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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누죽걸산’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 시니어들은 건강을 위해 많이 걷거나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 집 건너편에 살던 70대 여성은 매일 넓은 밀짚모자를 쓰고 걸었다. 그런데 한동안 볼 수가 없었다. 얼마 전 그녀의 남편을 만나 아내가 잘 있느냐고 물었다. 남편은 그녀가 2주 전 집에서 갑자기 쓰러져 병원 응급실로 간 후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며  울먹였다.     몸을 움직여야 한다지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운동은 지루하기 때문이다. 차고에 있는 아령과 걷는 기계에 먼지만 쌓이고 있다.     운동을 재미있게 할 방법이 없을까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몇 년 전 사이프러스 커뮤니티 칼리지의 에어로빅댄스 클래스에 등록했던 기억이 났다 . 음악에 맞춰 젊은이들과 함께 동작을 하려니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어 중도에 포기하긴 했지만.     그러나 한 가지는 배웠다. 음악에 맞춰 운동을 하면 훨씬 재미있다는 것이었다. 옛날에 듣던 CD 가운데 군대 행진곡을 찾았다. 약 45분 분량의 행진곡을 틀어 놓고 두 손을 들고 격식을 갖추지 않는 막춤을 췄다. 손에는 5파운드 아령을 들고, 발목에는 5파운드 모래주머니를 매달았다. 팔다리가 뻐근하고 아팠다. 가끔 아령과 모래주머니 없이 율동을 하면 몸이 가벼워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시니어들은 팔과 다리의 근육을 단련해야 걸을 수 있다.   비가 오는 날이나 수영을 가지 않는 날은 방에서 CD를 틀어 놓고 그 막춤을 춘다. 아내가 내 모습을 보더니 깔깔대고 웃었다. 아내도 웃고 나도 웃고. 웃으면 복이 온다고 하지 않는가.   노인들에게 가장 좋은 운동은 수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동내 수영장에서 이 행진곡을 틀어 놓고 물속에서 피아노 건반을 두들기듯 물장구를 친다. 관절염으로 뻣뻣해진 손마디가 한결 부드러워진다. 관절염이 악화하면 컴퓨터 자판도 누르기 힘들어 글도 쓰지 못한다.   행진곡 소리가 수영장에 나온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 줄 알았다. 웬걸, 어떤 이는 음악에 맞추어 덩실덩실 춤을 춘다. 특히 ‘미 해병대 찬가’는 신나는 행진곡이다. 행진곡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부엌의 소금도 쳐야 맛이 난다’고 했듯 아무리 좋은 음악과 운동도 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누군가 사람은 에덴동산에서 태어나 공짜를 좋아하고 게으르다고 말했다. 인간의 본성은 게으르다는 주장이다.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려면 게으름부터 극복해야 한다.  윤재현 / 전 연방정부 공무원열린 광장 음악과 운동 행진곡 소리 동내 수영장

