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아름다운 우리말] 나의 하루는

어쩌면 나의 하루는 눈을 뜨기 전에 시작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어떻게 잠을 자느냐에 따라 하루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뒤척임과 두근거림은 잠자리마저 편안케 하지 않습니다. 심장의 두근거림은 원치 않는 꿈자리의 뒤숭숭함 때문입니다. 기억도 나지 않는 꿈 이야기에 나는 한동안 지친 모습으로 아침을 맞습니다. 그래서 옛 선사들은 꿈에도 변하지 않는 경지, 오매일여(寤寐一如)를 이야기했을 겁니다. 자나 깨나 같은 깨달음의 경지입니다.   숭얼숭얼 거리는 잠자리를 뒤로 한 채 아침을 맞습니다. 도대체 날마다 아침에 눈을 뜨기가 쉽지 않습니다. 마치 한 발은 깊은 수렁에, 한발은 미지의 어둠 속에 있는 느낌입니다. 어둠은 어둠을 낳을 거라는 불안이 꿈속의 나를 괴롭힙니다. 그저 눈만 뜨면 되는 데 여전히 생각은 어둠 속을 헤매고 있는 겁니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문득 눈을 뜹니다. 새벽입니다. 해의 기운이 창가를 맴돌고 있습니다. 어둠이 조금씩 밀려 나가고 있습니다.   새벽은 경계입니다. 밤과 아침의 경계입니다. 경계라고 하면 한가운데가 아닐까 하겠지만, 사실 이 경계는 계속해서 아침으로 가는 경계입니다. 그래서 새벽을 기도의 시간, 깨달음의 시간이라고 하였을 겁니다. 새로운 물을 길어, 내 정수리에 붓는 시간이라는 비유도 적절합니다. 꽃우물에서 길어 올린 맑은 정화수(井華水) 한 잔에 내 마음과 기운이 모이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더 간절합니다. 우물의 물이 정화수의 물이 되고, 정화수의 물이 하늘에 오르며 한 방울의 눈물이 되기도 합니다. 새벽을 잘 보내고 싶습니다. 아침을 잘 맞고 싶습니다.   아침은 태양의 시간입니다. 멀리서 붉은 기운이 차오르면, 동시에 검은 기운은 사라집니다. 시차를 두고 이루어지는 행위가 아닙니다. 내가 변하면 세상이 변합니다. 시차가 없습니다. 내가 변하지 않고서 세상이 변하기를 바라는 것은 헛된 욕심일 수 있습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에서 오해하는 것은 순서가 있다는 겁니다. 수신한 후에 제가가 있고, 제가가 있은 후에야 치국이나 평천하가 있는 게 아닙니다. 내가 수신을 하면 세상은 변합니다. 세상은 나의 수신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침은 내가 세상에 나오는 시간이고, 내가 세상에 사는 이유를 생각하게 하는 시간입니다.   이제 생활의 시간입니다. 삶의 시간입니다. 고통의 다른 이름은 즐거움입니다. 물론 즐거움의 다른 이름도 고통입니다. 일하는 것이 괴롭기도 하지만, 일을 할 수 없는 것도 고통이 됩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기도 하지만, 사람을 만나는 것이 비할 데 없는 고통이 되기도 합니다. 저는 종종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고통인 애별리고(愛別離苦)보다 싫은 이를 만나야 하는 고통인 원증회고(怨憎會苦)가 더 힘들다는 생각을 합니다. 삶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사랑하지만 헤어져야 하고, 만나기 싫지만 만나야 합니다. 또 하루가 그렇게 지나갑니다.   날이 저뭅니다. 새벽의 붉은 빛과는 사뭇 다른 저녁입니다. 노을빛은 하루의 열기를 담아서 따뜻합니다. 물질의 온도가 아니라 마음의 온도가 그렇습니다.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아쉬운 마음을 남깁니다. 그런데 그 순간 문득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마운 사람입니다. 그리운 사람입니다.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입니다. 밉고 원망스러운 사람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저 깊이 가라앉아 있거나 어쩌면 이 순간은 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원증회고의 만남은 끝이 나고, 애별리고의 고통은 그리움이 됩니다. 그리움도 사랑입니다. 그리움도 기쁨입니다. 그 감정을 새삼 느끼며 마음이 편해집니다.   밤이 깊어갑니다. 이제 자야겠네요. 편안한 마음과 편안한 호흡으로 오늘을 되돌아봅니다. 힘들었지만, 즐거운 일도 많았습니다. 아팠지만 행복했습니다. 눈이 감겨옵니다. 오늘의 잠자리에서는 꿈마저 잃고 싶네요. 나의 하루를 닫습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시간 깨달음 경지 오매일여

