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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신앙 수행의 열매

크리스마스이브 날 한 중년 신사가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과속하며 운전을 했습니다. 마침 교통경찰에게 잡혀서 티켓을 받게 되었는데, 그 젊은 경찰은 상당히 무례한 태도를 보였고 그 신사는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게 되었습니다. 결국 신사분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젊은 경찰관의 뺨을 때렸고 그로 인해 그분은 수갑이 채워져 경찰서에 연행되었습니다. 어떤 이유인지 그분은 친구와 가족에게 전화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고 경찰서 철장에서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분을 참지 못해서 그 날 저녁 경찰서 철장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크리스마스이브 날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몇 년 전 일어난 실제 일입니다.   이분이 신앙 수행을 하는 분인가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분이 좌선 혹은 기도를 많이 하는 분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분이 교회, 절 혹은 교당에 다니는 분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 분이 경전 공부를 많이 한 사람 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포인트는 이분이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크리스마스이브 날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것입니다. 즉 현실 상황에서‘실다운’ 마음공부를 하지 않은 것입니다.     크리스마스이브 파티에 좀 늦었다고 해도 파티에 좀 늦는 것이 무슨 대수냐 생각하며 과속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습니다. 젊은 경찰이 무례한 태도를 보여도 다른 젊은이들은 ‘크리스마스이브에 즐겁게 놀고 있을 텐데 젊은 경찰이 추운 데서고생하는구나’ 하고 생각하고 무례한 행동을 이해할 수도 있었습니다. 또한 경찰서 철장 안에서 화나는 상황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어차피 그렇게 된 것 내일 아침이면 나가겠지’하고 편히 마음을 돌렸을 수도 있었습니다. 미래에 이가 추억, 농담거리가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분은 순간순간 지혜롭지 못한 ‘선택’을 했고 결국 불행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인생을 산다고 하는 것은 끊임없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끊임없이 사용하는 것입니다. 육근을 통해서 우리는 업을 짓습니다. 불교 용어로 이를 작업(作業)이라 합니다. 육근 작용 즉 작업(作業)에 따라 우리 인생이 고가 될 수도 있고 낙으로 화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현실생활에서의 우리의 취사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취사(取捨)라는 말은 취(취할 취, 取)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린다는(버릴 사, 捨) 뜻입니다. 순간순간의 취사가 우리 운명을 좌우합니다. 여러분의 결혼 혹은 직업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배우자와 직업은 언젠가 여러분이 과거에 선택한 것이며, 그 선택이 지금 얼마나 여러분 인생에 큰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다음을 말씀하십니다.     고락(苦樂)의 설명: 대범, 사람이 세상에 나면 싫어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괴로운고요 둘은 즐거운 낙이라, 고에도 우연한 고가 있고 사람이 지어서 받는 고가 있으며, 낙에도 우연한 낙이 있고 사람이 지어서 받는 낙이 있는바, 고는 사람 사람이 다 싫어하고 낙은 사람 사람이 다 좋아 하나니라. 그러나, 고락의 원인을 생각하여 보는 사람은 적은지라, 이 고가 영원한 고가 될는지 고가 변하여 낙이 될는지 낙이라도 영원한 낙이 될는지 낙이 변하여 고가 될는지 생각 없이 살지마는 우리는 정당한 고락과 부정당한 고락을 자상히 알아서 정당한 고락으로 무궁한 세월을 한결같이 지내며, 부정당한 고락은 영원히 오지 아니하도록 행, 주, 좌, 와, 어, 묵, 동, 정간에 응용하는데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기를 주의할 것이니라.   명상 기도를 많이 하고 경전 공부를 많이 하여도 수행의 열매는 결국 ‘실행’입니다. 인생을 위해 신앙 수행을 하는 것이지, 수행을 위해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 수행 역시 결국 우리가 고해를 피하고 바라는 낙원을 맞이하자는 것입니다. 이 현실적인 마음공부, 신앙, 수행의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신앙 수행 신앙 수행 마음공부 신앙 크리스마스이브 파티

