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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한 세금/회계] 은퇴 계획

사회보장 은퇴연금(social security retirement benefits, 이하 소셜연금). 그 고민은 다들 비슷하다. 어떻게 하면 더 받을까? 어떻게 하면 빨리 받으면서도, 많이 받을 수 있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젊어서는 세금신고 많이 하고, 늙어서는 오래 살면 된다. 소셜연금은 어차피 돈 놓고 돈 먹기. 만기에 적금을 많이 타려면, 오랫동안, 그리고 매달 많이 부어야 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더욱이 소셜연금은 죽을 때까지 계속 받을 수 있으니, 남들보다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결국 이기는 것이다.   설명이 너무 직관적인가? 그렇다면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우리가 W-2를 1년에 몇장씩 받나? 한 장씩 받는다. 자영업(schedule c)이나 다른 직장이 있으면 합쳐서, 결국 1년에 1장으로 생각하면 된다. 대학 졸업해서 은퇴할 때가 되면, 40장 정도가 모였을 것이다. 그중에서 낮은 것들은 버리고, 소셜연금은 높은 것 35장만 갖고 계산한다.   이민을 늦게 와서 W-2를 35장 전부 모으지 못한 사람들은 그 빈 연도가 영(no income)으로 계산된다. 그래서 우리같이 늦게 시작한 사람들이 불리하다. 몇 개의 W-2를 갖고 있든지 상관없이 나누는 숫자는 35로 같기 때문이다. 물론 돈의 가치가 매년 달라지므로 그것을 적당히 환산해주는 공식도 있다.   어쨌든 그렇게 평생 모은 W-2 35장을 합쳐서 35로 나누면, 어떤 숫자가 나올까? 내가 평생 받은 월급의 1년 평균 연봉이 나온다. 그것을 12개월로 나누면 한 달 평균 월급. 그것이 내가 앞으로 죽을 때까지 매달 받게 될 소셜연금의 기준금액이 된다. 이것을 우리는 AIME(average indexed monthly earnings)라고 부른다.   이 금액을 전부 받는 것은 아니고, 여기서 몇 %가 감액된다. 그것을 만기연령에 받는 PIA(primary insurance amount)라고 부르는데, 고소득자들이 낸 연금의 일부를 떼어서 저소득자들의 연금에 보태주는 방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셜연금은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아이디어지만, 마지막에는 서로 돕고 살자는 사회주의적인 개념이 더해지는 셈이다.   만기은퇴연령(FRA, full retirement age, 수급개시연령)을 기준으로 조기수령(early)과 지연수령(delay) 여부가 결정된다. 1943년부터 1954년생까지는 만기은퇴연령이 66세. 1960년 또는 그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67세가 만기은퇴연령이다.  이 만기 나이(100% PIA)가 되어야 약속된 연금의 100%를 받을 수 있다. 미리 받으면 대충 30%를 덜 받고, 미뤄서 받으면 대충 30%를 더 받는다. 그렇게 한번 결정된 금액은 기본적으로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는다.    이제 대충 감을 잡았을 것이다. 각자의 재정 및 건강상태, 나이와 메디케이드 등 여러 변수가 있지만, 내가 지금까지 수십 권의 책, 수십 개의 세미나, 그리고 수백 개의 유튜브를 봤어도, 결국 소셜연금 많이 받는 방법은 간단하다. 젊어서는 세금신고 많이 하고, 늙어서는 최대한 늦게 받아라. 그리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라. 이것이 소셜연금을 제대로 많이 받는 가장 확실한 방법 세 개다. 이것 말고 더 확실한 방법이 있을까? 없다.   문주한 한국 공인 회계사 / 미국 공인 회계사, 세무사   www.cpamoon.com문주한 세금/회계 연금 은퇴 은퇴 계획 사회보장 은퇴 건강상태 나이 소셜연금 사회보장연금

2024-03-01

[이 아침에] 골든 걸스가 있는 한

안 해본 도전은 실패고 망설인 기회는 낭비라고 해서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모리 슈워츠 교수처럼 춤을 춰보자 결정했다. 궁리 끝에 YMCA에 있는 카디오 댄스 강좌에 등록했다. 소개란에, 음악에 맞춘 워크아웃이고 칼로리 소모가 큰 운동이라 해서 귀가 솔깃했다.   한때는 모 나이트클럽 출근부에 도장을 찍은 적도 있었기에 춤추는 것이 가볍게 생각됐다. 신명 나는 것도 잠시, 선생과 주위 사람을 따라서 스텝도 밟고 포지션을 잡아봤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요가를 십 년 정도 했지만, 춤추는 근육은 달랐다. TV나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몸동작이 한 두 박자씩 늦는 사람이 이해됐다. 리듬과 박자에 맞춰 몸을 움직이기가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마치 막대기 하나가 이리저리 흔들대는 것 같았다. 라인댄스는 겨우 선생님만 바라보며 방향을 잡았다. 그에 비하면 GILTI (Global Intangible Low-Taxed Income) 계산법은 오히려 간단했다.   내 나이에도 몸을 율동적으로 돌리기가 이렇게 힘이 드는데, 나보다 더 나이가 많은 평균 나이 59.5세, (인순이 (66세), 박미경 (58세), 신효범 (57세), 이은미 (57세)에 데뷔한 걸 그룹이 있다.     골든 걸스. 이 그룹은 안무를 뺀 모든 부분에서 인정받았다. 10대와 20대들의 현란한 안무와 비교해서 내린 판단이리라. 하지만 이들이 이루어내는 춤사위는 나보다 훨씬 낫다.   이게 된다고? 되물으며 가수 경력 합계 159년의 네 디바가 골든 걸스로 황금기를 맞고 있다. 데뷔곡인 ‘원 라스트 타임’으로 이들은 전에 각자 가수로 데뷔하면서도 받지 못했던 생애 단 한 번뿐 이라는 신인상을 받았다. 작년에 있었던 KBS 연예 대상 쇼 버라이어티 부문에서.     그들을 보면 꿈꿔왔던 일에 도전하는 것에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다. 신인상을 받으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다들 힘내자”고 소감을 말했다. ‘이 나이에’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김기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에 따르면 기대수명을 100세로 설정 후, 나이를 시간으로 표현해 보면, 열 살은 새벽 2시 24분, 스무 살은 오전 4시 48분, 서른은 오전 7시 12분, 마흔은 오전 9시 36분, 쉰은 오후 12시에 해당한다. 골든 걸스는 막 점심 먹은 후다. 아직도 해가 길다.     미장원에서 계속 긴 머리를 유지하고 싶다니까 이젠 이런 스타일은 어울리지 않고 중년의 나이에 맞는 짧은 단발이나 커트 머리를 하라고 권했다. 골든 걸스가 걸 그룹으로 있는 한, 황신혜 언니가 미니스커트를 입는 한, 머리를 기르련다. 이리나 / 수필가이 아침에 걸스 나이트클럽 출근부 골든 걸스 평균 나이

