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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들은 더 좋은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

스테이시 아브람스 조지아 주지사 민주당 후보가 지난 3일 둘루스의 한식당에서 한인 사회의 리더들을 초청해 회견을 가졌다.     이날 회견에는 김백규 조지아 한인식품협회장, 샘 박 조지아주 하원의원(민주·로렌스빌)을 비롯해 각종 협회 및 언론사도 참석했다.     먼저 김백규 회장은 회견을 시작하며 "아브람스 후보가 주 하원일 때부터 알고 지냈다. 본인도 소수자(minority) 출신이기 때문에 미국에 사는 한인들의 심정을 잘 안다. 그녀가 주지사가 돼서 한인사회를, 더 나아가 아시안 커뮤니티를 모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선거운동 진영 소속인 미쉘 강 미주민주참여포럼(KAPAC) 애틀랜타 지부 대표는 아브람스 후보가 웹사이트에서 선거 캠페인 내용을 한글로도 제공한다면서 "아브람스 후보는 인종, 지역, 나이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을 포함하는 '하나의 조지아' (One Georgia) 슬로건을 실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샘 박 의원은 "10년 전 아브람스 후보의 선거 캠페인에서 인턴을 하며 공직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고 전했다. 또 "아브람스 후보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똑똑하며, 말로만이 아닌, 실천으로서 보여주기 때문에 조지아를 바꿀 수 있다"고 지지를 호소했다.     아브람스 후보는 연설을 시작하며 자신의 부모님에게 "우리는 목사지만 너를 천국에 데려가지는 못한다. 문을 열어줄 수는 있어도 그 길은 너 혼자 걸어가는 것"이라고 배웠다며 자신은 모두에게 그런 문을 열어주는 주지사가 되고 싶다고 전했다.     그는 자신의 주요 정책을 브라이언 켐프 현 주지사와 비교하며 설명했다. 먼저 아브람스 후보는 교육 정책을 강조하며, 교사들의 임금 인상은 물론, 호프(HOPE) 장학금 프로그램을 더 확장해 중산층 학생들이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아브람스 후보는 "이를 실행하는 데에 있어서 세금을 더 걷을 필요는 없다"며 "조지아는 교육 정책에 쓸 돈이 약 11억 달러가 있지만, 단지 현 주지사가 쓰려고 하지 않을 뿐"이라며 켐프 주지사를 비판했다.     이에 더해 아브람스 후보는 높은 렌트비로 인한 주거문제, 스몰 비즈니스를 위한 재정 지원 부족 등도 주 정부 차원에서 운용할 수 있는 돈이 약 66억 달러가 되지만 "켐프 주지사는 진정 어려운 사람들 및 중산층은 도우려 하지 않고 부자들에게만 혜택을 주고 있다"고 비난했다.     아울러 최근 큰 이슈가 된 웰스타병원그룹 소속 애틀랜타 메디컬센터의 영업 중단을 언급하며 주지사가 된다면 의료보험 확대, 병원 확장 및 의료계의 일자리 창출을 약속했다.     아브람스 후보는 "켐프가 주지사가 되어 병원 6곳을 문 닫게 했다"며 "만약 I-285 등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났는데 그레이디병원 응급실에서 당신을 받지 않겠다고 한다면, 가장 가까운 1급 외상치료 센터는 메이컨에 있다"고 언급했다.     아브람스 후보는 지난해 발생한 '애틀랜타 스파 총격사건'을 언급하며 "나는 피해자들의 추모식에 참석했고, 인종 혐오 및 총기 사고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한다"며 추모식에 참석하지 않고 오히려 총기 소지 규제를 완화한 켐프 주지사를 비난했다.     아브람스 후보는 끝으로 "조지아에 약 20만명의 아시안계 유권자들이 있다. 이들의 목소리가 주 정부에, 의회에 닿을 수 있다는 것과 이들이 더 좋은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알아달라"며 "우리가 다 같이 모인다면 할 수 있다"며 연설을 마쳤다.     한편 이날 샘 박 의원은 김백규 회장의 한인사회를 위한 여러 노고를 치하하는 조지아 하원의 결의안을 전달했다.       윤지아 기자한인 대접 조지아 주지사 조지아주 하원의원 김백규 조지아

