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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이야기] 진정한 경쟁 상대는 누구인가?

어떤 학자들은 시장에서의 경쟁을 전쟁에 비유하기도 한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전리품을 챙기듯 시장 경쟁에서 이기면 시장 독점이라는 보상을 얻게 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주장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싶다. 우선 시장에서의 경쟁은 전쟁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전쟁은 당사자끼리 승부를 가리는 것이지만 시장에서의 경쟁은 브랜드 간에 승패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승자를 선정한다는 사실이다. 피겨 스케이팅이나 체조 경기에서 심판이 우승자를 결정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그러면 기업은 어떻게 고객으로부터 최고 점수를 받아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여기서 중요한 점은 기업은 시장에서 도대체 누구와 경쟁하고 있는가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직장인 A씨의 점심 메뉴 결정 과정을 통해 이를 확인해 보자. A씨의 점심 메뉴 후보에는 라면, 샐러드, 햄버거, 닭고기나 생선 요리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일단 A씨는 자주 먹는 라면 대신 오랜만에 햄버거를 먹기로 했다고 가정해 보자. 다음의 과정은 어떤 햄버거를 먹을 것인가 결정하는 일이다. 즉, 맥도날드, 버거킹, 웬디스 등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A씨가 과거부터 버거킹 햄버거를 선호했다면 버거킹은 승자독식의 영광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버거킹 고객의 대부분이 A씨와 같은 경우라면 버거킹의 승리는 상처뿐인 영광이 된다. 왜냐하면 A씨가 점심에 햄버거를 자주 먹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버거킹의 점심 매출은 늘지 않을 것이다.   버거킹은 다른 햄버거 브랜드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더라도 실속 없는 일인자가 되는 셈이다. 결국 버거킹의 주 경쟁 대상은 A씨가 점심으로 자주 먹는 라면이지 다른 햄버거 브랜드들이 아니다. 즉, 이 경우 버거킹은 같은 제품군의 여러 브랜드가 아니라 라면이 주요 경쟁 대상이 되는 것이다.     경쟁의 대상은 두 가지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첫째는 고객의 욕구를 다른 방식으로 충족시켜주는 서로 다른 형태의 제품군들이며, 두 번째는 동일한 제품군에서 직접 경쟁하는 여러 브랜드들이다. 따라서 기업은 언제나 두 가지 형태의 경쟁 대상에 신경을 써야 한다.     경쟁 대상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은 경쟁 대상들이 어떻게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키는가를 분석하고 배워 고객이라는 심사위원으로부터 최고 점수를 받는 일이다. 한 가지 부언할 사항은 배운다는 것은 반드시 경쟁 대상으로부터 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업이 배울 수 있는 대상은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경쟁대상이 아닌 제품들에서 고객의 욕구를 충족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터퍼웨어(Tupperware)의 설립자는 페인트캔의 뚜껑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공기 차단 용기 제품을 만들었다. 터퍼웨어 제품과 페인트캔은 아무런 경쟁관계가 없다.     두 번째는 간접경쟁으로부터 고객의 욕구 충족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간접경쟁이란 두 가지 이상의 다른 제품들이 고객의 동일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것을 의미한다.  데스크톱 컴퓨터와 노트북은 고객의 동일한 욕구(note-taking)를 다른 방식으로 충족시키면서 경쟁한다. 또 물과 수박, 청량음료 그리고 맥주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고객의 갈증 해소라는 욕구를  충족시킨다.       세 번째는 직접적인 경쟁자들로부터 고객의 욕구 충족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병물 판매업체인 애로헤드(Arrowhead)는 고객들이 왜 에비안(Evian) 브랜드를 선호하는지를 분석해 품질 개선에 활용할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기업들은 직접 경쟁에는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만 상대적으로 간접 경쟁에는 소홀한 경향이 있다. 그러나 간접적인 경쟁자들로부터 더 유용하고 혁신적인 고객의 욕구 충족 방법들을 얻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간접 경쟁자들도 고객의 동일한 욕구를 그들 나름의 제품과 방식으로 충족시키고 있으므로 이들로부터 배우고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직접 경쟁자들보다 더 많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07년 아이폰(iPhone)이 출시 되었을 때 애플의 개발자들은 컴퓨터를 간접 경쟁 제품으로 설정하고 있었다. 아이폰은 전화기 기능도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은 컴퓨터 기능의 탑재였다. 아이폰은 통화 기능 외에 인터넷 접속기능도 갖춰 그야말로 ‘손 안의 컴퓨터’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인터넷 접속을 통한 외부와의 커뮤니케이션이나 전화를 통한 외부와의 커뮤니케이션이 방법은 다르지만 기본 목적은 동일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애플은 컴퓨터를 간접 경쟁 제품으로 설정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아이폰은 간접 경쟁 제품인 컴퓨터 시장 고객도 일부 유인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컴퓨터 기능까지 갖춘 휴대폰으로 엄청난 고객의 사랑을 받으며 직접 경쟁 대상인 전화기 시장에서 일인자의 위치를 차지한 것이다.     기업들은 직접 경쟁자들만 경쟁 대상으로 생각해 경쟁을 전쟁하는 듯한 관점에서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애플의 아이폰 개발 경우와 같이 간접 경쟁자를 통해 새로운 고객 욕구 충족 방법을 배우는 것이 직접 경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박충환 / 전 USC석좌교수브랜드 이야기 아이폰 경쟁 간접 경쟁자들 경쟁 대상들 시장 경쟁

