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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출렁이는 바다로 간 호리병

출렁이는 바다로 간 호리병       그가 문을 열고   숲으로 날아갔어   문이 닫히고   어두워진 사방이 쓰러지는 밤   숨소리 같은, 이어지는 초침   그의 모든 시간이   목이 좁은 호리병에 담겨   출렁이며 바다로 갔어       사막의 긴 그림자를 안았지   온기가 남아있는 모래 톱으로   두발을 재촉하는 손짓을 보았어   떼어지지 않는 발이 천근이었어   긴 그림자의 아침을 깨우는 노래   마주 보는 하나로 다 가진 빈들   그의 목소리가 귓전에 들렸어       한땀 한땀 수놓은 퀼트 조각 펼치고 / 삼층천을 품은 비밀의 정원에서 / 소리없는 울음 후 찿아온 한줌의 햇살 / 난생 처음 가진 소박한 꿈 / 빈들의 기적은 이렇게 시작되었지 / 비우고서야, 내려 놓은 후에야 / 들을 수 있는 바람의 소리, / 별들이 내려앉은 꿈의 들꽃 / 바람따라 흔들리는 들풀의 춤 사위 / 주고만 싶은 들녘의 가슴은 타오르는데 / 지친 허리를 펴서라도 너를 안아야했어 / 언제, 어디에서, 어디쯤 우린 기억될까 / 한잎 단풍속으로 가을 발자국 들려 오는데       그가 문을 열고   숲으로 날아갔어   문이 닫히고   어두워진 사방이 쓰러지고   사라져 가는 그의 숨소리 같은   그의 모든 시간이 목이 좁은   호리병에 담겨 출렁이는   바다로 갔어       계피향 가득한 Oat creamer를 잔뜩 넣은 커피 한모금에 온몸이 따뜻해진다. 하루가 밝아오는 새벽은 늘 다시 세상을 맞이하는 조용한 기대감에 눈이 번쩍 뜨인다. 이층 계단을 내려오며 먼저 눈이 가는 곳은 하늘이다. 구름이 덮혀 있나? 아니면 한점 떠 있지 않나? 밝아오는 하늘색을 살핀다. 아직은 붉은 먼동이 번진다. 커피 한잔 들고 덱크로 나와 뒤란을 걷는다. 눈이 마주친 꽃들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씨를 뿌려 모종부터 키운 백일홍이며, 스스로 도생한 과꽃도 살랑 흔들며 눈맞춤을 한다.   하루가 지고 하루가 열리는 것. 아직 아무도 다녀가지 않은 빈들에 문이 열리고, 지나간 시간들의 아득한 기억으로 문이 닫힌다. 일상 맞이 하는 하루라는 시간. 무심한 초침의 기계음처럼 반복해 오고, 눈을 감으면 다른 세상, 꿈속에서 맞이하는 또 다른 하루의 시간이 열린다. 덱크의 문을 열고 나오면 하루가 열리듯, 부지런한 새가 숲속으로 날아가 숲이 되어진다.     나의 어깨에도 날개가 자라나 깊은 숲으로 간다. 그곳에서 나도 숲이 되고 싶다. 바람의 소리며, 바닥까지 눕는 들풀의 순종을 배우고 싶다. 한땀 한땀 수놓은 퀼트 조각을 이어 빈들은 거대한 켄버스가 된다. 햇살의 따스함으로 생명이 자라 각색의 들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고 울창한 숲을 이룬다.     우리의 날들도 그러했다. 빈들에 뿌려진 씨앗이었다. 문을 열고 나가지 않으면 자랄 수 없는 한줌의 씨앗이었다. 제 일어나라는 바람의 소리와 햇살의 따뜻한 위로가 없었다면 빈들로 문을 열고 빈들로 문을 닫아야 했다. 보상이 없는 선물은 하루로 끝나지 않았다. 기대하지 않은 시간, 생각하지 못한 장소에서 매일 매일 감춰진 행복의 두루마리를 내려주었다. 눈을 뜨고, 귀를 열고 이끄는 그곳으로 손을 잡기만 하면 비밀의 정원과 손짓하는 호수를 만나게 된다. 행복하여야 하리. 그리하여 들꽃이 되고, 붉은 노을 언덕이 되고, 출렁이는 바다가 되어야 하리.       문이 닫히고 한밤이 될 때 / 서로의 손을 잡을 수 없을 때 / 아무도 우리의 시간을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아 / 선물로 받은 그 시간을 빠짐없이 기억해내 / 목이 좁은 호리병에 넣어 바다로 갈꺼야 / 거기서, 흔들리는 파도에 떠내려 / 작은 오두막, 당신의 손에 닿을꺼야 / 나는 다시 빈들에 뿌려진 씨앗이 되어, / 작고 하얀 들꽃이 되어 / 당신의 손에 드리워진 선물이 될꺼야 / 출렁이는 파도에 내려 앉은 붉은 노을이 될꺼야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호리병 바다 퀼트 조각 커피 한모금 노을 언덕