2024-02-11

[이 아침에] 열둘 보다 가벼운 하나

가벼워야 한다. 떠나보낸 열둘, 12월의 숫자에 비하면 해가 바뀌며 찾아온 2024년의 시작인 1월은 기필코 가벼워서 내 가슴을 짓누르면 안 된다. 그러기를 숨죽여 기대하며 새해를 열었다. 얼마나 가슴 떨며 기대했었는데, 역시나 내 소망 만으론 쉽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까칠한 인간관계의 오프닝(openning) 이다.    인간으로 인간들과 어우러지며 살아야 하는 나날들이, 매끈하게 흐르지 못하는 시간의 연속이다. 생각하는 것, 표현하는 말들의 향연에 자꾸 뾰족하게 날이 선 채로 오고 간다. 함께 어울리는 무리에 따라 결과가 다르다는 공식 같은 것에 표적을 맞춘다. 듣고 흘려버려야 하는 경우가 많으면 많을수록 마음은 곱게 유지될 수 있다.    내가 아닌 다른 개체를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에, 상대방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빠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내 느낌이 그럴진대 상대방 역시 그럴 것이다. 내가 원하는 토픽에 내가 원하는 억양으로 내가 마음 따스하게 느낄 수 있는 단어들을 사용하며 내가 듣고 싶은 예쁜 말들만 서로 주고받고 싶다. 아니면 얼굴이 금방 일그러진다. 눈매가 매섭게 변한다. 얼굴을 돌린다. 시선을 돌려 지나가는 강아지를 불러대며 인사를 건네본다. 금방 순화되는 감성으로 행복한 톤이 되어 사랑이 묻어나는 고운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무엇이 다르기에 사람과의 관계는 어렵고 강아지와의 감정 교류는 쉬운 것일까? 조건이 있고 없고의 차이다. 돌아올 것을 기대하지 않고 예쁘다 말하고 사랑 한 스푼 넉넉히 준다. 그러나 사람들과 대면하는 시간이 많다. 돌아올 메아리가 항상 신경 쓰인다. 신경 안 쓰고 간단하게 듣고 넘기는 대화를 하고 있음에도 때론 날이 선 반응이 즉각 돌아오기도 한다. 말하면서 사는 삶이 새삼 버겁단 생각이 든다.    소위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경어가 빠지면 내 기분은 재빨리 움츠러든다. 어렵사리 반말로 대응하는 이유를 묻는다. 대뜸 나이 얘기를 꺼낸다. 결국엔 민증을 까자는 제안을 받게 되고 결과는 대부분 내가 숫자가 높다. 머쓱해 하며 뭔 나이가 그리 많냐고 투덜댄다. 보이긴 그리 안 보여서 아랜 줄 알았다고 설명까지 이어지면 나름대로 훈훈하게 가까워진다. 하나 가끔은 민증을 까고 위아래가 확실하게 드러났음에도 인정하기를 꺼리는 이도 있다. 믿기지 않는다나. 기분까지 나쁘다고 농담처럼 던진다. 젊게 봐주는데 슬그머니 지나쳐 볼까. 그렇게 마음 굳히면 애초부터 반말한다고 기분 상하지도 말고 모른 척, 몇 살 어린 입장으로 밀고 나가자. 괜스레 숫자에 예민해서 좋을 건 하나도 없는 상황을 만들지 말자.    새해도 어느새 첫 달을 잃어가고 있다. 매사를 둥글게 둥글게 다듬어 보자. 반말지거리로 내게 접근하는 어린 것들을 곱게 보자. 그냥저냥 섞이면서 다가올 세상을 보내자. 까마득한 옛날 사회 초년생 때부터 어리게 봐 주는 것, 젊게 대해 주는 것에 감사하며 즐겼더라면 지혜로운 인간관계를 쌓았을 텐데, 새로운 해 가볍게 시작하자.  노기제 / 전 통관사이 아침에 나이 얘기 옛날 사회 감정 교류

2024-01-30

[종교와 트렌드] 교회도 '멀티제너레이션' 준비해야

최근에 사회 곳곳에서 새로운 MZ, 알파세대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들로 인해 직장문화도 많이 바뀌고 있고 제품과 서비스를 팔기 위해 많은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교회에서도 MZ교인들에 대해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예전에는 3세대가 한 시대를 살아가는 구조였지만 이제는 초고령화와 평균수명연장으로 인해서 '멀티제너레이션 (Multi-generation)'이 같이 사는 시대가 온 것이다.     최근 출간된 '멀티제너레이션, 대전환의 시작-인구충격과 맞바꿀 새로운 부의 공식(원제 The Perennials)'의 저자 마우로 기옌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는 기존의 '놀이-공부-일-은퇴'의 '순차적 인생 모형'은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세대를 구분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퍼레니얼(perennial)'은 원래 '다년생 식물'을 뜻하는 단어지만, 저자는 이를 '자신이 속한 세대의 생활 방식에 따르지 않고 세대를 뛰어넘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했다. 나이와 세대 구분이 없어지는 '퍼레니얼(perennial)' 시대가 오면서 자신의 가치와 속성을 지닌 개인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한다. 물리적인 나이보다는 어떠한 가치관과 신념, 행동을 하는지에 따라서 규정되어 질 것이다.     퍼레니얼은 나이와 세대에 기반을 둔 기존의 가정을 뒤엎는다는 점에서 생산, 소비, 고용, 투자를 비롯한 경제와 비즈니스의 판도를 근본적으로 바꿀 변화가 올 것이라고 한다.   교회에서도 무조건 나이가 많다고 시니어 또는 실버가 아닌 시대이다. 나이 들어도 꿈과 비전, 열정이 있으면 청년이라고 할 수 있고, 젊어도 꿈과 비전이 없으면 노인일 수도 있다. 이제는 교회에서도 물리적 나이만 가지고 시니어 대접만 하는 게 의미가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다.     멀티 제너레이션 노동력은 실제 산업 현장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BMW는 다섯 세대에 걸친 팀이 더 빠르게 작업하고 더 적은 실수를 저지르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러한 다세대 팀을 실제 작업 환경에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영화 '인턴'에서도 나이든 인턴이 젊은 CEO의 고문역할과 정신적 멘토링을 해주는 장면도 떠오른다. 교회에서도 다양한 나이가 섞인 그룹들이 서로 배울 수 있는 기회이다. 나이든 사람들은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트렌드를 배울 수 있다.   이제는 알파 세대(2013년 이후 출생), Z세대(1995-2012년생), 밀레니얼 세대(1980-1994년생)뿐만 아니라 X세대(1965-1979년생), 베이비붐세대(1946-1964년생), 침묵의 세대(1925-1945년생)까지 공존하는 시대이다.     이제는 최소 6세대 이상이 같이 사는 시대가 됐다. 교회에서도 이제는 3대가 아닌 멀티 제너레이션과 퍼레니얼에 대한 전략이 필요하다.     jay@jnbfoodconsulting.com 이종찬 / J&B 푸드 컨설팅 대표종교와 트렌드 멀티제너레이션 교회 멀티제너레이션 대전환 물리적 나이 멀티 제너레이션

