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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유 사건, 5월 윤곽 가능성”

  아들 엘리엇 챈(Elliott Chan)을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기소된 그레이스 유 심리가 5월로 재연기됐다.   28일 뉴저지주 버겐카운티법원서 오전 10시 6분께 그레이스 유 사건 관련 심리가 열린 가운데, 개시 10여분 만에 심리는 또 연기됐다. 이변이 없다면 검사 측은 5월 17일까지 재판부에 ▶구금 기간 연장 여부 ▶공소 기각 가능성 ▶증거의 적절성 여부를 회신해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심리는 5월 29·30일 오전 9시 열릴 예정이다. 재판부는 연기의 이유를 밝히진 않았지만, 가족은 검찰의 준비가 덜 된 것이라 추측했다. 5월 심리는 사실상 결심공판이 될 전망이다. 남편 윌리엄 챈은 심리·석방 탄원 집회 후 본지와 만나 "준비가 안 됐다며 미루기 일쑤다. 증거가 더 필요하거나 검토할 시간, 증언 수집이 더 필요할 수도 있지 않겠나"라고 했다.   쑥색 수감복을 입고 모습을 드러낸 그레이스는 가족·친구를 향해 인사했고, 남편과 인사를 주고 받았다. 모친 유영선 씨는 눈물을 흘렸고, 부친 재우 씨도 심리가 재연장되자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심리에서는 검찰과 변호인 간 어떤 논쟁도 벌어지지 않았다.   심리 후 150여명의 한인이 모인 가운데, 변호사 조언에 따라 함구하던 챈도 나서 그레이스를 두둔했고, 변호인 브라이언 릴리는 "탄원서를 낸 3만명을 재판부도 알아야 한다. 지연은 유감이나 5월 전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김광석 뉴욕한인회장은 "완벽한 증거도 없이 사망 책임을 그레이스에게 물었다"고 했고, 아드리안 이(한국이름 이대우) 뉴저지한인회장은 "공정한 판단을 기대한다"고 했다.   친구 앤드리아 이는 집회 후 본지와 만나 "힘을 싣기 위해 참여했다"고 했고, 사건 관련 다큐멘터리 제작을 논의중이라고 전했다.   검찰은 엘리엇 몸에서 나온 ▶갈비뼈 등 신체의 반복적 뼈 손상 ▶뇌출혈 ▶팔·다리 외상 ▶회복된 상처·치명상의 혼재를 아동학대 증거로 제시했고, ▶그레이스 내외 ▶돌보미 ▶조부모를 수사한 결과 당일 엘리엇과 밤을 보낸 게 그레이스라는 점에서 그를 기소했다.   가족 측은 상흔에 대해 ▶미숙아로 태어나 불가피한 상처 ▶스트레칭해주는 과정서 발생 ▶성인의 심폐소생 과정 문제 ▶사건 발생 전 수술을 받아 발생 등의 가능성으로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집에 와서 가족을 대하는 태도부터 인종차별의 여지가 있었다"는 입장을 밝혔고, 한인단체들도 한인이 미국사회서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지켜야 한다는 명분으로 지원중이다.   세 가지 쟁점에 구명위 측은 그레이스의 입장을 변호인이 대신 요구한 것이라 설명했고, 가족 측은 그레이스의 주도적 생각이 아닌 변호인의 논리라고 했다. 변호인은 언론과 접촉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중이다.   글·사진=강민혜 기자 [email protected] 글·사진=강민혜 기자 [email protected]그레이스 가능성 그레이스 내외 윤곽 가능성 김광석 뉴욕한인회장

2024-03-28

[이 아침에] 땅 위의 위로

추수감사절 연휴를 지낸다고 3박 4일 빌린 맘모스 빌리지의 콘도에서 하룻밤만 자고 내려왔다. 호흡곤란이 와서 한숨도 못 잤다. 고산병이었다. 몇 년 전 수술 직후 약한 몸으로 갔을 때도 그랬는데 이번에 또 숨쉬기가 어려웠다. 하루 정도 지나면 적응된다는데 고통의 밤을 다시 견디기 어려워서 남편을 졸라 하산했다.   마침 둘째 날 아침 스노보드를 타던 남편도 과하게 욕심을 내다가 타박상을 입어 갈비뼈에 통증이 왔다. 의좋게 내려올 수 있어 덜 미안했다. 아들 내외와 후배 내외의 근심을 뒤로한 채 내려왔다. 평소 잘 맞지 않는 우리 부부인데 나는 고산병으로 호흡이 어렵고 남편은 갈비뼈 통증으로 호흡이 어렵다니 하이파이브를 해도 좋을 만큼 반가워서 웃었다. 살다가 이렇게 맞기가 쉽지 않은 일인데 말이다.   아들이 8살 때부터 맘모스 스키장에 드나들었으니 햇수로는 30년이다. 남편과 아들은 해마다 연 회원권(Year Pass)까지 구입해 자주 드나들고, 아들은 방학 땐 맘모스 스키장에서 알바를 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연습하러 오던 올림픽 영웅 클로이 김의 어린 시절도 옆에서 봤다. 평창 올림픽 땐 클로이 김을 응원하러 전지적 팬의 시점으로 한국도 다녀왔다.   이런 즐거운 추억도 있으나 그렇지 못한 일도 있었다. 어느 해인가 남편이 조종하는 세스나를 타고 스키장 인근 맘모스 레이크(mammoth Lake) 비행장에 내렸다. 갈 때는 무사했는데 돌아올 땐 강풍으로 프로펠러가 활주로 가장자리에 있던 사인 박스(sign box)를 치는 사고가 났다. 비행기는 보험으로 수리했고 다친 사람도 없는 사고였지만 그 안에 타고 있던 내게는 큰일 날뻔한 비행사고 아닌가? 그 뒤로는 맘모스에 대해 트라우마가 생겨서 별로 가고 싶지가 않은 장소가 되었다.   아마 이번에 호흡이 어려운 것도 몸의 컨디션에 정신적인 것도 합쳐진 것이 아닐까 싶다. 여하튼 휴가를 망치고 돌아와 주일이 되어 교회를 가려고 준비를 다 했는데 계속 머리가 아파 남편만 혼자 가게 되었다.   종일 약 먹고 누워있는데 교회에 다녀온 남편이 돈을 건넨다. 좋아서 벌떡 일어났는데 많지 않은 액수다. “애걔 이게 뭐야?” 큰돈이 아니라 살짝 실망했더니 사연인 즉, 교회의 J권사님이 당신이 아파 교회에 못 왔다고 하니 맛있는 것 사 먹고 얼른 나으라고 주시더란다.   순간 마음이 바뀌어 뭉클해졌다. 85세인 권사님의 마음이 마치 우리 엄마 같아서. 30달러에 아픈 머리가 씻은 듯 나았으니 역시 나는 물욕에 어두운 세상적인 사람 맞다. 산에서 얻은 병이 땅에서 돈으로 위로받았다. 나는 언제나 철이 들고 점잖은 노인이 되려나. 어느새 배달 맛집 리스트를 뒤적이는 나.이 아침에 이정아 수필가 맘모스 스키장 맘모스 빌리지 아들 내외

