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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에 코미디 입혀…영화에 패러디 도입 첫 영화

카메라가 따라가는 곳은 오래된 성, 공포가 엄습해오고 곧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날 것 같은 예감.   그러나 보기 좋게 예상을 빗나간다. 곧바로 코믹 모드로 전환되는 반전의 시작. 놀라운 상상력, 패러디 영화의 거장 멜 브룩스 감독의 호러 코미디 ‘영 프랑켄슈타인(Young Frankenstein)’의 첫 장면이다.     프랑켄슈타인은 우리가 흔히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보아 왔던 몬스터의 이름이 아니다. 이 괴물을 창조한 과학자의 이름이 프랑켄슈타인이다. 1974년 개봉된 브룩스 감독의 ‘영 프랑켄슈타인’은 메리 셸리의 고전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원작으로 한 몬스터 장르 영화 중 하나다.   세계 최초의 SF 소설가 메리 셸리가 그녀 나이 18세 때 영국에서 ‘프랑켄슈타인’ 초판을 발표한 것은 1818년의 일이다. 소설의 대범함과 깊이 때문에 이 소설을 바탕으로 많은 영화가 만들어졌다. 1910년 무성영화 시절의 ‘프랑켄슈타인’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은 65편에 이른다. TV와 애니메이션 등을 합하면 수백 편에 이른다.     브룩스 감독의 ‘영 프랑켄슈타인은’ 1931년 제임스 웨일이 연출한 전설적 공포 영화 ‘프랑켄슈타인’을 코믹하게 패러디한 작품이다. 컬러의 시대 1970년대에 1930년대의 원작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드물게 흑백으로 촬영됐다.   1926년 뉴욕에서 출생한 브룩스는 오늘날 가장 흔한 풍자의 형태인 ‘패러디’를 영화에 도입한 최초의 감독이다. 패러디 코미디 장르의 실질적인 창시자 브룩스는 찰리 채플린, 버스터 키튼, 막스 형제와 같은 이전 세대의 슬랩스틱 코미디와 차별화된 패러디 코미디의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전형적인 호러 몬스터 장르의 외형을 띄고 시작하는 영화는 브룩스 특유의 상상을 뛰어넘는 패러디와 디테일로 가득 차 있다. 브룩스 영화의 단골 배우인 진 와일더가 전성기 시절의 개그로 영화의 웃음 코드를 이끌어 간다.     시체를 되살렸다가 세상을 혼돈 속으로 빠뜨렸던 할아버지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악명 때문에 자신이 손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살아가는 뇌 전문 외과의 프레더릭 프랑켄슈타인(진 와일더). 하지만 할아버지의 모든 재산을 상속받게 되면서 그가 살았던 트란실바니아의 거대한 고성으로 향한다.     백치미의 하녀 잉가와 괴물보다 더 무섭게 보이는 프랑켄슈타인 가문의 하인 아이고르의 안내를 받아 성에 도착, 할아버지를 돌보던 하녀 프라우를 만난다. 천둥 번개 치는 음침한 성에서 잠을 자던 그는 이상한 바이올린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고 소리를 찾아가다 할아버지의 비밀 실험실을 발견한다. 할아버지가 남긴 실험 기록들을 훑어보다가 전율하는 프레더릭!   거구의 사형수의 시체 앞에 선 그는, 할아버지의 미완성 실험을 계속하기 위해 아이고르에게 냉장실에 보관되어 있는 뇌를 가져오라고 한다. 그러나 아이고르의 엉뚱한 실수로 비정상(abnormal) 뇌를 이식, 몬스터가 태어난다.   사람이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순간, 잠에서 깨어난 괴물은 프레더릭을 죽이려 한다. 마취제로 괴물을 기절시켜 묶어 놓았지만 언제 다시 깨어날지 모른다. 마을 사람들은 프랑켄슈타인이 돌아왔다는 소식에 두려워하고 캠프 형사가 프레더릭을 찾아온다. 프레더릭은 자신은 할아버지처럼 미치광이가 아니고 괴물도 만들지 않을 거라 말한다. 그 순간 깨어나 울부짖기 시작하는 괴물.     프라우는 괴물에게 동정심을 느껴 그를 풀어준다. 마을을 전전하던 괴물은 바이올린 소리를 듣고 다가간다. 프레더릭은 할아버지의 연인이었던 프라우가 바이올린으로 자신을 실험실로 유인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바이올린 소리로 괴물을 다시 잡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를 지성인이 되도록 도와주겠다고 약속하고 자신의 뇌 일부를 그에게 이식한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의 멸시에 괴물은 괴력을 발동하고 실험실에서 탈출한다. 마을 사람들은 또다시 마을을 혼란 속으로 빠뜨린 프레더릭을 죽이려 한다. 이즈음 프레더릭과 잉가는 연인으로 발전하고 때를 같이해 약혼녀 엘리자베스가 찾아온다. 괴물에게 납치당하는 엘리자베스, 그의 거대한 남성에 반하여 괴물과 사랑에 빠진다.       뜻하지 않은 두 커플의 탄생으로 마을은 다시 평화로워진다. 잉가가 프레더릭에게 묻는다. 당신은 괴물에게 뛰어난 지성을 주었는데 괴물은 당신에게 무엇을 주었느냐고? 프레더릭이 괴물로부터 받은 ‘거대한 남성’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이 난다.     ‘영 프랑켄슈타인’은 미치광이 과학자들이 오로지 자기만의 욕망을 위하여 저지르는 반인륜적 행위들로 가득한 ‘매드 사이언티스트’ 장르의 효시 격인 작품으로 기억되며, 말도 안 되는 저급한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영화사에 걸작으로 남아 있는 이유는, 장면 장면마다 코미디를 호러로, 호러를 코미디로 전환하는 브룩스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 때문이다. 패러디의 전형을 만들어 낸 그는 1930년대 원작에 억지스럽게 충실하면서도 그만의 놀라운 상상력을 발휘한다.     브룩스 감독은 1974년 두 편의 패러디 코미디 ‘불타는 안장’과 ‘영 프랑켄슈타인’을 발표한다. 그가 두 영화를 통해 보여준 초현실주의와 저속한 슬랩스틱은 당시로써는 획기적이었다. 그러나 두 작품 모두 그의 최고의 영화라고는 볼 수 없다. 브룩스의 대표작으로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브로드웨이의 인간군상들을 충격적이고도 예리하게 풍자한 데뷔작  ‘프로듀서’(1968)가 아닐까 한다.     브룩스는 우디 앨런에 앞서 유대인들의 문화와 전통을 영화에 사용한 감독이었고 앨런과 오랜 기간 협업을 했다. 실제로 영화계에서는 앨런과 브룩스 중 누가 더 유대인을 대표하는 감독인가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지금도 지속하고 있다. 배우, 코미디언, 작가, 감독으로 활동한 브룩스가 미국에서 가장 재미있는 엔터테이너 중 한 명이라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다. 그의 나이 올해 98세.   김정 영화평론가영화 코미디 패러디 코미디 브룩스 영화 호러 코미디

