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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멈추고 다시 숨고르기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마음 따뜻한 일인가. 다시 시작할 무엇이 남아 있는 삶, 하고 싶은 무엇인가를 품고 사는 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지.   시골 촌뜨기가 도시로 이사 온 뒤 방학이 되면 고향으로 돌아가 삼거리 골목을 쏘다녔다. 치마 양쪽에 새하얀 줄을 단 명문학교 교복 입고 동네를 한 바퀴 돌면 동네 어른들이 “현풍댁 딸래미 잘 건사 했네. 고생한 보람 있구만” 하며 쌈지 주머니에서 격려금(?) 몇 푼을 꺼내주기도 했다.     ‘큰 칼 옆에 차고’ 이순신 장군처럼 나라 지킨 영웅은 아니라도 일류 학교를 상징하는 ‘흰 칼(하얀 줄이 있는 교복 치마)’은 마을 사람들의 기대를 받기에 충분했다. 그 기대는 평생토록 올가미가 되기도 했지만 나락에 빠질 때마다 절망에서 건져주는 동아줄이 된다.     기대(Expectations)는 어떤 일이나 대상이 원하는 대로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다림이다. 기대는 동기를 유발시킨다. 긍정적인 측면으로는 인물의 성장에 영향을 미치거나 역경을 이겨내는 원동력이 된다.     기대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높아지면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폐인이 되거나 타락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자존감은 ‘자아 존중감(自我尊重感)’이다. 자신을 존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라고 인식하는 마음이다. 자존심은 타인이 자신을 존중하거나 받들어 주길 바라는 감정이지만 자존감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그 자체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감정이다.   나이 들면 힘차게 달려오던 생의 깃발 멈추고 숨고르기를 해야 한다.     너무 힘들게 달리면 객사한다. 자존심이 센 사람은 상처를 입기 쉽다. 자존감은 상처입고 무너진 자존심을 회복시킨다. 자존감은 스스로 무너트리기 전에는 살아 갈 인생의 지표가 된다.     나이 드신 어른 몇 분이 사업과 집을 정리하고 자녀들이 사는 타 주로 이사할 준비를 한다. 청춘을 바쳐 힘들게 지탱해 온 사업과 직장을 접고 땀 흘려 마련한 둥지를 버리고 떠날 준비를 한다.     뻐꾸기는 둥지를 짓지 않고 다른 새가 둥지를 비우는 틈을 타서 몰래 알을 낳고 원래 있던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낸다. 붉은머리오목눈이는 알이 바뀐 줄도 모르고 버꾸기 알을 정성스레 키운다. 어미 뻐꾸기가 탁란을 하는 이유는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나누어 낳으면 둥지 하나가 없어지더라도 다른 둥지에 낳은 새끼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남의 둥지에서 자란 새는 슬퍼도 울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이 선택한 삶에 길들여진다. 불행하게도 기대가 무너지고 멍에가 되면 고삐 메인 소처럼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내일이 오늘 같고 내일은 오늘의 반복인 삶을 산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내일을 믿지 않고 스스로를 포기하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에 한계를 긋고 가치 있는 삶을 포기하며 대충 사는 일이다. 자신의 가치를 폄하하고 기대치를 낮추면 남은 시간을 허둥지둥 허비하며 산다.   힘들었던 시간 멈추고 다시 생의 고삐를 움켜쥐면 남은 시간이 소중하게 보인다.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염려하지 말고, 어떤 것을 하고 싶은 지 고심할 때다.     하릴없이 서성이는 허무의 발길이 아니라 정말로 하고 싶었단 일에 포커스를 맞추면 해가 서산으로 기울기 전, 황혼이 쏘아 올린 빛은 찬란하고 눈부시다. (Q7 Fine Art 대표)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둥지 하나 자아 존중감 명문학교 교복

