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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청춘에 묻는다…나는 누구인가

한국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Love in the Big City)’이 지난 13일 토론토 국제영화제(TIFF)에서 북미 관객들과의 첫 만남을 가졌다. 이언희(사진) 감독과 주연 배우 김고은, 노상현이 영화 상영에 앞서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작품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 영화는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현대 서울에서 청춘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이언희 감독은 “한국에서는 아직 개봉 전인데, 북미 관객들과 먼저 만나게 되어 매우 긴장되고 설렌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고은 또한 “토론토는 개인적으로 10년 전에 배낭여행을 왔던 곳이라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이어 “푸른 나무가 많은 도시에서 영화를 선보이는 것이 영광스럽다”고 덧붙였다. 배우 노상현은 “TIFF에서 첫 상영이어서 기대가 크다”며 북미 관객들과의 첫 만남에 대한 설렘을 표현했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박상영 작가의 동명 소설 중 첫 번째 단편 ‘재희’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영화는 재희와 그의 친구 흥수 사이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두 사람의 우정과 성장을 그려낸다. 원작 소설은 주로 남성 주인공 영(영화에서는 흥수)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펼쳐졌지만, 영화에서는 두 인물의 시선이 균형 있게 다루어져, 서로의 시선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며 관계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이 감독은 “원작의 감정선을 유지하면서도 영화적인 표현을 더하기 위해 새로운 디테일을 추가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두 주인공이 서로의 시선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성장하는 과정을 강조하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원작 소설은 성소수자(LGBTQ+) 커뮤니티와 청춘의 고독, 그리고 편견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다룬다. 영화에서도 이러한 감정선은 시각적으로 섬세하게 표현되었다. 이 감독은 “서울의 차가운 도시 풍경과 이태원의 상징성을 활용해 그들이 느끼는 외로움과 갈등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려 했다”고 말했다. 특히 서울에서의 이태원과 종로는 그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그들의 삶을 상징하는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동성애가 여전히 민감한 주제로 여겨지지만, 북미는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감독은 “이 영화가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 보편적인 청춘의 고민과 정체성 찾기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이 영화가 “누구나 자신에게 던지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성장하는 이야기”로, 전 세계 어느 관객에게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여러 차례 등장하는 미쓰에이의 히트곡 ‘Bad Girl Good Girl’에 대해 이 감독은 “재희 캐릭터의 이중성을 상징하는 곡”이라고 밝혔다.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많은 갈등을 겪는 복잡한 캐릭터의 본질을 이 곡을 통해 드러냈다고 설명했다.     특히 마지막 결혼식 장면에서 흥수가 이 곡을 축가로 부르는 장면은 그가 재희에게 보내는 “진심 어린 편지”로 해석된다.   최근 애플TV+ 드라마 ‘파친코(Pachinko)’를 통해 북미 관객들에게 인지도를 높인 배우 노상현은 이번 영화에서도 자신만의 진정성 있는 연기를 선보이고자 노력했다고 밝혔다. 그는 “흥수라는 캐릭터가 가진 복잡한 감정을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며, “북미 관객들과의 만남이 그저 감사하고 특별한 경험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감독과 배우들은 이 영화를 통해 관객들이 각자 자신만의 감정을 발견하길 바랐다. 이 감독은 “편견 없이 사랑스럽고 예쁜 인물들의 이야기를 보며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느끼길 바란다”고 전했다. 김고은은 “거창하지 않고 담백한, 우리의 방식으로 만든 영화”라며 “관객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와서 즐기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노상현 역시 “누구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며 관객들의 호응을 기대했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10월 2일 한국에서 개봉 예정이다.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북미 관객들과의 성공적인 첫 만남을 마친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도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킬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태형 기자고은 청춘 토론토 국제영화제 영화적인 표현 북미 관객들

