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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경험담 들으며 '눈물'…통일교육위원 OCSD협

통일교육위원 오렌지샌디에이고협의회(회장 이규성, 이하 OCSD협의회)는 지난 2일 부에나파크 경찰국 내 커뮤니티 룸에서 북한 인권 세미나를 열었다.   OCSD협의회 측은 이날 5명의 남녀 탈북민을 초청해 북한 인권 실태를 청취했다. 과거 두 차례나 탈북 실패로 교화소 생활을 하고 세 번째에야 뜻을 이뤄 미국에 왔다는 L씨는 힘겨웠던 탈북 과정을 공유했다.   2011년에 미국에 온 C씨는 쉼터에서 생활하고 있다며 탈북민들의 미국 정착이 순탄하지 않다는 점을 일깨웠다.   17세에 탈북해 미국에 온 지 1년 됐다는 J씨는 가족 중 정치범이 있어 탈북을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OCSD협의회 측 초청으로 세미나에 참석한 조이스 안 부에나파크 부시장은 탈북민에게 도움이 될 만한 메디캘, 메디케어, 저소득층 보조 하우징 등의 정부 기관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또 탈북 과정에서 겪은 정신적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한 헬스케어 프로그램에 관해서도 설명하는 등 생활에 유익한 정보를 제공했다.   이규성 회장은 “신문 기사를 보고 세미나에 관해 알게 돼 참석한 한인도 세 분 있었는데, 한 분은 탈북민들의 사연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행사가 끝난 뒤엔 이런 행사를 마련해줘 감사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탈북민들의 용기와 고통은 상상하기 어려운 정도였다. 내년에도 세미나를 열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오렌지와 샌디에이고 카운티 거주 탈북민 중 OCSD협의회에 문의할 것이 있는 이는 전화(213-800-2277)로 연락하면 된다고 전했다. 임상환 기자북한 탈북민 탈북민 경험담 남녀 탈북민 통일교육위원 오렌지샌디에이고협의회

2024-11-07

탈북민과 대화의 장 마련…오렌지샌디에이고 평통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오렌지샌디에이고협의회(회장 설증혁, 이하 평통)가 내달 16일(토) 가든그로브의 OC한인회관(9876 Garden Grove Blvd)에서 '탈북민과의 대화' 시간을 갖는다.   평통은 지난 26일 가든그로브 사무실에서 진행된 운영위원회를 열어 내달 16일 오후 3시부터 자문위원 전원이 참석 대상인 4분기 정기 회의를 갖고 오후 4시30분부터 6시까지 '남북 통일 정책과 자유 통일 독트린' 강연과 탈북민과의 대화 행사를 잇따라 열기로 결정했다.   평통 측은 강연과 탈북민과의 대화는 관심 있는 이라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으며, 저녁 식사도 제공한다고 밝혔다.   설증혁 회장은 "현재 탈북민 3명의 참석이 확정됐고 앞으로 1~2명을 더 초청할 예정이다.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며 북한에 관한 궁금증을 해소할 좋은 기회이니 많은 한인이 참석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연은 강승규 전 고려대학교 북한학과 교수가 진행한다. 설 회장은 "최근 북한군이 러시아를 돕기 위해 우크라이나 전선에 배치됐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를 포함해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에 관한 설명을 많이 해줄 것을 부탁했다"고 설명했다.   운영위원회는 연말, 내년 행사 계획도 논의했다. 평통 측은 12월 중 연말 모임을 갖기로 했으며 내년 1월 25일(토) 신년하례식을, 내년 3월 초에 차세대 장학금과 통일 기금 마련 골프대회를 각각 치르기로 했다.   또 여름 방학 중 차세대 모국 안보 투어를 진행하고 한국전 75주년과 광복 80주년을 기념하는 '통일 음악회'도 열 계획이다.   문의는 전화(714-357-6664)로 하면 된다. 임상환 기자탈북민 대화 대화 행사 현재 탈북민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2024-10-29

