다시 주목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 문화계 일반에서 민화 붐처럼 활기를 띠고 있는 분야가 어디에 또 있을까. 세속 유행어로 인사동 대관화랑과 표구점, 그리고 미술재료상은 민화 인구가 먹여 살린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양적 팽창은 이제 질적 향상을 위해 심각하게 자성할 때이다.” -윤범모 ‘현대미술관장의 수첩’에서   민화가 인기인 까닭은 현세적 염원을 담은 그림의 내용과 생동감 넘치는 색채가 어우러진 조형적 매력 때문이다. 민화에 대한 사전의 설명은 이렇다.   ‘민화는 한 민족이나 개인이 전통적으로 이어온 생활 습속에 따라 제작한 대중적인 실용화이다. 일반적으로 민속에 얽힌 관습적인 그림이나 오랜 역사를 통하여 사회의 요구에 따라 같은 주제를 되풀이하여 그린 생활화를 말한다. 대체로 비전문가의 작품이지만 직업 화가가 그린 것도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민화’라는 용어는 진지한 논쟁의 대상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민화’라는 용어와 개념을 맨 처음 사용한 사람은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다. 그는 민예(民藝)라는 용어도 만들었다. 야나기는 엄혹한 일제강점기 한국 미술의 아름다움에 반해 이를 높게 평가하고 찬양한 고마운 사람이라는 평가가 있기도 하지만, 사실은 한국미의 특징을 ‘비애의 미’로 규정하는 등 식민지 통치 정책에 동조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런 까닭에, 민화를 우리 민족의 미의식과 정감이 조형적으로 표현된 진정한 의미의 민족화로 보는 학자들은 민화라는 명칭에 강력하게 반대한다. 윤범모 전 한국현대미술관 관장은 이렇게 주장한다.   “이제 우리는 야나기의 민화론을 극복해야 한다. 단언하건대, 한국 민화가 살려면 야나기를 처리해야 새로운 활로가 생길 것이다.”   민화라는 용어를 쫓아내고, 꼭 알맞은 낱말을 찾아내 사용하자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꾸준히 있었다. 그동안 겨레그림, 채색 길상화, 한화(韓畵), 민족화 등 많은 제안이 나왔다.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민화’라는 낱말이 공식용어처럼 쓰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제로부터 광복된 지 80년 세월이 지나도록 정신적으로는 일제의 잔재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말이다. 문화예술 쪽도 여전히 쓰레기투성이다. 가까운 예로 ‘미술’이라는 낱말도 일본 사람들이 급조해 낸 용어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한국어 중 한문 투 낱말의 70-80%가일본강점기에 만들어진 것인데, 그저 우리말인 줄로 알고 사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게 무슨 문제냐, 그래도 나라가 잘만 돌아간다, 일본을 넘어선 지 벌써 오래다…. 이런 식으로 눙치고 넘어갈 일이 결코 아니다. 나의 주체성을 바로 세우지 않고는 우리 문화 예술이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없다. 내가 없는 한류는 일시적인 물거품으로 끝나기 쉽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민화 낱말 민화가 인기인 한국 민화 민화가 중심적