2024-05-07

[마음 읽기] 새도 지치면 제 둥지로 돌아간다

창경궁 앞을 지나다 보니, 나무에 작은 새집이 보였다. 가까이서 보니 촘촘하게 잘도 지었다. 푸른 기운 도는 잔가지가 삐져나온 것이 지은 지 얼마 안 된 모양이다. 도심 한복판에서 마주하는 새 둥지는 언제 보아도 흥미롭다. 짓는 모습을 직접 보게 되면 더 신기하다. 그런데 가로수 한 그루에만 새 둥지가 있는 게 아니었다. 옆의 나무에도, 그 옆의 나무에도 둥지를 틀었다. 빈 둥지로 보이는 것까지 하나둘 세다 보니, 무려 열일곱 개까지 세었다. 철새 서식지라도 되는 걸까? 창경궁 앞쪽 가로수에만 이렇게 집중해서 새들이 집을 짓는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지인에게 창경궁 앞에 새 둥지가 참 많더라는 얘기를 했더니, 책 한 권을 보내왔다. 『새는 건축가다』(차이진원 글)라는 책이다. 새에 관한 흥미로운 얘기가 많았다. 새에게는 저마다의 특정한 둥지 형태가 있는데 어떤 새는 건초 줄기로 나뭇가지 사이에 둥지를, 어떤 새는 고목에 구멍을 뚫어 보금자리를 만든다.   그런 새의 건축본능은 태어나는 순간 이미 주어진다고 한다. 경험이 쌓일수록 더 잘 짓는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새는 저마다의 환경 적응 방식에 따라 둥지를 배치한다. 이를테면, 나무에서 활동하는 새는 숲에 집을 짓고, 지상에서 활동하는 새는 풀숲이나 바위틈에 둥지를 숨겨두며, 바닷새는 물결 따라 움직이는 수초처럼 보이도록 수면 위에 집을 짓기도 한다. 그리고 흥부전에 나오는 제비처럼 사람들과 친밀한 새라면, 우리가 사는 지붕의 처마 밑에 둥지를 틀고 알을 품으며 산다.   새에 관한 책을 읽다 보니 자연스레 인간의 삶과 가정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알다시피 세상의 모든 가정이 행복과 불행을 번갈아 겪으며 살아간다. 분명한 것은 집안의 가장이거나 부모라면, 어떤 세파가 몰아쳐도 끄떡없이 가정을 보호하려 들고, 될 수 있으면 가정을 튼튼하게 지켜내려 애쓴다는 점이다. 우리 부모님도, 저 윗대 조상님들도 그러했을 것이다. 오늘도 절에 와서 기도하는 분들을 보면, 대부분이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기원한다. 먼저 가신 부모님의 왕생극락을 발원하며 엎드려 절하고, 화목한 가정과 원만한 대인관계를 위해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려 명상에 집중한다.   물론 나처럼 출가한 경우엔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출가한 자에게 있어 가정은 그리 큰 의미도 없고, 삶에 미치는 영향도 적은 편이다. 