2023-08-29

[연금에 대한 바른 이해] 어뉴이티 보수 투자자 선호하는 안전자산 역할

은퇴 재정설계의 일환으로 연금상품(annuity)이 많이 활용되고 있다. 한인들에게도 익숙한 금융상품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오해가 많고 억측도 많다. 주류 금융 미디어들은 물론, 한인 언론을 통해서도 소위 전문가들을 통해 간혹 잘못된 정보가 전달되기도 한다. 완전히 잘못된 경우는 드물다. 대게 반쪽의 진실을 담고 있다. 어뉴이티를 둘러싼 몇 가지 주된 편견과 오해를 풀어보려고 한다.     ▶모든 투자 대체하나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어뉴이티를 모든 투자를 대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소개한다면 그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고정 및 지수형 연금은 투자손실을 원하지 않는 보수적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안전자산 역할을 한다고 하면 틀린 설명이 아니다. 시장하락에 따른 손실이 없기 때문에 시장환경이 어려우면 안전자산의 기능이 더 주목받는다.     이것은 모든 투자를 대체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이다. 전통적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채권이 수행해 온 리스크 분산 기능에 대한 대체자산 역할은 할 수 있다.   ▶어뉴이티는 비용이 높다   시중에는 다양한 유형의 어뉴이티 상품이 있다. 흔히들 비용을 문제 삼는 것은 전통적인 투자성 연금에 대한 것이다. 연금은 본질상 보험상품이기 때문에 보험 관련 비용이 있다.     투자성이기 때문에 투자를 위한 관리 비용 등이 들어간다. 연금보장 등 추가 혜택이 들어가면 높을 경우 연 3~4%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비용이 높다고 비판할 수 있다. 그런데도 제공되는 보험적 기능이 내게 꼭 필요한 것들이라면 활용 가치가 있다. 잠재적 수익 포텐셜이 고정연금에 비해선 높을 수 있다는 점도 소비자에게 어필되는 부분이다.   고정연금이나 지수형연금은 매년 떼 가는 비용이 원래 없다. 특히 지수형연금은 손실을 원천봉쇄하는 대신 수익률에 상한선을 두는 상품이다. 이에 따른 간접 비용을 지적할 수는 있겠다.     평생 보장 연금을 위한 특약 조항 등 이른바 ‘라이더’를 추가하면 대개 1% 안팎의 비용이 발생한다. 소비자에게 필요한 혜택이 자금증식이 아니라 안전한 관리와 평생 생활비 보장이라면 고려할 만한 옵션이다. 그런 혜택에 대해 일정 부분 수수료를 내고 가져가는 것이 문제일 이유는 없다. 필요 없으면 안 붙이면 그만이다.   ▶커미션 상품이라 나쁘다   어뉴이티를 취급하는 전문인들에는 여러 갈래가 있다. 보험 에이전트일 수도 있고, 증권 브로커 라이센스 소지자일 수도 있고, 공인 재무설계사(CFP)나 기타 재정설계, 투자자문 자격증 소지자일 수도 있다.     이들 전문가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해 보상받는 방식은 커미션이나 수수료 둘 중 하나다. 어느 보상방식이 나쁘거나 좋다고 볼 수 없다. 해당 금융 상품의 구조나 유통방식, 서비스 유형 등 다양한 이유가 보상 방식을 결정할 뿐이다. 