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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80년 5월의 새벽 풍경

정찬열 시인

정찬열 시인

해마다 5월이면 들려오는 소리가 있습니다. 10년이 흐르고, 20년, 4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울려오는 소리입니다. 눈을 감아도 귀를 막아도 환청처럼 귓전을 울리는 그 소리.
 
나는 지금도 1980년 5월, 당시 계엄군이 전남도청을 접수하던 날의 새벽을 잊지 못합니다. “시민 여러분, 광주시민 여러분, 우리 학생들을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어둠을 뚫고 확성기를 통해 들려오던 그 애절한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곧바로 헬리콥터가 선무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시민 여러분, 지금 폭도들이 날뛰고 있습니다. 한 사람도 밖으로 나오면 안 됩니다.”  
 
총성이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탕! 총소리 하나에 꽃봉오리 하나가. 탕,탕! 총소리 둘에 푸르디푸른 꽃봉오리 둘이, 떨어져 갔습니다. 도청에서 멀지 않은 동명동 자취방에서 이불을 둘러쓰고 그 소리를 들으면서 피눈물을 삼켰습니다. 나가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아침을 생각하면 늘 미안합니다. 지금도 귓전에 그 소리 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탕, 탕, 탕 ….
 
 그 새벽은 참으로 길었습니다. 5월이 지나자 신문은 말했습니다. 사망 154명, 행방불명 64명, 중상 93명. 사람들은 가슴을 쳤습니다. “오~매, 참말로 거시기하네 잉, 하늘이 알고 땅이 알어 이놈들아!”
 


 광주의 비극을 뒤로하고 1984년 미국에 이민을 왔습니다.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내가 몸소 겪은 일을 이야기해도, 어떻게 우리 국군이 우리 국민을 그렇게 많이 죽일 수 있냐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5·18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어 대통령이 참석하여 기념사를 하고, 40년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진실을 믿지 않고 오히려 왜곡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올해 5·18이 43주년을 맞게 됩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은 80년 5월18일부터 27일까지 열흘 동안 광주에서 일어났던 민중항쟁을 의미합니다. 역경 속에서도 역사는 늘 전진해왔습니다. 역사적 사실은 온전히 보전되어야 합니다. 진실이 변색하여서는 안 됩니다.  
 
 광주시민의 위대한 항쟁 정신은 이제 세계인의 귀감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항쟁 기록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고 광주를 배우기 위해 세계 각처에서 현장을 찾아오고 있습니다.  
 
 5월 18일 오후 5시 18분, LA한국교육원에서 기념식이 열립니다. 80년 5월 민주투쟁위원장으로 마지막까지 전남도청을 사수했던 김종배 전 의원이 연사로 나와 당시 상황을 증언할 예정입니다. 5·18광주를 알지 못하는 많은 분에게 광주의 진실을 제대로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믿습니다. 광주의 5·18이 우리에게 주는 역사적 교훈을 함께 새겨보는 의미로운 자리가 될 것입니다.  
 
 역사는 기억과 망각 사이의 투쟁이라 했습니다. 기억하는 한 나쁜 역사는 되풀이되지 않습니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금남로 길을 따라 최루탄 연기 속에 피어오르던 함성이 울려옵니다. 목련꽃 이파리 하르르 떨어지던 소리도 함께 들려옵니다.

정찬열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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