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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간접 살인

내가  60대 후반의 안 씨를 알게 된 것은 양로병원(Care Center)에서였다. 천주교 레지오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그곳을 일주일에 1회씩 방문해 한인 환자들을 찾아다니며 기도와 함께 위문하는 것이 나의 임무였다. 때로는 신부님이나 수녀님을 모시고 가 임종이 다가온 환우들에게 종부 성사(생전의 마지막 의식)를 부탁하기도 하였다. “한 번 들어오면 죽어서나 나가게 된다”고 해 시니어들이 공포감을 갖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엔 80대 이상이 대부분이다. 병세가 호전되어 퇴원하는 경우도 가끔 있으나 결국 2~3개월 이내에 병세가 악화하여 다시 입원하게 된다고 한다. 안 씨는 뇌졸중(stroke)으로 쓰러져 1년 넘게 입원하고 있었다. 대소변을 가리지도 못하고 실어증까지 있어 그야말로 식물인간이었다. 온종일 누워 있다 보니 등의 욕창이 살을 깊게 파고 들어가 뼈가 드러날 지경이었다. 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삶의 연속이었다.  
 
그날도 나는 그의 병실로 들어가다 엉거주춤 서고 말았다. “가, 이제 그만 가. 죽으란 말이야…”를 연발하며 그의 딸이 죽을 떠서 입에 넣어주며 연신 외치다가 엎드려 흐느끼고 있었다. 나는 머리를 둔기로 얻어맞은 듯  현기증을 느꼈다.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은 누구의 잘못일까?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은 안 씨의 탓인가? 아니면, 직장에 다니랴, 두 명의 자식의 뒷바라지하랴, 아버지 병간호하랴, 1인 3역의 고달픈 삶으로 마음과 몸이 지칠 대로 지친 딸의 탓인가?  
 
“병간호 3년에 효자 없다”고 하지 않던가? 문병 온 그의 매제에 따르면 안 씨는 한국에서 경찰 공무원이었다고 한다. 서울-강릉 간을 운행 중이던 고속버스를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적발해 티켓을 발부하려는데 버스 안내양이 내려와 갖은 애교로 선처를 부탁하자 그 미모에 반해버리고 말았단다. 그래서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눈 감아 주겠다” 한 것이 인연이 되어 결혼까지 하게 되었단다. 1남 1녀를 낳고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다가 누님의 초청으로 2000년대 초 미국에 이민을 왔다. 누구에게나 이민 초창기는 힘들었듯 안 씨는 수영장 청소를, 부인은 식당 주방일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그러던 어느 날 부인이 행방을 감추었다. 사고가 난 것일까? 누군가에게 납치된 것은 아닐까? 온갖 잡념에 안 씨는 미친 사람이 되어 갔다. 일도 그만두고 실성한 사람처럼 아내를 찾아 나섰다. 실종 6개월이 지났을 무렵 딸에게로 타주에서 한 통의 편지가 날아들었다. “엄마를 더 이상 찾지 마라. 나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여생을 그와 함께 할 테니 엄마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람으로 여기거라….” 알고 보니, 부인은 한국에서부터 바람이 났고 그 남자가 미국까지 쫓아와 함께 도망간 것이었다. 안 씨는 반미치광이가 되고 말았다. 술, 담배를 모르던 성실한 사람이었는데 술과 마약을 하지 않고는 하루도 버틸 수가 없었다고 한다.  실의에 빠진 안 씨는 자신을 학대하기 시작했다. 그런 절망적인  삶은 2년도 채 못 되어 안 씨를 쓰러지게 만들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병원에서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하는 바람에  2년 넘게 봉사활동을 중단했다가 접한 소식은 이미 그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것이었다.
 
그 여자도 “어떠한 경우에도 남편을 사랑하고 존중하며 아내로서 도리를 다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룰 것을 맹세한다”고 혼인서약을 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사랑을 택한 도주극이 끝내는 남편을 죽음에 이르게 만든 원인이 된 것이다.  

이진용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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