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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운 4개 학교, 총격신고로 폐쇄…새미 리 초교 근처서 총소리

LA지역에서 대낮에 발생한 총격 사건 등으로 인근 학교들이 잇따라 폐쇄됐다.   폐쇄 조치가 내려진 학교 앞은 자녀를 급히 인계하려는 학부모들로 북적이는가 하면, 경찰이 도로를 통제해 교통 혼잡을 빚기도 했다.   LA경찰국(LAPD)에 따르면 14일 오후 2시 45분쯤 한인타운 내 ‘새미 리 박사 의학&보건학 매그닛 초등학교(이하 새미 리 초등학교)’ 인근 사우스웨스트 모어랜드 애비뉴에서 총격 사건 신고가 접수됐다.   새미 리 초등학교 사무실의 이재희 직원은 “밖에서 네 발 정도의 총소리가 들려 곧바로 학생들을 교내로 대피시켰다”며 “다친 학생이나 피해자는 없으며 경찰이 수사를 마칠 때까지 모든 학교 문을 걸어 잠그고 학생들을 보호했다”고 말했다.   사건 발생 시간은 학생들의 하교 시간과 맞물렸다. 특히 새미 리 초등학교와 인접한 에버레스트 중학교, 버질 중학교, 센트럴 시티 밸류 고등학교도 이 사건으로 임시 폐쇄됐다. 모두 한인타운 내 학교로 한인 학생이 다수 재학 중이다.     학교 측 관계자들은 자체 총격 대응 프로토콜에 따라 수사가 종료될 때까지 학생들을 교내에 머무르게 했다.   LAPD는 이날 학교들이 학생들을 보호하는 동안 약 1시간가량 새미리 초등학교 인근 1가와 버몬트 애비뉴, 버질 애비뉴 등의 차량 통행을 차단하고 용의자 검거에 나섰다. 용의자는 곧 경찰에 의해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각 학교 앞은 자녀의 안전을 걱정하는 부모들로 북적였다. 학교 측은 LAPD로부터 하교 가능 여부를 확인한 뒤, 정문에서 보호자 신원을 확인을 거쳐 학생을 학부모에게 인계했다.       새미 리 초등학교 학부모인 김상희씨는 “학교 근처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 건 처음”이라며 “너무 놀라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전날 학교에서 ‘락다운(Lockdown)’ 연습을 진행해서 그런지 모두가 잘 대처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LA다운타운 매그닛 고등학교도 이날 임시 폐쇄됐다.   이 학교에 재학 중인 김모군은 14일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정확히 모르지만 어떤 사건 때문에 학교가 폐쇄됐고, 조기 하교를 하라는 안내가 있었다”며 “평소보다 두 시간가량 일찍 끝났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LAPD 토니 임 공보관은 “14일 오후 2시쯤 다운타운 매그닛 고등학교 인근에서 두 명이 살상 무기를 갖고 싸운다는 신고가 접수됐다”며 “약 한 시간 뒤에는 이 학교 내에서 학생들이 방망이를 들고 싸운다는 신고도 있었다”고 말했다.   LA뿐 아니라 이날 글렌데일 지역의 학교들도 잇따라 문을 닫았다.   글렌데일경찰국에 따르면 던스모어 애비뉴와 펜실페이니아 애비뉴 인근 한 주택에서 경찰과 살상 무기를 든 용의자 간에 대치극이 발생, 인근 벨리뷰초등학교, 클락매그닛고등학교 등에 폐쇄 조치가 내려지기도 했다. 김경준 기자총격신고 총소리 초등학교 인근 초등학교 사무실 밸류 고등학교

