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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아빠, 오빠, 자기야

장소현 시인, 극작가

장소현 시인, 극작가

‘오빠’라는 낱말이 한동안 한국 정치판을 뜨겁게 달구었다. 논쟁의 핵심은 오빠라는 호칭이 누구를 지칭하는 것이냐, 친오빠냐 남편이냐 하는 것이었는데, 이러쿵저러쿵 시끄러웠다. 우리말에 부부 사이의 호칭이 참으로 애매하고 느슨해서 생긴 희비극이었다.
 
지난 시절에는 남편을 ‘아빠’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것이 한동안 유행했었는데, 이는 자신의 친정아버지를 부르는 것인지 남편을 부르는 것인지 혼란스러울 뿐만 아니라, 일본식 어법으로 알려진 말이므로 절대로 써서는 안 된다고 우리말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아빠’가 ‘자기’를 거쳐 ‘오빠’로 진화(?)한 모양이다. 요새 젊은 아내들 사이에는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인 것으로 보인다. 연애 시절에 부르던 호칭을 결혼 후에도 그냥 자연스럽게 쓴다는 것이다.
 
그런데, 단호하게 말해서, 아빠건 오빠건 그건 명백한 ‘근친상간’이다. 그러니까,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통용되는 세상이 된 셈이다.
 
보통은 ‘여보’, ‘당신’이 일반적 호칭이지만, 어쩐 일인지 안 쓰는 부부가 많은 모양이다. 특히, 신혼의 젊은 부부들은 매우 어색하게 여긴다고 한다. 그래서, 아무개 씨, 아무개 아빠, 저기요, 이봐요, 나 좀 봐요 등으로 얼버무린다.
 
남편을 부르는 가장 보편적인 호칭어가 ‘여보’인데, 이 말이 부부간의 호칭어로 정착된 것은 뜻밖에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 20세기 초, 중반에도 그리 보편적이지 않았다.
 
한편, ‘오빠’라는 호칭은 조용필, 나훈아, 남진 같은 가수들을 열광적으로 따르는 ‘오빠부대’에서부터 널리 쓰이기 시작했고, 지금을 K-팝 열풍 덕에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국제어가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남편이 오빠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연스럽게 알맞은 호칭을 찾았으면 좋겠다. 이에 대해 우리말 전문가들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궁금해서, 전문가가 권하는 표준안 하나를 예로 살펴본다. (출처: 한국다문화사회연구소)
 
남편을 부르는 호칭 △신혼 초- 여보, ○○씨, 여봐요 △자녀가 있을 때- 여보, ○○ 아버지, ○○아빠 △장년, 노년- 여보, 영감, ○○할아버지
 
아내를 부르는 호칭 △신혼 초- 여보, ○○씨, 여봐요 △자녀가 있을 때- 여보, ○○엄마, ○○어머니 △장년, 노년- 여보, 임자, ○○엄마, ○○할머니
 
아무튼, 흔히 쓰는 자기, 오빠, 아저씨 등은 안 쓰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하나같은 주장이다. 말 나온 김에 한 마디 더 보태자면, 자기 아내를 ‘와이프’라고 부르는 것을 흔히 보는데, 이런 호칭도 어딘가 어색하다.
 
이런 식의 문제에 부딪힐 때면 떠오르는 것이 우리말을 지극히 사랑한 선구자들이다. 백기완, 이어령, 소설가 김동성 같은 분들….
 
이어령 선생은 자신이 이룬 숱한 업적 중에서 가장 보람있게 여기는 일로 ‘갓길’이라는 낱말을 정착시킨 것을 꼽은 바 있다. 백기완 선생의 우리말 사랑은 참으로 지극하여, 글을 쓰고 말을 할 때도 한자어와 영어, 일본어 같은 외래 어휘를 삼가고 달동네, 새내기, 동아리, 모꼬지 등의 순우리말을 살려 쓴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런 우리말 사랑은 김지하, 김민기, 전인권 등 많은 문화예술인에게 영감과 자극을 주었다.
 
우리 한글은 매우 과학적이어서 배우기 쉽다고 하는데, 사실은 깊이 들어갈수록 정말 어렵고 속 깊은 언어다. 호칭이나 존댓말 등도 그렇다. 잘 찾아보면, 부부간의 호칭도 아름답고 정겨운 순우리말이 있을 것 같은데….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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