2024-05-12

[이 아침에] 깨달음의 종소리

시간을 알리는 교회 종소리가 멀리서 은은하게 전자음으로 울려 퍼진다. 이 집에 이사 온 지도 벌써 일 년 반이 지났다. 모든 게 낯설고 서툴지만, 종소리만은 익숙해져서 기다려진다. 교회 종소리는 복음을 전파하는 목적도 있지만, 삶에 지친 영혼을 달래주기에 더 정겹다. 청아하고 은은한 멜로디로 도시의 틈새 안으로 스며들어 우리 곁에 머문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교회당. 새로운 도시를 감싸고 보호하듯 내려다보며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새벽녘에 울리는 종소리는 전날 답답했던 가슴을 활짝 열어주고 새로 시작하게 한다. 낮에는 삶의 소리로 들려오고, 저녁에는 바람과 함께 풀잎을 누비며 깨달음의 소리로 더욱 울림이 크게 들려온다. 바쁜 일상에서 소중한 무언가가 빠진 것 같은 허전한 마음에 감동과 깨달음의 기쁨을 느낄 수가 있다. 따뜻하고 진한 사랑의 소리, 누군가가 나를 걱정해주고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날은 뜨겁게 내 귀를 지나 가슴을 감싸준다.   종소리는 그동안 알게 모르게 지은 죄를 잠시나마 회개하게 한다. 본능적으로 인간은 욕심이 마음에 자리하고 있기에 잘 조절하면 죄를 덜 짓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도하고 명상하면서 의지하고 노력한다면 성공한 것인데, 깨닫지 못하고 사는 게 인간이다. 사람은 언제나 자기에게 부족한 것만을 생각하고 욕심을 쫓아서 살아간다. ‘내가 남에게 준 것은 내 것이고 내가 남에게 주지 않으려 애쓰는 것은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이다’라고 들었다. 시간은 화살처럼 빠르게 우리 곁을 지나간다. 후회 없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삶이 바람결에 우습게 흩날리는 나뭇잎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삶이 내 안에서 빛을 향해 구체적으로 변해야 하기에 회개하고 기도한다.     잠시 삶에 지쳐있거나 육신이 아플 때는 종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스스로 감당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마음 안에는 기쁨이 생길 수가 없다. 종소리의 울림이 내 안에서 깨닫지를 못하고 있다. 깨달음이 없으면 귀가 열릴 수가 없다. 내 삶 속에 스며드는 생명, 빛과 같은 영혼의 울림, 내 안의 가슴속에서 숨 쉬고 있는 존재이다.   빛과 사랑의 종소리가 하루를 열어주고 또 하루를 마감하게 해준다. 울림을 주는 소리가 시간 맞추어 들리면 내 안의 가슴속에 작은 나라가 이루어진다. 사랑으로 인간을 만나게 하는 최초의 교감이 되기도 한다. 종소리는 늘 이렇게 내 가슴속을 파고든다.   가끔 힘들고 지쳐 아무것도 하기 싫고 무기력해졌을 때 들리는 종소리는 내게 깨달음과 활력을 주기도 한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집안에 갇혀 지내다 보니 은은한 전자음의 멜로디에 마음이 정화되는 것을 느낀다. 때로는 그 소리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아주 천천히 5분을 넘게 느릿하게 계속 울리는 정감 있는 소리, 투명한 소리, 아름다운 소리 언제부턴가 그 소리에 귀 기울여진다.   우리 함께 한 곳을 바라보며 살았으면 하는 간절함이다. 오늘도 나의 메마른 가슴에 깨달음의 종소리가 울린다. 갑자기 숙연해진다. 세월이 흐르면 그리운 기억으로만 남을 아름다운 교회 종소리. 김카니 / 수필가이 아침에 깨달음 종소리 교회 종소리 소리 누구 진한 사랑

