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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인의 날과 마틴 루터 킹 데이

지난 13일은 미주 한인의 날, 16일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 탄생 기념일이었다. 이 두 날은 얼핏 아무것도 엮인 게 없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서로 떼서는 생각할 수 없게 얽혀 있다.   1903년 1월 13일 한인 102명을 태운 배가 하와이에 닿았다. 그 뒤 1905년까지 7000여 한인들이 계약 일꾼으로 하와이에 왔다. 1882년 미국 정부가 중국인 배제법을 만들어서 중국인 노동자가 올 수 없게 되자 농장 주인들이 한인들을 데리고 온 것이다.   하지만 1924년 아시안의 미국 이민을 금지한 아시안 배제 이민법이 만들어져 한인들도 미국에 오기 힘들어졌다. 1924년 이민법은 유럽 백인들의 이민을 늘리고, 유색인종 이민을 막는 인종차별 법이었다. 1952년까지 미국에 사는 아시안들은 시민권도 받지 못했다.   이렇게 미국 이민법은 뿌리 깊은 인종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1960년대 킹 목사를 비롯해 흑인 커뮤니티가 이끌었던 민권운동이 거세지면서 1964년 민권법이 만들어졌다. 인종, 민족, 출신 국가 그리고 여성 차별을 막았다. 이어 1965년 투표 차별을 막는 선거권법이 만들어지고 같은 해 백인 우선 규정을 폐지하는 이민법 개정이 이뤄졌다. 1950~1965년 15년간 한인 이민은 미군과 혼인한 여성 6423명과 입양인 5348명 등 1만4728명에 그쳤지만 1965년 이민법 개정 뒤에는 1969년까지 2만7048명, 1970년대 24만1192명, 1980년대 32만2708명, 1990년대 17만9770명, 2000년대 20만9758명, 2010년대 20만69명 등 오늘의 200만 한인사회를 만들어냈다.   흑인 커뮤니티의 민권운동이 없었다면 오늘의 한인사회는 있을 수 없다. 그렇기에 킹 목사가 외쳤던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함께하는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사회운동이 지금도 우리의 가슴에 와 닿는다. 그리고 살기 위해 미국으로 넘어오는 중남미 난민들의 입국을 막는 ‘타이틀 42’ 등 비인도적 이민 정책에 우리는 반대할 수밖에 없다. 우리도 사실은 고국에서 삶을 지탱하기 힘들어 이주한 옛 난민들의 후손인 까닭이다.   민권센터는 ‘더불어 살자’는 구호를 걸고 있다. 한인사회는 다른 유색인종, 소수계 커뮤니티와 교류, 협력하며 연대, 통합, 이해를 바탕으로 한 공동 활동을 이끌어내는 킹 목사의 비전에 더욱 뿌리를 내려야 한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곤경에 대처하라는 킹 목사의 도덕적 호소에도 함께해야 한다. 빈곤, 인종차별, 군국주의, 그리고 우리 시대에 점점 더 심해지는 생태계 황폐화의 ‘악’을 해결하고 모두에게 평화롭고 공평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한인사회도 힘을 기울여야 한다.       킹 목사는 “변화는 필연적인 운명의 바퀴에 실려 오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실현되는 것”이라며 “인도적 신념을 가진 모든 사람은 자신의 신념에 가장 적합한 저항을 해야 하며, 우리 모두 저항해야 한다”고 외쳤다. 그는 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힘은 이 나라의 권력이 거부하고 싶지만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능력, 연대감, 단호함, 적극성을 갖는 것”이라고 했다.   120년 역사를 일궈온 한인 어르신들과 차별에 맞선 킹 목사의 뜻을 이어가는 실천이 한인사회에도 번져 나가길 바란다. 김갑송 / 민권센터 국장기고 한인 루터 한인 이민 이민법 개정 미주 한인