터너 대사 주재 탈북자 지원회의

탈북민의 성공적인 미국 정착을 지원하기 위한 원탁회의가 지난 18일 워싱턴 DC 국무부에서 열렸다.     한인인 줄리 터너 북한인권대사가주재한 이날 회의에는 탈북민을 지원하고 있거나 앞으로 지원하고자 하는 다양한 기관과 개인들이 참여했다. 한인가정상담소(KFAM·소장 캐서린 염)의 제니퍼 오 부소장과 폭력 피해자 지원을 담당하는 김선희 디렉터도 자리해, 탈북민 지원 활동에 대한 경험을 공유했다.     KFAM은 2017년부터 탈북민들에게 재정 지원, 상담, 인신매매 피해자 사례 관리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오고 있다. 이번 회의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탈북민을 돕는 타 기관들과의 협력 방안을 논의할 수 있는 중요한 자리였다.   터너 대사는 “이번 회의는 각 기관들끼리 서비스와 자원을 공유해 최선의 방안을 모색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KFAM은 “이 행사를 통해 다양한 기관들이 협력하고 지원 체계를 강화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면서 “앞으로 탈북민들에게 장기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할 네트워크가 구축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KFAM은 탈북민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민자와 취약 계층을 위한 지원 활동을 지속할 계획이다.지원회의 탈북자 탈북자 지원회의 터너 대사 탈북민 지원

2024-10-24

목숨 건 탈북…넘지못한 편견의 벽

누리지 못했던 자유 하나만 바라보고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했다. 제 3국을 거쳐 어렵게 미국까지 온 그들이  먼저 마주한 것은 자유와 희망, 행복 대신 차별과 편견이었다.   지난 12일 LA한인타운에서 열린 ‘북한이탈주민의 날’ 기념 제1회 미주 탈북민대회에서는 미국에 사는 탈북민 50여명이 자리해 그들만의 아픔을 나누고 알렸다. 이날 탈북민 권정순, 고명옥씨에게서 생사를 오간 탈북 이후 그들이 마주한 사회의 안타까운 현실을 직접 들었다.   ▶3차례 강제 북송 … 미국 정착   함경남도 단천 출신의 권정순씨는 강제 북송만 세 번 당했다. 어떻게 탈북을 네 번이나 할 수 있었는지 묻자 그는 “보위부에서 근무하신 부모님 인맥의 도움도 있고, 집안 친척 중 고위 인사가 여럿 있었다”고 간략하게만 말했다.     지난 1997년 7월 중국으로 첫 탈북을 감행했다. 가난 때문이었다. 무작정 돈을 벌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는 “부모님 모두 보위부에서 근무해 어려서는 가난이라는 걸 몰랐다”며 “그런데 부모님들이 고난의 행군 때 돌아가셔서 형편이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권씨가 향한 곳은 중국 연길이었다. 그녀는 “흔히 말하는 인신매매였다”며 “모르는 중국 남자한테 돈 받고 팔려가 3년간 같이 살았고 딸도 하나 있었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당시 권씨의 나이는 26세였다.   2003년 중국에서 강제 북송된 그녀는 지난 2009년 2월 다시 탈북했다. 중국 쿤밍, 태국을 거쳐 한국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가 마주한 한국은 차별과 편견의 사회였다. 그는 “식당에 취직해 첫 월급 130만 원을 받았다”며 “나중에 알고보니 다른 직원들의 첫 월급은 180만원이었다”며 차별을 설명했다.     한국 경찰의 편견도 있었다. 술자리에서 합석한 남성이 친구 몸을 더듬고 뺨을 때려 경찰에 신고했지만 출동한 경관들은 오히려 권씨 일행을 불법체류자로 의심했다고 한다.   권씨는 지난 2017년 미국에 왔다. 중국에서 친하게 지냈던 중국인 친구를 만나러 왔다가 지금의 한인 남편을 만났다. 미국에서조차 편견을 마주한 그녀는 탈북민 단체를 운영하게 됐다. 미주북한인권통일연대 회장직을 맡아 탈북민 인권 제고에 앞장서고 있다. 권씨는 “한국 정치권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진심으로 탈북민의 인권을 외치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며 “일부 한인 단체들은 탈북민이라는 주제를 들먹이며 소위 돈벌이를 하려고 한다. 진심으로 탈북민들에게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중국에 있는 그리운 딸   함경북도 출신의 고명옥씨는 권씨와 달리 한국을 거치지 않고 바로 미국에 왔다. 2008년 고씨는 아들을 출산한 지 한 달 만에 탈북했다. 산후조리도 못 한 몸을 이끌고 갓 태어난 아들까지 업어가며 추운 강을 건넜다. 그 후 중국, 베트남, 라오스, 태국을 거쳐 7년만인 2015년 미국에 도착했다. 지금은 유타에 살고 있다. 미국을 선택한 계기를 묻자 “태국 난민 수용소에서 한국을 가려고 했는데 아들이 영어권 나라로 가고 싶다고 했다”고 답했다.   탈북민이라는 사실로 고씨는 온갖 고초를 겪었다. 탈북 이후 겪었던 어려움에 관해 묻자 고씨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그때 생각만 하면 말 못할 정도로 마음이 무거워지고 지금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며 “북한 사람인 걸 알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에서는 탈북민 여성들이 인신매매로 물건처럼 팔려가는 경우가 많다”며 “연령별로 1000위안(약 138달러), 5000위안(약 687달러) 등에 팔려간다”고 설명했다.     고씨가 탈북한 지 3년 후 고씨의 딸도 뒤따라 중국으로 탈북했다. 그는 “딸이 중국 애들과 어울렸는데 중국인 부모들이 딸이 북한인이라는 이유로 어울리지 못하게 했다”면서 “딸이 커서는 중국인들에게 북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맞기도했다”고 전했다.   고씨의 희망은 인간다운 삶이다. 그는 “중국에서는 신분 문제 때문에 아들이 학교도 다니지 못했다”며 “미국에서는 착실히 공부해 사회에 기여했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밝혔다. 탈북민을 향한 차별과 편견에 대해서는 “딱한 북한 동포들을 품어주길 바란다”며 “미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에서도 여러 방면으로 도와달라”고 말했다. 김경준 기자고난 핍박 여성 탈북민들 미주 탈북민대회 거주 탈북민