2024-04-10

[열린광장] 세계의 군대 행진곡

아닌 밤중의 홍두깨였다. 난데없이 조선 인민군 행진곡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나는 북한 출신이라 ‘우리는 강철 같은 조선의 인민군’으로 시작하는 행진곡을 알고 있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되고 며칠이 지난 오후였다. 나는 인천 미군 유류 저장소 수송부에서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창밖을 내다보니 먼지를 뿜으며 달려가는 몇 대의 GMC 트럭 위에 카빈과 M1 소총을 멘 미군들이 인민군 행진곡을 가사 없이 흥얼거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은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경비하던 미군들로 포로 교환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올라왔다가, 유류저장소 식당에 들러 점심을 먹고 판문점으로 가는 중이었다.   그 포로수용소의 경비 책임자였던 미군 준장이 처우 개선을 주장하며 폭동을 일으킨 포로들에게 납치되어 며칠간 수모를 당하고 처우 개선을 약속하고서야 풀려난 사건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미군 경비병들은 포로들이 때를 가리지 않고 불러대는 인민군 행진곡을 하도 들어서 서당 개 3년에  풍월을 짓는다고 곡을 외운 것이었다.   그 인민군 행진곡과 중국인민해방군 행진곡을 전남 광주광역시 출신 정율성이 작곡했다고 한다. 이 곡들은 세계 3대 행진곡에는 끼지 못했지만 사기 진작에는 뛰어난 곡이라고 생각한다. 정율성이 공산주의자이지만 위대한 음악가임은 틀림없다.   세계 3대 행진곡의 하나가 1900년 세토구치 토키시가 작곡한 일본 해군의 군함 행진곡, ‘마모루모 세모루모 구로가네노’이다. 소학교 시절 나는 거의 매일 이 행진곡에 발맞춰 행진을 해 어느 정도 세뇌(洗腦)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번째 행진곡은 1889년 독일의 군악작곡가 칼 테이커가 작곡한 ‘옛 전우’이고, 세 번째는 미국의 ‘성조기여 영원하라’이다. 두 곡 다 경쾌한 리듬으로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어 준다. ‘미 해병대 찬가’도 멋진 행진곡이다.   인민군 행진곡, 중국해방국 행진곡을 생각하면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한국 전쟁 때 방방곡곡에서 이 행진곡이 울리는 가운데 얼마나 많은 젊은이가 피를 흘리며 죽고 죽였는가. 태평양 전쟁 당시, ‘미 해병대 찬가’가 울리는 가운데 사이판에 상륙한 미군 3000여 명이 전사했다. 일본군 전사자는 3만여 명, 그리고 민간인도 1만 5000여 명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이제는 전투를 고취하는 호전적인 행진곡이 싫다. 전쟁으로 무고한 민간인이 너무 많이 희생되고 있다. 그만 싸웠으면 좋겠다. 평화를 구가하는 행진곡이 그리워진다. 그러나 그런 행진곡은 별로 많지가 않다. 윤재현 / 전 연방정부 공무원열린광장 행진곡 세계 인민군 행진곡 군대 행진곡 인민해방군 행진곡

2023-11-19

[우리말 바루기] 승전고를 울린다

‘승전고’가 나올 때 어떤 글에서는 ‘올렸다’고 하고, 또 어떤 글에서는 ‘울렸다’고 한다. 어느 것이 맞을까?   ‘승전고(勝戰鼓)’의 의미를 정확하게 분석해 보면 정답을 찾을 수 있다. 여기에서 ‘고(鼓)’는 북을 뜻하는 말이다. 따라서 ‘승전고’는 싸움에서 이겼을 때 울리는 북을 가리킨다. 그렇기 때문에 승리의 북을 울린다는 의미로 ‘승전고를 울린다’고 표현해야 한다.   ‘승전고’와 비슷한 것으로 ‘승전보(勝戰譜)’가 있다. ‘승전보’는 싸움에서 이긴 경과를 적은 기록을 뜻하는 말이다. ‘승전보’가 ‘기록’이므로 ‘울리다’와는 호응해 쓸 수 없다. ‘승전보를 남기다’ ‘승전보를 전하다’ ‘승전보를 기록하다’ 등처럼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역사에 길이 남을 승전보를 남겼다”와 같이 쓸 수 있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웨딩 마치’도 있다. ‘울리다’와 ‘올리다’ 중 어떤 것을 써야 하는지 헷갈린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다. “결혼식을 올린다”는 표현 때문인지 “웨딩 마치를 올린다”고 하기 십상이다. 이 역시 ‘웨딩 마치’의 정확한 뜻을 따져 보면 어떤 단어가 어울리는지 알 수 있다. ‘마치(march)’가 행진곡을 뜻하므로 “웨딩 마치(결혼 행진곡)를 울린다”고 하는 것이 바르다.우리말 바루기 승전고 결혼 행진곡 웨딩 마하지