2024-09-16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어느 날 나는 노을이어요

어느 날 나는 노을이어요       입에 넣은 사탕은 달콤했어요   하늘이 소리 없이 내려앉았고요   손을 뻗어도 당신은 내 곁에 없어요       소란한 삶이 싫어 이곳에 왔어요   열 번쯤은 떠나왔고 몇 번은 도망쳤어요   멀리 보아도 당신은 보이지 않아요       그러지 말아야 했어요   잔가지에 걸린 하늘이 아득히 번져와요   꽃 한 송이 피워 당신께 가려고요       길에서 넘어진 노을을 주웠어요   흥건히 핏빛 되어 하늘에 걸려있어요   가까이 가면 뒷걸음치는 꿈을 꾸어요       우린 서로 다른 곳에 살고 있어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먼 곳이어요   서쪽 창가 물들은 고요는 아직 따뜻하고요       아무것도 아닌 게 될 때까지 밀려오고 있어요   하늘로 날아간, 슬픔 안으로 숨어버릴   어느 날 나는 노을이어요       호수를 바라 보고 서 있어요.     호수 끝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차지만 다정해요. 앉아서 바라볼까 생각도 들었지만 그냥 서서 보려고 해요. 아침이 밝아 오는 호수 그리고 하늘, 하얀 물새들과 반짝이는 조약돌, 밀려오는 파도가 아름다워요. 이 세상을 떠날 때, 크고 위대한 당신 앞에 설 때 바로 이런 풍경이 펼쳐져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이런 생각도 가끔 하곤 했어요. 바라보지 못한 풍경, 만나지 못한 사람, 이야기꽃을 피우지 못한 사연들과, 안타깝게도 이 세상을 일찍 떠난 친구들의 이야기들과, 하늘 높이 날고 있는 저 물새들의 대화와, 하얀 거품을 물고 출렁이며 다가오는 파도의 사랑과 속삭임이 그리울 때가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곤 했어요. 저 바다 끝 어둠을 뚫고 붉은 몸짓이 연기처럼 아니 안개처럼 피어나기 시작하네요. 수평선으로 번져 가는 붉은 하늘은 아주 크고 동그란 물방울처럼 떠 오르고 있어요. 육안으로도 보일 수 있을 만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수면 위를 차오르고 있어요. 호수가 낳은 신비한 알 같아요. 알을 깨고 나오는 아프락사스의 몸짓 같아요. 이제 그 몸이 미시간 호수의 품을 빠져나오려고 해요.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마침내 하루가 떠올랐어요. 신기하기보다 경이로워요. 하루가 떠오르는 동안 고요는 모든 것들의 입을 잠잠히 정지시켜요. 멀리 파도가 밀려오고 있어요. 기다렸다는 듯이 모래가 쓸려 왔다 빠져나가요. 호수의 표면에 새의 깃털 같은 윤슬이 반짝거려요. 하루가 또 이렇게 시작되고 있어요.     호수를 바라 보고 서 있어요.     호수와 하늘이 마땅한 곳에 연분홍의 띠가 수평선 가까이 드리워져요. 어둠이 서서히 찾아들기 시작할 때쯤 하늘은 조금씩 붉어지기 시작했어요. 호수의 수평선 위로 붉은 물감이 퍼지듯 번져 갔어요. 느린 동작같은 풍경 속에는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낮이 밤으로 천천히 바꾸어 지고 있어요. 수평선 위에 띠처럼 번져 오던 노을은 벌써 하늘의 반을 덮어 가고 있어요. 그 반대편으로 하얀 보름달이 외롭게, 겸허하리만큼 의연하게 노을을 바라 보고 있어요. 이 풍경을 무어라 설명해야 하나요. 닮고싶은 풍경이에요. 일출과 일몰 사이로 하루라는 시간이 천천히 지나갔어요. 노을을 바라보다 보면 나도 노을이 되어 가요. 노을이 지듯 우리의 삶도 저물어 가겠지요. 그러나 낙담하지 마세요. 이제 우리 앞에 형형색색의 별이 뜰 거예요. 캄캄한 밤하늘에 등불이 되어주는 별들의 대화가 한창일 거예요. 하루 일과를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온 당신의 길을 비취겠지요. 베개를 끌어안은 당신에게 잘 자라고 머릿결을 어루만져 주겠지요. 뭇별들이 수를 놓으며 엄마가 불러주던 자장가처럼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겠지요. 유독 당신의 새벽 창에 끝까지 남아 곤한 잠자리를 지켜줄 별빛 하나 보이겠지요.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노을 미시간 호수 때쯤 하늘 수평선 위로