2022-10-03

[수필] 잡초 예찬

고생과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한 사람들은 흔히들 자신은 “잡초같은 인생을 살았다”고 말한다. 잡초가 얼마나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았으면 이런 말이 나왔을까. 잡초는 인간이 재배하지도 않고 저절로 자라나는 잡다한 풀로 때와 장소에 적합하지 않은 식물로 취급되어 왔다.     한적한 시골 논밭을 걸어가노라면 초록 색으로  뒤덮인 풀 중에 잡초는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하지도 못하고 생활에 유용하지도 않은 풀로 천대를 받고 살아가고 있으니 잡초가 인간이라면  셋방살이의 서러움을  면치 못하며 살아가는 신세일 것 같다.     “건강은 제일의 재산이다”라고 말한 미국의 시인 랠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은 잡초는 그 가치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식물이라고 말하였다   일주일 동안 무덥던 더위가 가셨는지 제법 초가을 기분이 든다. 하늘을 쳐다보니 우중충하고 한판 비가 쏟아질 것만 같다. 이곳 라스베이거스는 너무 가뭄이 심하다 보니 질서 정연하게 우뚝우뚝 서 있는 가로수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비가 오기만을 고대하며 기도하는 모습들이다.     한국에서는 엄청난 비가 내려 야단법석이고, 히남도 태풍까지 휩쓸고 지나가 남해 일대는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났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곳은 빗방울이 떨어지기만 학수고대하고 있다. 참으로 세상은 공평하지도 못하다. 수십년간 콘도에서 살다 보니 빗자루로 마당을 쓸 기회가 거의 없었다. 오늘은 모처럼 딸네 집을 방문해 뒷마당을 깨끗이 쓸었다. 내가 사는 콘도는 아침마다 청소 담당자는 공기 청소기로  먼지를 날려 보낸다. 빗자루는 쓰레기를 쓸어모아 버리니 참으로 겸손한 존재이다.   그 겸손한 빗자루로 싹싹 쓸어도 악착같이 붙어 있는 녀석이 있다. 바로 잡초다. 콘크리트 사이에서 안간힘을 쓰고 솟아난 잡초다. 잡초란 녀석은 쓸고 쓸어도 쓸리지 않고 넘어졌다 고개를 들고, 숙였다가 솟아나고 도저히 빗자루 가지고는 속수무책이다. 잡초의 정신은 칠전팔기의 끈질긴 속성을 가지고 있는 식물인 것 같다. 잡초의 끈기와 인내만큼은 대단하다.     아쉽게도 내가 건강하던 젊은 시절에는 잡초의 속성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 부는 언덕에 이름 모를 잡초’를 누가 바라보겠는가, ‘한 송이 꽃이라면 향기라도 있을 텐데, 이것 저것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잡초’를 누가  바라 보겠는가. 가수 나훈아는 잡초의 속성을 일찍이 깨달은 것 같다.     세월이 흘러흘러  내가 살아있는 것에 감사할 만큼 살다 보니 잡초의 속성이 보이는 것 같다. 인간이란 노년이 되면 온몸의 기관이 고장이 나게 마련이다. 모든 것이 필요 없고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건강만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고 호소할 때 잡초의 특성인 강인한 생명력을 발견하게 되고 그의 끈질긴 위력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솟아나게 마련이다. 그때서야 잡초 같은 건강을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참으로 인간은 간사한 동물이다. 몸이 건강할 때 몸을 낮추고 잡초의 특성을 발견 못 한 아쉬움이 나를 에워싸고 괴롭히고 있다. 천한 것을 귀하게도 볼 줄 아는 아쉬움도 나를 깨워준다. 산과 들에 번식하는 쓸모없는 풀이  큰 교훈을 주고 있다.   틀림없이 잡초는 창조주로  하여금 특별한 역할을 하도록 창조되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소·염소·산양 같은 동물을 키우는 중요한 역할이나, 그들의 배설물로 우리가 사는 토양이 더 기름진 땅으로 만들게 한다든가, 약재와 식용으로  사용되어 우리의 건강을 지켜 주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인간은 누구나 약점을 가지고 있다. 자신에게 수치스럽다고 여겨지는 그 약점이 때로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잡초, 너는 알고 있는가. 너의 약점이 기회가 되어 흔한 것이 귀하게 여겨지는 날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는 잡초 같은 인생이란 말이 사라질 것이다. 약점을 활용하면 성공의 촉매제가 된다는 것. 잡초 너도 빛을 볼 날이 있을 것이다.   백인호 / 수필가수필 잡초 예찬 잡초 예찬 공기 청소기 천덕꾸러기 대접

