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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칼란드리아 꽃

김영애 수필가

김영애 수필가

칼란드리아 꽃을 바라보는 것은 기쁨이었다. 버리는 셈 치고 울타리 옆에 칼란드리아를 심었다. 그러자 그것은 기적처럼 화사한 꽃들을 피워냈다. 고운 모습에 매료돼 남은 땅에도 줄지어 칼란드리아를 심었다.
 
반짝이는 황금빛 햇볕 아래 하루하루 눈부시게 피어나는 진분홍빛 칼란드리아들. 그것은 매혹적인 여인같이 황홀하면서도 요염했다. 가늘고 단출한 꽃대 위에 피어나는 붉은 꽃들은, 동양화의 단아하고도 아름다운 여인 같기도 했다. 한들거리는 바람 속 어디에도 정을 주지 않은 여인의 마음같이, 꽃은 향방을 정하지 않고 바람에 흔들린다.  
 
화사한 꽃이 피었다 지면, 또 다른 꽃이 연이어 존재를 드러내며 삶을 이어가는 칼란드리아 꽃들. 그것에는 탄생과 죽음이 동시에 들어있어서 아름답지만 슬픈 꽃이다. 그것은 한 가지 상념이 떠올라 머무르다 사라지면 또 다른 상념이 다시 피어나는 영혼의 모습을 닮았다. 하나의 생각이 붉게 피어나 순간의 삶을 창조하다 사멸하면 또 다른 상념이 피어나 다른 빛깔로 삶을 만드는 이치와 같다고나 할까. 영혼 속 생각들은 칼란드리아 꽃처럼 쉬지 않고 피어나고, 삶은 그렇게 수많은 사념들이 피었다 지며 흘러가는 것은 아닐까.
 
황홀한 아름다움이지만 언젠가 사라질 안타까운 칼란드리아 꽃. 무심한 칼란드리아 꽃에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삶의 교훈이 담겨 있다. 열흘 동안 붉은 꽃은 없다는 의미는, 한번 성한 것은 얼마 못 가 쇠하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니던가. 꽃은 삶 속에 숨어 있는 인생과 권력의 덧없음을 떠올리게 한다.
 
여린 칼란드리아는 삶의 지혜를 터득해서인지 어떤 바람에도 부러지거나 꺾이지 않는다. 바람과 마주 서지 않고 자신을 비워 몸을 낮추고, 바람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 하나가 된다. 몸을 낮추는 여리고 약한 부드러움이 자신을 고집하며 꼿꼿이 내세우는 강함을 이긴다고 했을까.
 
조금씩 떨어진 채 각자의 뿌리를 내린 칼란드리아는, 제각각 독립된 섬 같다. 바람과 구름과 비에 활짝 열려있는 작은 섬. 이기주의와 아집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외로운 섬이 아니라, 바람길을 따라 천지가 열려 언제나 어디라도 소통되는 편하고도 따뜻한 섬이다. 그곳은 짜인 형식에 매이지 않고 향방 없는 바람처럼 영혼이 자유로운 섬이다.
 
선인장 종류의 하나인 칼란드리아는 많은 잎으로 온몸을 거추장스럽게 치장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욕망을 제한한 단출함으로, 가(加)하기보다는 감(減)하는 것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칼란드리아는, 삶의 순간도 이룰 수 없는 욕심과 야망을 하나씩 줄여감으로써 순화되고 성숙해 가는 존재임을 일깨워 주는 것일까. 삶이라는 여행은 마지막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마다 정화하는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리라. “붉게 물든 노을, 칼란드리아 가지에서 활짝 핀 꽃과 생을 다한 꽃을 보며, 내 삶을 반추한다.”

김영애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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