커미션 상품이라는 것 자체가 해당 금융 상품을 열등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떤 유통 채널을 통하는가에 따라 투자자가 받을 수 있는 케어 수준이 달라질 가능성은 있다. ‘고객 이익 우선주의’라는 업무 준칙이 엄격히 요구되는 전문가 집단이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장 케어를 잘 받을 수 있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분명 유리할 수 있을 것이다.     어뉴이티가 커미션 상품이라는 논거로 신뢰성을 문제 삼는 다면 타당하지 않다.     시중의 어뉴이티에는 커미션 상품도 있고  수수료 기반(fee-based) 상품도 있다. 투자성 연금에도 커미션 상품이 있고 자문료로 보상이 이뤄지는 상품도 있다. 상품과 서비스 집단의 다양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결국엔 해당 어뉴이티가 내 목적을 성취하는가가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일반 투자와 어뉴이티 비교   애초에 양자를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목적과 용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목적이 같더라도 리스크 성향이나 수용 능력에 따라서 역시 선택은 달라질 수 있다.     세금 문제도 중요한 고려 항목이다. 투자자 개개인의 상황과 목적, 필요한 혜택, 남은 투자 기간 등의 다양한 구체적 변수들을 무시한 채 한쪽이 더 낫다거나 못하다고 할 수 없다.     연금상품을 파는 보험사나 펀드나 투자 상품을 팔거나 관리하는 투자 회사들도 다 이익추구를 목표로 한다. 펀드에도 관리비가 있고, 자산운용에도 자문 비용이 있다. 비용만이 모든 투자나 자산관리의 유일한 기준이라면 가장 비용이 적은 것을 선택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다 안다.     보험사에 목돈을 맡기고 유동성 제한을 감수하며까지 굳이 연금을 쓸 이유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또 어떤 이들에게는 당연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시장 리스크에 마냥 노출된 상태로 두는 것이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의 시장 수익률로 앞으로의 10년을 장담할 수 없다. 사실 그런 수익률은 반복되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다.     간혹 보험사에 맡긴 목돈에 대한 내 권한이 없어지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는 데, 이는 즉시 인출형 연금일 경우만 그렇다. 연금화하지 않은 나머지 모든 유형의 어뉴이티는 자금 사용에 대한 모든 권한을 투자자가 유지한다.     잠재 수익률을 보고 투자시장에 들어가 있다고 해도 적절한 리스크 관리는 매우 중요하다. 고정연금이나 지수형 연금, 지수형 투자성 연금 등은 이 리스크를 보험사에 넘기는 행위이다.     당연히 이런저런 비용이 따를 수 있다. 리스크 보험료인 셈이다. 경우에 따라 직접 비용일 수도 있고 간접 비용, 기회비용 등일 수 있다.     무엇이 되었든 그 비용을 지불하고서도 받는 혜택이 더 크다고 판단될 때 어뉴이티를 활용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목적과 용도와 상황에 맞지도 않고 필요도 없다면 당연히 쓸 필요 없다.   켄 최 아메리츠 에셋 대표 ([email protected])연금에 대한 바른 이해 연금 안전자산 보수적 투자자들 간접 비용 안전자산 역할