2024-01-18

[삶의 향기] 고(苦)와 낙(樂)의 원인

인생은 고해(苦海)다. '고통'이라고 하면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나, 전쟁, 기아 같은 심각한 것들을 주로 떠 올리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고통은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에 더 가깝다.     마음이 불편하고 힘들게 하는 것은 세계평화나 남북통일 같은 거창한 것 보다는 동료와의 언쟁이나 말실수 같은 사소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행복도 일확천금이나 대학 입학, 사업성공 보다는 '마음이 요란하지 않고 편안한 상태'가 불교에서 말하는 행복에 가깝다.   종교 생활을 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고를 피하고 낙을 누리자는 것'이 아닐까. 어떤 분은 종교의 목적을 행복에 국한 시켜서는 안 된다고 하시며, 세계평화나 깨달음 같은 좀 더 '폼 나는 것'(?) 이어야 한다고 항변한다.     부처님께서 일생동안 하신 팔만사천법문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고통, 다른 하나는 고통의 소멸. 필자가 출가한 이유도, 나름 게으름 피우지 않고 교무생활을 하는 것도 결국은 행복하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행복 없이는 세계평화와 깨달음도 있을 수 없고, 참다운 행복은 세계평화와 깨달음까지를 포함한다.   육신의 병에는 원인이 있고, 원인이 있으면 해결법이 있듯이 마음의 병인 괴로움에도 원인이 있고 해결책이 존재할 것이다. 오늘은 낙을 버리고 고로 들어가는 원인 중 '고락의 근원을 알지 못함'에 대해 생각해 보자.   무식이 죄일까. 다소 불편할 수는 있겠으나, 굳이 죄라고까지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불가에서는 어떨까. 무식은 죄 맞다. 물론 '지식의 양이나 학력'을 의미하는 사회의 무식과 '분별주착에 의한 어리석음'을 뜻하는 불가의 무식은 차이가 있겠지만, 불가에서 무식(어리석음)은 죄가 맞다.   모르는 것이 왜 죄가 될까. 괴로움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는 말이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께서 새로 사온 전자레인지안에, 뚜껑이 닫힌 박카스를 넣고 돌리는 바람에 병이 폭발하는 낭패를 본 적이 있다. 사용설명서를 숙지하지 않은 탓이다. 중학교 수학시험 시간에 공식이 기억 안 나서 3분이면 풀 문제를 모든 경우의 수를 일일이 대입해서 20분 만에 푼 적도 있다. 머리가 나쁘면(진리를 모르면) 육체적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인간사는 진리에 따라 움직인다. 진리를 모르고 인간의 시비이해를 판단하고 행동하면, 사용법을 모르고 전자레인지를 사용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전자레인지는 깨지면 청소하고 다시 구입하면 그만이지만, 잘못된 판단과 행동은 영생을 그르칠 수 있다.   사회에서도 '몰랐다'는 것은 양형에 참고가 될 수는 있으나 불법행위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몰라서 했다 하더라도 과속으로 타인에게 상해를 입히고, 마약 유통으로 사회를 병들게 했다면 죄를 묻는 것이 상식이다.     부처님께서도 자연과 부모님, 이웃과 법률의 은혜를 알지 못하는 것이 큰 배은(背恩)이라고 하셨다. 모르는 것(어리석음)은 죄라는 말이다. 부지런히 공부하자. 진리공부, 마음공부 말이다.   drongiandy@gmail.com  양은철 / 교무·원불교 미주서부훈련원삶의 향기 원인 진리공부 마음공부 중학교 수학시험 종교 생활

