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삶의 뜨락에서] 모로코를 떠나면서- 모로코 4

이른 아침, 모로코에서의 마지막 행선지인 에사우이라로 떠났다. 아르간 나무가 우거진 숲속에는 아르간 나무를 기어오르는 긴 뿔의 염소들이 있었다. 그림책에서나 볼 수 있는 동화 나라에온 것 같았다. 자연이란 얼마나 경이로운 것인가? 아르간 오일을 생산하는 공장을 견학했다. 아르간 오일은 나무의 씨앗을 이용해서 만들기 때문에 화장품과 미용제품에 많이 사용된다고 한다. 우리는 영양크림, 마사지 크림, 비누 등을 사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세찬 바람이 차창을 흔들었다. 에사우이라에 도착한 것이다. 프랑스 건축가가 해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1760년에 성벽을 세웠다는 중앙광장에는 18세기 대포가 바다를 향해 늘어서 있었다. 유럽식 성벽이 그대로 남아있는 에사우이라의 항구도시는 장엄하고 아름다운 특출한 분위기였다. 갈매기의 울음소리, 기도 소리, 대서양의 파도 소리가 세찬 바람에 씻기며 천상의 음악을 들려주고 있었다. 가슴 저리도록 아름다운 이 도시에 오래도록 머무르고 싶었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저녁에 들어오는 배와 일몰을 보려고 자주 바다로 나갔다. 성벽, 좁은 거리, 번거롭지 않은 시장, 노점상, 성벽으로 둘러싸인 에사우이라의 항구는 그물로 생선을 끌어오르는 어부들로 시끄럽고 분주했다. 바로 옆에 임시로 만들어 놓은 해산물 그릴이 있었다. 이름도 없고, 주소도 없고, 전화도 없고, 정해진 시간도 없는 그곳에서는 도미, 아귀, 새우, 랑구스틴 또는 랍스터 등의 별미를 요리하고 있었다. 요리에 온 정성을 쏟고 있는 그에게서 바닷냄새가 났다. 수많은 고양이가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이곳은 고양이 천국이다.   구아나 음악을 연주하는 식당에서 마지막 저녁 만찬을 가졌다. 얼굴에 검고 뻘건색을 칠한 4명의 흑인 가수들이 탬버린을 두드리고 구리 캐스터네츠를 손가락으로 찰칵찰칵 소리를 내며 정열적으로 춤을 추었다. 다른 한쪽에서 타투를 해주고 있었다. 8명의 여자는 저마다 손등과 팔, 발뒤꿈치에 타투를 했다. 내 생전 처음 하는 타투가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기를 바랐다.     다음날 새벽 카사블랑카로 떠났다. 하산 모스크를 마지막으로 이번 여행을 마쳤다. 카사블랑카에서 시작해서 카사블랑카에서 끝난 이번 여행에서 실제로 마주한 카사블랑카는 하얀 아파트가 줄지어 있는 대도시였다. 새하얗기보단 세월을 머금어 희끗희끗 벗겨진 회색에 가까운 흰색이었다. 순백의 색깔 위로 쌓여있는 시간의 흔적들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가난한 나라의 여행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일까?   모로코는 수 세기에 걸쳐 아랍, 베르베르,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다양한 문화유산을 보유한 국가이다. 바람이 휘몰아치는 대서양 연안 도시의 아름다움, 눈 덮인 아틀라스 산맥, 사막의 모험, 건조한 암석사막 위에 붉은 흙벽돌로 세운 성채 마을, 아름다운 성문, 페인트칠이 벗겨진 고대시대의 가옥들, 로마의 유적지, 원주민 베르베르인들의 전통가옥 등 정말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경험을 했다.     그곳의 사람들은 어려운 생활 환경 속에서도 행복해 보였다. 그들에게서는 향긋한 흙냄새와 땀 냄새가 났다. 건전하고, 소박하고, 단순하고, 섹시하고, 원시적이며 하루하루의 불편함을 꾹 참고 지내는 그들이 참으로 부러웠다. 조금 더 편리하게 하기 위해서 이것도 생략하고 저것도 생략하는 우리에 비하면 얼마나 신성하고 빛이 나는가. 그들의 생생한 힘과 예리한 감각이 부러웠다.     여행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라 하지 않는가! 모로코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것이 없던 나에게 이번 여행에서 지낸 하루하루는 세월이 흘러도 생생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이춘희 / 시인삶의 뜨락에서 모로코 아침 모로코 울음소리 기도 유럽식 성벽