2024-01-22

[잠망경] 꼰대

초등학교 때 ‘김대곤’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별명이 ‘꼰대’였다. 놀리기 좋아하는 또래들이 ‘대곤’을 ‘곤대’라 거꾸로 부르다가 꼰대로 바꿔 불렀다.   꼰대가 어른이나 아버지를 뜻하는 것으로 알았던 나는 왜 그 말이 우스웠는지 잘 몰랐다. 마침 또 대곤이는 어딘지 어른스러운 데가 있는 아이였다. 같은 나이 친구를 꼰대라 불러대며 아버지를 연상하는 게 재미있었겠지.   네이버 사전은 ‘꼰대’를, “은어로 늙은이를 이르는 말”이라 풀이한다. ‘꼰대스럽다’는 형용사를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하여 그것만이 옳다고 주장하며 남을 가르치려 든다는 뜻”이라고 해석한다. 꼰대들은 훈장 기질이 농후한 노인네들이다.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났다고 믿는 사람들.   꼰대는 젊은이를 얕잡아본다. 때때로 깔보는 태도를 취한다. 연장자들이 연소자들을 대할 때 매양 그런 편이다. 당신은 이것을 강자가 약자를 도와주고 싶어하는 보호본능이라는 해석을 내리겠지. 그 대가로 강자는 약자의 존경을 받고 싶다. 어르신네에게서 인생을 배우는 나이 어린놈이 건방지게 굴면 좋지 않다고 꼰대는 믿는다. 굳게, 또는 고집불통으로.   아니다. 꼰대들만 나무랄 수는 없다. 애당초 젊은것들이 노인네들을 업신여기고 걸핏하면 핀잔을 주며 구박하지 않았던가. 자기들의 진로를 꼰대들이 방해한다며 투덜대지 않았던가. 선배가 후배 출셋길을 막는다면서! 하루빨리 은퇴하여 더는 내 앞에서 거치적거리지 말고 어디 다른 데 가서 후배양성이나 했으면 참 좋을 텐데, 하지 않았던가.   이런 묵시적 압박에 대항하려고 늙은이는 꼰대가 되는 수밖에 없다. “내가 젊었을 때는…” 하고 자신의 젊음을 회상하며 젊은이를 대적하는 것이다. 처절한 속마음으로. 당신은 구조조정이라는 행정방침 때문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조기 은퇴를 한 중장년층 늙은이들의 사연도 숱하게 듣지 않았던가.   2019년 7월 21일자 영국 공영방송 BBC 웹사이트에 게재됐던 ‘Kkondae’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는다. 꼰대 이야기다. 기자 이름이 ‘SooZee Kim’. 아무래도 한인 2세 같다. 이런 구절에 공감이 간다. “In Korean, Kkondae loosely translates as ‘condescending older person’…” - “한국어로 꼰대는 대략 ‘거들먹거리는 연장자’로 해석된다…”   어머니 태생이 경상도라서 어릴 적에 경상도 토박이말을 자주 들었다. 갓난아기 내 조카를 귀여워하시면서 어머니는 “아이구, 우리 꼰데기!”라는 간투사를 쓰셨다. 내 귀에 꼰데기는 최상의 애칭이었다. 얼마 전 ‘꼰데기’가 ‘번데기’의 영남 방언임을 알았다. 그리고 ‘꼰대’는 번데기처럼 주름이 많은 늙은이라는 뜻에서 꼰데기라고 불리다가 꼰대가 됐다는 설도 인터넷에서 읽었다.   하나 더 있다. 일제강점기에 프랑스어로 백작을 칭하는 콩테(Comte)의 일본식 발음이 ‘콘테’였고, 이완용 같은 친일파들이 백작 등 작위를 받고 으스대며 자신을 콘테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꼰대의 어원으로 나는 ‘콩테’설보다 ‘꼰데기’설을 신봉할까 하는데. 노인네들은 번데기 같은 주름이 자글자글 생기면서 그들의 몸 또한 꼰데기처럼 작아진다. 심리적으로도 아이가 된다.   사실 노인네들이 사람을 졸졸 쫓아다니며 잘난 척 충고하고 잔소리하는 데는 좀 귀여운 구석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 별명이 꼰대였던 대곤이처럼. 천도복숭아만큼 포동포동하던, 어머니가 그토록 귀여워하시던, 그때 그 시절 내 조카, 꼰데기처럼.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중장년층 늙은이들 은어로 늙은이 나이 친구

2024-01-10

[잠망경] 꼰대

초등학교 때 ‘김대곤’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별명이 ‘꼰대’였다. 놀리기 좋아하는 또래들이 ‘대곤’을 ‘곤대’라 거꾸로 부르다가 꼰대로 바꿔 불렀던 것이다.   꼰대가 어른이나 아버지를 뜻하는 것으로 알았던 나는 왜 그 말이 우스웠는지 잘 몰랐다. 마침 또 대곤이는 어딘지 어른스러운 데가 있는 아이였다. 같은 나이 친구를 꼰대라 불러대며 아버지를 연상하는 게 재미있었겠지.   네이버 사전은 ‘꼰대’를, “은어로 늙은이를 이르는 말”이라 풀이한다. ‘꼰대스럽다’는 형용사를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하여 그것만이 옳다고 주장하며 남을 가르치는 데가 있다”고 해석한다. 꼰대들은 훈장 기질이 농후한 노인네들이다.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잘났다고 믿는 사람들.   꼰대는 젊은이를 얕잡아본다. 때때로 깔보는 태도를 취한다. 연장자들이 연소자들을 대할 때 매양 그런 편이다. 당신은 이것을 강자가 약자를 도와주고 싶어하는 보호본능이라는 해석을 내리겠지. 그 대가로 강자는 약자의 존경을 받고 싶다. 어르신네에게서 인생을 배우는 나이 어린놈이 건방지게 굴면 좋지 않다고 꼰대는 믿는다. 굳게, 또는 고집불통으로.   아니다. 꼰대들만 나무랄 수는 없다. 애당초 젊은것들이 노인네들을 업신여기고 걸핏하면 핀잔을 주며 구박하지 않았던가. 자기들의 진로를 꼰대들이 방해한다며 투덜대지 않았던가. 선배가 후배 출셋길을 막는다면서! 하루바삐 은퇴하여 더 이상 내 앞에서 거치적거리지 말고 어디 다른 데 가서 후배양성이나 했으면 참 좋을 텐데, 하지 않았던가.   이런 묵시적 압박에 대항하려고 늙은이는 꼰대가 되는 수밖에 없다. “내가 젊었을 때는…” 하고 자신의 젊음을 회상하며 젊은이를 대적하는 것이다. 처절한 속마음으로. 당신은 구조조정이라는 행정방침 때문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조기 은퇴를 한 중장년층 늙은이들의 사연도 숱하게 듣지 않았던가.   2019년 7월 21일 자 영국 공영방송 BBC 온라인의 “Kkondae”라는 제목의 글을 읽는다. 꼰대 이야기다. 기자 이름이 ‘SooZee Kim’. 아무래도 한국인 2세 같다. 이런 구절에 공감이 간다. “In Korean, Kkondae loosely translates as ‘condescending older person’…” - “한국어로 꼰대는 대략 ‘거들먹거리는 연장자’로 해석된다…”   어머니 태생이 경상도라서 어릴 적에 경상도 토박이말을 자주 들었다. 갓난아기 내 조카를 귀여워하시면서 어머니는 “아이구, 우리 꼰데기!”라는 간투사를 쓰셨다. 내 귀에 꼰데기는 최상의 애칭이었다. 얼마 전 ‘꼰데기’가 ‘번데기’의 영남 방언임을 알았다. 그리고 ‘꼰대’는 번데기처럼 주름이 많은 늙은이라는 뜻에서 꼰데기라고 불리다가 꼰대가 됐다는 설도 인터넷에서 읽었다.   하나 더 있다. 일제강점기에 프랑스어로 백작을 칭하는 콩테(Comte)의 일본식 발음이 ‘콘테’였고, 이완용 같은 친일파들이 백작 등, 작위를 받고 으스대며 자신을 콘테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꼰대의 어원으로 나는 ‘콩테’설보다 ‘꼰데기’설을 신봉할까 하는데. 노인네들은 번데기 같은 주름이 자글자글 생기면서 그들의 몸 또한 꼰데기처럼 작아진다. 심리적으로도 아이가 된다.   사실 노인네들이 사람을 졸졸 쫓아다니며 잘난 척 충고하고 잔소리하는 데는 좀 귀여운 구석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 별명이 꼰대였던 대곤이처럼. 천도복숭아만큼 포동포동하던, 어머니가 그토록 귀여워하시던, 그때 그 시절 내 조카, 꼰데기처럼. 서량 / 시인·정신과 의사잠망경 중장년층 늙은이들 은어로 늙은이 나이 친구