2023-11-29

애틀랜타 목요일까지 '30도' 내외…신경써야 할 4P

12월을 앞두고 찬 공기와 거센 돌풍이 만나 당분간 추울 전망이다.   애틀랜타 방송국 WSB-TV는 28일 메트로 애틀랜타와 조지아 북부 지역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또한 캐나다 북부의 찬 공기가 남하하며 이번주 내내 예년 평균보다 약 10~20도 낮은 기온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영하권 추위는 목요일 오전까지 이어지며, 서리 예보도 있을 전망이다. 최대 시속 25마일의 돌풍이 더해져 체감 온도는 훨씬 낮을 수 있다.   이에 방송은 "배관(Pipes), 반려동물(Pets), 식물(Plants), 사람(People)의 4P에 대한 겨울철 대비가 가장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배관은 물을 가늘게 흘려보내는 상태를 유지하고 실외에 위치한 배관의 경우, 보온재로 잘 감싸두어야 한다. 반려동물의 경우, 털이 있다 하더라도 영하의 날씨에 외부 활동을 하면 건강 상의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주의하는 것이 좋다. 식물 역시 추위에 강한 종자가 아니라면 이번주부터 실내에 미리 들여 놓아야 한다. 야외에 나설 때는 손가락, 코, 귀 등 신체 말단부위를 감싸는 방한 용품을 착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메트로 애틀랜타의 각 카운티는 혹한기 쉼터인 ‘워밍센터’를 운영해 취약계층의 한파 대피를 돕는다. 갑작스런 동파 등의 이유로 난방, 온수 불량 문제를 겪는 주민도 방문 가능하다. 센터는 드칼브, 길머, 귀넷 등에 설치되며 해 질 무렵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잠자리와 따뜻한 음식을 함께 제공한다. 기관에 따라 반려 동물 동반이 가능하기도 하다.  장채원 기자 [email protected]애틀랜타 내외 애틀랜타 방송국 영하권 추위 캐나다 북부

2023-11-28

[한인가정상담소(KFAM)] '리차드 호프만 변호사 KFAM에 1만 달러 쾌척"

리차드 호프만 변호사 내외가 '한인가정상담소(Korean American Family Services 이하 KFAM.소장 캐서린 염)' 프로그램을 위해 1만 달러를 쾌척했다.   평소 한인사회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호프만 변호사 내외는 도움이 필요하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서비스를 받고 있지 못한 한인들을 위해 한인가정상담소에 1만 달러를 후원한 것이다.   리차드 호프만 변호사는 "곤경에 처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말며 언제나 정의로워라 라는 아버지가 주신 신념을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라며 "한인가정상담소가 소외된 이웃들을 돌보기 위해 펼치고 있는 사업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겠다"라고 밝혔다.   캐서린 염 소장은 "정부 그랜트는 체류 신분이나 보험 여부 등의 제약이 많아 서류 미비자나 무보험자 저소득층 한인들은 수혜 사각지대에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호프만 변호사처럼 건강한 한인 가정을 위해 마음을 써주시는 분 덕분에 체류 신분이나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도움을 받을 수 없던 한인들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인사회에 지속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는 호프만 변호사는 UC 버클리 경제학 UCLA 법대를 졸업 후 대형사고 및 상해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며 따뜻한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 지속적인 기부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한국인 부인과 함께 베벌리힐스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다수의 한국 직원들이 한인 고객을 위해 근무하고 있다.   또한 한인가정상담소는 1983년 창립 이래로 미주 한인들 특히 여성들과 어린이 이민 가정 및 저소득층 가정들 안에서 쉽게 일어날 수 있는 가정폭력을 근절하고 정신건강을 증진하도록 돕고 있다. 한인 가정의 건강한 관계 회복을 돕고 어려운 이민생활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등 매년 6000여 명의 성인 어린이 및 청소년에게 서비스하고 있다.   2010년에는 한인사회 최초로 정신건강 관련 기관과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콘퍼런스를 기획 한인사회에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관계자들의 네트워킹에 기여했다. 지난 2013년에는 창립 30주년을 맞아 상담소의 영어명을 현재의 'KFAM'으로 새롭게 정립했다. 이는 '상담소'라는 좁은 의미에서 벗어나 한인 이민 '가정'의 지킴이로 거듭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문의: (213)389-6755           (한인가정상담소)   ▶웹: KFAMLA.org    한인가정상담소(KFAM) 리차드 변호사 리차드 호프 변호사 내외 변호사 사무실

