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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장애인 인권운동가<스테이시 파크 밀번> 새긴 새 25센트 동전 디자인 공개

  연방조폐국이 한인 장애인 인권운동가 스테이시 박 밀번의 모습을 새겨넣은 쿼터(25센트) 동전의 디자인(사진)을 확정해 지난 18일 공개했다. 쿼터의 앞면에는 조지 워싱턴 초상화가 새겨졌고, 뒷면에는 전동 휠체어를 탄 채 연설하고 있는 밀번의 모습을 담았다.   조폐국인 다양한 분야의 여성 선구자들을 기념해 발행하는 쿼터 프로그램의 하나인 이 동전은 내년에 약 7억개가 발행돼 전국에서 유통된다.       스테이시 박 밀번(1987~2020·한국이름 박지혜)은 주한 미군 아버지 조엘 밀번과 한국인 어머니 진 밀번의 삼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미국 인권운동가로 활약한 그는 지난해 한국계 최초로 쿼터 디자인 인물로 선정됐다.       동전에는 ‘스테이시 박 밀번(Stacey Park Milbern)’이라는 이름과 함께 그가 이끌던 장애인 단체(Disability Justice), 라틴어 슬로건(E PLURIBUS UNUM 여럿을 위한 하나)이 함께 새겨진다.   조폐국은 여성 선구자들의 업적을 기념하는 여성 쿼터 프로그램을 2022년부터 2025년까지 4년간 진행 중으로 2022년 프로그램 시작 이래 매년 5개 쿼터를 발행해 왔다.     지난 18일 공개된 2025 쿼터 디자인에는 밀번 외 시민운동가 아이다 B. 웰스, 미국 걸스카우트 창립자 줄리엣 고든 로, 암흑물질 연구 천문학자 배라 루빈 박사, 테니스 선수 알테아 깁슨 등이 포함됐다.  이은영 기자인권운동가 스테이시 인권운동가 스테이시 동전 디자인 스테이시 파크

2024-12-22

이란 여성인권 운동가 모하마디, 노벨평화상 수상

올해 노벨평화상은 이란의 여성 인권운동가 나르게스 모하마디(51.사진)가 받았다. 이란 여성에 대한 억압에 저항하고, 인권과 자유를 위한 투쟁에 앞장선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는 ‘반국가 선전’ 유포 등의 혐의로 12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6일(현지시간)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이란의 대표 인권 운동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모하마디를 2023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베리트 라이스 안데르센 노벨위원회 위원장은 “이란의 여성 억압에 맞서 싸운 모하마디는 현재 감옥에 있다”며 “이 용감한 투쟁은 개인적으로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 이뤄진 것”이라고 그를 소개했다.   1972년 이란 잔잔에서 태어난 모하마디는 이맘 호메이니 국제대학 학보사 시절부터 여성 인권 신장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보이며 관련 기사를 썼고, 이란 내 여러 개혁주의 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모하마디는 지난 20여년간 수차례 옥고를 치렀다. 노벨위원회에 따르면 그는 현재까지 이란 정권에 의해 13번 체포되고 5차례 유죄 판결을 받았다. 불법 단체 설립, 반국가 선전 활동 등의 혐의였다.   수감 중에도 그의 투쟁은 멈추지 않았다. 최근에는 ‘히잡(무슬림 여성이 외출 때 목·머리 등을 가리는 베일) 반대 시위’에 참가했다가 수감된 이들의 인권을 위해 싸우고 있다. 지난해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 의문사한 마흐사아미니(사망 당시 22세) 사망 사건 이후로 관련 시위가 전국적으로 들끓었고, 이란 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쏠렸다.   모하마디가 올해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역대 노벨상 수상자 중 여성은 19명이 됐다. 이란 여성 운동가가 노벨 평화상을 받은 것은 2003년 시린 에바디 이후 두 번째다. 모하마디는 수감 전까지 에바디가 이끄는 인권 옹호자 센터(Defenders of Human Right Center) 부소장으로 일했다. 모하마디의 가족은 테헤란 북부 예빈 교도소에 수감 중인 그를 대신해 “수상의 영광은 모든 이란인의 것이다. 특히 자유와 평등을 위해 싸우는 용기로 세계를 사로잡은 이란의 용감한 여성과 소녀들에게 영광을 돌린다”는 소감을 전했다. 시상식은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에서 열린다. 김민정 기자노벨평화상 여성인권 노벨평화상 수상자 여성 인권운동가 올해 노벨평화상