2024-08-26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마음을 연다는 것

겨울날 / 날씨도 포근하여 / 앙상한 나무에 생기가 돌아 / 가지마다 잎눈, 꽃눈이 간지럽다 / 마음을 열고 밀려오는 호수를 담다 보니 / 한 줄 두 줄 퉁기는 기타 소리가 쏟아져 내린다     묵직한 마음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미동도 없이 있어야 할 자리에 나무들이 서 있고 누워야 할 자리에 숲이 누웠다. 빨간 열매들을 가득 품고 있는 벚나무도 보이고, 푸르게 하늘을 찌르는 전나무의 큰 키가 창가에 기댄 내 몸으로 들어와 무거운 마음의 커튼을 젖히고 있다. 살다 보면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있다. 어떤 일은 노력하다 보면 되기도 하지만 아무리 용을 써도 이룰 수 없는 일도 있다. 그 중 하나가 마음을 여는 일이 아닌가 싶다. 마음을 연다. 어떤 상황이나 환경, 어떤 사람에 대해 넓은 마음으로 다가간다는 말이 아닌가 싶다. 사실 마음을 여닫는 것을 본인이 느낄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추울 때나 더울 때, 깜깜한 한밤중이나 동이 트는 새벽에, 마음이 위축 되거나 반대로 마음이 풀어질 때가 있다.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이 반응하기도 한다.     반대로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뻣뻣한 막대기가 되기도 한다. 움츠렸던 꽃잎이 다른 힘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 펼치는 신비의 힘처럼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꽃봉오리를 활짝 피워내는 것을 보면서 마음을 연다는 것이 이런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새 물방울을 맺고 동트는 아침 어느 때 쯤 내 것이 아닌 듯 햇살에 미련 없이 내어주기도 하는… 마음이 열린다. 어마어마한 돌문이 눈 녹듯 열린다. 경계가 사라진 호수와 하늘처럼 당신의 아침은 나의 아침이 되어 내게로 온다. 당신이 기쁘면 내가 기쁘고, 당신이 슬프면 나도 슬프다. 당신이 아프면 나도 아프고야 마는……. 사람이 아프다는 건 어딘가 육신에 이상이 생겼거나 상처가 났을 때를 아프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아픈 것은 마음이 아플 때다. 아무 것도 도와줄 수 없는, 아플 때 손잡아 줄 수 없는 그때가 정말 아픈 것이다. 눈을 감으면 보인다 멀어서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사람이 보인다.   마음을 연다는 것은 / 당신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것 / 흐르는 눈물 엄지로 닦아줄 준비가 되어 있는 것 / 한없이 깊은 심장의 소리를 귀담아 내는 것 / 슬픔마저 소중해 떠날 수 없어 맴돌고 있는 것 / 노을 하늘 한 조각 창가에 띄워 보내는 것 / 삐걱거리는 다리를 건너면서도 두려움이 없는 것 / 구름보다 폭신한 마음에 누워 떠다니는 것 / 벌써 출렁이는 물소리를 알아차리는 것 / 어느새 찾은 길고 여윈 손에 깍지를 끼고 있는 것     마음을 연다는 것은 / 새로운 하루가 당신의 하루로 시작되는 것 / 세상의 모든 시선이 당신과 연결된다는 것 / 돌멩이 하나가 말을 걸어오고 / 내리는 눈발 속에서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 / 물새가 흐린 호수 위에 나타나는 것도 / 마른 나뭇가지에 생기가 돌고, / 바람이 등을 밀어 날마다 창가로 당신을 데려오는 것도 / 당신이 디딘 지구의 한 모퉁이로 / 온통 마음이 기울어진다는 것 / 정한 마음, 정직한 영으로 당신 앞에 서는 것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마음 사실 마음 조각 창가 노을 하늘