2024-10-02

도쿄 카우보이…일본 세일즈맨의 몬태나 슬랩스틱

사람들은 다른 집단의 문화와 갈등하고 충돌한다. 그러나 듣고자 하는 노력이 지속하는 한 갈라져 있던 두 집단은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다른 문화 앞에서 겸손해진다. 물에서 나온 물고기의 이야기 ‘도쿄 카우보이(Tokyo Cowboy)’는 실용주의가 몸에 밴 가장 일본적인 남자가 가장 미국적인 카우보이 문화를 접하면서 겪게 되는 문화 충돌, 그리고 타문화와의 융화 과정을 그린 코미디 영화다.     일본 선교사로 활동하며 거장 요지 야마다 감독 사단에서 조감독으로 일했던 마크 메리엇의 감독 데뷔작. 그가 본 일본인들의 겸손과 문제에 봉착했을 때 개선하려는 의지가 메시지로 담겨있다.     히데키는 망해가는 기업조차도 그만의 특별한 세일즈 노하우로 살려낸 경력을 지닌 일본 식품 대기업의 세일즈맨이다. 회사 부사장이며 직속 상사인 게이코와는 비밀리에 7년간 연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회사 경영진이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몬태나의 가축 목장 ‘레이지 리버(Lazy River)’에 히데키를 파견하기로 하자 두 사람은 오랫동안 계획했던 온천 여행을 포기한다.   몬태나에 도착, 사륜구동 대신 소형 승용차를 렌트한 히데키는 잇따라 사고를 당한다. 닭떼들이 몰려와 차유리를 온통 닭똥으로 덮어 버리고 비즈니스 정장을 입은 채 말을 타다 진흙탕 속으로 떨어진다. 히데키는 목장을 와규 비프 생산지로 전환하겠다는 실용주의적 계획이 몬태나에서 먹히지 않으리란 것을 감지한다.     일련의 사고를 당하면서도 히데키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간다. 평범한 일본의 샐러리맨이 어느덧 마구 술을 마셔대는 몬태나의 카우보이로 변신해 있다. 농장 일꾼 하비에르(고야 로블레스)와 나누는 훈훈한 우정이 변화의 계기가 된다. 하비에르는 가축 농장을 포기하고 퀴노아를 재배하면 성공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히데키는 재조정해야 할 대상은 목장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관과 인생 목표임을 깨닫는다.     ‘도쿄 카우보이’는 슬랩스틱 코미디의 외형을 지녔다. 히데키가 경험하는 문화 충격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슬랩스틱으로 표현된다. 그 코믹함의 이면에 히데키의 순수한 인간성이 보이고 결국 그는 그 충돌의 현장에서 적응과 변화, 그리고 개선이라는 또 다른 실용주의적 결론에 이르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몬태나에서 재회한 히데키와 케이코는 상사와 부하, 연인 관계의 미묘한 갈등을 뒤로하고 길거리에서 발견한 자그마한 온천장에 함께 몸을 담근다.   김정 영화평론가 ckkim22@gmailcom일본 카우보이 도쿄 카우보이 카우보이 문화 슬랩스틱 코미디