2023-10-06

노벨평화상에 '러 침공' 맞선 인권운동가·단체

올해 노벨평화상의 영예는 러시아 권위주의 정권의 영향력에 맞서 시민의 권리 증진을 위해 노력한 활동가 1명과 단체 2곳에 돌아갔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벨라루스 활동가 알레스 비알리아츠키(60·사진), 러시아 시민단체 ‘메모리알’, 우크라이나 시민단체 ‘시민자유센터(CCL)’를 2022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7일(현지시각) 발표했다.   올해 노벨평화상은 지난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 지속하고 있는 전쟁에 고통받는 국가에서 나왔다는 점이 주목된다.   비알리아츠키는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로 불리는 알레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장기 철권통치를 하는 벨라루스에서 인권단체 ‘바스나’를 창설해 루카셴코 정권에 맞서 활동해왔다.   메모리알은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저명한 인권단체다. 이 단체는 옛 소련과 개방 후 러시아의 정치적 탄압을 연구·기록하고, 러시아와 다른 옛 소련권 국가들의 인권상황을 감시해왔다.   CCL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본부를 두고 2007년 설립돼 우크라이나의 격동기에 조용히 파수꾼 역할을 해왔다. 현재 CCL은 러시아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민간인에 대한 러시아군의 전쟁범죄 증거를 수집하는 데 노력을 집중하고 있다.   한편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은 자국의 시민단체가 전쟁 당사국인 러시아, 벨라루스 소속의 단체·인물과 공동으로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에 대해 불만 섞인 반응을 보였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보좌관은 트위터에 “노벨위원회는 ‘평화’라는 단어를 흥미롭게 해석하고 있다”며 “어떻게 세 번째 수상자(우크라이나)를 공격한 두 나라(러시아·벨라루스)의 대표가 노벨상을 함께 받을 수 있느냐”고 볼멘소리를 냈다.노벨평화상 인권운동가 우크라이나 시민단체 러시아 시민단체 노벨평화상 수상자

2022-10-07

인권운동가 제시 잭슨목사 대학내 분쟁 중재 중 낙상

미국의 흑인 인권 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80)가 기숙사 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대학생 시위대를 지원하러 나섰다가 낙상 사고를 당했으나 병원 치료를 받고 회복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2일 시카고 트리뷴 등에 따르면 잭슨 목사는 전날 워싱턴DC의 흑인 명문 사립대 하워드대학을 찾았다가 예기치 못한 사고를 겪었다.   미국 유색인종연합(Rainbow/PUSH) 대변인은 잭슨 목사가 캠퍼스 내 건물 입구에서 넘어져 머리를 다쳤다며 "곧 하워드대학 부속 병원으로 옮겨져 상처 치료를 받고 정밀검사를 했다. 이상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하워드대 학생들은 "기숙사에 곰팡이가 피고 쥐가 다닌다. 학교 당국에 환경 개선을 거듭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며 지난달 12일부터 캠퍼스 중앙에 위치한 블랙번 학생 센터를 점거하고 노숙 농성을 벌이고 있다.   대학 측은 학칙을 위반하고 농성을 벌이는 학생들을 징계 조치하겠다는 입장이다.   잭슨 목사는 농성 중인 학생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 웨인 A.I. 프레데릭 총장과 만나 "학생들이 농성을 끝낼 경우 징계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쥐•침수•곰팡이 피해가 있는 기숙사 방들에 대한 조사를 약속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이 소식을 학생들에게 알리기 위해 블랙번 학생 센터로 돌아가다가 사고를 당했다.       잭슨 목사의 장녀 샌티타 잭슨(58)은 1일 밤 소셜미디어에 "아버지는 현재 휴식을 취하며 회복하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이어 "임무 완수"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그는 앞으로도 계속 여러분을 위해 싸울 것이다. 지금 그의 목표는 하워드대 학생들의 웰빙"이라고 덧붙였다.   시카고 트리뷴은 잭슨 목사가 2일 퇴원했으나 언제쯤 자택 소재지인 시카고로 돌아올 지는 모른다면서 애초 이날 일부 학생들과 함께 프레데릭 총장을 만나 문제를 매듭지을 계획이었다고 전했다.   1960년대부터 흑인 인권운동에 투신한 잭슨 목사는 지난 2017년 신경계 퇴행성 질환인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 올초 담낭 수술을 받았고 지난 8월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돌파감염으로 입원하기도 했으나 적극적인 대외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시카고=연합뉴스 김 현 기자인권운동가 잭슨목사 대학생 시위대 하워드대학 부속 제시 잭슨