2024-01-09

[음식과 약] 나이 들수록 상처가 안 낫는 이유

나이 들수록 상처 치유가 느려진다. 전쟁터에서 부상을 입은 나이든 군인은 상처 회복에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1차 세계대전 때부터 기록된 사실이다. 원인은 여러 가지다. 노인의 피부는 더 얇고 탄력을 잃으며 손상되기 쉽다. 나이 들면서 상처 치유에 필요한 케라틴을 생산하는 피부 세포도 힘이 떨어진다.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도 상처 치유를 방해한다. 혈당 관리가 잘 되지 않으면 혈액 순환이 힘들어지고 상처 복구도 더뎌지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단백질과 같은 필수 영양소 섭취가 부족해도 문제가 생긴다. 비타민 C, 비타민 D, 아연과 같은 비타민과 미네랄의 결핍도 상처 치유가 지연되는 원인 중 하나다. 나이 들수록 사용하는 약의 가짓수가 늘어나기 마련이다. 약 복용도 손상 부위 회복을 늦출 수 있다. 상처 치유의 첫 단계는 염증이다. 염증 단계는 상처가 생긴 직후부터 3~4일간 지속한다. 스테로이드·소염진통제와 같이 염증 억제 약을 먹으면 상처 회복이 더뎌질 수 있는 이유이다. 흔히 혈액을 묽게 하는 약으로 불리는 항응고제도 상처 치유를 늦출 수 있다. 하지만 약 때문에 상처가 잘 안 낫는 걸 의심하여 의사와 상의하지 않고 스스로 약 복용을 중단하면 안 된다.   면역 체계가 전보다 늦게 작동하는 것도 치유가 지연되는 원인이다. 상처 부위가 새로운 피부층으로 덮이려면 주변의 피부 세포가 이주해야 한다. 이렇게 피부 세포가 이동하려면 근처 면역 세포의 협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2016년 미국 록펠러대 연구에 따르면 노화로 인해 피부 세포와 면역 세포 간 소통이 제대로 안 될 수 있다. 생후 2개월 된 생쥐(사람으로 치면 20세)와 24개월 된 생쥐(사람 나이 70세)를 비교한 결과, 케라틴 세포가 상처 부위로 이동하는 시간이 나이든 생쥐의 경우 훨씬 긴 것으로 나타났다. 케라틴 세포가 이주하려면 주변 면역 세포에게 도움을 청하는 신호를 보내야 하는데 나이든 생쥐의 케라틴 세포는 그런 신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람이든 피부 세포이든 나이 들수록 소통이 중요한 건 마찬가지인가 보다.   상처가 빨리 낫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비누와 수돗물로 가볍게 상처 부위를 씻어내 주는 게 좋다. 소독제를 과도하게 사용하면 정상세포도 손상시킬 수 있다. 다음 단계로 습윤드레싱을 사용해주면 된다. 과거에는 습기가 상처를 감염시킬까 우려하여 딱지가 생길 때까지 건조하게 두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상처 치유에는 촉촉한 환경이 낫다. 주변의 피부 세포가 이동하여 해당 부위를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된다. 물론 이는 가벼운 상처에 국한된 설명이다. 정재훈 / 약사·푸드라이터음식과 약 나이 상처 상처 치유 상처 부위 상처 회복

2023-12-31

11세 한인 영재소년, 대학입학 허가받아

11세 한인 영재 소년이 대학 입학 허가를 받아 화제다.   앨라배마주 몽고메리 가톨릭 사립학교에서 6학년으로 재학 중인 이지안(미국 이름 저스틴 이)군이 최근 명문 주립인 오번 대학교 몽고메리(AUM)에서 11세 나이에 입학 허가서를 받아 화제가 되고 있다.   이군은 지난 2022년부터 몽고메리 스펠링비(영어철자 말하기) 대회에서 2년 연속 우승을 거머쥐었으며 3학년 때부터 액셀러레이티드 리더(AR) 프로그램에서 현재까지 전국 신기록을 세우는 등 영재성을 발휘했다.     이군의 영재성은 만 1세가 되기 전부터 나타났다.     이군의 엄마 임혜연씨는 “1살이 되기 전부터 책을 읽어주는 것을 좋아했다”며 “매일 하루 책 10권을 읽어줬다. 3세 때부터는 스스로 영어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지안이가 4세 때 영재판정을 받았으며 6세 때는 아이큐 160이 나와 멘사에 가입했다. 현재는 아이큐가 208로 나왔다”고 덧붙였다.     이군은 평소 책 읽는 것을 좋아하며 1학년 때 성취도 평가에서 리딩이 12학년 수준으로 나온 바 있다.       이렇듯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이군은 지난해 오본 대학에서 학장에게 화학 과목을 배운 후 학장의 권유로 입학 지원서를 넣게 됐다.   임씨는 “대학입학 나이 제한으로 인해 두달 간의 심사를 거친 끝에 입학 허가가 났다”며 “4학년 때 최연소 카운티 스펠링비 대회에서 1등을 수상한 후 AUM 화학과 학장이 지안이를 가르쳐 보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이후 일주일에 한 번씩 화학 강의를 들으며 배움의 영역을 넓힐 좋은 기회를 얻었다”고 전했다.     한편, 임씨는 이군을 현재 대학에 입학시킬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좋은 기회지만 현재 학교에서 전교 회장을 맡고 있을 뿐 아니라 모든 과정을 건너뛰고 대학을 보낼 생각은 없다”며 “지안이의 폭넓은 배움의 기회를 위해 내년에 오본 대학에서 과학 영역 2~3과목 정도 수강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배움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이 가득한 이군은 전직 의학 한림원 원장인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의학에 관심이 많다. 이군은 아프리카 등 치료제가 없는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치료제 개발을 연구하고 싶다고 전했다.     한편, 이지안군의 엄마 임혜연씨는 미국에서 대학생 때 유학을 와 현재 대학 입시 컨설턴트로 근무 중이다. 아빠 이동현씨는회계사로 일하고 있다. 임씨는 “남편의 학사 학위를 위해 미국에 왔다가 지안이와 동생 지우를 낳고 미국에서 자리를 잡게 됐다”고 전했다.       이군은 공부뿐만 아니라 운동, 예체능에도 관심이 많다. 그는 10세 때 지역 최연소 태권도 3단을 취득했으며 현재는 농구를 배우고 있다. 또 피아노와 기타, 트럼펫 연주를 즐겨한다.       영재 아이 교육에 대해 임혜연씨는 “부모인 제가 봐도 지안이는 뛰어난 아이지만 교육에 있어서 특별히 한 게 없다”며 “다만 아이에게 강요하지 않고 선택권을 항상 줬다. 지안이가 엄마·아빠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시 최선을 다해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다. 또 아이와 사소한 것부터 대화를 많이 하며 깊은 유대 관계를 쌓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김예진 기자 kim.yejin3@koreadaily.com영재소년 대학입학 대학입학 나이 입학 허가서 대학교 몽고메리

