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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각하

 황제는 면전에서 만날 수 없는 존재였다. 신하들은 천상과 지상처럼 정전(正殿)과 앞마당을 분리해놓은 까마득한 계단과 월대(月臺) 아래에서 황제를 알현해야 했다. 직접 대화할 수도 없었다. 같은 눈높이 공간에 있던 계단 아래(陛下)의 시위(侍衛)들에 말을 하면 그들이 황제에게 그 말을 전달했다. 황제에 대한 존칭인 폐하라는 단어는 황궁 계단 아래에서 황제를 우러르는 행위, 또는 계단 아래의 시위들을 일컫는 말에서 비롯됐다.
 
옛 동아시아 세계 질서 속에서 황제보다 한 급 아래였던 왕은 전하(殿下)라는 존칭으로 숭상받았다. 전은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인정전처럼 왕이 정무를 보거나 거주하던 대궐 내 최고등급의 건축물이다. 전하라는 존칭에도 이 건물 아래에서 왕을 우러러본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중국의 황태자나 제후왕들도 전하라 불렸다. 조선의 왕세자는 저하(邸下)라는 호칭으로 불렸다. 중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이 단어에서 ‘저’는 저택, 즉 큰 집을 의미한다.
 
왕족에게만 존칭이 있었던 건 아니다. 신하도 높은 지위에 올라가면 합하(閤下)나 각하(閣下) 같은 존칭으로 불렸다. 합과 각은 전과 당(堂) 다음 서열을 차지하는 궁궐 내 건축물이다. 용례를 보면 합하가 한 수 위였다. 왕이나 다를 바 없는 위세를 과시했던 흥선대원군이 합하로 불렸다.
 
각하는 고위 관료들에게 붙이는 호칭이다. 중국에서는 한(漢)대의 천록각이나 송(宋)대의 용도각, 현존하는 자금성 문연각 등 고위 관료들이 업무를 보던 관서를 각이라 칭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여기서 나왔다.  조선에서도 정승, 판서 등이 각하라 불렸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짧지 않은 기간 대한민국 대통령을 각하라 부른 건 격에 맞지 않았던 셈이다. 명실상부한 각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마지막이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권위적이라며 각하 호칭을 사용하지 말도록 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각하 호칭을 금지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때부터는 청와대 내에서도 대통령님이라는 호칭이 각하를 대신했다.
 
사실상의 ‘마지막 각하’가 세상을 떠난 뒤 지지자들로부터 마지막으로 각하 대접을 받았다. 풍자 대상을 넘어 사어(死語) 지경까지 몰린 그 단어의 생명력에도 이제 종지부가 찍힌 듯하다.

박진석 / 한국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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