2023-06-14

[문화난장] 노희경의 “모두 행복하세요” 왜 통했나

노희경 작가의 ‘우리들의 블루스’(tvN)가 “과연 노희경”이란 격찬 속에 막을 내렸다. 7.3%(닐슨코리아 조사 결과)로 시작한 시청률도 마지막 회에 14.6%까지 올랐다. 올 tvN 주말 드라마 최고 수치다. 하지만 예술성 측면에서 퇴행이라고 보는 의견도 만만찮다. 계몽적·교훈적 요소를 내세워 시청자를 가르치려 한다는 문제 제기다.   옴니버스식으로 진행된 ‘우리들의 블루스’는 에피소드마다 주인공을 바꿔가며 갖가지 갈등 상황을 보여주고, 그 모든 상황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지었다. 가족 부양의 무거운 짐을 진 채 청춘을 보내버린 두 중년을 “잘 자라줘서 고맙다”며 위로하고, 우울증으로 이혼당한 뒤 아들 양육권까지 잃은 첫사랑은 “답답하면 뒤를 봐, 이렇게 등만 돌리면 다른 세상이 있잖아”라고 다독인다. 상처받은 우정은 “이 세상에서 너 하나만은 만만하게 생각하면 안 되냐”는 고백에 회복되고, 장애인 언니를 둔 ‘억울함’은 “힘들었겠다, 네가 고생이 많았어”라며 이해받는다. 10대 고등학생의 임신 문제도 가족과 학교, 지역 사회의 지지와 축복으로 이어졌다.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못 박았던 작가는 이렇게 선명한 ‘행복 행진곡’도 부족하다 느꼈는지 마지막 장면에 이런 자막까지 적어 넣는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분명한 사명 하나. 우리는 이 땅에 괴롭기 위해 불행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오직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것. 모두 행복하세요!”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작가의 목소리가 날것 그대로 노출된 작품”이라며 “도덕이나 윤리 교과서에 나올 법한 메시지에 시청자들이 눈물 흘리며 호응하는 현상”에 주목했다. 수용자 개개인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최근의 문화수용 양상에서 벗어난, 매우 이례적인 반응이란 것이다.   왜일까. 심리 전문가들의 분석은 대략 이렇다. 뭐가 뭔지 모르겠는 불안정한 사회다. 열심히 살면 성공한다? 거짓말이 돼버렸다. 입시 경쟁, 취업 경쟁의 악다구니 속에서 이긴다 한들 집 한 칸 마련이 요원하다. 긴장감과 피로감에 지쳤다. 미래가 안 보이는 데서 오는 무기력감이 드라마의 선하고 따뜻한 결말을 보며 풀린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일종의 대리만족”으로 해석했고, 윤대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아무도 믿지 않지만 너무나 믿고 싶은 얘기를 해주는 순간 느끼는 힐링 효과”를 꼽았다.   이는 영화관 내 팝콘 취식이 허용되자마자 가뿐히 천만 관객을 넘긴 ‘범죄도시2’ 열풍과도 맥이 같다. 악인의 속 시끄러운 서사 따위는 필요 없다. 대중이 원하는 건 통쾌한 권선징악이다. 정의의 형사 마석도(마동석)의 압도적 주먹이 주는 카타르시스에 취할 뿐이다.   사회 현안에 대한 해법을 암시한 것도 ‘우리들의 블루스’의 특징이다. 마지막 에피소드인 옥동(김혜자)과 동석(이병헌) 모자의 화해 장면은 세대 갈등의 해결 방안에 대한 모범 답안이자 희망 사항이다. 아들 동석의 입장에서 옥동은 잘못이 많은 엄마다. 옥동은 남편과 딸을 바다에서 잃은 뒤 동석 친구 아버지의 첩이 된다. 동석은 엄마가 친구 아버지와 한방에서 “이불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자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고. 본처 아들들의 폭력까지 감내해야 했다. 아들에게 미안해 고개도 못 들어야 할 것 같은 상황인데도 옥동은 시종일관 동석에게 차갑고 당당했다. 이들의 화해를 위해선 깜짝 놀랄 반전 사연이 있을 거란 전망이 많았다. 혹자는 그 친구 아버지가 실은 동석의 친부일 것이라는 출생의 비밀까지 제기했다. 하지만 드라마는 평생 한글조차 익히지 못한 옥동의 불우한 삶을 동석이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방식을 택했다.   지금 2030세대에게 ‘꼰대’ 취급을 받는 86세대에게도 이해 안 되는 ‘레드 콤플렉스’ 부모 세대가 있었다. 삶의 뿌리가 달라 가치관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들이 다른 세대 눈높이에 맞춰 대오각성, 미안하다 사과하는 날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동석의 내레이션 “미안하단 말도 없이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이제서야 알았다. 난 평생 어머니를 미워했던 게 아니라 이렇게 안고 화해하고 싶어했단 걸”에서 드러나듯, 그저 그 시대의 삶으로 받아들이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일 것이다.   순진하면 어떤가, 유치하면 어떤가. 해피엔딩 모범 답안에 기대 희망을 읽고 싶다. 이게 대중의 솔직한 속내일지 모른다. 창작자로선 이유 있는 퇴행, 어쩌면 영리한 퇴행이다.  이지영 / 한국 문화팀장문화난장 노희경 행복 행복 행진곡 노희경 작가 드라마 제작발표회