2023-12-25

[수필] 구멍 난 스웨터

노동절에 이어서 한해를 마감하는 두 번째 명절인 추수감사절도 지났다. 오늘따라 엷은 가을 햇빛은 게으름을 피우면서 앞뜰에 머물고 있다. 지금 것도 나무 몸체에 매달려 있는 주황색 감나무 잎들은 햇빛을 받아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더 외롭고 찬란해 보인다. 입동이 지난 지 이미 며칠인데, 아열대 기후인 LA는 겨울답지 않게 따뜻하다. 그래도 흐르는 계절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땅에 떨어질 감 나뭇잎을 보면서, 내가 칠십 대라는 것에 생각이 머물렀다. 이심전심인지 뉴욕에 있는 친구가 문자를 보내왔다.     “월화야, 네 수필 잘 읽고 있어. ‘고물상’도 공감이 가는 얘기야. 우리 나이에 쌓아 둔 것은 많고, 무엇을 정리할지 머리는 굳어져 있고….네 다른 수필 ‘대중이는 어디에 있을까’를 읽으면서 마음이 아팠어. 그런데…우리는 요즘 ‘비목’이라는 노래를 자주 듣고 있어. 아미 스테이지(Army Stage)라는 한국의 국군 악단이 현충원에서 부르는 것을 유튜브에 올린 것이야. 군인들이 부르는 노래라 더 가슴에 울리네. 이 음악을 들으며 6·25 때 전사한 너의 큰오빠 생각을 많이 한단다. 묘지는 있지만, 유골이 없는 무덤, 그리고 묘지도 유골도 없는 우리 아버지. 우리 아버지와 같은 처지에 죽음을 맞은 많은 사람들…. 나도 늙었나 봐. 그리고 열심히 한글 홍보하는 너의 모습이 자랑스럽다. Monica, 파이팅!”   나를 응원하는 짧은 문자에는 그녀의 가슴 깊은 곳에 담겨 있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아쉬움, 안타까움, 억울함이 내재하여 있다. 한국 전쟁 때 3살이었을 그녀는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3000마일 멀리에서, 나는 발신인(發信人)을 위로하고, 또한 응원한다. 그 발신인은 흔들리고 있던 수신인(受信人)에게 구멍 난 스웨터를 풀어서 다시 털옷을 짜고 완성하자고 한다. 내 큰오빠나, 친구의 아버님이 남기고 떠난 구멍들을 우리는 칠십 여 년 동안 열심히 메꾸어 오고 있었다.     친구가 알려 준 데로 아미 스테이지를 유튜브에서 찾아 ‘비목’이라는 노래를 들어 보았다. 이 가곡은 한명희 시인의 시에 장일남 작곡가가 곡을 붙인 것으로 1969년에 발표된 것이라고 한다. 트럼펫을 불고, 노래를 부르는 그들은 젊다 못해 무척 앳되어 보였다. 아마 내 큰오빠가 세상을 마감할 때도 그랬을 것이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양지 녘에/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비목이여/먼 고향 초동친구 두고 온 하늘 가/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흐르는 밤/홀로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비목이여/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파/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나는 울었다.     ‘비목(碑木)’이란 ‘비석(碑石)’의 뒷글자, 돌이라는 뜻의 ‘석(石)’을 나무라는 뜻의 ‘목(木)’자로 바꾼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가족이나 친지가 죽으면, 죽은 자를 땅에 묻어 무덤을 만들고 자리를 표시한다. 이름과 그에 관한 간단한 사항을 돌에 새겨서 무덤 앞에 세워 놓거나, 눞혀 놓는다. 그것이 비석이다. 돌 대신 나무로 망자가 묻힌 곳을 표시한 것이 비목이다.     돌이 아닌 나무를 써야 하는 경우를 생각해 본다. 장례 치를 시간이 없는 급박한 상황인 경우이거나 빈곤한 죽음일 것 같다. 이 가곡을 들으면 전쟁터에서, 죽은 전우를 급히 묻어주어야 하는 상황이 상상된다. 전우를 묻은 구덩이에 서둘러 돌을 쌓고, 비목을 세우고 후퇴했을 것이다. 언젠가 돌아와 제대로 장례를 치러 줄 것을 약속하고 믿으면서, 그 자리를 떠났을 거다. 그렇게 큰 오빠의 전사 장소에 비목이 세워졌을 것이다. 비목을 세웠던 그의 전우들은 살아남았을까.     내 나이 칠십 대. 나는 큰 오빠가 이 세상에서 머물었던 기간의 세배 정도를 살고 있다. ‘칠십 대’라는 말은 여러 의미를 품고 나와 함께 있다. 흐르듯 지나간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라는 추억 가운데 엉키고 설킨, 때로는 웃었고, 때로는 아파하며 울었던 모든 것들이 담겨 있다.     몇 년 전 보았던 드라마가 생각났다. 웹툰을 드라마로 만든 것이었다. 시작 부분에 ‘나이 칠십이 되니 친구의 장례식에선 이젠 더는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이별이 점점 익숙해져 간다’라는 대사가 있었다. 확인차 넷플릭스에 들어가 찾아서 다시 보았다. 은퇴한 우편집배원이 친구들의 별세에 슬퍼하지 않게 된 ‘나이 칠십’에 발레를 배우겠다고 결심하고 겪어 가는 이야기였다. 아들들과 딸, 아내, 발레 스튜디오 교수가 어림없는 일이라고 반대할 뿐만 아니라, 내어놓고 비웃기도 했다. 노인은 장래에 발레리노로서 비상하리라 믿고 있던 23세 예비생에게 수모를 잘 견디면서 발레를 배운다. 그 천재 예비생을 따라 결국 무대 위에서 비상할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친구의 응원은 어깨에 메고 살아온 짐 보따리를 내려놓게 한다. 실오라기가 풀어진 부분과 방심하다 잘못 가위질을 해서 생긴 스웨터의 구멍들을 짜깁기해서 메꾸어 보려 한다. 짜깁기가 안 되면, 스웨터를 풀어서 새 스웨터를 짜면 되겠다.   류 모니카 / 수필가수필 스웨터 구멍 큰오빠 생각 나이 칠십 고향 초동친구