2023-01-24

[커뮤니티 액션] 한인의 날과 마틴 루터 킹 데이

지난 13일은 미주 한인의 날, 16일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 탄생 기념일이었다. 이 두 날은 얼핏 아무것도 엮인 게 없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서로 떼서는 생각할 수 없게 얽혀 있다.   1903년 1월 13일 한인 102명을 태운 배가 하와이에 닿았다. 그 뒤 1905년까지 7000여 한인들이 계약 일꾼으로 하와이에 왔다. 1882년 미국 정부가 중국인 배제법을 만들어서 중국인 노동자가 올 수 없게 되자 농장 주인들이 한인들을 데리고 온 것이다.   하지만 1924년 아시안의 미국 이민을 금지한 아시안 배제 이민법이 만들어져 한인들도 미국에 오기 힘들어졌다. 1924년 이민법은 유럽 백인들의 이민을 늘리고, 유색인종 이민을 막는 인종차별 법이었다. 1952년까지 미국에 사는 아시안들은 시민권도 받지 못했다.   이렇게 미국 이민법은 뿌리 깊은 인종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1960년대 킹 목사를 비롯해 흑인 커뮤니티가 이끌었던 민권운동이 거세지면서 1964년 민권법이 만들어졌다. 인종, 민족, 출신 국가 그리고 여성 차별을 막았다. 이어 1965년 투표 차별을 막는 선거권법이 만들어지고 같은 해 백인 우선 규정을 폐지하는 이민법 개정이 이뤄졌다. 1950~1965년 15년간 한인 이민은 미군과 혼인한 여성 6423명과 입양인 5348명 등 1만4728명에 그쳤지만 1965년 이민법 개정 뒤에는 1969년까지 2만7048명, 1970년대 24만1192명, 1980년대 32만2708명, 1990년대 17만9770명, 2000년대 20만9758명, 2010년대 20만69명 등 오늘의 200만 한인사회를 만들어냈다.   흑인 커뮤니티의 민권운동이 없었다면 오늘의 한인사회는 있을 수 없다. 그렇기에 킹 목사가 외쳤던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함께하는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사회운동이 지금도 우리의 가슴에 와 닿는다. 그리고 살기 위해 미국으로 넘어오는 중남미 난민들의 입국을 막는 ‘타이틀 42’ 등 비인도적 이민 정책에 우리는 반대할 수밖에 없다. 우리도 사실은 고국에서 삶을 지탱하기 힘들어 이주한 옛 난민들의 후손인 까닭이다.   민권센터는 ‘더불어 살자’는 구호를 걸고 있다. 한인사회는 서로 다른 유색인종, 소수계 커뮤니티와 교류, 협력하며 연대, 통합, 이해를 바탕으로 한 공동 활동을 이끌어내는 킹 목사의 비전에 더욱 뿌리를 내려야 한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곤경에 대처하라는 킹 목사의 도덕적 호소에도 함께해야 한다. 빈곤, 인종차별, 군국주의, 그리고 우리 시대에 점점 더 심해지는 생태계 황폐화의 ‘악’을 해결하고 모두에게 평화롭고 공평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한인사회도 힘을 기울여야 한다.       킹 목사는 “변화는 필연적인 운명의 바퀴에 실려 오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실현되는 것”이라며 “인도적 신념을 가진 모든 사람은 자신의 신념에 가장 적합한 저항을 해야 하며, 우리 모두 저항해야 한다”고 외쳤다. 그는 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힘은 이 나라의 권력이 거부하고 싶지만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능력, 연대감, 단호함, 적극성을 갖는 것”이라고 했다.   120년 역사를 일궈온 한인 어르신들과 차별에 맞선 킹 목사의 뜻을 이어가는 실천이 한인사회에도 번져 나가길 바란다. 김갑송 / 민권센터 국장커뮤니티 액션 한인 루터 한인 이민 이민법 개정 미주 한인

2023-01-19

유산상속·루터 종교개혁 명사 특강

한인타운 시니어 커뮤니티 센터(이사장 정문섭)가 5월 명사특강에 임재현 변호사와 송인서 박사를 초청해 특강을 진행한다.     먼저 연세대 경제학과 UC버클리 경제학과를 졸업한 유산상속 전문 임재현 변호사가 10일(화) 오후 3시 '지혜로운 유산상속(주택 중심)'을 주제로 강의한다.     지난 2016년 1월 캘리포니아 주에서 발효된 TOD Deed(Transfer on Death Deed) 법과 2022년 1월 개정된 관련법에 대해 실생활에 적용해 설명할 예정이다.     이튿날인 11일(수) 오전 10시 30분부터는 풀러신학대학원과 미주장로회 신학대학원 교수인 송인서 박사가 '16세기 루터의 개혁' 강의를 진행한다.     루터의 개혁이 16세기 역사적 상황에서 어떤 의미였는지 돌아보고 이를 통해 현대사회 우리의 문제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송 박사는 고려대 독어독문학과 졸업 후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석사(MDiv) 미국 듀크대학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석사(MTS) 과정을 거쳐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교회사 전공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특강은 무료이며 18세 이상 누구나 참석할 수 있다. 선착순 30명이다.     ▶문의: (213) 387-7733 장수아 기자유산상속 종교개혁 루터 종교개혁 유산상속 전문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2022-05-08

