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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열며] 간극(間隙)

 학교가 파할 시간, 아이들을 데리러 온 학부모들이 학교 앞에 가득하다.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데리고 나와 자기 아이를 부르는 학부모의 손짓을 따라 아이들을 내어주고 있다. 매일 인사를 주고받던 할머니는 보이지 않고 오늘은 손자를 데리러 할아버지가 오신 것 같다. 집까지 걸어서 4~5분밖에 안 되는 거리를 후줄근한 할아버지라도 와야 집에 보내주는 미국 초등학교.
 
놀이터 앞에서 아이는 놀고 가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치지만 할아버지는 한 마디로 ‘노’라고 자른다. 어제는 할머니가 데리러 와서 놀이터에서 잠시 놀 수 있었는데 할아버지에겐 통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평생 학교 선생님으로 은퇴하신 노인은 영 융통성이 없어 아이는 할아버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을 아이 할머니에게서 들었다.
 
할아버지 내외는 일하는 아들 내외를 도우러 미국에 오신지 얼마 안 되었다. 집이 바로 학교 옆인데 학부모가 꼭 와야 아이가 집에 갈 수 있는…. 할아버지의 심기도 편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아이의 걸음이 무겁게 칙칙 끌린다. “신발 끌지 마라!” “왜요?” “신발 닳는다!” 나도 내 손자를 데리고 뒤따르며 들은 그들의 대화에 귀가 번쩍 열린다.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 ‘신발 닳는다’ 반갑기까지 하다. 나는 풋! 하고 터지려던 웃음을 얼른 숨겼다. 곧이어, 귓가에 내 어머니의 고함이 따라나섰다.  
 
‘넌 발모가지에 칼이 달렸냐? 운동화 사준지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찢어먹냐?’ 어머니의 역정이 있을 때마다 나는 진짜 내 발이 이상하게 생긴 것인지 심각하게 내 발을 살펴보곤 했다. 어제 학교 파하고 아이들과 고무줄놀이를 많이 하여 망가졌나보다 하는 가책도 들어 뜨끔하기도 했다.  
 


한 시간여, 야산 길을 걸어 통학하던 초등학생 어린 내 발. 밭 사이 풀벌레들과 함께 뛰던 구부러진 산길. 띄엄띄엄 작은 마을 여럿 지나, 장마에 패인 고갯마루 올라서면 그제야 보이던 녹번 삼거리 저 아래 초등학교. 하굣길에는 느티나무 아래에서 아이들과 놀기도 하고 내 키만 하게 자라던 고추밭, 깨밭을 지나 집으로 돌아가던 길. 온갖 풀꽃들이 돋아나던 그 좁은 길이 아련히 떠오른다. 집에 오면 검정 고무신으로 갈아신는데도 내 운동화는 앞 밑창이 빨리 헐떡거리곤 했다.
 
나는 저 할아버지와 거의 동시대를 지나온 사람으로 충분히 할아버지가 이해된다. 그러나 그의 어린 손자는 어찌 알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 지금이 아무리 풍요롭다 해도 당신의 궁핍하던 시절을 여전히 쉽게 지우지 못하는 노인의 눈에는 아까운 것을 모르는 지금의 아이들이 못마땅하리라.  
 
남은 음식을 주저 없이 쓰레기통에 버리는 내 아이들을 보면서 나도 저 할아버지 같은 마음이었다. 아까운 마음에 나도 여러 번 잔소리도 해봤지만 여기서 태어나서 미국문화 속에 자란 아이들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먹는 음식 접시에 다른 이의 수저가 닿는 것을 금기시하는 것이 이곳의 식사 예절이란다. 큰 그릇에 비빈 밥을 둘러앉아 숟가락 부딪히며 먹던 그때가 따뜻했고 그리워지는 것은 이제 배부른 까닭일 것이다.
 
땅 밟을 일 거의 없고, 걸어 다닐 일 별로 없는 요즘 세상에 신발 닳을 걱정하는 할아버지…, 꼰대 같은 할아버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아이….
 
그 멀고 긴 간극이 내 눈에는 훤히 다 보이던 날이었다.

이경애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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