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멈추고 다시 숨고르기
시골 촌뜨기가 도시로 이사 온 뒤 방학이 되면 고향으로 돌아가 삼거리 골목을 쏘다녔다. 치마 양쪽에 새하얀 줄을 단 명문학교 교복 입고 동네를 한 바퀴 돌면 동네 어른들이 “현풍댁 딸래미 잘 건사 했네. 고생한 보람 있구만” 하며 쌈지 주머니에서 격려금(?) 몇 푼을 꺼내주기도 했다.
‘큰 칼 옆에 차고’ 이순신 장군처럼 나라 지킨 영웅은 아니라도 일류 학교를 상징하는 ‘흰 칼(하얀 줄이 있는 교복 치마)’은 마을 사람들의 기대를 받기에 충분했다. 그 기대는 평생토록 올가미가 되기도 했지만 나락에 빠질 때마다 절망에서 건져주는 동아줄이 된다.
기대(Expectations)는 어떤 일이나 대상이 원하는 대로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다림이다. 기대는 동기를 유발시킨다. 긍정적인 측면으로는 인물의 성장에 영향을 미치거나 역경을 이겨내는 원동력이 된다.
기대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높아지면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폐인이 되거나 타락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자존감은 ‘자아 존중감(自我尊重感)’이다. 자신을 존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라고 인식하는 마음이다. 자존심은 타인이 자신을 존중하거나 받들어 주길 바라는 감정이지만 자존감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그 자체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감정이다.
나이 들면 힘차게 달려오던 생의 깃발 멈추고 숨고르기를 해야 한다.
너무 힘들게 달리면 객사한다. 자존심이 센 사람은 상처를 입기 쉽다. 자존감은 상처입고 무너진 자존심을 회복시킨다. 자존감은 스스로 무너트리기 전에는 살아 갈 인생의 지표가 된다.
나이 드신 어른 몇 분이 사업과 집을 정리하고 자녀들이 사는 타 주로 이사할 준비를 한다. 청춘을 바쳐 힘들게 지탱해 온 사업과 직장을 접고 땀 흘려 마련한 둥지를 버리고 떠날 준비를 한다.
뻐꾸기는 둥지를 짓지 않고 다른 새가 둥지를 비우는 틈을 타서 몰래 알을 낳고 원래 있던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낸다. 붉은머리오목눈이는 알이 바뀐 줄도 모르고 버꾸기 알을 정성스레 키운다. 어미 뻐꾸기가 탁란을 하는 이유는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나누어 낳으면 둥지 하나가 없어지더라도 다른 둥지에 낳은 새끼를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남의 둥지에서 자란 새는 슬퍼도 울지 않는다.
인간은 자신이 선택한 삶에 길들여진다. 불행하게도 기대가 무너지고 멍에가 되면 고삐 메인 소처럼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내일이 오늘 같고 내일은 오늘의 반복인 삶을 산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내일을 믿지 않고 스스로를 포기하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에 한계를 긋고 가치 있는 삶을 포기하며 대충 사는 일이다. 자신의 가치를 폄하하고 기대치를 낮추면 남은 시간을 허둥지둥 허비하며 산다.
힘들었던 시간 멈추고 다시 생의 고삐를 움켜쥐면 남은 시간이 소중하게 보인다.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염려하지 말고, 어떤 것을 하고 싶은 지 고심할 때다.
하릴없이 서성이는 허무의 발길이 아니라 정말로 하고 싶었단 일에 포커스를 맞추면 해가 서산으로 기울기 전, 황혼이 쏘아 올린 빛은 찬란하고 눈부시다. (Q7 Fine Art 대표)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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