2024-01-08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시간을 찾아서

크리스마스 캐럴이 한창일 때 / 숲속 집은 거의 지어지고 있다 / 추운 마음 손을 녹이고 / 하루하루 뜨거운 삶을 살아간다 / 늦게 도착한 어두워지는 행성 / 무사한 하룻길을 뒤돌아보는 시간 / 함께 맞이하는 생소한 아침도 / 당신의 손으로 준비한 빛나는 시간이었음에 / 가슴을 채우며 다가오는 생명 숨소리 / 녹아내리는 삶은 쌓인 눈의 무게보다 가볍지 않기에 / 너는 왔던 길을 뒤돌아본다 / 그믐이 지는 하늘을 건너 우리 뜨거웠던 하늘 가 / 멋모르고 만들었던 숲속 집으로 / 노을을 안고 시간을 거슬러 숲으로 간다     산책길이 이리 아름다울 수가 없다. 크리스마스를 2주 앞둔 겨울. 징글벨이 울리고 산타 할아버지가 눈썰매를 타고 지붕 굴뚝에 내려와 아무도 모르게 착한 아이에게 선물을 주고 간다는 눈 덮인 동네에 봄 같은 겨울이 찾아왔다. 잔디가 파릇해지고 하늘이 높고 푸르다. 숲속을 걷다 보면 산새들의 노랫소리가 청명하다.     걷다 보면 만나는 풍경들이 있다. 평소엔 대수롭지 않게 바라보던 하늘, 노을을 배경으로 떠 있는 구름 한 점만으로도 다른 분위기를 내기도 한다. 낙엽이 두껍게 깔려있는 좁은 길가로 빽빽하게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어 돌아오는 길을 자칫 잃어버릴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덤불 사이로 길을 내기도 하고 끊어진 길을 되돌아 나오기도 하였지만 휴대전화의 셔터를 마구 누를만큼 풍경이 내게로 왔다. 삐죽이 튀어나온 갈대가, 바닥에 떨어진 낙엽 한 장이, 돌멩이에 피어난 이끼가, 어두워지는 하늘에 흐르는 구름이, 언덕에 걸려있는 노을 한 장이 그토록 마음을 위로할 줄은 미처 몰랐다. 세상 어느 구석을 바라보아도 아름답지 않은 곳은 없다.   그 아름다움을 눈으로 찾아내고 마음에 담지 못함은 나의 눈과 마음이 열려있지 못한 까닭이리라. 당신의 손은 오늘도 빛나는 하루를 펼치는데 눈을 가리고 입을 막고 있음은 손에 쥐어도 버리고 갈 것만 찾는 우리의 멍든 가슴 때문은 아닐런지. 변해가는 하늘을 바라보다 쉼 없이 우리 곁을 지나가는 시간을 본다. 붙잡고 싶었다. 달려가 앞서 보기도 하고, 옷소매를 부여잡아 끌어보기도 하였지만 시간은 돌아 보지 않는다.     그리스 신화에 시간의 신 크로노스(Chronos)는 달려가는 젊은 청년의 모습, 발에는 날개가 달려 있고 오른손에는 날카로운 칼이 들려 있으며, 이마에는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이 늘어뜨려져 있지만 뒷머리에는 머리카락이 한 오라기도 없다. 쉼 없이 달려야 하니 발에 날개가 달려 있고, 창끝보다 날카로와야 하기에 오른손에 칼이 들려 있고, 만나는 사람이 잡을 수 있도록 앞이마에 머리칼이 늘어뜨려져 있으나, 지난 후에는 누구도 잡을 수 없도록 뒷머리가 없음을 의미한다. 시간은 곧 기회이지만 한번 놓친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게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인들은 절대적이며 수학적 측면에서 수량화가 가능한 시간을 주관하는 크로노스(Chronos) 외에 질적인 시간을 주관하는 카이로스(Kairos)라는 신을 이야기하고 있다. 전자는 일상적이며 안정과 지속을 상징한다면, 후자는 축제와 같은 비일상적이며 기회와 변화, 행복과 불행 등을 상징하고, 또한 인간의 의지에 의해 정의되기도 하는 시간 개념이라는 점에서 시간을 바라보는 우리의 답답한 마음을 위로해 준다.     우리는 크로노스의 삶을 살아야 하지만 순간순간 나에게 다가오는 시간을 카이로스(Kairos)의 시간적 개념으로 살아야 한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눈금 같은 시간이 아니라 풍요롭고 사랑스러우며 창의적이다. 나는 노을을 안고, 바람에 기대어 시간을 거슬러 숲으로 가고 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시간 시간적 개념 하늘 노을 크리스마스 캐럴