2024-07-15

“탈북민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알죠”

지난 5월 퀸즈 오클랜드 가든 하크네시야교회(담임목사 전광성)에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뉴욕협의회(회장 박호성)의 도움을 받아 시사회를 열었던 탈북민 영화 ‘도토리’의 제작진이 다시 한 번 뉴욕을 찾았다. 중국과 북한이 1960년 체결한 ‘밀입국자 송환협정’에 따라 중국이 경제적 난민으로서의 탈북민을 인정하지 않고 200~600명씩 이벤트성으로 북한에 송환하는 현실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다음달 12일 뉴욕일대서 항의 시위를 진행하고, 내년 제작에 돌입할 영화 ‘웜비어(가제)’와 관련한 준비를 할 예정이다.   28일 이 같은 홍보를 위해 뉴욕중앙일보 본사를 찾은 마영애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허영철 원코리아 미디컴 대표이사 겸 감독, 배우 이자은, 김희연 세계탈북여성지원연합 대표는 한 목소리로 중국의 탈북민 송환 과정의 인권 유린 처사를 방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현재 ▶북한 형법 제47조 ▶제117조에 의해 북한으로 강제 송환된 이들은 북한을 배신한 이로 낙인, 7년 이하의 노동교화형 등에 처해진다. 이 같은 강제 송환 원칙에 탈북민들은 강하게 반발중이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탈북민인 허 감독은 ▶제작진 2인 ▶탈북민 출신 등 배우 100여명의 재능기부 등으로 모여 만든 지난 영화에 이어,  북한에 억류됐다가 석방 직후 숨진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건 관련 영화를 구상하고 있다. 홍보를 위해 다음달 26일 귀국까지 뉴욕주는 물론 뉴저지주도 방문하며 ▶강제북송 반대 시위 ▶탈북민 미팅 ▶뉴저지주의회 방문 등을 소화한다.   허 감독은 “직접 겪은 우리가 잘 만들 수 있는 스토리”라며 “다른 목적으로 웜비어 사건을 콘텐트화하려는 이들이 있어 빨리 제작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앞서 마 위원으로부터 지원받아 영화를 만들었듯, 이번에도 성실히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많은 후원을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마 위원은 “2000명이 넘는 탈북자가 중국 감옥에 대기하고 있다”며 “국제형사재판소에 탈북민 인권 문제 관련 소를 제기하고 7~8월 예정된 탈북민 권리 향상 활동을 위해 제가 운영하는 국제탈북민인권연대가 허 감독 등을 초청했다”고 했다.   새 영화에서 안내원 역할을 맡을 것이라는 이 배우는 “영화를 촬영하며 많은 걸 배웠고, 탈북민 인권 문제를 위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사명이 생겼다”고 했다. 글·사진=강민혜 기자 kang.minhye@koreadailyny.com중국 탈북민 탈북민 영화 탈북민 송환 탈북민 출신