2024-02-14

[열린광장] 80년 5월의 새벽 풍경

해마다 5월이면 들려오는 소리가 있습니다. 10년이 흐르고, 20년, 4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울려오는 소리입니다. 눈을 감아도 귀를 막아도 환청처럼 귓전을 울리는 그 소리.   나는 지금도 1980년 5월, 당시 계엄군이 전남도청을 접수하던 날의 새벽을 잊지 못합니다. “시민 여러분, 광주시민 여러분, 우리 학생들을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어둠을 뚫고 확성기를 통해 들려오던 그 애절한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곧바로 헬리콥터가 선무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시민 여러분, 지금 폭도들이 날뛰고 있습니다. 한 사람도 밖으로 나오면 안 됩니다.”     총성이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탕! 총소리 하나에 꽃봉오리 하나가. 탕,탕! 총소리 둘에 푸르디푸른 꽃봉오리 둘이, 떨어져 갔습니다. 도청에서 멀지 않은 동명동 자취방에서 이불을 둘러쓰고 그 소리를 들으면서 피눈물을 삼켰습니다. 나가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아침을 생각하면 늘 미안합니다. 지금도 귓전에 그 소리 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탕, 탕, 탕 ….    그 새벽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5월이 지나자 신문은 말했습니다. 사망 154명, 행방불명 64명, 중상 93명. 사람들은 가슴을 쳤습니다. “오~매, 참말로 거시기하네 잉, 하늘이 알고 땅이 알어 이놈들아!”    광주의 비극을 뒤로하고 1984년 미국에 이민을 왔습니다.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내가 몸소 겪은 일을 이야기해도, 어떻게 우리 국군이 우리 국민을 그렇게 많이 죽일 수 있냐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5·18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어 대통령이 참석하여 기념사를 하고, 40년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진실을 믿지 않고 오히려 왜곡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올해 5·18이 43주년을 맞게 됩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은 80년 5월18일부터 27일까지 열흘 동안 광주에서 일어났던 민중항쟁을 의미합니다. 역경 속에서도 역사는 늘 전진해왔습니다. 역사적 사실은 온전히 보전되어야 합니다. 진실이 변색하여서는 안 됩니다.      광주시민의 위대한 항쟁 정신은 이제 세계인의 귀감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항쟁 기록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고 광주를 배우기 위해 세계 각처에서 현장을 찾아오고 있습니다.      5월 18일 오후 5시 18분, LA한국교육원에서 기념식이 열립니다. 80년 5월 민주투쟁위원장으로 마지막까지 전남도청을 사수했던 김종배 전 의원이 연사로 나와 당시 상황을 증언할 예정입니다. 5·18광주를 알지 못하는 많은 분에게 광주의 진실을 제대로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믿습니다. 광주의 5·18이 우리에게 주는 역사적 교훈을 함께 새겨보는 의미로운 자리가 될 것입니다.      역사는 기억과 망각 사이의 투쟁이라 했습니다. 기억하는 한 나쁜 역사는 되풀이되지 않습니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금남로 길을 따라 최루탄 연기 속에 피어오르던 함성이 울려옵니다. 목련꽃 이파리 하르르 떨어지던 소리도 함께 들려옵니다. 정찬열 / 시인열린광장 새벽 풍경 새벽 풍경 총소리 하나 소리 소리

2023-05-17

롱비치서 총소리에 대형 압사사고 발생할 뻔

    대형 행사장 밖에서 경찰이 범죄 용의자를 향해 총을 발사하면서 행사장 안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압사와 같은 대형참사가 벌어질 뻔한 사건이 16일 롱비치에서 일어났다.   롱비치 경찰국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 30분경 애큐라 그랑프리 자동차 경주대회가 열린 행사장 밖 오션 불러바드와 엘름 애비뉴가 만나는 지역에서 총격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자동차 경주대회를 구경하던 관중들은 총소리와 함께 경찰들이 떼를 지어 행사장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패닉 상태에 빠져 소리를 지르며 서로 먼저 행사장을 빠려나가려고 달리는 모습이었다.     다행히 대형 불상사가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압사사고가 날 수 있는 정황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총격사건은 앞서 롱비치 3가와 엘름 지역에서 발생한 총격사건의 용의자를 경찰이 발견하고 도망가는 용의자를 향해 총을 발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용의자는 총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총격사건이 발생한 현장 주변에서는 용의자가 소지했던 것으로 보이는 권총이 발견됐다.   경찰은 이 용의자가 인근에서 발생했던 3건의 총격사건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용의자의 신원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김병일 기자롱비치 총소리 롱비치 경찰국 범죄 용의자 대형 행사장

2023-04-17

[수필] 다음 선택도 ‘무조건 마라톤’