2022-09-22

[삶의 뜨락에서] 어린이 마음

새롭게 태어난 생명은 아름답다. 아직 혼자서는 세상을 살아내는 힘은 약하지만 그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무엇도 비교할 수 없이 맑은 세계를 품고 있다. 그런 까닭에 태어난 새 생명은 우리에게 기쁨을 준다. 오래전 잃어버린 깨끗한 세계를 느낄 수 있고 생명의 귀중함과 그 놀라운 힘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의 기운을 바라볼 수 있다.      오직 사람의 힘이 유일한 동력일 때 아이들의 태어남은 큰 축복이었다. “너희의 자녀는 장사의 손에 화살 같다”라고 말해주는 성경의 한 줄을 읽다 보면 그 시절 아이들에 대하여 품은 생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많은 자손은 앞으로 더 많은 노동력을 가진다는 의미이니 더 많은 힘센 손은 더 많은 소득을 더 많은 재산을 더 많은 세력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으로 읽힌다.   그러나 이런 물질적 이유보다 앞서는 것은 자신의 후손을 향한 조건 없는 사랑이 있어 세상 어떤 것보다 새 생명의 탄생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이유가 된다. 내일을 바라보고 꿈꾸는 사람은 더 나은 내일에 담는 희망을 설계하고 그 내일을 내일도 쉬지 않고 만들어가는 존재가 되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걸고 있다. 아이들이 귀한 어린이가 되는 이유이다.    그리 오래지 않은 세월 전에는 그러나 어린이를 온전한 사람으로 셈에 넣어주지 않았다. 아직 사람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인지 금이야 옥이야 귀하게 키우며 그 자라나는 모습을 가슴 벅찬 즐거움으로 삼으면서도 아직 사람대접하는 데는 인색했던 이상한 어린이 대접이 있었다. 어른의 마음으로 어린이를 바라보았던 그때에는 어린이의 마음을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성경 속 일화 하나. 천국을 가르치던 예수님 곁으로 아이들이 자꾸 다가오자 훗날 성자로 추앙받게 되는 제자들조차 아이들을 꾸짖고 “저리 가”하며 밀어내려 하자 예수님은 당시로써는 뜻밖에 가르침으로 어린이들을 받아들인다. “천국의 주인은 이런 어린아이들이다.” “어린아이와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어린이의 마음을 세상에 밝게 드러내는말씀이었다.      어린이의 맑은 눈동자와 표정을 마주하면 어떤 악인도 이겨낼 수 없다. 어린이의 마음은 단순하다. 단순하고 순진한 사람은 좀 모자란 사람 취급을 당하는 세상에서 그 값을 제대로 받을 수 없을지는 모르나 여전히 어린이 마음은 그런 세상에서도 귀한 것이 되고 있다. 오히려 점점 더 귀중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이다. 전쟁의 연기 속에 눈물이 가득한 어린이들의 얼굴에 세상 모든 사람은 조건 없이 가슴 아파하며 그런 상황에 분노하고 있다. 사람들이 무엇인가 한 줌 건네면 가게 주인이 과자를 내주는 것을 본 어린이가 대추 씨 한 줌 내밀며 사탕 과자를달라 하자주인아저씨 씩 웃으며 그냥 내줄 수밖에 없는 때 묻지 않은 단순성이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어린이 마음일 것 같다. 아직 아무런 색도 입혀지지 않았고 어떤 모양도 정해지지 않은 어린이의 심성이 이미 칠해지고 굳어버리고 많이 더럽혀진 어른들이 되찾고 싶은 마음이기에 어린이의 작은 손을 잡으며 겸손해질 수밖에 없게 된다.    5월이 계절의 여왕이라 누가 말했지만 5월은 그보다 앞서 아직 벌레 먹은 잎이 없는 싱싱하고 연약한 새잎으로 가득한 어린이들의 마음속 같은 계절이다. 5월의 모습이 어린이들의 재잘재잘 뛰노는 그런 모양이다. 그 속에서 어느 사이 어른이 되어버린 사람들에게 어린이 마음이 한 조각이라도 돌아와 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안성남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어린이 마음 어린이 마음 어린이 대접 훗날 성자로

