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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가로쓰기와 내리쓰기의 다름

장소현 시인, 극작가

장소현 시인, 극작가

때로는 지극히 당연하게 넘기는 일의 바탕에 근본적인 문제가 깔려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 당연한 듯 당연하지 않은 것을 찾아서 꼼꼼히 살펴 교훈을 얻는 일이 인문학의 시작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책이 그렇다. 지금 우리가 읽는 책이나 신문은 당연히 가로쓰기로 되어 있다. 왼쪽 위에서 옆으로 읽어가며, 오른쪽 아래 방향으로 읽어가는 형식이다. 서양의 책들과 같은 구조다.
 
하지만, 누구나 아는 대로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3국은 오랫동안 내리쓰기를 해왔다. 우리의 옛 문헌들은 띄어쓰기 없는 내리쓰기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가 가로쓰기를 전용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책이나 신문이 모두 내리쓰기였다. 중국어 책이나 일본어 책은 아직도 내리쓰기를 한다. 컴퓨터의 영향으로 가로쓰기로 변해가는 중이긴 하지만, 아직은 내리쓰기 책이 주를 이루고 있다. 오랜 세월 이어져 내려온 전통을 소중하게 지키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문화적으로 뒤떨어졌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가로쓰기 또한 띄어쓰기와 마찬가지로 ‘구미선진국 따라 하기’인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가로쓰기를 하는 까닭은 ‘사람의 눈이 가로로 찢어져 있으니 가로쓰는 것이 과학적이다’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붙어 있다.
 
“책의 판면(版面) 짜기에서, 1980년대까지 이어 오던 세로짜기가 하루아침에 가로짜기로 바뀌는 현상을 목도하면서, 우리 사회의 문화조직이 ‘냄비현상’에 휘둘리고 있는 전형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세로짜기에서 가로짜기로 가더라도, 오랫동안 세로짜기 또는 세로쓰기를 해온 동아시아의 문자문명이 하루아침에 가로쓰기로 가야 하는지, 그 사유를 분석하고 검토하고, 그리고 검증하고 하는 신중함과 진지함이 크게 결여되었음을 지적하고자 함이다. …〈중략〉… 알파벳 문화에의 맹종을 경계하는 지적에 귀 기울일 일이라고 생각한다.”-이기웅, 〈출판도시를 향한 책의 여정〉 중에서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옛 문화를 읽을 때, 특히 그림을 볼 때 드러난다. 세상을 보고 표현하는 관점과 방법이 다른 것이다. 가로쓰기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어 가게 되어 있는데, 내리쓰기 문화에서는 오른쪽 위에서부터 내리읽으면서 왼쪽으로 옮겨 가게 된다. 별것 아닌 차이 같지만, 한국미술사학자 오주석(吳柱錫)의 설명을 들어 보면, 문제가 간단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작품을 읽는 동서양의 방식 차이는 아주 작은 듯하나, 그것이 초래하는 결과는 예상 밖으로 엄청나다. 우리 옛 그림은 애초 가로쓰기 식으로 보면 그림이 잘 보이지 않게 되어 있다. 옛 화가들에게는 세로로 읽고 쓰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으므로, 보는 이도 당연히 우상(右上)에서 좌하(左下) 쪽으로 감상해 나갈 것이라 생각하면서 구도를 잡고 세부를 조정하고 또 필획(筆劃)의 강약까지도 조절했기 때문이다.”-오주석,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중에서
 
이렇게 가로쓰기와 세로쓰기는 우리 문화 전반에서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숙제라고 생각한다. 인제 와서 내리쓰기로 되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편리하다는 이유만으로 오랜 전통을 무시하고 뭉개버리는 일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필요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 그런 일이 너무나 많다. 현대화, 세계화라는 미명 아래 속절없이 스러져 되살릴 수 없어진 무수한 우리 것들, 납득하기 어려운 쏠림 현상들….
 
이건 그저 농담이지만, 내리쓰기 책을 읽을 때는 고개를 끄떡거리게 되는데, 가로쓰기를 읽을 땐 도리도리를 하게 된다. 도리도리와 끄떡끄떡, 매몰찬 부정과 넉넉하고 수더분한 긍정의 차이….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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