2023-12-11

노을 지는 해변 벗삼아 와인 한 잔 마셔볼까

말리부는 전형적인 캘리포니아 바이브를 가지고 있는 듯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LA 핫플들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타운이다. 세계적 관광 명소이며 LA에서도 손꼽히는 부촌이지만 막상 방문해 보면 심심할 만큼 고요하고 딱히 할 게 없어 보이기도 한다. LA 서쪽 끝 산타모니카에서도 PCH를 타고 15분 이상은 달려야 닿을 수 있는 이 해변 마을은 그 흔한 프랜차이즈 상점도 구경하기도 힘들고 작은 부티크들과 곳곳에 숨어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적은 수의 레스토랑이 전부다. 그러나 말리부 해변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하이킹 코스와 오션뷰 레스토랑, 석양이 일품인 작은 해변, 개성 있는 상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나만 알고 싶은 핫플이 된다. 바로 그 어디도 아닌 말리부다.     ▶하이킹 코스   만약 이른 아침 이곳에 도착했다면 하이킹부터 시작하자. 말리부 인근엔 하이킹 코스가 꽤 있지만 조용한 아침 시간을 제대로 만끽하고 싶다면 말리부 북쪽 끝자락에 위치한 주마 릿지 트레일(Zuma Ridge Trail)이 좋다. 이곳은 하이킹하면서 산과 바다를 모두 감상할 수 있으며 인근 다른 코스보다 덜 복잡해 아침 시간의 고요와 평화를 즐길 수 있다. 또 계절에 따라 야생화도 감상할 수 있다. 트레일을 완주하는데 2시간가량 소요되며 트레킹 난이도는 보통이어서 시니어들도 편안하게 다녀올 수 있다.     ▶쇼핑    트래킹 후 커피 한 잔 마시고 싶다면 말리부 컨트리 마트(malibucountrymart.com)로 이동하자. 이곳은 말리부 쇼핑몰로 백화점은 없지만 유명 의류 단독매장 및 카페, 식당, 마켓이 있어 볼거리와 먹을 거리가 많다. 커피숍으론 스타벅스와 알프레도 커피숍이 있으며 점심식사를 할 수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스테이크 하우스, 캐주얼 레스토랑이 입점해 있다. 그리고 ba&sh, 존 바바토스(John Varvatos), 빈스(Vince), 올리버 피플(Oliver Peoples) 등 일반 쇼핑몰에서는 보기 힘든 유명 브랜드 단독 매장과 고급 편집매장 론 헤르만(Ron Herman) 등도 입점해 있어 윈도우 쇼핑만으로도 눈이 즐거워진다. 이외에도 이곳엔 홀푸드 마켓도 입점해 있어 그로서리 쇼핑은 물론 커피와 간단한 식사도 즐길 수 있다.       ▶볼거리   이렇게 쇼핑하다 지치면 다시 차를 타고 PCH를 달리면 된다. 말리부에서 벤투라 카운티쪽으로 운전하다 보면 아름다운 동네 풍경부터 서퍼들의 성지와 바위 절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풍경과 마주치게 되는데 멀리 가지 않고도 해외여행을 온 듯한 착각이 든다. 드라이브하다 마음에 드는 해변과 마주치면 정차해 잠시 해변을 걷는 것도 좋겠다. 비치타월 한 장 들고 해변 풍경을 즐기기 좋은 곳으로는 말리부 라군(Malibu Lagoon State Beach)과 말리부 서프라이더 해변(Malibu Surfrider Beach) 등이 있다. 말리부 라군은 철새들이 몰려드는 석호가 있어 바위에 걸터 앉아 해변 풍광과 철새들을 감상할 수 있다.     또 숨은 보석으로 알려진 말리부 힌두 사원(malibuhindutemple.org)도 방문해볼 만하다. 순백의 사원 건물에 황금색 장식이 이국적인 이곳에 서 있으면 캄보디아나 태국 어느 사원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만약 오후 늦게까지 말리부에서 시간을 보낼 거라면 일몰 감상은 필수. 말리부에서 노을을 보기 가장 좋은 곳은 엘 마타도르 해변(El Matador State Beach). 이곳은 바위 절벽으로 둘러싸인 작은 만과 바다 동굴이 있어 사진작가들이 즐겨찾는 해변인데 특히 노을이 아름다워 지역 주민들이 사랑하는 핫플이다. 주말엔 복잡할 수 있으므로 일몰 1시간 전에 도착해 거리에 주차 후 절벽 옆 계단에 타월이나 담요를 깔고 자리를 잡는 것이 좋다.         ▶식당   말리부는 문섀도(Moonshadows Malibu)나 노부(Nobu Malibu) 같은 유명 레스토랑 외에도 파인 다이닝부터 캐주얼 다이닝까지 다양한 식당들이 있다. 만약 말리부 바이브를 제대로 느껴보고 싶다면 바다 쪽을 향해 난 작은 피어 위에 있는 '말리부 팜(malibu-farm.com)'을 방문해 볼 만하다. 하얀 목재 건물과 푸른 지붕이 동부 고급 휴양지 마르타스빈야드에 있는 서머 하우스를 연상키는 이곳은 독립된 2개의 건물이 있어 카페와 식당이 따로 운영된다. 그래서 샌드위치나 버거처럼 캐주얼한 식사와 커피, 음료를 즐기고 싶다면 카페를, 피자와 파스타, 스테이크, 타코 등 푸짐한 식사를 하고 싶다면 레스토랑을 방문하면 된다. 카페는 주중 오전 9시~오후 6시, 주말에는 오전 8시~오후 8시까지 오픈한다.   이주현 객원기자해변 노을 말리부 해변 해변 풍경 해변 풍광

