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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영적 전쟁: 아군과 적군

신앙, 수행을 하는  것, 현실생활에서 진리적 삶을 산다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다수가 영생 혹은 진리적 가르침에 큰 관심이 없고 세속적인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기에, 경쟁사회에서 바른 삶을 사는 것이 흔히 영적인 전쟁을 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신앙, 수행자들은 매일 혹은 매 순간 우리는 헛된 욕심, 게으름, 화, 질투, 비교심 등 우리 마음에서 수없이 일어나는 마군들과 대치하며 싸워야  합니다.
 
내 신앙, 수행 생활, 나의 가치관을 잘 이해해 주지 못 하는 배우자, 정직하지 못한 직장 동료 혹은 직장 분위기, 훈련 가려고 하는데 부족한 시간과 돈 등 우리 신앙, 수행을  방해하는 여러 외적 환경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깨달음의 길로 가는 여정에 있어서 우리의 진정한 적, 방해꾼은 사실 우리 마음속에 있습니다. 탐욕, 나태심, 욕속심 등이 바로 그것이며, 이가 가장 큰 마장이며 방해꾼입니다. 신앙 수행인들은 세상과 그리고 타인과 싸우기 전에 우리 마음속에 내재하는 이들 어둠의 적과 우선 싸워야 합니다. 이 영적 전쟁을 이슬람에서는 ‘지하드’라고 합니다.  
 
원불교 교전을 보면 다른 종교 경전과 같이 수많은 군사 용어가 나옵니다. ‘항복’ ‘법마상전급’ ‘백전백승’ ‘군인’ ‘도원수’ 등. 특히 ‘전쟁’이라는 용어가 많습니다. 전투와 전쟁, 둘 다 싸움을 의미합니다. 전투가 부분적, 지역적, 단기적인 싸움이라면, 전쟁은 규모가 훨씬 큰 장기적 싸움을 의미합니다. 원불교 경전을 보면 어디를 보아도 전투라는 단어는 없고 ‘전쟁’이라는 단어를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대종사님께서 많이 사용하셨습니다.
 
우리 마음공부는 전투가 아니라 전쟁입니다. 즉 영적 전쟁은 장기전이며 가장 근본적 싸움입니다.
 


대종사 선원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공부법은 난리 세상을 평정할 병법(兵法)이요, 그대들은 그 병법을 배우는 훈련생과 같다 하노니, 그 난리란 곧 세상 사람의 마음 나라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난리라, 마음 나라는 원래 온전하고 평안하여 밝고 깨끗한 것이나, 사욕의 마군을 따라 어둡고 탁해지며 복잡하고 요란해져서 한없는 세상에 길이 평안할 날이 적으므로, 이와 같은 중생들의 생활하는 모양을 마음 난리라 한 것이요, 병법이란 곧 우리의 마음 가운데 모든 마군을항복 받는 법이니 그 법은 바로 정(定)과 혜(慧)와 계(戒)를 닦으며, 법(法)과 마(魔)를 구분하는 우리의 수행 길이라, 이것이 곧 더할 수 없는 세계 정란(靖亂)의 큰 병법이니라.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이 마음 난리는 난리로 생각하지도 아니하나니 어찌 그 본말을 안다 하리오. 개인 가정과 사회 국가의 크고 작은 모든 전쟁도 그 근본을 추구해 본다면 다 이 사람의 마음 난리로 인하여 발단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마음 난리는 모든 난리의 근원인 동시에 제일 큰 난리가 되고, 이 마음 난리를 평정하는 법이 모든 법의 조종인 동시에 제일 큰 병법이 되니라. 그런즉, 그대들은 이 뜻을 잘 알아서 정과 혜를 부지런히 닦고 계율을 죽기로써 지키라. 오래오래 쉬지 아니하고 반복 수행하면 마침내 모든 마군을항복 받을 것이니, 그리된다면법강항마의법위를 얻게 되는 동시에 마음 난리에 편할 날이 없는 이 세상을 평정하는 훌륭한 도원수(都元帥)가 될 것으로 확신하노라.”(대종경수행품58)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열심히 싸우는 것도 주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주요한 것은 훌륭한 아군을 얻는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을 연합군의 승리로 이끈 주요 계기는 미국의 참전이었습니다. 마음 나라에서 일어나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무엇이 아군인지, 무엇이 적군인지를 분명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 수행과 인생을 돕는 아군을 신(信), 분(忿), 의(疑), 성(誠)이라고 하시며, 이를 ‘진행사조(進行四條)’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믿음, 분발, 의심, 정성이 우리 수행과 인생길을 진행, 진척시켜 주는 아군입니다.  
 
수행과 인생 성공을 방해하는 적군을 ‘사연사조(捨捐四條)’라고 하시고, 이는 불신(不信), 탐욕(貪慾), 나(懶), 우(愚)라 말씀하셨습니다. 즉 믿음이 약하거나 없는 것, 헛된 욕심, 나태심, 어리석음이 바로 사람들이 어떤 목적을 이루는 데 있어서 사연(捨捐) 즉 버려야 하는 네 가지 적들이라는 것입니다.
 
훌륭한 도반을 만나서 스승을 만나고, 훌륭한 교당, 교회를 만나는 것이 주요합니다. 그러나 내 마음에 진리를 향한 혹은 어떤 목표를 향한 강한 믿음, 분발, 의심, 정성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스승과 도반이 있어도 그것이 큰 의미가 없습니다. 좋은 좌선 방석을 샀다고 하더라고 자기가 좌선을 하지 않는 이상 좋은 방석 자체가 우리 수행을 깊게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유도성 / 원달마센터 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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