2021-11-03

킹 목사 50주기…“나는 사람이다” 멤피스 비롯 미 전역 수십만명 행진

1968년 4월 4일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의 로레인 모텔 306호 발코니. 멤피스에서 1300여 명이 참여한 청소 노동자 파업을 지원하던 중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가 흉탄에 쓰러졌다. 그 후 50년. 고령의 청소 근로자들은 지난 4일 킹 목사에게 진 빚을 갚는 행진을 시작했다. 멤피스 시내에는 이날 수만 명의 시민,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행진했다. 그들의 손에는 50년 전 청소 근로자들이 목놓아 외쳤던 것과 똑같은 구호인 ‘나는 사람이다’(I Am A Man)가 들렸다. 멤피스 추모 집회에는 대권 주자로 꼽히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제시 잭슨 목사, 앨 샤프턴 목사, 존 루이스 의원 등이 참여했다. 멤피스에서는 10대 청소년들이 50주기 상징으로 50마일 행진을 했다. 킹 목사가 피격된 시간인 오후 6시 1분에는 39회 타종이 이뤄졌다. 그의 39세 생애를 상징하는 타종 행사다. 워싱턴DC에서도 수만 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행사가 열렸고 미 전역에서 이날 킹 목사 50주기 추모 행사에 참가하는 인원은 수십만 명에 달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킹 목사 50주기에 맞춰 올린 트윗에서 “킹 목사에 대한 기억을 기리며 모든 미국인이 공포와 증오로부터 해방되길 바란다”고 썼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15일 마틴 루서 킹 데이에 별도 행사 없이 골프장으로 향해 비난을 받기도 했다. [연합]

