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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스키타기 지도” 한인스키클럽 오픈세미나

재미한인스키클럽(초대회장 조만철)이 한인을 대상으로 스키에 대한 이해를 돕고 홍보를 위한 2024년 시즌 오픈 세미나를 오는 28일(화) 오후 6시 용궁에서 개최한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초보자나 혹은 스키를 오랫동안 타지 않은 사람들이 알아야 할 기본 동작을 비롯해 상급자를 위한 최신 기술들도 소개한다.   특히 이날 강사로 60년 스키 경력의 조만철 회장이 가장 먼저 나서 스키의 매력과 위험성과 관련한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대해 강연하고 이어 리처드 박 주임 스키강사, 김호진 닥터(척추한방병원 원장), 쟌 김 강사, 리차드 김 강사(전 USC 스키선수), 김재평 회원, 레이첼 김 회원이 스키를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알려준다.     조만철 회장은 “스키는 진입장벽은 높지만, 너무나 매력적인 스포츠”라며 “우리 클럽은 취미로 스키를 즐기는 회원도 있지만, 전문 강사도 배출하고 있다. 본격적인 시즌 시작을 맞아 많은 한인의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   재미한인스키클럽은 미국 프로 스키·스노보드 강사들이 주축이 돼 2021년 설립됐다. 현재 50여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으며 훈련 및 강습회 때는 LA뿐만 아니라 뉴욕, 뉴저지, 오리건, 캐나다에서도 참여할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 28일 세미나의 회비는 30달러이며 인원 파악을 위해 27일까지 사전 예약이 필수다. 문의 (562)544-3697, (714)225-1684재미한인스키클럽 게시판 재미한인스키클럽 시즌 주임 스키강사 초대회장 조만철

2023-11-22

소니아 석 미주총연 초대회장, ‘한글 간판 달기 주도’…타운 초석 다진 여장부

한인 사회에서 소니아 석(1917~1997) 여사는 ‘애국 할머니’로 통했다. 중앙일보 본국지 1972년 10월4일자 기사에서 찾은 석 여사는 그렇게 한마디로 표현돼 있다.   자서전 '맨발의 소니아 석'에는 애국심을 엿볼 수 있는 일화가 있다.   석 여사가 캐딜락을 처음 산 건 1964년이었다. “나는 DMV에 신청한 ‘KOREAN’ 번호판을 캐딜락에 달고 다녔다. 항상 한국을 소개하고 싶었다. 뒷창문에는 태극기도 붙였다.”   석 여사는 16살 때 첫 운전대를 잡았던 인물이다. 고향인 평안남도에서 최초의 여성 운전사였다. 남자들을 제치고 운전대를 잡을 정도니 강단 있던 여성이다.   미국에 온 건 1948년이다. 30대 초반이었다. 집안을 살리기 위해 장사를 하느라 공부를 하지 못했던 것이 늘 아쉬웠다.   그래서 선택한 게 유학이다. 영어 한마디 못해도 끈기로 버텼다. 노스캐롤라이나 장로교 대학원(1949년), 몬터레이 시립대학(1952년), 샌프란시스코 주립대(1955년) 등에서 국제무역 등을 공부하며 미국 생활에 정착했다.   석 여사는 유학 도중 한국 전쟁을 겪었다. 자서전에서 그는 “피란민들의 울부짖는 모습이 연일 보도됐다”며 “그때부터 나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배웠고 오늘까지 계속 기도한다”고 적었다.   이는 석 여사가 고국은 물론 미주 한인사회를 위해 많은 것을 나누게 되는 계기가 됐다.   그는 1962년 부동산 업계로 뛰어 들었다. 한인 최초의 브로커 자격증과 감정 평가사 자격을 취득했다. 큰 돈을 만지기 시작했다. 24시간이 부족할 정도였다.   자서전에는 “가주한국외환은행 지점, 한인회관, 대한항공 등을 위해서는 좋은 조건으로 건물이나 땅을 사주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그렇게 번 돈을 한인 사회에 다양한 방법으로 환원했다.     LA의 한인 인구가 3000명가량 될 때다. 석 여사는 한인센터 이사로 한인 사회를 위해 첫 봉사를 시작했다.     그는 한인타운의 초석을 다진 인물이다. LA지역 올림픽 길에서 미국인이 운영하는 업소들을 돌며 한글 간판을 붙이라고 설득하고 다녔다.   미국인 업주들은 당연히 반대했다. 석 여사는 그때 일을 이렇게 적고 있다.   “미국 사람들이 호통을 쳤다. 그러나 나는 이게 너희 장사를 잘해주기 위해 하는 것이니 기다려 보라고 설득했다. (중략) 미국 간판을 우리말로 바꾸어 쓰기 시작할 무렵부터 올림픽길이 한인타운의 면모를 더해갔다.”   이후 미주총연합회 초대 회장, LA한인회장(1971년) 등에 선임됐다. 이듬해 전국체전에 참여할 미주선수단의 초대 단장을 맡아 고국 땅을 밟기도 했다. 그는 미국 정계와도 가까웠다. 닉슨 대통령 행정부 시절 공화당 가주유산위원회 부회장(1972년), LA시 커미셔너(1976년), 공화당 가주지구당 부위원장(1981년) 등을 맡아 한인 사회의 정치력을 다져갔다.   세계적인 테마파크였던 애너하임 디즈니랜드 내 ‘스몰 월드’에 최초로 한국 인형을 넣은 것도 석 여사가 한 일이다. 그가 일평생 한국과 한인 사회를 위해 한 일을 제한된 지면에 모두 담기엔 부족할 정도다. 그만큼 많은 씨앗을 뿌렸다. LA에서 한인으로서는 지난 1971년 처음으로 치과를 개업한 장기열 박사가 석 여사의 장남이다.   석 여사는 80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삶의 행적에는 ‘애국’ 한 단어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초대회장 소니아 올림픽길이 한인타운 미주 한인사회 한글 간판