2024-09-04

가족과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가 주는 감동

  1년에 한 번뿐인 특별한 날, ‘마더스데이’가 돌아왔다. 한 해가 지났다는 건 각자 세월의 흐름을 몸으로 받아들였다는 의미다. 자녀는 어른이 되어가고 엄마는 흰머리와 주름이 늘어간다. 늙는다는 건 서럽다지만 시간의 축적으로 추억이 남는다. 추억을 회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진과 영상이다. 스마트폰이 대세가 된 시대, 젊은층 사이에 ‘부모님과 함께하는 영상을 되도록 많이 남겨라’는 말이 덕담처럼 오간다. 혹시 모를 이별을 미리미리 준비하라는 속뜻이 담겼다. 영화는 간접체험으로 감정이입 효과를 낳는다. 사진과 영상이 부족하다면 영화 속 가족의 모습을 보며 우리네 삶을 비교해볼 수 있다. 마더스데이 엄마의 삶을 다룬 영화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노희경 작가의 소설이 원작이다. 소설이 입소문이 나기 시작한 뒤부터 드라마, 영화 제작이 꾸준히 되고 있다. 그중에서 배종옥, 김갑수 주연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 좋은 평을 받고 있다.     내용은 우리네 한국 엄마의 전형적인 이야기다. 내용 자체만 보면 신파 중의 신파로 보인다. 그만큼 부인하기 어려운 ‘코리안 엄마’로 대변되는 보편적 정서가 담겨 있는 셈. 한 가정의 살림을 책임지는 엄마는 슈퍼맨이다. 치매가 걸린 시어머니, 일밖에 모르는 의사 남편(그러다 병원에서 잘린다), 자랑스러운 분신인 줄 알았는데 사고 치는 딸, 철부지 아들을 돌본다. 당연히 자신보다 가족이 우선인 엄마다. 그런 엄마를 당연시하던 가족에게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엄마의 말기암.   영화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외면하고 싶은 부끄러움도 밀려온다. 분명 허구 속 이야기인데 우리 삶의 한 장면이 꼭 들어가 있다.     그 와중에 우리 엄마를 떠올리게 된다. 엄마이자, 아내이자, 며느리인 김인희(배종옥)의 삶과 투병생활을 따라가다 보면 냉정해지기가 힘들다. 특히 김인희 역을 맡은 배종옥이 화장실에서 피를 토하며 “나 왜 이러니…나 죽는 거 무서워”라고 절규할 때, 모두가 지난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한다. 때론 현실이 더 영화 같다. 관객이 ‘이 영화는 실제 이야기’라는 문구에 호감을 표하는 이유다. 꾸며낸 이야기보다 묵직한 현실이 더 와 닿기도 한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영화 같은 현실을 보여준다. 다큐멘터리다. 한국의 노부부 강계열(89) 할머니와 조병만(98) 할아버지의 지난 인생을 보여준다. 다큐멘터리는 노부부의 영원한 이별 과정을 보여준다.   흔히 노인 세대는 낭만도 모르고 애틋한 부부의 정도 인색하다는 선입견에 피해를 본다. ‘그들은 원래 그렇다’는 단정을 이 다큐멘터리는 그냥 깨부순다. 90세 전후 부부가 봄철이면 꽃놀이를 즐기고, 여름이면 개울가에서 물장구를 치고, 가을엔 지는 낙엽을 보며 서로를 바라본다. 노부부의 삶에는 공허보단 한평생을 함께 지내 온 충만함이 가득하다.     무엇이 노부부의 삶을 충만하게 했을까.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다. 다큐멘터리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면 ‘나라면…’이라는 의문에서 ‘나도…’라는 부러움이 밀려온다. 인연은 무엇이고, 함께 하는 삶이란 무엇인지 이 다큐멘터리는 잔잔하게 보여준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도 노부부의 삶은 숭고하다.   ▶고령화 가족   드라마나 영화에서 한국 가족의 모습은 틀에 박혀 있을 때가 많다. 그 전형성을 비틀었을 때 낯뜨거움과 웃음이 동시에 터진다.   고령화 가족은 내로라하는 출연진이 작정하고 망가지려 한 것 같다. 윤여정(엄마역), 박해일(아들 인모역), 윤제문(아들 한모역), 공효진(딸 미연역) 등의 연기가 실생활 모습은 아닐까 의심마저 들게 한다.     고령화 가족은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이 ‘다 커버린’ 자식들과 엄마의 이야기다. 영화는 시작부터 답답하다. 나이 마흔에 인생의 방향타를 잃어버린인 모, 교도소에서 출소한 마흔넷 한모, 이혼이 생활인 서른다섯 미연이 독립 대신 가난한 엄마 집으로 들어온다.     나이 칠십이 다 되는데 답 없는 자식을 책임져야 하는 건 엄마다. 그런 엄마에게 미안함이라도 느껴야 할 텐데 삼남매는 염치는 내던졌다. 다 큰 어른인 삼남매의 으르렁거림을 보노라면 한심함을 넘어 어이없는 웃음이 터진다.   특히 유명 배우들이 소화한 각자의 역할은 ‘세다’ 싶을 정도로 현실적이다. 우리 가족 중 숨기고 싶은 망나니들이 다 모였다.     이 코미디 영화는 ‘작정하고 다 망가진’ 모습을 보이지만 시간낭비라는 생각은 결코 안 든다. 영화의 중심을 잡아주는 엄마의 모습과 마흔 전후 삼남매의 모습에서 정을 느끼게 된다.         ▶크게 될 놈   한국 영화에서 모녀를 다룬 영화는 많지만, 엄마와 아들을 다룬 영화는 듬성듬성이다. 크게 될 놈은 코미디 성격을 띤 가족영화다. 전라도 어느 섬마을에서 나고 자란 아들 기강(손호준 분)과 기강 남매를 키우는 엄니 순옥(김해옥 분)의 이야기다.     고향을 떠나 미국까지 온 한국발 아들래미라면 영화 속 기강의 모습에 공감할 수 있다. 인구가 적은 곳 출신일수록 ‘이 지긋지긋한 동네를 떠나겠다’는 포부(?)가 아들들 마음에 자리 잡는다. 엄마는 답답함의 대명사요, 아빠는 함께 이야기를 나눌 대상이 아니라는 질풍노도 시기도 겪는다.     한국 남성의 가슴에 타오르는 불꽃을 섬마을 출신 기강은 잘 표현한다. 기강은 그 불꽃이 너무 강렬한 나머지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저지른다. 철이 들 때가 됐음에도 기강은 그 기회를 허황된 꿈과 맞바꾼다.     그런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엄니의 속은 어떨까. 엄니 순옥은 아들을 품을 수밖에 없다. “세상 모두 욕해도…나는 니 엄니여”라는 말은 이 영화가 전하고 싶은 주제다.     영화가 다소 산만할 수 있지만, 인자한 엄니와 철부지 아들의 삶을 엿보는 재미가 있다.   김형재 기자이야기 가족 한국 가족 코미디 영화 드라마 영화

