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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어느 날 나는 노을이어요

[신호철]

[신호철]

어느 날 나는 노을이어요  
 
 
입에 넣은 사탕은 달콤했어요  
하늘이 소리 없이 내려앉았고요  
손을 뻗어도 당신은 내 곁에 없어요  
 
 


소란한 삶이 싫어 이곳에 왔어요  
열 번쯤은 떠나왔고 몇 번은 도망쳤어요  
멀리 보아도 당신은 보이지 않아요  
 
 
그러지 말아야 했어요  
잔가지에 걸린 하늘이 아득히 번져와요  
꽃 한 송이 피워 당신께 가려고요  
 
 
길에서 넘어진 노을을 주웠어요  
흥건히 핏빛 되어 하늘에 걸려있어요  
가까이 가면 뒷걸음치는 꿈을 꾸어요  
 
 
우린 서로 다른 곳에 살고 있어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먼 곳이어요  
서쪽 창가 물들은 고요는 아직 따뜻하고요  
 
 
아무것도 아닌 게 될 때까지 밀려오고 있어요  
하늘로 날아간, 슬픔 안으로 숨어버릴  
어느 날 나는 노을이어요  
 
 
호수를 바라 보고 서 있어요.  
 
호수 끝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차지만 다정해요. 앉아서 바라볼까 생각도 들었지만 그냥 서서 보려고 해요. 아침이 밝아 오는 호수 그리고 하늘, 하얀 물새들과 반짝이는 조약돌, 밀려오는 파도가 아름다워요. 이 세상을 떠날 때, 크고 위대한 당신 앞에 설 때 바로 이런 풍경이 펼쳐져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이런 생각도 가끔 하곤 했어요. 바라보지 못한 풍경, 만나지 못한 사람, 이야기꽃을 피우지 못한 사연들과, 안타깝게도 이 세상을 일찍 떠난 친구들의 이야기들과, 하늘 높이 날고 있는 저 물새들의 대화와, 하얀 거품을 물고 출렁이며 다가오는 파도의 사랑과 속삭임이 그리울 때가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곤 했어요. 저 바다 끝 어둠을 뚫고 붉은 몸짓이 연기처럼 아니 안개처럼 피어나기 시작하네요. 수평선으로 번져 가는 붉은 하늘은 아주 크고 동그란 물방울처럼 떠 오르고 있어요. 육안으로도 보일 수 있을 만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수면 위를 차오르고 있어요. 호수가 낳은 신비한 알 같아요. 알을 깨고 나오는 아프락사스의 몸짓 같아요. 이제 그 몸이 미시간 호수의 품을 빠져나오려고 해요.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마침내 하루가 떠올랐어요. 신기하기보다 경이로워요. 하루가 떠오르는 동안 고요는 모든 것들의 입을 잠잠히 정지시켜요. 멀리 파도가 밀려오고 있어요. 기다렸다는 듯이 모래가 쓸려 왔다 빠져나가요. 호수의 표면에 새의 깃털 같은 윤슬이 반짝거려요. 하루가 또 이렇게 시작되고 있어요.
 
 
호수를 바라 보고 서 있어요.  
 
호수와 하늘이 마땅한 곳에 연분홍의 띠가 수평선 가까이 드리워져요. 어둠이 서서히 찾아들기 시작할 때쯤 하늘은 조금씩 붉어지기 시작했어요. 호수의 수평선 위로 붉은 물감이 퍼지듯 번져 갔어요. 느린 동작같은 풍경 속에는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낮이 밤으로 천천히 바꾸어 지고 있어요. 수평선 위에 띠처럼 번져 오던 노을은 벌써 하늘의 반을 덮어 가고 있어요. 그 반대편으로 하얀 보름달이 외롭게, 겸허하리만큼 의연하게 노을을 바라 보고 있어요. 이 풍경을 무어라 설명해야 하나요. 닮고싶은 풍경이에요. 일출과 일몰 사이로 하루라는 시간이 천천히 지나갔어요. 노을을 바라보다 보면 나도 노을이 되어 가요. 노을이 지듯 우리의 삶도 저물어 가겠지요. 그러나 낙담하지 마세요. 이제 우리 앞에 형형색색의 별이 뜰 거예요. 캄캄한 밤하늘에 등불이 되어주는 별들의 대화가 한창일 거예요. 하루 일과를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온 당신의 길을 비취겠지요. 베개를 끌어안은 당신에게 잘 자라고 머릿결을 어루만져 주겠지요. 뭇별들이 수를 놓으며 엄마가 불러주던 자장가처럼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겠지요. 유독 당신의 새벽 창에 끝까지 남아 곤한 잠자리를 지켜줄 별빛 하나 보이겠지요. (시인, 화가)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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