그때그때 시절 인연에 따라 조화롭게 어울려 살다 가면 그뿐이다. 하지만 생각은 늘 그러하나, 몸은 그러하질 못할 때가 많다. 고향 집 떠난 지 30여 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나는 간혹 몸이 아프면 어릴 적 어머니가 끓여주던 우렁이 된장찌개가 먹고 싶다. 새도 지치면 제 둥지로 돌아간다더니, 제아무리 출가했어도 마음이 여려지면 제 둥지를 찾지 못한 새처럼 허공을 헤매는 듯하다.   우리는 항상 어떤 것이 있다가 사라졌을 때, 더 크게 ‘없음(無)’을 인식한다. 현재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데, 습관처럼 더 많은 것을 얻지 못함을 투정한다. 본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스스로 가진 게 없다고 괴로워한다. 나도 고향을 떠날 땐 고향이 소중한 줄 몰랐다. 산속에 살 때는 산속 절이 춥고 불편하기만 했다. 공기가 좋은 줄도, 물이 맑은 줄도 모르고 당연한 듯 여겼다. 그러다 산속 절을 떠나 도심에 깃들어 살아보니 이제야 알 것 같다. 머물고 있던 그 자리가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 내 곁에 없는 소중한 것들은 어느덧 내 기억 속에만 흔적으로 남았다. 출가 여부를 떠나 지난 생의 기억들을 돌아보면, 새의 귀소본능만큼이나 우리에게도 그런 회귀본능이 있는 것 같다. 치유가 필요한 어느 순간이 오면, 떠나온 둥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그곳이 꼭 고향 집이나 부모님이 아니어도 괜찮다. 그저 잠시라도 몸과 마음을 안온하게 쉴 수만 있다면, 어느 빈 둥지인들 어떠랴 싶다. “인간은 자신이 필요한 것을 찾아 세상을 여행하고, 집에 돌아와 그것을 발견한다.” 영국의 철학자 조지 에드워드 무어가 남긴 귀소에 대한 의미를 불교에서 찾으라 하면, 곧장 마음의 근본 자리로 돌아갈 것을 권하리라. 중생의 마음을 넘어 부처의 마음자리로 가는 길 말이다. 게다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만 여의면 언제든 가능한 마음자리니, 본질만 꿰뚫으면 누구라도 가질 수 있는 마음이다. 물론 더 깊이 들어가면, 부처 마음 따로 있고 중생 마음 따로 있지는 않다.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듯’, 그저 마음 씀씀이에 따라 부처도 되고 중생도 되는 법이다. 자, 그럼 어떻게 마음의 집으로 돌아갈 것인가? 원영 스님 / 청룡암 주지마음 읽기 둥지 근본자리 둥지 형태 부처 마음 중생 마음