2024-08-15

[문화산책] 행복은 정말 어려워

공부를 더 하고 싶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고 믿는다. 악기도 배우고 싶고, 그림 그리기나 붓글씨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싶고, 노래 부르기도 제대로 공부하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 정말 많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우선 공부하고픈 것은 행복학과 죽음학이다. 물론 제대로 공부하기 위한 마음의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   아메리칸 인디언은 말을 타고 질주하다가 잠시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며 기다린다고 한다. 뒤처진 영혼이 따라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대단한 지혜다. 나도 이런 지혜를 배워, 차분하게 기다려 마음을 다독여 빈자리를 만들어놓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고 싶다.   느닷없이 무슨 행복이요, 죽음이냐는 질문이 들리는 것 같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행복과 죽음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사람답게 잘 죽는 것이 결국은 인간의 마지막이며 가장 큰 행복이고, 잘 죽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행복한 죽음!   행복 같은 거야 살면서 저절로 얻어지는 생활의 지혜이고, 지극히 주관적인 것인데, 골치 아프게 학문적으로 공부할 필요가 뭐 있느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하버드대학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과목은 경제학도, 정치학도 아닌 ‘행복학’으로, 재학생의 5분의 1이 수강할 정도라고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행복을 갈구하지만, 실제로 행복해지는 길이나 방법을 배워주는 곳은 마땅하게 없다는 이야기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도 ‘리더십과 행복’이라는 이름의 행복학 강의가 인기라는데, 목적은 ‘행복을 모르는 경영인은, 행복을 관리할 줄 모르는 경영인은 결코 성공적인 기업인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한다.     미래의 기업을 이끌 지도자에게는 기업 경영에 관한 지식을 갖추는 것 못지않게 정서적인 웰빙, 즉 행복을 관리하는 일도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행복학 과정도 학생들 사이에서 큰 관심을 끌고 있다는 것이다.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방향을 잡기 위해 먼저 자료를 찾아본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우와!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한 명언이 이렇게나 많고, 책도 이렇게도 많다니….   “성공이 행복의 지름길이 아니라, 행복이 성공의 지름길이다.”(알베르트 슈바이처)   “더 바랄 것도 없고, 더 올라갈 데도 없고, 더 채울 것도 없는 상태가 진정한 행복이다”(마틴 셀리그먼 펜실베이니아대학 교수)   “행복을 우연한 결과물, 유전적 결과물로, 생활 환경의 결과물로만 여기는 것은 단견이다. 행복은 가족, 친구, 의미 있는 직업, 신념 또는 인생관이라는 4가지 문제를 지속해서 보살피는 일과 가까운 개념이다.”(아서 브룩스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   그럼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에 대한 해답도 차고 넘친다. 예를 들면, 스스로 만족하라, 남과 비교하지 말라,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라, 돈 많이 번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지나친 기대를 걸지 마라, 좋은 친구를 만들라, 더불어 사는 지혜를 가지라, 긍정적 마음을 가지라, 웃어라, 집착하지 마라, 즐겁고 재미있게 살아라, 베풀라, 용서하라, 사랑하라, 등등….   아이구! 골 아파라! 행복해지는 공부가 이렇게 골치 아프고 행복하지 않다니. 에이, 그냥 열심히 살면 되겠네. 단, 윤동주 시인의 말씀처럼 하늘 우러러 부끄러움 없이….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행복 행복학 과정 행복학 강의 하버드 경영대학원