2024-09-18

조선족 청춘 3명의 백두산 겨울연가

한 여자와 두 남자가 만나 우정과 사랑을 꽃피우는 청춘 드라마. 2013년 데뷔작 ‘일로 일로’(Ilo Ilo)로 칸영화제에서 데뷔 감독에게 수여하는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했던 싱가포르 출신 앤소니 첸 감독의 최근작이다. 2023년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섹션에 선정됐었고 싱가포르의 2024 아카데미상 국제영화 부문 출품작이다.     겨울 폭설이 내리는 며칠간의 짧은 기간 동안 20대 청년 세 명이 만나 관계를 형성하고 그 관계의 변화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배경지의 우아함을 최대한 노출시키는 촬영, 고전적 스토리텔링, 그리고 솔직하고 진지한 캐릭터들을 등장시키는 첸 감독의 스타일은 이 작품에서도 변함이 없다.   영화는 중국 북부의 국경 도시이며 조선족이 많이 거주하는 연길시를 배경으로 한다. 나나(저우 동위)와 한샤오(추샤오추)는 연길에서 태어난 조선족 청년들이다. 연길을 떠나고 싶어 하는 그들이지만 처해 있는 상황이 늘 여의치 않다.     나나는 관광 가이드 일을 하고 있고 한샤오는 부모들이 운영하는 한식당 일을 돕고 있다. 한샤오의 마음에는 내심 나나를 향한 사랑이 있다. 하지만 나나는 그를 친구로만 대한다. 상하이에서 온 청년 하오평(류하오란)이 나나의 관광 버스에 손님으로 오른다. 그는 나나의 시선을 끈다.     나나가 하오평을 한샤오에게 소개한다. 세 사람 사이에 묘하고 차가운 기류를 안고 그들은 눈 덮인 장백산으로 여행을 떠난다. 나나는 하오평과 잠자리를 같이하고 한샤오가 이를 알게 된다.     그들은 각자 외롭다. 나름의 상처에 외로운 모습이 서로 다르다. 피겨스케이터의 꿈을 이루지 못한 나나와 음악에 소질이 있는 한사오는 도시 남자 하오평이 부럽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자살 충동이 있다.     이들의 며칠 동안의 삼각관계는 눈덩이처럼 둥글게 보이기도 하고 고드름처럼 차갑고 아프게 느껴진다. 상처는 다른 사람들이 개입함으로 저절로 치유되기도 하다. 연변 조선족의 삶에 묻어있는 한국의 고유한 정서가 영화에 묻어있다.     세 사람은 백두산 천지를 보러 여행을 떠난다. 중국 북부 지방의 얼어붙은 겨울 풍경이 장관이다. 안개 때문에 천지에 오르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리랑’ 음악이 흐른다. 첸 감독은 한국 민요 아리랑의 가사로 영화의 메시지를 대신한다. 우울한 단조 멜로디에 이어지는 아리랑의 가사, 나를 버리고 가는 님은…. 누가 누구를 버리는지는 각자의 처지에 달렸다.     삶은 결국 혼자 이루어가야 한다는 슬픈 깨달음이 길게 여운으로 남는다. 영화의 중국어 원제는 ‘연동’, ‘겨울연가’다.   김정 영화평론가 [email protected]겨울연가 조선족 백두산 겨울연가 조선족 청춘 연변 조선족