2024-03-31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나무의 꿈은 새벽에 영글어 가고

금방 하루해가 저물었다. 뉘엿뉘엿 흐린 하늘에도 분홍의 노을이 진다. 붉거나 보라의 것에서 풍기는 강렬함 보다는 꿈같은 아련함이 온 몸에 소복히 내려앉는다. 새들도 제 집으로 날아가 버리고 토끼도 제 보금자리를 찾는 하루가 저물고 있다. 등을 기대야 하는 어둠이 오고 잠깐만에 세상은 고요 안에 스스로 잠겼다. 숨죽이고 견디다 보면 저 깊숙이 살아나는 것들이 보이고 지나쳤던 꿈들이 노래가 되어 가까이 들려온다. 나무의 꿈은 영글어 가는데….   숲속에 걸터앉은 나무가 보인다. 저만치 떨어져 있는 나무는 말을 걸어 오지 않는다. 가지마다 제 몸무게만큼이나 눈송이를 안고 있어도 도무지 흔들리는 일이 없다. 살아 있으나 죽은 듯 전혀 미동이 없다. 찬 바람이 불어도 눈보라가 쳐도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다. 내가 다가가지 않는 한 넌 언제고 정지된 나무였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숲으로 돌아가 누웠다. 별빛 아래 가늠할 수 없는 꿈속에 잠들어 있다. 나무도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들고 깊이 잠들었나 보다.   나무를 보려고 새벽 커튼을 젖혔다. 어둠 저편 언덕 너머에 동이 트고 있었다. 팔을 뻗어 잔 가지의 눈을 털어주려다 되돌아왔다. 나무 둥지에 새들이 모여 재잘거리고 별빛이 스치고 간 한 밤의 짧은 미련도 사라진 시간. 누군가 내 등을 만지는 손길에 뒤돌아 보았다. 그것은 창살을 통해 들어온 나무의 긴 그림자였다. 한 발자국도 더 가까이 갈 수 없는, 한 마디 말도 걸어볼 수 없는 너의 그림자. 만질 수도 안을 수도 없는 하루가 시작되는 소리였다. 왼쪽 팔을 길게 뻗어 팔베개를 했다. 나무를 향해 누웠다. 나무는 잠들기 시작했다. 먼동이 트는 이 새벽에 깊은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내가 나무가 되어 너의 창가에 서 있다. 깊은 밤 눈길을 걸어 그대에게로 가서 잠든 너의 눈시울을 잠깐 바라보다 돌아오리라 생각했다. 어쩌면 눈물일지도 모를 둥글고 따뜻한 물방울, 네 등 뒤에서 맡을 수 있는 너의 향기는 지워지지 않는 긴 그림자이고, 겨울 가지를 닮은 봄으로 뻗은 뿌리처럼 깊은 나의 하루가 되었다. (시인, 화가)         눈 덮인 뒤란에 나무 한 그루 서있다 모두 잠들은 이른 아침 하루가 깨어 나는 숲에서 건져 올린 사랑이라는 단어   사랑이 사랑이 되지 못하는   너를 잃고 나마저 잃은 세상에 새벽으로 오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어깨부터 기대오는 내 안 가득 당신입니다     총총걸음으로   구름길로 걸어야 하는 곳 한 평 남짓 발 뻗은 자리에도 가는 햇살로 녹이시고 흐르는 새벽으로 챙기시는 그대의 긴 손, 향기     장독대 장들이   느리게 익어가는 별빛 아래 희끗희끗 하얀 새치처럼   눈발이 날리고 나이 먹는 어리둥절 속에 사랑을 느리게 깨달아 갈 때 아픔이 무르익기 전 그대는 잠들어야 해요 말하지 않아도 보이는 손     나무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어머니 손을 꼭 닮은   그대의 손은 약손입니다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나무 새벽 나무 둥지 새벽 커튼 단어 사랑