2024-08-08

[문화산책] 물처럼 낮은 곳으로…

하늘의 별이 된 ‘아름다운 사람’ 김민기는 새벽마다 ‘아침이슬’이 되어 우리를 찾아온다. 이슬, 아주 작고 영롱한 물이다.   ‘좋은 사람’ 김민기가 남긴 가장 소중한 가르침은 스스로를 ‘뒷것’으로 낮추는 마음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리고, 그 가르침은 지금 이 순간에도 매우 절실하다. 아무 데서나 앞에 나서서 설쳐대는 쓰레기 인간들이 넘쳐나는 이 세상에 김민기의 낮고 굵은 목소리는 엄청난 죽비다.   ‘뒷것’이라는 낱말을 대하면 ‘노자 도덕경’의 물이 떠오른다. 상선약수(上善若水), 모든 것이 잘 이루어지도록 섭리하면서도, 자기를 전혀 드러내지 않고,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 같은….   상선약수 편을 찾아 읽노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나도 물처럼 살았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양한 해설이 있는데, 김민기가 아버지처럼 모신 장일순 선생은 이렇게 풀이했다.   “가장 착한 것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잘 이롭게 하면서 다투지 않고, 뭇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   장일순 선생이 강조한 가르침 중에 “밑으로 기어라”라는 말씀이 있다. 사람들 밑으로 기면서 섬겨 모시는 마음 없이는 참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말씀이다. 그러니까, 노자의 물이나 민기의 ‘뒷것’과 같은 뜻이다.   물처럼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두가 그렇게 물의 덕성을 닮으려 애쓰며 산다면 세상이 한결 푸근하고 촉촉해질 텐데….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겸손, 막히면 돌아가는 지혜, 더러움을 받아내는 포용력, 어떤 그릇에도 담기는 융통성, 바위도 뚫어내는 인내와 끈기, 폭포와 같은 용기, 유유히 흘러 바다에 이르는 대의 등을 물의 칠덕(七德)이라 부른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매우 지혜롭고 훌륭한 가르침이다.   물의 덕성은 도가사상의 중요한 핵심이다. 그래서 ‘노자 도덕경’ 여러 곳에서 물을 이야기한다. 가령, 세상에 물보다 더 부드럽고 여린 것은 없지만, 단단하고 힘센 것을 치는데 물을 이길만한 것이 없다는 가르침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렇게 부드럽고 여린 물이 화를 내면 대단히 무섭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세월호 참사, 해병대 채상병 비극을 둘러싼 추잡한 소용돌이…. 이런 비극을 극복하고 물의 화를 달래기 위해서는 모두가 서로 다투지 말고 스스로를 낮춰야 한다. 그것이 노자의 가르침이다.   혹시 가장 낮아지려고 서로 다투는 희비극이 벌어지지는 않을까? 천만에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가장 낮은 곳의 물은 평평하다. 다툴 필요가 없다.   세상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자기 공을 전혀 내세우지 않고, 낮은 데로만 흐르는 겸손, 스스로를 낮추는 자세를 배우고 싶다. 지극히 당연한 것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 그 지극히 당연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몸 바쳐 희생하는 사람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그런 사람, 그런 지도자가 그립다.   김민기의 ‘뒷것’이라는 낱말이 새삼스레 감동으로 스며드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그런 우직스러운 사람들 덕분에 그나마 세상이 돌아간다는 걸 우리는 잊고 산다. 물이나 공기의 고마움을 잊고 사는 거나 마찬가지다. 세상은 그런 사람다운 사람을 바보나 미련한 자로 낮잡아보며 함부로 대한다. 나도 그랬다. 부끄럽다.   아무튼,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마음을 비우고 조용히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는 시간이 그립고 아쉽다.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   끝으로 실없는 농담 한마디. 나는 스스로를 낮추는 데 유리하다. 키가 매우 짧기 때문에….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노자 도덕경 고인 바다 장일순 선생