2024-01-26

[투어멘토 박평식의 여행 이야기] 떠나면 당신도 청춘

"여행을 떠나면 새로운 인생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는 건 순진한 착각이다. 장소가 바뀌어도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오면 새로운 일상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예전과 같지만 어딘지 예전과는 다르다." 한수희 수필집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중에서>     한수희 작가는 또한 낯선 곳에서의 고독을 견디며 용기를 얻을 것이고 그 용기 끝에 편안함을 찾을 것이며 고향에서 기다리고 있는 내가 가진 것들을 돌아볼 여유가 생길 것이라고 썼다.     유럽도 좋고, 아프리카도 좋지만 정작 미국에 살면서도 대륙 횡단이나 대륙 종단을 다녀온 이들이 주변에 그리 많지 않다. 젊을 때는 일하느라 바빠서, 애들 키우느라 정신없어서, 여유가 없어서, 나이가 들어서는 몸이 아파서, 멀리 떠나기 겁이 나서… 여행을 다음으로 미룰 이유는 너무나도 많다.   그러나 시간과 돈이 남아돌아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미국에서 7년 전 가출한 반려묘는 2400km를 종단해 가족의 품에 돌아갔고 대한민국 독도협회 학생들은 시애틀에서 앤세나다까지 자전거로 4000km를 이동했다. 배종훈 씨는 미국을 대륙 횡단하고 싶다는, 근육이 경직되는 희소병을 앓고 있는 아들의 꿈을 위해 휠체어를 밀고 아들과 달리고 있다.   결국 모든 것은 마음먹고 행동하기 나름이다. 여행에 필요한 단 한 가지는 어쩌면 용기가 아닐까. 물론, 한반도의 45배나 되는 엄청난 크기의 미국 땅을 홀로 종횡단 하려면 어려움이 만만치 않다. 일단 장거리 여행인만큼 운전이 부담되고 코스, 호텔, 식사를 직접 챙기는 것도 만만치 않다.   그럴 때는 여행사의 패키지 투어 상품을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전문 드라이버가 운전하는 널찍한 리무진버스에 몸을 누이고 그저 여유롭게 솔뱅~토말레스베이~레드우드~크레이터 레이크~포틀랜드~시애틀~월래스~헬레나~보즈먼~버팔로~크레이지 호스~마운틴 러쉬모어~수폴스~라크로스~매디슨~시카고~사우스밴드~클리브랜드~나이아가라 폭포~오타와~퀘백~몬트리올 등 대륙의 명소들을 여행하면 된다.   여행 기간은 총 17일. 이렇게 여행하면 일반적인 대륙횡단 코스로는 갈 수 없던 시애틀의 레이니어 국립공원, 크레이터 레이크, 시애틀, 포틀랜드 등 미국 종단까지 가능하고 인근한 캐나다의 토론토, 몬트리올, 퀘백 3대 도시도 한 번에 여행할 수 있다.  나이아가라 폭포의 절경을 헬리콥터를 타고 감상하면 폭포 주변에 피어나는 무지개와 구름까지 바로 옆에서 스치듯 구경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대륙 종횡단을 마쳤다면 지구라는 책의 하이라이트 부분인 미국 챕터를 정독한 셈이 된다. 또한 좋은 책은 두 번, 세 번 정독하듯 첫 대륙횡단으로는 보이지 않던 더 큰 감동을 대륙 종횡단을 통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박평식 / US아주투어 대표·동아대 겸임교수투어멘토 박평식의 여행 이야기 청춘 종횡단 대륙횡단 코스 대륙 종횡단 장거리 여행인

2023-03-23

[시카고 사람들] 싱싱실버대학 교감 유재오 장로

100세 청춘 싱싱실버대학 교감 유재오 장로(66, 사진)가 도미해 처가 식구들이 살고 있는 시카고로 이민 온 것은 지난 1984년 9월.   이민 초기에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향수병에 젖어 종종 이민 보따리를 싸고 풀기를 반복하며 미국 생활에 적응하기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시카고 트리뷴을 보고 길을 헤매며 어렵게 찾아 간 미국 공장에 취직해 3년 정도 직장생활을 했던 그는 라디오 한국방송으로 옮겨 아나운서 및 기자로 활동했다.   하루 일과를 아침 7시 출근해 시작했다는 그는 당시 한인사회는 왕성한 움직임으로 뉴스 취재가 많아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고 회상한다.   그는 시카고 이민 동포사회의 일원으로 시카고 한인이라는 취지를 갖고 각 한인 언론사 기자들과 함께 기자협회를 만들고 회장을 맡기도 했다.   지난 1992년 여행사서 경력을 쌓은 아내와 함께 한인 여행사를 인수해 사업을 시작했다.   한인사회 인구가 늘고, 경제 규모도 커지면서 여행업계도 나날이 성장, 1999년에는 시카고 한인타운 링컨길에 있던 여행사를 나일스 골프길로 이전했다. 그 무렵 크루즈 성지순례 여행 프로그램을 내놓으면서 큰 호응을 받았다. 시카고는 물론 애틀랜타, 필라델피아, 뉴욕 등 타 지역 교회에서 요청이 들어 올 정도로 인기 상품이었다고 한다. 그는 “성경책을 보듯이 학습 효과에 도움이 되도록 사명감을 갖고 정성으로 여행 책자를 직접 만들어 참가자들에게 보고, 배우고, 느끼는 여행이 되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커뮤니티 활동에서 만나 그의 멘토가 된 한 단체장의 권유로 한인 기독실업인회(KCBMC)에도 참여했다. 회장을 맡은 그는 시카고에서 북미주대회를 개최하는 등 봉사를 하면서 더욱 더 겸손한 봉사를 배웠다고 강조했다.   그는 “팬데믹으로 중단됐던 싱싱실버대학의 재개강을 준비하는 동안,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됐다”고 말한다. 이어 “재학생들 모두가 직접 나서서 도움을 주셨다”며 “봉사의 참 맛을 알게 되어 이제는 봉사의 열정이 삶의 중심이 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청년 시절 광주 민주화 운동을 지켜 보며 현장에 있었던 그는 전남 광주 출신으로 광주대학교(공업경영학 전공)를 졸업했다.   현재 레익뷰 한인장로교회에 출석하며 아내(유은주씨)와의 사이에 시카고 경찰인 일한과 익한, 두 아들을 두고 있다. 박우성 위원시카고 사람들 싱싱실버대학 유재오 유재오 장로 청춘 싱싱실버대학 시카고 한인타운