2023-09-21

[삶과 추억] 최대 한인 경제인단체 성장 이끈 큰 어른…장우상 월드옥타 초대회장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초대 회장을 역임한 장우상 명예회장(사진)이 이달 초 세상을 떠난 사실이 뒤늦게 전해졌다. 향년 97세.   LA에 있는 유족들은 고인의 유지에 따라 16일 가족장을 치른 뒤 18일 본부 사무국 등에 별세 소식을 알렸다.   옥타LA 전·현직 회장들과 회원들도 본부 옥타의 연락을 받고 뒤늦게 별세 소식을 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월드옥타의 전신인 ‘세계해외교포무역인연합회’를 1981년 창립해 2년간 회장을 맡아 이끌었고, 이후 월드옥타가 68개국 143개 지회에 7600여 명의 회원을 둔 최대규모 재외동포 경제인단체로 성장하는데 ‘큰 어른’ 역할을 했다.   1970년 미국에 이민해 무역업을 시작한 고인은 ‘재미한인무역협회’ 회장을 맡고 있던 1980년 회원들과 함께 세계 한인 무역인 네트워크를 구축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듬해 고국 수출상담회인 ‘서울교역전’에 참가한 16개국 101명의 한인 무역인을 중심으로 세계해외교포무역인연합회를 탄생시켰다.   초창기에는 정부 보조금 없이 회원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협회를 운영하다가 1994년 상공자원부(현 지식경제부)에 사단법인으로 정식 등록하면서 재정이 나아졌고, 단체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국산 섬유와 철강을 수입해 미국에 팔았던 고인은 65세 되던 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월드옥타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보여주면서 후임 회장들에게 애정 어린 조언을 쏟아냈다.   고인은 2021년 5월 열린 제22회 세계대표자대회 및 수출상담회 개회식 때도 온라인으로 참가하는 등 변함없는 ‘월드옥타 사랑’을 보여줬었다.삶과 추억 경제인단체 초대회장 장우상 명예회장 한인 무역인 세계 한인

2023-08-18

박선근 회장 한인 차세대 기금 '100만불' 약정

  박선근 한미우호협회 회장이 한인 차세대 기금으로 100만 달러를 출연하기로 했다.     박 회장은 지난 23일 둘루스 1818클럽에서 열린 본인의 팔순잔치에서 한인사회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이같은 내용을 깜짝 발표했다.     박 회장은 한인 1세대들이 이룬 발전의 정신을 이어받아 한인 미래세대를 발굴하고 한인사회가 더욱 더 성장하라는 의미에서 이같은 결심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출연하는 100만 달러는 차세대를 위한 장학 재단 설립의 기초자금으로 쓰일 예정이다.     박 회장은 1974년 도미해 제너럴 빌딩 메인트넌스(GBM)라는 청소업체를 설립했고, 창업 10년만에 3200여명의 직원을 둔 사업으로 키워 주류사회에도 주목받는 인사가 됐다.   한인사회에서도 애틀랜타 한인회장, 동남부연합회 초대회장, 미주한인회총연합회장을 지내며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아울러 미국 유니세프 이사, 조지아주 항만청 부이사장, 조지 부시 대통령 아태 담당 정책고문 등을 맡아 주류사회에서도 활동하기도 했다.   현재에도 한미우호협회장, 좋은이웃되기운동본부 대표, 조지아 주지사 정책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재우 기자박선근 차세대 초대회장 미주한인회총연합회장 애틀랜타 한인회장 한인 차세대