2022-08-01

[이 아침에] 깨달음의 종소리

시간을 알리는 교회 종소리가 멀리서 은은하게 전자음으로 울려 퍼진다. 이 집에 이사 온 지도 벌써 일 년 반이 지났다. 모든 게 낯설고 서툴지만, 종소리만은 익숙해져서 기다려진다. 교회 종소리는 복음을 전파하는 목적도 있지만, 삶에 지친 영혼을 달래주기에 더 정겹다. 청아하고 은은한 멜로디로 도시의 틈새 안으로 스며들어 우리 곁에 머문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교회당. 새로운 도시를 감싸고 보호하듯 내려다보며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새벽녘에 울리는 종소리는 전날 답답했던 가슴을 활짝 열어주고 새로 시작하게 한다. 낮에는 삶의 소리로 들려오고, 저녁에는 바람과 함께 풀잎을 누비며 깨달음의 소리로 더욱 울림이 크게 들려온다. 바쁜 일상에서 소중한 무언가가 빠진 것 같은 허전한 마음에 감동과 깨달음의 기쁨을 느낄 수가 있다. 따뜻하고 진한 사랑의 소리, 누군가가 나를 걱정해주고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날은 뜨겁게 내 귀를 지나 가슴을 감싸준다.   종소리는 그동안 알게 모르게 지은 죄를 잠시나마 회개하게 한다. 본능적으로 인간은 욕심이 마음에 자리하고 있기에 잘 조절하면 죄를 덜 짓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도하고 명상하면서 의지하고 노력한다면 성공한 것인데, 깨닫지 못하고 사는 게 인간이다. 사람은 언제나 자기에게 부족한 것만을 생각하고 욕심을 쫓아서 살아간다. ‘내가 남에게 준 것은 내 것이고 내가 남에게 주지 않으려 애쓰는 것은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이다’라고 들었다. 시간은 화살처럼 빠르게 우리 곁을 지나간다. 후회 없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삶이 바람결에 우습게 흩날리는 나뭇잎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삶이 내 안에서 빛을 향해 구체적으로 변해야 하기에 회개하고 기도한다.     잠시 삶에 지쳐있거나 육신이 아플 때는 종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스스로 감당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마음 안에는 기쁨이 생길 수가 없다. 종소리의 울림이 내 안에서 깨닫지를 못하고 있다. 깨달음이 없으면 귀가 열릴 수가 없다. 내 삶 속에 스며드는 생명, 빛과 같은 영혼의 울림, 내 안의 가슴속에서 숨 쉬고 있는 존재이다.   빛과 사랑의 종소리가 하루를 열어주고 또 하루를 마감하게 해준다. 울림을 주는 소리가 시간 맞추어 들리면 내 안의 가슴속에 작은 나라가 이루어진다. 사랑으로 인간을 만나게 하는 최초의 교감이 되기도 한다. 종소리는 늘 이렇게 내 가슴속을 파고든다.   가끔 힘들고 지쳐 아무것도 하기 싫고 무기력해졌을 때 들리는 종소리는 내게 깨달음과 활력을 주기도 한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집안에 갇혀 지내다 보니 은은한 전자음의 멜로디에 마음이 정화되는 것을 느낀다. 때로는 그 소리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아주 천천히 5분을 넘게 느릿하게 계속 울리는 정감 있는 소리, 투명한 소리, 아름다운 소리 언제부턴가 그 소리에 귀 기울여진다.   우리 함께 한 곳을 바라보며 살았으면 하는 간절함이다. 오늘도 나의 메마른 가슴에 깨달음의 종소리가 울린다. 갑자기 숙연해진다. 세월이 흐르면 그리운 기억으로만 남을 아름다운 교회 종소리. 김카니 / 수필가이 아침에 깨달음 종소리 교회 종소리 소리 누구 진한 사랑