2024-03-12

[삶의 뜨락에서] 제마엘 프나 광장 -모로코 3

광대한 야자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천년의 세월을 버텨 온 도시 마라케시는 핑크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붉은 흙으로 만든 건물과 성벽 때문에 ‘붉은 도시’ 혹은 ‘붉은 진주’라고 불리는 이 도시는 아랍 건축술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뛰어난 건축물들과 중세 도시 건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모로코라는 국가명이 마라케시라는 이름에서 변형된 것일 정도로 마라케시는 모로코를 대표하는 도시이다. 구시가지의 조용한 호텔에 머물렀다. 옥상에서 내려다보이는 도시를 둘러싼 성벽, 모스크 등이 모두 붉은색을 띄고 있었다.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따라 남쪽으로 걷다 보면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 제마엘 프나(Jema El Fina) 광장을 만날 수 있다. 가는 길가에는 작은 상점과 행상인들이 야자나무로 짠 바구니, 황금색 아르간 오일 병, 색깔 있는 돌이 박힌 은빛 장신구들을 늘어놓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바닥까지 내려오는 카프탄이나 후드가 달린 젤라바 가운을 입고 있었다. 스포츠 청바지, 운동화, 티셔츠를 입은 젊은 층들도 보였다. 빛바랜 붉은색과 황토색 벽을 거쳐 오직 걸어야만 하는 좁은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시장이 나타난다.     제마엘 프나 광장은 마라케시의 중심지에 있는 큰 광장으로 ‘축제광장’으로도 불린다. 예전엔 공개 처형장으로 쓰였던 곳으로, 쿠투비아 사원 앞에 있다. 죄인을 처형하고 그들의 목을 걸어놓았다 하여 ‘사자의 광장’이란 뜻의 이름이 붙었다. 찰칵 찰칵하는 노새의 수레 소리와 아랍어 팝 음악, 휴대용 라디오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는 광장에는 이미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객들로 꽉 차 있었다. 카니발 풍의 이 야외 시장에는 장신구와 행상인들, 이국적인 향신료, 고급 수공예품, 갓 짜낸 오렌지 주스, 헤나 문신 예술가, 약초, 가죽, 목공예품, 레스토랑 하며 음악가와 공연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오전에는 장이 서며, 낮에는 뱀 부리는 사람, 줄타기하는 곡예사, 민속 무용단, 짐승 부리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여기저기서 제각각 재주를 부린다. 코브라 뱀 앞에 겁도 없이 얼굴을 바싹대고 사진을 찍고 있는미세스R 을 보았다. 5살 된 손주를 보여주기 위해 용기를 냈다고 하는 그녀의 얼굴은 행복해 보였다. 밤이 되자 지붕이 있는 노점들이 쿠스쿠스 요리, 파스티야(모로코 고기 파이의 일종), 하리라(전통 수프), 심지어 양 머리와 달팽이 조림을 제공하는 수십 개의 임시 레스토랑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음식을 팔고 있었다. 우리는 투어디렉터가 추천한 # 97번 그릴에 가서 튀김 생선과 야채로 이른 저녁 식사를 했다. 위스콘신주에서 온 두 부부도 맨 앞쪽 테이블에서 양고기를 주문하고 있었다.     성스러운 궁전과 모스크 그리고 현실적인 시장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마라케시는 참으로 경이로운 도시였다. 온갖 빛깔의 수많은 사람의 욕망과 호기심으로 들뜬 활기찬 분위기, 서로 얽히고설켜 그 거대한 몸통을 흔들어대고 소리치고 박장대소하며 수다 떠는 화려하며 무질서한 광경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전쟁은 속여도 시장은 못 속인다는 말이 있다. 제마엘 프나 광장은 단순히 물건을 팔고 사는 그 이상의 곳이었다. 마라케시의 고동치는 심장이었다.     하늘 높게 우뚝 솟은 파아란 첨탑, 코발트 빛깔의 정원, 이국적인 풍경, 소리, 냄새 등 마라케시의 변화무쌍한 문화 그리고 붉은 황토색의 강렬한 색상은 나를 환상의 세계로 이끌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큰길로 나왔다. 윙윙거리는 오토바이, 음식을 찾아 돌아다니는 길고양이, 골목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구슬픈 저녁 기도 소리가 온 도시를 일깨우고 있었다. 이춘희 / 시인삶의 뜨락에서 제마엘 모로코 재래시장 제마엘 도시 마라케시 모로코 고기

