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이 아침에] 깊은 밤 깊은 곳, 총소리 같은 비명

김지영 변호사

김지영 변호사

나무도 속이 터져 죽는다. 나무의 처음이자 마지막 절규. 총소리 같다고 한다. 깊은 밤, 깊은 곳, 한겨울, 먼 북쪽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한다.  
 
여름 한 철, 6월 초부터 9월 중순까지 사람들이 놀러 온다. 그리고 곧바로 겨울이 온다. 춥다. 사람들은 서둘러 떠난다.  눈이 내리고, 호수는 얼어붙고, 칼바람이 분다. 무자비한 빙하기의 재림은 다음 해 5월까지 사람들의 왕래를 끊는다.  
 
미국 몬태나 주, 캐나다 접경 지역, 글래시어 국립공원 로키 산맥 동쪽 산자락, 투 메디신 호수 주변의 이야기다. 이 호수와 계곡은 블랙푸트(Blackfoot) 원주민에게는 성지다.  그들은 이 호수를  ‘신령의 호수’라 부른다.  
 
지난 6월 초 신령의 호수를 찾았다. 공원 서쪽을 돌아보고 로키산맥을 넘어 동쪽으로 가는 '태양으로 가는 길(Going-to-the Sun Road)'을 따라갈 계획이었으나, 그 길이 공사 중 이어서 공원 바깥 로키산맥 남쪽 자락을 돌아서 동쪽 입구로 간다.  
 
아침나절 투 메디신 계곡으로 들어간다. 계곡을 꽉 차게 흐르는 강물은 짙은 남색, 강물 따라 부는 바람은 벅차다. 나그네가 견디기가 벅차다는 이야기이다. 산자락을 돌아 계곡의 끝을 본다.  검은 바위산이 하늘을 찌른다. 꼭대기 곳곳에 눈이 쌓여있다. 넓고 푸른 호수, 파도가 제법 높다. 호수 주위로 가문비나무 숲, 그리고 자작나무 숲이 여기 저기 보인다.  
 
호수를 가로질러 유람선이 호수를 건너 반대쪽 계곡 입구로 데려간다. 한 번에 50여명. 숲속에 내려놓고 배는 돌아간다. 배가 호수 가운데쯤 갈 때는 조그만 돛단배만하게 보인다. 호수가 그만큼 넓다.  
 
호숫가를 따라 가문비나무 숲, 짙은 녹색 나무들 사이에 전봇대 마냥 뻘쭘하게 서 있는 죽은 나무들이 보인다. 유람선 안내원의 설명이 떠오른다. “속 터져 죽은 나무들입니다. 한겨울 오밤중 나무들이 터집니다.”  날이 추워지면 나무들은 자신의 모통에서 물기를 뺀다. 그런데 가끔 낮 기온이 평소보다 올라가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나무는 날이 풀리는 줄 알고 다시 물을 빨아들인다.  
 
이 골짜기는 기온 변화가 심하다.  그 근처 어느 마을의 기록에 의하면 하루에 낮 기온 화씨 46도에서 밤 기온 -56도, 무려 100도의 일교차를 보인 적도 있다. 깊은 밤 나무의 수액이 갑자기 얼어서 부풀어 오르면 나무는 터져버린다.  
 
이 나무가 전봇대 크기로 자라려면 20년이 넘게 걸린다. 오래 살면 500년도 넘게 사는 나무가 어느 하루 기온 변화를 잘 못 감지한 착각으로 속이 터져 죽어버린다고. 정직하지만 가혹한 인과응보.  
 
나무는 죽으면서 다른 동종 나무들에 경고를 한다. “살아남는 것이 최고의 선이다.”  하얗게 말라 죽은 고사목은 그렇게 지긋이 젊은 나무들이 크는 것을 지켜본다. 죽은 나무도 100년은 서 있다고.  

김지영 / 변호사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