2023-10-09

[삶의 향기] 상종하기 싫은 사람이 있을 때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이유로 상종하기 싫은 사람이 생긴다. 매너 또는 상식이 없어서, 이기적이어서, 지적 수준이 안 맞아서, 심지어 '주는 거 없이 미워서' 까지. 특히 정치적 견해나 종교적 입장이 다르면 원수가 따로 없다.   가장 손쉬운 해법은 상대를 피하는 것이다. 하지만, 근거지나 직장을 옮기는 것은 쉽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돌아이 질량보존의 법칙'이라 했던가. 어느 곳으로 옮기던 '돌아이'가 없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사람들은 저마다 특성이 있다. 특성이라는 것은 본인이 알고 있는 법이라든지, 오랫동안 견문에 익은 것이라든지, 또는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별한 습성 등을 이른다. 서로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다정한 사이에도 충돌이 생기기 쉽고 심하면 미운 마음까지도 나게 된다. 외도들이 부처님의 흉을 팔만사천 가지로 보았지만 사실은 부처님에게 잘못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지견과 익힌 바가 서로 달라서이다. 보기 싫은 사람이 생기면 먼저 사람마다 특성이 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른 것입니다.' 흔히 하는 말이다. 그럼. '틀린 것'은 없을까. 불교의 핵심을 '제악막작 중선봉행(諸惡莫作 衆善奉行ㆍ악을 그치고 선을 행하는 것)'이라고도 하고, 계율 수행은 결국 정의를 취하고 불의를 버리는 일이다. 궁극적 의미에서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현실에서는 선과 악, 정의와 불의를 구분해야 한다. 문제는 우리의 분별주착으로 인해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데 있다.   한국 남편과 일본 부인이 이순신 장군과 도요토미 히데요시 중 누가 더 훌륭한가에 대한 토론을 했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명나라와 조선을 복속시키려 했다는 이유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역사적 위인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정복군주인 광개토대왕은 한민족의 영웅으로 생각한다. 다른 사람을 틀렸다고 비난할 때, '내 생각이 틀리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살다보면 '나를 괴롭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 같은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필자의 경우에는 군대 선임이 그랬다. 누가 나를 미워하거든 먼저 그 원인을 생각해서 미움 받을 만한 일이 나에게 있었거든 고치기에 힘쓰고, 그러한 일이 없거든 전세의 밀린 업으로 알고 안심하고 받으면 된다. 게다가 누군가 나를 미워할 때에 나의 마음이 잠시라도 좋지 못한 것을 미루어 나는 누구에게든지 미움을 주지 않으리라고 다짐을 하게 되면,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곧 나의 마음 쓰는 법을 가르치는 선생이라는 생각도 못할 이유가 없다.   종교생활이나 진리공부, 마음공부를 오래 해 왔다면, "원수를 사랑하라" "모두가 부처님"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면, 먼저 각자가 다른 특성이 있음을 이해하고, 나의 견해와 판단이 얼마든지 틀릴 수도 있고, 미운 사람이 나의 마음공부 스승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 상종하기 싫은 사람을 대할 때 조금이나마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drongiandy@gmail.com 양은철 / 교무·원불교 미주서부훈련원삶의 향기 상종 진리공부 마음공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돌아이 질량보존

2023-09-11

[삶과 믿음] 영적 전쟁: 아군과 적군