2024-03-06

[삶의 뜨락에서] 미로의 도시, 페즈 - 모로코 2

부슬부슬 비 내리는 이른 아침 페즈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우리 일행은 구시가지의 관문인 블루 게이트까지 걸어갔다. 크고 작은 9000여 개의 골목, 현존하는 세계 최대 미로의 도시. 페즈를 설명하는 수식어이다. 길을 잃을까 염려되었는지 투어 디렉터, 드리스는 로컬 가이드를 맨 뒤에서 따라오게 했다. 이 도시에서는 길을 잃는 것밖에는 할 일이 없다고 얘기한 어느 미국 작가의 말이 피부로 와 닿았다.     블루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감각이 마비되어 버릴 것 같은 울긋불긋한 시장이 펼쳐졌다. 구시가지에서는 자동차가 다닐 수 없다. 모든 거리는 비포장이고 거의 부분적으로 하늘에 가려져 있었다. 한 방향으로만 통행할 수 있을 정도로 너무 좁거나 창문 없는 벽을 지나칠 때마다 좁은 공간에 밀실 공포증을 느끼는 나는 고개를 얼른 딴 곳으로 돌려야만 했다. 이 도시의 모든 것은 걸어서 다리로 움직인다. 오물 냄새, 낡고 불결한 것들이 쌓인 쓰레기가 길거리에 흐트러져 있었다.       이슬람 세계의 학문의 중심지답게 수많은 사원과 학교가 남아있었다. 오묘한 붉은 벽을 따라 어지럽게 꺾이는 구불구불한 골목길, 그 골목을 빼곡히 메운 각양각색의 물건들, 그 사이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물결, 키오스크 같은 작은 상점의 문밖, 그 길거리에 물건이 쌓여 있고, 가장자리에서 사람들이 웅크리고 앉아  CD, 양말, 감자, 라이터, 휴지 등을 팔고 있었다. 값을 깎아줄 테니 들어와서 물건을 보고 가라고 큰 소리로 손님을 부른다. 동대문 시장이 떠올랐다. 이 혼잡한 거리가 왠지 어머니 품속처럼 따스하고 편안했다.     페즈에서 유명한 가죽 염색 공장을 견학했다. 비둘기 똥이나 소의 오줌, 동물 지방, 재와 같은 천연재료를 염색재료로 쓰는 이곳의 냄새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역하고 독했다. 입장할 때부터 민트 잎사귀를 코밑에 갖다 대라고 나누어 준다. 옥상에서 내려다보이는테너리의 커다란 팔레트에 있는 색색의 물감 웅덩이가 이채로웠다. 부드럽고 가벼운 카멜 핸드백을 동생과 나를 위해서 두 개샀다. 지금도 ‘페즈’라는 이름만 들어도 가죽 태우는 역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가이드는 색색 가지의 수많은 향신료를 파는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북아프리카의 음식은 기름이 많고, 향신료를 많이 사용한다. 흑후추, 커민, 시나몬, 고추, 생강, 샤프론, 파프리카, 참깨, 아니스 등 다양한 종류의 향신료가 울긋불긋하게 쌓여 있었다. 오렌지가 수북이 쌓여있는 수레에서 가이드가 사서 나누어진 오렌지 맛은 달콤새콤하고 시원했다. 이 골목의 정취를 더욱 풍요롭게 했다.     빵 굽는 냄새가 고소하게 스며든 골목으로 들어섰다. 갓 자른 허브 다발을 들고 있는 모로칸 여성, 빵집에서 구울 빵이 담긴 쟁반을 들고 있는 아이들, 향긋한 베르베르 커피잔을 파는 카페에서 독특한 커피 향이 흘러나왔다. 다음 모퉁이에는 아름다운 타일로 장식된 분수대, 양동이를 만드는 작업장, 다음 골목길에서는 공을 차며 아이들이 축구놀이를 하고 있었다. 가끔 갈대나 대추야자를 가득 실은 노새가 지나칠 때면 비켜서라고 경고하는 소리, 미나렛에서 울리는 기도소리가  골목 마다 가득히 울린다. 종교와 삶이 밀착되어있는 이 도시가 신비스럽기만 했다.   모든 문명은 블루 게이트에서 끝난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구시가지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무려 6세기 후반부터란다. 모로코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기도 하다.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것 같았다. 이 도시에 사는 모로칸들은 자신들의 모든 것: 종교, 여성을 포함한 개인 소유물, 무엇보다도 그들의 생각을 비밀스럽게 간직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한다. 그들의 순박함, 자신을 지키려는 자존감으로 만들어진 도시, 페즈는 마법 같은 곳이었다. 이춘희 / 시인삶의 뜨락에서 모로코 미로 블루 게이트 로컬 가이드 오물 냄새