2024-06-28

탈북자들이 증언한 "북한 속 자본주의 실태"

    "북한에서도 돈이 없으면 살 수 없으며 그 중심은 장마당이다. 그러나 장마당에서 돈많은 사람은 결국 죄인이 되고 만다."   자유북한연대(수잔 숄티 대표)가 연방의회와 UN 등에서 탈북민 증언 행사를 개최했다.     자유 북한 연대는 지난 18일 UN에 이어 19일 연방 의회내 레이번 빌딩에서 북한 장마당 활동과 개인 사업을 통해 제한적인 자본주의를 경험했던 탈북민들의 증언 행사를 개최했고, 20일에는 영 김 의원 사무실 등을 방문해 탈북민들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이들 탈북민들은 배유진, 김지영, 김항원 씨 등으로 "북한의 장마당 등을 통해 돈을 모았다가 적발되면 당국의 철퇴를 맞고 몰락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접적인 북한 내부의 자본주의 시장은 사라져서 안되고 지속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북한 주민 80%가 장마당을 통해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김일성 대학을 졸업하는 등 엘리트 계층으로 북한에서 살았던 김지영 씨는 김일성 주석의 사망과 이어진 '고난의 행군' 시기를 겪으며 북한 체제에 회의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는 "대학에 입학하지 못한 친구 중 한 명이 장사꾼으로 시장에서 부를 쌓으며 가족 중 누구보다 잘 살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식당을 개업해 운영하다 적발돼 고초를 겪었고, 결국 북한을 탈출했다"고 전했다.     배유진 씨는 량강도 예술단의 가수이자 노동자로 일하다가 고난의 행군 기간 동안 북한 당국이 식량 배급과 월급 지급을 중단하자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시장 체제에 뛰어들었다. 그는 "장마당이 확장되기 시작하면서 중국 상품과 남한 드라마를 거래하며 부자가 됐다"고 했다. 그러나 당국에 적발돼 전재산을 몰수 당했고, 결국2019년 가족들과 대한민국으로 탈북했다.     김항원 씨는 국영 건설회사에서 3년간, 혜산 방직공장에서 4년간 노동자로 일했다. 그러나 기근이 이어지며 국경 지역 인근에서 중국인들과 북한산 광물을 쌀과 옥수수 가루로 바꿔치기 하는 자영업을 시작했다. 시작했습니다.  사업이 번창하면서 그를 따라하는 업자들도 생겨나고, 전국적인 유통 사업까지 일궜다. 하지만 당국의 단속과 주변인들이 검거되자 위협을 느껴 2008년 북한을 탈출했다.  박세용 기자 spark.jdaily@gmail.com북한 자본주의 자본주의 실태 자본주의 시장 탈북민 증언