2023-07-06

[워싱턴 읽기] 백악관에 간 한인 어린이 합창단

지난 4월26일, 오전 9시가 좀 지나면서 백악관의 사우스론(South Lawn)은 미국을 국빈 방문한 대한민국 윤석열 대통령을 환영하는 인파로 붐볐다. 이날 10시에 열린 공식 환영행사엔 7000여 명의 인파가 몰렸고 VIP라인 안에도 취재 기자들과 한국에서 온 대통령 수행원, 경호원 등으로 북적였다.      백악관 본관의 2층 발코니 계단에는 화려한 색상의 한복을 차려입은 한인 어린이 합창단 50여명이 자리했다. 합창단은 양국 대통령 부부가 입장하기 직전에 아리랑과 뮤지컬 ‘애니’에 나오는 합창곡 ‘투모로우(tomorrow)’를 불러 많은 박수를 받았다.       노래가 끝나고 발코니 계단에서 내려온 합창단은 백악관 안으로 들어갔다. 합창단원 40여명과 단장, 지휘자, 피아니스트 그리고 필자는 백악관 본관 중앙홀로 들어가 합창 준비를 했다. 중앙홀은 본관 발코니와 직접 연결된 로비다. 양국 대통령 부부는 발코니에서 환영객들에게 인사를 한 후 중앙홀로 들어오게 된다. 미국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이 중앙홀에서 손님을 맞이한다.     합창단은 양국 정상 부부가 발코니 인사를 마치고 중앙홀로 들어오면 45초에서 1분간 아리랑을 부르기로 되어 있었다. 백악관이 자랑하는 그랜드피아노 앞에 피아니스트가 앉았고 지휘자와 단장은 아이들을 진정시키느라 여념이 없었다. 필자도 백악관 NSC(안보실) 직원과 함께 합창단 옆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드디어 로비와 발코니가 연결된 문이 열림과 동시에 환상적인 화음의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바이든 대통령은 한복을 차려입은 합창단을 보자 놀란 듯 두 손을 얼굴에 대고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질 바이든 여사도 놀라는 표정으로 손자뻘 되는 아이들 앞으로 다가섰다. 순간 필자는 무의식적으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는데 순식간에 경호원이 다가와 전화기를 빼앗았다.     이 ‘1분 이벤트’는 행사 책임자의 아이디어였다. 1차 정상회담에 앞서 양 정상 내외는 VIP 티룸(Tea Room)에서 10분간 휴식을 취하기로 되어 있었고, 티 룸으로 이동하려면 1분 정도가 걸렸다.     그런데 바이든 대통령 내외가 합창단 앞에서 멈춰 버린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을 따르던 윤 대통령 부부도 덩달아 멈췄다. 아리랑 노래가 끝나자 질 바이든 여사가 가장 먼저 환호와 함께   박수를 보냈고 이어 바이든 대통령, 윤 대통령 부부도 함께 했다. 바이든 대통은 합창단 아이들에게 다가가 손을 잡아주고 어깨를 감싸며 격려했고,질 바이든 여사도 아이들을 안아주는 등 흐뭇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바이든 대통령 비서실장이 “그러면 노래를 한 곡 더 들으시죠”라고 대통령께 권했다. 양국 정상 부부가 나란히 섰고 합창단은 야외행사장에서 불렀던 ‘투모로우’를 합창했다.  ‘1분 계획’이 이미 8분을 지나고 있었다. 대통령의 일정을 1분 단위로 챙겨야 하는 수행원들은 안절부절 못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이들에게 “내가 누군지, 여기가 어디인지 아느냐?”고 물었고 조금은 긴장이 풀린 아이들은 “대통령이요” “백악관이요”라고 답했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은 “너희들 오늘 학교에 가지 않았구나.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자 한 학생이 “뉴저지에서 왔어요”라고 답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나는 뉴저지 옆의 델라웨어에서 왔고, 내 아내는 뉴저지 출신”이라며 아이들의 긴장을 풀어줬다. 그리고 “백악관에 또 와줄 수 있겠니?”라고 물었고 아이들은 “녜” 라고 응답했다. 질 바이든 여사는 합창단에게 다가가 일일이 손을 잡아주었고, 윤 대통령 부부도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바이든 대통령은 황현주 단장에게 어느 학교냐고 물었고 황 단장은 “주말에만 한 번 수업하는 해리티지스쿨(뉴저지 한국학교) 학생들이고 모국 대통령을 환영하기 위해 백악관에 왔다”고 답했다. 대학 교수인 질 바이든 여사는 사무실에서 중간고사 채점을 하다가 여기로 내려왔다고 말했고 황 단장은 “행사를 위해 어제저녁 호텔에서 학부모들과 화상으로 학생들의 성적 면담을 했다”고 답했다. 교사 경력이 있는 질 바이든 여사는 황 단장의 손을 잡고 “교사는 정말로 중요한 직업”이라고 격려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도 황 단장에게 “작년 뉴욕에서 공연한 합창단이 맞지요?”라고 물었고 황 단장은 “그렇다”고 답했다. ( 뉴저지 한국학교 합창단은 지난해 유엔총회 참석차 방미한 윤 대통령의  뉴욕 동포 환영행사에서 공연을 했었다) 1분으로 예정했던 시간은 벌써 15분이 지나고 있었다. 수행직원이 행사를 마무리 지으려 하자 바이든 대통령은 합창단과 양국 정상 내외의 기념촬영 시간을 가졌다.       당초 백악관은 이 잠깐의 행사를 비공개 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너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일까, 바이든 대통령과 질 바이든 여사는 행사 수 시간 후 각자 트위터를 통해 행사 내용을 공개했다.       과거에도 백악관 고위직에 오른 한인들은 있었다. 하지만 지금 백악관에서 근무하는 한인들은 한인사회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남다르다. 본인들도 한인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정체성이 강하다. 이런 생각이 있었기에 윤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맞아 백악관에 한인 어린이 합창단을 초청할 생각까지 한 것이다.     이번 행사가 성사되는데 핵심 역할을 했던 20대의 한인 백악관 직원은 이날 양복 안에 개량 한복 조끼를 입고 오기도 했다. 한국 대통령이 백악관에 손님으로 오는 것이 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15분 안팎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바이든 대통령 앞에서 씩씩한 한인 어린이들을 보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들이 코리안 아메리칸의 희망이다. 김동석 / 한인유권자연대 대표워싱턴 읽기 백악관 어린이 대통령 부부 양국 대통령 대통령 내외

2023-05-02

외교·안보·경제…새벽 0시부터 바쁜 일정

윤석열 대통령은 제20대 대통령으로서의 공식 임기를 시작한 10일 0시(이하 한국시간)부터 그야말로 숨가쁜 하루를 보냈다.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의 법적인 권한과 역할인 통치권을 공식적으로 넘겨받게 되는 윤 대통령은 이날 0시에 용산 대통령실 ‘지하벙커’에서 합동참모본부의 보고를 받으며 집무를 시작했다.   윤 대통령이 첫 업무로 합참 보고를 받는 것은 국내외 국군의 근무상황과 군사대비태세를 국가지휘통신망을 통해 가장 먼저 보고받음으로써 군 통수권을 행사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후 서초동 자택에서 휴식을 취한 뒤 오전 동작동 국립현충원 참배로 일정을 재개했다.   윤 대통령의 부인인 김건희 여사도 참배 일정부터 동행했다. 윤 대통령 내외는 오전에 자택을 나서며 지역 주민들과 별도로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윤 대통령 내외는 참배 후 곧장 취임식이 열리는 여의도 국회로 이동했다. 윤 대통령은 오전 11시쯤부터 취임식 본식에 참석해 취임사를 발표하고 문재인 대통령 내외를 비롯한 내빈 환송까지 약 1시간가량 머물렀다.   취임식이 끝나는 정오를 즈음해 용산 집무실로 이동해 외빈접견 일정을 소화했다.   미국, 중국, 일본을 비롯해 주요국 공식 외교사절단과 면담이 이어졌다. 새 집무실에서 열리는 첫 행사였다.   윤 대통령은 이후 여의도로 되돌아가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리는 경축행사에 참석했다.   이어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개최된 외빈초청 만찬까지 끊임없이 ‘취임식 외교’에 집중했다. 만찬에는 각국 외교사절단과 재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   용산벙커서 군통수권 인수     O...윤석열 대통령은 10일 0시를 기해 제20대 대통령 임기를 시작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서울 용산의 대통령 집무실 지하에 자리한 국가위기관리센터(지하벙커) 상황실에서 합동참모본부의 보고를 받으며 공식 집무에 돌입했다.   군 통수권 인수는 국가원수로서 법적인 권한과 역할을 넘겨받는 핵심 절차다. 역대 대통령들은 통상 취임일에 대통령직인수위 사무실이나 자택에서 합참 보고를 유선상으로 받는 것으로 임기를 시작했다.   윤 대통령이 이와 달리 이른바 ‘용산벙커’ 보고를 택한 것은 정권교체기 집무실 이전을 둘러싼 안보 공백 우려를 불식하고 북한의 무력 시위에 따른 한반도 긴장 고조 상황에 대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국가위기관리센터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등이 열리는 곳으로 원래 청와대 지하벙커에 있었으나 대통령실 이전에 따라 용산 청사에 새롭게 설치됐다.   윤 대통령에 대한 의전·경호 수준도 이날 0시부터 국가 원수로 격상됐다.       ━   만찬주로 전통주 선보여       O...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만찬장에는 국내에서 제조된 전통주 6종이 선보였다. 그동안 청와대 만찬장에는 해외 와인이나 알코올 도수가 높은 국내 증류주가 주로 쓰였다. 이번 만찬에는 도수가 약하면서도 전국 각지 농산물을 이용해 만들어진 한국 와인이 주로 선택됐다.   10일 오후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열릴 만찬에는 국회의장·대법원장·국무총리·헌법재판소장·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 5부 요인과 외국 사절단 대표, 5대 그룹 총수 등이 귀빈으로 참석한다.     공개된 만찬주는 ▶강원 홍천의 ‘너브내 스파클링 애플 라이트’ 와인 ▶경기 양평의 ‘허니문’ 와인 ▶제주의 ‘니모메’ ▶전북 무주의 ‘붉은진주 머루’ 와인 ▶충북 영동의 ‘샤토미소 로제스위트’ 와인 ▶경남 사천의 ‘3004’ 와인 등 모두 6종이다. 알코올 도수는 8~12도 사이다. 홍천의 사과와 양평의 꽃꿀, 사천의 키위 등 지역 농산물로 만든 우리 술이다. 6종 모두 전통주산업법에 따라 지역특산주로 인정받아 온라인 구매도 가능하다. 정부가 지난 1998년부터 전통주를 중심으로 온라인 주류 판매 규제를 점차 완화해왔기 때문에 일반 온라인 쇼핑 애플리케이션으로도 쉽게 주문할 수 있다.     ━   보신각 타종과 함께 ‘첫 발’     O...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개시를 알리는 타종 행사가 10일 0시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열렸다.   조수빈 아나운서 사회로 진행된 타종 행사는 새 정부 출범을 축하하는 시민들이 모인 가운데 전날 밤 11시30분 아카펠라 그룹 ‘제니스’의 공연으로 막을 올렸다.   이어 박주선 대통령취임준비위원장의 인터뷰 끝에 10부터 0까지 표시하는 카운트다운 영상이 상영됐고 지지자들의 환호성 속에 첫 번째 종이 울렸다.   이날 타종에는 국민대표 20명이 참여했다. 지역, 세대, 직능을 비롯해 다문화, 탈북민, 귀화 국민 등 다양한 분야와 계층의 대표성을 고려해 선발한 대표들이었다.   이들은 5명씩 4개 조로 총 33회에 걸쳐 보신각 종을 쳤다. 33회 타종으로 도성 8문을 열었던 ‘파루(罷漏)'의 전통에서 착안했다고 한다.외교 안보 용산 대통령실 대통령 내외 참배로 일정