2024-04-30

클라크 게이블이 세상을 홀린 ‘로맨틱 코미디’ 원조

2024년은 컬럼비아 픽처스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이다. 컬럼비아는 스튜디오 창립 10주년이 되는 1934년, ‘어느 날 밤에 생긴 일(It Happened One Night)’로 제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각본상 등 주요 5개 부문(그랜드슬램)을 석권한다. 이후 90년 동안 그랜드슬램을 기록한 영화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1962)와 ‘양들의 침묵’(1991) 두 편뿐이다.   구로사와 아키라, 마틴 스코세이지, 스티븐 스필버그 등 거장들이 존경을 표해온 이탈리아 출신 감독 프랭크 카프라가 연출한 ‘어느 날 밤 …’은 영화사에서 남녀 주인공이 톡톡 쏘는 대화로 갈등을 겪다가 깨질 듯한 우여곡절 끝에 결국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이른바 ‘로맨틱 코미디’의 효시로 기록된다.     시대를 초월한 낭만적 로드 무비, 여행지에서 만난 두 남녀 사이의 로맨스로 오늘날까지 영원한 명화로 기억되는 ‘어느 날 밤 …’은 백화점 점원, 농부, 단역 배우로 전전하던 클라크 게이블이 ‘할리우드의 제왕’으로 등극하는 발판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는 5년 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엔터테인먼트계의 불멸의 스타, 가장 위대한 남성 스타로 떠오른다.     플로리다에 사는 은행가이며 대부호의 상속녀 엘리(클로데트 콜베르)가 바람둥이 남자친구 킹 웨슬리와의 결혼을 반대하는 아버지를 피해 뉴욕행 버스에 오른다. 그녀는 버스에서 근무 중 술을 마시다 해고된 신문기자 피터(클라크 게이블)와 나란히 앉게 된다. 지갑을 잃어버리고도 신고하지 않는 엘리를 보며 피터는 기자의 본능적 호기심을 발동한다.       티격태격하는 와중에 자신의 신분을 알게 된 피터에게 엘리는 뉴욕에 도착하도록 도와주면 특종 기삿거리를 주겠다고 제안한다. 피터는 부잣집 딸의 스토리에 관심이 없다면서 엘렌의 제안을 거절한다.     폭우로 다리가 끊겨 엘리와 피터는 캠프에서 하룻밤을 함께 보낸다. 버스 기사가 승객들의 노래에 흥겨워하다 차를 도랑에 처박는 사고가 발생한다. 히치하이킹에 성공하지만 하필이면 그가 노상강도다. 이처럼 연달아 일어나는 우연찮은 사고로 인하여 두 사람은 터벅터벅 함께 걷고 밤하늘의 별을 보고 이슬을 맞으며 함께 잠을 청한다.     피터와 엘리는 호텔비를 절약하기 위해 부부로 가장하여 한 방에 투숙한다. 피터는 두 침대 사이에 줄을 매고 담요로 커튼을 치면서 엘리를 안심시킨다. 피터는 퉁명스럽고 거칠게 행동하지만 흑심을 품지 않는다. 엘리는 대부호의 딸답지 않게 고분고분하며 늘 피터에게 제압당한다. 원나이트스탠드가 간단히 이루어지는 요즘의 시대상과 달리 두 사람은 끝까지 숙녀와 신사의 품격을 지킨다.     엘리는 다음번 도착지 모텔에서 피터에게 다가간다. 헤어질 순간이 다가오자 그 없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에 사랑을 고백한다. 피터는 엘리를 잠시 안아주지만 곧 단호하게 그녀의 침대로 돌아가라 말한다. 젠틀맨다운 피터의 진면목에 엘리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잠이 든다. 이튿날 새벽녘 잠든 엘리와 아픈 마음을 뒤로한 채 조용히 모텔방을 빠져나가는 피터.     3박 4일의 여정 끝에 집으로 돌아온 엘리는 아버지의 팔짱을 끼고 식장에 들어선다. 신랑 웨슬리가 기다리고 있다. 