2023-12-07

나이·체류신분 무관 저소득층 혜택…응급메디캘 31일까지 신청해야

이웃케어클리닉(이하 이웃케어)이 ‘응급메디캘’ 신청을 지원하고 나섰다.   내년부터 캘리포니아에 사는 저소득 주민은 나이, 체류신분에 관계없이 자격이 되면 메디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는 가주의 4차 메디캘 수혜대상 확대 조치(Medi-Cal Expansion for Adults, SB 184)에 따른 것으로 2024년 1월 1일부터 26~49세 주민 중 소득이 연방빈곤선의 138% 이하(1인 기준 세금 공제 전 월 1677달러, 2인 가정 월 2269달러, 3인 2860달러, 4인 가정 기준 월 3450달러)면 서류미비자라도 일반 메디캘을 신청할 수 있다.     가주 메디캘 당국에 따르면 자격이 되는 26~49세 서류미비자 가운데 이미 응급메디캘이 있으면 1월 1일부터 일반 메디캘에 자동 가입된다.     응급메디캘이 없으면 12월 31일 전까지 응급메디캘을 신청해야 1월부터 일반 메디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올해 말까지 응급메디캘을 신청하지 않았다면 내년 1월부터 바로 일반 메디캘을 신청하면 된다.     이웃케어 이재희 홍보담당은 “메디캘 신청에서 승인, 카드 발급까지 짧으면 3주에서 6주, 길면 6개월까지 걸리는 만큼, 내년에 일반 메디캘을 신청하면 바로 의료혜택을 받을 수 없다”며 “지금 준비해 응급메디캘을 받아놓으면 정기검진, 각종 검사, 예방접종, 처방약을 포함하는 일반 진료에서부터 치과, 검안과, 정신건강, 침 및 한방 진료 같은 전문의 진료까지 다양한 혜택을 대부분 무료로 받으며 건강을 관리하는 새해를 시작할 수 있다”며 신청을 당부했다.     그러면서 “추방, 영주권 불허 등 체류신분에 따른 불이익을 우려해 자격이 돼도 신청하지 않는 분이 많은데 메디캘은 이를 심사하는 생활보호대상자(퍼블릭 차지) 프로그램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저소득 서류미비자를 위한 LA카운티 의료서비스 프로그램인 ‘마이헬스LA’는 모든 연령의 서류미비자가 메디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데 따라 2024년 1월 31일을 기해 완전히 종료된다.     따라서 응급메디캘은 없고 마이헬스LA에만 가입돼 있는 서류미비자는 올해 안으로 응급메디캘, 내년 초부터는 일반 메디캘을 신청해야 계속해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이번 조치는 가주에만 해당하는 것으로 메디캘 수혜대상(신청자격)을 저소득 서류미비자로 확대해 2016년 18세 이하, 2020년 25세 이하, 2022년 50세 이상에 이어 2024년에는 26~49세까지 포함하며 모든 연령이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웃케어 응급 및 일반 메디캘에 대한 정보와 상담을 제공하고 신청을 돕고 있다.     ▶문의:213-632-5521(문자), enrollment@lakheir.org 이웃케어 환자지원서비스부(PRD) 장수아 기자 jang.suah@koreadaily.com체류신분 저소득층 나이 체류신분 체류신분 무관 저소득 서류미비자

2023-12-05

[김형석의 100년 산책] 키 작아 걱정하던 외손주, ‘달리기 상장’ 받은 사연

9월 초순이었다. 교육정책과 방향 설정을 위한 교육방송 토론회에서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 KAIST 총장, 서울대 총장, 세 분과 자리를 같이하게 되었다. 주제는 ‘교실이 바뀌어야 교육이 성공한다’였다. 다른 세 분은 모두 대학에서 교수가 되었으나 나는 초·중고, 대학교육 모두를 경험했기에 사회자가 먼저 내 견해를 물었다. 나는 ‘사랑이 있는 교육이 세상을 바꾼다’라는 신념에서 초·중고 시절 경험담을 소개했다.   허약했던 손자, 지금은 심장내과 교수   40여 년 전, 미국에 사는 큰딸 집에 갔을 때였다. 외손주가 초등 4학년인데 키도 작고 볼품도 없는 편이었다. 며칠 전 학교에서 운동회가 있었다. 우리 애는 열심히 뛰었지만 언제나 꼴찌였다. 내 딸은 그러지 않아도 어려서부터 열등감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 같아 담임선생과 상의하곤 했다. 운동회가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애가 운동회에서 상장을 받아왔다. ‘누구보다도 제일 열심히 뛰었기 때문에 준 상’이었다. 꼴찌는 했지만, 열성만은 제일이었으니까 준 것이다. 그 애가 지금은 심장내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초등학교 때는 그런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애가 초등학교 때 배운 것은 거짓 없는 정직, 욕하거나 어떤 폭력도 큰 잘못이라는 정신, 부족한 점 때문에 책망받는 것보다 적더라도 잘한 일에 칭찬받는 교육이었다. 학교장은 선생과 학부모가 합심해서 사랑이 있는 교육을 위한 분위기를 조성해 주었다. 큰 학교보다 규모가 작은 학교, 학생 수가 적을수록 사랑이 많은 교육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어려서 가난했고 병약했던 나를 중학교에 가도록 부모와 의사를 설득해 주었던 윤태영 선생의 사랑을 잊지 못하고 있다.   중고등학교에 있을 때였다. 고2를 지도할 당시 반 학생이 자살하려고 극약을 먹었다. 부모가 일찍 발견하여 병원에 입원시키고 위기를 넘겼을 때였다. 학생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병원에 찾아갔다. 아직 의식이 회복되지 못하고 깨어나는 중이었다. 내가 얼굴을 맞대고 “내가 누군지 알겠느냐”고 물었다. 퉁퉁 부어오른 눈을 뜨면서 나를 보는 모습이 “내가 죽었을 텐데, 우리 선생님이 아닌가?” 하는 표정이었다. “내가 왔어.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라고 했더니,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내가 진심으로 책망했다. “너 이게 무슨 짓이냐. 너를 목숨보다 귀하게 사랑하는 부모님이 계시고, 너를 위하고 사랑하는 나와 친구들이 있는데,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죽으려고 했어? 그렇게 네 멋대로 행동하는 법이 어디 있어?”라고. ○○군이 엉엉 울기 시작했다. “너 이제 깨어나면 또 이런 짓을 할 테야…”라고 물었다. 울음을 그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했다. 옆에 있던 어머니가 “선생님과의 약속이니까 믿어도 되겠다”라고 안심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제자의 손을 꼭 잡고 함께 울었다. 그 제자가 서울대 공과대학에서 광산학을 전공하고 미국 유타주 한 회사의 중책을 맡고 있다.   나는 교실에는 ‘사랑이 있는 대화’가 절대적이라고 생각한다. 부모와 선생의 사랑을 믿을 수 있고, 미래를 약속하는 선한 친구들과 마음을 함께하는 대화, 선하고 아름다운 인간관계는 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 경험을 연장해 가는 사람이 성공하고 행복해진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내 소신은, 중고등학교 나이 기간에 친구와 이웃을 위하는 봉사 경험이 있는 학생은 군 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불미스러운 행동은 물론 범죄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학교 성적은 큰 문제가 아니다. 인간다운 삶을 스스로 찾아가는 공동체 안에서 대화와 만남이 인생의 가치와 보람을 좌우한다.   자주 있는 일이다. 지방에 갔다가 제자들을 만난다. 한 고등학교 교사가 “대학에 있을 때는 열심히 공부도 하고 학점도 나쁘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그 당시의 공부한 것은 다 잊어버렸다”라고 했다. 내가 “이상하다. 나는 대학 때 들은 강의와 공부한 것을 지금도 기억하는데”라며 웃었다. 다른 제자가 “선생님은 기억력이 특출하셨지요”라고 물었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는 공부를 한 것이 아니고 학문을 했다. 그 당시에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으니까 기억한다”라고 답했다.     나는 대학교와 학문의 다양성과 창조성을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문제의식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공통된 문제의식 없이는 더 좋은 미래교육과 사회를 이끌어갈 수 있는 지도자는 배출되지 못한다. 교수는 언제나 문제의식을 동반한 연구와 강의를 하고 학생들과 그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토론과 결론 탐구의 장(場)이 되어야 한다.   전공에 갇힌 한국의 대학 교육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학생들은 독서가 병행하지 못하고 모든 공부를 수능시험에 집중하기 때문에 학문과 사상의 주체가 되는 인문학적 사유의 결핍이 심각해지고 있다. 의사들도 환자를 대할 때는 과거와 달리 주치의가 동료 교수들과 종합진단을 통해 병상을 판단한 후에 다시 주치의가 책임을 진다. 교수들은 그런 초보적인 과정도 밟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독립된 한 과목, 자기 전공 분야에 집중해 학문의 다양성과 사회적 요청을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그 때문에 인문학이 설 자리를 스스로 좁혀간다.   나 같은 경우는 독립된 철학과에서 강의하다가 역사학에도 관심을 두고, 문학 영역에도 참여해 ‘인문학적 사유’을 넓게 경험한 후에 다시 철학으로 복귀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니까 철학적 사고가 인문학적 사유로 확장된 후에 다시 철학적 학문의 차원이 높아지곤 했다. 인문학보다 역사 문제와 사회과학은 그런 발전적 변화가 필요하다. 이런 여러 가지 전문성과 융합성이 있는 현실에 대한 해결을 위한 대학 교실에는 문제의식이 필수적이다. 교실이 바뀌지 못하면 학문과 사회의 발전적 희망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김형석 / 연세대 명예교수김형석의 100년 산책 달리기 걱정 중고 대학교육 중고등학교 나이 인문학적 사유