2024-03-24

“북한을 넘어, 전 세계의 억압받은 이들에게 바칩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북한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인권에 대한 얘기입니다. 전 세계 억압 속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 영화를 바칩니다”   탈북민 일가족의 탈북 과정을 생생하게 담아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다큐멘터리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의 공동 제작자인 수 미 테리 전 월슨센터 국장은 자유와 인권에 대한 목소리를 냈다. 그는 자택에서 진행된 뉴욕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세계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평생 경험해 보지 않았던 분야에 뛰어들었다”고 전했다.     ‘비욘드 유토피아’는 북한 인권의 실태를 보여주며 탈출하려는 이들의 목숨을 건 여정과 이들을 돕는 김성은 목사의 헌신적인 얘기를 담은 탈북 인권 다큐로, 2023 선댄스영화제 관객상, 2023 햄튼국제영화제 2관왕 등에 오르며 많은 상을 안았다. 또 미국 아카데미시상식 장편 다큐멘터리 부문 예비후보, 영국 아카데미 다큐 부문 최종 후보에 들었다. 비록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탈북 과정을 그대로 담았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으며 전국 600개 극장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북한 출신 조부모님으로 인해 북한에 관심을 가져 중앙정보국(CIA), 윌슨센터, CSIS 등에서 약 25년을 한반도 전문가로 일하며 북한에 대해 분석해 오던 그가 어쩌다 다큐멘터리 제작에 뛰어들게 됐을까.   다음은 수 미 테리 제작자와의 일문일답.     -25년간 한반도 전문가로 북한에 대해 분석해 오다가, 갑자기 다큐멘터리 제작자가 된 계기가 있다면.   “영화의 공동 제작자인 ‘제나 에델바움’을 뉴욕 학부모 모임에서 만났다. 제나의 아이와 우리 아들이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다. 영화 프로덕션을 운영하던 제나가 ‘일곱 개의 이름을 가진 소녀(The Girl With Seven Names: 탈북자 얘기를 담은 책)’를 읽고 내게 물었다. 뉴욕에서 충분한 교육을 받은 본인을 포함해,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이토록 충격적인 얘기를 모를 수가 있냐고. 북한에 대해 아는 대부분의 이슈는 핵, 미사일 얘기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책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자 했고, 북한에 대한 자문이 필요해 내가 참여했다.     나 또한 모든 커리어를 북한을 연구하며 보냈지만 아무리 논문을 내고 강연을 해도 영화만큼의 임팩트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시각에서 북한을, 또 북한 인권 문제를 조명해 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에 제작자로 참여하게 됐다”       -‘비욘드 유토피아’를 통해 세계적으로 어떤 변화를 이끌어내고 싶은지.   “다큐를 제작한 가장 큰 목적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북한의 실상에 대해 알리기 위해서다. 이를 통해 ‘인권’, 그리고 ‘피난민’에 대한 세계인들의 인식을 높이고자 했다. 자유라는 것을 얻기 위해 어딘가에서 이토록 처절하게 발버둥 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전 세계에 억압받은 이들은 북한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북한을 넘어 조금 더 광범위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선댄스영화제 관객상 수상, 영국 아카데미 다큐 부문 최종 후보로 오르는 등 많은 영광을 안았다. 비욘드 유토피아만의 차별성은 무엇인지.   “막대한 위험을 감수한 것이 차별성이 아닐까. 우리는 단순히 육체적인 위험을 넘어서 목숨을 걸어야 했다. 탈북민들, 그들을 돕는 김 목사, 하물며 제작사까지 목숨 걸고 제작에 들어갔다. 재연을 통해 탈북 과정을 알린 콘텐트는 많지만 이렇게 탈북 과정을 그대로 담은 다큐멘터리는 처음이다. ‘다큐’라는 장르 자체가 조금 지루할 수도 있는데, 탈북 과정의 긴장감이 그대로 드러나니 관객들이 탈북민들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을 거다. 나 같은 사람이 강연이나 인터뷰를 통해 북한에 대해 얘기하는 것보다, 청중들이 다큐를 통해 탈북을 간접 경험한 것이 훨씬 큰 영향력이 있었을 것이다.”       -영화는 실제 탈북민인 이소연 씨 가족의 탈북 과정을 조명한다. 위험한 상황 속 촬영은 어떻게 진행됐는지.   “다른 다큐멘터리와 다르게 우리 영화에는 어떠한 고가 장비도, 특별한 촬영 기술도 사용되지 않았다.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에 탈북을 도운 김성은 목사와 브로커, 이 씨 가족이 직접 아이폰으로 촬영했다”       -최근 뉴욕 일원 한인들이 ‘탈북민 강제 북송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매우 지지한다. 다큐의 주인공인 이소연 씨도 뉴욕에서 관련 시위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다큐에서 전하는 메시지 중 하나가, 북한 인권 문제는 탈북을 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탈북은 그저 첫 단계에 불과하다. 중국 정책만 바뀌더라도 많은 것들이 달라질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미약하지만 시위를 통해서라도 중국 정부에 압력을 가할 필요가 있다”       -뉴욕중앙일보 독자들에게 한마디.   “12살에 미국으로 넘어와 오랜 기간 여기 살았다. 그러다 보면 모국에 대한 관심은 자연히 줄어들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의 뿌리는 한국이기 때문에, 모국의 역사와 실태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혹시 아직 안 보신 분들이 있다면 꼭 다큐멘터리를 관람하고 주위에 북한의 실상에 대해 알렸으면 좋겠다.”  글·사진=윤지혜 기자 yoon.jihye@koreadailyny.com북한 세계 다큐멘터리 제작자 다큐멘터리 영화 탈북민 일가족