아버지는 딸에게 속삭인다. “웨슬리를 사랑하지 않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평생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고 다시 생각해봐라. 뒷일은 내가 책임질 테니. 내가 피터를 만나봤는데 좋은 녀석이더라. 널 사랑하더구나.”   엘리는 식장을 뛰쳐나간다. 그리고 아버지가 대기시켜둔 차를 타고 저 멀리 사라진다.     ‘어느 날 밤 …’은 결혼식장에서 도망쳐 나오는 신부를 다룬 최초의 영화다. 하객들의 경악 속에 신부가 결혼식장을 탈출하는 장면은 이후 많은 영화들에서 재연되는데 ‘졸업’(1967)과 ‘런어웨이 브라이드’(1999)가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90년이 지난 오늘까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중 하나로 꼽히는 이 영화는 당시 미국 사회에 상당한 파급력을 가져왔다. ‘어느 날 밤 …’은 여배우가 자신의 각선미를 보여주며 지나가는 차를 세우는 히치하이킹 장면을 사용한 최초의 영화였다. 콜베르는 처음엔 숙녀답지 않다는 이유로 다리 노출을 거부했다. 카프라 감독은 하는 수 없이 대역을 사용했다. 촬영을 지켜보던 콜베르가 “저건 내 다리가 아니잖아!”라고 화를 내며 촬영에 응했다.   콜베르는 주변의 지인들에게 ‘최악의 영화’라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정작 그녀는 이 영화를 통해 로맨틱 코미디, 히치하이킹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이후 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그녀의 히치하이킹 장면을 패러디하기 시작했다.   영화는 또한 패션 트렌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클라크 게이블이 모텔에서 옷을 벗는 중에 셔츠 안에 내의를 입고 있지 않은 ‘파격적’ 장면은 여성들에게는 섹스 어필로, 그리고 남성들에게는 내의를 입지 않는 유행으로 이어졌다.     게이블이 도넛을 커피나 우유에 담가 먹는(Dunk-in) 장면에서 도넛 체인점 ‘던킨 도너츠’의 이름이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 ‘루니 툰’ 시리즈에서 당근을 먹는 토끼 버니도 이 영화에서 게이블이 당근을 먹는 장면을 패러디한 것인데 그 덕에 무슨 야채든 다 잘 먹는 토끼가 당근을 주로 먹는 동물이라는 근거 없는 오해를 낳았다.     두 연인이 버스에서 만나고 사랑에 빠지는 내용은 버스 여행이 시대의 낭만과 풍조로 인식되며 시외버스 여행 붐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당시 청춘남녀들은 버스 안에서 일어날지도 모를 로맨스를 기대하며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만들어 냈다.     ‘어느 날 밤 …’의 대성공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콜베르의 데뷔작이 하필이면 폭망했던 카프라 감독의 영화였기 때문에 그녀는 처음에 출연 제의에 응하지 않았다. 촬영장에서도 콜베르와 카프라의 충돌이 잦았다. 피터 역은 원래 로버트 몽고메리가 맡기로 했었지만 그가 대본을 읽고 형편없는 작품이라고 거절하자 콜롬비아는 MGM 소속의 게이블을 대타로 빌려와야 했다. 게이블은 당시만 해도 마이너 영화사였던 콜롬비아를 메이저로 부각시키며 영화 산업의 지각 변동을 일으키는 주역으로 활약하며 할리우드 신화의 주인공 자리에 올랐다. 김정 영화평론가 ckkim22@gmail.com코미디 로맨틱 클라크 게이블 로맨틱 코미디 신문기자 피터

2024-04-03

[음악으로 읽는 세상] 벼락부자 풍자 ‘서민 귀족’

