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네트워크] 한 사진작가의 깨달음
집에 불이 났다. 소중한 목숨 외에 꼭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일까. 방·거실·부엌 등에 있는 수많은 물건들 가운데 절대로 화마에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은 무엇일까. 벨기에 출신 사진작가 바바라 이반스(Barbara Iweins)가 제안하는 상상이다.40대 중반인 이반스가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 계기는 11번의 지긋지긋한 이사 때문이라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물건들을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는 것을 반복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며 집에 있는 모든 것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15시간, 총 4년 넘는 기간에 걸쳐 자신과 세 아이가 소유한 크고 작은 물건들의 사진을 찍고 색상·재질·사용빈도를 구분해 엑셀 파일로 정리했다. 옷·신발·책·주방 용품은 물론 자신이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었던 항불안제까지 총 1만2795점에 이른다.
그녀는 지금 이 방대한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9월 말까지 개최하는 유럽 최대의 사진 축제 ‘아를 국제사진전(Rencontres d’Arles)’에 선보이고 있다. ‘카탈로그’(Katalog)라는 제목의 책으로도 출간했다.
LA타임스에 따르면 현대 미국 가정에 들어가 있는 물건의 숫자는 대략 30만 점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 상당수는 있다는 사실조차 잊혀졌을 것이다.
인터넷에는 빽빽하게 들어찬 옷장 앞에서 ‘입을 옷이 하나도 없다’(I have nothing to wear)고 투덜대는 움짤(움직이게 한 재미있는 사진이나 그림)들이 넘쳐난다. 거기에 비교하면 이반스 작가가 소유한 물건 개수는 아주 양호한 편이다.
주로 인물 사진을 찍던 이반스가 이 작업을 통해 얻은 통찰이 궁금해 그녀를 SNS로 인터뷰했다. 이반스는 수년간 진행한 이 작업을 통해 “가진 물건의 1%만이 나에게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그 물건들에 대한 애정이 강해져 잃어버리거나 부서질까 봐 더 조심스럽게 다루게 되었다”고 답했다. 또 “그 외의 99%는 불타버려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것이라는 깨달음도 얻었다”고 덧붙였다. 주변에 넘쳐나는 물건들의 정리를 통해 치유의 시간으로 삼으며, 또 그것을 사진 예술로 승화시킨 작가의 말에 공감이 간다.
7월로 접어들면서 마음이 다급해진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불과 6개월 전엔 새로 출발하는 기분이었는데 어느새 반년이 지나가고 2023년까지 160여일밖에 남지 않았다.
일상에 바쁜 현대인들이 이반스처럼 자신의 소유물을 모조리 파악하고 정리하기에는 무리가 따를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집요했던 프로젝트를 통해 소유하기에만 바빴던 주변의 사물들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우리가 진정 추구해야 하는 가치를 재점검하는 계기로 삼으면 어떨까.
안착히 글로벌협력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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