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뜨락에서] 다시 길을 떠나며 - 모로코 1
살아가면서 그것을 얻을 수 있을 때까지 몇 년을 기다려야 하는 것들이 있다. 연모하는 사람의 편지, 숲속의 아름다운 집, 멋진 몸매, 빛나는 커리어 등등. 나에게 그것은 아프리카 여행이었다. 지난해 12월, 모로코로 떠날 준비를 하기 위해 다락에서 가방을 꺼내어 옷가지를 챙겨 넣고, 우편물과 신문을 정지시키고, 이웃에 화초를 부탁하고, 아파트 열쇠를 수퍼에게 맡기고 마지막으로 패스포트와 비행기 티켓을 확인하면서 집 안팎을 수십번 들락거려야 했다. 코로나19로묶여있다 4년 만에 다시 떠나는 여행이었다. 순조로운 출발을 원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떠난다는 것은 낯익은 모든 것들을 뒤로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리라.케네디 공항에서 비행기의 문제가 생겨 예정시간보다 4시간 늦게 출발했다. 파리에서 다른 비행기로 갈아타고 기내에서 고생스럽게 하룻밤을 지낸 후 그 이튿날 오후에 카사블랑카에 도착했다. 공항복도를 빠져나오면서 온 벽을 차지하고 있는 황토색 빛깔의 사막 그림이 첫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기다리던 아프리카 대륙에 들어선 것이다. 바깥으로 나오니 늠름하게 서 있는 야자수들이 나를 맞아주었다. 군데군데 쌓인 붉은 흙무더기, 원시의 냄새, 아라비아 고유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 따스한 눈빛, 파랗고 노랗고 거무틱틱한 색깔들, 그 특유의 분위기에 이 땅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흠뻑 빠져들었다.
모로코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왕국 중의 하나이며, 한때 로마 제국의 일부였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아프리카 북서단에 있는 회교국가이다. 성으로 둘러싸인 고대 도시, 구불구불한 골목길, 왕궁 등 중세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 나라는 푸르른 농경지부터 눈에 싸인 아틀라스 산맥, 광활한 사하라 사막까지 유럽과 아라비아, 아프리카가 혼합된 이색적으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호텔이 있는 라바트 도시로 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택시를 탔다. 걸어가는 사람 하나 볼 수 없는 메마른 벌판에 당나귀를 끌고 가는 농부, 멀리서 가물가물하는 다닥다닥 붙어있는 아파트들, 가난한 나라라는 첫인상을 받았다. 오토바이를 타고 흙먼지를 일으키며 쏜살같이 지나가는 젊은 남녀, 뒷자리에 히잡을 쓴 여자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모로코의 수도인 라바트는 인구 100만명이 넘는 대도시로 카사블랑카 다음으로 큰 도시이다. 라바트의 구시가지(Old Medina)까지 걸어가면서 만난 밥 루아(Bab Rough)는 해안 바람에 의해 계속 강타당하기 때문에 ‘바람의 문’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 도시의 입구 역할을 했던 이 문은 웅장하고 꽃무늬 아라베스크로 호화롭게 장식되어 있었다. 그 시대에 어떻게 이렇게 정교하게 조각할 수 있었을까 감탄했다. 성벽을 기점으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누어져 있었다.
골목 끝에 위치한 호텔까지 택시가 들어갈 수 없어 큰 길가에서 내려야만 했다. 짐을 수레에 싣고 종종걸음으로 쫓아갔다. 정말 얼마 만에 보는 수레인가! 잊고 지냈던 유년의 골목길들, 그리운 얼굴들을 만났다. 그리고 나를 만났다. 콧날이 새큰해져 왔다. 여행이 가져다주는 신선함이다. 수백 송이의 장미가 피어있는 호텔은 무척 호화로운 곳이었다. 저녁 식사 후, 투어 디렉터와 이번 여행을 같이하게 될 16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첫 만남부터 우리는 큰 가족 같았다. 이번 여정이 기다려진다.
이춘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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