신앙, 수행을 하는  것, 현실생활에서 진리적 삶을 산다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다수가 영생 혹은 진리적 가르침에 큰 관심이 없고 세속적인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기에, 경쟁사회에서 바른 삶을 사는 것이 흔히 영적인 전쟁을 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신앙, 수행자들은 매일 혹은 매 순간 우리는 헛된 욕심, 게으름, 화, 질투, 비교심 등 우리 마음에서 수없이 일어나는 마군들과 대치하며 싸워야  합니다.   내 신앙, 수행 생활, 나의 가치관을 잘 이해해 주지 못 하는 배우자, 정직하지 못한 직장 동료 혹은 직장 분위기, 훈련 가려고 하는데 부족한 시간과 돈 등 우리 신앙, 수행을  방해하는 여러 외적 환경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깨달음의 길로 가는 여정에 있어서 우리의 진정한 적, 방해꾼은 사실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탐욕, 나태심, 욕속심 등이 바로 그것이며, 이가 가장 큰 마장이며 방해꾼입니다. 신앙 수행인들은 세상과 그리고 타인과 싸우기 전에 우리 마음속에 내재하는 이들 어둠의 적과 우선 싸워야 합니다. 이 영적 전쟁을 이슬람에서는 ‘지하드’라고 합니다.     원불교 교전을 보면 다른 종교 경전과 같이 수많은 군사 용어가 나옵니다. ‘항복’ ‘법마상전급’ ‘백전백승’ ‘군인’ ‘도원수’ 등. 특히 ‘전쟁’이라는 용어가 많습니다. 전투와 전쟁, 둘 다 싸움을 의미합니다. 전투가 부분적, 지역적, 단기적인 싸움이라면, 전쟁은 규모가 훨씬 큰 장기적 싸움을 의미합니다. 원불교 경전을 보면 어디를 보아도 전투라는 단어는 없고 ‘전쟁’이라는 단어를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님께서 많이 사용하셨습니다.   우리 마음공부는 전투가 아니라 전쟁입니다. 즉 영적 전쟁은 장기전이며 가장 근본적 싸움입니다.   대종사 선원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공부법은 난리 세상을 평정할 병법(兵法)이요, 그대들은 그 병법을 배우는 훈련생과 같다 하노니, 그 난리란 곧 세상 사람의 마음 나라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난리라, 마음 나라는 원래 온전하고 평안하여 밝고 깨끗한 것이나, 사욕의 마군을 따라 어둡고 탁해지며 복잡하고 요란해져서 한없는 세상에 길이 평안할 날이 적으므로, 이와 같은 중생들의 생활하는 모양을 마음 난리라 한 것이요, 병법이란 곧 우리의 마음 가운데 모든 마군을항복 받는 법이니 그 법은 바로 정(定)과 혜(慧)와 계(戒)를 닦으며, 법(法)과 마(魔)를 구분하는 우리의 수행 길이라, 이것이 곧 더할 수 없는 세계 정란(靖亂)의 큰 병법이니라.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이 마음 난리는 난리로 생각하지도 아니하나니 어찌 그 본말을 안다 하리오. 개인 가정과 사회 국가의 크고 작은 모든 전쟁도 그 근본을 추구해 본다면 다 이 사람의 마음 난리로 인하여 발단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마음 난리는 모든 난리의 근원인 동시에 제일 큰 난리가 되고, 이 마음 난리를 평정하는 법이 모든 법의 조종인 동시에 제일 큰 병법이 되니라. 그런즉, 그대들은 이 뜻을 잘 알아서 정과 혜를 부지런히 닦고 계율을 죽기로써 지키라. 오래오래 쉬지 아니하고 반복 수행하면 마침내 모든 마군을항복 받을 것이니, 그리된다면법강항마의법위를 얻게 되는 동시에 마음 난리에 편할 날이 없는 이 세상을 평정하는 훌륭한 도원수(都元帥)가 될 것으로 확신하노라.”(대종경수행품58)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열심히 싸우는 것도 주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주요한 것은 훌륭한 아군을 얻는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을 연합군의 승리로 이끈 주요 계기는 미국의 참전이었습니다. 마음 나라에서 일어나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무엇이 아군인지, 무엇이 적군인지를 분명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 수행과 인생을 돕는 아군을 신(信), 분(忿), 의(疑), 성(誠)이라고 하시며, 이를 ‘진행사조(進行四條)’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믿음, 분발, 의심, 정성이 우리 수행과 인생길을 진행, 진척시켜 주는 아군입니다.     수행과 인생 성공을 방해하는 적군을 ‘사연사조(捨捐四條)’라고 하시고, 이는 불신(不信), 탐욕(貪慾), 나(懶), 우(愚)라 말씀하셨습니다. 즉 믿음이 약하거나 없는 것, 헛된 욕심, 나태심, 어리석음이 바로 사람들이 어떤 목적을 이루는 데 있어서 사연(捨捐) 즉 버려야 하는 네 가지 적들이라는 것입니다.   훌륭한 도반을 만나서 스승을 만나고, 훌륭한 교당, 교회를 만나는 것이 주요합니다. 그러나 내 마음에 진리를 향한 혹은 어떤 목표를 향한 강한 믿음, 분발, 의심, 정성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스승과 도반이 있어도 그것이 큰 의미가 없습니다. 좋은 좌선 방석을 샀다고 하더라고 자기가 좌선을 하지 않는 이상 좋은 방석 자체가 우리 수행을 깊게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유도성 /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전쟁 아군 신앙 수행인들 우리 마음공부 신앙 수행자들

