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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제마엘 프나 광장 -모로코 3

광대한 야자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천년의 세월을 버텨 온 도시 마라케시는 핑크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붉은 흙으로 만든 건물과 성벽 때문에 ‘붉은 도시’ 혹은 ‘붉은 진주’라고 불리는 이 도시는 아랍 건축술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뛰어난 건축물들과 중세 도시 건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모로코라는 국가명이 마라케시라는 이름에서 변형된 것일 정도로 마라케시는 모로코를 대표하는 도시이다. 구시가지의 조용한 호텔에 머물렀다. 옥상에서 내려다보이는 도시를 둘러싼 성벽, 모스크 등이 모두 붉은색을 띄고 있었다.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따라 남쪽으로 걷다 보면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 제마엘 프나(Jema El Fina) 광장을 만날 수 있다. 가는 길가에는 작은 상점과 행상인들이 야자나무로 짠 바구니, 황금색 아르간 오일 병, 색깔 있는 돌이 박힌 은빛 장신구들을 늘어놓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바닥까지 내려오는 카프탄이나 후드가 달린 젤라바 가운을 입고 있었다. 스포츠 청바지, 운동화, 티셔츠를 입은 젊은 층들도 보였다. 빛바랜 붉은색과 황토색 벽을 거쳐 오직 걸어야만 하는 좁은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시장이 나타난다.  
 
제마엘 프나 광장은 마라케시의 중심지에 있는 큰 광장으로 ‘축제광장’으로도 불린다. 예전엔 공개 처형장으로 쓰였던 곳으로, 쿠투비아 사원 앞에 있다. 죄인을 처형하고 그들의 목을 걸어놓았다 하여 ‘사자의 광장’이란 뜻의 이름이 붙었다. 찰칵 찰칵하는 노새의 수레 소리와 아랍어 팝 음악, 휴대용 라디오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는 광장에는 이미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객들로 꽉 차 있었다. 카니발 풍의 이 야외 시장에는 장신구와 행상인들, 이국적인 향신료, 고급 수공예품, 갓 짜낸 오렌지 주스, 헤나 문신 예술가, 약초, 가죽, 목공예품, 레스토랑 하며 음악가와 공연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오전에는 장이 서며, 낮에는 뱀 부리는 사람, 줄타기하는 곡예사, 민속 무용단, 짐승 부리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여기저기서 제각각 재주를 부린다. 코브라 뱀 앞에 겁도 없이 얼굴을 바싹대고 사진을 찍고 있는미세스R 을 보았다. 5살 된 손주를 보여주기 위해 용기를 냈다고 하는 그녀의 얼굴은 행복해 보였다. 밤이 되자 지붕이 있는 노점들이 쿠스쿠스 요리, 파스티야(모로코 고기 파이의 일종), 하리라(전통 수프), 심지어 양 머리와 달팽이 조림을 제공하는 수십 개의 임시 레스토랑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음식을 팔고 있었다. 우리는 투어디렉터가 추천한 # 97번 그릴에 가서 튀김 생선과 야채로 이른 저녁 식사를 했다. 위스콘신주에서 온 두 부부도 맨 앞쪽 테이블에서 양고기를 주문하고 있었다.  
 
성스러운 궁전과 모스크 그리고 현실적인 시장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마라케시는 참으로 경이로운 도시였다. 온갖 빛깔의 수많은 사람의 욕망과 호기심으로 들뜬 활기찬 분위기, 서로 얽히고설켜 그 거대한 몸통을 흔들어대고 소리치고 박장대소하며 수다 떠는 화려하며 무질서한 광경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전쟁은 속여도 시장은 못 속인다는 말이 있다. 제마엘 프나 광장은 단순히 물건을 팔고 사는 그 이상의 곳이었다. 마라케시의 고동치는 심장이었다.  
 
하늘 높게 우뚝 솟은 파아란 첨탑, 코발트 빛깔의 정원, 이국적인 풍경, 소리, 냄새 등 마라케시의 변화무쌍한 문화 그리고 붉은 황토색의 강렬한 색상은 나를 환상의 세계로 이끌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큰길로 나왔다. 윙윙거리는 오토바이, 음식을 찾아 돌아다니는 길고양이, 골목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구슬픈 저녁 기도 소리가 온 도시를 일깨우고 있었다.

이춘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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