2022-06-24

“5·18 정신은 계속 살아 있다”

“1980년 5월 18일, 완전 무장한 공수부대가 대학생 시위대를 무차별 폭행해 피 흘리게 하고 트럭에 던져버리는 잔악무도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21일 애난데일 맥길 뷔페에서 열린 ‘국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서 이문형 전 호남향우회장이 5·18 당시 처참한 광경을 설명하는 경과보고를 시작하자 100여 명의 청중은 숙연해졌다. 김동기 총영사는 국무총리의 5·18 기념사를 대독했다. 황교안 총리는 기념사에서 “5·18 민주화 운동을 통해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큰 진전이 있었다”며 “5·18 정신을 밑거름 삼아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고 자유롭고 정의로운 나라 건설에 힘쓰자”고 말했다. 호남향우회 맥 김 회장은 5·18을 통해 약자가 보호받고 사람이 사람답게 대접받는 정의로운 국가로 도약했다고 말했다. 임소정 연합회장은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 참여율을 높여야 한다며 유권자 등록에 힘써 줄 것을, 김태원 VA 한인회장은 세월이 흘렀지만 5·18 정신은 계속 살아있을 것이라고 인사말을 전했다. 이날 행사에는 최승민 마제스트 마샬 아츠 관장과 학생들이 태권도 공연, 김은수 소리청 원장과 원생들이 국악공연을 펼쳤다. 메릴랜드 호남향우회와 민주평통 워싱턴 협의회, 워싱턴 통합 노인연합회, 재미 한국계 시민연맹, 독도지킴이 세계연합 등 단체도 후원했다. 심재훈 기자

2016-05-23

'5월의 광주' 36주년 …5·18 정신 되새긴다

1980년 5월 광주에서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신군부에 항의해 학생, 시민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다 공식기록으로 165명이 사망하고 76명이 실종됐으며 3383명이 부상당했다. 당시 계엄령에 저항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났지만 광주는 외곽이 봉쇄돼 출입이 통제되고 전화 마저 두절된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신군부가 투입한 계엄군과 공수부대가 유혈진압을 펼치면서 이에 맞서던 시민들이 학살을 당했다. 광주 시민의 피와 희생은 반독재 민주화 운동의 불씨가 돼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져 한국 민주주의의 꽃을 피웠고 광주는 이후 민주화 성역이자 성지가 됐다. 야당 정치인들이 동작동 국립현충원 헌화에 앞서 5.18 민주묘지를 먼저 찾는 것도 '5월 광주'에 그만큼 큰 빚을 졌기 때문이다. 올해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벌어진 지 36주년이 되는 해다. 18일 오후 6시30분 LA 생명찬교회에서 36주년 기념식을 개최한다. 1부는 통상적인 기념식이 열리고 2부에서는 '5.18정신과 20대 총선의 호남 민심'을 주제로 한 좌담회가 열린다. 지난 4월 총선에서는 정통 야당을 표방해온 더불어민주당이 호남 지역에서 참패했다. 야권의 텃밭인 호남에서 야권의 적통을 주장해온 더민주가 패배하면서 호남 민심의 변화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곽건용 목사 등이 패널로 참여하는 이번 좌담회에서 이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를 할 예정이다. 기념식과 좌담회에는 누구나 참석할 수 있으며 예약은 필요없다. ▶문의: (213의380-9801 신복례 기자 shin.bonglye@koreadaily.com

2016-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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