2024-02-27

[삶의 뜨락에서] 다시 길을 떠나며 - 모로코 1

살아가면서 그것을 얻을 수 있을 때까지 몇 년을 기다려야 하는 것들이 있다. 연모하는 사람의 편지, 숲속의 아름다운 집, 멋진 몸매, 빛나는 커리어 등등. 나에게 그것은 아프리카 여행이었다. 지난해 12월, 모로코로 떠날 준비를 하기 위해 다락에서 가방을 꺼내어 옷가지를 챙겨 넣고, 우편물과 신문을 정지시키고, 이웃에 화초를 부탁하고, 아파트 열쇠를 수퍼에게 맡기고 마지막으로 패스포트와 비행기 티켓을 확인하면서 집 안팎을 수십번 들락거려야 했다. 코로나19로묶여있다 4년 만에 다시 떠나는 여행이었다. 순조로운 출발을 원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떠난다는 것은 낯익은 모든 것들을 뒤로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리라.     케네디 공항에서 비행기의 문제가 생겨 예정시간보다 4시간 늦게 출발했다. 파리에서 다른 비행기로 갈아타고 기내에서 고생스럽게 하룻밤을 지낸 후 그 이튿날 오후에 카사블랑카에 도착했다. 공항복도를 빠져나오면서 온 벽을 차지하고 있는 황토색 빛깔의 사막 그림이 첫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기다리던 아프리카 대륙에 들어선 것이다. 바깥으로 나오니 늠름하게 서 있는 야자수들이 나를 맞아주었다. 군데군데 쌓인 붉은 흙무더기, 원시의 냄새, 아라비아 고유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 따스한 눈빛, 파랗고 노랗고 거무틱틱한 색깔들, 그 특유의 분위기에 이 땅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흠뻑 빠져들었다.     모로코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왕국 중의 하나이며, 한때 로마 제국의 일부였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아프리카 북서단에 있는 회교국가이다. 성으로 둘러싸인 고대 도시, 구불구불한 골목길, 왕궁 등 중세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 나라는 푸르른 농경지부터 눈에 싸인 아틀라스 산맥, 광활한 사하라 사막까지 유럽과 아라비아, 아프리카가 혼합된 이색적으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호텔이 있는 라바트 도시로 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택시를 탔다. 걸어가는 사람 하나 볼 수 없는 메마른 벌판에 당나귀를 끌고 가는 농부, 멀리서 가물가물하는 다닥다닥 붙어있는 아파트들, 가난한 나라라는 첫인상을 받았다. 오토바이를 타고 흙먼지를 일으키며 쏜살같이 지나가는 젊은 남녀, 뒷자리에 히잡을 쓴 여자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모로코의 수도인 라바트는 인구 100만명이 넘는 대도시로 카사블랑카 다음으로 큰 도시이다. 라바트의 구시가지(Old Medina)까지 걸어가면서 만난 밥 루아(Bab Rough)는 해안 바람에 의해 계속 강타당하기 때문에 ‘바람의 문’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 도시의 입구 역할을 했던 이 문은 웅장하고 꽃무늬 아라베스크로 호화롭게 장식되어 있었다. 그 시대에 어떻게 이렇게 정교하게 조각할 수 있었을까 감탄했다. 성벽을 기점으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누어져 있었다.     골목 끝에 위치한 호텔까지 택시가 들어갈 수 없어 큰 길가에서 내려야만 했다. 짐을 수레에 싣고 종종걸음으로 쫓아갔다. 정말 얼마 만에 보는 수레인가! 잊고 지냈던 유년의 골목길들, 그리운 얼굴들을 만났다. 그리고 나를 만났다. 콧날이 새큰해져 왔다. 여행이 가져다주는 신선함이다. 수백 송이의 장미가 피어있는 호텔은 무척 호화로운 곳이었다. 저녁 식사 후, 투어 디렉터와 이번 여행을 같이하게 될 16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첫 만남부터 우리는 큰 가족 같았다. 이번 여정이 기다려진다. 이춘희 / 시인삶의 뜨락에서 모로코 아라비아 아프리카 라바트 도시 아프리카 북서단