2022-05-09

국가부도 위기로 내몰리는 러시아

 국가부도 위기로 내몰리는 러시아   김건흡 MDC시니어센터 회원   인생무상.. 영원한 권력은 없다. 동서를 막론하고 무소불위 독재자의 말로는 항상 비참하다. 24년간 루마니아를 철권통치 했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최후 역시 그랬다. 차우셰스쿠는 집권 초반에는 나름 개념 있는 공산 지도자라는 평을 받다가, 1971년 북한을 방문하고 난 뒤 달라졌다. 김일성의 우상화에 크게 감명을 받고 이를 벤치마킹하여 자신과 그의 아내 엘레나를 신격화하기 시작한다. 생가를 성지로 만들어 순례하게 하고 자신과 아내의 생일을 국경일로 정했으며, 국민들을 동원해 대규모 행사를 열곤 했다. 곳곳에 도청기와 비밀경찰을 배치해 반정부 인사들을 학살했다.     1989년 12월 중순, 티미쇼아라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났을 때, 차우셰스쿠는 해외 순방 중이었는데 급히 루마니아로 돌아왔다. 티미쇼아라의 소요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파견되었다가, 부쿠레슈티로 돌아온 빅토르 스탄쿨레스쿠 장군은 22일 아침 일과를 왼쪽다리에 깁스를 하면서 시작했다. 그의 왼쪽 다리는 멀쩡했지만, 그는 부상을 핑계로 앞으로 다가올 혼란에서 발을 빼려고 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의 소박한 희망은 이뤄지지 않았다. 차우세스쿠 정권의 국방장관 바실리 밀레아는 시위군중에게 발포하라는 차우셰스쿠의 명령을 거부한 뒤 시체로 발견되었다. 차우셰스쿠는 그가 외국과 내통한 반역자였고, 그 혐의가 드러나자, 자살했다고 발표했다 차우세스쿠는 그의 아내, 엘레나의 추천을 받아 바실리의 후임으로 빅토르를 임명했다. 결국 빅토르는 깁스한 왼쪽 다리를 질질 끌고, 당 중앙위원회 빌딩에서 차우셰스쿠를 만났다. 그가 신임 국방장관으로 차우세스쿠 서기장 내외를 만났을 때, 차우셰스쿠의 부인, 엘레나 차우셰스쿠는 그에게  매달려 애원했다. "빅토르, 우리 아이들을 부탁해요."   한편 당 중앙위원회 밖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군중은 해산되지 않았고, 중앙위원회 앞 광장에서 독재자의 퇴임을 요구했다. 차우셰스쿠는 전국에 5인 이상의 집회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계엄령을 선포했다. 국민은 계엄령을 무시했다. 그제서야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 챈 차우셰스쿠는 민중에게 포위당한 중앙위원회 빌딩을 탈출하기 위해 헬기를 호출했다. 바실리 마루탄 중령이 조종하는 헬기가 차우셰스쿠 일행을 탈출시키라는 지시를 받고 도착했다. 헬기가 착륙하자, 차우셰스쿠 내외와 두 명의 경호원, 두 명의 고위관료가 서둘러 헬기에 올라탔다. 4인용 헬기에 무리하게 6명을 태웠으니 좌석이 비좁았다. 차우셰스쿠는 마루탄에게 지시했다. "당장 완전무장한 병력을 태운 헬기 두 대를 불러서 이 반역자들을 쓸어버리라!" 차우셰스쿠 일행은 우선 여름 별장이 있는 스나고프로 향했다. 그곳에서 엘레나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옷가지와 보석을 챙겼다. 마루탄 중령은 4인승 헬기에 6명을 태우는 것은 무리라고 난색을 표했다. 결국 차우셰스쿠를 수행했던 관료 2명을 스나고프에 내려놓았다. 그들로서는 상당히 억울한 생각도 들었겠지만, 이후 차우셰스쿠 일행이 겪은 불운을 생각하면 차라리 행운인지도 모른다. 스나고프를 출발한 뒤, 마루탄은 그의 상관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받았다. "혁명이 발생했다. 이제 귀관이 알아서 행동하라. 행운을 빈다." 바실리는 이 독재자 무리와 함께했다가 탈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 문제는 어떻게 이들을  떼어놓는가였다.  더구나 무장한  2명의 경호원이 있는 상황에서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기체를 상하좌우로 심하게 흔들었다. 기체가 요동치자 놀란 차우셰스쿠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대공 사격을 받고 있습니다. 서기장 동지!" 차우셰스쿠는 겁에 질려 당장 착륙하라고 지시했다. 바실리는 차우셰스쿠 일행을 인근 언덕에 내려놓은 후 기지로 귀환했다.   부쿠레슈티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았다. 신임 국방장관 빅토르는 독재자의 마지막 명령을 따르지 않고, 군인들에게 막사로 귀대할 것을 명령했다. 군은 시위대에 합류했다. 시내 곳곳에서 끊어져가는 차우셰스쿠 정권의 숨통을 이어가려는 세큐리다트와 교전이 벌어졌다. 권력 공백도 빠른 속도로 메워졌다. 12월 24일 루마니아의 반정부 시인 미르치아 디네스쿠는 부쿠레슈티의 스튜디오 4 TV중계국에서 혁명의 승리를 선언했다. "군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 독재자는 도주했다. 신은 그 자비로운 얼굴로 다시 루마니아에 비추고 있다. 우리는 승리했다!." 차우셰스쿠 일행은 루마니아 남부의 티투로 가기 위해 일반 차량을 정지시켜 올라탔다. 처음 차량 운전사는 엔진이 고장났다면서  중간에 차를 세우고 그 다음에 얻어 탄 차량으로 그를 티르고비스테 지역의 농업기술연구소로 데려갔다. 연구소 직원은 이들을 방으로 안내한 뒤,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경찰에 신고했다. 곧 무장한 민병대와 경찰이 달려와 차우셰스쿠 부부를 체포했다. 민병대가 말했다. “이제 당신은 민중의 수중에 있소!" 차우셰스쿠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누구라고?" 이온 일리에스쿠는 구국전선 의장의 최초의 공식 업무로서, 차우셰스쿠에 대한 특별재판을 시작한다는 명령에 서명했다. 