2024-03-21

[덴버] 탈북민 토크 콘서트 개최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덴버협의회(회장 곽인환)가 주최하는 탈북민과 함께하는 토크 콘서트 및 신년하례식이 지난 4일 오후 4시 덴버의 주간포커스 문화센터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행사에는 자문위원을 비롯해 샌프란시스코 강현철 부총영사와 마이크 코프만 오로라 시장, 지역인사 등 약 90여명이 참석했다.   곽인환 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힘찬 기운을 가진 청룡의 해를 맞았다. 이러한 기운을 받아 북한의 인권이 회복되고 경제도 활성화되어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회복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면서 북한 주민들의 인권 회복을 강조했다.     마이크 코프만 오로라 시장은 "초청해주셔서 영광이다. 아버지가 한국전 참전용사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한국과의 관계는 의미가 깊다"면서 "대한민국은 세계 경제 10위로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통일이 된다면 시너지가 발생해 더 발전한 한국의 모습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2부는 정용수 해병전우회장의 진행으로 탈북자 박유나씨와의 토크콘서트가 진행되었다. 그녀는 3년간 난민수용소에 있다가 2008년 10월 미국으로 와 덴버에 정착했다.   그녀는 북한의 세습체제에 대해 북한 주민들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12년의 초중고등학교의 의무교육이 명시되어 있지만 사실상 경제적 여건으로 시행되기 어렵다는 등의 북한 현실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다.     또, 미국 정착 이후 북한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여행의 자유, 언론의 자유,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권리, 노력한 만큼 벌 수 있다는 것 등을 장점이라고 꼽기도 했다.   이날 민주평통 측은 박씨에게 약간의 지원금과 쌀, 라면 등을 전달했다. 글·사진=공혜민 기자덴버 탈북민 콘서트 토크 콘서트 탈북민 토크 인권 회복