2024-02-05

막내가 집 떠나면 무엇을 할 것인가…'빈둥지 증후군' 이겨 내려면

매년 이즈음에는 집을 떠나는 자녀들을 배웅하는 부모들의 한숨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특히 동부의 사립대학으로 진학하는 자녀들은 이미 출발해 기숙사 생활에 들어갔고 이들을 걱정하는 부모들의 잠 못 이루는 밤이 계속되고 있다. UC 같은 쿼터제 대학들에 진학하는 가정도 가을학기를 앞두고 짐 정리에 한창이다. 소위 '빈둥지 증후군'이라 불리는 부모들의 눈물은 시니어로서의 삶의 시작일 수 있다.     이주용(가명)씨의 외아들인 에디가 며칠 전 대학으로 떠났다. 이제 이씨의 집에는 부인 이선옥(가명)만 남았다. 갑자기 침실이 남아돌고 일상이 한가해졌다. 56세인 이주용씨는 더 이상 운전해서 자녀의 밴드부 연습에 갈 필요가 없어졌다. 지금은 정말 홀가분하다.   한국과 달리 미국은 대부분의 대학 신입생이 집을 떠나게 되면서 '빈둥지'를 갖게 된다. 이씨는 오늘날의 빈 둥지 생활을 상상하면서 원격 업무로 일하면서 여행에 나서서 미국의 다른 도시를 방문할 것이라고 상상했다. 아니면 아들이 태어나기 전인 2000년대 초반으로 돌아가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곤 했다. 한편, 더 나이 들기 전에 관절염을 우려해 층계가 없는 단층 구조의 주택으로 줄이는 것을 논의했다. 하지만 외아들 에디가 나중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로 고민했다.   실제 이씨는 해방감 대신 무엇이든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자신을 발견했다.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새로 비어있게 되는 둥지의 어려움은 이제까지 별로 논의되지 않았다. 많은 부모는 자녀를 그리워하는 것 외에도 자신의 삶에 대한 혼란과 불안을 경험한다는 진단이 있다. 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70세인 조중원(가명)씨는 50대 중반에 빈둥지를 겪었다. 그는 3남매를 키웠는데 막내 아이가 이사를 갔을때 절망을 느꼈다고 전한다. 지금은 그나마 두 자녀가 캘리포니아에 정착해 희망이 보인다.   많은 학부모가 12학년 자녀를 졸업시키고 대학에 보내는 것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자신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 상상하는 데 적당한 시간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은 빈둥지를 준비하는 것보다 은퇴나 유럽 여행을 준비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빈 둥지라는 기회   자녀를 기숙사로 보내고 여전히 혼란스러운 느낌이 든다면 전문가들은 순조로운 새 출발을 위해 몇 가지 해결책을 제시한다.     ▶장기적으로 생각해 보자=자녀를 키우는 데 보낸 시간보다 훨씬 오랫동안 빈  둥지로 있을 수도 있다. 그 시간에 무엇을 할 것인가. 크게 생각해 봐야 한다.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는 나머지 인생에 대한 계획이 필요하다.   ▶바통을 전달해보자=자녀의 스포츠, 예술 또는 봉사 단체에 여전히 참여하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바통을 넘겨주고 물러나야 할 때다. 이제 다른 부모의 차례다.   ▶결혼생활에 신경을 더 쓰자=이제 가족이 2인조로 변화하면 예상치 못한 관계 스트레스가 발생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부부가 가족의 화합을 위해 억제했을 수 있는 모든 갈등을 필요한 경우 치료를 통해 해결되어야 한다.   ▶솔로로 전략을 세우라=만약 편부모라면, 범죄나 사고로 인해 10대인 자녀를 잃은 것이 특히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슬픔에 잠길 시간을 가지되 은둔자가 되지는 말라. 혼자라는 것에 주눅 들지 말고 가급적 같은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함께 모이는 것에 익숙해지고 참석하라.   ▶개를 길러보라=반려 동물이 없는 경우 개를 비롯한 반려 동물을 입양하면  스트레스가 적은 보살핌과 많은 애정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좋은 감시견은 집에 혼자 있을 때 안정감을 더해 준다.     ▶꿈을 추구하도록 도우라=집을 나갔지만 자녀들은 여전히 부모를 지켜보고 있다. 부모들은 그들에게 어떤 행동을 보여주고 싶겠나. 자녀들에게 위험을 감수하고 꿈을 추구하도록 격려하라. 바깥 세상은 아주 넓다는 사실을 알려주라.   장병희 기자빈둥지 증후군 빈둥지 증후군 12학년 자녀 둥지 생활