2023-10-13

[살며 생각하며] 달력의 나이와 생기의 나이

아내 없이 홀로 생활하고 있는 시간이 오늘로 열흘이 넘었다. 젊어서 해외 출장 등 특별한 경우 외는 거의 없었던 일이라 불편하고 생경하다. 물론 아이들이 어릴 때 한국을 다녀오는 등의 경우는 예외로 하고 말이다.   앞으로 이 생활이 얼마나 지속할지는 순전히 장모님의 건강에 달려 있다. 평소 운동도 좋아하시고 밝게 사셔서 큰 병 없이 100세는 거뜬히 넘기실 줄 알았다. 그런데 90 고개를 넘기면서 잘 버티던 골격들이 조금씩 무너져내린다 싶더니 달포 전 화장실 바닥에 넘어지시면서 사달이 났다. 진단결과 등뼈에 금(Fracture)이 발견되어 수술 대신 재활원에서 4주 동안 약물과 물리치료를 받으시다 열흘 전 퇴원하셨다. 그때도 아내 병시중은있었지만 그래도 밤은 집에서 지냈다.   장모님의 건강악화는 장차 우리 앞날의 예시라는 생각이다. 매일 같이 일어나 걷고 뛰었지만 한 번도 이것이 멈출 때가 온다는 생각을 한 적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멈춤으로 인해 오늘도 어릴 때로 돌아가 앉고 서며 걷는 훈련에 진땀을 쏟는 분들이 많음을 장모님이 계셨던 재활원에서 목격하며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 우리가 날마다 잠에서 깨어 자기 힘으로 먹고 마시며 생각하고 배설함이 은혜이자 축복이다.   성경에 아골골짜기뼈 이야기가 있다. 흩어져 있던 마른 뼈들이 하나님이 명하니 각기 제자리를 찾아 붙고 힘줄이 생기고 살과 가죽으로 덮이는 장면 말이다. 그러나 여전히 생명력은 없다. 그런데 하나님이 생기를 명하자 그것들이 살았고 일어나 서서 뛰며 군대가 되는 모습을 통해 생명의 주인이 누구인지 말해주고 있다.   또 창세기에는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된 지라 라는 말이 있다. 정리하면 생기가 없는 인생은 흙이자 마른 뼈의 조합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의 생기가 돌면 비로소 생령의 사람이 되어 숨 쉬고 앉고 일어서 활동하며 사고할 수 있음을 설명해주고 있다. 따라서 사람이 나이 들어 늙고 병들어 힘을 잃고 죽음에 이름은 가득 찼던생기가 하나둘 소진되어 감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퇴원 후 보험회사 사람이 나와 어머니의 건강목표가 어디까지냐고 질문할 때 아내는 울컥했다. 침대에서 도움 없이 일어나 앉고 혼자 힘으로 화장실 출입이라도 하는 것조차 미련한 딸의 분에 넘치는 욕심 같아 안타깝고 슬펐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우리 인간에게는 달력 나이와 생기 나이가 함께 존재하는 것 같다. 달력 나이란 성경에 ‘우리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고 정해져 있다 하겠으나 생기 나이는 일률적으로 규정할 방법은 없다. 굳이 생각해보면 가장 활기 넘쳤던 청년의 시대에 지수 100에 이르고 이후 조금씩 줄어들고 있지 않을까. 그러다 50 이하로 떨어지고 그 후 점점 나빠져 10 이하에서 질병으로 고통받다 제로가 되어 죽음에 이르지 않을까 싶다.   수고와 슬픔만 남긴 채 날아가는 것처럼 빨리 지나갈 인생! 이제부터라도 지수 ‘0’의 그날을 예비하며 육신을 지탱하는 뼈와 근육을 튼튼히 함은 물론 생명유지 수단이라는 심혈관계, 신경계, 골근계의 건강을 잘 지키다 하나님 부르실 그 날에 밝고 순한 그리고 준비된 마음으로 예비된 천국을 소망하며 사는 삶이 최고의 복된 인생이 아닐까? 김도수 / 자유기고가살며 생각하며 나이 달력 달력 나이 생기 나이 화장실 바닥

2023-09-15

[삶의 뜨락에서] 나이에 등급이 있다면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전과 다른 자기 자신의 모습이 낯설고 당황스럽고 아직 자신이 나이를 먹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 친구는 아직도 펄펄 날아다니는데 나만 그런 것 같아 조금 억울하기도 하다. 유전자의 축복을 받은 소수의 사람이나 책과 방송에 나오는 기적을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는 혹시 나도 하는 짧은 기대와 역시 나는 하는 긴 우울감에 빠지게 한다.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으로 이어지는 상실 5단계는 더는 젊지 않은 내 몸과 이별할 때도 그대로 적용된다. 단계마다 머무르는 시간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이 과정을 겪으며 현실 속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현재 좌표를 정확하게 인식할수록 항로와 도달할 장소 그리고 방법을 잘 정할 수 있다. 막연했던 몸의 신호가 좀 더 선명해지면 더는 미루지 말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과거에는 없었던 불편함이 느껴질 때 우리는 이전 같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엄마 뱃속에서 수정이 된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전과 같은 때는 한순간도 없다. 사진 속의 내가 나를 닮은 누군가인 것은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들, 머릿속 생각들 그리고 가슴에 품고 있는 감정들이 계속 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늘 변한다는 것은 좋을 때도 있지만 나쁠 때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끔 우리 가게 앞을 지나다니는 한국 할머니를 보았다. 나이는 들어 보이지만 자세가 꼿꼿하고 걸음걸이도 반듯하게 적당한 속도로 걸어가신다. 손가방을 어깨에 메고 마켓에 가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약속이 있어 누군가와 만나기로 한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 그분이 가게에 옷을 세탁하러 오셨다. 본인 것이 아니고 남자 옷이었다. 이상해서 물었다. 본인은 80살인데 79살 할아버지와 76살 할아버지 두 분을 돌보는 일을 하신다고 한다. “아니 어떻게 두 노인 양반들을 돌보세요. 힘드실 텐데요.” “그냥 힘들지 않게 슬슬 돌봐요” 한다. 어떻게 노인네 돌보는 일이 쉽겠느냐마는 담담하게 말한다. 하루는 할아버지가 바지에 실례해서 물로 씻었는데 냄새가 가시지 않아 비닐봉지에 바지를 싸서 왔다. 80이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인데 두 할아버지를 돌본다는 것 쉽지 않다.     하루는 시간을 내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얼굴도 고우시고 손도 매끈해서 어렵게 살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누구나 남이 알지 못하는 사정이 있게 마련인데 남편이 34살에 천국에 갔고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골수암으로 떠났고 며느리와 손자가 한국에 살고 있다고 했다.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인가 믿기지 않았다. 그 뒤로 남을 돌보는 일이 힘들지 않고 가엽게 여겨지고 할아버지 배설물도 더럽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신앙심으로 돌보며 살고 있다고 했다. 보통 노인들 보면 메디케이드를 받으면서 편하게 사는 것 같은데 그런 여건은 원하지도 생각지도 않으며 자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했다.   몸이 이전 같지 않다고 느낀다면 이제 몸과 마음을 그리고 삶을 좀 더 섬세하게 다뤄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흔히 말하는 선택과 집중의 시기가 온 것이다.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방향이다. 과거와 외부에 시선을 돌리면 전과 같지 않고 남보다 못한 나를 보기 쉽다. 하지만 시선을 미래와 내부로 돌리면 지금의 나와 가야 할 길이 보인다. 그 길을 따라가며 내가 아닌 것을 하나둘 내려놓다 보면 삶은 자연스럽게 된다. 우리는 운 좋게도 이전보다 오래 산다. 그런데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급해진 것 같다. 마음의 여유를 갖고 천천히 즐기며 삶을 살아가면 좋겠다.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나이 등급 할아버지 배설물 한국 할머니 보통 노인들