태양왕 루이 14세가 군림하던 시절, 프랑스 궁정은 유럽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곳이었다. 그는 파리 근교 베르사유에 거대한 궁전을 짓고, 정사를 보는 틈틈이 사냥과 기마, 트럼프와 당구, 연극과 음악, 발레를 즐겼다. 루이 14세를 중심으로 한 프랑스 궁정의 이 ‘화려하고 떠들썩한 놀이문화’는 그 후 전 유럽 왕가의 모델이 되었다.   당시 이 궁정에서는 작곡가 륄리와 극작가 몰리에르가 손잡고 왕과 귀족들의 화려한 취미생활에 봉사하고 있었다. 륄리와 몰리에르는 오페라와 발레, 연극을 결합한 코미디 발레라는 새로운 양식을 선보였는데, 그 대표작이 바로 유명한 ‘서민 귀족’이다. ‘서민 귀족’은 주르댕이라는 주인공을 통해 부자들의 위선을 풍자적으로 폭로한 코미디 발레의 대표작이다. 주인공 므슈 주르댕은 당시 새롭게 부상한 신흥 중산층, 말하자면 ‘벼락부자’다. 돈은 많지만 평민에 불과한 그는 자신의 재력에 맞는 품위를 갖추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안고 음악, 무용, 검술, 철학 선생 등을 고용해 귀족의 생활을 배운다. 하지만 워낙 무식한 탓에 그 과정에서 온갖 해프닝이 벌어진다.   그의 딸 루씰은 클레몽트라는 청년과 결혼하려고 하지만 주르댕은 그가 평민이라는 이유로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자 클레몽트는 튀르키예 왕자로 분장해 주르댕 앞에 나타난다. 그는 엉터리 튀르키예 말을 하고 엉터리 터키식 종교의식을 치르지만, 무식한 주르댕은 그것도 모른 채 자기도 왕족이 되었다고 좋아한다.   사람들이 모두 합심해 주르댕을 속이며 엉터리로 튀르키예식 종교의식을 치르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에서 륄리의 ‘튀르키예 의식을 위한 행진곡’이 연주된다. 여기서는 대사, 음악, 연기, 연주 모든 것이 우스꽝스럽게 과장되어 있다. 배우들도, 악사들도 과장된 몸짓으로 깔깔거리며 연기하고 연주한다. 부자들의 허위의식을 까발린 그 장면을 볼 때마다 속이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다. 진회숙 / 음악평론가음악으로 읽는 세상 벼락부자 풍자 벼락부자 풍자 서민 귀족 코미디 발레

2024-02-05

귀신 안믿는 가짜 퇴마사, 호러 코미디

영화는 2014년 출간된 웹툰 ‘빙의’를 원작으로 한 초자연적 스릴러이며 판타지 드라마다. ‘빙의’란 타인의 영혼 또는 악령에게 들러붙어 깃드는 현상을 말한다.   천박사(강동원)는 악령을 무르게 하는 일을 퇴마사가 직업이다. 대대로 마을을 지켜 온 당주집 장손이지만 정작 자신은 귀신을 믿지 않으니 그는 가짜 퇴마사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사람의 마음을 꿰뚫는 통찰력으로 퇴마를 한다고 믿으며 그에게 사건을 의뢰한다.   천박사는 파트너 인배(이동휘)와 함께 유튜브 퇴마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귀신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다루고 있다고 믿고 사람을 대상으로 가짜 굿을 행한다. 어느 날 유경(이솜)이 찾아와 그들이 업로드한 유투브 영상을 꾸준히 봐왔다며 거절하기 힘든 일을 의뢰한다.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발을 빼려던 천박사는 먼저 오천을 주고, 퇴마 성공시 오천을 더 주겠다는 유경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고 인배와 함께 그녀의 집으로 향한다.   귀신을 믿지 않는 퇴마사 천박사는 귀신을 보는 유경과 함께 하는 여정에서 자신의 과거와 얽혀 있는 부적인 ‘설경’의 비밀을 알게 된다. 뜻하지 않은 ‘진짜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천박사의 내면의 아픔이 조금씩 드러난다. 그는 결국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당의 영력을 발휘하는 악귀 범천(허준호)과 한판 대결을 벌여야 한다.   ‘천박사’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과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2022)의 조감독 출신인 김성식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다. 주연과 조연들의 앙상블 연기, 참신한 소재, 예측할 수 없는 전개가 후반부로 갈수록 몰입도를 높인다. 판타지에 액션과 코미디가 가미되어 여러 장르가 혼합을 이룬 엉뚱하고 재미있는 호러 코미디다.   ‘천박사: 퇴마 연구소’는 강동원의 영화이다. 여전한 미소년의 느낌과 유머가 살아 있는 연기, 그러나 허준호와의 대결 장면에 이르러서는 그가 끌어내는 액션의 박진감이 절정에 달한다. 최근 흥행 아이콘으로 떠오른 김종수의 연기도 주목할 만하다. 늘 새로운 가면을 쓰고 관객 앞에 나서는 그는 천박사와 어릴 적부터 오랜 인연을 이어온 든든한 지원군 황사장(골동품점)으로 출연한다.   현재 한국의 추석 극장가 박스 오피스 1위에 올라 있다. 앞으로 세계무대에서 ‘한국의 콘스탄틴’ 프랜차이즈 시리즈가 되어 줄 가능성에 기대를 걸어 본다. 김 정 영화 평론가 ckkim22@gmail.com퇴마사 코미디 가짜 퇴마사 퇴마사 천박사 봉준호 감독