2023-04-12

[살며 생각하며] 간접 살인

내가  60대 후반의 안 씨를 알게 된 것은 양로병원(Care Center)에서였다. 천주교 레지오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그곳을 일주일에 1회씩 방문해 한인 환자들을 찾아다니며 기도와 함께 위문하는 것이 나의 임무였다. 때로는 신부님이나 수녀님을 모시고 가 임종이 다가온 환우들에게 종부 성사(생전의 마지막 의식)를 부탁하기도 하였다. “한 번 들어오면 죽어서나 나가게 된다”고 해 시니어들이 공포감을 갖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엔 80대 이상이 대부분이다. 병세가 호전되어 퇴원하는 경우도 가끔 있으나 결국 2~3개월 이내에 병세가 악화하여 다시 입원하게 된다고 한다. 안 씨는 뇌졸중(stroke)으로 쓰러져 1년 넘게 입원하고 있었다. 대소변을 가리지도 못하고 실어증까지 있어 그야말로 식물인간이었다. 온종일 누워 있다 보니 등의 욕창이 살을 깊게 파고 들어가 뼈가 드러날 지경이었다. 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삶의 연속이었다.     그날도 나는 그의 병실로 들어가다 엉거주춤 서고 말았다. “가, 이제 그만 가. 죽으란 말이야…”를 연발하며 그의 딸이 죽을 떠서 입에 넣어주며 연신 외치다가 엎드려 흐느끼고 있었다. 나는 머리를 둔기로 얻어맞은 듯  현기증을 느꼈다.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은 누구의 잘못일까?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은 안 씨의 탓인가? 아니면, 직장에 다니랴, 두 명의 자식의 뒷바라지하랴, 아버지 병간호하랴, 1인 3역의 고달픈 삶으로 마음과 몸이 지칠 대로 지친 딸의 탓인가?     “병간호 3년에 효자 없다”고 하지 않던가? 문병 온 그의 매제에 따르면 안 씨는 한국에서 경찰 공무원이었다고 한다. 서울-강릉 간을 운행 중이던 고속버스를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적발해 티켓을 발부하려는데 버스 안내양이 내려와 갖은 애교로 선처를 부탁하자 그 미모에 반해버리고 말았단다. 그래서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눈 감아 주겠다” 한 것이 인연이 되어 결혼까지 하게 되었단다. 1남 1녀를 낳고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다가 누님의 초청으로 2000년대 초 미국에 이민을 왔다. 누구에게나 이민 초창기는 힘들었듯 안 씨는 수영장 청소를, 부인은 식당 주방일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그러던 어느 날 부인이 행방을 감추었다. 사고가 난 것일까? 누군가에게 납치된 것은 아닐까? 온갖 잡념에 안 씨는 미친 사람이 되어 갔다. 일도 그만두고 실성한 사람처럼 아내를 찾아 나섰다. 실종 6개월이 지났을 무렵 딸에게로 타주에서 한 통의 편지가 날아들었다. “엄마를 더 이상 찾지 마라. 나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여생을 그와 함께 할 테니 엄마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람으로 여기거라….” 알고 보니, 부인은 한국에서부터 바람이 났고 그 남자가 미국까지 쫓아와 함께 도망간 것이었다. 안 씨는 반미치광이가 되고 말았다. 술, 담배를 모르던 성실한 사람이었는데 술과 마약을 하지 않고는 하루도 버틸 수가 없었다고 한다.  실의에 빠진 안 씨는 자신을 학대하기 시작했다. 그런 절망적인  삶은 2년도 채 못 되어 안 씨를 쓰러지게 만들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병원에서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하는 바람에  2년 넘게 봉사활동을 중단했다가 접한 소식은 이미 그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것이었다.   그 여자도 “어떠한 경우에도 남편을 사랑하고 존중하며 아내로서 도리를 다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룰 것을 맹세한다”고 혼인서약을 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사랑을 택한 도주극이 끝내는 남편을 죽음에 이르게 만든 원인이 된 것이다. 이진용 / 수필가살며 생각하며 간접 살인 간접 살인 이민 초창기 도로교통법 위반