2022-05-02

[분수대] 각하

 황제는 면전에서 만날 수 없는 존재였다. 신하들은 천상과 지상처럼 정전(正殿)과 앞마당을 분리해놓은 까마득한 계단과 월대(月臺) 아래에서 황제를 알현해야 했다. 직접 대화할 수도 없었다. 같은 눈높이 공간에 있던 계단 아래(陛下)의 시위(侍衛)들에 말을 하면 그들이 황제에게 그 말을 전달했다. 황제에 대한 존칭인 폐하라는 단어는 황궁 계단 아래에서 황제를 우러르는 행위, 또는 계단 아래의 시위들을 일컫는 말에서 비롯됐다.   옛 동아시아 세계 질서 속에서 황제보다 한 급 아래였던 왕은 전하(殿下)라는 존칭으로 숭상받았다. 전은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인정전처럼 왕이 정무를 보거나 거주하던 대궐 내 최고등급의 건축물이다. 전하라는 존칭에도 이 건물 아래에서 왕을 우러러본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중국의 황태자나 제후왕들도 전하라 불렸다. 조선의 왕세자는 저하(邸下)라는 호칭으로 불렸다. 중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이 단어에서 ‘저’는 저택, 즉 큰 집을 의미한다.   왕족에게만 존칭이 있었던 건 아니다. 신하도 높은 지위에 올라가면 합하(閤下)나 각하(閣下) 같은 존칭으로 불렸다. 합과 각은 전과 당(堂) 다음 서열을 차지하는 궁궐 내 건축물이다. 용례를 보면 합하가 한 수 위였다. 왕이나 다를 바 없는 위세를 과시했던 흥선대원군이 합하로 불렸다.   각하는 고위 관료들에게 붙이는 호칭이다. 중국에서는 한(漢)대의 천록각이나 송(宋)대의 용도각, 현존하는 자금성 문연각 등 고위 관료들이 업무를 보던 관서를 각이라 칭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여기서 나왔다.  조선에서도 정승, 판서 등이 각하라 불렸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짧지 않은 기간 대한민국 대통령을 각하라 부른 건 격에 맞지 않았던 셈이다. 명실상부한 각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마지막이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권위적이라며 각하 호칭을 사용하지 말도록 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각하 호칭을 금지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때부터는 청와대 내에서도 대통령님이라는 호칭이 각하를 대신했다.   사실상의 ‘마지막 각하’가 세상을 떠난 뒤 지지자들로부터 마지막으로 각하 대접을 받았다. 풍자 대상을 넘어 사어(死語) 지경까지 몰린 그 단어의 생명력에도 이제 종지부가 찍힌 듯하다. 박진석 / 한국 사회에디터분수대 각하 각하 호칭 각하 대접 마지막 각하

2021-12-08

[이 아침에] 격세지감(隔世之感)