2023-10-06

[그 영화 이 장면] 이니셰린의 밴시

올해 골든글로브 시상식은 여러 영화가 트로피를 나누어 가진 자리였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더 파벨먼스’, 지난해 최고 화제작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그리고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와 ‘엘비스’까지 여러 작품이 호명되었다. 여기 낯선 영화가 한 편 있다. ‘이니셰린의 밴시’다. 뮤지컬 코미디 부문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그리고 각본상을 받은 이 작품은 ‘쓰리 빌보드’(2017)의 마틴 맥도나 감독이 연출했다. 한국엔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였던 이 작품은 아일랜드의 작은 섬마을 이니셰린을 배경으로 한 블랙 코미디다. 한적하고 조용하게 시작한 영화는 발화점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하게 타오른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감정은 고독이다. 매일 바에서 맥주를 나누었던 파드릭(콜린 파렐)과 콜름(브렌든 글리슨). 어느 날 콜름은 갑자기 절교를 선언한다. 남은 생을 예술에 쏟겠다는 콜름과 절친의 냉대가 섭섭하기만 한 파드릭. 고립된 섬 속에서 사는 그들은 내면마저 서로를 고립시키며, 이윽고 증오와 반목의 시간이 다가온다. 그 관계를 가장 잘 모여주는 건 집안의 콜름을 창밖의 파드릭이 바라보는 장면이다. 평범해 보이지만, 영화를 통해 그 맥락을 알게 되면 잊을 수 없을 이 장면은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복잡한 감정을 하나의 풍경으로 요약하듯 보여준다. 관객의 마음을 뒤흔들 ‘이니셰린의 밴시’. 개봉을 열망한다. 김형석 / 영화 저널리스트그 영화 이 장면 이니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뮤지컬 코미디 스티븐 스필버그

2023-01-13

[기자의 눈] 시련에서 얻어야 할 것

“계속 울래? 원한다면 그래도 돼. 하지만 웃으면서 다시 뛰어놀 수도 있어. 너의 선택이야.” 우연히 한 아이를 달래는 선생님의 얘기를 들었다. 친구와 놀다가 넘어져 씩씩대는 아이에게 선생님은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라는 평범한 위로가 아닌 선택지를 줬다. 선생님의 얘기를 들은 아이는 아직 분이 가라앉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동시에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곤 뒤로 돌아 재밌게 노는 아이들을 한번 쳐다보더니 다시 가서 놀겠다고 얘기했다. 선생님은 미소를 띠며 “그래? 다시 돌아갈 때는 눈물 그치고 웃으면서 가야 해. 그럴 수 있겠어?”라고  물었고 아이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뛰어갔다.     선생님과 아이의 대화에서 ‘선택’이란 흔한 단어가 ‘감정’과 함께 놓이니 낯설게 느껴졌다. 나름 시련일 저 상황에서 아이는 ‘슬픔’ 대신 ‘행복’을 선택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가온 시련에 어떤 반응을 하는가. 거기서 어떤 선택을 하는가.     마음에 짐이 되는 무거운 상황들이 잇따를 때 자연스레 낙담과 절망이 뒤따라오곤 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누군가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지도, 부추기지도 않았다. 그러나 많은 경우 저항 없이 그 감정들을 받아들인다. 이따금 머릿속에선 갖가지 상상의 가지들이 세차게 뻗어 나가고 감정은 배로 증폭된다. 이 과정에서 감정의 주체는 자기 자신임을 쉽게 잊어버리곤 한다.     상황은 객관적인 사실이다. 거기에 어떻게 반응하느냐만 있을 뿐이다. 미국의 저명한 설교가인 찰스 스윈돌 목사는 “우리 인생은 사건 10%와 그 사건을 대하는 우리의 반응 90%로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사건 그 자체보다 삶에 일어난 사건에 대한 해석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지만, 전적으로 본인의 선택에 주어진다.     빅터 프랭클이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체험을 통해 얻은 교훈을 담은 에세이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이런 인간의 선택과 자유의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굶주리고 매 맞으며 고된 노역을 이어가는 곳, 병이 들거나 일을 할 수 없으면 가차 없이 개스실로 보내지며 말 그대로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 하루하루를 버텼던 저자 플랭클은 책에서 “나는 살아있는 인간 실험실이자 시험장이었던 강제수용소에서 어떤 사람들이 성자처럼 행동할 때, 또 다른 사람들은 돼지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은 내면에 두 개의 잠재력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그중 어떤 것을 취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그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이어 플랭클은 “인간이 시련을 가져다주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그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는 있다”고 덧붙였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가 삶의 시련을 대하는 태도가 남들과 다른 것이라고 한다. 리더십 분야의 권위자인 존 맥스웰은 성공한 사람들은 실패와 좌절의 과정에서 절망에 이끌리는 것이 아니라 ‘나는 무엇을 배웠는가’라고 스스로 되묻는다며 이것이 실패한 사람들과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누구에게나 시련은 주어진다. 하지만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느냐는 각자의 선택이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 ‘프랭크 vs 갓’에 나오는 한 성직자의 말은 시련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묵직한 의미를 던진다. “강한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니 신은 나를 더 강하게 해줄 시련을 주셨습니다. 지혜를 달라고 요청하니 풀어야 하는 문제들을 주셨습니다.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니 신은 극복해야 하는 위험한 일들을 겪게 하셨습니다. 사랑을 달라고 기도하니 내가 도울 수 있는 어려운 사람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제 기도는 응답되었습니다.”   다가올 시련에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낙담과 절망인가 아니면 배움과 도전인가.  장수아 / 사회부기자의 눈 시련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낙담과 절망 로맨틱 코미디

