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마음을 연다는 것
겨울날 / 날씨도 포근하여 / 앙상한 나무에 생기가 돌아 / 가지마다 잎눈, 꽃눈이 간지럽다 / 마음을 열고 밀려오는 호수를 담다 보니 / 한 줄 두 줄 퉁기는 기타 소리가 쏟아져 내린다묵직한 마음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미동도 없이 있어야 할 자리에 나무들이 서 있고 누워야 할 자리에 숲이 누웠다. 빨간 열매들을 가득 품고 있는 벚나무도 보이고, 푸르게 하늘을 찌르는 전나무의 큰 키가 창가에 기댄 내 몸으로 들어와 무거운 마음의 커튼을 젖히고 있다.
살다 보면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있다. 어떤 일은 노력하다 보면 되기도 하지만 아무리 용을 써도 이룰 수 없는 일도 있다. 그 중 하나가 마음을 여는 일이 아닌가 싶다. 마음을 연다. 어떤 상황이나 환경, 어떤 사람에 대해 넓은 마음으로 다가간다는 말이 아닌가 싶다. 사실 마음을 여닫는 것을 본인이 느낄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추울 때나 더울 때, 깜깜한 한밤중이나 동이 트는 새벽에, 마음이 위축 되거나 반대로 마음이 풀어질 때가 있다.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이 반응하기도 한다.
반대로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뻣뻣한 막대기가 되기도 한다. 움츠렸던 꽃잎이 다른 힘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 펼치는 신비의 힘처럼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꽃봉오리를 활짝 피워내는 것을 보면서 마음을 연다는 것이 이런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새 물방울을 맺고 동트는 아침 어느 때 쯤 내 것이 아닌 듯 햇살에 미련 없이 내어주기도 하는… 마음이 열린다. 어마어마한 돌문이 눈 녹듯 열린다. 경계가 사라진 호수와 하늘처럼 당신의 아침은 나의 아침이 되어 내게로 온다. 당신이 기쁘면 내가 기쁘고, 당신이 슬프면 나도 슬프다. 당신이 아프면 나도 아프고야 마는……. 사람이 아프다는 건 어딘가 육신에 이상이 생겼거나 상처가 났을 때를 아프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아픈 것은 마음이 아플 때다. 아무 것도 도와줄 수 없는, 아플 때 손잡아 줄 수 없는 그때가 정말 아픈 것이다. 눈을 감으면 보인다 멀어서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사람이 보인다.
마음을 연다는 것은 / 당신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것 / 흐르는 눈물 엄지로 닦아줄 준비가 되어 있는 것 / 한없이 깊은 심장의 소리를 귀담아 내는 것 / 슬픔마저 소중해 떠날 수 없어 맴돌고 있는 것 / 노을 하늘 한 조각 창가에 띄워 보내는 것 / 삐걱거리는 다리를 건너면서도 두려움이 없는 것 / 구름보다 폭신한 마음에 누워 떠다니는 것 / 벌써 출렁이는 물소리를 알아차리는 것 / 어느새 찾은 길고 여윈 손에 깍지를 끼고 있는 것
마음을 연다는 것은 / 새로운 하루가 당신의 하루로 시작되는 것 / 세상의 모든 시선이 당신과 연결된다는 것 / 돌멩이 하나가 말을 걸어오고 / 내리는 눈발 속에서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 / 물새가 흐린 호수 위에 나타나는 것도 / 마른 나뭇가지에 생기가 돌고, / 바람이 등을 밀어 날마다 창가로 당신을 데려오는 것도 / 당신이 디딘 지구의 한 모퉁이로 / 온통 마음이 기울어진다는 것 / 정한 마음, 정직한 영으로 당신 앞에 서는 것 (시인, 화가)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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