2023-04-20

[삶과 믿음] 마음공부와 훈련

중세 시대 한 화가가 예수님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자기 마을에서 가장 선하고 정직해 보이는 사람을 찾아 그를 모델로 예수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몇 년 뒤 그 화가는 예수님을 판 유다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자기 동네에서 가장 악하고 간사하게 보이는 사람을 찾다가 결국 감옥에서 모델을 찾기로 했습니다. 항상 분노에 가득 차 있고 악해 보이는 한 죄수를 발견했고, 그가 유다 모델로서 적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려고 그 죄수를 보니 그가 아주 눈에 익은 사람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죄수는 자기가 수년 전 예수님을 모델로 그린 그 청년이었습니다. 그 청년이 어떤 환경 속에서 방탕의 길을 걷다가 중죄로 감옥으로 들어오게 되어, 그의 얼굴과 인생이 그렇게 변해 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마음을 쓰냐에 따라 우리 인생이 예수님같이 되기도 혹은 유다 같이 되기도 합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태 26:41) 예수님 말씀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마음을 잘 쓰려고 해도, 마음이 잘 훈련되어 있지 않으면 우리는 마음을 잘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불교에서 말하는 마음공부는 선, 명상 등의 ‘훈련’을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훈련(訓練)에서 훈(訓)이란 ‘가르칠 훈’, ‘훈습 할 훈’입니다. ‘훈습’의 사전적 정의는 ‘열심히 노력하여 숙달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 좌선을 매일 하는 것, 경전을 정기적으로 봉독하고 연마하는 것 등 우리가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열심히 ‘실행’ 노력을 해서 이가 우리의 생활 습관이 되게 우리 인생을 숙달시켜야 합니다. 이는 ‘스스로’ 가르치고 실천해야 하는 것으로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훈련(訓練)에서 련(練)이란‘익힐 연’,‘단련할 연’입니다. 한자 련(練)의 본래 의미는 ‘쇠 불릴 연’입니다. 용광로에서 쇠를 불에 달군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다이어트를 하고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 기도와 명상을 규칙적으로 하는 것 등이 처음에는 재미있지 않습니다. 쉽고 재미있지는 않지만 일단 반복하여 습관이 되면 그 유익이 한량없습니다. 재미있지는 않지만 반복적으로가치 있는 일과 행동을 하면, 즉 ‘훈련’을 하면, 쇠가 용광로에 들어가는 것과 같이 처음에는 어려울지 몰라도, 나중에는 우리 삶이 정금같이 되어 한량없이 발전되고 수준이 올라갑니다. 우리 인생의 여러 고통과 경계를 당할 때, 내 인생의 쇠가 최고의 품질로 거듭나기 위해 이 용광로를 통과한다고 생각하시고, 신앙 수행인들은 어려운 경계를 잘 극복해야 합니다.     원불교 초창기 한 제자가 식당 고역에 힘들어 하는 것을 보시고,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다음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일이 고되어 얼굴이 빠짐이로다. 너희들이 이 공부 이 사업을 하기 위하여 혹은 공장 혹은 식당 등에서 모든 괴로움을 참아 가며 힘에 과한 일을 하는 것은 비하건대 모든 쇠를 풀무 화로에 집어넣고 달구고 또 달구며 때리고 또 때려서 잡철은 다 떨어버리고 좋은 쇠를 만들어 세상에 필요한 기구를 제조함과 같나니, 너희들이 그러한 괴로운 경계 속에서 진리를 탐구하며 삼대력을 얻어 나가야 범부의 잡철이 떨어지고 정금(精金) 같은 불보살을 이룰 것이라, 그러므로 저 풀무 화로가 아니면 능히 좋은 쇠를 이뤄내지 못할 것이요, 모든 괴로운 경계의 단련이 아니면 능히 뛰어난 인격을 이루지 못하리니, 너희는 이  뜻을 알아서 항상 안심과 즐거움으로 생활해 가라.”     훈련, 수행이라고 하는 것이 과거 석가모니 부처님과 같이 처자를 버리고 왕궁을 떠나서 산에서 구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론 조용한 시간, 충전의 시간을 위해 혼자 있거나, 산에 가거나, 이런 훈련에 참석하는 것도 주요하지만, 가장 주요한 것은 현실 가운데 사실적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事實) 즉 일(事)과 현실(實) 가운데서 훈련을 해야 하고, 이가 바로 실지공부며, 이러한 신앙과 수행이 우리의 현실 삶을 바로 향상해 줍니다.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마음공부 훈련 유다 모델 원불교 초창기 원불교 창시자