2022-09-30

청춘은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니고 마음가짐이다

  청춘은 인생의 한 시기다 아니고/ 그것은 마음가짐이다./ 그것은 장밋빛 볼, 붉은 입술/ 그리고 유연한 무릎의 전유물이 아니고/ 그것은 의지의 전유물, 상상의 품질/ 정성의 활력이다./ 아무도 연령의 수만으로 늙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이상을 버림으로써 늙는다./ 나이는 피부를 주름지게 하지만/ 열정을 포기할 때 영혼을 주름지게 한다./ 근심, 염려, 자기불신은/ 가슴의 기를 꺾으며/ 넋을 먼지로 돌아가게 한다./ 안테나가 낮아서 당신의 넋이 / 냉소주의의 눈과 비관주의의/ 얼음으로 덮여 있을 때/ 그때에 그대는 20세라도 늙었다./ 그러나 안테나가 높아서/ 낙관주의의 주파를 붙잡는 한,/ 그대는 80세라도 젊은 기상으로 / 죽을 수 있는 희망이 있다.     새뮤얼 울만의 ‘청춘’이라는 시다. 10여 년 전  아내와 함께 중국에 체류할 때  우리 부부에게 중국어를 가르쳐주던 대학생이  학습교재로 들고  온  것도 ‘청춘’이었다. 그는 기숙사 벽에 붙여놓고 매일 읊는다고 했다. 우리는 의기투합(意氣投合)의 친구가 되었다. 백발이 된 지금도 이 시를  읊으면  가슴이 뛰고 새로운 힘이 솟는다. 시가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읽을 때마다 내 삶의 영역에 물기와 탄력을 주는 이런 언어의 결정(結晶)을 나는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1997년 가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방송토론회가 열렸다. 당시의 빅3 후보는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후보와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 그리고 한나라당에서 나와 국민신당을 창당해 출마한 이인제 후보였다. 김대중 후보의 토론회 때정치·경제·사회 등 토론은 돌고 돌아 어언 편성된 2시간이 흘러 마지막 질문 순서가 되었다. 시인인 어느 질문자가 김대중 후보에게 “좋아하는 시가 있으면 읊어보라”고 주문했다. 그러자 김 후보는 “혹시 제가 나이가 많다고 하면 소개하려고 준비해온 것”이라며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읽었다. 울만의 ‘청춘’이었다. 그때 김 후보는 일흔네 살로 세 후보 가운데 가장 연장이었다. 김 후보의 낭독이 끝나자 치열했던 그날 토론회는 분위기가 좋아졌고, ‘청춘’이 우리나라에서 널리 애송되는 계기가 됐다.     울만이 ‘이 시를 쓴 것은 78세 때였다. 하지만 이 작품이 빛을 보게 된 것은 훨씬 뒤, 그것도 생각지도 못한 인물을 통해서였다. 태평양 전쟁이 끝나갈 무렵, 종군기자 프레더릭 팔머는 필리핀 마닐라에 주둔하고 있던 미극동군 총사령관 맥아더를 찾아갔다. 맥아더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팔머는 우연히 책상 위의 액자 속에 들어 있던‘청춘’이라는 시를 보았고,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수년 전 선물 받았다는 이 시를 맥아더는 매일 암송할 만큼 좋아했다.고 한다.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떠오르는 한 사나이가 있다. 98세에 글을 배우기 시작한 그의 이름은 조지 도슨.  미국 뉴올리언스의 가난한 흑인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동생들을 먹여 살리느라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그럼에도 자신이 까막눈이라는 사실을 쉬쉬해야 했다. 간신히 얻은 일자리에서 쫓겨나지 않으려면 글을 읽을 줄 아는 척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일자리를 얻을 때마다 표지판이나 근로지침 같은 것들을 가까운 사람에게 물어 몽땅 외워버리곤 했다. 글을 읽을 줄 모른다는 것은 그에게 더없이 ‘고통스러운 비밀’이었지만 생활에 쫓기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긴 세월 동안 힘이 되어준 믿음이 있었다. ‘인생이란 좋은 것이고, 점점 더 나아지는 것’이라고 했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가르침이었다.     남북전쟁에서 북군이 승리하면서 흑인 해방이 이루어졌지만, 실상 사회는 그다지 변한 것이 없었다. 흑인들은 여전히 차별받고 핍박받았다. 게다가 그는 죄 없이 백인들의 손에 죽임을 당한 형 때문에 10세 이후로는 백인들과 어떤 거래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터였다. 