2023-10-19

[김인호의 아웃도어 라이프] 노을·은하수·반딧불…침묵의 향연

미국 서부 애리조나와 유타 경계에는 앤틸롭캐년, 호슈 벤드, 레인보우 브릿지, 파리아캐년, 벅스킨 걸치, 더 웨이브, 화이트 포켓 등 수많은 비경이 숨어 있다.   이곳은 컬러풀 하면서도 은은한 샌드스톤 지형들로 유명하다. 호수나 강물이 흘러가면서 깊은 계곡을 만들어놓고 좁은 슬롯 계곡을 빚어 놓았는데 사진으로만 보던 풍경을 실제로 경험하고 카메라에 담노라면 감회가 색다르다.   사진이나 동영상에 관심이 있다면 이 많은 풍경들 중에서도 알스트롬 포인트(Alstrom Point)를 놓칠 수 없다.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의 배경 무대이기도 했던 알스트롬 포인트는 1968년 영화 '혹성 탈출'에서 주인공 찰튼 헤스튼과 동료들이 그들의 우주선이 도착한 장소가 지구인지 다른 행성인지 몰라 헤맸던 장면을 연출할 만큼 경이로운 풍경을 보여주는 곳이다.   알스트롬 포인트는 콜로라도강에 글렌캐년 댐(Glen Canyon Dam)이 건설되면서 샌드스톤 계곡 사이로 호숫물이 차오르면서 형성되었다.   많은 방문자가 이곳에서 자연의 경이로움을 경험한다. 특히 아침 저녁으로 햇살을 받으며 협곡 전체가 붉은빛을 발하는 신비한 경관은 숨막히는 감동 그 자체이다.   알스트롬 포인트로 들어가는 비포장 도로는 잘 닦여져 있고 안내판도 설치가 되어 있다. 무엇보다 구글 지도에 표시가 되므로 길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다만 마지막 1마일 정도가 일반 차량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 험로여서 바닥이 높은 4륜 구동 차량이 필요하다. 만약 일반 자동차로 들어간다면 1마일 전에 주차를 하고 하이킹을 해서 다녀 오면 된다.   알스트롬 포인트에서 하룻밤을 묵는 캠핑은 특별한 경험이다. 텐트를 치고 저녁을 끓여먹고 커피나 차를 들면서 계곡을 바라보는 기분은 아무리 설명해도 충분하지 않다.   캠핑을 하면서 노을을 즐기고 밤하늘의 은하수를 바라보며 아래편 호수에 정박한 보트에서 반딧불처럼 비치는 빛을 보노라면 정말 외계의 행성에 와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곳 캠핑은 퍼밋이 필요하지 않다. 아무런 시설이 없으므로 자연의 모습  그대로를 즐긴다. 주변은 조용하고 아무도 방해하는 사람이나 동물은 없다. 장작을 싣고 들어와 캠프파이어를 하는 그룹도 보인다. 평화로운 밤하늘을 보면서 태고적부터 아득하게 전해오는 침묵의 향연을 듣는 것 같다.   LA에서 유타주 캐납(Kanab)을 통해서 오면 알스트롬 포인트까지는 약 9시간 운전거리이다. 아침에 출발하면 알스트롬 포인트에 저녁 노을이 질 시각에 도착할 수 있다. 물론 계절에 따라 변수가 있으므로 해지는 시각을 미리 점검하는 게 좋다.   이곳은 애리조나주 페이지(Page)시 북쪽으로 약 18마일 거리인 빅 워터(Big Water) 마을에서 비포장 도로를 23마일 운전해 들어가서 만나게 된다.   알스트롬 포인트 방문에는 바닥이 높은 차량이 꼭 필요하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여분의 옷과 음식물을 준비하는 게 좋다. 또한 길이 유실되거나 닫힌 경우에 대비해 빅 워터 방문자 센터에 현지 도로 상태를 미리 알아보는 것도 좋다.   하지만 절대 하지말아야 할 것은 밤중에 이곳에 들어가고 나오는 것이다. 아무런 인위적인 빛이나 건물이 없는 지역이어서 어두운 밤길에 이곳을 운전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   다른 행성에 온 기분을 맛보고 태고적 신비를 경험하는 알스트롬 포인트는 잊지못할 추억을 선사한다.   미국 서부 유타와 애리조나 관광의 허브인 캐납과 페이지에 많은 숙박 시설이 있으며 빅 워터에도 모텔이 있다. 단지 휴가 시즌이나 연휴에는 매우 비싼데 그나마도 예약을 해야만 한다.김인호의 아웃도어 라이프 반딧불 은하수 저녁 노을 애리조나주 페이지 샌드스톤 계곡