2022-11-17

[삶과 믿음] 현대인의 마음공부

옛날 중국의 어떤 동네에 한 약장사가 나타났습니다. 시장에 서서 그는 자기가 파는 환약이 참으로 신령하고 효험이 있고, 이 환약 한 알을 먹고 소원 하나를 말하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말했습니다. 약장사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장사는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우선 이 약 한 알을 공짜로 줄터니 소원이 무엇인가를 말해 보라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장사가 잘 되어 돈을 많이 버는 것이라고 했고, 장애인 자식을 가진 한 여인은 자기 자식이 정상인이 되는 것이라 했고, 한 청년은 멋진 여자를 만나서 결혼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어떤 꼬마에게 니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꼬마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내 소원은 그 환약을 만드는 방법을 아는 것이에요!” 말했습니다. 환약 한 알에 한 가지 소원만 이루어진다고 하니, 환약 만드는 방법을 알게 되면 환약을 수 없이 만들어서 모든 소원을 다 이룰 수 있는 것이지요.   실지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소원을 들어주는 신기의 영약이 우리 모두에게 있으니, 그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이 달라지면 예를 들어 마음을 잘 돌려서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고, 잘 용서하고, 너그러워지고, 보다 긍적적으로 되면 우리 삶이 달라집니다. 우리 마음이 바꾸어져서 나쁜 버릇이 고쳐진다면 예를 들어 더 부지런해 지고, 어떤 분야에서 더욱 지혜로와지거나 삶에서 용기있게 여러 선택을 잘 하게 되면, 우리 주변 환경이 개척되고 우리 인생이 점점 성공적으로 됩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이 결국 우리 ‘마음’에서 출발합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세상의 모든 것이 마음이 짓는 것이다.” 이가 부처님의 핵심 가르침이요, 진리의 실상입니다. 우리 마음이 바뀌어 질 때 우리 인생과 운명이 바뀌게 됩니다.   18세기 초까지 유럽에서는 일부 계층 사람들을 제외하고 태반의 사람들이 극히 궁핍한 생활을 했습니다.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면 유토피아가 실현된다고 당시에 생각했습니다. 과학, 기술의 발달과 산업혁명으로 대량생산이 이루어지고, 의식주 기본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했을 때 많은 사회과학자들이 유토피아가 곧 실현될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선진국에서도 사람들 태반이 유토피아와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비해 우리의 소득이 몇십 배 증가했지만, 사람들의 행복이 몇십 배 증가했을까요? 우울증과 자살율은 더 증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 있어 특히 이 ‘마음공부’가 절실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사람들의 불행의 원인이 먹을 것이 없고, 입을 것이 없고, 잠 잘 곳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울증, 비교심, 화, 좌절, 경쟁심으로 말미암은 불안과 좌절 등 우리 불행의 태반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수레가 가지 않으면 수레를 채찍질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채찍질해야 한다는 것은 알아도 정작 우리 인생에서 어떤 문제가 있으면 이를 나의 ‘마음’에서 찾기보다 주변 환경에서 찾고 있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21세기의 화두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내 인생과 운명의 주인공이 되는 이 나의 마음을 심각히 한번 생각해 보고 이를 가꾸는 노력을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피부와 몸을 가꾸는 것 처럼….   어떤 산에 두 명의 나무꾼이 있었습니다. 둘 다 체력도 비슷하고 같은 시간 동안 일을 했는데 한 나무꾼이 왜 자기 친구가 항상 더 많은 나무를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어느 날 쉬는 시간에 친구를 보니, 그는 쉬는 시간에 도끼를 가는 것이었습니다. 날이 잘 선 도끼로 일을 하니, 같은 시간에 훨신 많은 나무를 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우리가 하루 24시간 중 어느 정도 시간을 투자해서 선과 명상 혹은 기도를 해서 우리 마음을 맑히고, 경전 공부 등을 통해 우리 마음을 밝히면, 날썬 도끼로 나무를 하는 것 처럼 우리 인생이 더욱 풍요롭고 성공적으로 될 것입니다.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마음공부 현대인 우리 마음 소원 하나 오늘날 선진국

2022-08-18

[삶과 믿음] 물질문명과 마음공부

몇년 전 과학자들이 침팬지를 대상으로 실험한 적이 있었습니다. 동물의 의사전달과 언어능력을 파악하기 위한 실험이었고 수년간 침팬지에게 기본적인 단어와 문법구조를 익히게 했습니다.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한 침팬지는 100개가 넘는 단어를 습득하게 되었고, 아주 기본적 문법구조를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실험에 참가한 과학자들은 그 침팬지가 처음으로 하는 말이 무엇인가 궁금 했습니다. 바나나가 먹고 싶다, 목이 마르다 등 무엇이 그 동물이 참으로 원하는가가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침팬지가 처음으로 말한 문장은 “Let me out.” 이었습니다. 챔팬지는 좋은 환경에서 자라고 특별한 돌봄을 받았지만 침팬지가 참으로 원하는 것은 철창에서 벗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휴가를 기다립니다. 또한 다른 직장으로 이직을 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혼을 하고 또한 이를 심각히 고려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결국 Let me out의 욕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즉 현재의 환경에서 벗어나 자유와 행복을 위해 다른 환경으로 가고파 하는 것입니다. 동물이건 사람이건 자유에 대한 근본 욕구는 같은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행복을 위해 끊임없이 환경을 바꾸려고 합니다. 좋은 직장, 좋은 동네, 좋은 배우자, 넓은 집, 더 좋은 차 등. 단기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대로 우리 주변 환경과 조건을 바꿀 수 없을 뿐더러, 과연 주변 환경이 바뀌어진다고 우리가 행복을 실현할 수 있을까요?   물질적인 것 뿐만 아니라, 우리가 결혼을 하고, 직장을 다니고, 친구를 만나는 등의 모든 활동도 결국은 행복 실현을 위한 주변 환경과 조건을 바꾸는 행위인데, 외적 환경이 바꾸어지는 것이 우리에게 자유함과 행복을 가져다 주는 충분 조건이 아니라는 것은 역사를 통해 또한 현재 우리 삶을 통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실제 우리들의 많은 욕망들은 예를 들어 승진을 원하고, 자식들이 공부를 더 잘 하기를 원하는 것 등은 상대적인 것이기에 모든 사람들에게 이것이 충족되기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행복을 위해 끊임없이 주변 조건을 바꾸려 하는데, 실제로 우리가 우리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으면 어떤 환경에서도 만족할 수 있을 뿐더러 나아가 우리 주변 조건과 환경도 결국 바꿀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음을 잘 돌려서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고, 잘 용서하고, 너그러워지고, 보다 긍적적으로 되면 우리 삶이 달라집니다. 우리 마음이 바꾸어져서 나쁜 버릇이 고쳐진다면 예를 들어 더 부지런해지고, 어떤 분야에서 더욱 지혜로와지거나 삶에서 용기있게 여러 선택을 잘 하게 되면, 우리 주변 환경이 개척되고 우리 인생이 점점 성공적으로 될 것입니다. 열심히 운동하거나 다이어트를 잘 하거나 혹은 인간관계가 개선이 되는 것 등 이 모든 것이 결국 우리 ‘마음’에서 출발합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세상의 모든 것은 나의 마음이 짓는 것이다.” 이것이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우리 마음이 바뀌어지면 우리 인생과 운명이 바뀌게 됩니다.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다음을 말씀하십니다.   「모든 학술을 공부하되 쓰는 데에 들어가서는 끊임이 있으나, 마음작용하는 공부를 하여 놓으면 일분일각도 끊임이 없이 활용되나니, 그러므로 마음공부는 모든 공부의 근본이 되나니라.」   우리가 마음을 바꾸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육신을 운동으로 단련하면 근육이 튼튼해져 무거운 물건을 쉽게 들 수 있듯, 우리 마음도 단련하면 우리 마음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修行) 혹은 마음공부란 다름이 아닌 우리 마음을 단련하는 훈련 혹은 수행을 말합니다. 수행 혹은 마음공부의 목적은 결국 우리 인생을 바꾸기 위함이요, 원불교 3대 종법사 대산 종사님께서는 수행은 결국 우리 팔자를 바꾸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물질문명 마음공부 외적 환경 주변 환경 행복 실현