2024-02-21

[투어멘토 박평식의 여행 이야기] 색(色)으로 물든 모로코

영화 '아라비안나이트' 속 아름답고 신비한 풍경의 나라 모로코.   흔히 모로코를 두고 '몸은 아프리카, 머리는 아랍, 눈은 유럽에' 두고 있다고들 한다. 그만큼 아프리카이면서도 중동과 유럽의 분위기를 한꺼번에 느낄 수 있는 이색적인 여행지다. 모로코는 북아프리카 중에서도 가장 서쪽에 위치한 나라다. 세계지도를 보면 대서양을 따라 길게 뻗어 있고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 지중해까지 긴 해안선이 이어진다. 동쪽으로는 알제리와 국경을 맞대고 서쪽에는 대서양, 남쪽에는 서사하라, 북쪽으로는 스페인과 맞닿아 있다.모로코를 대표하는 여행지는 쉐프샤우엔, 페스, 카사블랑카 등을 꼽을 수 있다. 그중에서도 모로코 왕국의 수도였고 세계 최초의 대학이 있던 고도 페스(Fes)를 보지 않고는 모로코를 방문했다고 할 수 없다.   중세 시대부터 번성했던 페스에는 세계유산에 등재된, 뱀처럼 똬리를 튼 꼬불꼬불한 메디나(MEDINA) 골목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다. 무려 9000개가 넘는다는 좁다란 골목을 따라 천지가 바자르(시장)다. 가죽제품부터 찻주전자, 도자기, 양탄자, 전통신발 바부슈, 그 외 다양한 향료와 과일을 사고파는 인파의 북적이는 소리와 짐을 가득 싫은 당나귀들의 숨소리가 가득하다.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골목 메디나와 함께 페즈에서 유명한 것이 테너리라 불리는 무두장 구역이다. 맨발로 이리저리 밟는 게 모로코식 무두질로 모로칸들은 현재에도 중세의 방법을 그대로 계승해가고 있다. 웅덩이마다 색색의 염료를 풀고 양이나 소가죽을 옛 방식 그대로 작업하는데 이 염색 원료에 가축 배설물을 함께 섞기 때문에 냄새가 꽤나 고약하다. 입구에서 무료로 나눠주는 민트 잎을 코에 대면 지독한 냄새를 희석해 주는 역할을 한다. 특유의 이색적인 풍경 덕에 테너리는 전 세계 포토그래퍼들이 사랑하는 출사 명소로도 이름을 날리고 있다.     또한 모로코 북서부 산악지대에 위치한 쉐프샤우엔(Chefchaouen)은 '하늘색 도시'로도 유명하다. 경사진 산비탈을 따라 마을 전체가 다채로운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다. 이 도시는 두 달에 한 번 정도 페인트칠을 하여 마을을 파랗고 하얗게 유지한다고 한다. 하늘과 땅이 모두 파랗게 물들어 마치 동화 속을 다니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형형색색으로 물든 도시들과는 달리 '하얀 집'이란 뜻의 카사블랑카(Casablanca)에는 유럽의 정취가 가득하다. 카사블랑카 영화팬이라면 한 번쯤 들러보고 싶은 이 도시의 명물은 모로코에서 가장 크고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종교 건축물인 하산 2세 모스크다. 엄청난 위용과 아름다움을 자랑하는데다 1993년 완공된 비교적 최신 모스크답게 내부 역시 유리 바닥, 개폐식 천장 등 최첨단 기술을 자랑한다.   모로코의 도시들은 저마다의 색깔로 물들어 있다. 제법 많은 나라들을 여행했다고 자부하지만 모로코만큼 예술적으로 빨갛고, 노랗고, 파랗고, 하얗게 물든 여행지는 어디에도 없다. 박평식 / US아주투어 대표·동아대 겸임교수투어멘토 박평식의 여행 이야기 모로코 모로코식 무두질 나라 모로코 모로코 북서부

2023-06-08

[삶의 뜨락에서] 인샬라!