2023-08-31

[이 아침에] 칼란드리아 꽃

칼란드리아 꽃을 바라보는 것은 기쁨이었다. 버리는 셈 치고 울타리 옆에 칼란드리아를 심었다. 그러자 그것은 기적처럼 화사한 꽃들을 피워냈다. 고운 모습에 매료돼 남은 땅에도 줄지어 칼란드리아를 심었다.   반짝이는 황금빛 햇볕 아래 하루하루 눈부시게 피어나는 진분홍빛 칼란드리아들. 그것은 매혹적인 여인같이 황홀하면서도 요염했다. 가늘고 단출한 꽃대 위에 피어나는 붉은 꽃들은, 동양화의 단아하고도 아름다운 여인 같기도 했다. 한들거리는 바람 속 어디에도 정을 주지 않은 여인의 마음같이, 꽃은 향방을 정하지 않고 바람에 흔들린다.     화사한 꽃이 피었다 지면, 또 다른 꽃이 연이어 존재를 드러내며 삶을 이어가는 칼란드리아 꽃들. 그것에는 탄생과 죽음이 동시에 들어있어서 아름답지만 슬픈 꽃이다. 그것은 한 가지 상념이 떠올라 머무르다 사라지면 또 다른 상념이 다시 피어나는 영혼의 모습을 닮았다. 하나의 생각이 붉게 피어나 순간의 삶을 창조하다 사멸하면 또 다른 상념이 피어나 다른 빛깔로 삶을 만드는 이치와 같다고나 할까. 영혼 속 생각들은 칼란드리아 꽃처럼 쉬지 않고 피어나고, 삶은 그렇게 수많은 사념들이 피었다 지며 흘러가는 것은 아닐까.   황홀한 아름다움이지만 언젠가 사라질 안타까운 칼란드리아 꽃. 무심한 칼란드리아 꽃에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삶의 교훈이 담겨 있다. 열흘 동안 붉은 꽃은 없다는 의미는, 한번 성한 것은 얼마 못 가 쇠하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니던가. 꽃은 삶 속에 숨어 있는 인생과 권력의 덧없음을 떠올리게 한다.   여린 칼란드리아는 삶의 지혜를 터득해서인지 어떤 바람에도 부러지거나 꺾이지 않는다. 바람과 마주 서지 않고 자신을 비워 몸을 낮추고, 바람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 하나가 된다. 몸을 낮추는 여리고 약한 부드러움이 자신을 고집하며 꼿꼿이 내세우는 강함을 이긴다고 했을까.   조금씩 떨어진 채 각자의 뿌리를 내린 칼란드리아는, 제각각 독립된 섬 같다. 바람과 구름과 비에 활짝 열려있는 작은 섬. 이기주의와 아집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외로운 섬이 아니라, 바람길을 따라 천지가 열려 언제나 어디라도 소통되는 편하고도 따뜻한 섬이다. 그곳은 짜인 형식에 매이지 않고 향방 없는 바람처럼 영혼이 자유로운 섬이다.   선인장 종류의 하나인 칼란드리아는 많은 잎으로 온몸을 거추장스럽게 치장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욕망을 제한한 단출함으로, 가(加)하기보다는 감(減)하는 것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칼란드리아는, 삶의 순간도 이룰 수 없는 욕심과 야망을 하나씩 줄여감으로써 순화되고 성숙해 가는 존재임을 일깨워 주는 것일까. 삶이라는 여행은 마지막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마다 정화하는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리라. “붉게 물든 노을, 칼란드리아 가지에서 활짝 핀 꽃과 생을 다한 꽃을 보며, 내 삶을 반추한다.” 김영애 / 수필가이 아침에 칼란드리아 진분홍빛 칼란드리아들 노을 칼란드리아 칼란드리아 꽃들