그래서 그는 21세 때부터 미국 전역과 캐나다, 멕시코를 오가며 부두 노동자와 도로 공사장 인부 등 수십 개의 직업을 전전하다가 늘그막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혼자 낚시로 소일하던 어느 날, 그는 성인들을 위한 교육 과정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곧바로 낚싯대를 내던지고 학교로 달려갔다. 이때 그의 나이 98세였다. 그는 알파벳 26자를 몽땅 외우고 ‘장례식 때문에 빠진 사흘’을 제외하고는 지각 한 번 하지 않았다. 그리고 101세가 되던 해 자신만의 책을 펴냈다.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제목으로, 그의 인생 여정이 오롯이 담긴 자서전이었다. 이후 그는 무려 3세기를 관통한 풍부한 경험과 열정으로, 여러 학교와 선도기관 등에 강연을 다니며 실의에 빠진 이들에게 희망을 전파했다.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일본의 마쓰시타 고노스케도 ‘영원한 청춘’을 삶으로 보여준 사람이었다. 그는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약골로 태어났음에도 ‘지난 1000년간 가장 위대한 경영인’에 뽑혔다. 화로가게 점원이던 그가 22세에 무일푼으로 마쓰시타 전기를 설립할 때까지만 해도, 누구도 그의 손에서 당대 최고의 기업이 탄생할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지독한 가난, 허약한 몸, 짧은 ‘가방끈’에도 불구하고 신화를 이룩했는데, 그 비결은 바로 ‘늘 푸른 청년 정신’과 ‘역발상의 지혜’였다. 어린 나이에 점원이 되었으니 상인의 몸가짐을 빨리 익힐 수 있었고,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하다보니 남에게 일 부탁하는 법을 배웠으며, 학력이 모자라다 보니 항상  배우고 다른 사람에게 가르침을 구했다. 이후 그는 자서전을 내면서 그 제목도 〈영원한 청춘〉이라고 정했다. 그는 울만의 말처럼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또 그는 일에 몰입하는 사람이라면 승진뿐만 아니라 더 큰 결실도 얻을 수 있으니 ‘왕성한 탐구심’과 ‘머리를 높이 치켜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으라.’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 자신도, 기업들이 도산하는 대공황 때에도 한 사람도 해고하지 않고, 대담하면서 섬세한 조화경영의 진수를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청춘’을 증명했다.   선교사로 유명한 스탠리 존스 박사는 자기의 체험을 근거로 노년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에 유의하면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성장 할 수 있다고 권면했다. 첫째, 은퇴하지 말라. 둘째, 호기심과 관심을 갖고 날마다 무엇인가 새것을 배우려고 노력하라. 셋째,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라. 넷째, 활기차고 적극적인 삶을 살라. 다섯째, 날마다 주변에서 무언가 감사할 조건을 찾으라. 여섯째, 육체적 쇠약에 신경 쓰지 말고 정신적 활동을 더 많이 하라. 일곱째, ‘하늘에 쌓아두라’는 성경말씀처럼 하늘에 그대의 행동, 남은 물질, 그대가 생각하는 정신적 유산을 쌓도록 하라. 지난 크리스마스 때 아내에게서 받은 카드에는 이런 성경 구절이 적혀 있었다.“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시편 103: 5) 지아비의 무강(無疆)을 비는 염원이리라..     또 한 살 먹었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고물과 골동품의 차이를 아는가? 나이 든다는 것은 고물이 되는 것이 아니고 골동품이 되는 것이다..’라고.... 고물은 버릴 때도 값을 치러야 하지만 골동품은 세월이 갈수록 진가를 발휘한다는 기특한 관념으로 다시 일어선다. 뒤를 돌아보니 꽤나 많은 길을 걸어왔다. 아름다운 골동품이 되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 보니 갑자기 엄숙해지면서 또 다른 힘이 솟는다. 저녁노을은 질 때가 더 아름답듯이 생의 황혼길을 황금길 로 장식해야 할 텐데.... 불현 듯 백범 김구 선생의 글이 생각난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발걸음 하나라도 어지럽히지 말라. 오늘 내가 가는 이 길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기에....”이제부터라도 가야만 하는 데도 불구하고 가지 않은 것 때문에 후회하는 일이 없기를 다짐해본다. 남은 생이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니.... 김지민 기자마음가짐 청춘 이회창 후보 인생 여정 후보 가운데