군사재판의 판사와 검사, 그리고 차우셰스쿠의 처형을 집행할 부대가 헬기로 티르고비스테의 병영에 도착했다. 스탄쿨레스쿠는 처형을 집행할 64공수연대의 병사들을 막사 뒤쪽에 집합시켰다. "여기 누가 있는지 아나? 차우셰스쿠가 있다. 그는 이제 곧 특별군사재판에 회부될 것이다. 만약 그가 사형을 선고받는다면 누가 집행하고 싶은가?" 병사들 중 8명이 지원했고, 스탄쿨레스쿠는 그중 3명을 선발했다. "자동소총으로 30발이다."   12월 25일 군사재판은 차우셰스쿠 부부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사형이 선고되자, 엘레나는 울부짖었다.  "우리 중에 반역자가 있었어! 이제 그게 누군지 알겠어..." 재판이 끝난 지 2시간 뒤 곧바로 차우셰스쿠 부부의 처형이 집행되었다. 형장으로 끌려나온 차우셰스쿠는 처형자들을 노려보면서 눈물을 흘리며 외쳤다. "반역자들에게 죽음을! 역사가 우리의 복수를 해줄 것이다!" 그리고는 ‘인터네샤알레’를 부르기 시작했다. 처형자들은 차우셰스쿠를 벽 쪽으로 밀어 붙인 후 방아쇠를 당겼다. 차우셰스쿠 부부는 성탄절에 90발의 총탄을 맞고 처참하게 숨을 거두었다. 총을 맞고 하늘로 향한 채 드러누운 그의 시체는 사진과 TV화면을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되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했다. 이번 전쟁은 ‘푸틴의 전쟁’이다.. 지난 2월 21일 푸틴이 주재한 국가안보회의는 한편의 블랙코미디였다. 무대 배치부터 이색적이다. 원형기둥으로 둘러싸인 백색 공간 한쪽 편에 푸틴이 책상 앞에 앉아있다. 아득한 반대편에 고위관료들이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고, 그들 앞쪽에 연단과 마이크를 설치했다. 푸틴은 관료를 한명씩 호명하여‘돈바스 지역 친러시아 국가 독립에 대한 의견을 말하라고 지시했다. 마치 숙제 검사하는 선생님처럼..답은 정해져 있었다. 찬성.. 푸틴은 지루한 듯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다가 날카롭게  말을 끊고 들어간다. 해외정보책임자가 ‘지지할 겁니다’라고 어물어물 말하자 곧바로 ‘지지할 거라는 거야, 지지한다는 거야, 정확하게 얘기해’라고 질책한다. ‘지지합니다’라고 대답하자 ‘알았어 . 들어가 앉아.’라고 말한다. 결론은 ‘오늘 중 결정한다.’였다.     푸틴은 국제사회의 ‘공공의 적’이 되었다. 전세계가 러시아 경제를 봉쇄하는 고사작전에 나서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을 ‘국제적 외톨이’로 만들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제재는 문화 스포츠 분야로도 번져 러시아는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퇴출됐다. 푸틴의 정적인 전 석유재벌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는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자살행위이며 수도 키예프와 제2도시 하리코프를 점령하더라도 푸틴은 이길 수 없고 단지 그의 종말을 앞당길 뿐”이라고 전망했다. 푸틴은 진퇴양난이다.  전쟁의 전개방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푸틴이 장기전을 펼칠 수 없는 이유는 ‘경제적 이유;’이다. 러시아는 국가신용등급이 추락하면서 국가부도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그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아직 가능성은 낮지만, 푸틴의 축출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역사는 오만한 독재자의 비참한 말로를 생생하게 웅변한다.       김지민 기자국가부도 러시아 차우셰스쿠 일행 차우셰스쿠 내외 이후 차우셰스쿠

2022-03-09

[독자 마당] 나의 코로나 극복기

지구 밖에서의 일인 듯 팬데믹을 애써 외면하려 했다. 백신을 맞지 않아서다. 그럼에도 검사만큼은 격주로 하고 있었다. 4주에 한번 정도는 채혈로 하는 항체검사도 했다.     예전에 망막을 가린 물체를 검사하기 위해 주사한 약의 부작용으로 몇 분간 무의식 상태로 있었던 경험이 있다. 약에 대한 공포증을 갖게 된 이유다.     내 의사를 존중해주던  큰딸 내외가 덜컥 코로나에 걸렸다. 이틀 전부터 열이 100도 가까이 오르내리고 목구멍은 심히 따갑고 기침도 심했단다. 주치의한테 전화하니 ‘자가치료’를 권했다고 한다.     망설임 없이 달려갔다. 다행히 꼬맹이 손주들 셋은 잘 놀고 있었다. 다섯 명의 뒷바라지를 이틀 정도 하고 난 날, 나도 차츰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해열제로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미지근한 물에 수시로 몸을 담그는 걸로 다스렸다.   나도 목구멍이 갈라지는 듯 따갑기 시작했다. 생강과 레몬 계피를 넣고 달이어 꿀과 함께 계속 마셨다. 기침과 통증은 일반 기침약과 진통제를 복용하고 입맛을 못느껴도 먹는 것은 더 잘 챙겨 먹었다. 평소처럼 잠을 잘 자려고 햇볕이 있는 시간에는 뒷마당에서 아이들과  놀았다.     닷새째 되던 날 바이러스가 지친 듯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역시 잠과 음식, 햇볕은 보약이면서 치료제이다. 심한 통증과 불안감을 이기려고 TV만 틀어놓고 끙끙대던 딸 내외도 내가 먼저 회복되어 가는 걸 보면서 뒷마당으로 따라 나왔다. 어쩌면 세 사람 모두 야외운동을 꾸준히 하고 약을 멀리하면서 섭생과 영양제 복용을 잘 한 덕분에 짧은 시간에 이길 수 있었던 것 같다.   먹구름이 하늘을 덮고 소나기를 한 차례  퍼붓고 지나간 느낌이다. 머릿속은 빈 듯이 멍하지만 드디어 항체가 생겼다는 승전보를 받고 나니 몸과 마음은 청명한 하늘을 나는 듯하다. 켈리 조·LA독자 마당 코로나 극복기 코로나 극복기 일반 기침약과 큰딸 내외

