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출렁이는 바다로 간 호리병
출렁이는 바다로 간 호리병 그가 문을 열고 숲으로 날아갔어 문이 닫히고 어두워진 사방이 쓰러지는 밤 숨소리 같은, 이어지는 초침 그의 모든 시간이 목이 좁은 호리병에 담겨 출렁이며 바다로 갔어 사막의 긴 그림자를 안았지 온기가 남아있는 모래 톱으로 두발을 재촉하는 손짓을 보았어 떼어지지 않는 발이 천근이었어 긴 그림자의 아침을 깨우는 노래 마주 보는 하나로 다 가진 빈들 그의 목소리가 귓전에 들렸어 한땀 한땀 수놓은 퀼트 조각 펼치고 / 삼층천을 품은 비밀의 정원에서 / 소리없는 울음 후 찿아온 한줌의 햇살 / 난생 처음 가진 소박한 꿈 / 빈들의 기적은 이렇게 시작되었지 / 비우고서야, 내려 놓은 후에야 / 들을 수 있는 바람의 소리, / 별들이 내려앉은 꿈의 들꽃 / 바람따라 흔들리는 들풀의 춤 사위 / 주고만 싶은 들녘의 가슴은 타오르는데 / 지친 허리를 펴서라도 너를 안아야했어 / 언제, 어디에서, 어디쯤 우린 기억될까 / 한잎 단풍속으로 가을 발자국 들려 오는데 그가 문을 열고 숲으로 날아갔어 문이 닫히고 어두워진 사방이 쓰러지고 사라져 가는 그의 숨소리 같은 그의 모든 시간이 목이 좁은 호리병에 담겨 출렁이는 바다로 갔어 계피향 가득한 Oat creamer를 잔뜩 넣은 커피 한모금에 온몸이 따뜻해진다. 하루가 밝아오는 새벽은 늘 다시 세상을 맞이하는 조용한 기대감에 눈이 번쩍 뜨인다. 이층 계단을 내려오며 먼저 눈이 가는 곳은 하늘이다. 구름이 덮혀 있나? 아니면 한점 떠 있지 않나? 밝아오는 하늘색을 살핀다. 아직은 붉은 먼동이 번진다. 커피 한잔 들고 덱크로 나와 뒤란을 걷는다. 눈이 마주친 꽃들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씨를 뿌려 모종부터 키운 백일홍이며, 스스로 도생한 과꽃도 살랑 흔들며 눈맞춤을 한다. 하루가 지고 하루가 열리는 것. 아직 아무도 다녀가지 않은 빈들에 문이 열리고, 지나간 시간들의 아득한 기억으로 문이 닫힌다. 일상 맞이 하는 하루라는 시간. 무심한 초침의 기계음처럼 반복해 오고, 눈을 감으면 다른 세상, 꿈속에서 맞이하는 또 다른 하루의 시간이 열린다. 덱크의 문을 열고 나오면 하루가 열리듯, 부지런한 새가 숲속으로 날아가 숲이 되어진다. 나의 어깨에도 날개가 자라나 깊은 숲으로 간다. 그곳에서 나도 숲이 되고 싶다. 바람의 소리며, 바닥까지 눕는 들풀의 순종을 배우고 싶다. 한땀 한땀 수놓은 퀼트 조각을 이어 빈들은 거대한 켄버스가 된다. 햇살의 따스함으로 생명이 자라 각색의 들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고 울창한 숲을 이룬다. 우리의 날들도 그러했다. 빈들에 뿌려진 씨앗이었다. 문을 열고 나가지 않으면 자랄 수 없는 한줌의 씨앗이었다. 제 일어나라는 바람의 소리와 햇살의 따뜻한 위로가 없었다면 빈들로 문을 열고 빈들로 문을 닫아야 했다. 보상이 없는 선물은 하루로 끝나지 않았다. 기대하지 않은 시간, 생각하지 못한 장소에서 매일 매일 감춰진 행복의 두루마리를 내려주었다. 눈을 뜨고, 귀를 열고 이끄는 그곳으로 손을 잡기만 하면 비밀의 정원과 손짓하는 호수를 만나게 된다. 행복하여야 하리. 그리하여 들꽃이 되고, 붉은 노을 언덕이 되고, 출렁이는 바다가 되어야 하리. 문이 닫히고 한밤이 될 때 / 서로의 손을 잡을 수 없을 때 / 아무도 우리의 시간을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아 / 선물로 받은 그 시간을 빠짐없이 기억해내 / 목이 좁은 호리병에 넣어 바다로 갈꺼야 / 거기서, 흔들리는 파도에 떠내려 / 작은 오두막, 당신의 손에 닿을꺼야 / 나는 다시 빈들에 뿌려진 씨앗이 되어, / 작고 하얀 들꽃이 되어 / 당신의 손에 드리워진 선물이 될꺼야 / 출렁이는 파도에 내려 앉은 붉은 노을이 될꺼야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호리병 바다 퀼트 조각 커피 한모금 노을 언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