2018-04-04

그가 떠난 후 반세기…여전히 남아있는 인종차별

'버스 내 흑백차별' 시위 이끌며 두각 비폭력 노선 고집하며 지지층을 넓혀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최고 연설 꼽혀 정치권 공작.도청 "비열한 거짓말쟁이" 노벨 평화상 수상…50년 전 오늘 암살 1968년 4월 4일. 멤피스의 한 모텔 2층 발코니에서 총성이 울렸다. 백인우월주의자였던 제임스 얼레이가 미리 잠입해 있다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머리에 총격을 가한 것이다. 킹 목사와 함께하던 사람들이 응급조치를 했지만 병원 이송 중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 미국 인권운동의 얼굴로 활약했던 그는 39세의 젊은 나이로 멤피스에서 생을 마감했다. 오늘은 킹 목사가 암살당한 지 정확히 50년이 되는 날이다. 50주기를 맞이해서 그의 삶과 우리의 현실을 돌아본다. ▶인권운동에 헌신한 삶 킹 목사는 1929년 애틀랜타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침례교 목사인 '목사 가족'이었다. 당시만 해도 애틀랜타에는 인종차별이 만연해 있었고 가족 전체가 인종차별주의자에게 멸시와 폭행을 당했지만 이에 논리적으로 항의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대표적 흑인대학 중 하나인 애틀랜타의 모어하우스 대학 신학과를 졸업했고 펜실베이니아주 체스터에 있는 크로저 신학교를 나왔다. 신학교를 마친 뒤에는 보스턴 대학교 대학원 신학부에서 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보스턴에서 기독교적인 사회참여에 대한 신념을 굳힌 그는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의 교회에서 담임 목사직을 맡게 됐다. 그리고 여기서 그는 자신의 인생을 건 투쟁을 하게 된다. 로자 파크스라는 여성이 버스에서 백인 남자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아 경찰에 체포되고 연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젊은 목사였던 그는 로자 파크스의 사건을 계기로 시작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의 지도자가 됐다. 그는 탁월한 연설 능력과 카리스마로 5만 여명의 시민을 동참시킨 행진의 맨 앞에 섰다. 1956년 12월 연방 최고 재판소에서 버스 내 인종 분리가 위헌이라는 판결을 받아내고 난 후에는 그야말로 '전국구 스타'가 됐고 흑인 민권 운동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흑인 해방 운동과는 달리 비폭력 노선을 고집한 그는 일부 흑인 지도자들한테 비판받기도 했지만 지지층을 넓혀 나갔다. 1963년 8월 워싱턴 DC의 링컨 기념관에서 25만 명의 관중을 두고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이라는 연설을 했다. 지금도 킹 목사하면 떠오르는 명연설이며 최고의 영어연설문으로 꼽힌다. 1964년에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높아지는 이름과 격해지는 견제 노벨상까지 받으면서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자 흑인 민권 운동에 반대하는 세력으로부터 견제도 심해졌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킹 목사에 대한 도청을 지시한 바 있다. 50년 동안 FBI 국장의 자리를 지키면서 공작 정치를 했던 에드거 후버는 킹 목사가 비열한 거짓말쟁이라고 비판했다. 후버 국장은 다른 많은 유명인사나 정치인들에게 하듯이 킹 목사의 사생활을 감시하기 시작했고 그가 여성편력이 심하다는 내용을 신문사에 보내기도 했다. 물론 백인우월주의자들에는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킹 목사가 민권운동에 투신한 이후로 그와 그의 가족은 항상 위협에 시달렸다. 비폭력주의자로 유명했던 그가 가족의 보호를 위해 총을 소지하고 다닐 정도였다. 1968년 4월 3일 테네시주의 흑인 청소 노동자 파업투쟁을 지원하러 간 킹 목사는 암살자가 오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청소노동자들 또한 피신을 권고했다. 하지만 그는 "나도 다른 사람들이 그렇듯 오래 살고 싶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날 그는 암살당했다. ▶여전한 인종차별 주류언론은 킹 목사 암살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미국 사회의 모습에 대한 기사를 쏟아냈다. AP통신은 IT, 생명과학, 건축, 공학 등 고임금 직종에서 흑인들이 훨씬 더 적은 수를 기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외식업계나 건물 보수, 단순 사무 등의 상대적 저임금 직종에 흑인 종사비율이 높다고 지적했다. 킹 목사가 박사학위를 받으며 자신의 신념을 공고히 했던 보스턴은 이런 모습을 극명히 보여주는 지역이다. 컴퓨터나 수학 관련 전문직종에 종사하는 백인의 수는 흑인의 27배에 달했다. 독일의 통신사 dpa 통신은 50년 전 킹 목사가 생을 마감한 멤피스도 피부색에 따라서 사는 지역이 다르며 흑인의 생활조건이 훨씬 열악하다고 전했다. 멤피스 대학의 안드레 존슨 교수는 "우리가 계속 투쟁하면 현시대의 문제를 논의하지 않게 되는 날도 올 것"이라며 차별과 편견에 맞서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루터 킹 목사의 어록 "옳은 일을 하기에 적합한 시기란 없습니다. 바로 지금이 그 순간입니다." "우리는 두려움이라는 홍수를 막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용기라는 둑을 쌓아야만 합니다." "폭력은 적을 파괴하지만 비폭력은 적을 친구로 만듭니다." "악에 대항하거나 항의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실제로 악에 협력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중요한 일에 대해 침묵하는 날 우리의 생명은 저물기 시작합니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열정적이면서도 온화해야 합니다. 또 이상주의자면서 현실주의자여야 합니다." 조원희 기자 [email protected]