2022-07-28

[J네트워크] 한 사진작가의 깨달음

집에 불이 났다. 소중한 목숨 외에 꼭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일까. 방·거실·부엌 등에 있는 수많은 물건들 가운데 절대로 화마에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은 무엇일까. 벨기에 출신 사진작가 바바라 이반스(Barbara Iweins)가 제안하는 상상이다.   40대 중반인 이반스가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 계기는 11번의 지긋지긋한 이사 때문이라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물건들을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는 것을 반복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며 집에 있는 모든 것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15시간, 총 4년 넘는 기간에 걸쳐 자신과 세 아이가 소유한 크고 작은 물건들의 사진을 찍고 색상·재질·사용빈도를 구분해 엑셀 파일로 정리했다. 옷·신발·책·주방 용품은 물론 자신이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었던 항불안제까지 총 1만2795점에 이른다.     그녀는 지금 이 방대한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9월 말까지 개최하는 유럽 최대의 사진 축제 ‘아를 국제사진전(Rencontres d’Arles)’에 선보이고 있다. ‘카탈로그’(Katalog)라는 제목의 책으로도 출간했다.   LA타임스에 따르면 현대 미국 가정에 들어가 있는 물건의 숫자는 대략 30만 점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 상당수는 있다는 사실조차 잊혀졌을 것이다.     인터넷에는 빽빽하게 들어찬 옷장 앞에서 ‘입을 옷이 하나도 없다’(I have nothing to wear)고 투덜대는 움짤(움직이게 한 재미있는 사진이나 그림)들이 넘쳐난다. 거기에 비교하면 이반스 작가가 소유한 물건 개수는 아주 양호한 편이다.   주로 인물 사진을 찍던 이반스가 이 작업을 통해 얻은 통찰이 궁금해 그녀를 SNS로 인터뷰했다. 이반스는 수년간 진행한 이 작업을 통해 “가진 물건의 1%만이 나에게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그 물건들에 대한 애정이 강해져 잃어버리거나 부서질까 봐 더 조심스럽게 다루게 되었다”고 답했다. 또 “그 외의 99%는 불타버려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것이라는 깨달음도 얻었다”고 덧붙였다. 주변에 넘쳐나는 물건들의 정리를 통해 치유의 시간으로 삼으며, 또 그것을 사진 예술로 승화시킨 작가의 말에 공감이 간다.   7월로 접어들면서 마음이 다급해진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불과 6개월 전엔 새로 출발하는 기분이었는데 어느새 반년이 지나가고 2023년까지 160여일밖에 남지 않았다.     일상에 바쁜 현대인들이 이반스처럼 자신의 소유물을 모조리 파악하고 정리하기에는 무리가 따를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집요했던 프로젝트를 통해 소유하기에만 바빴던 주변의 사물들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우리가 진정 추구해야 하는 가치를 재점검하는 계기로 삼으면 어떨까. 안착히 글로벌협력팀장J네트워크 사진작가 깨달음 바바라 이반스 물건 개수 이반스 작가

2022-07-20

[J네트워크] 한 사진작가의 깨달음

집에 불이 났다. 소중한 목숨 외에 꼭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일까. 방·거실·부엌 등에 있는 수많은 물건들 가운데 절대로 화마에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은 무엇일까. 벨기에 출신 사진작가 바바라 이반스(Barbara Iweins)가 제안하는 상상이다.   40대 중반인 이반스가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 계기는 11번의 지긋지긋한 이사 때문이라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물건들을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는 것을 반복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며 집에 있는 모든 것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15시간, 총 4년 넘는 기간에 걸쳐 자신과 세 아이가 소유한 크고 작은 물건들의 사진을 찍고 색상·재질·사용빈도를 구분해 엑셀 파일로 정리했다. 옷·신발·책·주방 용품은 물론 자신이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었던 항불안제까지 총 1만2795점에 이른다.     그녀는 지금 이 방대한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9월 말까지 개최하는 유럽 최대의 사진 축제 ‘아를 국제사진전(Rencontres d’Arles)’에 선보이고 있다. ‘카탈로그’(Katalog)라는 제목의 책으로도 출간했다.   LA타임스에 따르면 현대 미국 가정에 들어가 있는 물건의 숫자는 대략 30만 점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 상당수는 있다는 사실조차 잊혀졌을 것이다.     인터넷에는 빽빽하게 들어찬 옷장 앞에서 ‘입을 옷이 하나도 없다’(I have nothing to wear)고 투덜대는 움짤(움직이게 한 재미있는 사진이나 그림)들이 넘쳐난다. 거기에 비교하면 이반스 작가가 소유한 물건 개수는 아주 양호한 편이다.   주로 인물 사진을 찍던 이반스가 이 작업을 통해 얻은 통찰이 궁금해 그녀를 SNS로 인터뷰했다. 이반스는 수년간 진행한 이 작업을 통해 “가진 물건의 1%만이 나에게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그 물건들에 대한 애정이 강해져 잃어버리거나 부서질까 봐 더 조심스럽게 다루게 되었다”고 답했다. 또 “그 외의 99%는 불타버려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것이라는 깨달음도 얻었다”고 덧붙였다. 주변에 넘쳐나는 물건들의 정리를 통해 치유의 시간으로 삼으며, 또 그것을 사진 예술로 승화시킨 작가의 말에 공감이 간다.   7월로 접어들면서 마음이 다급해진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불과 6개월 전엔 새로 출발하는 기분이었는데 어느새 반년이 지나가고 2023년까지 165일밖에 남지 않았다.     일상에 바쁜 현대인들이 이반스처럼 자신의 소유물을 모조리 파악하고 정리하기에는 무리가 따를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집요했던 프로젝트를 통해 소유하기에만 바빴던 주변의 사물들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우리가 진정 추구해야 하는 가치를 재점검하는 계기로 삼으면 어떨까. 안착히 / 글로벌협력팀장J네트워크 사진작가 깨달음 바바라 이반스 물건 개수 이반스 작가