2022-07-14

[삶의 향기] 눈높이 마음공부

 초등학교 시절 태권도를 막 배우기 시작할 때였다. 발차기를 잘하고 싶은 마음에 내 키를 훌쩍 넘는 높이에다 공을 매달아 놓고 연습을 했다. 당시 내 키보다 1m나 더  높은 곳이었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어린 마음에 혹시 하는 생각에 3일 정도 힘들게 연습했던 기억이 있다.     한 교도님이 도반들이 부처로 안보여서 괴롭다고 하신다. 모두가 부처라 하신 부처님 말씀을 따르려고 노력하는 것은 칭찬받아 마땅할 일이지만 과하게 괴롭다면 오래 지속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수능 전국석차 10위권 학생이 아침에 새 수학문제집을 사서 등교하면 하교할 때 이미 다 풀고 나온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리 두껍지 않은 문제집이고 자율학습 시간까지 활용한다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 보통의 머리와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반에서 중간 정도 하는 학생이 이 방법을 표준으로 공부한다면 황새 쫓아가다가 다리가 찢어진 뱁새의 처지가 되지 않을까. 모두가 늘 부처님으로 보이는 수준은 부처님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수준에 올라야 가능한 심법이다.   영어 읽기 공부를 할 때는 본인 실력의 80% 정도 난이도의 책이 효과적이라고 한다. 너무 어려우면 집중하기가 어렵고 너무 쉬우면 실력 향상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마음공부도 마찬가지이다. 기독교에서는 '범사에 감사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불교에서는 '자해타리(둘 다 이익을 취할 수 없다면 내가 해로움을 취하더라도 남을 이롭게 하는 것)' '괴로운 일을 당하면 사죄를 올려라'를 가르친다. 잘못된 일이 있으면 세상과 남에게 먼저 화살을 돌리고 늘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며 살아온 범인들에게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신앙과 수행의 궁극적 목표는 물론 예수님과 부처님을 닮아가는 것이어야 하지만 중간 단계를 거치지 않는다면 키의 두 배나 되는 곳을 목표로 발차기 연습을 했던 초등학교 시절 필자나 박찬호와 김연아 전성기 시절을 바로 따라하려는 야구와 피겨스케이팅 입문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담배나 술을 끊으려고 하는 사람은 일단 담배나 술을 멀리해야 한다. 인과의 이치로 볼 때 피하는 것이 능사라고 볼 수는 없지만 마음이 힘이 부족할 때에는 백전백패이므로 일단은 피해야 한다. 정말 부처로 봐주기 힘들 정도로 미운 사람이 있다면 일정 기간 피하는 것도 공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원불교에서도 다른 사람의 과실을 말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처음엔 "꼭 지키세요" 라고 교도님들에게 말했지만 이제는 굳이 장려할 것은 아니지만 정 답답하시면 한 번씩 하시라고 조언한다.   계문 같은 것을 어기고도 '난 아직 중생인데 이 정도쯤이야' 하면서 너무 편안하게 생각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처음부터 과하게 기준을 설정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효과적인 수행이라 하기 어렵다.   본인 눈높이(수준과 성향)에 맞는 공부는 흥미와 성취감을 통해 다소 지루할 수 있는 마음공부 진리공부에서 성공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단 주관적이기 쉬운 본인의 수준 판단은 반드시 경전과 스승님들의 안내와 도움을 받아야 한다.   drongiandy@gmail.com 양은철 / 교무ㆍ미주서부훈련원삶의 향기 마음공부 눈높이 눈높이 마음공부 마음공부 진리공부 본인 눈높이