2018-04-03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 50주기…여전한 미국 인종차별의 '그늘'

오는 4일이면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 만 50주가 되지만 미국에서는 여전히 인종차별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AP통신은 30일(현지시간) 정부 자료 분석을 토대로 정보기술과 사업, 생명과학, 건축, 공학 분야의 고임금 직종에서 만성적으로 백인 대표자들이 흑인보다 더 많이 분포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또 미국의 흑인 다수는 음식 제공·준비와 건물 보수, 사무 업무와 같이 저임금에 혜택도 적은 일자리를 찾아다닌다고 분석했다. 일례로 미국 노동통계청에 따르면 평균 연봉이 가장 높은 11개 직군에서 백인 노동자들이 흑인들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킹 목사와 깊은 관련이 있고 '기술혁신의 허브'로 통하는 보스턴에서도 백인 노동자 수가 컴퓨터와 수학 관련 전문직에서 흑인과 비교해 약 27명대 1명꼴로 많았다. 보스턴의 투자자들도 백인이 운영하는 벤처기업을 훨씬 더 지지하는 것 같다고 일부는 말한다. 보스턴은 킹 목사가 박사 과정을 밟고 그의 부인을 만난 곳이기도 하다. 노스이스턴대학 듀카키스 센터의 시어도어 랜즈마크 이사는 "구조적 차별"이 고임금 분야에서 인종 불균형을 대변하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dpa 통신도 같은 날 기사에서 킹 목사가 암살당한 멤피스의 현 상황을 설명하며 지금도 피부 색깔에 따라 거주 구역이 구분돼 있으며 미국 소수 흑인의 생활 조건도 다수를 차지하는 백인과 비교해 열악하다고 진단했다. 멤피스대학의 안드레 존슨 교수는 숨겨진 인종차별이 있고 흑인들이 차별과 편견에 맞설 필요가 있다며 "우리가 계속 투쟁하는 한 미래 시대가 오늘날 우리가 얘기하는 걸 논의하지 않게 되는 날이 올 것이란 희망도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dpa 통신은 실업률과 수입 구조, 재소자 현황, 빈부 격차 등에서도 미국에 사는 백인과 흑인 간 차이가 뚜렷하다고 전했다. 한편 미국에선 킹 목사의 기일 맞아 추모 행사가 열렸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킹 목사 서거일을 나흘 앞두고 10대 청소년 무리가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시(市) 북부 61번 도로에서 50마일(약 80km) 걷기 행사를 시작했다. [연합]

2018-04-01

마틴 루터 킹 사적지 '업그레이드'