2022-02-22

[하루를 열며] 간극(間隙)

 학교가 파할 시간, 아이들을 데리러 온 학부모들이 학교 앞에 가득하다.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데리고 나와 자기 아이를 부르는 학부모의 손짓을 따라 아이들을 내어주고 있다. 매일 인사를 주고받던 할머니는 보이지 않고 오늘은 손자를 데리러 할아버지가 오신 것 같다. 집까지 걸어서 4~5분밖에 안 되는 거리를 후줄근한 할아버지라도 와야 집에 보내주는 미국 초등학교.   놀이터 앞에서 아이는 놀고 가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치지만 할아버지는 한 마디로 ‘노’라고 자른다. 어제는 할머니가 데리러 와서 놀이터에서 잠시 놀 수 있었는데 할아버지에겐 통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평생 학교 선생님으로 은퇴하신 노인은 영 융통성이 없어 아이는 할아버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을 아이 할머니에게서 들었다.   할아버지 내외는 일하는 아들 내외를 도우러 미국에 오신지 얼마 안 되었다. 집이 바로 학교 옆인데 학부모가 꼭 와야 아이가 집에 갈 수 있는…. 할아버지의 심기도 편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아이의 걸음이 무겁게 칙칙 끌린다. “신발 끌지 마라!” “왜요?” “신발 닳는다!” 나도 내 손자를 데리고 뒤따르며 들은 그들의 대화에 귀가 번쩍 열린다.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 ‘신발 닳는다’ 반갑기까지 하다. 나는 풋! 하고 터지려던 웃음을 얼른 숨겼다. 곧이어, 귓가에 내 어머니의 고함이 따라나섰다.     ‘넌 발모가지에 칼이 달렸냐? 운동화 사준지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찢어먹냐?’ 어머니의 역정이 있을 때마다 나는 진짜 내 발이 이상하게 생긴 것인지 심각하게 내 발을 살펴보곤 했다. 어제 학교 파하고 아이들과 고무줄놀이를 많이 하여 망가졌나보다 하는 가책도 들어 뜨끔하기도 했다.     한 시간여, 야산 길을 걸어 통학하던 초등학생 어린 내 발. 밭 사이 풀벌레들과 함께 뛰던 구부러진 산길. 띄엄띄엄 작은 마을 여럿 지나, 장마에 패인 고갯마루 올라서면 그제야 보이던 녹번 삼거리 저 아래 초등학교. 하굣길에는 느티나무 아래에서 아이들과 놀기도 하고 내 키만 하게 자라던 고추밭, 깨밭을 지나 집으로 돌아가던 길. 온갖 풀꽃들이 돋아나던 그 좁은 길이 아련히 떠오른다. 집에 오면 검정 고무신으로 갈아신는데도 내 운동화는 앞 밑창이 빨리 헐떡거리곤 했다.   나는 저 할아버지와 거의 동시대를 지나온 사람으로 충분히 할아버지가 이해된다. 그러나 그의 어린 손자는 어찌 알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 지금이 아무리 풍요롭다 해도 당신의 궁핍하던 시절을 여전히 쉽게 지우지 못하는 노인의 눈에는 아까운 것을 모르는 지금의 아이들이 못마땅하리라.     남은 음식을 주저 없이 쓰레기통에 버리는 내 아이들을 보면서 나도 저 할아버지 같은 마음이었다. 아까운 마음에 나도 여러 번 잔소리도 해봤지만 여기서 태어나서 미국문화 속에 자란 아이들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먹는 음식 접시에 다른 이의 수저가 닿는 것을 금기시하는 것이 이곳의 식사 예절이란다. 큰 그릇에 비빈 밥을 둘러앉아 숟가락 부딪히며 먹던 그때가 따뜻했고 그리워지는 것은 이제 배부른 까닭일 것이다.   땅 밟을 일 거의 없고, 걸어 다닐 일 별로 없는 요즘 세상에 신발 닳을 걱정하는 할아버지…, 꼰대 같은 할아버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아이….   그 멀고 긴 간극이 내 눈에는 훤히 다 보이던 날이었다. 이경애 / 수필가하루를 열며 간극 할아버지 내외 아래 초등학교 평생 학교

2022-02-16

[살며 생각하며] 브로큰 하트(Broken Heart)