준비 끝!   엊그제는 코스를 미리 돌아보고 시간까지 재 보았다. 편하게 47분 걸렸다. 이 정도면 괜찮은 기록! 실전에서 약간의 긴장과 노력이 더해지면 시간 단축도 가능해 보였다.   출발 시간은 오전 8시, 장소는 마을 레크리에이션 센터. 시작 1시간 전인 7시에 센터 주차장에 도착했다. 나름 서두르며 부산을 떨었지만 넓은 주차장은 이미  많은 차들로 꽉 차 있었다.   넉넉지는 않았지만 변두리에 좁은 자리 하나 찾아 홍수로 불어난 옛고향 개울물 징검다리 건너듯 조심조심 차를 비집어 넣었다.   기억도 아스라한 27~8년 전. 생전 처음 가슴에 자랑스러운 번호표 달고 달리기 시합에 나갔던 때 이야기다. 달리기가 이날의 중심 행사이긴 했지만 조기축구, 약식음악회, 어린이 그림 전시회, 그리고 남아서 사용치 않는 물건을 서로 교환하고 싼 가격으로 넘겨주는 거라지 세일도 함께 열려 이 날은 모두 어울려 하루를 즐기는 마을 축제였다.     LA동북부 알함브라와 사우스 패서디나가 만나는 곳의 조그만 동네 엘세레노(El Sereno). 주민의 90%이상이 라틴계인 곳이다. 그 당시 나는 그곳에서 10년 정도 작은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있었고 주민 대부분의 얼굴과 이름을 알고 있었다.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곳에서는 매년 5월 중순 일요일에 작은 규모의 10㎞ 단축마라톤이 열리고 있었다.   데이비드라고 했던가? LA경찰국 소속인 30대의 라틴계 경찰 서전트가 주최하고 있었다. 그 자신 달리기를 좋아해 LA마라톤을 비롯해  크고 작은 대회에 열심히 출전하는 마라톤 마니아였다. 나에게도 신발 등 복장에서부터 뛰는 자세, 각종 대회 정보에 이르기까지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나에게 있어서 달리기는 고등학교 때 우연한 기회에 ‘나도 조금은 재능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있었지만 대학입시, 군과 직장생활 그리고 이민으로 이어지는 삶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대로 잊히고 말았다.   언제까지나 짙은 녹음의 계절만 계속될 것 같던 내 인생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나이가 50대 초에 접어들자 건강은 조금씩 불편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외동아들의 대학 졸업 후 좌표를 잃고 헤매던 허전한 마음을  달래줄 새로운 관심거리로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 것이 마라톤이다. 이후 마라톤을 향한 나의 사랑과 집착은 내 몸과 마음 구석구석을 변화시키며 나를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거듭나게 했다.   마음은 벌써 많은 사람의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결승선을 통과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안타깝게 기다리는 시작 시간은 왜 그리도 느리게 오는지. 아무튼 시간은 흐르기 마련,  드디어 8시가 되어 출발 선상에 모두 정렬했다. 질세라 나도 당당히 젊은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서.   멀리 마운틴 윌슨 산정 주위 하늘엔  하얀 솜을 펼쳐 놓은 듯 여기저기 흰 구름이 한가롭게 산책을 하고 있었고 물오른 풀과 나무, 각종 악기로 연주하는 새들의 합창, 그리고 센터 내 넓은 잔디광장에서 품어져 나오는 싱그러운 봄의 기운은 내 눈과 코를 간지르며  부풀대로 부픈 내 마음을 한껏 하늘 높이 치켜 올려주고 있었다.   시작 총소리와 동시에 나도 모르게 총알처럼 튕겨 나갔다. 120여명의 건각 중 유일한 아사아계로.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출발 2.3분은 무리 없이 속도를 그런대로  잘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거기까지였다. 뒤이어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줄줄이 따르며 나를 당황하게 했다. 숨이 가쁘고 다리 움직임이 둔해지고 대열에서 자꾸 뒤처지기 시작했다.  반환점을 돌 때쯤엔 종아리와 허벅지에 쥐가 나서 걷기도 뛰기도 힘든 상태가 반복되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지옥이 있다면 아마도 이럴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얼마 남지 않은 거리를 절름거리며 희미한 기억 속에 결승선을 통과하고는 그대로 정신을 놓고 뻗어 버렸다. 앰뷸런스까지 동원되는 난리를 치면서. 마음을 비우지 못한 어리석음의 처절한 결과였다. 기록은 52분을 넘기며 연습 때 보다 5분이나 더 걸렸다.   나는 이 실패한 달리기가 내 삶의 여정을 빼닮았다는 걸 발견했다. 나 자신에 대해 몰라도 너무나 모른다는 자책이 뒤따랐다. 자신에 대한 무지와 산과 같은 욕심, 그리고 근거 없는 자신감 등으로 생각 없이 일을 벌여놓고, 밀어붙이고 무모하게 돌진하다 깨지고 부서져서 얼마나 아파했던가?   깨달음의 순간이었다. 마라톤 시작으로 모든 게 저절로 달라지진 않았지만 경기에 나가는 횟수가 거듭될 때마다 경기운영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좀 더 일찍 마라톤을 시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함께 그랬다면 내 삶도 좀 더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곤 한다.   마라톤을 통해 자신의 한계에 도전해 승리하는 걸 배웠고, 이웃을 배려하고 서로 돕고 사는 따뜻한 마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며, 무리하면 후에 반드시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 요령이나 편법으로 쉽게 갈 수 있는 쉬운 지름길은 없다는 것 등을 알게 됐다.   타인을 의식하는 순간 내 페이스를 잃고 망쳐버린 경기가 얼마나 많았던가. 달리기경기나 인생살이나 경쟁은 결국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아닐까?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모든 과정은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자신만이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다. 세상엔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노력하면 한 만큼 정확히 보상이 따르는 마라톤!   내가 마라톤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힘들 땐 ‘내가 왜 이 무참한 짓을 하고 있지?’ 하고 불평하다가도 끝나면 바로 다음 경기를 생각하며 가슴 설렌다.   익숙해 질만 하면 헤어지고 멀어지게 되는 게 인간사라고 하지 않던가. 의지만 있으면 계속할 수 있을 것만 같던 마라톤도 내 인생의 늦은 계절의 문턱 앞에서 주춤거린다.   늦게나마 낭비 없이 알찬 삶을 살 수 있었고 마음껏 열정을 태우며 역동적인 승리 이야기를 쓸 수 있었던 건 모두 마라톤 덕분이었다.   힘들 때도 많았지만 ‘그래도 잘한 선택이었어’ 하며  나 자신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새로운 삶이 다시 주어진다면 다음 선택도  ‘무조건 마라톤’ 이다. 박명근 / 수필가수필 마라톤 선택 이후 마라톤 시작 시간 시작 총소리

2022-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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