2024-02-09

탈북민에 30만불 지원…라구나우즈빌리지 한인들

오렌지카운티의 대표적 실버타운 라구나우즈빌리지 거주 한인들의 탈북민 돕기 후원금이 누적 총액 30만 달러를 돌파했다.   후원금 모금을 위한 이메일 발송 봉사를 하는 김홍식씨는 “탈북민 1명 구출 비용 3000달러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지난해 말 100번째 북한 주민 구출 비용을 관련 비영리기관에 전달했다. 2013년에 처음 구출 사업을 시작했으니 딱 10년 만에 총 30만 달러 기부를 마친 셈이다. 올해 들어서도 벌써 기부금 7000달러가 모였다”라고 밝혔다.   김씨는 “따로 조직이 갖춰진 것은 아니며, 개개인이 관심을 갖고 지원한 덕분이다. 탈북민이 중국에 숨어 살며 어렵게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들이 자연스럽게 탈북민 구출 활동을 시작한 것이 벌써 올해로 11년째”라고 설명했다.   구출된 탈북민의 수가 해마다 늘자 한국에 정착한 탈북 학생들을 장차 통일 한국의 인재로 육성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 수년 동안 탈북 학생들을 라구나우즈빌리지로 이들을 초청해 격려하는 행사를 열어온 한인들은 하비스트 월드미션의 후원으로 지난 18일 한국 부산의 장대현 탈북민 학교(중, 고교) 임창호 교장과 학생 2명을 단지 내 7번 클럽하우스에 초청해 대화를 나눴다.   김씨는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과 학생이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차별, 가난으로 인해 일반 주민보다 자살률이 높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앞으로 장대현 학교 학생 20명 전원을 순차적으로 미국에 초청하자는 다짐을 하는 이도 있었다”라고 전했다.   라구나우즈빌리지 한인들은 탈북민 자녀를 위해 장학금도 주고 있다. 지난해엔 8명의 학생을 초청해 각 1000달러를 전달했다.   탈북민 후원 문의는 전화(626-485-5386)로 하면 된다. 임상환 기자탈북민 지원 탈북민 구출 장대현 탈북민 탈북민 후원