2023-09-17

[삶의 뜨락에서] 마주친 눈빛 2

지난해 늦은 여름 39년을 지켜온 제비 가족들이 겨울을 넘길 채비를 하고 있었다. 특히 두 번째 부화한 새 생명의 가족들은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사람이나 동물들이 새끼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들까. 떠날 날이 촉박한데 비행 연습에 쫓기고 있었던 네 마리의 아기 제비가 참으로 가엽고 안쓰럽게 보였던 그 모습, 나와의 마주친 눈빛, 기억이 생생한 지난해 모습들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때 초가을 그들은 떠나고 겨울을 넘기는 이곳에는 이상 기후로 따뜻한 겨울이 지나고 있었다. 12월에 핀 동백꽃이 빨간 입술의 겨울을 넘다가 이틀 동안  한파가 몰려와 동백꽃을 초토화한 계절을 넘기는 수난이 있었다. 이상 기후의 겨울을 넘기며 차고에 텅 빈 그들의 둥지를 보며 항상 집 떠난 그들을 생각하는 동안 어느새 봄의 기운들이 싹을 틔우고 꽃들은 계절을 속이지 않고 찾아오고 있었다. 만 가지의 봄들이 기지개를 켜는 자연의 질서들을 지키면서 차고 속의 제비 둥지는 고향 떠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39년의 자연의 약속을 지켜온 그들은 과연 40년을 완성할 것인가를 염려하기 시작했다. 매년 4월 20일이 지나면 찾아오는 집 떠난 자식이 돌아오는 기다림과 설렘, 기쁨처럼 올해도 똑같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겨우내 따뜻한 날들이 지나고 봄은 이상하게도 추운 바람을 몰고 왔다. 걱정되었다. 이 차가운 봄날에 그들이 돌아오면 얼마나 춥게 견딜까 걱정되었다. 물론 그들은 우리 인간보다 앞을 내다보는 삶의 지능이 발달 되 있음을 알지만 그래도 돌아올 자식 걱정하듯 염려스러웠다. 그런 속에 봄의 시간이 지나는데 매일매일같이 둥지를 살폈다.   4월 28일이 지났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 아침이면 차고 문을 열면서 하늘을 본다. 오늘도 내일도 소식이 없어 별생각이 다 들었다. 근 1만5000km 긴 여로 상상이 안 되는 거리다. 혹시 지난해 강남 가는 길목에 변이라도 아니면 가족에 이상이라도, 인솔자의 문제라도, 혹시 명물의 지혜? 우리 가족의 노년기를 알고 이사를 한 것인지, 별별 추측을 다 했다.     5월이 시작되었다. 한 번도 4월을 넘긴 적이 없다. 인근 농장에 가 보아도 그곳에도 오지 않았다. 하루 이틀 기다림은 더 커지며 불안까지 엄습하여 다시 농장에 5월 2일 전화를 했다. 그곳에 제비가 1일 날에 왔단다. 그럼 내 식구들은 어떻게 됐다는 것인가, 더욱더 초조해졌다. 별생각이 다 스치고 지나면서 그래도 기다리는 마음은 오늘도 변함이 없이 차고 문을 일찍 열어주고 어디 외출할 때도 활짝 열어놓고 다녔다. 39년을 같이 한 지붕 밑에 살아 본 사람은 우리의 심정을 알 것이다.     기다림과 서운함의 길목에서 그래도 희망은 버리지 않았다. 5월 3일, 4일, 기다림 속에 모처럼 바다에 가면서 집 식구에게 아침에 차고 문 일찍 열고 외출 시에도 열어 놓도록 당부를 하고 집을 나서면서 속마음의 기다림과 만남, 무언의 약속 속에 들려온 카톡 소리 “기다리던 제비가  돌아왔습니다.” 제비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많은 그림을 그렸다. 상상만 해도 꿈같은 비상, 여기서 거기가 얼마인가 수많은 것들을 보고 헤치며 날아온 명물 중의 명물이다.   그 먼 길 얼마나 힘들었을까, 수만 리길 뒤에 두고 날개를 수십만 번 휘저으며 그 작은 눈망울 속에 옛 그림 지붕 아래 둥지를 생각하며 날아온 내 식구, 보고 싶었던 기다림의 전설 같은 실화의 40년 지기 가족의 역사는 이루어졌다. 도착한 일행은 우물쭈물할 여지 없이 처음 지은 둥지에 몸을 담는다. 기특한 명물의 속삭임이 시작되었다. 보이지 않는 둥지 속의 따스함 속에 그들은 자손만대를 위한 보금자리를 폈다. 온종일 어디에선가 먹이 활동과 일가친척들과의 하루를 보내며 가끔 둥지를 살피고 저녁엔 꿈의 보금자리에 깊은 잠을 잔다. 밤에는 차고 문을 내린다. 그들은 알고 있다. 두 노인네의 차고 문지기를, 아침이면 문을 열라고 지지배 요란을 떤다. 차고 문을 열면 꿈의 하루를 시작한다. 날쌘 제비는 곧 알을 가슴에 품고 새 생명의 역사를 시작할 것이다. 오늘 아침 후속대와의 만남, 창공에 수를 놓으며 안도와 기쁨의 마주친 눈빛은 다시 빛나고 있었다. 오광운 / 시인삶의 뜨락에서 눈빛 제비 둥지 제비 가족들 눈빛 기억