애틀랜타 다운타운의 마틴 루터 킹 주니어 국립 사적지(Historic Site)가 국립공원(Historic Park)으로 승격되어 연방정부의 강화된 보호를 받게 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 대학 풋볼 챔피언 결승전을 관람하기 위해 조지아 애틀랜타를 방문하는 비행기 안에서 ‘마틴 루터 킹 주니어 국립 역사공원 법안’에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법안을 서명함으로써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마틴 루터 킹 기념일을 앞두고 애틀랜타와 흑인 커뮤니티 및 민권단체들에게 큰 선물을 한 셈이다. 트럼프를 가장 강력하게 비판하며 반대편에 서 있는 애틀랜타의 존 루이스 연방하원의원은 이 법으로 애틀랜타 다운타운에 있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사적지가 격이 달라지게 될 것이며, 연방정부의 관리과 보호가 한결 더 강화될 것이라고 환영했다. 이번 조치로 연방정부 공원처럼 공원 순찰대원(파크 레인저)이 이 일대를 보호하기 위해 순찰하게 되며, 상설 교육 프로그램이 개설되고 커뮤니티 그랜츠 예산도 배정된다. 이번에 서명된 법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 사적지역으로 킹목사의 탄생 주택과 시무했던 에벤에셀 침례교회와 방문센터 뿐 아니라, 한때 남부기독리더십컨퍼런스(SCLC) 본부로 사용됐던 프린스 홀 매소닉 빌딩까지 포함되게 됐다. 노연두 기자

2018-01-09

마틴 루터 킹 목사 동상, 애틀랜타에 선다

흑인 인권 운동 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동상이 그의 고향인 애틀랜타에 선다. 1일 애틀랜타 저널(AJC) 보도에 따르면 네이선 딜 조지아 주지사 오피스는 지난 주말 마틴 루터 킹 목사 동상 제막 행사를 위한 초대장을 발송했다. 제막식은 오는 28일 다운타운 주청사에서 열릴 예정이다. 동상이 설 장소는 미정이다. 그러나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드라이브와 킹 애비뉴가 교차하는 뉴 리버티 플라자 인근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동상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제막을 기획한 지 2년 만의 일이다. 딜 주지사는 지난 2013년 의회에 걸린 인종차별주의자 톰 왓슨의 동상을 철거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후 다수의 민주당 의원들은 주정부를 대상으로 그 자리에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동상을 설치하자고 요청 해왔다. 현재 주청사에는 유화로 된 킹 목사의 초상화만이 걸려 있다. 킹 목사 동상은 제막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의회와 킹 재단과의 협의를 거쳐야 했고, 특히 원제작자 앤디 데이비스가 동상 제작 도중 교통사고로 사망하기도 했다. 지난해 6월 새로운 조각가 마틴 더우(Martin Dawe)가 프로젝트를 이어받았고, 기업들의 스폰서를 받아 겨우 완성됐다. 권순우 기자

2017-08-01

"가난 · 억압받는 이 위해 입북" 월북 로버트 박씨 부모 밝혀

〈속보〉 25일 성탄절에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서 북한으로 무단 월경한 북한인권운동가 로버트 박(28 한국명 박동훈.사진)씨는 전세계 북한 인권 및 탈북자 관련 100여개 단체간 네트워크 '자유와 생명 2009' 대표로 활동하며 서울에서 열린 북한 인권개선 촉구 집회에도 여러 번 참석했다. 박씨는 미국 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로 중국에서 활동하다 북한의 인권 실태를 목격한 뒤 지난 7월부터 북한 인권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단체 관계자는 "박씨는 미국 캘리포니아 출생으로 부모님은 현재 애리조나주 투싼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의 학력이나 경력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박씨의 부모는 26일 이 단체 관계자 앞으로 보낸 이메일에서 "로버트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한 순전한 동정심에서 입북했다"고 밝혔다. 박씨는 입북을 감행하기 위해 중국으로 떠나기 직전인 지난 23일 서울에서 로이터와 가진 인터뷰에서 "기독교인으로서 북에 들어가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한다"며 자신이 북한에 억류되더라도 "(과거 여기자 사건처럼) 미국 정부가 자신을 구해주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길 원한다"며 "정치범 수용소가 해방되기까지는 (북에서) 나오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입북전 단체 카페에 올린 글에서 "지금도 700만명이 북한에서 굶어 죽어가고 있고 25만명 정도가 학대와 고문으로 정치범수용소에서 죽어가는데도 국제사회는 침묵하고 있다"면서 "국제법과 세계인권선언에 기초해 국제사회가 북한에 개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009-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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