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칼럼] 상조회 해산에 담긴 의미
상부상조는 서로서로 돕는다는 말이다. 상부도 서로 돕는 것이고, 상조도 서로 돕는다는 의미다. 우리에겐 상부상조하는 오랜 전통이 있다. 오렌지카운티 한인사회에도 상부상조에 해당하는 일들이 많다. 한인 단체들이 골프 대회를 통해 서로 기금 마련을 도와주는 것, 각종 행사를 열 때 서로 프로그램에 광고를 내주는 것도 그 예다. 개인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다. 따지고 보면 상부상조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 잘 알고 지내며 전입과 전출이 매우 드문 농경사회 또는 직장을 비롯한 소규모 공동체에 적합하다. 미국에 사는 한인이 생활 속에서 실천한 상부상조의 대표적인 예가 계와 상조회다. 계는 구성원들이 꼬박꼬박 곗돈을 내고, 또 구성원 중 누군가 돈을 챙겨 사라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어야 존속할 수 있다. 상조회도 누군가 사망했을 때 회원들이 정해진 상조금을 내고, 상조회 운영 주체가 기금을 잘 관리할 것이란 신뢰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오렌지카운티에 한인 이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970년대 중반 이후 오랜 기간 한인사회는 이른바 메인스트림과 겉도는 일종의 섬과 같았다. 자연스럽게 교회, 한인회를 중심으로 이민자들의 공동체가 형성됐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엔 계와 상조회가 잇따라 생겼다. 그런데, 이후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먼저 사회적 파장으로 주목받은 건 계다. 지금이야 대규모 계는 찾아보기도 어렵게 됐지만, 15~20년 전만 해도 미국의 한인사회 곳곳에선 계로 인한 피해 소식이 끊이지 않았다. 개중엔 계주가 다른 이의 이름으로 여러 계좌를 만들고 수차례 회원들의 돈을 받은 후 잠적하거나 1명이 여러 계에 들고 돈을 받는 시점을 조정해 목돈을 챙겨 달아난 경우, 수년에 걸쳐 인간관계를 맺은 뒤 대규모 계를 조직해 거액을 받고 도망치는 사례도 있었다. 미국 법으로 보호받는 것조차 어려운 계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가입한 이 중엔 신분, 세금 문제로 은행 융자를 받을 수 없는 이도 많았다. 이런 문제는 한인사회 경제 규모가 성장하면서 개인의 상황도 안정되고 한인 은행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감소했다. 상조회 관련 문제도 2000년을 전후해 불거지기 시작했다. 회원이 줄어 상조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못하거나 상조회 운영진이 기금을 유용하는 사례가 언론 매체에 등장하는 일이 잦아졌다. 대규모 상조회의 경우, 기금 유용보다는 회원 감소로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많았다. 한인 이민자가 증가하면서 시니어 인구도 함께 늘자 곳곳에 생긴 상조회는 이민자가 감소하는 와중에 회원 고령화 추세가 이어지자 차례로 한계에 직면했다. 33년 역사를 지닌 OC한미노인회 상조회도 지난달 해산 결정을 내렸다. 상조회 해산은 어쩌면 예고된 비극이다. 노인회 상조회 측에 따르면 회원 수가 손익분기점 아래로 떨어진 시점은 2017년 즈음이다. 노인회는 총회를 열어 회원들에게 어려움을 알리고 월 10달러씩 회비를 걷기로 해 급한 불을 껐다. 이후 엄습한 코로나19 팬데믹은 상조회 해산의 방아쇠 역할을 했다. 신규 회원 가입이 드문 가운데 고령 회원의 별세가 잇따르자 적립한 기금이 급속도로 감소한 것이다. 결국 노인회는 상조회 회원 다수 의견에 따라 상조회 해산을 결정했다. 노인회 상조회의 해산은 회원 외에도 이를 지켜보는 많은 이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동시에 시대적 변화란 거대한 물결을 거스르는 것이 매우 힘들다는 것을 일깨웠다. 계와 상조회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건 어쩌면 필연적이다. 유용하고 좋았던 것도 시대가 변하면 현재를 떠나 과거가 된다. 함께 떠나 보내지 말아야 할 것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상부상조의 전통이다. 임상환 / OC취재담당·부국장중앙 칼럼 상조회 해산 상조회 운영진 상조회 관련 오렌지카운티 한인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