2024-08-01

[문화산책] 아름다운 우리말 살리기

나는 세태에 한참 뒤떨어진 원시인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자랑스럽지는 않지만, 크게 부끄럽지도 않다. 그래서 한국을 온통 뒤흔들었던 ‘읽씹’이라는 낱말을 당연히 몰랐다. 읽씹? 어느 외국에서 들어온 욕설인 줄로 알았다. 검색을 해보니 설명이 나와 있다. ‘문자나 메신저, SNS의 메시지 내용을 읽었음에도 아무런 답신을 하지 않는 경우를 이르는 속어.’   ‘안읽씹’이라는 말도 있다고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아, 속어로구나, 그러면 그렇지! 한데, 메시지를 씹는다고? 왜 씹어? 맛있나? 메시지가 소시지의 일종인가? 씹는 거 좋아하다 보면 치과의사 좋은 일만 시키는 건데….   그러니까, 읽기는 했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으니 기분 나쁘다, 자존심 상한다. 뭐 그런 말인 모양인데, 그렇다면 보고도 대답이 없으면 ‘보씹’이고, 듣고도 묵묵부답이면 ‘듣씹’이 되는 건가? 이건 너무하다.   아무튼 그놈의 ‘읽씹’ 때문에 한국 정치판이 온통 난리판이었던 모양인데, 나는 무슨 일인지 도무지 관심이 없다. 알고 싶지도 않다. 알아봤자 도움될 건 개뿔도 없고, 애매한 혈압만 오를 게 뻔하다. 다만, 내가 안타까워하는 것은 속절없이 무참하게 망가지고 있는 우리말의 신세다. 글쟁이 주제에 그런 아픔을 그저 멀리서 바라만 볼 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내 무기력이 부끄럽고 서글프다.   이런 터무니없는 신조어를 아무런 비판도 망설임도 없이 대서특필하고 왕왕 떠들어대는 언론, 뭐 얻어먹을 거 없나 눈치 살피는 정치판, 재미있다고 낄낄대며 즐기는 대중, 못 본 척, 못 들은 척, 고상한 지식인들…. 소문으로는 ‘읽씹’을 실감 나게 발음하다가 혀 깨문 인간이 한둘이 아니란다.   세종대왕께서 내려다보며 눈물 흘리고 계신다. 극대노하지 않으시는 것만도 성은 망극이다. 이런 신조어를 ‘야민정음’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모양이다. 감히 훈민정음에 빗대다니, 무엄하도다!   내친김에 자료를 찾아보니, 이런 신조어는 엄청나게 많다. 놀라울 정도다. 먹방, 먹튀, 라떼는 말이야, 불금, 내로남불, 가성비처럼 제법 익숙해진 것부터 웃안웃, 뇌피셜, 완내스(완전 내 스타일), 케바케(case by case), 텅장(텅 빈 통장)처럼 방금 탄생한 외계어 수준의 신조어에 이르기까지 현란하게 생성소멸을 거듭하고 있다. 드디어 ‘신조어사전’이 나왔을 정도다.   신조어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는데, 아무래도 가장 많은 것이 줄임말이다. 젊은 세대의 생활방식이나 통신기기의 획기적인 발달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긴 글 읽기 싫어하고, 사색은 질색하는….   쌤(선생님), 낄끼빠빠, 갑툭튀, 단짠, 넘사벽, 듣보잡, 솔까말(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등등 기발한 재치가 빛난다. 그런데, 젊은 세대는 그렇게 아껴서 모은 시간에 도대체 뭘 하는지 궁금하다.   이런 말 중 ‘틀딱’이라는 낱말에 눈길이 머물렀다. 틀니+딱딱의 줄임말로, 틀니를 딱딱거리며 잔소리하는 꼰대를 칭하는 말이란다. 아이고, 무서워라, 죽어도 틀니는 하지 말아야지!   당연한 말이지만, 과도한 신조어 사용은 언어를 망가뜨리고 세대 간 단절을 부른다. 심각한 문제다. 특히 신조어에는 은어, 비속어 등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아서 언어의 품격을 지키는 점에서 큰 문제다.   우리말의 순수성과 아름다운 가치를 지키는 노력은 문인들에게 주어진 신성한 임무이다. 글 쓰는 사람이나 배우들은 우리말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엉터리 신조어에 맞서, 우리말 구하기 대작전이라도 펼쳐야 할 판이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우리말 엉터리 신조어 신조어 사용 한국 정치판