2022-01-20

[이 아침에] 우리를 청춘으로 살게 하는 것들

 밤새 바람이 불었다. 남아 있는 잎이 힘겹게 나뭇가지에 매달려 늦가을의 정취가 쓸쓸하다. 오늘은 아침 일찍 사람이 붐비는 시간을 피해 미용사와 예약했다. 너무 이른 탓인지 미용실 안은 두 사람만 있을 뿐 한산했다.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손님의 머리를 손질하고 있었다. 얼굴에 주름이 많지만 온화한 미소가 포근한 인상을 풍겼다. 인사를 나누고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나이가 86세라고 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작은 체구지만 부지런히 움직이며 손님의 머리를 매만졌다. 혼자 살면서 집에 하숙을 치고 남동생도 돌보며 즐겁게 산다고 했다.     의자에 앉아 은빛 머리를 손질 받는 손님이 있었는데 그녀는 98세로서 운전면허를 갱신했다고 했다. 내일모레가 백 살인데 아직도 운전한다고 하니 그녀의 활기찬 능력을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     미용실은 오랜 세월 동안 노인들의 일터가 되어 아침부터 힘이 넘치고 생기가 가득 찼다. 그들은 계속 일할 수 있도록 렌트비를 올리지 말라고 건물 주인에게 당부까지 했단다. 젊게 살아가는 할머니의 신선한 세상을 보았다. 이미 은퇴할 나이가 지났음에도 자신의 건강을 관리하며 다른 사람까지 즐겁게 보살피는 태도가 여유로웠다. 그들에겐 지금이 청춘인 것을. ‘나도 저 나이에 일할 수 있을까?’ 은퇴를 고민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나는 어떻게 노년을 보내야 하는가?’의 대답이 보이는 듯했다.   머리 손질을 마친 후 마음은 파티에라도 가야 할 것 같았지만 ‘노후를 위한 계획과 해결책’ 세미나에 참석했다. 소설시큐리티 연금만으로 부족한 은퇴 후 생활비를 보충할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노후계획이 아련히 먼 미래의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이제 발 등에 떨어진 불인 셈이다.     오랜 시간 동안 진지한 숫자와의 씨름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오며 가슴에 스치는 강한 메시지가 있었다. ‘은퇴는 직장을 떠나는 것이지 일을 떠나는 게 아니다.’     노후를 위해 물질만이 아닌 정신적인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은퇴 후 노인으로 사는 만만치 않게 긴 세월을 헤아려본다. 내 세월의 위치를 감지하고 받아들여 ‘잘 늙어가기’ 계획을 세워야 함을. 여전히 청춘으로 살기 위해서이다.     세월은 주름살을 더하지만, 마음을 시들게 하지 못한다. 남은 생을 완성하는 설계와 실천 항목을 정해보련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코로나로 닫혔던 시니어 센터가 문을 열면서 배움에 열정을 품은 노인들이 라인댄스, 요가, 영어회화, 스마트폰 교실의 수강신청에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한다.   빠른 속도로 변하는 세상의 지식에 공감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고 호기심으로 가득 찬 어린이의 시선으로 다가가자. 의미 있는 일을 찾아 새롭고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볼 때 여전히 열매를 맺을 수 있으리라. 날 청춘으로 살게 할 것이다. 이희숙 / 수필가이 아침에 청춘 세월 동안 스마트폰 교실 라인댄스 요가