2022-07-18

[기자의 눈] 놀이공원에서 얻은 깨달음

 얼마 전 오랜만에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찾았다. 즐거운 비명이 가득해야 할 놀이공원에 썰렁한 공기가 감돌았다. 휴일이었음에도 찾는 사람은 적었다. 하긴, 이런 시기에 당연했다.     얼굴을 가린 마스크에 웃는 얼굴 사진 한 장 제대로 건지지 못했지만 놀이공원이 주는 설렘은 여전했다.     사람이 없는 통에 놀이기구 하나에 대기 시간이 5분도 채 되지 않았다. 운이 좋았다 생각하며 돈 들인 만큼 본전 찾고 가야지 맘먹었다.  평소엔 앞뒤 사람 부딪혀가며 1시간 넘게 기다려 겨우 타던 놀이기구들인데, 대기 입구부터 놀이기구 탑승 지점까지 걷듯이 가면서 길이 이렇게 길었나 새삼 놀랐다.     가장 인기가 많았던 놀이기구는 마치 한풀이를 하듯 내리자마자 또 타기를 반복. 3번째 탔을 때쯤이었을까. 뭔가 이상했다. 예전만큼 흥미가 느껴지지 않았다.     내리면 엄두도 나지 않는 대기 줄에 또 타지 못해 늘 아쉬움이 남는 놀이기구였는데, 단 3번 만에 시들해졌다.     더구나 이 놀이공원에 놀이기구가 10개도 채 안 된다는 사실을 이날에서야 알았다. 들뜬 마음으로 아침 일찍 개장과 동시에 부지런히 하나씩 다 타고 해가 질 때쯤 아쉬운 마음 달래며 나가곤 했는데 이날은 입장한 지 2시간도 안 돼 모든 놀이기구를 휩쓸었다.   3년 전 마지막으로 왔던 그때와 무엇이 다른지 차이를 고민했다. 그제야 설레며 추억하고 있었던 것이 놀이기구가 아니라 그 모든 시간이었다는 것이 깨달았다.     콩나물 같이 빼곡한 대기 줄은 사실 문제가 아니었다. 내 차례가 언제 오나 연신 기웃거리면서도 친구와 시시덕거리며 보내는 그 순간은 뒤돌아보니 힘들었던 기억이 아닌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구석구석 주변을 둘러보다 화젯거리가 나오면 거기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말이 이어지기도 했고, 멋진 곳이 나오면 신이나 카메라를 들어 서로의 모습을 담기도 했다.     한 보폭씩 아주 느리게 앞으로 나갔지만 그 느린 시간에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내딛는 발자국들에는 설렘만 가득했다.     한국엔 평균 시속(곡선 구간) 30km(18마일)인 기차가 있다. 올해로 90년도 더 넘은 경전선은 한국에서 가장 느리게 달리는 기차다. 경남 밀양에서 광주까지 300.6km(186.7마일)를 달리는데 5시간 40분이 걸린다.  이쯤 되면 선로를 기어간다는 게 맞는 표현인 것 같다.     하지만 빠른 것이 꼭 정답은 아니다. 고속철의 풍경은 아름답지만 한없이 바쁘다. 숨 가쁘게 눈에 담아야 한다. 반면 경전선에서는 꼭꼭 눈에 눌러 담아도 시간이 남는다. 사람들은 이 느림이 주는 선물을 받고자 일부러 경전선을 찾는다.     코로나19 확산 후 우린 시간을 재촉한다. 2020년엔 2021년을 기다렸고, 2021년에는 2022년을 기다렸다. 코로나 없는 더 나아진 삶을 기대하면서다.     과연 바라던 목적지에 닿으면 우리의 고민은 끝이 날까. 늘 그랬듯 그 상황에 맞는 또 다른 고민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내일만 바라보고 발걸음을 재촉하기엔 너무 아까운 오늘이다. 코로나19라는 상황과 관계 없이 각자의 인생에서 지금은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고, 순간이 아닌가. 느리게 흘러가는 이 시간도 눈에 꼼꼼히 담아보자. 오늘의 가는 길 위에도 소소하지만 분명한 삶의 의미들이 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언젠가 시간은 또다시 빠르게 돌아갈 것이고 느렸던 지금은 추억 속에 남을테니. 장수아 / 사회부 기자기자의 눈 놀이공원 깨달음 놀이기구가 10개 놀이기구 탑승 대기 시간