킹 목사 50주기…“나는 사람이다” 멤피스 비롯 미 전역 수십만명 행진

1968년 4월 4일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의 로레인 모텔 306호 발코니. 멤피스에서 1300여 명이 참여한 청소 노동자 파업을 지원하던 중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가 흉탄에 쓰러졌다. 그 후 50년. 고령의 청소 근로자들은 지난 4일 킹 목사에게 진 빚을 갚는 행진을 시작했다. 멤피스 시내에는 이날 수만 명의 시민,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행진했다. 그들의 손에는 50년 전 청소 근로자들이 목놓아 외쳤던 것과 똑같은 구호인 ‘나는 사람이다’(I Am A Man)가 들렸다. 멤피스 추모 집회에는 대권 주자로 꼽히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제시 잭슨 목사, 앨 샤프턴 목사, 존 루이스 의원 등이 참여했다. 멤피스에서는 10대 청소년들이 50주기 상징으로 50마일 행진을 했다. 킹 목사가 피격된 시간인 오후 6시 1분에는 39회 타종이 이뤄졌다. 그의 39세 생애를 상징하는 타종 행사다. 워싱턴DC에서도 수만 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행사가 열렸고 미 전역에서 이날 킹 목사 50주기 추모 행사에 참가하는 인원은 수십만 명에 달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킹 목사 50주기에 맞춰 올린 트윗에서 “킹 목사에 대한 기억을 기리며 모든 미국인이 공포와 증오로부터 해방되길 바란다”고 썼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15일 마틴 루서 킹 데이에 별도 행사 없이 골프장으로 향해 비난을 받기도 했다. [연합]