2023-06-20

[삶의 뜨락에서] 섬강에 노을이 지면

엄마가 사는 강원도 횡성에는 섬강이 흐른다. 둑길을 따라 올라가면 월천(月川)이 있고 그 강가에 두꺼비 모양을 한 바위가 있다는데, 그 모습을 따서 두꺼비 섬(蟾) 섬강이라 불린다니 이름도 예쁘다. 자연이 좋아지면 나이가 든 거라 하던데 세월은 깊이를 더하고 마음의 눈은 순해진 탓일까. 이토록 절절히 자연이 가슴에 스며들 줄이야.     병풍 같은 산새에 둘러싸인 도시, 횡성은 수려하다. 거기에다 매일 눈을 뜨면 느린 황소걸음처럼 기지개하는 태양과 그렁그렁 물소리를 들으며 사는 이곳 농촌 사람들의 순수와 인간미의 아름다움을 말해서 무엇하랴. 이 작은 도시에는 시(詩)를 공부하는 문학 교실이 있다. 엄마는 이 문학반의 학생이고 나는 엄마의 수업에 하루 방문객으로 참가했다. 깨끗하게 정돈된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이창동 감독 영화 시(詩)가 연상되었다. 창가 빛에 반사되는 희끗희끗 빛나는 은물결 머리를 곱게 빗어 내리고 깨끗한 옷을 입고 앉아 있는 초로의 학생들, 그 모습이 하도 진지하고 뭉클하여 나는 가만가만 숨소리를 조절해야만 했다.     이 시골의 아름다운 분들은 왜 이곳에 앉아 모든 시작과 끝을 허투루 놓치지 않겠다는 결연한 눈동자로 언어의 밭갈이에 열중하는가? 사람이 한세상을 살아내면서 설명이 잘 안 되는 그런 지점에서의 사유의 폭을 넓혀 이 세상의 아름다움과 진실을 알아내려고 애쓰는 몸짓일까, 밥벌이와 상관없는 놀이에도 불구하고 밤마다 네모난 책상과 전쟁을 치르며 내재적 귀족 그 눈부신 왕관을 꿈꾸는 자들이 시를 공부하는 이분들이 아닐까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     칠판에는 ‘박순남 시인 따님, 고국 방문 환영!!’이라고 쓰인 글씨와 환영식의 꽃다발, 박수 소리!! 먼 곳으로 시집간 딸의 부재를 채워주시어 엄마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문학과 엄마의 문우, 그분들께 감사하여 그날의 수업은 시의 강물로 넘쳐흘렀다. 준비해온 자료가 넘치도록 열정적인 선생님의 수업이 끝나고 우리는 모두 식당으로 자리를 옮기고 와인 잔을 높이 올리며 다시 한번 축하의 파티를 이어갔다. ―그날이 이렇게 눈에 아련한데 87세 엄마를 고국 땅에 남겨두고 나는 벌써 뉴욕에 도착하여 이 글을 쓰고 있다. 사람들은 가곡을 부르고 하모니카를 불며 시를 쓰는 엄마의 왕성한 삶의 열정에 혀를 내두르며 엄마의 건강이 염려 없다 하지만 돌아가는 굴렁쇠를 놓으면 멈추리라는 것을 알기에 오늘도 굴렁쇠를 돌리는 엄마의 힘겨운 손짓을 나는 알고 있다.     어젯밤 전화를 하니 엄마는 써놓은 시를 정리하고 있다고 한다. 갑자기 영화광인 내가 올해에 본 최고의 영화 노마드랜드에 나온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8번. 그 시가 엄마의 얼굴에 오버랩 되었다. 내 그대를 여름날에 비할까/ 아니, 그대는 여름보다 더 사랑스럽고 부드러워라/ (중략) 우리가 빌려온 여름날은 짧기만 하네./ 그러나 아름다운 것들은 아름다움 속에서 시들고/ 우연에 혹은 자연의 계획된 이치 때문이건 빛을 잃지만/ 그대의 여름은 시들지 않으리./ 죽음도 그대가 제 그늘 속을 헤맨다고 자랑하지 못하리라/ 그대는 영원한 운율 속에 시간의 일부가 되리니/ 인간이 숨을 쉬고 눈으로 볼 수 있는 한/ 이 시는 살아남아 그대에게 생명을 주리/ 그렇다. 우리는 이 세상을 잠깐 빌려 살고 가는 이방인이고 순례자이고 길 위에 노마드이다.     언젠가는 엄마의 여행이 끝나고 섬강에 노을은 질 것이다. 섬강에 노을이 지면 출렁이는 물결 속에 당신의 시 같은 맑은 웃음소리 물풀에 흔들릴 것이다. 곽애리 / 시인삶의 뜨락에서 섬강 노을 시가 엄마 영화 노마드랜드 두꺼비 모양

2022-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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