2024-07-25

[문화산책] 환갑 맞은 미협, 새로운 미래

미협이 환갑이란다. 경사로다 경사! 아, 이렇게 말하면 무슨 말인지 모를 분이 많겠구나. 이 지역 미술가들의 단체인 남가주 한인미술가협회가 창립 60주년을 맞았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흥겹고 질펀한 환갑 잔치라도 열리나 했는데, 그런 건 아니고, 늘 하던 대로 정기 회원작품전을 열었다. 71명의 회원 작가가 작품을 출품하는 큰 성황을 이루었다니, 수고하신 모든 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60년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다. 저마다 개성 강한 예술가들의 단체가 긴 세월 동안 잡음 없이 꾸준히 활동을 이어오며 전통을 세웠으니 대단하다.   “1964년 이곳의 미술가 몇 명이 모여서 ‘나성 한인미술가협회’라는 이름으로 출발했지요. 그해 가을 버몬트와 4가에 있는 ‘코리안센터’에서 창립전시회를 가졌습니다. 아직 한인회가 없던 그 당시 코리안센터는 한인회 역할을 하던 곳이죠, 창립 무렵 참여했던 분들로는 김기방, 김보배, 김봉태, 배영선, 위상학 씨 등등이었습니다.”   건강하게 환갑을 맞은 미술가협회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분들이 있다. 김봉태, 황하진 등 여러 가지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든든한 기둥 노릇을 해준 고마운 분들이다. 배영선, 김휘부, 강태호, 김소문, 이은규, 이우인, 이규정, 송재광 등 초창기 회장직을 맡아 협회의 기초를 다진 분들의 노고도 잊을 수 없다.   남가주 한인 문화계의 터주대감 김봉태 화백은 미술가협회 회장직을 두 차례 맡아 봉사했다. 그리고 자신이 운영하는 ‘갤러리 스코프’를 중심으로 활발한 전시회 개최, 타인종 작가들과의 교류, 미술잡지 ‘스코프’ 발간 등을 통해서 남가주 한인 문화계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김 화백이 한국으로 영구귀국할 때까지 운영한 ‘갤러리 스코프’는 1980년대 이곳 한인 예술가들의 사랑방 노릇을 톡톡히 했다. 지극히 자유분방한 만남과 시끌벅적한 토론이 발전적 원동력이 되어 많은 창조적 일들이 태어났다.   한편, 황하진 화백은 1978년부터 10년 터울로 3차례나 회장직을 맡아 헌신적으로 활동하며 협회에 결정적 활기를 불어넣었다. 작가들이 자기 작품에 관해 이야기하는 대화의 장, 미술 각 분야의 워크숍 등을 매달 개최하고, 특별강좌, 원로 탐방 등의 행사를 수시로 열었다. 그뿐만 아니라, 매달 월보를 통해 미술계의 소식을 전하고, 연말에는 한 해의 활동을 총정리한 책자를 발간했다. 이 책은 지금도 소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기록이 그렇게 중요하다. 이런 미술가협회의 다양한 활동들이 이어지지 못한 점 참 아쉽다.   미주 한인 문화예술계도 연륜이 상당히 깊어졌다. 재작년에는 미주한국문인협회가 창립 40주년을 맞았고, 지난해에는 미주 최초의 시(詩) 동인지 ‘지평선’ 발간 50주년을 기념하는 문학 행사가 문인협회와 한국문화원 공동주최로 열렸다. 올해는 남가주 한인미술가협회 환갑과 함께, 젊은이들의 단체인 ‘모임극회’가 50주년을 맞는다. 내년에는 고(故) 고원 시인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문학 행사가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다.   이처럼 각 분야의 연륜이 깊이 익어가고 있다. 이는 달리 말하면, 변화의 새로운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는 뜻이다.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중요한 연결고리,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희망찬 새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미래의 주인공인 2세들과의 관계 설정도 철저하게 점검해야 한다. 억지로 가르치려 들거나 강요하지 말고, 그저 묵묵히 모범을 보이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60년 후의 후손들이 지금 우리의 활동과 작품을 어떻게 평가하고 기록할까를 생각해보면, 우리의 자세도 크게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삼가 옷깃을 여민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환갑 미협 남가주 한인미술가협회 나성 한인미술가협회 미술가협회 회장직