2023-02-23

[삶의 뜨락에서] 간접 살인

내가  60대 후반의 안 씨를 알게 된 것은 양로병원(Care Center)에서였다. 천주교 레지오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그곳을 일주일에 1회씩 방문해 한인 환자들을 찾아다니며 기도와 함께 위문하는 것이 나의 임무였다. 때로는 신부님이나 수녀님을 모시고 가 임종이 다가온 환우들에게 종부 성사(생전의 마지막 의식)를 부탁하기도 하였다. “한 번 들어오면 죽어서나 나가게 된다”고 해 시니어들이 공포감을 갖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엔 80대 이상이 대부분이다. 병세가 호전되어 퇴원하는 경우도 가끔 있으나 결국 2~3개월 이내에 병세가 악화하여 다시 입원하게 된다고 한다. 안 씨는 뇌졸중(stroke)으로 쓰러져 1년 넘게 입원하고 있었다. 대소변을 가리지도 못하고 실어증까지 있어 그야말로 식물인간이었다. 온종일 누워 있다 보니 등의 욕창이 살을 깊게 파고 들어가 뼈가 드러날 지경이었다. 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삶의 연속이었다.     그날도 나는 그의 병실로 들어가다 엉거주춤 서고 말았다. “가, 이제 그만 가. 죽으란 말이야…”를 연발하며 그의 딸이 죽을 떠서 입에 넣어주며 연신 외치다가 엎드려 흐느끼고 있었다. 나는 머리를 둔기로 얻어맞은 듯  현기증을 느꼈다.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은 누구의 잘못일까?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은 안 씨의 탓인가? 아니면, 직장에 다니랴, 두 명의 자식의 뒷바라지하랴, 아버지 병간호하랴, 1인 3역의 고달픈 삶으로 마음과 몸이 지칠 대로 지친 딸의 탓인가?     “병간호 3년에 효자 없다”고 하지 않던가? 문병 온 그의 매제에 따르면 안 씨는 한국에서 경찰 공무원이었다고 한다. 서울-강릉 간을 운행 중이던 고속버스를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적발해 티켓을 발부하려는데 버스 안내양이 내려와 갖은 애교로 선처를 부탁하자 그 미모에 반해버리고 말았단다. 그래서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눈 감아 주겠다” 한 것이 인연이 되어 결혼까지 하게 되었단다. 1남 1녀를 낳고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다가 누님의 초청으로 2000년대 초 미국에 이민을 왔다. 누구에게나 이민 초창기는 힘들었듯 안 씨는 수영장 청소를, 부인은 식당 주방일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그러던 어느 날 부인이 행방을 감추었다. 사고가 난 것일까? 누군가에게 납치된 것은 아닐까? 온갖 잡념에 안 씨는 미친 사람이 되어 갔다. 일도 그만두고 실성한 사람처럼 아내를 찾아 나섰다. 실종 6개월이 지났을 무렵 딸에게로 타주에서 한 통의 편지가 날아들었다. “엄마를 더 이상 찾지 마라. 나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여생을 그와 함께 할 테니 엄마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람으로 여기거라….” 알고 보니, 부인은 한국에서부터 바람이 났고 그 남자가 미국까지 쫓아와 함께 도망간 것이었다. 안 씨는 반미치광이가 되고 말았다. 술, 담배를 모르던 성실한 사람이었는데 술과 마약을 하지 않고는 하루도 버틸 수가 없었다고 한다.  실의에 빠진 안 씨는 자신을 학대하기 시작했다. 그런 절망적인  삶은 2년도 채 못 되어 안 씨를 쓰러지게 만들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병원에서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하는 바람에  2년 넘게 봉사활동을 중단했다가 접한 소식은 이미 그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것이었다.   그 여자도 “어떠한 경우에도 남편을 사랑하고 존중하며 아내로서 도리를 다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룰 것을 맹세한다”고 혼인서약을 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사랑을 택한 도주극이 끝내는 남편을 죽음에 이르게 만든 원인이 된 것이다.   이진용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간접 살인 간접 살인 이민 초창기 도로교통법 위반

