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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우리를 청춘으로 살게 하는 것들

 밤새 바람이 불었다. 남아 있는 잎이 힘겹게 나뭇가지에 매달려 늦가을의 정취가 쓸쓸하다. 오늘은 아침 일찍 사람이 붐비는 시간을 피해 미용사와 예약했다. 너무 이른 탓인지 미용실 안은 두 사람만 있을 뿐 한산했다.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손님의 머리를 손질하고 있었다. 얼굴에 주름이 많지만 온화한 미소가 포근한 인상을 풍겼다. 인사를 나누고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나이가 86세라고 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작은 체구지만 부지런히 움직이며 손님의 머리를 매만졌다. 혼자 살면서 집에 하숙을 치고 남동생도 돌보며 즐겁게 산다고 했다.  
 
의자에 앉아 은빛 머리를 손질 받는 손님이 있었는데 그녀는 98세로서 운전면허를 갱신했다고 했다. 내일모레가 백 살인데 아직도 운전한다고 하니 그녀의 활기찬 능력을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  
 
미용실은 오랜 세월 동안 노인들의 일터가 되어 아침부터 힘이 넘치고 생기가 가득 찼다. 그들은 계속 일할 수 있도록 렌트비를 올리지 말라고 건물 주인에게 당부까지 했단다. 젊게 살아가는 할머니의 신선한 세상을 보았다. 이미 은퇴할 나이가 지났음에도 자신의 건강을 관리하며 다른 사람까지 즐겁게 보살피는 태도가 여유로웠다. 그들에겐 지금이 청춘인 것을. ‘나도 저 나이에 일할 수 있을까?’ 은퇴를 고민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나는 어떻게 노년을 보내야 하는가?’의 대답이 보이는 듯했다.
 
머리 손질을 마친 후 마음은 파티에라도 가야 할 것 같았지만 ‘노후를 위한 계획과 해결책’ 세미나에 참석했다. 소설시큐리티 연금만으로 부족한 은퇴 후 생활비를 보충할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노후계획이 아련히 먼 미래의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이제 발 등에 떨어진 불인 셈이다.  
 
오랜 시간 동안 진지한 숫자와의 씨름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오며 가슴에 스치는 강한 메시지가 있었다. ‘은퇴는 직장을 떠나는 것이지 일을 떠나는 게 아니다.’  
 
노후를 위해 물질만이 아닌 정신적인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은퇴 후 노인으로 사는 만만치 않게 긴 세월을 헤아려본다. 내 세월의 위치를 감지하고 받아들여 ‘잘 늙어가기’ 계획을 세워야 함을. 여전히 청춘으로 살기 위해서이다.  
 
세월은 주름살을 더하지만, 마음을 시들게 하지 못한다. 남은 생을 완성하는 설계와 실천 항목을 정해보련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코로나로 닫혔던 시니어 센터가 문을 열면서 배움에 열정을 품은 노인들이 라인댄스, 요가, 영어회화, 스마트폰 교실의 수강신청에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한다.
 
빠른 속도로 변하는 세상의 지식에 공감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고 호기심으로 가득 찬 어린이의 시선으로 다가가자. 의미 있는 일을 찾아 새롭고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볼 때 여전히 열매를 맺을 수 있으리라. 날 청춘으로 살게 할 것이다.

이희숙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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