2022-01-24

[아름다운 우리말] 우리말과 깨달음

저는 한국어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한국어 중에서도 주로 어휘와 사고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어원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 교육학도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오늘은 제가 연구하는 분야 중에서 우리말과 깨달음에 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우리말 어휘 몇 개와 그 속에 담긴 우리의 생각에 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저는 요즘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지금 듣고 있는 수업도 처음에는 ‘우연찮게’ 듣게 되었습니다. 일본어 상급 독해 선생님이 소개해 주신 것인데, 시험을 준비하는 것도 아니어서 자유롭게 읽고 말할 수 있는 이 수업을 우연찮게 듣게 된 것입니다. 제가 계속 우연찮게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이 말을 많은 한국 사람들은 우연히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대다수의 사람은 ‘우연찮게’를 ‘우연히’와 같은 단어로 생각합니다만 사실은 정반대의 의미입니다. 우연찮게는 ‘우연이 아니다’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우연찮게’라는 말을 쓰는 모든 장면은 우연이 아닌 게 됩니다. 당연히 제가 일본어 수업을 듣게 된 것도, 여기에 오랜 기간 칼럼을 쓰고 있는 것도, 여러분께 오늘 이렇게 우리말에 관해 이야기를 하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닌 겁니다. 필연입니다. 인연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고 그래서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만남이 그렇습니다. 모두 우연찮게 만난 것이기에 소중합니다. 저는 우리가 우연찮게라는 말을 쓸 때마다 깨달음이 있기 바랍니다.   다음으로는 ‘반갑다’라는 단어에 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반갑다라는 말은 다른 말로 번역하기가 어려운 우리말입니다. 영어에서는 단어가 아니라 문장으로 번역하게 됩니다. ‘Nice to meet you’ 정도가 반갑다는 의미일 겁니다. 일본어에도 마땅한 표현이 없습니다. 굳이 일본어로 번역하면 ‘aeteureshii’ 정도일 겁니다. 그렇다면 반갑다라는 말은 한국인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언어에 없는 우리말 표현에 주의를 기울여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반갑다는 ‘반’과 ‘갑다’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반’은 무슨 뜻일까요? 저는 반의 의미를 빛이라고 생각합니다. 관련이 있는 단어로는 ‘반짝반짝’이 있습니다. 빛이 나는 것을 표현하는 의태어입니다. 반짝은 모음교체를 하면 ‘번쩍’과 관련이 있습니다. 번쩍의 ‘번’도 빛의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번이 빛의 의미임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어에는 ‘번개’가 있습니다. 번개는 자연현상 중 빛이 나는 현상입니다. 소리는 ‘우레’라고 합니다. 한 단어를 더 이야기하자면 빛이 나는 벌레 ‘반딧불이’가 있습니다. 반디라고도 하는 벌레인데, 이 때 ‘반’이 빛이라는 의미이고 ‘디’가 벌레라는 뜻입니다. 진물이 나는 벌레는 ‘진디’입니다.   따라서 반갑다는 빛이 난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은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내 모습에서 빛이 난다는 겁니다. 밝아진다는 의미입니다. 기쁜 거죠. 저는 ‘반갑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얼굴이 어두우면 거짓이라고 생각합니다. 반갑습니다라고 말할 때 자신의 표정을 살펴보기 바랍니다. 저는 사람들을 만날 때 기쁘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갑다는 말이 진심이 되니까요.   마지막으로 ‘아름답다’라는 말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아름답다의 ‘-답다’ 앞에는 주로 사람에 해당하는 표현이 옵니다. 그런데 중세국어를 살펴보니 아름의 의미가 나(私)의 의미로 나타납니다. 아름답다는 말은 어원적으로 보자면 나답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사람을 흉내 내지 않고 나의 가치만 발견해도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우리말 깨달음 우리말 표현 우리말 어휘 한국어 교육학

2021-10-31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