2023-02-17

[아름다운 우리말] 선생은 먼저 하는 사람

 선생(先生)이라는 말은 먼저 태어났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하루라도 먼저 나온 사람은 선생의 자격이 있습니다. 물론 선생이 생물학적인 먼저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먼저 배운 사람도 선생이 될 수 있고, 먼저 겪은 사람도 선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 세상에는 선생이 될 사람이 참 많습니다. 내게 선생이 될 사람도 많고, 내가 선생이 될 경우도 많습니다. 선생은 누군가의 앞에 서면 선생입니다.     선생의 생(生)은 생명이라는 뜻도 있고, 사람의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산다는 말은 살아간다는 말이고 살아가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일 겁니다. 살다와 사람이라는 단어가 비슷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겁니다. 우리말 ‘사람’의 어원을 ‘살다’에서 찾기도 합니다. 사람이 사는 게 삶입니다. 선생은 먼저 하는 사람입니다. 먼저 배웠기에 선생 노릇을 할 수 있을 겁니다. 학생(學生)은 선생에게 배우는 사람입니다. 나중이기에 열심히 배워야겠지요. 중생이라는 말도 사람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종 ‘생’의 발음이 바뀌면 사람에서 멀어지기도 합니다. 중생(衆生)이라는 말이 변하여 짐승이 된 겁니다.   선생의 정의를 다시 반복하여 말하면 먼저 하는 사람입니다. 무엇을 먼저 하는 사람일까요? 기본적으로는 공부를 미리 하여야 할 겁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학생의 궁금증을 미리 경험해야 하고, 학생의 질문을 예상하여야 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내가 배운 것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내용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봐야 합니다. 선생 일이 쉽다면 그것은 뭔가 문제가 있는 겁니다. 그러기에 우리 속담에 선생의 똥은 개도 안 먹는다고 그랬을 겁니다. 왜일까요? 모든 애를 썼기에 어떤 영양도 남지 않았을 겁니다. 선생도 참 힘든 직업입니다.   그런데 선생이 먼저 해야 할 것은 공부만이 아닙니다. 학생이 겪어야 할 힘든 일은 최대한 먼저 해 보아야 합니다. 직접 할 수 없다면 간접적으로라도 경험해 봐야겠지요. 수많은 독서가 필요한 이유일 겁니다. 앞선 이들이 남긴 책을 통해서 더 많은 간접 경험을 해야 학생의 고통 앞에서 공감할 수 있겠지요. 선생의 중요한 능력 중 하나는 공감 능력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학생은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선생이 해야 할 일 중 아마도 제일 어려운 일은 학생에게 뒷모습을 보이는 일일 겁니다. 뒷모습이 부끄럽지 않게 길을 만들며 사는 사람이 선생입니다. 선생은 그런 의미에서 앞서 걷는 사람입니다. 물론 항상 올바로 살 수는 없겠죠. 허나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자세만은 잃지 않아야 합니다. 선생의 뒷모습은 당당해야 합니다. 처진 어깨여서는 안 됩니다. 내 발걸음을 따라오는 학생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부처님, 공자님, 예수님을 모두 선생님이라 부릅니다. 우리는 스승도 모두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대통령이나 총리라는 말보다 선생님이라는 말을 더 가치 있게 생각합니다. 우리도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사실 그럴 겁니다. 직위가 중요한 세상이 아니라 가치가 중요한 세상이라면 말입니다. ‘선생’이라는 말은 직위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누구나 선생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나 역시 선생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선생입니다. 오늘도 다른 이도 먼저 할 일을 생각합니다. 오늘도 조금 더 빠르게 몸을 움직이고, 좀 더 바르게 생각하려고 합니다. 책을 읽고, 길을 걷고, 산을 오르고, 사람을 만납니다. 가치 있는 하루를 사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선생의 일은 힘들지만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선생 선생 노릇 간접 경험 부처님 공자님

2021-11-14

"코로나 '치유 여행'은 한국에서" 관광공사 LA지사 캠페인

  한국관광공사(사장 안영배, 이하 공사) LA지사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어울리는 여행 테마인 치유 여행을 홍보하기 위해 진행한 ‘퍼즈 인 코리아(Pause in Korea)’ 캠페인이 성황리에 마쳤다.       이번 캠페인은 한국관광공사 LA지사(지사장 정병옥)가 코로나 19 장기화로 지친 사람들의 심신을 치유하고 해외여행 제한이 완화된 후 힐링 여행지로서 한국 방문을 유도하고자 기획됐다.      이번 캠페인 홍보를 위해 LA 할리우드에 위치한 헬렌 J 갤러리를 대관해 한국 미술작품 관람과 다도 명상이 어우러진 이색 이벤트를 지난달 30일, 10월 7일, 9일 세 차례에 걸쳐 한국 문화 및 관광을 홍보했다.      캠페인 참가자는  ”매일 명상을 하고 있지만 차 명상은 색다른 경험이었다”며 “내년 한국을 방문할 계획인데, 한국에서 다른 전통문화도 체험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오는 21일 온라인 라이브 다도 이벤트에서는 참가자들에게 다기 세트를 제공하고, 다도 시연을 통해 한국의 다도 및 명상 문화를 소개할 계획이다.      또한 한국관광공사 LA지사는 한국의 명상 전문가들의 의견을 거쳐 다도, 템플스테이, 한옥 스테이, 걷기 명상 등을 주제로 11개 영상을 제작해 캠페인 사이트(www.pauseinkorea.com)를 통해 홍보하고 있다.      방문객들은 ‘휴식이 필요할 때’, ‘고단한 하루의 끝’, ‘혼자 있고 싶을 때’, ‘생각 버리기’ 등 상황에 맞는 추천 명상을 체험할 수 있으며, 대한민국 구석구석의 풍경과 소리, 명상 글귀가 어우러진 ASMR 영상들을 통해 한국여행 간접 경험을 제공한다.      정병옥 LA지사장은 “템플스테이, 다도 등 한국 고유의 콘텐츠를 활용해 한국문화를 소개하고 치유를 위한 한국 여행 홍보로 많은 관광객이 한국을 찾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이은영 기자