 하룻밤 지내고 나면 여태껏 경험하여 보지 못한 세상을 보고 산다. 2만여 개의 부품으로 조립된 휘발유 자동차가 200여 개의 부품으로 줄어든 전기차로 바뀌면 정비소는 앞으로 문을 닫아야 한다고 한다. 한국에 거주하는 지인이 보내준 글이 너무 마음에 닿기에 간추려 몇 가지만 소개한다.   그리 오래지 않은 동안에 풍습이나 풍속이 크게 바뀌어 딴 세상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지금은 60이 노인 대접을 못 받지만 반세기 전 평균수명은 45~48세 정도였다. 그러니 환갑을 맞은 사람은 오복을 갖춘 행운의 노인 어른이었다. 지금은 인간의 최대 수명을 120세로 보고 있다. 신문에 게재되는 부고를 보면 대부분이 90세 이후에 별세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오래 사는 것이 좋기만 한 것인가. 오래 사는 것과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현재 거의 모든 가정이 외동이다. 셋 정도 되면 원시인 소리를 듣는다. 내가 어렸을 때는 셋은 보통이고 다섯, 많게는 일곱인 집도 흔했다. ‘제 먹을 것은 타고난다’는 게 그때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지금 저출산의 가장 큰 요인은 아이 기르기가 힘들고 무엇보다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애 하나 대학 입학시키고 나면 그 에미는 폭삭 늙는 세상이다.   지금은 레이디 퍼스트 시대이지만 내가 어릴 적에는 길을 가다 교차하는 지점에서 남녀가 만나면 여자 쪽이 그 자리에 서서 남자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길을 가다 여자가 남자 앞을 먼저 지나가면 ‘재수 없다’고 했다. 남자아이가 나면 돈을 주고 작명소에서 작명했지만, 여자애는 제대로 된 이름 갖는 것도 어려웠다. 불과 두 세대 전까지 그랬다.   혹자는 박정희의 집권시대를 군부독재라고 부르면서 민주화 투쟁을 했다고 자랑한다. 그 시절을 살았던 나는 심리적으로는 지금이 더 불편하다. 딱하나 불편했던 것은 자정에서 새벽 4시까지의 통행금지였다. 조선 백성이 단군 이래 하루 세끼 쌀밥을 배부르게 먹은 것도 박정희의 통일벼 덕이었다. 그것을 박정희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이다.   내가 어렸을 때 병원 의사 한 분이 거의 모든 과목을 다 봤다. 글자 그대로 만병통치 선생님이었다. 어른 앞에서는 안경을 벗어야 했고(건방져 보인다는 이유로) 술잔을 받아도 돌아앉아 마셔야 했다. 담배도 어른 앞에서는 피울 수 없었다. 어른과 아이 사이의 ‘차례’는 아주 엄격했으며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이었다.   그때 고위 관료들은 미군에서 불하된 지프를 개조, 검은색을 칠한 뒤 타고 다녔다. 좌석 앞 손잡이 옆에 걸개가 있었고 미군 부대에서 유출된 흰색의 두루마리 화장지를 걸고 다녔다. (우리에게는 아직 화장지가 없었다) 거의 모든 차가 그랬고, 그게 자랑이었다. 여름이면 집 앞에 평상을 내다 놓고 저녁때면 동네 사람들이 거기에 걸터앉아 모기를 쫓으며 얘기를 나눴다. 그때 파자마가 있는 사람은 그걸 입고 나와 사람들에게 자랑했다. 파자마는 귀했기 때문에 충분히 구경거리였다. 지금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일상이었던 옛날얘기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서구 기준으로도 그들과 비슷하거나 더 잘살고 있다. 그래서 격세지감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사는 오늘도 내일이면 다음 세대들에겐 격세지감이 될 것이다. 변화된 미지의 세계를 경험하려면 건강하게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윤봉춘 / 수필가이 아침에 격세지감 두루마리 화장지 미군 부대 노인 대접

2021-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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