 손녀가 비행기를 타 보지 못했다. 삼 년 동안 계속되는 팬데믹 탓이기도 하다. 하늘에서 소리가 나면 올려다보면서, ‘비행기 타고 싶어’ 중얼거린다. 모든 할머니가 가지는 보편적인 감정, 내 강아지, 비행기 태워 줘야지가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연말에 아들과 며느리에게 플로리다 여행을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아들과 며느리는 신이 나서 일월로 예약을 했다. 연말 그즈음의 일요일 밤이다. 자려고 하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지금 좀 와 줄 수 있어요? 줄리 데리고 이머전시 가야 해요. 애들은 자고 있어요.”   부랴부랴 아들네로 달려갔다. 우리 부부는 거실에 앉아서 침통하게 집을 지키고 있다. 작은 애가 한밤중에 깨서 울자, 남편이 끼고 다시 재웠다. 새벽녘에 혼이 달아난 듯한 아들 내외가 병원에서 돌아왔다. 수술은 한 시간 예정이었지만, 막상 열고 보니, 새끼 발가락뼈가 조각이 나 있었다고 한다. 며느리는 다리를 하늘로 벋치고 누워 있다. 염증이 생기면 안 되므로 절대 움직이면 안 된다. 고통이 심해서 강력 진통제를 시간이 되기도 전에 먹는다. 보험회사는 약물 중독으로 사망한 케이스가 많다고 약을 더 주려 하지 않는다. 며느리는 몇 번을 전화해서 약을 받아내고야 만다. 아들은 옆에 붙어서 24시간 와이프 시중을 든다.   아이들이 갑자기 어디서 굶다가 온 애들처럼 밥을 찾는다. 밥 안 먹고 뺀질거리던 둘째 아이였다. 숟가락에 올린 밥을 반만 삼키고 밀어내던 아이와, 꽉 다문 이빨 사이로 나머지 반을 밀어 넣으려는 나와, 치열한 신경전을 얼마나 벌였는지 모른다. 쫓아다니며 보살피던 엄마가 기능을 잃어버리니, 제 깐에도 위협을 느끼는 모양이다.     큰 애는 효녀 심청이로 탈바꿈했다. 조그만 것이 엄마 옆에 붙어서 물도 떠 오고, 수건도 갖다 주고, 화장품도 찾아온다는 것이다. 작은 애는 우리 집에 보내도 큰 애는 엄마 옆에 두는 날이 늘었다. 어느 날, 학교에 픽업을 하러 가니, 큰 애의 손에 그림이 들려 있었다. 엄마의 붕대 감은 다리를 거인의 다리처럼 그려서, 자신이 좋아하는 색색의 무지개를 입혀 놓았다. 엄마 얼굴 옆에는 하트가 있었다. 그런데 검은색 하트였다… 지그재그 비뚤 선이 가운데 들어간 갈라진 하트였다. 그야말로 브로큰 하트, 엄마의 사랑이 부러진 것처럼 보였다. 꼼짝 못 하는 엄마에게서 저런 감정을 느끼나 보다. 올랜도 여행은 당연히 취소되었다. 괜히 애들을 부추겨서 저런 일이 일어났나 하는 반성을 하기도 했다.     ‘아니 젊은 애가 부엌 층계 한 칸을 건너뛰었다고 뼈가 부러지냐고?’ 며느리가 고비를 넘기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평소 우유와 치즈를 입에 대지 않는 며느리는 그날로 의사가 처방한 칼슘을 먹기 시작했다. 아들의 얼굴은 퉁퉁 붓다 못해서 피부가 뒤집어진 듯했다. 쓰레기장 같은 집 청소에, 그로서리 쇼핑에, 애들 학교 보내고, 빨래에… 거기다가 줄리가 자신을 메이드처럼 연신 불러 댄다고 구시렁거린다. 친정이나 시집에 좀 가 있으라고 했더니, 대번에 ‘노오’ 라고 하더란다. 남편이 더 편한 모양이다.     합체가 된 네 식구였다. 귀한 며느리가 삐꺽하니 온 가족이 흔들린다. 며느리를 잘 모셔야 한다.     “내일 점심에 스시 먹고 싶어? 사서 갈까?”   “네 어머니, 좋아요.”     평소에 핸드폰을 잘 보지 않던 아이에게서 득달같이 답이 온다. 김미연 / 수필가살며 생각하며 브로큰 heart 브로큰 하트 엄마 얼굴 아들 내외

2022-02-07

[독자 마당] 어머니 생각

산 안개가 뽀얗게 피어 있는 이른 아침 아들 내외와 같이 모처럼의 산행에 나섰다. 라 투나산 야트막한 봉우리에 올라서서 걸어왔던 길과 건너편 골짜기를 차례로 둘러본다. 갑자기 50년 전에 열차사고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모습이 안개 속에 아련하게 떠오른다.   나는 아들 내외에게 먼저 올라가라며 3시간 후에 이곳에서 다시 만나자고 했다. 나의 제안에 아들 내외는 앞질러 사라졌다.     나는 사랑스러운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아내는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깜짝 놀라는 표정이다. 우리는 바위 끝에 나란히 앉았다.   내가 초등학교 오학년 때인가 학교에서 과외 수업을 마치고 저녁 늦게 집에 오는 날이었다. 사방에 인가라곤 없는 산골 길에서 좁은 길을 찾느라 엎드려서 손으로 더듬더듬 하다가 도랑 가시덤불 속으로 굴러 떨어졌다.     나오지를 못해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내 이름을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니는 어두운 밤 산골 길을 걸어 올 아들의 귀가를 염려해서 마중 나오신 것이다. 무서운 산짐승과도 여러 번 스쳤다고 하는데 그때마다 내 이름을 목청껏 몇 번이고 부르셨다고 한다.     칠흑 같은 어두움 속에서도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면 힘이 났다. 80여년의 긴 세월이 흘러갔지만 아직까지도 그때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내가 혼잣말로 자꾸만 어머니를 부르자, 옆에 앉아있던 아내는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는 끌듯이 손을 잡아 일으키며 등산을 재촉한다.   어머니의 깊은 자식 사랑은 이 세상 어느 것으로 끊을 수 없는 천륜이라고 한다. 산수(80세)를 훌쩍 넘긴 이 아들의 마음 한복판에 어머니는 아직도 살아 계신다. 지금도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몹씨 저려 오는 것을 느끼곤 한다. 이상두·라크레센타독자 마당 어머니 생각 어머니 생각 그때 어머니 아들 내외

2021-12-03

[삶의 뜨락에서] 외로움

추모식에 다녀왔습니다. 저보다는 훨씬 선배이고 조신하셔서 그분 앞에선 늘 조심스러웠습니다. 저는 몇 분 나이가 비슷한 친구들과 함께 앉아 이런저런 환담으로 깔깔대며 누가 흉을 보든 말든 개의치 않고 조잘대는 배짱 좋은 한 무리의 ‘갱’들로 불렸습니다. 허나, 우리와는 아주 다른 선배님께는 어려워서 그저 인사만 깍듯이 하곤 했습니다. 이 형님께선 그토록 정이 두터웠다던 남편을 먼저 떠나 보냈다 합니다. 이곳 시니어 센터에는 초창기부터 시작하셨고 내외분께선 춤을 가장 예쁘고 멋있게 추셨던 인기 최고의 부부셨다고도 합니다.     추모식에는 조촐한 가족, 두 아들 내외와 손자 손녀들과 형제분이 있으셨습니다. 추모객이 많았습니다. 단 위에는 하얀 단지에 유해가 단정하게 놓여 있었고 분위기는 제법 화기애애했습니다. 자식이 어머니를 보내드리는 한국식 장례 분위기와는 어딘가 다르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기억에 이렇게 남게 되었나 봅니다. 시신 앞에 가서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자리에 돌아와 앉아 있는 동안 저의 이상한 버릇이 또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그토록 다정하셨다는 선배님께선 분명 남편이 돌아가신 후 짝을 잃은 외기러기로 지내시기가 무척 힘이 드셨던가? 확실한 노환도 아니고 단지 외로움 속에 치매증세가 그렇게 빨리 악화하셨다는 점에 오늘 제 마음이 쓰였습니다.     사람이란 근본이 외로운 존재라고 곱씹곤 하지요! 그러나 노인들의 외로움이란 늙어 보지 않고서는 그 고통을 느낄 수가 없겠지요? 저의 생각은 불현듯, 아, 이 형님은 아들만 두셨던가? 요즘 마구 돌아다니는 우스갯말에 딸자식이 있으면 신나게 여행 다니다가 길에서 죽고, 아들자식 경우는 부엌에서 일만 하다 죽는다는 악담 아닌 우스갯말들이 떠돌아다니는 이 시대에 그보다도 더 무서운 외로움을 달래기 힘들어 더 빨리 의기소침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딸이고 아들이고는 내 마음대로가 아니지 않습니까? 새끼를 낳아 죽을 힘 다해 키웠고 때가 되면 날려 보낼 줄도 알았고 내리사랑도 배웁니다만 어미들의 깊은 사랑의 미련이 단호하지 못한 우리 엄마들입니다!   나이가 들면 자신의 삶을 스스로가 책임지고 끝까지 끌고 가야 함이 그 무서운 외로움을 이겨내는 지혜요 길이였던가?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요즘 사회에 돌고 있는 ‘삶의 질(Quality of Life)’ 말입니다. 노년에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삶의 질을 생각하며 우리는 살고 있는지요? 가장 무서운 것이 외로움을 이겨내야 건강을 유지하는 첫 번째 수단이라 하니 즐거운 웃음 그 분위기가 가장 으뜸가는 위로인 지금의 우리인 듯합니다. 가끔 우스갯소리를 하면 환하게 웃으시던 선배님 모습을 기억합니다. 두 아들로부터 어머니에 대한 옛이야기를 들으며 또 놀랐습니다. 그렇게 조신하신 모습 뒤에 미니스커트의 초창기 여성이셨고, 젊은 시절 빨간 자동차를 선호하며 신나게 달리셨고, 삶에 열정이 대단한 직장인이셨다는 최첨단 모던 여성을 상상하며 사람을 단면만으로 판단할 일이 아니었다고 느꼈습니다.     말없이 남편을 그리워하며 그 외로움을 홀로 달래셨던 것 같은 모습을 떠올리니 몹시 서글펐습니다. 앞뒤로 우리도 언제고는 이별을 맞겠지요? 먹을 것이 풍부하고, 의학이 최고로 발달한 현대를 잘 이용하고 익혀간다면 우리 노년의 삶이 더욱 풍요로워져서 저 하얗게 정장을 하고 살금살금 따라오는 외로움이라는 자를 마주하며 같이 놀아주든지 아니면 이겨낼 지혜를 열심히 익혀야겠다는 단호한 자만심이 스멀거리는 나 자신을 자제했습니다. 센터에서 잘 놀 줄도 알고, 총명하고, 정의롭다고 인기를 끌었던 우리 한국인 몇 명 갱들의 주책이 과연 우리 삶의 질이었던가? 둘러앉아 큰형님의 명복을 빌며 선배님의 경쾌한 웃음만을 기억하자며 가신 분의 마지막 삶을 더듬어보는 환담을 하였습니다. 남순자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외로움 아들 내외 선배님 모습 한국식 장례