2024-07-18

[문화산책] 천개의 바람이 되어…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천개의 바람이 되어’라는 노래다. 내 개인적 느낌이지만, 이 노래를 들으면 죽음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지고, 죽음에 대한 공포감도 크게 줄어든다.   “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 말아요/ 거기에 나는 없어요/ 잠들어 있지도 않아요/ 천개의 바람/ 천개의 바람이 되어/ 저 드넓은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어요”   몸은 죽었지만 넋과 얼은 천개의 바람이 되어,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당신을 지켜주겠다는 이 노래는 사후세계에 대한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종교적인 관점이다.   “가을에는 햇살이 되어 들녘에 내려 비춰요/ 겨울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눈이 되지요/ 아침엔 새가 되어 당신을 깨워주고/ 밤에는 별이 되어 당신을 지켜드려요.”   일반적인 장송곡이나 추모곡은 산 자들이 죽은 이를 애통해하고 위로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 노래는 그와 반대로 죽은 이가 산 자들을 위로하는 관점의 시라는 점이 신선하게 돋보인다. 그래서 설득력도 강하다.   이 노래를 만든 사람은 일본의 소설가이자 작곡가, 그리고 가수로도 활동한 아라이 만(新井滿, 1946~2021)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죽은 이를 위한 추모곡은 많았지만, 죽은 이가 산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노래는 이게 처음이지요. 세상을 떠난 소중한 사람이 수십억 광년 떨어진 곳에 간 게 아니라 바람이 돼서 내 곁에 있다는 가사는 사람들에게 위로는 물론 용기와 희망을 북돋워 줍니다. 그게 이 노래의 힘이죠. 나도 얼마 전 장례식장에서 이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노래는 아라이 만이 암으로 아내를 잃고 괴로워하는 친구를 위해 만든 노래로, 2003년에 일본에서 발표되어 사회적 신드롬이 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일본의 모든 장례식장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오고, 전국 각지에 노래 연구모임이 생겨났고,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물론, 작곡가인 아라이 만의 장례식에서도 이 노래가 울려퍼졌다.   한국에서도 팝페라 가수 임형주가 이 노래를 불러 김수환 추기경 추모곡, 노무현 대통령 추모곡으로도 사용이 되었고, 세월호 침몰 사고 직후 조계종을 비롯한 여러 추모행사에서 이 노래가 추모곡으로 사용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이 노래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적신 것은 가사의 울림 때문이다. 이 가사는 작자 미상의 영문 추모시 ‘천개의 바람이 되어’를 일본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 시는 마릴린 먼로 25주기 추도식(87년)과 9·11테러 희생자 1주기 추도식 등에서 낭독됐을 정도로 유명하지만, 노래로 만들어진 적은 없었다.   이 노래 가사의 원작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아메리칸 인디언들에게 전래하여 오는 시(詩)라는 설에 공감한다. 사후세계에 대한 관점 때문이다. 인간은 죽어서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이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노래 가사처럼 나도 죽은 뒤에 무덤 속 관 안에 누워 있지 말고, 바람이 돼서 넓은 세상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사랑하는 이들을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되면, 죽음이 두렵지만은 않다.   불어오는 바람도 전과 달리 새삼스럽다. 오래전 세상 떠난 그리운 사람들이 바람이 되어 찾아온 것 같아 엄청 반갑고 고맙다. 그런데 다정하게 말을 거는 것 같은데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어서 참 안타깝다.   마종기 시인의 시 ‘바람의 말’이 떠오른다.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바로잡습니다=지난 5일자 문화산책 '미국에 감사하는 마음' 내용 중 ‘6·25재단 설립자'는 구성열씨로 바로잡습니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바람 노래 가사 대통령 추모곡 팝페라 가수