인샬라! (신의 가호가 있기를)를 외치고 싶은 모로코에 다녀왔다. 아프리카 대륙에 발을 디뎠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했다. 모로코는 아프리카 대륙의 북서쪽에 위치해 북으로는 지중해, 서쪽은 대서양을 접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좋은 입지 조건에 지중해 연안의 아름다운 해변과 북서쪽 해안가를 따라 항구도시가 발달했으며 그중 아가디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휴양도시이다. 영화 ‘카사블랑카’의 배경이 된 카사블랑카는 화려한 불빛을 자랑하며 그 자태와 위엄은 맨해튼을 방불케 한다.     모로코인 대부분은 수니파 이슬람교도이다. 1956년에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이후 프랑스의 문화적 유산이 많이 남아있고 지리적으로는 배로 한 시간이면 스페인에 갈 수 있어 스페인 문화도 많이 공존하고 있다. 여행자들의 로망인 모로코 사하라 사막 투어 또한 유명하다. 믿기 어렵게도 아틀라스 산맥 위 정상에 위치한 스키 리조트 또한 스키어들의 천국이다. 이렇게 해양도시와 사막, 눈까지 그리고 많은 천연자원을 갖고 있지만 세계에서 가난한 국가 중의 한 나라라니 안타까웠다.     모로코는 유럽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로 아랍과 유럽의 문화가 잘 조화를 이루며 곳곳에 역사적인 기념비와 건축물들이 여행객들을 반기고 있다. 이슬람교도는 하루에 다섯 번씩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메카를 향하여 절을 한다. 우리가 묶고 있던 호텔 밖에서도 새벽에 그들의 기도 소리가 너무나도 우렁차게 들려와 잠을 설치기도 했다. 과연 모든 이슬람교도는 그토록 신앙심이 깊어 열심히 새벽부터 기도하는 것일까. 아니면 율법의 감옥에 갇혀서 어쩔 수 없이 강요당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또한 이슬람 국가에서는 일부다처제(4명까지)가 허용되지만, 지금은 결혼 당시 여성이 일부일처제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면서 여권이 상승하고 있다. 문맹률은 50%가 넘고 실업률 또한 30%가 넘는다고 한다. 도시를 조금 벗어나 현지에서 만난 모로코인들은 가난의 행색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빈부의 격차가 가장 심한 나라 중의 하나이다. 국민의 19%가 하루에 4달러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페스(Fes)는 옛 왕조의 수도였으며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도시로 인구는 100만 명이 넘고 카사블랑카 다음으로 큰 도시이다. 이 도시는 현재 모로코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참모습이었다. 페스는 미로와 같은 좁은 골목과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건물들로 외관상으로 보면 빈부의 정도를 알 수 없이 똑같은 창문과 출입문, 장식 없는 벽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일단 내부로 들어가면 집의 화려함과 크기가 빈부의 차이를 여실히 드러낸다. 이 도시에는 세계 최초의 대학인 알카라윈 대학이 859년에 세워졌고 지금도 대학의 기능을 다 하고 있다.     13세기에 마리니드 왕조에 의해 모스크와 왕궁이 건설되었는데 그 건물의 정교함은 지금도 감히 흉내 내기가 힘들 정도이다. 789년부터 1925년 라바트로 수도를 이전하기까지 수도였던 페스는 지금도 구 시장 자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유대인 예배당 시나고그가 공존하고 있어 유대인들의 뿌리 깊은 근성을 알 수 있었다. 페스에는 1000년이 넘도록 수공업으로 천연가죽 염색 공장을 유지하고 있고 전통의상과 상업지구, 주거지역이 혼합되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한국의 1960년대 남대문 시장을 연상시킨다. 어린이들을 학교 보내는 대신 골목골목에서 호객행위를 시키는 문맹의 부모들이 50% 이상이라니 아직도 모로코는 갈 길이 멀구나 싶어 안타까웠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인샬라 유네스코 문화유산 모로코인 대부분 모로코 사하라

2022-11-18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