2022-01-24

[삶과 믿음] 신년의 마음공부

세상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살지 못합니다. 그 근본 원인은 실제 사람들이 행복과 자유에 이르는 ‘길’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가끔 운동하기 위해 제가 근무하는 뉴욕주 원달마센터 근처에 있는 YMCA에 갑니다. 운동을 마친 후 보통 건물 정문으로 나오는데, 어느 날 건물을 나오기 전 1층 화장실을 들리게 되었습니다. 화장실 바로 옆에 주차장으로 가는 문이 있다는 것을 그 날 처음 알았습니다. 그 문으로 나가면 주차장으로 바로 갈 수 있었는데 몇 년간 정문으로 나와서 주차장으로 가는 긴 코스로 다닌 것이지요.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제반 활동과 여러 노력을 하고 있지만 실제 행복으로 가는 길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다수의 사람이 가는 인생길, 우리에게 익숙한 길이 결코 영생의 행복으로 이르는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영생이 있고, 내가 지은 것은 반드시 내가 받는다는 것을 의심 없이 믿고, 그에 따라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우리는 우선 진리 공부, 법 공부를 통해 자유와 행복으로 가는 길을 우선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성경 혹은 불교 경전 공부이건, 유튜브를 통한 여러 가지 진리에 관한 강의건 우리는 진리를 알기 위해 법 공부를 해야 합니다. 원불교 3대 종법사이신 대산종사께서는 사람이 삶을 잘 살기 위해서는 우선 “대진리관, 대철학관, 대인생관이 확립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행복을 원하지만 실제 그렇게 살지 못하는 두 번째 이유는 길을 알아도 그 길을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많은 산악인이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 이르는 길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 선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다이어트 책을 아무리 읽고 방법에 숙달해도 실행이 따르지 않으면 효과가 없습니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이 행복을 위해 성공하기를 바라고,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높은 지위를 가지려는 등의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행복을 추구하고 있지만, 한마디로 말하자면 사람들은 행복을 위해서 어떤 ‘외적 조건’을 바꾸려 합니다. 더 많은 물질, 더 존경받는 자리, 더 큰 집, 더 좋은 차 등, 행복을 위해 우리가 하는 제반 노력은 우리의 외적 조건, 환경을 변화시키려는 것입니다.   서울 모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님의 다음 연구가 있습니다. 교수님은 경남에 있는 한 조그마한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기간 졸업생들을 관찰하고 데이터를 모았는데, 교수님의 관심은  ‘어떤 것이 사람들의 사회적 성공을 결정하는가?’ 였습니다. 우선 그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장년이 된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성공지표를 만들었습니다. 교수님은 통상적으로 일반인이 생각하는 사회적 지위와 수입 등을 토대로 성공지수를 계량화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학생들의 지능지수, 학업성적, 그리고 선생님의 학생에 대한 평가 세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연구 결과, 졸업생의 성공과 지능지수는 거의 관계가 없었으며, 초등학교 때의 학업성적 역시 성공과 큰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뜻 밖에 초등학교 때 선생님의 학생에 대한 주관적 평가, 즉 학생의 대인관계가 어떠하며, 얼마나 낙관적이고 진취적이며, 그리고 얼마나 정직하고 근면한가 등의 선생님 평가가 졸업생들의 성공과 가장 높은 상관관계를 보였습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아주 큽니다.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님께서는 “모든 학술을 공부하되 쓰는 데에 들어가서는 끊임이 있으나, 마음 작용하는 공부를 하여 놓으면 일분 일각도 끊임이 없이 활용되나니, 그러므로 마음공부는 모든 공부의 근본이 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도성 / 원불교 원달마센터 교무삶과 믿음 마음공부 신년 초등학교 학생들 진리 공부 장기간 졸업생들

2022-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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