2021-10-27

복원 끝낸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내부 들어가보니

113년 전 일제에 외교권을 빼앗기면서 역할이 멈춘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이 다시 살아났다. 워싱턴DC 13번가 1500번지 건물 복원공사를 마친 문화재청은 22일 오전 개관식을 했다. 오후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방문했다. 대한제국공사관 1층 좌측 접견실에는 병풍과 소파, 태극문양의 쿠션, 탁자가 보인다. 탁자 위 왼쪽에는 민영익 전권대신의 독사진이 있다. 안휘준 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은 “한국과 미국의 공식적인 외교관계는 1882년 5월 22일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면서 시작됐다”며 “체결 이듬해인 1883년 5월 미국은 주조선특명전권공사로 루셔스 푸트를 파견했지만, 조선은 청나라의 내정간섭과 경제적 사정으로 미국에 상주공사를 파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신 고종은 1883년 7월 전권대신 민영익과 부대신 홍영식 등 11명의 보빙사를 미국 공사 주재에 대한 답례의 형식으로 파견했다. 이후 고종은 청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자주권 행사의 일환으로 1887년 8월 18일 협판내무사 박정양을 주미전권공사로 임명했다. 하지만, 청은 조선이 원래 자국의 속국이라고 주장하면서 박정양 일행의 파견을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그러나, 고종의 강력한 파견 의지와 미국 정부의 반박 등을 고려해 같은해 11월 박정양 공사가 임지에서 ‘영약삼단’을 응하는 조건으로 허락했다. ‘영약삼단’이란 행사장에서 대한제국 공사는 청나라 공사 밑에 자리를 잡아야 하고, 중대사건이 있을 때 청나라 공사와 미리 협의해야 하는 조건이다. 안 전 이사장은 “초대 주미공사관 파견 인원은 전권공사 박정양을 비롯해 참찬관 이완용, 서기관 이하영, 일등서기관 이상재, 번역관 이채연, 참찬관 미국인 호러스 알렌 등 총 11명이었다”며 “주미공사 일행은 1887년 11월 서울을 출발해 60여 일이 지난 1888년 1월 9일에 워싱턴DC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도착 뒤 일행은 청나라가 제시한 ‘영약삼단’을 어기고, 클리블랜드 미국 제22대 대통령에게 국서를 봉정하고, 공사관 개설과 함께 자주독립국임을 상징하는 태극기를 옥상에 게양했다. 탁자 위 오른쪽 끝 독사진이 박정양 초대공사의 모습이다. 박정양은 미국에서 재임하면서 활동 사항 등을 상세하게 기록한 ‘미행일기’를 남겼다. 대한제국공사관 1층 우측에는 식당이 있다. 공사관들이 외국 관료들에게 식사대접을 하며 이야기를 나눴던 장소다. 한종수 박사는 “1893년 전후 이채연 공사의 부인 성주 배씨가 이 자리에서 클리블랜드 대통령의 영부인과 교류했다”며 “교회도 함께 다니며 교제를 나누는 등 민간외교를 펼쳤다”고 말했다. 2층으로 올라가면 공사 부부의 침실이 있다. 당시 유행했던 벽지가 무엇인지 자료를 조사해 복원했다. 옆방은 공사 집무실이다. 조선시대 갓도 복원해놨다. 한 박사는 “당시 공사들이 관복을 입고 다니면 어린 아이들이 서커스단이 온줄 알고 따라다녔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다른방에는 공사관원들이 일할 때 사용한 타자기와 붓이 있다. 한 박사는 “조선에 보낼 때는 먹과 붓을 사용하고, 미국에 서신을 보낼 때는 타자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조선과 미국을 이어주던 대한제국공사관은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잃으면서 폐쇄됐다. 1910년 경술국치 3일 뒤 주미 일본공사가 5달러에 건물을 산 뒤 미국인 호레이스 풀턴에게 10달러에 팔아버렸다. 이후 100여 년이 지난 2012년, 대한민국 문화재청이 350만 달러를 주고 매입했고, 5년 넘는 기간 복원공사를 거쳐 22일 공개하게 됐다. 3층에 가면 대한제국공사관이 복원되기까지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관람을 원하는 한인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사이에 방문하면 된다. 매주 월요일은 휴무다. 홈페이지(www.oldkoreanlegation.org)에서 예약할 수 있다. 한 박사는 “해설사가 필요한 사람들은 특정시간대 예약을 해야하고, 나머지는 자유관람할 수 있다”며 “주차공간이 없기 때문에 2시간 거리주차를 하거나 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오수동 미국사무소장은 “우리 한국 역사와 한미관계에서 중요한 공사관을 오랜 노력 끝에 동포들의 도움으로 개관하게 됐다”며 “워싱턴의 명소가 되도록 잘 운영하겠다. 각층을 잘 둘러보시면 대한제국의 자주독립 의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소: 1500, 13th ST NW, Washington D.C. 20005 ▷문의: 202-844-3330(www.oldkoreanlegation.org) 심재훈 기자 [email protected]

2018-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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