2022-07-25

"어려운 학생들에게 희망 주고 싶어"

한인 의류업계의 대표 기업인 액티브USA의 돈 이 회장에게 2022년 임인년 새해는 남다른 감회를 갖게 한다.     바로 30년 전인 1992년 겪었던 LA폭동 때문이다. 영남대 건축공학과 73학번인 이 회장은 1986년 미국에 왔고 이듬해 의류 매뉴팩처 ‘액티브USA’를 창업해 승승장구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크게 성공했다.     하지만 1992년 발생한 LA 폭동으로 인해 전재산을 날리는 시련을 겪었다. 하지만 사업가로서 쌓아온 신용과 탁월한 리더십으로 재기에 성공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연초 한국을 방문했다 미국으로 돌아오면서 모교 영남대에 장학금을 추가로 200만 달러를 기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올해 폭동 30년을 맞아 빈털털이까지 됐던 때가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제게는 올해가 더 의미 있는 한 해이고 그만큼 더 열심히 뛰겠습니다.”     이 회장은 2011년 타계한 선친과 96세인 모친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모교 영남대에 ‘월산장학회’를 세운 것은 물론, 대학 발전기금과 총동창회 장학기금 등을 꾸준히 기부해 모교와 동창회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영남대 LA동창회장에 이어 미주총연합동창회 초대회장을 역임했다. 영남대의 해외 주요 동창회 중 하나로, 수도권 이외 대학으로는 처음으로 설립된 미주총연합동창회 창립을 주도하기도 했다. 설립 당시 그는 준비위원장을 맡아 미주 주요도시를 직접 찾아다니며 동문을 설득하고 참여를 독려했다.     또한 성공한 재미사업가이자 경북 해외자문위원으로서 모교 후배 뿐 아니라 대구·경북 지역 청년들의 글로벌 역량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100여 명의 대구·경북 대학생을 자신의 회사에 인턴사원으로 채용해 실무 역량을 익히게 하고 있다. 때문에 영남대는 이 회장의 공로를 기리기 위하여 2006년 ‘자랑스러운 영대인상’, 2014년에는 ‘명예 경영학박사’ 학위를 수여한 바 있다.    이 회장은 태평양은행의 이사를 비롯해, 세계한상대회 리딩 CEO, 회재 이언적 선생 기념사업회 이사, 경상북도 해외자문위원, 남가주 대구·경북향우회 장학위원회 위원장 등 맡아 활동하고 있다.     미주에 거주하면서도 한국에서 지속적인 기부활동을 펼쳐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3호 해외 ‘아너 소사이어티’로 선정된 바 있다.       장병희 기자학생 희망 미주총연합동창회 초대회장 영남대 la동창회장 경북 대학생

2022-01-11

‘유재라봉사상’에 유분자 이사장

제30회 유재라봉사상 수상자로 소망소사이어티 유분자 이사장이 선정됐다.     유재라봉사상은 유한양행 창업자인 유일한 박사의 딸 유재라 여사가 살아온 희생과 봉사의 삶을 기리기 위해 유한재단이 1992년 제정한 상이다. 매년 간호·교육·복지부문에서 수상자를 선정해 수여한다.     올해 시상식 행사는 따로 열리지 않았으며, 수상자에게는 상패 및 상금이 개별 전달됐다.    유분자 이사장은 ‘한 번 간호사면 영원히 간호사’라는 신념으로 살아온 간호사 디아스포라의 살아 있는 본보기이다. 남가주한인간호협회장은 물론, 재외한인간호사회 초대회장을 맡아 글로벌 한인간호사 네트워크 구축에 힘썼다.     유분자 이사장은 “영예로운 유재라봉사상에 추천한 대한간호협회에 감사하다”면서 “유재라 여사의 일생은 제게 많은 울림을 주었으며, 그 정신을 본받고 싶다”고 밝혔다. 특히 “3만여명에 이르는 미주 한인간호사들을 위한 봉사를 인정하고 격려해준 것 같아 더욱 감사한 마음”이라면서 “일생을 간호사로 살아오면서 남이 가지 않는 길, 주위 사람들이 말리는 길을 선택해 헤치며 나아갔던 삶이 자랑스럽고 뿌듯하다”고 말했다. 장병희 기자유분자 이사장 유분자 이사장 재외한인간호사회 초대회장 소망소사이어티 유분자

2021-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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