2023-05-11

[삶의 뜨락에서] 마주친 눈빛

늘 그랬듯이 매년 4월의 마지막 주일이면 집 떠난 자식이 돌아오는 것처럼 기다리는 설렘이 있다. 올해도 똑같은 마음이었다. 다시 오리라 믿는 38년의 연륜이 말해 주고 있지만 세상이 너무 많은 변화를 일으키는 현대 문명의 부산물들이 곳곳에 널려 있고 또 오는 길이 이웃집이 아닌 이역만리의 먼 길이 아닌가.     그들의 날개는 정말 놀라운, 믿어지지 않는 힘이다. 종족 보존을 위한 본능은 자연의 질서를 지키는 위대한 힘이다. 매일 같이 차고 문을 지켜본다. 그들의 모습이 드디어 4월 26일 약속처럼 39년의 둥지를 찾아 왔다. 항상 한 마리가 선발대로 왔지만 올해는 두 마리가 짝을 짓고 같이 왔다. 그들은 이미 계획된 일들을 하나씩 시작했다. 우린 알 수 없지만 그들만의 언어가 있다. 먼저 둥지 수리가 시작되었다. 어디에선가 진흙을 묻혀 온다. 지난해에 쓰였던 둥지를 보수하였고 또 다른 가족들은 새 둥지를 지었다.     따스한 봄의 기운은 짝짓기를 재촉했다. 5월 10일경부터 기쁨의 고난이 시작되었다. 알을 품었다. 이따금 수놈과 암놈은 잠시 임무 교대를 한다. 무릎과 다리의 피로감을 풀고 돌아온다.     약 2주일이 지났다. 암놈의 자세가 어색함을 볼 수 있었다. 알이 부화가 되었음을 뜻한다. 아주 작은 털도 없는 불그스레한 새끼를 조심해야 하니까, 가끔 자세를 바꾼다. 6월 5일 어미는 새끼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먹이 나눔을 시작했다. 부지런한 어미와 아빠는 통계에 의하면 하루에 250번 정도나 들락거린다고 한다. 속히 보고 싶은 몇 마리의 새 생명이 태어났을까 궁금했다. 일주일 후 그들은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아직 하얀 털이 보실보실 귀엽게도 생겼다. 분명히 다섯 마리였다. 대부분 네 마리가 태어나지만 이번에는 오랜만에 대가족이 생겼다. 다섯 마리를 키워야 하는 믿기지 않는 어미의 날개는 무척이나 바쁘다. 우리의 해충을 처리하는 유익한 새 제비다.     어느덧 그들은 제 모양새를 갖추었다. 바깥세상 하늘은 두렵고 신기하다. 하지만 날아야 하는 본능, 드디어 날개를 폈다. 하늘을 정복했다. 얼마나 기뻤을까?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다시 또 두 번째 짝짓기를 시작했다. 이번엔 시간을 계산해야 하는 중대한 일이다. 지난해에는 두 번째 부화를 도중에 멈추고 떠난 마음 아픈 일이 있었다. 새끼가 나와도 키워서 돌아갈 시간이 없는 상황 판단을 하고 포기했던 가슴 아픈 일이었다. 공연히 신경이 쓰였다. 드디어 두 번째 종족 보존을 위한 위대한 본능은 시작되었다. 그들의 생각과 내 생각은 같았지만 그들의 계산이 정확했다. 하루 이틀… 7월 23일 드디어 네 마리 새끼의 모습이 보였다.     여름의 그림자는 가을의 예쁜 색으로 물들며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고난과 기쁨의 교차 속에 네 마리의 쫓기는 강남길 강행군, 어미의 생존법은 강인했다. 아침부터 몰고 어디에선가, 그리고 고공의 행진, 어미는 강훈련을 했다. 아니면 낙오되는 그 모습은 상상하기도 싫었을 게다. 하루는 새끼들이 지친 채 지붕 위에 앉아있는 처진 모습이 애처로웠다. 그렇게 훈련이 마무리되는 듯했고 8월 21일 아침 온 가족이 모여 재잘대며 차고에서 소란을 피웠다. 작별인사를 했을까? 그리고 23일 차고에서 마주친 한 마리와 나의 눈빛은 무엇을 주고받았을까? 차고 문을 열어 주었다. 남쪽 하늘을 향했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난 그들이 일주일 늦게 떠날 것을 예상했는데 그들은 5일 정도 먼저 떠났다. 역시 그들의 판단은 놀랍다. 차고에서의 그 눈빛. 고향 집 뒤에 두고 떠난, 특히 마지막 태어난 네 마리가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오광운 / 시인삶의 뜨락에서 눈빛 둥지 수리 종족 보존 남쪽 하늘