2024-07-11

[문화산책] 미국에 감사하는 마음

해마다 7월4일이 되면,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조금이라도 공부하리라 마음먹지만 잘 안 된다. 긴 세월 이 나라 한 귀퉁이에서 신세를 지며 살아왔는데, 독립기념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본 기억도 없고, 미국 독립의 기본정신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았으니 참 염치없고 부끄럽단 생각이 절로 든다.   “당신에게 미국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사람마다 다른 대답이 나올 것이다. 당연하다. 하지만, 그 대답들은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고 생생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개인적 의견들을 종합하면, 크고 확실한 실상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라는 다인종 다문화 나라에서 한국인이란 어떤 개성을 가진 존재인가라는 정체성과 이어지는 문제이기도 하다.   “당신에게 미국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내 개인적 대답은 우선 갚아야 할 신세를 진 나라, 감사해야 할 나라라는 객관적 현실 인식이다. 나는 짧지 않은 세월 미국에 살면서 많은 혜택을 누렸지만, 이 사회에 보탬이 되고 공헌한 것은 거의 없다. 법을 잘 지키며 착하게 살고, 세금 꼬박꼬박 잘 내면 되는 거 아니냐는 식의 문제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대한민국은 군사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미국의 도움을 받고 은혜를 입었다. 그 덕에 여러 위기를 극복하고 오늘의 번영을 이루었고, 지금도 여러 가지로 기대고 있다. 물론, 비판할 부분도 적지 않겠지만, 감사하고 갚아야 할 것이 훨씬 크고, 우선이다. 비판하더라도, 먼저 감사한 후에 하는 것이 맞다. 이것이 객관적인 현실이다.   간단하게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한국 국방부의 기록에 따르면, 한국전이 발발한 1950년 6월25일부터 휴전협정이 발효된 1953년 7월27일까지 미군 전사자(KIA)는 3만6574명에 이른다. (참고로 미국의 기록은 달라서, 1995년 워싱턴 D.C.에 건립한 한국전 참전 기념비에는 사망자(DEAD)가 5만4246명이라고 쓰여 있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미국 청년들이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이다. 저절로 숙연해지고, 감사의 마음이 우러난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실천한 것이 없다. 부끄럽다.   그런 점에서 나는 ‘6·25재단’을 만들어 활동하는 뉴욕의 구성열, 구(김)창화 부부를 존경한다. 이들 부부는 6·25를 겪은 마지막 세대로서 점점 잊혀가는 역사를 후세에게 알려야 한다는 뜻에서 2018년에 비영리 재단을 설립하여, 한국전에서 전사한 젊은이들의 고향을 직접 찾아가 보답하고 기념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도서관을 찾아 기념식을 열어 그들을 기억하고, 학생들에게 자유 수호를 위해 희생한 선배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준다.   재단 설립 이후 전국 50개 주마다 한 명의 전사자를 선정해 고향의 출신 학교들과 연락했고, 지난 5월24일까지 44개주 45개학교에서 기념식을 가졌다고 한다. 대부분 시골 학교를 선택하여, 직접 자동차를 몰고 찾아가 기념식을 열고, 제작한 기념 팻말을 전달하고, 한국 전통사탕과 스케치북 등 선물을 나눠준다는데, 특히 희생 장병의 유가족과 만나게 되는 경우는 매우 뜻깊고 감동적인 기념식이 된다고 한다. 이 넓은 미국 땅에서 작은 시골 학교를 직접 찾아다닌다니 참 대단한 일이다. 젊은 나이도 아닌데….    ‘6·25재단’은 매년 6월25일, 또는 정한 날짜에 감사의 마음으로 함께 걸으며 기금을 마련하는 ‘자유의 행진(Liberty Walk)’ 행사를 갖는다. 또 한국의 중학생 대상 문예 대회 등의 행사를 통해, 우리의 자유와 민주를 위해  누군가가 얼마나 큰 희생을 치렀는지를 알고 감사의 마음을 일깨워 주고 있다고 한다. 6·25를 모르는 어린 세대가 스스로 역사를 찾고 탐구하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다.     ‘6·25재단’의 기본정신은 소박하고 선명하다. “어려울 때 도움을 받는 것은 수치가 아니다. 도움을 받고도 감사를 모르는 것이 큰 수치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미국 감사 한국전 참전 재단 설립 다문화 나라

