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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미로의 도시, 페즈 - 모로코 2

부슬부슬 비 내리는 이른 아침 페즈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우리 일행은 구시가지의 관문인 블루 게이트까지 걸어갔다. 크고 작은 9000여 개의 골목, 현존하는 세계 최대 미로의 도시. 페즈를 설명하는 수식어이다. 길을 잃을까 염려되었는지 투어 디렉터, 드리스는 로컬 가이드를 맨 뒤에서 따라오게 했다. 이 도시에서는 길을 잃는 것밖에는 할 일이 없다고 얘기한 어느 미국 작가의 말이 피부로 와 닿았다.  
 
블루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감각이 마비되어 버릴 것 같은 울긋불긋한 시장이 펼쳐졌다. 구시가지에서는 자동차가 다닐 수 없다. 모든 거리는 비포장이고 거의 부분적으로 하늘에 가려져 있었다. 한 방향으로만 통행할 수 있을 정도로 너무 좁거나 창문 없는 벽을 지나칠 때마다 좁은 공간에 밀실 공포증을 느끼는 나는 고개를 얼른 딴 곳으로 돌려야만 했다. 이 도시의 모든 것은 걸어서 다리로 움직인다. 오물 냄새, 낡고 불결한 것들이 쌓인 쓰레기가 길거리에 흐트러져 있었다.    
 
이슬람 세계의 학문의 중심지답게 수많은 사원과 학교가 남아있었다. 오묘한 붉은 벽을 따라 어지럽게 꺾이는 구불구불한 골목길, 그 골목을 빼곡히 메운 각양각색의 물건들, 그 사이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물결, 키오스크 같은 작은 상점의 문밖, 그 길거리에 물건이 쌓여 있고, 가장자리에서 사람들이 웅크리고 앉아  CD, 양말, 감자, 라이터, 휴지 등을 팔고 있었다. 값을 깎아줄 테니 들어와서 물건을 보고 가라고 큰 소리로 손님을 부른다. 동대문 시장이 떠올랐다. 이 혼잡한 거리가 왠지 어머니 품속처럼 따스하고 편안했다.  
 
페즈에서 유명한 가죽 염색 공장을 견학했다. 비둘기 똥이나 소의 오줌, 동물 지방, 재와 같은 천연재료를 염색재료로 쓰는 이곳의 냄새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역하고 독했다. 입장할 때부터 민트 잎사귀를 코밑에 갖다 대라고 나누어 준다. 옥상에서 내려다보이는테너리의 커다란 팔레트에 있는 색색의 물감 웅덩이가 이채로웠다. 부드럽고 가벼운 카멜 핸드백을 동생과 나를 위해서 두 개샀다. 지금도 ‘페즈’라는 이름만 들어도 가죽 태우는 역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가이드는 색색 가지의 수많은 향신료를 파는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북아프리카의 음식은 기름이 많고, 향신료를 많이 사용한다. 흑후추, 커민, 시나몬, 고추, 생강, 샤프론, 파프리카, 참깨, 아니스 등 다양한 종류의 향신료가 울긋불긋하게 쌓여 있었다. 오렌지가 수북이 쌓여있는 수레에서 가이드가 사서 나누어진 오렌지 맛은 달콤새콤하고 시원했다. 이 골목의 정취를 더욱 풍요롭게 했다.  
 
빵 굽는 냄새가 고소하게 스며든 골목으로 들어섰다. 갓 자른 허브 다발을 들고 있는 모로칸 여성, 빵집에서 구울 빵이 담긴 쟁반을 들고 있는 아이들, 향긋한 베르베르 커피잔을 파는 카페에서 독특한 커피 향이 흘러나왔다. 다음 모퉁이에는 아름다운 타일로 장식된 분수대, 양동이를 만드는 작업장, 다음 골목길에서는 공을 차며 아이들이 축구놀이를 하고 있었다. 가끔 갈대나 대추야자를 가득 실은 노새가 지나칠 때면 비켜서라고 경고하는 소리, 미나렛에서 울리는 기도소리가  골목 마다 가득히 울린다. 종교와 삶이 밀착되어있는 이 도시가 신비스럽기만 했다.
 
모든 문명은 블루 게이트에서 끝난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구시가지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무려 6세기 후반부터란다. 모로코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기도 하다.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것 같았다. 이 도시에 사는 모로칸들은 자신들의 모든 것: 종교, 여성을 포함한 개인 소유물, 무엇보다도 그들의 생각을 비밀스럽게 간직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한다. 그들의 순박함, 자신을 지키려는 자존감으로 만들어진 도시, 페즈는 마법 같은 곳이었다.

이춘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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