2018-04-04

그가 떠난 후 반세기…여전히 남아있는 인종차별

'버스 내 흑백차별' 시위 이끌며 두각 비폭력 노선 고집하며 지지층을 넓혀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최고 연설 꼽혀 정치권 공작.도청 "비열한 거짓말쟁이" 노벨 평화상 수상…50년 전 오늘 암살 1968년 4월 4일. 멤피스의 한 모텔 2층 발코니에서 총성이 울렸다. 백인우월주의자였던 제임스 얼레이가 미리 잠입해 있다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머리에 총격을 가한 것이다. 킹 목사와 함께하던 사람들이 응급조치를 했지만 병원 이송 중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 미국 인권운동의 얼굴로 활약했던 그는 39세의 젊은 나이로 멤피스에서 생을 마감했다. 오늘은 킹 목사가 암살당한 지 정확히 50년이 되는 날이다. 50주기를 맞이해서 그의 삶과 우리의 현실을 돌아본다. ▶인권운동에 헌신한 삶 킹 목사는 1929년 애틀랜타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침례교 목사인 '목사 가족'이었다. 당시만 해도 애틀랜타에는 인종차별이 만연해 있었고 가족 전체가 인종차별주의자에게 멸시와 폭행을 당했지만 이에 논리적으로 항의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대표적 흑인대학 중 하나인 애틀랜타의 모어하우스 대학 신학과를 졸업했고 펜실베이니아주 체스터에 있는 크로저 신학교를 나왔다. 신학교를 마친 뒤에는 보스턴 대학교 대학원 신학부에서 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보스턴에서 기독교적인 사회참여에 대한 신념을 굳힌 그는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의 교회에서 담임 목사직을 맡게 됐다. 그리고 여기서 그는 자신의 인생을 건 투쟁을 하게 된다. 로자 파크스라는 여성이 버스에서 백인 남자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 경찰에 체포되고 연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젊은 목사였던 그는 로자 파크스의 사건을 계기로 시작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의 지도자가 됐다. 그는 탁월한 연설 능력과 카리스마로 5만 여명의 시민을 동참시킨 행진의 맨 앞에 섰다. 1956년 12월 연방 최고 재판소에서 버스 내 인종 분리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받아내고 난 후에는 그야말로 '전국구 스타'가 됐고 흑인 민권 운동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흑인 해방 운동과는 달리 비폭력 노선을 고집한 그는 일부 흑인 지도자들한테 비판받기도 했지만 지지층을 넓혀 나갔다. 1963년 8월 워싱턴 DC의 링컨 기념관에서 25만 명의 관중을 두고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이라는 연설을 했다. 지금도 킹 목사하면 떠오르는 명연설이며 최고의 영어연설문으로 꼽힌다. 1964년에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높아지는 이름과 격해지는 견제 노벨상까지 받으면서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자 흑인 민권 운동에 반대하는 세력으로부터 견제도 심해졌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킹 목사에 대한 도청을 지시한 바 있다. 50년 동안 FBI 국장의 자리를 지키면서 공작 정치를 했던 에드거 후버는 킹 목사가 비열한 거짓말쟁이라고 비판했다. 후버 국장은 다른 많은 유명인사나 정치인들에게 하듯이 킹 목사의 사생활을 감시하기 시작했고 그가 여성편력이 심하다는 내용을 신문사에 보내기도 했다. 물론 백인우월주의자들에는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킹 목사가 민권운동에 투신한 이후로 그와 그의 가족은 항상 위협에 시달렸다. 비폭력주의자로 유명했던 그가 가족의 보호를 위해 총을 소지하고 다닐 정도였다. 1968년 4월 3일 테네시주의 흑인 청소 노동자 파업투쟁을 지원하러 간 킹 목사는 암살자가 오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청소노동자들 또한 피신을 권고했다. 하지만 그는 "나도 다른 사람들이 그렇듯 오래 살고 싶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날 그는 암살당했다. ▶여전한 인종차별 주류언론은 킹 목사 암살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미국 사회의 모습에 대한 기사를 쏟아냈다. AP통신은 IT, 생명과학, 건축, 공학 등 고임금 직종에서 흑인들이 훨씬 더 적은 수를 기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외식업계나 건물 보수, 단순 사무 등의 상대적 저임금 직종에 흑인 종사비율이 높다고 지적했다. 킹 목사가 박사학위를 받으며 자신의 신념을 공고히 했던 보스턴은 이런 모습을 극명히 보여주는 지역이다. 컴퓨터나 수학 관련 전문직종에 종사하는 백인의 수는 흑인의 27배에 달했다. 독일의 통신사 dpa 통신은 50년 전 킹 목사가 생을 마감한 멤피스도 피부색에 따라서 사는 지역이 다르며 흑인의 생활조건이 훨씬 열악하다고 전했다. 멤피스 대학의 안드레 존슨 교수는 "우리가 계속 투쟁하면 현시대의 문제를 논의하지 않게 되는 날도 올 것"이라며 차별과 편견에 맞서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루터 킹 목사의 어록 "옳은 일을 하기에 적합한 시기란 없습니다. 바로 지금이 그 순간입니다." "우리는 두려움이라는 홍수를 막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용기라는 둑을 쌓아야만 합니다." "폭력은 적을 파괴하지만 비폭력은 적을 친구로 만듭니다." "악에 대항하거나 항의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실제로 악에 협력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중요한 일에 대해 침묵하는 날 우리의 생명은 저물기 시작합니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열정적이면서도 온화해야 합니다. 또 이상주의자면서 현실주의자여야 합니다." 조원희 기자 cho.wonhee@koreadaily.com

2018-04-03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 50주기…여전한 미국 인종차별의 '그늘'