2021-11-22

[이 아침에] 우리를 청춘으로 살게 하는 것들

밤새 바람이 불었다. 남아 있는 잎이 힘겹게 나뭇가지에 매달려 늦가을의 정취가 쓸쓸하다. 오늘은 아침 일찍 사람이 붐비는 시간을 피해 미용사와 예약했다. 너무 이른 탓인지 미용실 안은 두 사람만 있을 뿐 한산했다.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손님의 머리를 손질하고 있었다. 얼굴에 주름이 많지만 온화한 미소가 포근한 인상을 풍겼다. 인사를 나누고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나이가 86세라고 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작은 체구지만 부지런히 움직이며 손님의 머리를 매만졌다. 혼자 살면서 집에 하숙을 치고 남동생도 돌보며 즐겁게 산다고 했다.     의자에 앉아 은빛 머리를 손질 받는 손님이 있었는데 그녀는 98세로서 운전면허를 갱신했다고 했다. 내일모레가 백 살인데 아직도 운전한다고 하니 그녀의 활기찬 능력을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     미용실은 오랜 세월 동안 노인들의 일터가 되어 아침부터 힘이 넘치고 생기가 가득 찼다. 그들은 계속 일할 수 있도록 렌트비를 올리지 말라고 건물 주인에게 당부까지 했단다. 젊게 살아가는 할머니의 신선한 세상을 보았다. 이미 은퇴할 나이가 지났음에도 자신의 건강을 관리하며 다른 사람까지 즐겁게 보살피는 태도가 여유로웠다. 그들에겐 지금이 청춘인 것을. ‘나도 저 나이에 일할 수 있을까?’ 은퇴를 고민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나는 어떻게 노년을 보내야 하는가?’의 대답이 보이는 듯했다.   머리 손질을 마친 후 마음은 파티에라도 가야 할 것 같았지만 ‘노후를 위한 계획과 해결책’ 세미나에 참석했다. 소설시큐리티 연금만으로 부족한 은퇴 후 생활비를 보충할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노후계획이 아련히 먼 미래의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이제 발 등에 떨어진 불인 셈이다.     오랜 시간 동안 진지한 숫자와의 씨름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오며 가슴에 스치는 강한 메시지가 있었다. ‘은퇴는 직장을 떠나는 것이지 일을 떠나는 게 아니다.’     노후를 위해 물질만이 아닌 정신적인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은퇴 후 노인으로 사는 만만치 않게 긴 세월을 헤아려본다. 내 세월의 위치를 감지하고 받아들여 ‘잘 늙어가기’ 계획을 세워야 함을. 여전히 청춘으로 살기 위해서이다.     세월은 주름살을 더하지만, 마음을 시들게 하지 못한다. 남은 생을 완성하는 설계와 실천 항목을 정해보련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코로나로 닫혔던 시니어 센터가 문을 열면서 배움에 열정을 품은 노인들이 라인댄스, 요가, 영어회화, 스마트폰 교실의 수강신청에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한다.   빠른 속도로 변하는 세상의 지식에 공감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고 호기심으로 가득 찬 어린이의 시선으로 다가가자. 의미 있는 일을 찾아 새롭고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볼 때 여전히 열매를 맺을 수 있으리라. 날 청춘으로 살게 할 것이다.   이희숙 / 수필가이 아침에 청춘 세월 동안 스마트폰 교실 라인댄스 요가

2021-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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