2023-01-08

'장르만 로맨스', 뉴욕아시안영화제 관객상

  배우 겸 감독 조은지의 로맨스 코미디 영화 '장르만 로맨스(Perhaps Love)'가 올해 뉴욕아시안영화제에서 관객들이 직접 뽑은 영화를 의미하는 '관객상'을 수상했다고 뉴욕한국문화원이 1일 밝혔다.     이에 따라 '장르만 로맨스'는 지난달 26일 주연배우인 류승룡이 '최우수 연기상(Best from the East Award)'을 수상한 데 이어 관객상까지 받으면서 2관왕을 차지했다. 장르만 로맨스는 평범하지 않은 로맨스로 얽힌 이들과 만나 일도 인생도 꼬여가는 베스트셀러 작가의 버라이어티한 사생활을 그린 영화다.   올해 뉴욕아시안영화제에서는 이외에도 '검객'과 '더 킬러'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장혁이 우수 연기자상에 해당하는 '다니엘 에이 크래프트 어워드 포 엑설런스 액션 시네마(Daniel A. Craft Award for Excellence in Action Cinema)'를 수상했다. 박이웅 감독의 세상을 향한 폭주 드라마 '불도저에 탄 소녀(The Girl on Bulldozer)'에서는 주연배우를 맡은 김혜윤이 주목할 만한 배우에게 수여하는 '스크린 인터내셔널 라이징 스타 아시아 어워드(Screen International Rising Star Asia Award)'를 받았다.   김은별 기자 kim.eb@koreadailyny.com뉴욕아시안영화제 로맨스 로맨스 뉴욕아시안영화제 올해 뉴욕아시안영화제 로맨스 코미디

2022-08-01

기이한 남녀관계, 넷플릭스 1위 드라마

 로맨틱 코미디, 범죄 스릴러, 호러의 요소를 고루 갖춘 드라마 ‘유(You)”가 시즌3를 시작하면서 미국 넷플릭스의 탑10 리스트에 순위 변동이 발생했다. 스마트하고 정직하며 젠틀한 분위기의 배우 펜 배질리의 변신으로 주목을 받았던 드라마 ‘유’가 한동안 1위를 달리던 ‘오징어 게임’을 밀어내고 1위로 올라선 것이다.       우선 이 작품은 가족 드라마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동성애는 기본이고 스마트 폰 시대에 상상이 가능한 남녀 관계의 기이한 장면들이 즐비하다.   나레이터이며 남자 주인공인 조 골드버그(펜 배질리)는 변태성이 농후한 사이코패스이며 스토커이다. 순진하고 평범해 보이는 용모의 서점 매니저인 조에게 ‘연쇄살인범’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지만, 그는 지속적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그리고 매번 살인 혐의에서 운 좋게 벗어난다.   조는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한다. 그가 자행하는 살인은 사랑하는 여인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이 드라마는 시즌마다 여자 주인공이 바뀌는 특이성을 지니고 있다. 사이코패스의 내성을 지녔음에도 순진하고 연약해 보이는 조는 스토킹의 결과로 결국은 사랑을 쟁취한다. 주변에 나타나는 여성들에게 생명까지 바칠 정도로 사랑에 빠지고, 그녀들의 주변을 맴돌며 그들에게 해를 끼치는 자들로부터 보호해 주어야 한다는 강한 의무감을 느낀다.     조의 변태 행위에 혐오감이 치닫다가도 드라마는 자연스럽게 ‘로맨틱 코미디’로 전환된다. 드라마는 그를 싫어할 이유와 비난할 여유조차 주지 않는다. 한번 시작하면 멈추기가 힘들 정도로 몰입도가 높다.       사랑은 종종 기만일 때가 있다. 많은 경우 사랑은 거짓말로부터 시작된다. SNS는 쟁취한 사랑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의 훌륭한 도구가 된다. 기만이 사랑을 대체한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모두가 제정신을잃어버린다.     드라마 ‘유’는 이처럼 인간과 사랑의 뒤틀린 구조 안에서 지루함 없이 새로운 반전의 연속으로 전개된다. 여성들은 조에게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위장된 조의 캐릭터에 매료된다. 그리고 종국에는 조의 피해자가 된다. 사랑과 욕망, 거짓말의 함수관계 속에 숨어있는 사이코패스 조의 행적은 그야말로 예측 불가다.     캐롤라인 켑네스(Caroline Kepnes)의 2014년 소설 ‘You’를 원작으로 2018년 9월 시즌1이 라이프타임 채널에서 방영됐고 속편 'Hidden Bodies’를 바탕으로 한 시즌2는 2019년 방영됐다. 그리고 시즌3부터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데뷔하면서 바로 1위에 오르는 성과를 올리고 있다.     김정 영화평론가남녀관계 드라마 가족 드라마 로맨틱 코미디 욕망 거짓말 김정의 영화 리뷰

2021-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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