오는 4일이면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 만 50주가 되지만 미국에서는 여전히 인종차별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AP통신은 30일(현지시간) 정부 자료 분석을 토대로 정보기술과 사업, 생명과학, 건축, 공학 분야의 고임금 직종에서 만성적으로 백인 대표자들이 흑인보다 더 많이 분포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또 미국의 흑인 다수는 음식 제공·준비와 건물 보수, 사무 업무와 같이 저임금에 혜택도 적은 일자리를 찾아다닌다고 분석했다. 일례로 미국 노동통계청에 따르면 평균 연봉이 가장 높은 11개 직군에서 백인 노동자들이 흑인들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킹 목사와 깊은 관련이 있고 '기술혁신의 허브'로 통하는 보스턴에서도 백인 노동자 수가 컴퓨터와 수학 관련 전문직에서 흑인과 비교해 약 27명대 1명꼴로 많았다. 보스턴의 투자자들도 백인이 운영하는 벤처기업을 훨씬 더 지지하는 것 같다고 일부는 말한다. 보스턴은 킹 목사가 박사 과정을 밟고 그의 부인을 만난 곳이기도 하다. 노스이스턴대학 듀카키스 센터의 시어도어 랜즈마크 이사는 "구조적 차별"이 고임금 분야에서 인종 불균형을 대변하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dpa 통신도 같은 날 기사에서 킹 목사가 암살당한 멤피스의 현 상황을 설명하며 지금도 피부 색깔에 따라 거주 구역이 구분돼 있으며 미국 소수 흑인의 생활 조건도 다수를 차지하는 백인과 비교해 열악하다고 진단했다. 멤피스대학의 안드레 존슨 교수는 숨겨진 인종차별이 있고 흑인들이 차별과 편견에 맞설 필요가 있다며 "우리가 계속 투쟁하는 한 미래 시대가 오늘날 우리가 얘기하는 걸 논의하지 않게 되는 날이 올 것이란 희망도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dpa 통신은 실업률과 수입 구조, 재소자 현황, 빈부 격차 등에서도 미국에 사는 백인과 흑인 간 차이가 뚜렷하다고 전했다. 한편 미국에선 킹 목사의 기일 맞아 추모 행사가 열렸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킹 목사 서거일을 나흘 앞두고 10대 청소년 무리가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시(市) 북부 61번 도로에서 50마일(약 80km) 걷기 행사를 시작했다. [연합]

2018-04-01

마틴 루터 킹 사적지 '업그레이드'

애틀랜타 다운타운의 마틴 루터 킹 주니어 국립 사적지(Historic Site)가 국립공원(Historic Park)으로 승격되어 연방정부의 강화된 보호를 받게 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 대학 풋볼 챔피언 결승전을 관람하기 위해 조지아 애틀랜타를 방문하는 비행기 안에서 ‘마틴 루터 킹 주니어 국립 역사공원 법안’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법안을 서명함으로써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마틴 루터 킹 기념일을 앞두고 애틀랜타와 흑인 커뮤니티 및 민권단체들에게 큰 선물을 한 셈이다. 트럼프를 가장 강력하게 비판하며 반대편에 서 있는 애틀랜타의 존 루이스 연방하원의원은 이 법으로 애틀랜타 다운타운에 있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사적지가 격이 달라지게 될 것이며, 연방정부의 관리과 보호가 한결 더 강화될 것이라고 환영했다. 이번 조치로 연방정부 공원처럼 공원 순찰대원(파크 레인저)이 이 일대를 보호하기 위해 순찰하게 되며, 상설 교육 프로그램이 개설되고 커뮤니티 그랜츠 예산도 배정된다. 이번에 서명된 법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 사적지역으로 킹목사의 탄생 주택과 시무했던 에벤에셀 침례교회와 방문센터 뿐 아니라, 한때 남부기독리더십컨퍼런스(SCLC) 본부로 사용됐던 프린스 홀 매소닉 빌딩까지 포함되게 됐다. 노연두 기자

2018-01-09

마틴 루터 킹 목사 동상, 애틀랜타에 선다

흑인 인권 운동 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동상이 그의 고향인 애틀랜타에 선다. 1일 애틀랜타 저널(AJC) 보도에 따르면 네이선 딜 조지아 주지사 오피스는 지난 주말 마틴 루터 킹 목사 동상 제막 행사를 위한 초대장을 발송했다. 제막식은 오는 28일 다운타운 주청사에서 열릴 예정이다. 동상이 설 장소는 미정이다. 그러나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드라이브와 킹 애비뉴가 교차하는 뉴 리버티 플라자 인근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동상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제막을 기획한 지 2년 만의 일이다. 딜 주지사는 지난 2013년 의회에 걸린 인종차별주의자 톰 왓슨의 동상을 철거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후 다수의 민주당 의원들은 주정부를 대상으로 그 자리에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동상을 설치하자고 요청 해왔다. 현재 주청사에는 유화로 된 킹 목사의 초상화만이 걸려 있다. 킹 목사 동상은 제막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의회와 킹 재단과의 협의를 거쳐야 했고, 특히 원제작자 앤디 데이비스가 동상 제작 도중 교통사고로 사망하기도 했다. 지난해 6월 새로운 조각가 마틴 더우(Martin Dawe)가 프로젝트를 이어받았고, 기업들의 스폰서를 받아 겨우 완성됐다. 권순우 기자