2023-09-07

[우리말 바루기] 맞춤법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 다양해졌다. 그러다 보니 의사소통이 활발해지고 사회가 투명해지는 등의 장점이 나타났다. 그러나 우리말 측면에서 보면 좋은 점 못지않게 좋지 않은 점도 발생했다. 소셜네트워크(SNS)로 주로 소통하는 젊은 세대가 줄임말을 자주 사용하다 보니 줄임말이 표준어를 압도하는 사례가 생겨나고 있다. ‘갑분싸’ ‘패완얼’ ‘낄끼빠빠’ ‘소확행’ 등은 많이 알려진 줄임말이지만 나이 든 세대 가운데는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렇게 줄임말은 세대 차이로 인한 의사소통의 문제를 가져오기도 한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맞춤법에 어긋나는 단어의 범람이다. ‘며칠(○)/몇 일(×)’ ‘구지(×)/굳이(○)’ 등을 틀리게 쓰는 예가 흔하다. ‘데/대’나 ‘든/던’, ‘있다가/이따가’ 등의 차이를 알고 쓰는 이가 드물 정도다. ‘하지 않았다’를 ‘하지 안았다’로 쓰는 사람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사적인 소통에서뿐만 아니라 자기소개서나 보고서 등과 같은 공적인 글쓰기에서조차 이와 같이 틀린 단어나 줄임말이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한 업체의 임원은 자기소개서를 평가할 때 “맞춤법이 틀리면 기본 소양이 부족하거나 회사 생활을 건성으로 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좋지 않은 인상을 받는다”고 말한 바 있다.   의사소통만 되면 되지 맞춤법이 뭐 그리 중요하냐고 얘기하는 이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맞춤법을 제대로 모르고 글을 쓴다는 건 그만큼 자신의 기본 소양이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우리말 바루기 맞춤법 줄임말이지만 나이 기본 소양 회사 생활

2023-08-10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망설이면 내일은 없다

준비되지 않았을 때가 가장 준비된 때다. 할 수 없을 것 같아 망설이는 시간이 제일 잘 할 수 있는 시간이다. 매일 우리는 새 날, 새 아침을 맞는다.     정든 사람을 떠나보내고 새 얼굴을 만난다. 사랑을 꿈꾸고 사랑을 떠나 보낸다. 손 내밀어 붙잡을 용기 없어 작별하고, 후회하며 그대 모습을 지운다. 머뭇거리고, 회피하고, 용기 없어 다가가지 못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용기는 굳센 기운이나 겁내지 않는 기개다. 용기는 삶을 지탱하는 동력이지만 지나치면 만용이 된다. 만용은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고 함부로 날뛰는 용맹이다. 세월은 강물 따라 흘러간다.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모든 환경이 좋아지고 확실해 질 때까지 기다리면, 시작도 하기 전에 종치는 일이 발생한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시작한 현대미술화랑이 중서부 백인 상류층에서 자리 잡기 시작하고 꿈에 그리던 아트스쿨과 창작예술센터를 건립했다. 주변의 격려와 찬사,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지만 정작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홍길동의 용기와 김삿갓의 방랑, 돈키호테의 만용과 모험이 뒤범벅이 된 성공은 뿌리째 흔들렸다.     세계적인 여류시인이 되겠다는 청운의 꿈을 접고, 내 나이 스물 셋, 출국하며, 바보처럼 다시는 가난과 싸우는 글쟁이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나’다. 잘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리는 것도 오롯이 내 선택이다. 다시 글을 쓰고 싶어 식은 땀을 흘리며 온 몸이 쑤시고 아팠다. 오직 무언가 쓰고 싶다는 생각뿐, 작가의 역량을 갖추지도 못했고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갈피조차 잡지 못했다. 분명한 것은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다시는 할 수 없다는 사실, 영원히 후회할 것 같았다.     25년 동안 작동을 멈춘 시계바늘을 되돌리고 마디가 굳은 손으로 아홉달 동안 밤 세워 A4용지 2만장을 집필했다. 남은 인생의 시간들에 ‘후회’라는 낙관을 찍을 수 없었다. 자전소설 ‘찔레꽃’ 두 권과 자전에세이 ‘여왕이 아니면 집시처럼’이 출간됐다.     멀리 있어도 서로 통하는 선배에게 가끔 전화한다. 성악을 전공하신 분인데 늦깎이로 그림공부를 하시고 사별 후 그리움을 담은 참한 시집을 출간했다. 요즘도 시니어모임에 출품할 작품 그리기에 몰두하신다. 나이 탓에 외출 한 번 하려면 ‘꾸미는데 장시간을 소비한다’고 하셔서 한바탕 웃었다.     오래 된 대학 동창이 전화해 ‘사는 게 너무 심심하다. 할 게 없다’고 불평하길래 뭔가 해 보라고 권했더니 ‘이건 이래서 못하고, 저건 저래서 못한다’며 백만가지 이유를 댄다고 했다. ‘무릎 손가락 관절이 불편해 할 게 없다’ 한다는데 시각 청각 장애인 핼런 켈러의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란 책을 읽어 보셨으면 생각한다.   무엇인가를 향해 몰입하는 사람은 아름답다. 나이, 환경, 차별, 장애를 극복하고 꿋꿋이 자기 길을 가는 사람은 승리자다. 세상잡사를 뒤로 하고 진정 하고 싶은 일에 시계바늘 고정시키고 인생을 한 땀 한 땀 수놓는 사람의 손은 늙지 않는다.     모든 예술은 서로 통한다. 형식과 표현 방법, 미디엄이 다를 뿐이다. ‘medium’은 '중간'이라는 의미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중간체, '매체'(媒體)라는 뜻이다. 예술은 인간을 서로 어우르고 상처를 꿰매주고 사람과 영혼을 잇는다.     인생의 후반기는 망설일 시간이 없다. 인생은 인간이 그리는 가장 정직한 캔버스다. 자유. 행복. 고통. 이별. 아픔. 죽음에 이르기까지 생의 모든 것을 담는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망설이면 망설이면 내일 나이 환경 중간체 매체

2023-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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