2024-07-04

[문화산책] 말하기와 글쓰기

명랑한 아주머니들의 수다 꽃이 피기 시작하면 참으로 볼만하다. '만화방창 화란춘성' 거침이 없어서 도무지 막을 재간이 없다. 아주머니들의 수다는 일단 재미있다. 잘 들어보면, 어떤 주제를 가지고 서로 주고받는 대화가 아니라, 각자가 자기 말만 줄기차게 하는데도 신통하게 잘 통한다. 참 신기한 일이다.   신기한 것이 또 있다. 그 수다의 달인 아주머니들에게 “그 재미있는 이야기를 그냥 날려버리지 말고, 글로 써서 남기면 좋겠다”고 권하면, 펄쩍 뛰며 손사래를 친다. 말과 글은 전혀 다른 분야라고 삼팔선보다도 진한 선을 긋는 것이다.   이해하기 어렵다. 나는 말과 글은 하나이고, 말을 글자로 적어놓으면 글이 된다고 믿는다. 내가 주로 연극판에서 대사(말) 중심의 공연 대본을 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말과 글은 별개일 수 없다. 말을 청산유수로 잘하는 사람이 왜 글쓰기는 어렵고 거북하게 여기는 걸까?   “내 이야기를 글로 쓰면 장편 소설 몇 권은 되고도 남을 것이다”라는 말을 흔히 듣는다. 하지만, 보통사람의 자서전이나 회고록은 별로 많지 않다. 말과 글은 전혀 다른 것이고, 나와는 관계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잘못된 생각이다. 깨버렸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에는 역사의 영향도 어느 정도 작용하는 것 같다. 역사적으로, 지배계층의 권력자들은 글공부를 독점했다. 일반 백성들이 글을 배워서 똑똑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글쓰기는 따로 공부해야 하는 특별한 분야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는 말과 글은 다르다고 여긴다. 물론, 문법이나 맞춤법 같은 기초적 공부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크게 어렵거나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글은 배워야 잘 쓰는 것이 아니다. 공부가 오히려 방해되는 경우도 많다.   내가 보기에는 글쓰기의 형식에서 자유로운 보통사람들이 진솔하게 쓴 시나 글이 어설픈 문인의 작품보다 한결 감동적이고 울림이 크다. 거추장스러운 제약에 얽매이지 않기에 순수하다. 철들기 전의 어린아이 그림이 놀라울 정도로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과 이치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글을 쓸 수 있다. 이를 증명할 예들도 많다. 가령, 한국 경상북도 칠곡군 할매시인들도 좋은 예다. 평균 연령 78세의 할매시인들은 마을학당에 모여 가슴 속 깊이 숨겨두었던 지나온 삶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그림도 그리는데, 주옥같은 글들이 참 많이 탄생했다. 김용택 시인이 100여명의 어머니가 쓴 감동적 시를 모아 엮은 시집 ‘엄마의 꽃씨’도 좋은 예다.   일본의 할머니 시인 시바타 도요(1911-2013)가 98세 때 펴낸 첫 시집 ‘약해지지 마’를 읽어봐도, 일상의 말을 그대로 글로 적은 것처럼 편안하다. 쉽고 편하지만 감동의 울림이 크고, 시에 담긴 유머 감각과 긍정적인 태도가 호평을 받으면서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어, 일본열도를 감동하게 했다.   말과 글은 본디 하나다. 역사적으로 보면, 태초에 먼저 말이 있었고, 한참 지나서 글자가 만들어졌다. 그 후에도 말의 힘은 끈질기게 이어졌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구비문학, 신화와 전설, 노래, 민요, 민화 등의 서사구조와 정신세계는 오래 전승되었고, 지금도 존재한다. 가령 어린 시절 들었던 할머니의 옛날이야기, 어머니의 자장가 같은 것의 영향은 평생 간다.   많은 이들이 자기의 삶과 생각을 글로 썼으면 좋겠다. 글쓰기는 해보면 생각보다 쉽고 재미도 있다. 실제로는 이미 전 국민이 매일 글쓰기를 하고 있다. 휴대전화를 심각한 표정으로 노려보면서 꾹꾹 누르는 글자들이 곧 글이다. 금방이라도 세계 명작이 나올 것 같은 진지한 표정이다. 그 글에다 자기만의 생각을 꾹꾹 눌러 담고, 좀 길게 쓰면 좋은 글이 될 수 있다. 바야흐로 '모든 사람은 시인이요, 작가'인 시대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글쓰기 옛날이야기 어머니 할머니 시인 달인 아주머니들

2024-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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