2017-08-01

킹 목사 ‘봉사·화합’ 정신 실천

19일 ‘마틴 루터 킹 데이’를 맞아 애틀랜타 한인들이 노숙자 봉사로 킹 목사의 봉사, 화합정신을 실천했다. 한인선교단체 미션 아가페(대표 제임스 송)는 이날 노숙자 디케이터 소재 ‘뉴 라이프 커뮤니티 센터’에서 3000여명의 저소득층 주민들과 노숙자에게 음식을 대접했다. 구제단체 ‘호세아 피드 더 헝그리’와 손잡고 진행한 이날 행사에서 미션 아가페는 전날부터 준비한 4000여명분의 음식을 배식했다. 거동이 불편해 행사장에 오지 못한 노인들과 장애인들을 위해 가정으로 음식을 배달하기도 했다. 행사장에서는 음악 공연과 옷 나누기, 이발, 카이로 프랙틱 진료 서비스가 제공됐고, 직업 컨설팅도 이뤄졌다. ‘킹데이’를 맞아 7년째 봉사중인 미션 아가페의 제임스 송 대표는 “피부색이 다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하나라는 킹 목사의 정신을 실천하자는 뜻에서 노숙자 봉사를 해왔다”며 “약자들에게 사랑을 베풀며 커뮤니티간 화합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호세아 피드 더 헝그리’의 엘리자베스 오밀라미 대표는 “미국에는 지금도 4000만명이 가난으로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는 그들과 더불어 살며 지속적으로 사랑을 나눠야 한다. 이것이 킹 데이의 진정한 의미”라며 “미션 아가페에서 봉사하는 한인들은 7년째 여러분들을 돕고 있는 우리의 형제 자매”라고 말했다. 한편 애틀랜타에서도 킹데이를 맞아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렸다. 이날 킹 목사가 생전에 시무했던 애비니저침례교회에서는 킹 목사의 자녀 및 영화 ‘셀마’의 출연진들이 모여 기념예배를 개최했다. 로렌스빌과 스넬빌에서는 킹데이 퍼레이드가 열렸다. ‘킹데이’를 맞아 흑인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시위도 전국적으로 열렸다. 미네아폴리스에선 경찰에게 사살된 무고한 흑인 청년들을 추모하며 불공정한 공권력에 항의하는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시위가 열렸다. 최근 경찰이 흑인 남성들의 머그샷을 표적 삼아 사격 연습을 해 논란이 일었던 플로리다 마이애미에서도 흑인 인권 신장을 주장하는 행진 등 행사들이 개최됐다. 조현범 기자

2015-01-20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데이 맞아 전국서 기념 행사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데이(이하 MLK의 날)를 맞아 DC, 버지니아를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기념 행사가 열렸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업적을 기리는 평화 행진과 퍼레이드 등이 이어졌다. DC에선 오전 11시부터 평화 행진 및 퍼레이드가 진행됐다. 세인트 엘리자베스 그라운드에서 시작된 행진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애비뉴 4200 구간까지 이어졌다. 버지니아와 메릴랜드 지역에서도 다양한 MLK의 날 기념 행사가 열렸다. 버지니아에서는 루던 카운티 법원에서 더글라스 커뮤니티 센터까지 행진이 진행됐고, 메릴랜드에서는 MLK의 ‘아이 해브 어 드림(I Have a Dream)’ 연설과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무료 상영됐다.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은 1955년 몽고메리에서 버스의 인종 분리에 항의하며 일어난 사건으로, 흑인 인권 운동의 시발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MLK의 날을 맞아 흑인 처우 개선에 대한 목소리 또한 높았다. 미네아폴리스에선 경찰에게 사살된 무고한 흑인 청년들을 추모하며 불공정한 공권력에 항의하는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시위가 열렸으며 최근 경찰이 흑인 남성들의 머그샷을 표적 삼아 사격 연습을 해 논란이 일었던 마이애미에서도 흑인 인권 신장을 주장하는 행진 등 행사들이 개최됐다.      유현지 기자

2015-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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