2024-01-24

내가 경험한 북한은 생존 욕구 치열한 나라

북한-중국-태국 탈북 루트 동행하며 촬영 최초의 탈북민 체험·북한 실상 기록 노력 공포 속에 살아도 꿈·더 나은 삶 열정 있어   ‘비욘드 유토피아’(Beyond Utopia)는 탈북민들의 억압받는 인권과 열악한 처지를 세상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한 다큐멘터리다. 자유를 향한 북한 주민들의 참담한 이야기인 이 작품은 아카데미상 다큐멘터리 부문(장편) 예비후보(Shortlist)에 오르며 그 성과를 인정받았다.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북한 주민의 탈북 여정에 동행한 마델린 개빈(사진) 감독과 일문일답을 나눴다.     -‘비욘드 유토피아’는 어떻게 시작됐나.   “프로듀서인 제나 에델바움과레이첼 코헨이 북한 인권운동가이현서의 회고록 ‘나의 일곱 번째 이름’의 판권을 확보한 후 나를 찾아와 다큐 제작을 제안했다. 처음엔 북한에 대한 어떤 연관이나 전문 지식이 없던 나는 그들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이현서의 책을 읽으면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후 몇 달 동안 자료들을 수집했다. 또한 VPN을 사용하여 여러 나라의 웹에 널려 있는 정보들을 탐색하고 번역을 하면서 방대한 자료들과 몰래카메라 영상들을 찾아냈다. 내가 경험한 북한은 신비한 나라이면서 동시에 생존의 욕구가 치열하게 살아 움직이는 나라다.”   -특별히 도움이 된 자료는.   “LA타임스의 한국 특파원을 지낸 바바라데믹의 ‘부러울 것이 없다: 북한의 평범한 삶’(Nothing to Envy: Ordinary Lives in North Korea)이 큰 도움이 됐다. 그녀는 탈북민을 인터뷰한 몇 안 되는 저널리스트 중 한 명이다. 북한의 삼엄한 통제에도 불구하고 북한 사람들이 얼마나 활력 있고 강한 의지로 살고 있는가를 통찰하는 책이다.”   -실제 만나본 이현서에 대한 인상은.   “다큐 제작을 위해 이현서에 관한 많은 자료를 검토하고 있던 중, 그녀가 뉴욕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녀와의 감격스러운 만남, 5분 후 나는 그녀와 사랑에 빠졌다. 이현서는 내가 만난 그 누구보다도 깊은 사고와 복잡한 심리를 지닌 캐릭터다. 탈북자로서의 특수한 경험들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다. 이틀 동안의 마라톤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녀는 모든 걸 솔직하게 답해주었다. 여유로운 유머 속에서도 그녀가 엄청난 죄책감을 갖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녀가 있는 곳이 한국이든, 미국이든 또는 지구상 어느 곳이든, 자신의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북한 안에 갇혀 있다는 그녀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궁극적으로 영화는 다른 방향으로 전환했지만 이현서가 제공해준 정보들은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영화였다.”   -영화의 또 다른 주요 인물인 김 목사는 어떻게 만나게 됐나.   “한국 방문을 하면서 숨겨진 존재인 김 목사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됐다. 탈북자들의 안전을 위해 비밀스럽게 추진되어 온 운동의 중심에 김 목사가 있었다. 그는 탈북자들의 신변 보호를 위해 보안을 대단히 중요시한다. 그의 신뢰를 얻는 데는 여러 달이 걸렸다. 김 목사는 우리가 상상조차 하지 못한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결국 우리는 2번의 탈북 과정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의 도움으로 인해 역사상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수 있게 됐다.”   -노씨 일가가 북한을 탈출, 태국에 도착하기까지 이들과 동행을 했는데, 그 여정은 어떤 경험이었나.   “노씨 일가 5명이 북한을 탈출해 강을 건너 중국으로 들어간 뒤 장백을 유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전혀 모르고 5일 동안을 산에서 지냈다. 결국 그들은 김 목사가 주선한 농부를 만났다. 어린아이와 할머니가 있어서 더욱 힘들었다. 이들의 행선지마다 브로커들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 숫자가 50명이 넘었다. 김 목사가 모금을 해 그 경비를 충당했다.   북한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미국인들이 그들을 해칠 것이란 말을 듣고 성장한다. 할머니와 얘기를 나누면서 북한 체제가 얼마나 미국을 악마화한다는 걸 알게 됐다. 할머니는 우리가 실제로 그녀를 죽이려고 했는지 궁금해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할머니는 북한 체제가 얼마나 사실을 왜곡했는지 깨닫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떠나온 조국 북한을 너무나 사랑했다.”   -또 다른 등장인물인 소연의 탈북 여정에도 동행했는데.   “소연의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노씨 일가와 많이 다르다. 그녀의 고통을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그녀의 아들을 북에 두고 왔기 때문이다. 불과 몇 달 전까지 아들과 연락이 닿았지만 지금은 끊긴 상태다. 우리는 언어와 문화가 다르고 서로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매우 친해졌다.”   -중국에서의 영상은 어떻게 촬영했나.   “중국은 북한과 긴밀한 동맹을 맺고 있고 촬영은 불가능한 상태다. 김 목사도 수십 년 동안 그의 활동이 중국 정부에 알려져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중국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러나 브로커와 농부 등 중국 국경을 따라 깔려 있는 김 목사의 네트워크가 탈북자들을 돕고 있다. 그 과정에서 촬영된 영상들을 건네받았다.”   -북한의 실생활을 담은 몰래카메라 영상은 어떻게 입수했나.   “초기 취재를 하던 중, 지로라는 이름의 일본인이 북한의 실생활을 담은 영상 자료들을 상당수 가지고 있는 걸 알게 됐다. 영화 속 몰래카메라 영상의 대부분은 그에게서 온 것들이다. 그가 기근이 한창이던 90년대 카메라를 숨기고 북한을 드나들면서 촬영한 영상들이다. 김 목사의 네트워크도 최근 카메라를 몰래 가지고 들어가 촬영을 한다고 들었다. 목숨을 걸고 북한의 실상을 폭로하려는 용감한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가 서구의 뉴스 미디어들을 통해 보게 되는 북한 영상들은 대부분 북한 체제가 공개한 것들이다. 다시 말해 핵미사일, 성대한 퍼레이드, 김일성 일가의 신화 등 북한의 지배 권력이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들만을 보고 있다. 그 영상들에는 ‘사람’이 없다. 이는 북한의 실상이 아니다. 나는 그 너머에 있는 북한의 실상과 이전에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는 탈북민들의 체험기를 카메라에 담아 기록하고 싶었다. 공포 속에 살아도 그들에게도 꿈이 있고 보다 나은 삶에 대한 열정이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우리와 동일한 생각을 지니고 살아간다.” 김정 영화평론가북한 경험 탈북민 체험 아카데미상 다큐멘터리 몰래카메라 영상들

2024-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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