2022-09-26

[삶의 뜨락에서] 제비집을 그리다

‘정원의 쓸모’라는 책을 읽고 있다. 잘 가꾼 정원이 얼마나 보기 좋으며 우리의 심신을 위로한다는 정원예찬론 정도로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다. 그런 선입견을 뛰어넘는 내용이 실려있었다. 정원 가꾸기 즉 원예 활동이 사람들 심리 치료에 큰 효과가 있음을 끝없는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한다. 더 나아가 자연이라는 놀라운 세계를 꽃과 나무와 텃밭의 식물과 창가의 작은 화분까지 동원하며 안내하고 있다.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음은 자연과 더불어 살 때라고 힘주어 강조한다. 정원이 이렇게 쓸모있는 것이라는 설명을 들으며 자연의 신비한 힘을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자연 속에 아주 작은 존재 하나로도 설명이 어려운 힘을 얻는다.    자연 속 작은 풍경 처마 밑 제비집은 우리에게 좋은 느낌을 준다. 제비는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다. 다른 새들은 경계심으로 나무 꼭대기에 둥지를 만든다. 제비는 오히려 사람 손이 쉽게 닿을 수 있는 장소에도 겁 없이 집을 짓고 새끼를 키운다. 사람들도 다른 새가 집안 어디에 둥지를 틀면 싫어하고 방해한다. 그러나 제비가 날아들면 환영한다. 둥지 받침대도 만들어 주는 것은 흥부 아저씨 이야기로  마음에 담긴 제비가 복을 불러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멀리 떨어져 즐기는 자연이 아니고 가까이에서 함께 지내며 바라보는 자연이 되고 있다. 알게 모르게 이 한 조각 자연의 풍경이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    사람들이 사는 것이 자꾸 자연스러움에서 멀어지고 있다. 자연과 멀어져 사는 삶이 어느 날 제비집을 보며 가르침을 얻는다. 지푸라기에 잘 다진 고운 흙을 덩어리지게 묻혀 차곡차곡 쌓은 제비 둥지는 그 노고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사는 것의 정성을 깨우쳐 준다. 한번 정 붙인 집은 잊지 않고 매년 찾아 드는 고향에 대한 약속 같은 정겨움이다. 노란 부리가 귀여운 새끼 제비가 둥지 밖으로 보이기 시작하면 가족이라는 그림이 그려지며 그렇지 않은 빈 둥지를 할 말 없게 한다. 내 삶이 더 중요하다며 비어 있는 가족 관계를 에둘러 나무란다. 쉬지 않고 새끼 제비의 입속에 먹이를 넣어주는 엄마 아빠 제비의 부지런함은 잊었던 부모님의 노고를 떠올리게 한다. 날개에 힘을 얻은 새끼 제비들이 하늘 속으로 날아가는 신통한 성장은 자녀들의 어느 날 모습에 놀라는 어른들의 표정을 읽게 한다. 그래서 처마 밑 작은 보금자리는 해마다 생기 넘치는 이야기를 풀어내어 사람들에게 웃음을 준다.    봄 여름 가을의 계절 속에 제비 가족이 처마 밑에서 지내는 시간은 잘 지어진 제비집처럼 아름답게 보인다. 다시 찾은 낯익은 그 집의 처마에 들어서서 부부 제비는 손발 맞추어 정교한 제비집을 완성한다. 멀지 않아 그 포근한 자리에는 몇 개의 제비 알이 내일을 준비한다. 날개 밑에서 체온을 받아 새끼로 자란 작은 생명이 알껍데기를 열고 세상을 본다. 노란 부리가 예쁘게 드러나며 먹이를 받아먹고 날마다 자라난다. 어느 날 날개가 완성된다. 둥지를 나와 가까운 전깃줄까지 날아가는 연습에 열중한다. 한여름의 열기 속에서 매일매일 날개에 힘을 저축한다. 단풍 드는 계절이 오면 늘어난 제비 가족은 정든 집 주위를 한 바퀴 돌고 남쪽 나라로 향한다. 집주인은 섭섭함을 달래며 내년에 만나자 손을 흔든다.     제비집은 이제 주인이 없다. 그래도 제비집은 내년을 기다리며 새끼 제비들의 짹짹거림과 날씬한 선을 긋던 제비의 날갯짓을 되새기는 소리가 그곳에서 들린다. 다시 만나는 반가움이 살아난다. 흥부 놀부가 울고 웃던 제비집을 그려보며 사람들은 흥부도 되고 놀부도 된다. 제비집이 우리에게 자연으로 흘러가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한다. 안성남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제비집 새끼 제비들 제비 둥지 제비 가족

2022-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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