2021-10-13

미국 투자이민 '50만달러 기회'

미국 영주권을 얻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얼마나 될까? 미국 언론들과 미국이민 프로그램인 투자이민 프로젝트를 관할하는 지역센터(RC)에 따르면 이르면 12월 초 미국 투자이민 연장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있기에 투자금액 50만달러의 미국 간접 투자이민(EB-5) 프로그램이 일시적으로 열릴 가능성을 전망한다. 현재 미국의 민주당은 3조5000억달러의 사회복지 예산안 통과를 추진 중으로 '미국 간접 투자이민 연장법안'도 포함되어 함께 처리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예산안 통과를 위해서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전략적인 타협이 필요하다.  미국 투자이민은 출처가 명확한 자금으로 운영되는 투자 프로젝트를 통해 고용창출 조건에 맞으면 영주권을 주는 제도로 미국민의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해 왔다. 투자이민 자금 한도를 50만달러로 전망하는 이유는 지난 6월 연방법원에서 2019년 말 90만달러로 인상하는 법안의 시행 절차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해당 법안을 무효화하는 판결이 나왔기에 연장법안이 통과되면 투자금이 90만달러가 아닌 이전에 유효하던 50만달러로 돌아갈 것으로 전망한다.  일부에서는 12월 전에 투자금이 인상된 내용의 새 법안이 나올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새 법안은 효력 발생 전에 60일간 공표 기간이 필요해서 연말에 새 법안이 발표되고, 간접 투자 이민 연장이 승인되더라도 새 법안의 효력 발생까지 약 한 달 정도 '50만달러 미국 투자 이민'의 기회가 마지막으로 열릴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해 '국민이주㈜'는 오는 10월 16일 오후 2시 서울 역삼동 본사에서 미국 투자이민 세미나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날 설명회에서 이유리 미국 변호사가 급변하는 미국 투자이민법과 영주권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김지영 대표는 미국 투자이민 프로젝트 선정 요령을 소개할 예정이다.  또, 아칸소주 미시시피카운티 소재 철강 제조업체의 생산능력을 연간 330만톤으로 확대하는 2기 설비 확장공사로 미국 최대 철강회사 유에스스틸(U.S.Steel) 소유의 빅 리버 스틸II(Big River Steel II) 프로젝트와 뉴욕 맨해튼 메리어트 호텔의 고급 브랜드인 '트리뷰트 포트폴리오(Tribute Portfolio) 52층 호텔' 프로젝트, 맨해튼 리저널센터(RC)가 투자자를 모으는 고급 임대아파트 건설 프로젝트 등을 소개할 예정이다.  '국민이주㈜'의 이지영 미국 변호사는 “이번에 혹시나 찾아올 '50만달러 미국 투자 이민'의 기회는 마지막이 될 수 있기에 많은 투자 문의가 있다”면서 "좀더 정확하고 객관적인 팩트와 정보를 바탕으로 투자자의 필요와 여건에 맞는 비자발급, 정착, 투자 등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전했다.    국민이주㈜는 4명의 미국 이민변호사협회 정회원 미국 변호사가 상주하며, 철저한 분석과 실사 노하우를 바탕으로 안전한 투자이민을 설계해준다. 6년 연속 미국 투자이민 수속과 승인 등에서 국내기업 중 최다 실적을 거뒀다. 미국 투자이민 접수(I-526) 454건과 영주권 발급 1580건을 기록했고, 투자이민 승인(I-526)과 원금 상환 실적도 100%에 달한다.

2021-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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